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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위한 국제 실증사업 추진을

"우리는 원자력에 빚을 지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사용후핵연료 관련 포럼에서 한 토론자가 한 말이다.2020년 원자력은 우리나라 총발전량(55만 2162GWh)의 29%를 생산했다. 우리 기업은 원자력으로 생산한 값싸고 품질 좋은 전기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 부(富)와 일자리를 창출했다. 우리나라 명목상 GDP는 1978년 25조 1545억 원에서 2021년 2,017조 6580억 원으로 80배 증가했다. 1978년은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 해이다. 우리 가정은 각종 가전제품을 쓰면서도 전기 끊길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2021년까지 사용후핵연료 1만 7862톤이 발생하여,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저장시설에 보관 중이다. 40여 년간 누적된 것치고는 적은 양이다. 우라늄 1g이 석탄 3톤에 준하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전력 생산에 투입된 양이 적으니, 배출되는 부산물도 그만큼 적다.사용후핵연료는 관리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 들어가기 전 외형 그대로다. 전기 생산 중 탄소를 배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석에너지는 발전소에서 연소하는 중 탄소를 배출하고 폐기물도 남긴다. 배출된 탄소는 대기 중으로 날아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 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옷을 걸치고 돌아오고 있다.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핵심은 관리 기간이 장기라는 데 있다. 우라늄 핵이 분열하면서 만들어진 다양한 방사성 핵종이 사용후핵연료에 담겨 있다. 이들 방사성 핵종 중 오랫동안 방사선을 방출하는 핵종이 있다. 이들 핵종을 사용후핵연료로부터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관리의 핵심이다.사용후핵연료 관리는 미래 세대를 고려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장기간 관리해야 하므로, 이 관리부담을 미래 세대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내외 법령 등은 사용후핵연료를 미래 세대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관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래 세대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유럽연합(EU) 택소노미의 최적가용기술(Best Available Technology) 개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의사결정 시점에 가용한 기술 중 최선의 것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를 여기에 적용해보면, 미래 세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결정하려 할 때, 고려할 수 있는 가용한 기술 옵션들을 우리가 개발해 물려줘야 한다. 선택된 옵션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재원과 부지 등도 같이 말이다. 정부 계획은 국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은 종합 계획이어야 한다. 지난해말 발표된 정부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사용후핵연료를 폐기물로 간주해 직접 처분하는 것만 담고 있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에는 여전히 쓸만한 핵물질이 들어있다. 이 핵물질을 핵확산 우려를 불식하고 새 연료로 재활용하는 옵션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 암운을 드리운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에 에너지 기술자립의 절실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 개발에도 난관이 있다.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 개발 및 실증을 위해서는 미국의 사전동의가 필요하고, 막대한 재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나라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소중한 기술 개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 개발의 난관 타개를 위해, 7개국이 공동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사업을 참고하여,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의 국제 공동 실증을 제안해보자. 한·미가 지난 10년간 공동 개발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인 파이로(Pyro) 기술을 이용해, 한·미·일 3국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긴 노심용융물을 처리하는 시범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국제 공동 실증은 핵확산 우려를 불식하고 개별 국가의 재정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시범사업이 성공하면, 방사성 오염수 근원인 노심용융물을 처리하여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우리가 원자력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다. 이것이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이유다.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데스크 칼럼] 신재생에너지 산업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뚜껑만 살짝 열었는데 벌써 썩은내 진동이다. 아직 헤집고 찬찬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앞으로 본격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뤄지면 부실과 비리가 얼마나 더 나올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조정실이 최근 전임 문재인 정부 5년 간 신재생에너지 지원사업의 일부를 들여다봤다. 대상은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나간 관련 지원금 12조원이었다. 해당 기금은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일부를 떼 조성하는 일종의 세금이다. 이 지원금을 집행한 전체 지방자치단체 226곳에 대해 일부는 전수, 일부는 12곳 표본을 뽑아 점검한 결과 문제 투성이다. 불법·부당 사례가 2267건이었다. 문제된 지원금도 2616억원에 달했다. 태양광 부문에서 비리가 확인된 지원금 만도 1800억원대에 달했다. 전력기금을 부당하게 지원받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376명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과정에서 친환경을 내세워 사실상 세금 도둑질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 것이다. 복마전이 따로 없다. 국무조정실은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 관련 예산 사업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금융 당국도 신재생에너지사업 대출의 부실 확인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이뤄진 태양광 발전 사업 관련 금융권 대출액이 16조3000억원, 펀드 설정액은 6조4000억원이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민낯이 곧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얼마 전엔 새만금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중국계 회사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는 소식도 나왔다. 놀라운 것은 사업권 매각 위기에 있는 이 새만금 해상풍력발전 사업 추진 법인의 실제 소유주다. 그는 일반 사업가도 아니다. 새만금이 위치한 전북의 국립대 현직 교수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전신으로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지식경제부의 해상풍력추진단 등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와 그 가족 등이 지분 참여해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된 법인이 최종 팔리면 7000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고양이에 생선가게를 맡긴 것이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한 요지경 세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점검에 여태 손 놓고 있다가 지금 와서 웬 호들갑인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 에너지 정책이었다. 일각에서는 운동권 세력의 ‘비즈니스 운동장’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혈세가 들어간 태양광 사업의 ‘이권 카르텔’ 의혹을 제기했다. 집권 이전부터 이미 대대적인 점검과 수사가 예고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최근 신재생에너지 사업 점검과 수사는 좋게 봐서 정책 바로 잡기다. 나쁘게 보면 정책 뒤집기의 일환이다. 의례적인 푸닥거리처럼 된 전 정권 적폐 청산의 성격도 엿보인다. 그래서 그 결과가 실체보다 부풀려져 전 정권을 악마화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로선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리 제대로 점검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을 자책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대체로 모든 걸 털고 간다. 전 정권의 잘못을 떠안고 가다간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어서다. 전 정권에 대한 적폐 청산이든 정치 보복이든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정당성을 떠나 모든 상황 자체가 ‘내로남불’로 맞불을 놓으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게 됐다. "너네는 안 그랬냐,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하면 뭐라 둘러댈 것인가. 피장파장인 셈이다. 재생에너지는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화 시대에 꼭 필요하다. 요즘 문제 되는 공급망 붕괴 때 에너지 자립 섬이나 다름없는 국내에서 에너지 수급 위기를 넘을 대안이기도 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선 그 게 적어도 간접적인 밥줄일 수 있다.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 캠페인이나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ESG 경영은 글로벌 기업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고 상품을 해외 시장에 내다 팔려면 재생에너지를 써서 제품을 만들고 기후환경 변화 대응 등에 노력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보급의 속도와 폭이다. 도로는 국도인데 고속도로로 착각해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 달리면 결국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음식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좋고 필요하다고 해서 모두가 가능한 게 아니다. 대안이나 대책 없이 무조건 좋은 것만 추구할 수 없다. 그냥 이상만 쫓으면 무책임한 포퓰리즘(인기영합)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과속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21.5%로 잡았다. 문재인 정부의 최종 목표보다 8.7% 포인트 낮춰 속도조절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윤석열 정부의 낮춰진 목표마저도 도전적이고 달성이 쉽지 않다고 지금 와서 뒤늦게 실토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그간 사실 땅 짚고 헤엄치기, 봉이 김선달 식으로 추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의 대표 사업인 태양광 발전만 봐도 그렇다. 자기 돈 한 푼 없어도 정부 지원금을 받거나 대출금을 끌어다 발전 설비 갖추고 생산 전기를 비싼 가격에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판매 단가도 비싼 데 여기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도 발급해줘 일종의 보조금까지 챙기게 했다. 발전 공기업 등 대형 발전사를 대상으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를 도입, 신재생에너지를 20년 간 비교적 높은 고정가격에 안정적으로 사주도록 했다. 요즘 같이 연료비 폭등으로 전력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황에선 그 혜택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등과 동일한 가격으로 사주는 게 이유다.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은 햇빛과 바람 등 자연 자원을 활용한다. 화석연료 가격 변동과 무관하다. 그런데도 화석연료 가격 급등에 덩달아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원래 단맛 나는 곳에 쉰 파리 떼들이 꼬이는 법이다. 돈 되는 사업이니 오염되지 않고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 세력까지 기웃거린 흔적도 보인다. 사방에 구린내 풀풀 난다.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감시와 점검, 나아가 관리와 수사는 문재인 정부 때 이미 철저히 했어야 했다. 정권의 관심사나 국정과제라면 더 엄밀한 감시·점검·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런 시스템에 구멍이 났다. 시스템이 망가지니 성역이 만들어졌다. 당시 정권 담당자들이 숙제 검사를 제대로 못 했거나 안한 것이다. 결국 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다. 당연히 검사의 강도는 세졌다. 검사의 방식은 적패청산 형태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꿀 단지 있는 곳의 문단속을 잘못한 대가다. 도둑은 울타리를 단단히 쳐 놓아도 넘어가기 십상이다. 빗장을 허술하게 해놓았으니 사고 안 나는 게 이상하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구조다. 자생하지 못하고 외부 지원으로 버틸 수 있게 돼 정부 의존적인 산업 체질을 갖게 됐다. 그 사이 재생에너지 보급과 산업이 따로 놀았다. 온통 보급 목표 달성에 쫓기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산업 생태계 육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뒤돌아 보면 문재인 정권 때 보급 속도전까지 펼치면서 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국내 관련 산업 기반의 취약은 값싼 외국산 부품의 국내 시장 잠식을 불러왔다. 그나마 경쟁력 있는 몇몇 대기업들은 국내 시장을 외면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신재생에너지사업도 복지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이다. 외부 의존적이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독자적인 비즈니스 생태계의 마련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사업이 정부 지원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산업 기반을 점차 갖춰 나가야 한다. 규모의 경제로 민간 기업의 투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라는 얘기다. 제도를 단순히 미세 조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신재생에너지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라.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물길을 내 흐르게 해야 한다.구동본

[기자의 눈]

"정말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출석했던 2018년 국정감사장 풍경이다. 백 대표는 이날 그 자리에서 자신의 프랜차이즈 사업이 소상공인들의 상권을 침해한다는 의원들의 면박에 "골목상권이랑 먹자골목을 헷갈리시는 게 정말 큰 문제"라며 업에 대한 낮은 이해도를 지적했다. 올해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국감이 펼쳐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어김없이 앞뒤 문맥 정황은 무시한 채 A4 용지에 적힌 문자에만 집착하며 기업이나 특정 인물 때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사실여부를 따져 묻기 보단, 질책을 넘어선 호통, 면박이 기본이다. 업에 대한 이해도도 낮다. 일례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발언이 있다. 최 회장은 태풍 ‘힌남노’ 북상 당시 포항제철소 가동을 중단했다고 말했고, 여당에선 이 발언이 거짓이었다며 위증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전력의 자료만 보면 최 회장의 증언을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제철소에 대한 이해, 포스코의 전력 사용량 비중 등 관련 지식이 깔려 있지 않다. 포스코는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의 80%를 자체 생산해 사용하고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6일 새벽 전력 사용량의 경우 한전으로부터 들어오는 20% 정도는 유지한 채 80%를 차지하는 자가발전량은 대폭 줄였다. 그 결과 시간대별 전력사용량은 평소 대비 50% 이상 감소된 수준이었다.그렇다면 전력 완전 차단을 하지 않았느냐에 질문이 나올 것이다. 이건 제강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제철소 전 라인의 가동 중단을 위해선 고로 기반의 연속 공정 특성상 제선부터 시작, 제강, 압연라인에 대해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즉, 고로 휴풍 작업에만 최소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셈. 또한 고로냉각수 펌프나 배수펌프, 조명 등 설비보호를 위한 최소 운영 전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포스코는 이 최소 운영 전력을 사용한 셈이다. CJ제일제당 등 식품업계도 이번 국감에서 의원들이 수입산 쌀 사용을 두고 따져 묻는 통에 곤혹을 치러야 했다. 이들은 비축미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냉동밥류의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자 수입 쌀을 사용했다고 항변했다. 실제로 쌀가공협회에서도 기업 등에 ‘정부미가 부족하니 대체원료 물색을 권장한다’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국감이 의원들의 존재감 드러내기 또는 지지율 높이기에 적합한 무대일 것이다. 다만, 업에 대한 이해도 등이 없는 상태에서 기업 때리기는 결국 국민과 기업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기업 때리기에 나서기 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EE칼럼] 탄소중립정책, 에너지안보와 상충되지 않게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순배출을 ‘0’으로 한다는 것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여 금세기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1.5°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 요인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인류가 자연에서 얻어 사용하는 1차 에너지의 79%를 차지하는 화석에너지, 즉 석유, 천연가스, 석탄을 줄여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국제에너지기구는 탄소저감에 대해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다. 그 중 ‘넷제로’시나리오와 ‘지속성장’시나리오는 차치하고라도, 탄소저감 효과가 세 번째로 낮은 ‘발표공약달성’시나리오도 2030년 이후 전 세계 최종에너지 소비가 거의 증가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에너지 소비의 가장 큰 요인인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이 2030년부터 정체상태로 놓인다는 것이 매우 비현실적이므로, 실제로 실천가능한 것은 효과가 가장 낮은 ‘이행가능정책’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이행가능정책 시나리오는 전 세계 국가들이 분야별로 현재 시행 중인 또는 공약한 정책 중 이행가능한 정책만을 반영한 경우로서 이 시나리오에 의하면 전 세계 최종에너지 소비는 2020년 대비 2050년에 33% 증가한다. 화석에너지 중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석탄은 전 세계적으로 그 사용을 자제하고 있으므로 상당량이 줄어들 것이다. 1차에너지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탄화수소 즉 석유와 천연가스 비중은 소폭 줄어드나 총에너지가 증가하므로 탄화수소 사용량 자체는 2020년 대비 2050년에 2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석유의 경우 전기자동차 사용 확대로 2030년 이후 수요 증가 폭이 둔화할 것이나 여전히 일일소비량 1억 배럴 이상을 유지할 것이다. 천연가스는 석탄발전과 일부 국가들의 탈원전에 대한 대체연료로서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으며, 특히 재생에너지의 증가에 따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해결하는 전력시스템 안정 역할 수행에 따라 그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할수록 천연가스 수요가 동시에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스수출국기구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천연가스 수요는 2020년 대비 2050년에는 무려 46% 증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탄소배출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도 인류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까지 지하에서 확보한 석유와 천연가스는 현재의 소비량을 유지한다면 100년 이내에 고갈될 것이다. 석유고갈론이 희화화되었던 것은 자원개발 기술의 발전으로 끊임없이 석유와 천연가스를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석유탐사를 시작한 이래 그동안 사막과 정글, 그리고 천해 지역을 샅샅이 뒤져 이제는 수심 2000미터 이상의 심해에서 지하 수천 미터를 굴착해야 석유나 천연가스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석유정보기관인 IHS의 자료에 의하면 석유와 천연가스 발견이 급속도로 줄어들어, 지난 10년간 지구상에서 발견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량의 연간 평균값은 현재 인류가 쓰고 있는 연간 수요량의 약 1/3에 불과하다. 추가로 발견한 자원량이 급감한다는 것은 멀지않은 장래에 심각한 에너지 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뿐만 아니라 에너지 수급 불균형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탄화수소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선제적으로 취해야만 한다.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으므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매우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만, 에너지 또한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보니, 화석에너지 수요가 쉽게 줄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경 분야와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의 소통과 협업이 필요하다. 서로 상충되는 탄소저감과 에너지 안보의 한쪽만을 강조해서는 안 되며 현명하게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환경 분야 전문가들은 무리하게 탄소중립 달성을 요구하기보다는 에너지 수요의 현실, 특히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하여 실천가능한 탄소저감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조치에 대해 결코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고, 앞으로 닥쳐올 에너지 수급 불균형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공급과 소비에 있어 획기적인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야 한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매우 적극적으로 해야 하며,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 즉 발전연료 확보 부담이 없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양수영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객원교수/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기자의 눈] 추락하는 애널리스트의 위상

증권사의 리서치센터 연구원(애널리스트)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주식과 채권 값이 떨어지면서 사내 영향력 자체가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익이 늘어나면서 리서치센터가 주목을 받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실제 9월 말 기준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애널리스트는 1066명으로 2020년(1078명)과 비교해 12명 줄어들었다. 1500명이 넘었던 2010년 대비 30% 가량 사라진 셈이다.애널리스트의 위상은 사라진지 오래다. 리서치센터는 ‘비수익부서’라는 틀에 갇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까지 증권사 신입사원들의 기피 부서 1위기도 했다. 과거 증권사 리서치 어시스턴트(RA) 경쟁률이 수십 대 일 수준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이기도 했다.코스피 지수가 3000선을 돌파하는 등 증시에 다양한 연령대의 투자자들이 뛰어들자 애널리스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지만, 잠시였다. 증권사들의 투자은행(IB), 기업공개(IPO), 지점 자산관리(WM) 등을 활용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 놓은 탓에 역할이 축소되고 있어서다. 특히 투자자들에게 양질의 보고서를 제공해야하는데, 기업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심지어 애널리스트를 두지 않은 증권사도 늘어나고 있다. 금투협에 등록된 59개 증권사 중 8곳은 애널리스트가 없다. 토스증권은 리서치센터를 두지 않고, 애널리스트 2명이 콘텐츠 매니저 3명과 협업해 개인 투자자 대상 시장·업종 분석 리포트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내에서 제공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증권도 애널리스트 1명이 리테일 사업 부서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는 금융투자업계에서 필요 이상의 존재다. 애널리스트가 줄어들게 되면 정확한 컨센서스 형성이 어렵기도 하다. 증시도 환절기를 겪고 있다. 증권사와 투자자 모두가 힘든 순간이다. 애널리스트들도 지치지 않고 증권사의 ‘꽃’으로 재차 부활할 수 있길 바란다.

[이슈&인사이트] 전기차, 불편한 승차감 개선 못하나

전기차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 만큼 내연기관차의 수명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줄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글로벌 제작사는 전기차를 미래 모빌리티의 선점조건으로 인식하고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가성비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전기차는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지 10년 정도 밖에 안된 갓난 아기 수준이라 아직 해결과제가 많다. 기술적으로는 전기차용 변속기나 전고체 배터리 등 게임체인저급 기술이 요구된다. 특히 전기차 화재, 구난 구조방법 등 여러 문제의 해결과제도 빠르게 조치해야 하는 고민도 크다. 정비 분야도 아예 일선 정비 업소에서 전기차 등의 수리조차 못하고 있을 정도로 열악하고 자동차 부품사도 기본 내연기관차의 엔진과 변속기 중심에서 벗어나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소비자가 느끼는 문제점도 널려 있다. 당장은 충전 인프라도 중요한 과제다. 아직은 고령자는 물론이고 장거리 운전 시 불편한 부분도 많고 심야용 완속 충전의 경우도 아파트 같은 집단 거주지의 경우 너무 불편해 일반 주유소 같은 편리함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주행거리의 한계와 겨울철 낮은 온도로 인한 배터리 기능저하와 히터를 켰을 때 배터리 방전 등 아직은 미완의 대기이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크게 부각되는 불편함의 하나는 전기차의 승차감이다. 전기차의 특성은 제로백이라 하여 정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게 되면 급격히 가속되는 특성으로 스포츠카와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특성은 스포츠 감각을 선호하는 운전자에게는 매력이 될 수 있지만 탑승객으로서는 스릴보다는 울컥거림으로 인한 부정적인 느낌이 크다. 최근 나온 결과로는 경·소형 전기차보다 중·대형 전기차, 특히 스포츠감각을 가진 전기차의 경우 사고비율이 훨씬 높다는 통계도 있다. 운전자가 느끼는 감각 이상으로 급가속이 되면서 충돌 사고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전기차의 급가속 성능으로 인해 발생한다. 기존 내연기관차의 경우는 엔진은 물론 변속기가 속도에 대한 조율을 하면서 가속되는 상황이어서 운전자는 물론 탑승객에게 무리를 주지 않고 적절한 가속도와 승차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전기차는 태생부터 급가속 특성이 크고 또 속도를 줄이는 경우에는 회생제동이라고 하여 제동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속도를 줄이는 장치로 인하여 꿀럭거림이 크게 작용하다보니 탑승자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따라서 속도를 감속시킬 경우의 회생제동을 무리하게 적용하지 않고 적절히 작동시켜서 자연스런 감속을 유도하는 방법을 구사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의 급가속과 급감속 문제는 탑승객이 불편함을 크게 호소하는 내용이다. 자동차 제작사가 크게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택시의 경우 전기차 보급이 가장 활성화되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택시는 일반 유류 비용에 비하여 충전비용이 저렴하고 전기 택시로 교체할 경우 구입 보조금도 큰 만큼 더욱 선호되는 것이다. 정부도 주행거리와 운행 특성이 큰 택시를 전기차로 대체할 경우 환경적 편익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대국민 홍보 등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전기 택시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탑승객의 승차감이 떨어지고 울컥거림으로 멀미가 날 정도로 심하여 전기택시를 멀리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전기택시 뒷좌석에서 느끼는 불쾌감 탓에 아예 전기택시 예약을 취소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택시 운전자의 평균 연령이 65세 이상으로 전체의 70%에 이를 정도로 고령층이 늘면서 운전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풀려면 자동차 제작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회생제동의 특성을 조정하여 최적화하는 것은 물론 기존 내연기관차와 같은 감각을 내재시켜 탑승객의 안정된 승차감과 안락감을 선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전기차용 변속기의 개발이 촉진되면서 변속에 대한 감각을 조율한다면 예전의 내연기관차 감각을 느끼게 될 날이 멀지 않을 것으로 본다.전기차의 가성비만 앞세우기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절실하다. 물론 전기차 화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거나 골든타임을 늘리는 기술적인 개발도 꼭 필요하고 막연한 공포감이나 불안감이 발생하지 않도록 홍보나 캠페인 활동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전기차 승차감과 안락감이 전기차 구입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에 대한 일반 대중의 평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택시 전기차부터 당장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김필수 대림대 교수/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EE칼럼] 송전 못하는 동해안 전력, 데이터센터에 활용하자

값싸게 전력을 공급하는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지어 놓고도 송전선이 없어서 비싼 가스 발전기를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강원도에서 수도권으로 넘어오는 송전선을 제때 건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1년 9·15 순환정전으로 발전설비가 모자라자 발전사업자들은 동해안으로 눈을 돌렸다. 경기도 영흥과 충남 당진·보령·태안 등에 석탄발전소가 많이 들어서서 더 이상의 발전소 입지를 서해안에서 찾기 쉽지 않았고 송전 제약도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2017년 준공된 1GW 규모의 GS동해 석탄발전소 2기를 시작으로 이미 1기가 준공되었고 내년에 나머지 1기가 준공될 2GW의 강릉에코파워 그리고 2024년에는 2GW의 삼척블루파워 등이 속속 준공될 예정이다. 원전은 신한울 1호기가 준공되어 연내 가동될 예정이고 내년에는 2호기가 준공된다. 두 기를 합하면 2.8GW에 달한다. 지난해까지 가동 가능한 발전설비는 총 11.5GW였고 2024년까지 준공될 발전설비를 합하면 총 17GW의 엄청난 규모다. 그런데 한전은 올해까지 완공했어야 할 HVDC 500kV 송전망 건설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완공을 2026년으로 연기했다. 동해안-신가평 HVDC 건설사업은 총 440기의 철탑과 경북·강원·경기도의 10개 시·군을 지나는 230km에 달하는 선로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주민 반대로 한 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신한울 1호기 원전과 강릉에코 석탄발전 1호기의 시운전으로 9월부터 동해안 지역에는 2GW의 송전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내년에 준공될 발전설비 6.8GW가 추가로 공급되면, 송전제약으로 기저발전기를 지어 놓고도 돌리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제 송전선 건설만 넋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라야 지금부터 4년 걸리고 그마저도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필자는 동해안 주요 도시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19가 촉발한 비대면 사업환경과 급격히 이루어지는 디지털 전환으로 데이터 트래픽이 최근 2년간 약 2.5배 급증하였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 어플리케이션의 증가로 데이터센터는 최근 5년간 약 50%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에 53개에 불과했던 데이터센터가 2020년에 156개로 늘어났고 내년까지 205개로 증가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을 기준으로 최근 신설된 600여개의 데이터센터 중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갖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약 310개로 데이터센터는 대형화되고 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1개는 약 300MW의 엄청난 전력을 사용한다.문제는 데이터센터의 위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데이터센터의 60% 이상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으며 그 다음으로 충청권이 14.6%를 차지한다. 데이터센터에서 일하는 젊은 IT산업 종사자들이 수도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일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해안은 젊은 IT산업 종사자들에게도 매력적인 곳이다.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등 동해안은 서핑 해변과 카페가 밀집되어 있어 젊은이들에게 수도권의 새로운 1일 관광지로 뜨고 있다. 자동차로 2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으며 강릉까지 2시간이 채 안 걸리는 KTX는 2026년에는 속초까지 완공된다. 게다가 전기까지 풍부하다. 데이터센터 입지 조건으로 안성맞춤이다.데이터센터는 전력을 많이 쓸 뿐 아니라 부하 패턴도 양호하다.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기저 발전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건설도 1년 안에 가능하며 2년이면 충분하다. 17GW에 달하는 석탄발전소 및 원전과 PPA 직거래를 통해 전력을 싸게 쓸 수 있으면 동해안에 데이터센타가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자체도 높은 고용효과와 지역경제 발전으로 환영할 것이다. 게다가 수도권에 몰리게 될 데이터센터를 동해안으로 분산시켜 송전수요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 자유로운 전력거래와 지역별로 차등화할 수 있는 전기요금은 장기계약으로 해결하면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전력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이 바로 이런 자유로운 거래와 계약 그리고 요금책정 아니었던가.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기자의 눈] 제약·바이오 컨트롤타워 신설, 빈말이었나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12일 대한적십자사 등 보건복지부 산하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를 지켜본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착잡하고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국감 시작부터 감사원의 공직자 열차 이용내역 자료수집의 적법성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계속 이어지면서 정부와 정치권에 호소해 온 제약·바이오업계의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올해 초 각종 신년행사와 5월 새정부 출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제약·바이오산업 컨트롤타워 신설과 의약품 심사인력 확충을 촉구해 왔다. 국내 의약품 임상승인·품목허가 심사인력은 총 70여명으로, 일본의 절반, 미국의 10% 수준에 그친다. 이는 신약 출시 지연을 초래해 글로벌 의약품시장에서 한국 의약품의 점유율 1.3%라는 초라한 결과로 이어지게 했다. 발굴·임상·출시 등 각 단계별로 분절된 규제정책을 효율적으로 통합관리하기 위한 컨트롤타워도 업계의 숙원이다. 오죽하면 업계 관계자가 기자에게 "새 정부가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의약품 심사인력 100명만 늘려도 성공이라고 평가할 것"이라고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대선공약이었던 제약·바이오 컨트롤타워 신설은 지난 6일 정부조직 개편방안 발표는 물론 지금까지도 ‘어느 곳에도’ 언급조차 없다. 의약품 심사인력 확충도 지난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하물며 지난 주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약처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제약·바이오 정책 지지부진함을 여야 의원들이 지적할 법도 한데 전혀 이슈화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새 정부 기조를 의식한 듯 조직 신설과 인력 확충을 회피했고, 더불어민주당도 질병관리청장의 바이오주식 보유 문제 등을 추궁하는데 할애했다. 경제·민생 국감이 아닌 정치 국감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제약·바이오산업이 미래의 국가 먹거리라는 산업·정책적 공감대에 입을 모으던 정부와 국회가 정작 ‘펼쳐놓은 판(국감)’에선 정략적 이해만 따지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아직 종합감사 등 국감 남은 기간에서나마 정부와 정치권이 ‘말로만’ 경제 걱정을 하지 말고 ‘행동으로’ 경제 현안들을 챙겨주길 바랄뿐이다. kch0054@ekn.kr김철훈 성장산업부 기자 김철훈 성장산업부 기자

[EE칼럼] 공급원가와 거꾸로 된 용도별 전기요금

산업부 장관과 국무총리가 잇달아 전기요금 인상을 시사한 후 한전은 ’합리적인 에너지소비를 위한 전기요금 조정 시행‘을 발표했다.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용도별 전기요금의 조정 방향은 이상하다.한전은 이번 전기요금 조정에서 2022년 기준연료비 잔여인상분 4.9원/kWh과 모든 용도별 소비자에게 kWh당 2.5원, 산업용과 일반용 고압A 7.0원(4.5원 추가), 고압BC 11.7원(9.2원 추가)을 차등해서 올렸다. 명목이 무엇이든 10월 전기사용량부터 소비자들은 기준연료비 조정분과 요금 인상분이 합쳐진 고지서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기준연료비 인상분과 요금 인상분을 합쳐 주택용은 kWh당 7.4원이, 산업용 고압BC 소비자는 20.9원이 오른 셈이다. 한전은 주택, 농사용 등 소위 민생용 요금은 낮게, 뒷말이 적을 산업용은 높게 올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른바 정치적 배려를 한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요금인상으로 한전 적자를 대폭 줄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전은 요금 인상의 이유를 "국제에너지가격 폭등에 따른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여 가격신호를 제공하고 효율적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전기요금 상승으로 전기소비가 얼마나 감소할 지는 의문이다. 이미 전기가 우리생활에 필수재가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한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듯이 탈원전과 태양광 확대가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 한 몫 한 것도 명백하다. 지난 정부의 산업부 장관은 국회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인상되지 않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고 했고 실제 산업부는 5년 내내 고집스럽게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았다. 그동안 한전은 손실액을 부채로 메워 왔다. 지난 5년 사이 한전 부채는 무려 37조원이 증가했고, 본격적인 에너지가격 상승 시작된 2022년에는 반년 사이에만 20조원의 부채가 증가했다. 한전의 금년 6월말 부채총액은 165.8조원이다. 금년 10월 산업부는 ‘탈원전에 따른 전력 구매 비용 손실 추정액’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사실상 탈원전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인정했다. 탈원전으로 2017년부터 올 7월까지 5년여간 전력 구매비용 손실액이 총 10.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전이 부실기업화 되는데 지난 정부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이유이고 현정부는 전정부로부터 원치 않는 상속을 받은 셈이다.그럼에도 이번 전기요금 조정 방향은 불편하다. 우리나라는 전기요금 결정에 원가주의와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전기사업법에는 ‘전기요금이 적정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한 것일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한전도 ‘전기요금이 공급비용을 보상하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기요금의 공급원가는 사용전압(저압 혹은 고압)과 부하패턴, 사용시간대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전기요금을 용도별로 정하기보다는 공급전압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용도별 공급비용(또는 원가회수율)이 공개되지 않으니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주택용 저압과 농사용 저압(220V) 수용가는 공급전압이 같으므로 공급원가가 비슷하다. 이보다 높은 전압으로 공급되는 산업용은 공급비용이 훨씬 낮다. 연료비가 급증하기 전까지 우리 요금 수준에서 산업용은 거의 원가를 회수하고 있었고, 주택용은 그렇지 못했다. 농사용은 말할 필요도 없다(2021년 주택용 119.8원, 산업용 114.6원, 농사용 46.0원). 그런데 이번 전기요금 조정으로 주택용보다 원가가 싼 산업용이 더 비싸질 것이 확실해 졌다. 이렇게 보면 요금의 조정은 거꾸로 된 방향으로 완전히 역주행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싼 편에 속한다. 주택용 전기요금 수준은 가장 싼 편이고, 산업용은 중간 정도이다. 절대수준을 떠나 OECD 국가들의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요금 단가 비율은 대략 2:1 정도이다. 즉 주택용 전기요금이 200원/kWh면 산업용은 그의 절반인 100원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 전기요금에 비해 비싼 나라는 멕시코가 유일했었다. 이제 멕시코는 외롭지 않게 되었다.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용도별 인상은 농사용을 가장 높게, 다음으로 주택용, 산업용 순으로 인상폭을 가져가는 것이 장기적인 요금조정 방향과 맞았다. 원가에 적합한 요금 조정에 얼마나 긴 시간이 소요될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이슈&인사이트] 전세사기 근절대책 시급하다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깊어지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전세사기가 속출하면서 세입자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전세사기의 유형은 다양하다. 매매가와 전세보증금을 동일하게 설정한후 추후 매매가가 하락하여 보증금반환을 하지 못하게 되는 깡통전세사기에, 임대인이 신탁회사에 부동산을 신탁하여 임대권한이 없음에도 마치 임대권한이 있는 것처럼 속여 전세계약을 하고 보증금을 편취하는 사례도 있다. 또한 전세계약을 맺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기 전 근저당권 설정등기를 마쳐 임차인이 후순위로 밀리도록 하는 피해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전세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우선 임대인에 대하여 임대차보증금 반환소송을 하고, 확정판결을 받아 임대인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하여 회수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전세사기의 대부분은 임대인이 경제적인 자력이 없는 상황이거나, 재산을 차명으로 빼돌린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당장에 보증금을 회수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임대인에 대하여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통해 확정판결을 받아 둘 필요성이 있는데, 이유는 임대인에게 재산이 생겼을 때 회수가 가능할 수 있고, 확정판결을 받아 두면, 현재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3조에 따라 연 12%의 이자가 가산되기 때문이다.임대인 외에 공인중개사와 공인중개사협회에 손해배상청구를 하여 전세보증금을 일부 반환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전세사기의 과정에 공인중개사가 공모를 하였거나, 다가구주택에 있어서 공인중개사가 선순위 임차인이 존재와 선순위 임차보증금의 액수를 고지하지 않는 등 확인 및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는 공인중개사의 중개과실을 근거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공인중개사와 공인중개사협회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임대인의 자력이 없으면 전세보증금의 회수를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인중개사협회는 경제적인 자력이 충분하고, 실제 공인중개사와 공인중개사협회를 통해 보증금의 일부를 회수한 사례가 다수 있으니 간과하여서는 안된다.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도 전세사기의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렵다. 결국 임대차 계약을 하기 전, 해당 건물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떼어보는 등 임차인 스스로 전세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들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확인절차를 거쳐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반드시 마치는 일도 중요하다.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서울보증보험 등에서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여 피해를 막는 방법도 있다. 다만 전세보증반환보험은 일정한 보증료를 지급하여야 하고, 전세보증금을 지급받을 때까지 대항력과 점유를 유지하여야 한다. 최근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입신고일에 근저당권이나 질권을 설정하여 대항력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한 사안에서 HUG가 보증보험이행을 보류하여 전세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한 사례들이 있고,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곳으로 전입신고를 하여 보증보험료지급이 거부된 사례가 종종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만일 임대차를 한 건물에 경매가 진행되는 경우 임차인은 배당요구 종기까지 채권신고 및 배당요구서를 제출하여야 하고, 만일 배당요구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후순위자에게 회수하지 못한 보증금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으니 유의하여야 한다. 다만, 경매를 신청한 근저당권자보다 임차인이 선순위인 경우에는 배당요구를 할 것인지, 대항력을 주장하여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거주할 것인지 선택하여야 하므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금리시대에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서민들에게 전세사기의 피해가 속출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할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부도 전세사기를 막기위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전세사기에 대한 예방책 등을 마련하였으나 피해를 막기에는 불충분한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세사기에 대한 형사처벌 자체가 어렵거나, 처벌 수준이 경미한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 전세사기의 가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구속영장 집행과 재산압류 조치 등을 통해 엄중한 처벌과 재산회수 방법을 마련하여 줄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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