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기자의 눈] 망 이용료 논쟁, 신중론 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에너지경제신문=정희순 기자] 망 이용대가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망 이용 대가 문제는 결국 과도한 트래픽 증가에 따른 망 증설 비용을 누가 댈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한마디로 ‘돈’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ISP(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와 CP(콘텐츠제공업체) 간 갈등이 첨예할 수밖에 없다.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초반에는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글로벌 CP가 수세(守勢)에 몰리는가 싶더니, 이후 구글을 중심으로 한 CP의 반발이 조직화하고 미국 무역대표부가 자유 무역 협정 위반이라는 카드까지 들고 나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급기야 망 이용대가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우리 정치권도 한 발 물러나 재검토 목소리를 내고 있다. ISP들도 반격을 준비 중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통신 3사와 함께 ‘망 무임승차하는 글로벌 빅테크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12일 간담회를 연다.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명확한 규칙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유발하는 트래픽의 양은 이미 다른 기업들의 트래픽을 월등히 뛰어넘었고, 네트워크 망 증설이 더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에는 이견이 없다. 글로벌 CP들은 해당 법안이 결국은 유튜버를 비롯한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구글은 유튜브 고객센터 공지사항에 ‘망사용료 법안 관련 청원 안내’라는 글을 올려 유튜버를 인질로 내세웠고, 트위치는 한국에서의 동영상 화질을 갑자기 낮춰 이용자들의 불편을 야기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망 증설로 인해 ISP가 지게 되는 부담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눠 내야한다. 넷플릭스를 보지 않고 유튜브를 이용하지 않는 일반 국민에게 그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현 상황을 ‘시장 실패’로 보고,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에 동의한다. 그의 말처럼 콘텐츠 공급자이든 창작자이든 접속료는 내야 하고, 누군가 내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된다. 절대적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된 CP에게 휘둘리며 ‘신중론’만 제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hsjung@ekn.kr정희순 정희순 산업부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

얼마전 어느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미래 경제의 고용변화 분석을 위한 좌담회에 참석해 2040년 금융산업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의 금융현실에서는 "금융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하다"는 명분을 앞세워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던 인물이 어느날 갑자기 금융회사의 대표가 돼 방패막이로 돌변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곤 한다. 이런 현실은 금융업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금융서비스 개발을 막아 경쟁을 보호로 둔갑시킨다. 이처럼 금융은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오만함이 가득하다. 20년 후 금융산업을 상상해 보면 우리나라 금융이 분명히 위기의 계절을 겪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사실, 금융은 변하지 않았다. 화폐가 생겨난 이후 수 천년 동안, 은행이 생겨난 이후 수 백년 동안 그 기능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고 앞으로 긴 세월이 더 흘러도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금융업을 구성하는 은행을 포함한 거의 모든 금융사들이 사라질 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주인과 상호도 바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 금융을 상상하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금융업의 고용상황이다. 2021년 기준 금융업 취업자수는 79.2만명으로 향후 2030년까지 증가하지 않거나 소폭 감소한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현실을 모르거나 너무 걱정한 결과로 보인다. 필자는 금융업은 역사적으로 기계가 보여준 노동의 대체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압도하는 이른바 노동의 종말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본다. 다른 여건이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기술 혁신만으로 마케팅, 고객서비스 업무는 물론 상품·서비스 개발, 금융시장 분석, 경영전략에 이르는 노동이 대체될 것이다."월스트리트에는 새로운 것이 없어. 오늘날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전에 일어났고 다시 일어날 것이야. 탐욕이나 두려움의 모든 극단에는 전례가 있지. 그리고 기술은 변하지만,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이 가을에도 철 지난 베짱이 노래는 계속되고 있다. 금융의 핵심은 신뢰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금융공급자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신뢰는 처음부터 제도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 이용의 불편을 없애고 위험을 줄였던 금융서비스가 축적된 결과이다. 금융의 중추기능인 지급결제 역사를 살펴보면, 지급결제의 주역은 화폐를 만들어 낸 권력자가 아니라 상업적 이익을 위해 화폐를 대신하여 화폐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급수단으로 화폐이용의 불편을 없애고 위험을 줄였던 상인들, 즉 고대 환전상, 중세 금세공업자 그리고 근대 은행이다. 이들은 고객이 맡긴 주화, 금, 가치를 갖는 권리 등에 대한 ‘보관증명’을 지급수단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를 지급하거나 이체를 통하여 결제 편의성을 도모한 것이다. 미래 금융은 안타깝게도 금융 내부에서 보다는 외생적으로 디지털 기술이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디지털기술 혁신 또는 저탄소 전환을 돕는 정보통신기술(ICT)이 향하는 금융의 변화, 즉 중개기관을 배제하는, 탈중앙화된 조직이 운영하는 금융에 유념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래 금융의 주역은 은행보다는 변화와 균형의 가을을 따르는 핀테크일 가능성이 높다. 금융의 기반이 되는 신뢰(trust)를 바탕으로 더 똑똑해지고 다양해지고 빠르게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경제가 성숙해 나아가면서 산업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어 이에 맞추어 기후변화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택소노미를 제정한 것처럼 신산업고용분류체계(Taxonomy on New Industry and Labor)의 개발이 시급하다. 또한 여타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금융업 진출을 늘리고, 사라진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머신러닝 전문가, 경험 설계사, 블록체인 관리자, 커뮤니티 대변인, ID통합 관리자 등)를 위한 교육과 훈련을 서둘러야 한다.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EE칼럼] 에너지안보 시대 에너지믹스와 탄소중립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원에 의존도가 높은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나비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철저한 준비와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유럽, 특히 독일의 경우에서는 그간 석탄 화력을 폐쇄하고 천연가스 발전을 강화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며 탄소 저감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러시아가 지난 8월말 3일간에 걸쳐 독일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잠근데 이어 최근에는 해저 천연가스 배관 폭발이 생김에 따라서 유럽권역은 대단한 위기 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파이프라인으로 공급 받는 천연가스 (PNG)를 대체하기 위하여 다른 천연가스 생산지로부터 공급 받으려면 공급지로부터 기존의 파이프라인이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운송에 별도의 시설이 필요하다. 즉 천연가스를 운송하기 위하여 액화 과정을 거쳐서 액화천연가스 (LNG)를 생산하여 액상으로 운송하고, 수요지에서는 저장시설 및 기화 송출 시설을 통하여 기존 천연가스 배관망에 공급해야 한다. 독일은 신규 LNG 터미널과 육상 및 해상 항만 인프라를 위한 건설 작업을 현재 빠른 속도로 진행 중에 있고 이러한 계획 중에는 일부 ‘FRSU’라고 불리는, 액체 상태의 LNG를 기화해 육상에 공급하는 기능을 갖춘 특수 선박 기반의 LNG터미널 건설도 포함되어 있다. 첫번째 신규 LNG터미널 건설은 모든 작업이 지난 7월에 승인을 받아 추진되고 있는데 내년 봄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기존의 LNG터미널을 확장하거나 추가적인 LNG 터미널을 건설 계획 중에 있다.원래 LNG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주로 장기 공급 계약을 기반으로 수급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유럽의 경우에는 천연가스를 포함한 화석연료에 대한 금융 지원을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해, LNG 수요가 갑작스레 증가할 가능성도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지역에 긴급한 에너지 사태로 LNG 수요 공급의 불안정성이 늘었다. 단기적으로 우리나라도 LNG를 포함한 에너지 문제를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 해결하여야 하는 것이 국가 위기 관리의 주요한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글로벌 LNG 시장은 이미 일시적인 교란 상태이지만 앞으로 좀 더 가격 변동이 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이 LNG 가격 지표로 삼는 JKM 지수 추이를 보면, LNG 가격은 7월 21일 1MMBtu(열량 단위·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양)당 38달러에서 8월 22일 61달러로 한 달 사이에 60% 정도 올랐고, 이는 2020년 평균 가격인 3.8달러에 비교할 때에 16배 정도 오른 셈이다.우리나라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간목표로서, 파리기후변화 협정에 따라 참가국이 스스로 정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한 바 있다. 여기에는 2030년까지 2018년 총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한 탄소 저감 목표를 수립하였을 뿐 아니라 그 이행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을 2018년의 41.9% 대비 절반 정도인 21.8%로 로 축소할 예정이고, 이미 몇몇 석탄화력 발전소는 가동을 중지한 바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 따르면, 천연가스의 탄소배출량은 석탄의 57%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LNG는 현재 탄소 저감의 시대에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브릿지 연료’로 석탄화력 발전의 발전량을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해가고 있으며 국내 LNG 발전 비중은 2017년 22%에서 2021년에는 29%로 올랐다. 이와 같이 천연가스 수요가 늘고 있는 가운데 급작스러운 LNG가격 상승 압력은 국가 안보적 상황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LNG의 약 52.4%를 도시가스용으로 그리고 나머지인 47.6%는 발전용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데, 국제 수요의 변화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온전히 감당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단기간적으로는 에너지 부문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발전 부문의 LNG사용을 최적화하며 관리할 필요가 있다. 즉 1~2년 정도의 단기적 상황으로 예상되는 LNG 공급 위기 상황 발생 시, LNG 발전 부하의 일부를 석탄과 원자력이 좀 더 감당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는 설비 용량과 실제 가동율에서 에너지 믹스를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이에 맞게 발전 용량을 관리하여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하여서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충분한 논의를 하고 이를 국민에게 소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내년 11월 UAE에서 개최 예정인 COP28(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그간 국가별로 제출한 NDC에 대한 첫번째 전지구적 이행 점검 (GST)을 하기로 되어 있다. 유럽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예기치 않은 국제 정세 하에서 이에 대한 자료 준비와 향후 대책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에너지·발전 부문에서 우리가 관리할 에너지 믹스 중에 우리의 경우에는 석탄화력이나 LNG 발전과 같은 화석연료 사용 발전이 국가 안보 관리 측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 경우에 이러한 부문의 이산화탄소 저감을 이산화탄소 포집설비 (Carbon Capture)와 저장 능력 (Carbon Sequestration)을 반드시 포함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박기서 전 대기환경학회 부회장

[데스크 칼럼] 납품단가연동제, 상생 촉매제로 삼야야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2021년 (주요정책 부문) 자체평가 결과보고서’를 공개했다.정권교체를 이룬 윤석열 정부의 중기부가 직전 문재인 정부의 중소·벤처기업, 창업기업, 전통시장을 포함한 소상공인 관련 주요정책의 46개 관리과제 성과를 등급별로 매긴 성적표였다.민간평가위원들이 46개 관리과제를 자체평가해 등급을 매긴 결과, 지난해 문 정부의 전반적인 중소기업 정책은 △매우 우수 2개 △우수 9개 △다소 우수 7개 △보통 14개 △다소 미흡 7개 △미흡 5개 △부진 2개의 성적표를 받았다. ‘보통’을 기준점으로 본다면 ‘우수’ 18개, ‘미흡’ 14개다. 민간평가위원들의 ‘채점’이더라도 정권교체 뒤 직전 정부의 ‘흠결’을 찾아내려는 정치권의 ‘루틴(routin·의도적인 반복행동)’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표’이다.윤 정부의 문 정부 중소기업 정책평가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불공정거래 근절을 통한 중소기업 경영환경 개선’ 과제로 평가등급 ‘6등급(미흡)’을 받았다. 수주기업(수급사업자)에 제조원가를 밑도는 납품단가 요구, 중간 유통·판매 비용의 전가, 특허기술 탈취 등으로 중소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발주기업(원사업자)의 갑질행위를 근절·개선시키려는 정부(중기부)의 지난해 정책 노력이 부족했다는 평가였다.수주기업들은 원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이전 역대정부 때부터 개선과 시정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과 개선을 요구하는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핫이슈가 ‘납품단가 연동제’이다.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사업와 수급사업자간 하도급 및 위·수탁거래에서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에 연동하는 조항을 의무화하는 제도이다. 국내외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고정단가 계약으로 제조원가에 상승비용을 반영하지 못해 ‘출혈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개선 요구와 연동제 도입을 촉구하면서 지난 2008년부터 입법 논의가 진행됐으나 성과는 없었다.윤 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시절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의지를 피력했고, 당선 뒤 중기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주도로 지난 9월 초 표준약정서를 마련하고 6개월간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진전을 보였다. 입법화도 여야 모두 적극성을 띠고 있어 연내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다만, 걸림돌이 있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납품단가 연동제를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간 자율계약 방식을 유도하고 있다.중소기업계는 자율계약보다는 법제화를 통한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5월 중소 제조기업 209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납품단가 연동제의 법제화를 원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발주(갑)와 수주(을)라는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에서 자율의 게임룰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불신감의 반영이었다.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원사업자들은 납품단가 연동제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국민여론과 정치권을 의식해 반대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대신 연동제 도입이 기업간 사적 계약임을 강조하며 ‘의무화(법제화)’를 반대하고 있다.이처럼 정부와 국회, 이해당사자들 간 견해차가 있기에 시범운영 평가와 입법화 과정에서 이견 조정이 필요하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6개월간 시범운영을 거쳐 시행과 제도 안착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통과의례를 슬기롭게 치러야 한다.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14년을 끌어온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더라도 산업계의 위기 극복에 작은 ‘상생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에너지경제신문 이진우 성장산업부장(부국장)

[기자의 눈] 롤러코스터 집값

흔히 ‘집값은 롤러코스터’라는 말이 있다. 놀이공원의 대표 놀이기구인 롤러코스터처럼 집값도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반드시 있고 오르내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롤러코스터’는 지난해까지 열심히 올라갔다. 지난해 말 고점에 멈춰 급격한 하강을 준비했고 고점을 지나자 부동산 롤러코스터는 가속도가 붙어 쏜살같이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 부동산 시장은 집값 하락이 본격 시작되면서 답답한 형국이다. 국민들은 집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다. 유주택자는 늘어난 대출이자에, 무주택자는 늘어난 월세에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 내 집 유무에 상관없이 부동산 시장에서는 그 누구도 웃질 못하는 게 현실이 됐다. 지난해 부동산 시장에는 세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집을 샀다는 사람과 매수를 계획 중인 사람, 못 사서 전전긍긍하는 사람 등이다. 집을 산 사람은 주위의 부러움을 샀고 못 산 사람은 로또를 눈 앞에서 놓친 바보 취급을 받았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1년 전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행복하지 않았겠다 싶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집값 하락이냐 일시적 조정이냐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거래절벽 상황에서 증여나 급매 등 일부 거래만으로는 시세를 책정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매수 우위 시장으로 굳어진 채로 집값이 최소 1~2년은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의견이 공존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봤을 때는 시장이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길게는 현 정권 5년 내내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집값 롤러코스터가 언제 다시 위로 올라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남들 따라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집을 장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을 계속 상기할 필요는 있다. 한 번의 하락을 경험해본 만큼 무턱대고 영끌을 해서 집을 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무리해서 대출을 받지 않는 선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구하는 게 ‘부동산 롤러코스터’를 겁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잊지 말자, 롤러코스터!증명사진_김기령

[EE칼럼] 심화되는 글로벌

천연가스 물량을 확보하려는 각국간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이런 쟁탈전은 더 가열되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유럽이 일련의 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중단·축소로 맞서고 있다. 유럽으로 향하는 3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중 야말-유럽(Yamal-Europe)선이 지난해 말 이미 차단된데 이어 지난달초에는 러시아에서 발트해 해저를 거쳐 독일로 향하는 노르트스트림1선 가스공급이 무기한 중단됐다. 선진7개국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적용하겠다는 발표가 있은 직후였다. 지난해 9월 완공된 노르트스트림2선은 올해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로 독일측의 승인절차가 중단됐다. 며칠전에는 노르트스트림1·2 모두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관 파손이 발견돼 가동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현재는 3대 파이프라인중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를 경유하는 파이프라인 만이 가동되고 있으나 이마저도 언제 가동 중단될지 알 수 없다.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의 40% 이상을 차지했던 러시아의 대체 조달처를 확보하는데 필사적이다. 당장은 미국, 카타르 등에서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과 노르웨이, 아제르바이잔 등의 가스 수입으로 견디고 있으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는 판이다. 지난달 25일에는 독일이 아랍에미레이트(UAE)로부터 연내 LNG를 공급받기로 합의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게 다음달 1일까지 가스 저장설비의 80% 이상을 채우도록 요구하고 있어 각국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유럽은 천연가스 확보를 당장 LNG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LNG는 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보다 액화비와 재기화비, 수송비 등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유럽의 LNG확보 총력전은 LNG 수입 1~3위국이 몰려 있는 아·태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1분기 LNG 수입은 유럽이 전년동기 대비 70% 증가했고, 아·태지역은 8% 줄었는데, 이는 LNG 운반선 상당수의 목적지가 아태지역에서 유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LNG 수입 세계 3위로서 지난해 수입물량이 3817만톤으로 전년대비 624만톤(19.6%) 증가했다. 세계 1위 수입국인 중국의 증가량(1040만톤)에 이은 두번째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발전용 가스 수요가 크게 늘었다. 글로벌 가스 쟁탈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가스 수요 대국인 우리나라는 관민(官民) 일체로 안정적 물량 확보를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 올해 8월 현재 우리나라는 LNG 총 저장용량 557만톤의 34%인 181만톤을 비축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의무비축물량인 일평균 사용량의 9일분 이상으로 통상적인 여름철 비축물량의 2배에 달하지만 비상시국인만큼 비축량을 더욱 늘려야 한다. 목적지조항이나 의무인수조항 등의 조건이 까다롭게 요구되지 않는 미국산 LNG 장기계약물량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되 세계 상위 가스수출국인 호주, 카타르 등과의 안정적 수급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유가에 연동되는 장기계약물량 가격은 JCC가격(일본의 평균 원유수입가격)에 대략 14.5%를 곱해 결정되는데, 최근 유가가 LNG 현물가격보다 상대적으로 덜 올랐으므로 장기계약이 가격 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현재 70~80%인 장기계약 비중을 당장 크게 늘릴 수는 없으므로 카고 단위의 현물·단기 시장 물량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가스 물량 확보에는 비상이 걸렸지만 가스 운송이나 액화·기화 설비 등의 시장에서는 기회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전세계 LNG운반선은 올해 4월 말 현재 총 641척으로 2020년 이후 10% 늘었으며 현재 216척이 건조중이다. 우리나라가 LNG운반선에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에서 앞서갈 수 있는 지속적인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에 따라 2020년 해양 연료의 황 함량 0.5% 또는 배출규재해역(ECA) 0.1% 글로벌 상한 규제가 시행됐고, 내년 1월부터는 신·기존 선박에 대한 에너지효율지표인 EEXI(Energy Efficiency Existing Ship Index)와 탄소강도지수(CII)라는 두 가지 더 엄격한 규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에 대응해 바이오합성LNG나 암모니아, 수소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개발·생산을 확대해야 한다. 액화수소나 블루암모니아, 그린암모니아 등 무탄소 신연료 운송을 위한 선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유럽의 부유식LNG저장·재기화설비(FSRU) 발주 급증에서 기회를 찾을 필요도 있다.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기자의 눈] 오빠는 다른 남자들과 달라

"오빠는 다른 남자들과 달라." 꽤나 전략적인 문장이다. 경쟁 상대들을 싸잡아 ‘다른 남자’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본인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이 말을 듣는 여성들도 다 안다. 그 오빠 역시 다른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한국 경제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다.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만의 ‘사건’이다. 숫자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올해 들어 누적 적자만 288억8000만달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우리나라 무역적자가 4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206억2000만달러)의 2배가 넘는 규모다. 그럼에도 많은 경제주체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우리나라 경제 체력 자체가 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수출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거나 외환보유고가 넉넉하다는 점 등이 근거로 거론된다. 에너지 수입국 대부분이 적자를 내고 있다는 것을 보고 안도하는 사람도 있다. 무역에서 손해를 봐도 경상수지가 누적 흑자를 기록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온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글로벌 산업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한국은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 등의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무역갈등이 고조되고 보호무역주의가 유행처럼 번지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차는 차세대 먹거리인 전기차를 미국에서 대량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기술력을 가진 것은 국가가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다. 외환보유고 역시 한순간 바닥나도 이상하지 않다. 경제는 심리다. 단숨에 자산 시장이 붕괴할 수도 있다. 전세계 주요국에서 ‘경제 경고음’이 들려오는 것은 위안거리가 아니라 최대 변수다. 신흥국은 물론이고 일본, 영국, 이탈리아 등도 사면초가 상태다. 주요국에서 촉발된 위기가 전염병처럼 번진다면 가장 위험해지는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다. 우리가 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었는지 잊으면 안 된다. 국가·가계 부채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부채 시한폭탄이 터지면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 국가부채와 국가채무의 차이점조차 모르는 무능한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낮다는 것은 왜곡된 통계다. D2·D3 등 용어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국전력의 현재 처지를 보면 안다.산업부는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다"며 무역적자 해소 방안을 적극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히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수준에서 해결책을 찾으면 안 된다. 기업, 가계, 정부를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들 ‘묘수’를 고민해야 한다. 외환·금융위기 당시와 지금 상황이 다르다는 말은 이제 삼가는 게 좋다. 오빠가 하는 저 진부한 멘트보다도 가볍게 들린다.yes@ekn.kr산업부 여헌우 기자

[이슈&인사이트] 커지는 무역적자, 경제위기 도화선 안되게

올해 무역수지 적자 폭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무역수지는 올 4월 이후 지난달까지 6개월 내리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9월까지 누계 기준 올해 무역수지 적자는 289억 달러다. 올해 무역수지적자가 480억 달러를 기록해 무역통계가 작성된 1964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06억2000만 달러의 약 2.3배에 달하는 규모다. 가장 큰 요인은 국제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으로 수입물가가 높은 가운데 세계경제 둔화로 한국수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주력수출품인 반도체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수출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둔화로 기업들의 재고가 증가하고 투자도 위축되고 있다. 벌써 대외무역면에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올해 4월부터 지속되고 있는 무역수지 적자 행진이 국내증시에 대한 투자매력을 하락시켜 외국인 자본 유출로 이어져 원화가치 절하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무역수지 관리는 실물경제 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 안정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무역수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해외자원개발 물류애로해소 등 공급망 안정에 노력하는 한편, 무역금융 확대, 연구개발(R&D) 세제지원강화 법인세인하 등 세제개혁, 규제 개혁, 노동개혁, 신성장동력 확보 지원 등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통상정책에도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으로 한국의 대미국 자동차수출에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최대 7500달러(약 979만원) 의 세액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는 북미에서 제조는 물론, 배터리 부품의 50% 광물 40% 이상을 조달해야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한국에서 생산되는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들이 세액공제혜택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어 발표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은 미국의 세액공제를 받은 기업이 중국 내 공장을 짓거나 설비 투자를 확대할 경우, 보조금을 회수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어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직격탄이 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더해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반도체의 대중(對中) 수출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보다 강력한 새로운 제재 조치를 이르면 수일내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기술과 장비를 사용해 생산했다면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도 미국 상무부가 수출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Foreign Direct Product Rules)’을 동원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미국 기술과 장비를 이용하지 않고 최첨단 반도체를 개발·생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의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미 정부는 이와 함께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SMIC와 양쯔메모리(YMTC) 등 중국 기업에 14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생산용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바이오의 연구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두 미국에서 하도록 하는 ‘미국 우선주의’ 조항을 담고 있는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이 ‘BBC(Bio·Battery·Chip)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한국의 유력수출품목인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가 전방위적으로 타격을 받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사전적이고 적극적인 통상정책 대응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무역수지적자가 지속되면서 경상수지도 위험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로 구성되어 있다. 무역수지는 통관 기준이어서 수입은 운임·보험료 포함 가격(CIF)으로 계산하는 반면 국제수지상 상품수지에서 수입은 운임과 보험료를 빼고 계산하는 방식이어서 무역수지가 상품수지보다 적게 된다. 무역수지적자가 지속되면서 7월에는 상품수지도 적자로 돌아섰다. 해외여행수지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어 경상수지도 연내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재정적자와 더불어 쌍둥이적자가 고착화되어 급격한 미국금리인상이 가져오는 대외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신뢰도를 추락시켜 위기의 도화선이 될 우려도 있다. 무역수지적자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다.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EE칼럼] 원전에 길 열어준 K-택소노미에 거는 기대

오래전에 아마존에서 투자관련 서적분야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고릴라 게임’이 있었다.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첨단기술 산업에서 시장을 싹쓸이하는 고릴라와 어느 정도 성장하다 말게 될 침팬지, 얼마되지 않아 사라질 원숭이가 섞여 있다고 한다. 시장의 승자인 고릴라가 되는 비결은 기술표준을 만들어 경쟁사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윈도우로 컴퓨터 운영체제의 표준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스마트폰시장의 표준을 만든 애플, OTT(Over The Top) 서비스를 개발한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대표적인 고릴라이다. 기술표준을 주도하면 고릴라가 될 수 있지만 기술표준에서 탈락하게 되면 원숭이가 되고 만다. 어떤 산업분야가 친환경 산업인지, 녹색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산업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그린 텍소노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이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는 것은 한국 원전 기술 경쟁력을 높일 뿐 아니라 원전산업이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어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유럽은 최악의 가뭄으로 다뉴브강이 말라 2차대전당시 침몰한 독일 군함 20척이 모습을 드러냈고, 한반도에는 ‘힌남노’와 ‘난마돌’과 같은 초강력 태풍이 발생했다. 세계는 기후변화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전 세계는 생존차원에서 지구의 평균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줄이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그린뉴딜 정책과 연계된 새로운 경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기후변화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EU 택소노미를 개발하여 녹색경제활동을 정의하고 녹색금융을 통하여 녹색 프로젝트나 녹색 기술을 지원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금년 7월에는 그간 논란이 되었던 원자력을 EU 택소노미에 추가로 포함하였다.우리나라는 2020년 7월에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선포하였다. 2021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였으며 ‘2030년까지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의 감축목표’를 정한 바 있다. K-택소노미는 2021년 12월에 발표되었으며 금년 9월에는 원자력발전이 포함된 분류체계 초안이 공개되었다. K-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등 6대 환경목표와 69개의 경제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전과 관련 경제활동으로 ‘원자력 핵심기술개발’ ‘원전 신규건설’ 및 ‘원전 계속 운전’ 등이 포함된다. ‘원자력 핵심기술’은 원전의 안전성 향상과 국가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장기적 연구 개발이 필요한 연구과제로서 SMR, 차세대 원전, 핵융합 등이 포함된다. ‘원전건설’ 및 ‘계속운전’은 환경피해 방지와 안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2045년까지 허가를 받는 설비를 대상으로 했으며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및 ‘고준위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세부계획과 계획실행을 담보할 수있는 법률제정’을 조건으로 달았다. K-택소노미는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서 수립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EU에 비해 부족한 점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EU를 넘어서서 세계 에너지환경 정책을 이끌어 가려면 EU보다 더 공격적이고 글로벌한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2050년 이전 운영 착수 ▲사고저항성 핵연료와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서는 금융지원뿐 아니라 기술의 사업화 및 판로까지 지원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순수 그린전기(GE 100) 생산 설비 및 제품에 대한 지원 강화(그린 스탬프 발행) 등이다. 원자력이 EU 및 K-택소노미에 포함된 것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원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각국의 에너지 안보 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자력이 택소노미 틀안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되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EU나 한국에서 조성된 녹색금융자금을 원전사업자들이 끌어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자금조달이 쉬어져서 신규건설 사업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또한, 핵심 기술개발 예산을 지원받아 방폐물 최소화 기술, 수소생산 원자로, 사고저항성 핵연료 등의 연구개발을 통한 원전설비의 안전성 및 신뢰도 향상이 가능하다. 아울러 원전 수출사업 투자에도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동유럽의 체코, 폴란드처럼 기술과 자금이 필요한 원전 도입 희망국은 EU와 유사한 택소노미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와 협력하면 녹색기술 및 녹색사업자금 조달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자력이 포함된 K-택소노미는 2050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원전의 안전성과 수출 경쟁력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공청회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K-택소노미에 대한 많은 응원과 함께 부정적 견해도 제법 들린다. 원자력이 포함되는 것을 반대하거나 원자력의 안전과 환경에 대한 인정기준이 EU에 비해 미흡하다는 의견과 원자력에 녹색자금이 많이 흘러가면 재생에너지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의견 등이다.정부는 전문가, 시민사회, 산업계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서 세계 최고의 K-택소노미가 수립되도록 노력하고, 순그린에너지(GE100)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로운 활용을 통하여 안정적인 전력공급계획과 수출동력을 세우며, 글로벌 탄소중립시대를 이끌어 가길 바란다.조병옥 한동대학교 객원교수/전 한수원 품질안전본부장

[기자의 눈] 탄소중립 가려면 전기요금 가격신호 기능 회복부터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은 탄소중립을 위한 추가비용 지불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최대 전력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 주도로 탄소중립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본지가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저탄소 생활을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한다면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월 500원에서 1000원까지 부담할 수 있다는 응답이 32%로 가장 많았다. 즉 절반 이상의 국민들은 탄소중립을 위해 월 1000원 이상 낼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저탄소 생활을 위한 재생에너지 사용 확산에 동참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70% 이상인 것과 대조된다. 즉 돈이 안 들어가는 항목에서는 저탄소 생활도 실천하고 탈원전도 하고 재생에너지 확대, RE100 등에 동의하지만 이에 수반되는 수치를 제시하면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설문조사가 진행된 바 있는데 미국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해 월 5000원을 더 낼 수 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만 5000원도 내 삶의 질 하락이 안 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나온 수치다. 만약에 추가적으로 전기를 아껴 쓰거나 생활의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면 5000원도 못 내겠다는 얘기다. 올해 상반기에만 15조원의 적자를 기록한 한전은 결국 올해 전기요금을 kWh당 19.3원 인상했다. 4인 가구 평균 한달 전력사용량 307kWh에 단순 대입하면 가구당 월 5900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인상으로 한전 4분기 수입증가는 8500억 원, 4분기 예상적자 12.1조원의 7.0%, 2022년 전체 예상적자 35.4조원의 2.4%수준에 불과하다. 해외 주요 전문기관들은 한동안 이상기후, 재생에너지 간헐성, 에너지자원 무기화 등으로 전력수급 위협요인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전기화, 전력망 확충, 재생에너지 보급, 효율투자 등 탄소중립 과정에서 대규모 이행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합리적 비용 분담체계를 마련할 필요성이 크다. 지금 같은 전기요금 수준에서는 여전히 전기를 아낄 유인이 없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자급률이 17%에 불과한 에너지수입국이지만 낮은 전기요금으로 전력소비는 세계 최상위, 에너지효율은 최하위 수준이다. 적절한 가격신호를 통해 산업체의 효율향상 투자를 유도하고 에너지 비용 절감을 통해 기업의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을 이뤄내야 한다. 탄소중립에 앞서 전기요금의 ‘가격신호’ 기능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다.전지성 에너지환경부 기자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