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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분쟁 부르는 공사비 검증제도

최근 철근 등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기존에 약정한 공사비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한 시공사들이 시행자인 조합측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해 재개발·재건축 등 주택 정비사업지 곳곳에서는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비사업 조합들은 조합원들의 분담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무턱대고 공사비의 증액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시공사들은 종종 실제 물가상승분을 넘는 공사비를 증액하려는 시도를 하고, 최근에는 시멘트·철근 등 자재가격 상승을 핑계로 과도하게 공사비를 부풀리는 행태도 보이고 있다.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한 건설사에서는 설계와 다르게 철근을 빼먹은 사례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정비사업조합은 시공사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공사중단 또는 입주방해 등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루다가 입주가 닥쳐서야 급히 총회를 열어 공사비 증액과 추가분담금 문제를 논의하다 조합 내부 분쟁으로 이어지고 사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정비법 제29조의 2에서는 시공사와 조합사이의 공사비 증액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공사비 검증제도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공사비 검증은 국토교통부 고시로 마련한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기준에 따라 한국부동산원에서 진행한다. 문제는 시공사가 공사비 검증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검증결과에 따라 공사비가 조정된 사례도 확인할 수 없어 실효성 없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실 발표에 따르면 이 법에 따라 공사비 검증을 신청한 정비사업장은 2022년 기준 32곳이다. 이는 최초 공사비 검증제도를 도입한 2019년 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실제 공사비 검증 결과에 따라 공사비 조정이 이뤄졌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홍 의원은 지난 9일 공사비 검증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내용을 담은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사비 검증결과를 조합원 총회에 공개하고, 공사비 변경계약 때는 검증 결과를 반영했는지 여부와 반영 범위를 의결하도록 하는 한편 공사비 검증의 반영결과를 한국부동산원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했다. 그러나 공사비 검증결과를 반영했는 지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 만으로 과연 공사비 검증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사비 검증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시공사는 극단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추가공사비의 지급을 받을 때까지 조합원 또는 일반분양자들의 입주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법원의 판결에도 추가공사비를 내지 않은 세대의 입주를 방해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검증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먼저 공사비 검증 결과를 반영하거나 검증 결과를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 시공사가 공사비 미지급에 불만을 품고 입주를 방해하는 경우 이를 강력히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입주를 위해 종전 거주지를 정리하고 이사하는 조합원과 일반분양자들의 경우 분쟁의 해결때까지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 앉는 상황에 처해 시공사의 주장이 부당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추가공사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자체적으로도 충분히 정당한 공사비를 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정비사업조합은 공사비가 정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자체적인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공사비 검증의 결과를 반영하는 제도에 더해 시공사가 정당한 범위를 넘는 추가공사비 요구를 하면서 입주를 방해하는 경우 대표자의 형사처벌, 건설업 면허의 박탈, 입찰참여제한조치 등의 추가적인 제재수단의 도입이 필요하다. 물가상승으로 인해 고통받는 건설업계가 정당한 공사비 검증을 통해 적정하게 산정된 공사비를 지급받을 수 있고, 정비사업조합도 적정하게 산정된 공사비만을 지급해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

[EE칼럼]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원칙적인 접근 필요하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인 NDC가 확정된 이후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수립과 유상할당 계획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배출권 유상할당 계획은 2030년까지의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량 결정과 산업계 경쟁력 확보,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여타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따라서 유상할당 계획이 확정되기 전 수립 논의과정에서 전해들은 몇 가지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 차원에서 글을 쓰고자 한다.주장1. 시장예비분이 증가하는 만큼 유상할당을 확대해야 한다. 주장1은 시장안정화와 유동성 관리를 위한 배출권 예비분 물량이 배출상한총량(cap) 외부에 있기 때문에 이를 총량 내부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예비분 물량까지 더하여 배출하면 NDC 감축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유럽 배출권거래제인 EU ETS에서도 예비분은 총량 내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일견 그럴듯한 주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EU ETS에서는 애초에 배출권이 과다할당 됐고, 또 우리나라와 같은 과도한 이월제한이 없다 보니 시장에서 나온 과잉공급 물량을 흡수한다는 차원에서 시장예비분이 조성됐다는 점에서 제도적 배경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장2. 수정 NDC에서 국제감축분이 늘어난 만큼 전환이나 산업부문에서 무상할당을 줄이고 유상할당을 늘려야 한다. 주장2는 애초에 국제감축을 확대한 이번 수정계획 자체의 근본적인 의도를 파악하지 않은 주장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발표한 국제감축분은 우리나라 NDC 이행계획에서 일종의 조커라고 보면 된다. 국내 감축량은 이에 근거해 유상할당 계획이 엄격하게 집행되는 반면 국제감축은 우리의 감축노력에 비례하는 것이며 그 달성 여부는 타 부문별 감축계획에 비해 불확실하다. 이는 미국이나 EU 등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파리협정이 표방하는 NDC의 기본 취지 자체가 각국의 감축노력을 존중하는 데 있지 패널티를 주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국제감축 물량만큼 무상할당에서 깎겠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엄격성을 유지하려는 주장은 기후변화 경제학 분야에서 평생 연구해온 필자 입장에서도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국제감축한 만큼 산업이나 전환부문에서 배출권을 유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2는 마치 이런 주장과 같다. ‘회사에서 연봉을 못 올려주는 대신에 인센티브로 1000만원 지급하겠습니다. 따라서 1000만원 받은 만큼 연봉을 줄이겠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논리인지는 독자들께서 판단해주시길 바란다.주장3.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국가배출의 70%를 차지하는데도 배출권을 통한 감축이 국가 전체 감축량의 약 50%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으로 배출권 유상할당이 이뤄져 한다. 국가 배출량이 100이라고 하자.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이의 70%인 70을 관리한다. 70을 배출하는 부문에서 NDC의 40%만큼 감축하면 28이 줄게 된다. 그런데 주장3의 내용은 이렇다. 배출권의 기여로 28만큼 준 게 아니고, 28에서 배출권의 관리비중 70%를 곱해 약 20만큼 줄이는, 즉 NDC인 40의 절반만 줄이는 효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유상할당을 더 강력한 방식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다시 연결된다. 주장3 역시 어떤 논리에서 나온 셈법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배출권 관리대상 부문에서 감축한 28은 절대적 수치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관리대상 이외 부문까지 더한 총 비중을 곱해서 만든 20은 허구적 수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전체 배출량의 약 40%에 해당하는 EU 보다 대상 업종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배출권 유상할당이나 무상할당 계획은 합리적인 정책 논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논의 과정에서 폐쇄성은 우리가 정작 벤치마킹하는 EU나 캘리포니아 배출권거래제 등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관련한 대부분의 논쟁적 이슈나 토의 과정 등 관련 정보는 공개되기 때문이다. 이번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이제 우리의 국격에 맞춰 진행하길 바란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기자의 눈] 네거티브 규제, 선언보다 실천 더 중요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글로벌 혁신특구를 도입해 국내 최초로 네거티브 규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혁신특구, 네거티브 규제 등 용어는 추상적이지만, 한마디로 ‘하면 안 되는 것’을 뺀 규제를 모두 풀어 현행법 내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신기술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들에게 혁신 창업의 숨통을 틔게 해주겠다는 발표였다.이영 장관은 지난 8일 글로벌 혁신특구 간담회에서 "대통령 세 명이 달라붙어 규제를 해소하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고 털어놓으며 윤석열 정부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규제 혁파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이 장관의 발언 배경을 이해하려면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스타트업 업계의 지속 성장과 애로 해소를 위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당시 국내 스타트업 256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내의 여러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절반에 가까운 44.1%에 이르렀다. 주로 신기술 개발·사업화 과정에서 겪는 규제 중 ‘기술실증 관련 과도한 허가제’(51.6%)와 ‘등록·허가업종의 복잡한 진입장벽’(50.4%)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25.4%는 ‘국내 규제로 해외이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심정까지 드러내기도 했다.혁신특구 간담회에 참석했던 바이오 스타트업 관계자의 목소리는 더 절박했다. "자주 바뀌는 기준(규제) 때문에 처음부터 제품을 재제작하거나, 완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세계 3대 IT기기 전시회인 바르셀로나 MWC 2023에서 상을 받은 스타트업의 관계자는 국내 규제로 혁신제품 판매가 불가해 정부의 글로벌 혁신특구가 물꼬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스타트업을 포함한 산업계가 정부의 네거티브 규제 발표를 환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그러나, 새로운 정책이 나올 때마다 포장된 선언은 화려하지만 구체적인 알맹이는 빠져 있기 일쑤였다. 글로벌 혁신특구 발표에서도 특구가 지정되면 금지목록을 작성한 뒤 소관부처가 제시하는 추가 규제 면제와 유예 조치를 적용할 것이라고 중기부는 밝혔지만 네거티브 규제의 최소 기준 설정, 기업 준비대응, 세부 계획 발표 시기 등에 언급은 없었다.이 장관의 지적대로 ‘이전 대통령 세 명이 해결하지 못한’ 규제를 윤 정부가 풀겠다는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규제 개혁의 선언만 번지르하고 실천 내용이 신속하게 뒤따르지 않는다면 기업들에게 ‘희망 고문’일뿐이다. 글로벌 혁신특구가 ‘귀 호강’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중기부의 조속한 로드맵 제시와 제도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김유승 유통중소기업부 기자.

미국서 왜 자꾸 디폴트 말이 나오나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요약> 미국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높이는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다. 민주당 출신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이 맞선 형국이다. 6월1일까지 타결에 이르지 못하면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우려된다. 양쪽의 벼랑 끝 전술에 세계 경제도 긴장하고 있다. 왜 세계최강 미국에서 자꾸 디폴트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22일(현지시간) 만났으나 빈 손으로 돌아갔다.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높이는 협상은 타결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하원을 지배하는 공화당 간의 줄다리기를 숨죽여 지켜보는 중이다. 부채 한도 조정은 상·하 양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6월1일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자유시장경제의 보루다. 이런 나라가 빚을 갚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일대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부채한도 협상, 뭐가 문제이고 타결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짚어보자.◇ 민주당 대통령 vs 공화당 하원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222석을 얻어 하원을 탈환했다. 민주당은 213석에 그쳤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케빈 매카시가 차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통상 연방정부 부채 한도는 무난하게 상향 조정되는 게 관례다. 원래 연방정부 부채란 게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돈을 조달하면서 생긴다. AP통신에 따르면 의회는 1960년부터 모두 78차례에 걸쳐 연방정부 부채 상한을 올렸다. 2021년이 가장 최근 사례다. 현재 연방정부 부채 한도는 31조4000억달러(약 4경1165조원) 규모다. 올해는 달랐다. 하원 공화당은 부채 한도를 올리는 조건으로 2024년 예산안의 대폭 삭감을 요구했다. 그것도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건드렸다. 민주당은 예산안 삭감을 일부 받아들이는 대신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고 받아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형 정유사와 제약사에 보조금을 주고 부자 세금을 깎아주려는 공화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바이든은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에서 귀국하는 전용기 안에서 매카시 의장과 통화하고 곧바로 그를 만났다. 두 사람은 만남이 ‘생산적’이라고 했으나 정치적 수사일 뿐 아직 갈 길이 멀다.◇ 2011년 사례와 비교하면12년 전에도 미국은 디폴트 위기로 치달은 적이 있다. 권력 구조는 지금과 비슷하다.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된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을 차지했다. 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올리는 조건으로 대폭적인 지출 삭감을 요구했고, 민주당은 일부 삭감을 받아들이는 대신 증세가 필요하다고 받아쳤다. 협상은 디폴트 데드라인을 이틀 앞두고 간신히 타결됐다. 그러나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신용평가사 스탠다드 앤 푸어스(S&P)는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등급 내렸다. 사상 처음이었다. 그 여파로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무디스와 피치는 AAA를 유지했다. 2013년에도 부채 한도 상향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대폭 축소하라고 요구했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간판 정책인 오바마케어를 사수하는 데 총력을 쏟았다. 이때 신용평가사 피치는 미국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2011년과 2013년의 경우 실제 디폴트가 일어나기 전에 협상이 타결됐다. 디폴트가 미국 경제를 망치는 폭탄이라는 걸 백악관과 의회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은 이번에도 양쪽이 벼랑 끝 전술을 펴다 막판에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을 걸로 내다본다. 그러나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디폴트가 오더라도 예산 대폭 삭감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원 공화당 안에는 강경 트럼프 지지세력이 자리잡고 있다. 매카시 의장은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반면 민주당 내 리버럴 의원들은 그들대로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강 대 강이 맞붙은 형국이다. 오는 2024년 대선에선 바이든과 트럼프가 재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연방정부 부채 협상은 부분적으로 그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 만에 하나 디폴트가 현실화하면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는 24조달러, 우리돈으로 3경1600조원에 이른다. 총액 기준 단연 세계 최고다. 이 가운데 31%에 해당하는 7조6000억달러(약1경원)가 외채다. 외채만 보면 올해 1월 기준 일본 보유액(1조1044억달러)이 가장 많고 2위는 중국(8594억달러)이다. 한국도 1060억달러 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스타티스타 통계). 다른 국채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미국 금융기관 등이 보유하고 있다. 만약 미국 재무부가 국채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면 월가는 물론 국제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신뢰를 잃은 미 국채 금리는 하늘 높이 치솟고,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줄줄이 내릴 공산이 크다. 주가 하락도 불가피하다. 전후 미국 국채는 최상급 안전자산으로 군림했다. 그런 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들은 대안을 찾지 못해 패닉(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잔디는 디폴트가 단 1주일 이내로만 이어져도 미국인 1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걸로 내다봤다. 만약 디폴트가 올 여름까지 길게 지속되면 780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국채 금리는 치솟고, 실업률은 현 3.4%에서 8%로 오르고, 주가하락으로 10조달러가 날아갈 것으로 예측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란 브랜드가 입을 치명타다. 여태 미국은 내부에서 위기가 터져도 끄덕없이 극복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위기의 진앙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은 달러화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디폴트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글로벌 기축통화로써 달러 위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 디폴트 가능성은 작지만미국은 그냥 달러 국채를 찍기만 하면 된다. 국채를 사겠다는 사람은 줄을 섰다. 기축통화 달러가 가진 특권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미국이 디폴트를 방치해 말도 안 되는 위기를 자초할 리가 없다. 시장이 협상 타결을 낙관하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이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민주·공화 양당 간 이념 대결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오죽하면 합중국이 아니라 ‘분열국’(Disunited States of America)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강대국은 늘 내부 분열로 위기를 자초한다. 국익을 도외시한 디폴트는 그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소탐대실이 따로 없다. 이 경우 최대 수혜자는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중국이 될 공산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하원 공화당이 미국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난한다. 제3자의 눈에는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슬아슬 줄타기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자유시장경제의 보루로써 미국이 책무를 다하기 바란다. <경제칼럼니스트>▲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 의장(공화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논의한 뒤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을 백악관에서 만나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상향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최종 타결에 이르는 데는 실패했다. 사진=AP/연합뉴스

[EE칼럼] 전력수요 분산 정책, 효과 높이려면

미국에서 전기를 생산시설의 동력과 조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에는 기술적 제약 때문에 수요 지역에 가깝게 발전기를 설치해야 했다. 또 사용하는 기기에 따라 전압과 주파수 등 전기적 특성이 서로 달라 다양한 종류의 전기들이 생산 및 공급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분산형 소량생산의 형태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고, 이익이 보장될 정도로 인구 밀도가 높아 수요가 보장되는 지역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런 전기산업 형태에 변화를 준 것은 대공황 시기 정부의 개입이었다. 그 결과 철저하게 자본주의 중심으로 형성됐던 전력 네트워크가 인구 밀도가 적은 지역까지 연결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전력회사에 이익을 보장하는 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유연하거나 역동적인 산업적 색채는 점차 사라지게 됐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누적돼온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전기 산업이 늦게 형성된 것이 오히려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전력수요 증가와 디지털 중심의 산업화에 따라 단계적으로 전력망을 구성할 때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부문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차원으로 발전량 예측이 어려운 재생에너지가 확산되면서, 관리적 차원에서 해결이 필요한 변동성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등장했다. 변동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공급 부문과 수요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공급 부문에서는 변동성을 예측해서 사전 대응하는 것과 예측하지 못한 부분을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빠른 대응 및 조정이 가능한 전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스를 이용한 복합화력 발전을 활용한다. 그런데 이 역시 전량 수입하는 LNG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또 수요 부문에서 변동성을 대응하는 방법으로는 수요를 분산시키는 방법이 있다. 분산시킬 수 있는 축은 크게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 시간적 분산은 부하 감축 및 이동을 위한 다양한 유인책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시간적 분산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전력망의 확충에 따른 복잡성 증대라는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간적 분산을 추구하는 전략이 동시에 요구된다. 공간적 분산은 기존 수요를 이전시키거나 신규 수요를 창출할 때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곳으로 유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전력 수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산업용이기 때문에 전력 다 소비 업종을 발전원 인근 지역 중심으로 형성하는 것이 요즘 회자 되는 하나의 솔루션이다. 이는 장거리 송전에 따른 에너지 손실을 방지하고 설비 구축에 따른 갈등을 해소하는 등 에너지 측면의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방 소멸위기 대응 및 국토균형 발전의 추진과도 상호 보완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책적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포함해 해당 산업 생태계 및 가치사슬 측면까지 고려한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 수도권이나 지방의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어떤 산업이 형성된 데에는 초기에는 정책적인 측면이 컸겠지만 그 이후 자연적으로 증가한 매력이 기업의 입지 선정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산업 수요와 더불어 가정 및 상업적 수요까지 끌어오기 위해서는 그에 알맞은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따라서 이는 에너지 측면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주거, 교육, 문화, 교통 등 다양한 삶의 요소들의 측면까지 모두 고려해 지역 생태계 조성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슈&인사이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대응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국의 제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된 미국은 자국우선주의에 초점을 맞춘 공급망 강화와 제조업 부흥을 위해 반도체와 전기차를 양대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법을 잇달아 제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2년 8월9일 ‘반도체과학법’( CHIPS Act)에 서명한 데 이어 1주일 뒤인 같은 달 16일에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서명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입법으로 한국 기업들이 곤경에 처했다. 반도체과학법은 중국 등 비우호국으로의 투자를 차단한다는 내용이 핵심으로 ‘가드레일 조항’을 담고 있다. 미국 상무부와 기금(보조금 지원) 협정을 맺는 기업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 등 ‘우려국가’에서 미국의 동의없이 반도체 제조역량의 ‘실질적 확장’과 관련된 주요 거래를 할 수 없다. 이어 나온 세부지침은 특정 첨단 컴퓨팅 반도체 및 수퍼컴퓨터용 반도체 칩 등에 대한 제한적 수출 통제와 특정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중국 내 생산시설을 ‘외국 기업’(multinationals)이 소유한 경우는 개별적 심사로 결정하기로 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중국 현지 한국기업 반도체 공장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1년 동안 수출 통제 유예를 뒀다. 그런데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이 한미 경제안보포럼에서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이어서 미 상무부가 공고한 미국 반도체지원법상의 인센티브 프로그램 중 반도체 제조시설에 대한 재정 인센티브의 세부 지원계획도 독소 조항이 많다. 이것은 초과이익 환수와 예상 현금(기대수익)흐름 제공, 국방·안보용으로 쓰이는 첨단 반도체 시설 접근권 등으로 과도한 경영 간섭이며 기술유출 우려도 제기된다. 그렇다고 한국 기업들이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보조금을 거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미국은 반도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뉴욕· 실리콘밸리 등에 반도체 관련 최첨단 기술과 관련된 고급인력들이 상주하고 있어 미국 기업들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규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에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더 벌릴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내수시장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미국과 소규모 내수시장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상이한 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에 일방적인 순응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현실적으로 중국에 큰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어려움에 직면한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고, 외국 정부를 상대로 조율하기에는 벅차다. 더구나 반도체라는 우리 핵심 산업의 운명을 기업에만 맡길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는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의 생존과 발전이 걸린 문제다. 수출 통제 유예기간이 오는 10월로 도래하는 중국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은 ‘발등의 불’이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이후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서 생산 활동을 하는 한국기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비반입기준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경쟁으로 다방면의 영역에서의 대결과 디커플링이 혼재함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더구나 통상이 안보와 밀접하게 연계된 복합적인 국제 통상환경 아래서는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외국의 다양한 입법과 행정 조치 동향을 적시에 파악하고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험난한 국제 통상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기자의 눈] 김남국 코인에 2030 청년들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 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에서 가난한 주인공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알고 동거했던 남자친구 상훈이 가난 체험에 나선 부잣집 대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내뱉는다. 2030 청년 세대는 정치권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상 화폐 논란’에 도둑맞은 가난의 주인공 기분을 느끼고 있다. 김 의원의 가상화폐 투자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는 것은 그간 김 의원의 위선적인 행태 때문이다. 김 의원은 그간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를 해왔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매일 라면만 먹는다"며 "그렇게 먹은 지 7~8년은 됐다"고 가감 없이 자신의 ‘가난’을 드러냈다. 이러한 배경으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후원금을 가장 많이 받았고 당선 이후에도 꾸준하게 정치후원금을 요청해왔다. 당시 후원을 독려하는 영상에서는 "평생 짠돌이로 살았다"며 구멍난 신발을 신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은 적 없다며 자신의 후원을 읍소했다. 코인 자산이 60억원 이상이었던 지난해에도 후원금을 모금하면서 "작년 지방 선거 부산 지원 유세 때는 방 두 개 안 빌리고, 모텔에서 보좌진이랑 셋이서 잤다"며 후원을 거듭 부탁했다. 뿐만 아니라 김 의원은 전 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폭등했을 2020년 당시에도 "여야 국회의원들과 고위공무원 모두 부동산에 전화 겁시다"라며 "급매로 내놓으면 소화된다. 많이 올라서 큰 손해도 아닐거라 생각된다. 시세대로 팔려고 하니까 매도가 잘 안되는 것 아니겠냐"고 의원들의 부동산 매도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여기가 북한이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주택자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집 매도를 촉구했던 김 의원은 현재 본인의 코인 자금 출처와 거래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러니 김 의원을 향해 ‘내로남불’, ‘서민 코스프레’ 등의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특히 문 정부 시절 부동산 폭등에 대한 출구로 코인 투자 광풍이 일었던 2030 청년세대는 더욱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청년들은 마치 가난을 도둑맞은 느낌이다. 이제라도 김 의원은 가난 코스프레를 접고 국민들 앞에서 명명백백하게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훈이 주인공에게 그랬던 것처럼 국민들에게 절망감만 안겨줄 것이다. ysh@ekn.kr윤수현 증명사진

[이슈&인사이트] 창업역량 강화로 산업 활력 키워야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발표한 ‘한국산업 역동성 진단과 미래 성장기반 구축’ 보고서에서 "다이나믹 코리아는 옛말"이라며 한국의 산업 역동성이 위기라고 경고했다. 국내 산업은 성장잠재력 약화, 일자리 창출 능력 저하, 사회갈등 심화와 같은 이유로 역동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필자는 사회계층 이동의 역동성이야말로 그 사회의 역동성을 견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이전 시대에 비해 사회계층의 이동이 활발했다. 조선은 신분상승에 있어서 이전 고려와는 다른 혁신적인 사회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노비를 제외한 양인은 누구나 과거시험을 통해 양반이 될 수 있었다. 원로 역사학자인 한영우 교수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양인의 문과급제비율이 40.4%에 달했다. 이후 선조 때 16.72%까지 낮아졌다가 다시 꾸준히 올라 고종 때는 58%에 이르렀다. 공부만 잘 하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국가가 조선이다.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신분이동이 역동적이었다는 점이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계층 이동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분기점을 만들었다. 사회계층이동은 때로는 급진적으로 이루어졌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귀족계급이 누리던 자리를 부르주아계급이 차지했고, 볼셰비키혁명은 공산주의자들이 지배계급을 차지했다. 그러나 현대,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혁명보다는 개인의 노력을 통해 사회계층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계층 이동성이 그 사회의 역동성을 대변한다. 미국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현대사회에서의 사회계층이동성을 상징한다. 필자는 최근 전 세계의 여러 대학을 방문하고 대학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국가의 대학들이 스타트업 교육 및 육성에 열성적이었다. 독일과 프랑스,미국 등의 대학들은 이미 IT, AI와의 융합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창업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여겼던 필자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태국의 한 대학에 창업관련 시설과 활동을 보고는 우리나라 창업교육에 대해 ‘우려’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발전한 세계 유일의 국가라고 한다. 이런 저력은 바로 뜨거운 교육열에서 나왔다. 과거에 경제가 연 10% 이상씩 성장하던 시기에는 대학만 나오면 쉽게 취업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소위 일류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백필규 박사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달라졌고, 지식습득 환경이 바뀐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과거처럼 대학 서열대로 기업에 취업이 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산업화 시대에는 업무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성실하게 일하는 인재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습득한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고 환경변화가 매우 크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기회를 발견하는 능력이 중시된다. 이런 능력은 창업역량을 강화하는 데서 길러진다. 이것이 우리가 대학에서 창업 공부를 하고 창업 시도를 해 보는 근본적인 이유다. 대학 재학 중 창업역량을 키움으로써 기업이 찾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공적인 기업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창업역량을 기르고 창업시도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일부 모험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창업정신을 기르고 역량을 키워서 취업과 창업의 기회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창업교육에 대한 관심은 선진국이나 개도국 할 것 없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선진국 뿐만 아니라 개도국의 창업교육 수준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창업교육에 대한 투자가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을 인정하고 국가가 정책적으로 더욱 지원해야 한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E칼럼]미세먼지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기우다

요즘 미세먼지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미세먼지로 인한 국가 경제적 부담이 증가한다는 점이 줄곧 강조되어 왔다.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1일당 관련 손실비용이 1586억원에 달하고,지난 2018년 기준 전국 평균 연간 25.4일의 미세먼지주의보가 발령된 것을 감안할 때 약 4조230억원의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2%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여기에 추가적인 의료 관련 비용의 지출 등을 감안하면 엄청난 경제적 비용이 수반된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자. 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 80억명 중 대기 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는 650만명이며 그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는 2019년 450만 명에 달한다. 2022년 기준으로 연간 세계 사망자의 수가 6710만명이며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인한 누적 사망자가 687만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세먼지로 인한 영향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이같은 미세먼지 관련 조기 사망자수는 미세먼지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기 보다는 미세먼지가 영향을 줘서 조기에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숫자라는 점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전세계 연간 평균 신생아 사망률은 1000명당 약 27명 수준으로 30년전의 67명에 비해 현격히 개선됐다. 평균 수명도 2019년 72.6세로 같은 기간(64.2세)에비해 8.4년이나 길어졌다.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조기사망자가 늘었는데도 보건 위생의 개선, 영양 환경의 개선 등으로 인류의 평균 기대 수명과 신생아 생존율은 길어졌다. 다만 미세먼지 문제는 주로 영유아나 노년층과 같은 건강 취약자들과 기초 의료 시설 부족에 노출된 많은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더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최근 국제 연구에서는 대기 중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되는 것이 아동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헌상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명확한 인과를 나타내기 보다는 인과의 여러 경로 중 하나로서 미세먼지의 역할을 설명하는 것 같다. 대기 오염 이슈는 분명히 주요한 공중 보건 위험이고, 악성 대기질의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아동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이런 보건 위생 분야의 미세먼지 관련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얼마 전의 연구는 미세먼지가 알츠하이머나 치매와의 연관성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인과의 경로를 설명하지만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연관성의 확률을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많은 나라에서 미세먼지와 의료·보건위생 분야의 연구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실질적이고 정확한 자료나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우리나라는 2019년 영아 사망률이 1000명당 2.7명 수준으로 유럽의 평균보다 낮으며 전세계 10위권인 싱가포르(2.1명)와 비슷하다. 평균 수명도 83.3세로 세계 평균보다 10.7세가 길다. 그동안 외부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우리의 환경 수준을 빠른 속도로 개선한 것이 일부 성공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내용보다는 결과적인 숫자가 지나치게 부각됐다. 따라서 주로 현실적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이제는 이런 대기 문제와 관련해 좀 더 시민의 생활과 위해성을 정확히 전달하고 이해시키려는 소통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범 정부차원의 보건 위생 차원 정책 발굴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 먼저 정부와 학계, 기타 모든 이해관계자는 장기간의 대기 중 PM2.5 오염 노출로 인한 건강 취약 계층 사망의 상대적 위험성과 노약층의 보건 위해에 대한 상관성을 정확히 분석해 알려주는 일이 중요하다. 따라서 오염원을 중심으로 한 배출 총량의 감소 노력을 넘어서 환경 보건 연구를 통하여 더 많은 역학적 증거를 확보하여 현재 미세먼지와 인체 위해성 간의 연관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인구 역학 및 개선된 의료 시설과 대기 오염 통제 조치와 같은 개입이 사망률 부담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일반 시민들의 삶에서 미세먼지는 근로 등의 생산과 경제 활동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지만 심리적으로 보다 큰 영향을 준다. 따라서 미세먼지에 대해 관심과 주의를 넘어선 지나친 시민들의 우려가 가끔은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박기서 전 대기환경학회 부회장

감동 없는 전경련의

"사마란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불어로 ‘쎄울 꼬레아!’를 선언했다. 모두, 너나할 것 없이 얼싸안았다. 얼싸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득표는 나의 예상 46표에 여섯 표나 추가된 52표였다." 현대(차)그룹 창업주 정주영이 쓴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 나오는 얘기다. 1981년 한국은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일본(나고야)을 52대 27로 꺾고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그 맨 앞에 정주영 유치준비위원장, 아니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있었다. 국민들은 기적을 만든 정 회장과 기업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재계의 ‘맏형’ 전경련의 전성기였다. 박근혜정부 아래서 전경련은 암흑기를 맞았다. 국정농단의 조력자로 전락했고, 존폐의 기로에 섰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줄줄이 탈퇴했다. 몇 몇 총수는 홍역을 치렀다. 후임을 찾지 못해 허창수 회장이 여섯 차례 연임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적폐 청산을 외친 문재인 정부는 전경련을 대놓고 패싱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전경련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김병준이 지난 2월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경련은 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 회장 대행은 지난주 혁신안을 내놨다. 단체명을 62년 전 창립 당시 이름인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합해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김 회장 대행은 "그동안 정부 관계에 치중하는 가운데 역사의 흐름을 놓쳤던 부분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혁신안을 총평하자면, 미안하지만,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간판 바꿔다는 건 우리나라 정당이 늘 하는 일이다. 그런다고 달라진 건 없다. 윤리경영위원회를 두면 과거 미르재단 모금처럼 회원사 등을 떠미는 일이 과연 사라질까? 전경련이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한다는 말은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검은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혁신의 출발점은 당연히 탈정치화가 돼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과 가까운 외부인사가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차기 기업인 회장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변신이 진심이라면 전경련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 기업을 넘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경제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김 회장 대행은 "경실제민(經實濟民) 철학에 입각해 국가에 도움이 되고 국민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말했다. 사실 경제라는 말 자체가 경국제민 또는 경세제민에서 나왔다. 제민이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기업은 돈 벌고 일자리만 만들면 된다고? 30년 전이라면 맞는 얘기다. 지금은 다르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미국 워런 버핏은 부자한테 세금을 더 물리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그래야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소득 양극화 고질병을 앓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 외면하면 존경받는 기업, 기업인이 될 수 없다. 노조에 대해서도 좀더 대범한 자세가 바람직하다. 불법을 용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전경련이 매양 노조와 으르렁대는 모습은 보기에 민망하다. 노조 대응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맡기는 게 낫다. 대기업을 대표하는 단체라면 무게감이 남달라야 한다. 전경련은 지난주 집권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청해 정책을 건의했다. 내용은 안 봐도 비디오다. 상속·법인세 등 세금 내려달라,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을 재검토해달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범위를 명확하게 해달라 등 모두 10개 항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경련이 정부와 정치권에 대고 하는 소리는 오십보백보다. 오로지 기업 이익만 내세우면 자잘한 이익단체와 다를 바 없다. 김 회장 대행은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진심이라면 삼성 등 4대 그룹에 재가입을 압박해선 안 된다. 행여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에 출연을 강요해선 더더욱 안 된다. 국민과 야당, 심지어 노조가 깜짝 놀랄 전경련 연구보고서를 보고 싶다. "이 보고서가 전경련에서 나온 거 맞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는 돼야 한다. 그래야 진짜 재계의 맏형답다.▲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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