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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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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왜 자꾸 디폴트 말이 나오나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2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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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 의장(공화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논의한 뒤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요약> 미국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높이는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다. 민주당 출신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이 맞선 형국이다. 6월1일까지 타결에 이르지 못하면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우려된다. 양쪽의 벼랑 끝 전술에 세계 경제도 긴장하고 있다. 왜 세계최강 미국에서 자꾸 디폴트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22일(현지시간) 만났으나 빈 손으로 돌아갔다.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높이는 협상은 타결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하원을 지배하는 공화당 간의 줄다리기를 숨죽여 지켜보는 중이다. 부채 한도 조정은 상·하 양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6월1일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자유시장경제의 보루다. 이런 나라가 빚을 갚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일대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부채한도 협상, 뭐가 문제이고 타결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짚어보자.


◇ 민주당 대통령 vs 공화당 하원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222석을 얻어 하원을 탈환했다. 민주당은 213석에 그쳤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케빈 매카시가 차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통상 연방정부 부채 한도는 무난하게 상향 조정되는 게 관례다. 원래 연방정부 부채란 게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돈을 조달하면서 생긴다. AP통신에 따르면 의회는 1960년부터 모두 78차례에 걸쳐 연방정부 부채 상한을 올렸다. 2021년이 가장 최근 사례다. 현재 연방정부 부채 한도는 31조4000억달러(약 4경1165조원) 규모다.

올해는 달랐다. 하원 공화당은 부채 한도를 올리는 조건으로 2024년 예산안의 대폭 삭감을 요구했다. 그것도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건드렸다. 민주당은 예산안 삭감을 일부 받아들이는 대신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고 받아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형 정유사와 제약사에 보조금을 주고 부자 세금을 깎아주려는 공화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바이든은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에서 귀국하는 전용기 안에서 매카시 의장과 통화하고 곧바로 그를 만났다. 두 사람은 만남이 ‘생산적’이라고 했으나 정치적 수사일 뿐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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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을 백악관에서 만나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상향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최종 타결에 이르는 데는 실패했다. 사진=AP/연합뉴스


◇ 2011년 사례와 비교하면


12년 전에도 미국은 디폴트 위기로 치달은 적이 있다. 권력 구조는 지금과 비슷하다.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된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을 차지했다. 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올리는 조건으로 대폭적인 지출 삭감을 요구했고, 민주당은 일부 삭감을 받아들이는 대신 증세가 필요하다고 받아쳤다.

협상은 디폴트 데드라인을 이틀 앞두고 간신히 타결됐다. 그러나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신용평가사 스탠다드 앤 푸어스(S&P)는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등급 내렸다. 사상 처음이었다. 그 여파로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무디스와 피치는 AAA를 유지했다.

2013년에도 부채 한도 상향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대폭 축소하라고 요구했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간판 정책인 오바마케어를 사수하는 데 총력을 쏟았다. 이때 신용평가사 피치는 미국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2011년과 2013년의 경우 실제 디폴트가 일어나기 전에 협상이 타결됐다. 디폴트가 미국 경제를 망치는 폭탄이라는 걸 백악관과 의회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은 이번에도 양쪽이 벼랑 끝 전술을 펴다 막판에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을 걸로 내다본다.

그러나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디폴트가 오더라도 예산 대폭 삭감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원 공화당 안에는 강경 트럼프 지지세력이 자리잡고 있다. 매카시 의장은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반면 민주당 내 리버럴 의원들은 그들대로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강 대 강이 맞붙은 형국이다.

오는 2024년 대선에선 바이든과 트럼프가 재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연방정부 부채 협상은 부분적으로 그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 만에 하나 디폴트가 현실화하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는 24조달러, 우리돈으로 3경1600조원에 이른다. 총액 기준 단연 세계 최고다. 이 가운데 31%에 해당하는 7조6000억달러(약1경원)가 외채다. 외채만 보면 올해 1월 기준 일본 보유액(1조1044억달러)이 가장 많고 2위는 중국(8594억달러)이다. 한국도 1060억달러 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스타티스타 통계). 다른 국채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미국 금융기관 등이 보유하고 있다.

만약 미국 재무부가 국채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면 월가는 물론 국제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신뢰를 잃은 미 국채 금리는 하늘 높이 치솟고,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줄줄이 내릴 공산이 크다. 주가 하락도 불가피하다. 전후 미국 국채는 최상급 안전자산으로 군림했다. 그런 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들은 대안을 찾지 못해 패닉(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잔디는 디폴트가 단 1주일 이내로만 이어져도 미국인 1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걸로 내다봤다. 만약 디폴트가 올 여름까지 길게 지속되면 780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국채 금리는 치솟고, 실업률은 현 3.4%에서 8%로 오르고, 주가하락으로 10조달러가 날아갈 것으로 예측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란 브랜드가 입을 치명타다. 여태 미국은 내부에서 위기가 터져도 끄덕없이 극복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위기의 진앙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은 달러화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디폴트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글로벌 기축통화로써 달러 위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 디폴트 가능성은 작지만


미국은 그냥 달러 국채를 찍기만 하면 된다. 국채를 사겠다는 사람은 줄을 섰다. 기축통화 달러가 가진 특권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미국이 디폴트를 방치해 말도 안 되는 위기를 자초할 리가 없다. 시장이 협상 타결을 낙관하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이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민주·공화 양당 간 이념 대결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오죽하면 합중국이 아니라 ‘분열국’(Disunited States of America)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강대국은 늘 내부 분열로 위기를 자초한다. 국익을 도외시한 디폴트는 그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소탐대실이 따로 없다. 이 경우 최대 수혜자는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중국이 될 공산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하원 공화당이 미국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난한다. 제3자의 눈에는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슬아슬 줄타기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자유시장경제의 보루로써 미국이 책무를 다하기 바란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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