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여전히 말 뿐인 기업규제 개혁](http://www.ekn.kr/mnt/thum/202311/2023112801001597800079241.jpg)
얼마 전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주요 규제 현황과 개선방안을 담은 건의집을 펴냈다. 내용은 지배구조, 공정거래, 기업세제 등 3가지 분야에서 우리나라와 주요 국가의 제도를 비교한 것이다. 내용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개월간 분야별로 외부 전문가의 연구와 검증 과정을 거쳤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지배구조 분야에 흔히 ‘포이즌 필(Poison-Pill)’이라고 불리는 신주인수선택권제도가 반영돼 있다. 신주인수선택권 제도는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이 적대적 M&A를 시도할 때 공격자를 제외한 기존 주주에게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공격자의 지분을 희석시켜 경영권을 방어하는 시스템이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고 일본, 프랑스 등도 도입하고 있다. 공정거래 분야에는 대기업집단 규제,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이 있는데, 이런 규제들은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대기업 집단, 지주회사에 대한 사전규제를 도입한 이유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대다수 국가에서는 이러한 사전적 규제가 없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이 혁신을 통해 독점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이 혁신이 아닌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경쟁사업자의 사업을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담합을 하는 등 시장경쟁을 해치거나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경우에만 사후적으로 처벌한다. 조세분야에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과표구간 단순화 등이 담겼다. 대한민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지방세 포함)은 26.4%로 OECD 평균(23.1%)보다 3.3%포인트나 높다.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과표구간도 우리나라는 4단계에 걸쳐 누진세 체계로 부과하는 데 비해 대부분의 OECD 국가는 과표구간이 1~2개로 단순하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과표구간도 단순화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공동 건의집에 포함된 규제개선 내용들은 경제계가 오래전부터 개선을 요청했던 것들이 대다수이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은 과제도 많다. 일각에는 진부한 과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정말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핵심적인 규제개선 과제이기 때문에 진부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반복적으로 건의하는 것이다. 핵심과제인 만큼 그간 경제단체들은 세미나, 정책건의, 설명자료 제작, 전문가 기고, 정책당국과의 간담회, 언론홍보 등 규제개선을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일부 성과도 있지만 전반적인 규제의 틀과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전 정부에서는 관련 규제가 더 강화되기도 했다. 정부는 매년 3000개에 달하는 규제개혁을 했다고 발표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규제를 개선했는데 기업들이 느끼는 규제개선 체감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지 경제단체에 물어보곤 한다. 정부의 규제개선 성과는 개별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 진 것 들이 많다. 규제를 풀더라도 개별기업 또는 몇 개의 관련 기업에만 파급력이 미친다. 물론 이런 세부적인 규제개선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규제개선 체감도를 높이려면 많은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인세, 지배구조, 공정거래, 노동 등 분야의 핵심규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 경제단체가 공동으로 건의집을 낸 것은 핵심규제 개선에 정책당국이 나서주기를 바라는 경제계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워낙 큰 과제이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어 정책당국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성장 고착화의 구조적 위기가 코앞에 와있다. 규제개혁을 통한 기업환경 개선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즉시하고 정책당국은 경제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핵심규제 개선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