▲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
첫 번째는 수년간 보류되었던 마약 대응 협력 재개다. 펜타닐은 마약성 진통제로 미국은 중국에 대해 펜타닐 원료 유통 차단 등에 대한 협력을 요구해왔다. 중국 측은 펜타닐 원료를 만드는 화학회사를 직접 단속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번째는 군 대화 소통 재개다. 미국은 남중국해·동중국해 공역에서 중국군이 위협적 공세를 계속하고 있는 만큼, 오판을 막기 위한 군 소통 채널의 복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양국 군의 고위급 소통,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협의체 회의, 사령관급 전화통화 등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세 번째는 인공지능(AI) 개발에 관한 문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문가들과 함께 인공지능(AI)과 관련된 위험 및 안전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양국 간 최대 갈등 현안인 대만문제에 대해서는 평행선을 달렸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해야 한다며 대만 무장을 중단하고 중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결국 통일될 것이고 반드시 통일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무력 사용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은 변함없다고 확인하면서도, 대만의 선거 절차를 존중해 달라고 요구했다. 내년 1월에 열리는 대만 총통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다. 대중국 수출 통제에 대해 미국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했다. 시 주석이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일방적인 제재를 해제해 중국 기업에 공평하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인 환경을 제공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중국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소통은 하지만 국익이 걸린 핵심 현안은 양보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평가할 수 있다. 군사 소통채널 복원에 합의하는 등 긴장 완화를 위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대만 문제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에 관해서는 현저한 시각차를 드러냈고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회담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각시키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나눈 가장 건설적이고 생산적이 대화 중 하나"라고 자평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중미 관계와 관련된 전략적·전반적·방향적 문제와 세계 평화·발전에 연관된 중대 문제에 관해 솔직하고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평했다. 회담 모두발언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경쟁이 충돌로 비화되지 말아야 한다"고 한 데 대해 시 주석이 "충돌은 감당 불가"라고 화답했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과 경기침체에 직면한 시 주석이 충돌 격화만은 막은 셈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패권경쟁으로 칭할 정도로 충돌했던 미중관계는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 질문에 시진핑을 주석을 독재자로 칭하고, 중국외교부가 무책임하다고 반발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일단은 관리 모드로 가는 분위기는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외교적 활동 공간을 넓혀나가는 기회로 활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 먼저, 한중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탈북자 문제 등에 있어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둘째,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그리고 흑연 등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로 인해 한국의 경제안보가 위협받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생산에 필수적인 원부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셋째, 미중 간 마약 대응 협력 재개 기회를 활용해 국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연예계, 학원가 등에 확산되고 있는 마약 퇴치에 진력해야 한다. 넷째, 대외활동을 자제해 온 시진핑 주석이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6년 만에 미국 땅을 밟았는데, 시 주석의 방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한중관계를 회복하고 발전시키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