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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후쿠시마에 대한 당연한 질문

지난 11일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지 12년이 된 날이다. 반핵단체는 부산 송상현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원전사고의 위험성을 부각하고자 했다. 또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에 대해서도 걱정과 우려를 짜내는 선동을 하였다.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SNS 등에 올리는 데도 열을 올렸다. 동일본대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 피해와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를 중첩시키는 방식의 선동이다."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2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은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가 2만 명이라는 말이 맞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없다. 이 둘을 합쳐놓아서 마치 원전사고 사망자가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했던 것이다. 어떤 책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셀 수도 없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사망자가 없으니 그 수를 셀 수 없을 뿐이다. 그런데 원문은 사망자가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는 뉘앙스를 준다. 그런 식의 선동적 말장난을 한다.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후쿠시마 오염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고당시에는 그게 맞았지만 지금은 방사성 오염수를 알프스(ALPS)라는 다핵종 제거설비로 거른 처리수를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처리수의 방사성 물질 농도는 미미하다. ALPS 필터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의 농도도 대부분 음용수 기준에 부합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자 지금은 처리수 저장탱크의 바닥에 깔린 슬러지를 문제 삼는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당연한 질문이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당시에 전혀 걸러지지 않은 방사성 오염수가 매일 약 300만톤씩 해양으로 방류되면 그 영향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우리나라 100여 곳에 환경방사능 측정소를 설치해 놓고 실시간으로 환경방사능을 측정해 그 결과를 제공한다. 이는 만일의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상자료 등을 활용해 대피할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사고대응체제의 하나다. 그런데 이를 실시간으로 스마트폰 앱으로도 제공하고 있다. ‘실시간 환경방사능’으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무료 앱이다. 이를 통해 관심 있는 지역의 실시간 환경방사능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환경방사능 측정장치는 제주도와 독도, 심지어 이어도에도 설치돼 주변국에서 방사성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측정된다. 또한 KINS 홈페이지에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해양표층수의 방사선량, 포획된 어류 등의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으며 그 보고서를 인터넷에 제공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대량으로 방류된 방사성 오염수의 영향은 우리나라 해역에서 관측되었을까? 물론 측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배출하겠다는 후쿠시마 처리수의 영향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혹자는 일본이 후쿠시마 저장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 말을 믿기보다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 좋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동경전력의 홈페이지에는 상세한 정보가 이미 공개되고 있다. 그것도 한국어로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불행한 일이다. 재산상의 손실이 많았다. 사고당시 유출된 방사성물질을 처리하는데도 많은 비용이 들었고 지금도 원전해체에 많은 비용을 수반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그토록 전세계 언론을 도배하고 국민적 우려의 대상이었던 것에 비하면 사망자는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도리어 원전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 셈이다. 원전사고를 경험한 미국, 일본, 러시아는 원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주종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후쿠시마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완전히 파괴됐고 2만 명이 사망했다. 인근 오나가와시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오나가와 원전은 오나가와 시민의 대피소가 됐다. 우리는 2만여 명이 사망한 쓰나미는 두려워하지 않고 사망자가 없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더 두려워한다. 우리는 과연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몇 명이 사망했는 지, 2011년 사고당시 방류한 오염수의 영향이 우리나라에 나타났는지, 후쿠시마에서 방류하겠다는 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의 양이 매년 빗물에 포함된 삼중수소의 양보다 많은지,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이상호 칼럼] 한일관계 정상화의 전략적 의미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을 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관련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 이후 경색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이번 방일은 아무리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이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지적과 한국이 일본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추진됐다. 정상회담 성과는 가시적이다. 양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적용된 수출규제 해소, 대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철회,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 원복 조치를 합의했다. 한일관계 정상화 배경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및 서방과 러시아, 중국 등의 관계가 빠르게 경색되었고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앞으로 5년 내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전망은 미국과 중국의 군사 대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비를 이미 시작했다. 우선 국제사회 편 나누기다. 누가 친구이고 누가 방관자며 누가 적인지 분명이하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도 향후 이 지역에 닥칠 풍파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갈등과 감정 대립을 극복하고 한·미·일 삼각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 역량을 제한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 통제를 위한 칩4 동맹,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빙자한 중국 경제 고립 정책, 인도·태평양 지역 군사 동맹 강화 등 다양한 전략적 포석을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약해진 러시아의 공백을 중국이 메워 더욱 강해지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여 러시아의 전력을 낭비하게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이 힘 빠진 러시아를 부양하기 위해 국력을 소모하게 되어 위협이 축소될 수도 있다는 거시적 전략적 판단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이에 대응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국교 정상화 중재 등 중동지역에서 영향력 확대,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위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재, 대만 및 주변국에 대한 압박 강화, 남중국해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군사 대결 확산 등을 시도하여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고립 및 잠재력 소진 전략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미국의 압박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하며 국제사회 영향력을 강화하고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한 중동 지역 등 미국의 전통 우방국을 교란하여 미국의 대중 포위망 구축을 방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여러 정치적 실험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미와 반미 사이를 오락가락 했다. 좌파 정권은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찾는 시도라고 평가하며 노골적으로 반미, 친북·친중 정책을 구사했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었으면 6·25 한국전쟁 때 공산화돼 지금의 신흥 선진국으로 부자 나라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일부 정치 세력은 이 사실이 불쾌하고 이를 부정하고 싶어 했다. 이 세력은 지금의 한·일 갈등을 초래한 집단이기도 하다. 한미관계 혼란이 한국의 정체성 위기를 초래한 문제라면 한일관계는 더 원초적이다. 한국은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은 굴욕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은 아직 최근의 기억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간섭을 받으면서 오랜 세월 치욕을 당했지만, 일본에 대한 미움이 크다.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인식과 더불어 독도 분쟁, 일본 정치권의 계속되는 망언, 우파 정서 확산 등의 문제가 한국의 반일 정서를 자극한다.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킨 건 북한과 중국이다. 북한은 한국을 지원하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갓끈’을 제거하여 한국을 고립시켜 적화한다는 ‘갓끈 전술’을 구사했다. 중국은 사드 문제 등을 꼬투리 잡으며 한미관계를 집요하게 이간질했다. 중국 전통의 ‘오랑캐는 다른 오랑캐로 견제한다’는 ‘이이제이( 以夷制夷)’ 전략을 구사해 한국을 괴롭히고 일본과의 관계를 모함하며 한국이 중국에 대한 저항과 대항을 어렵게 조작해왔다. 한일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은 다양하나 현재 국제 정세하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중 대결의 최전방에 있다. 국제관계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어제의 적도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다. 또 친구는 아니지만 말이 되는 대상과 아닌 대상이 있다. 냉철하게 누가 내 편인지 구분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공동 이익과 번영을 추구하는 미국과 일본은 적어도 한국 편이다. 중국은 한국 편도 아니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북한은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번 관계 정상화는 단지 양국이 지역 평화에 공동 대응하는 동반자 관계 수립만 아니라 충돌하는 미·중 양대 세력 사이에서 한국의 미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첫 번째 의미 있는 걸음이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교수

[기자의 눈] 산은 부산 이전·은행 과점 깨기의 비슷한 점

KDB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두고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산은의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지역 균형 발전을 근거로 내세운 공약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한 후 산은의 부산 이전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산은 직원들의 반발 속에 대치 상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산은 직원, 노동조합이 가장 비판하는 것은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밀어 붙이기식으로 부산 이전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은 "산은의 부산 이전이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절차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산은 노조도 "윤석열 정부가 금융산업의 집적 효과를 무시한 채 어떠한 논의도 없이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며 부산 이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금융권 관계자들은 산은의 부산 이전이 지역균형 발전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 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또 결과적으로는 국가 경제에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권에서 부산의 산은 이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토론과 설득 과정 없이 산은의 부산 이전을 강행하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은행권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과 비슷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의 과점체제를 문제 삼고 정부가 추진하는 챌린저 뱅크(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은행업 추가 인가 등이 그것이다.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이자장사 비판을 받아왔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이를 지적하며 은행권의 독과점을 문제 삼자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쟁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챌린저 뱅크, 시중·지방·인터넷은행의 신규 설립 인가,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 등이 세부 내용이다.금융권에서는 이같은 논의가 갑작스레 진행된 만큼 은행권 과점을 해소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지 의구심을 내놓는다. 당장 국내에서 인터넷은행과 같은 소규모 은행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데 새로운 플레이어 진출이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며 특화은행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금융정책은 금융산업의 큰 변화로 이어진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며,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금처럼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이어진다면 반발만 더 커질 뿐이다. 금융정책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면 정책을 개선하고 재검토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금융권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기대감 속에서 추진되는 정책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dsk@ekn.kr

[김성우 칼럼]기후변화 대응,답은 빅데이터에 있다

최근 들어 기후기술 분야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기후기술 관련 스타트업이 조달한 자금은 약 200억 달러로 2년 전인 2020년의 70억 달러에 비해 3배 가까이 급증했다. 글로벌 기후기술 투자도 2021년 370억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701억 달러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기후기술은 클린에너지, 탄소배출 감축, 자원순환 등 기후변화 대응 기술을 총망라하는 개념이다.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전쟁이 일어났고 인플레이션 등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기후 기술 투자가 이렇게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강한 시그널이다. 벤처캐피털 업계가 ‘기후기술은 경기침체에도 회복력이 크고 전망도 밝은 소수의 산업 분야 중 하나’라고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투자 기업 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작년 5월 국제 로펌인 White & Case가 세계 29개국 투자회사 및 에너지 기업 최고경영자 584명을 대상으로 향후 18개월 내에 어느 분야에 투자할 것인지 물었더니 42%가 ‘탈탄소·저탄소 기술에 투자하겠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기후기술에 대한 단기 투자 전망도 밝다. 기후기술 분야의 높은 성장성과 밝은 투자전망은 이 분야글로벌 싱크탱크인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이 뒷받침한다.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기술 중 50%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거나 시장경쟁력을 갖추지 않은 기술이라는 분석이다. 즉, 재생에너지, 전기화, 에너지효율, 수소, 탄소제거 등의 기후 기술 중에서 절반은 아직 상용화 되지 않았으므로, 시장 선점 기회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선점하기 위한 국가간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미국은 작년 9월 산업 탈탄소를 기술개발과 연계하는 로드맵을 발표했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기술 가격을 낮추기 위한 보조금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생산단가가 kg당 5달러인 녹색수소의 경우 3달러를 IRA를 통해 지원받음으로서 실제로 2달러에 생산하는 셈이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의 약 80% 생산, 태양광 패널 소재의 97%를 공급하는 등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술 통제력을 갖춰 가고 있다. 일본은 자동차,에너지,화학 등 일본 기업들이 보유한 기후 기술 특허의 가치 상승으로 일본 기업 주식의 시가총액이 40%이상 오를 것을 탄소중립 선언 시점부터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법적 근거 및 체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2021년 4월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 촉진법’을 제정했고 올해 1월에는 향후 10년간 관련 부처의 R&D 정책 및 사업 추진방향을 제시하는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 기본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부존 에너지가 없으면서 에너지 다소비 산업국가로 빠르게 성장한 아이러니 속에서, 그 성공의 결과물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시설을 빠르게 탄소중립화 해야 하는 목표는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기업에게 대놓고 탄소중립을 강요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기업은 (탄소 감축을 강제하는 정책시그널 보다는) 투자자나 고객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탄소중립 이행 요구를 먼저 마주한다. 감축노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주주총회에서 이사선임을 부결시키는 주주가 등장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이 충분하지 않으면 납품계약을 하지 않는 고객사가 늘고 있다. 탄소중립을 이행해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1조30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녹색산업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후기술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단기 규제 시그널이 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해관계자의 통일되지 않은 요구에 무작정 투자여부를 결정하기는 어렵다. 이럴 때 특허 빅데이터 분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체 기술 정보의 80%의 설명력을 갖고 있는 특허 데이터(현재 기후기술 특허 210만건)를 기반으로 논문이나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보완하는 특허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유망분야 선정, 핵심기술 파악, 접목기술 색인, 기술 벤치마킹, M&A Targeting, 기술 valuation 등에 활용하면 기후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 수립과 및 투자의사 결정시 불확실성을 덜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김성우 김앤장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이슈&인사이트] 시진핑의 3연임과 한국의 대중 전략

[이슈&인사이트] 시진핑의 3연임과 한국의 대중 전략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지난 4일부터 13까지 개최된 중국의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시진핑, 미국, 그리고 경제다. 시진핑 주석은 회의에 참석한 전인대 대표 2952명 전원으로부터 만장일치 찬성을 얻어 국가주석과 국가군사위주석에 선출돼 3연임을 확정했다. 자오러지 상무위원과 왕후닝 상무위원도 예상대로 각각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정협 주석이 됐다. 시진핑 주석의 복심인 리창이 국무원 총리로 선출되고, 중앙판공실 주임으로 지근거리에서 시 주석을 보좌해 온 딩쉐샹이 상무 부총리로, 시 주석의 핵심 경제브레인 허리펑이 부총리로 국무원 수뇌부에 진입하며 시진핑의 정부 장악력이 한층 강화됐다. 그리고 중국의 이른바 ‘전랑 외교’를 상징하는 인물인 친강 외교부장이 국무위원으로 한 단계 승격하고 미국 제재 리스트에 올라간 리상푸는 국방부장으로 기용됐다. 미국의 고강도 견제에 대응하기 위한 당 직속 기구의 조직 개편도 이뤄졌다. 먼저 ‘중앙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됐다. 반도체 수출 금지 등 미국의 압박에 대항하고 기술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이 직접 챙기겠다는 복안이다. 그리고 ‘중앙금융위원회’를 당내에 부활시키고 중앙금융위원회에 조응할 집행기관으로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을 국무원 직속 기구로 신설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당이 금융 권력마저 거머쥐는 그림으로, 시진핑 주석이 총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시’가 가능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총리의 역할은 더 축소되는 셈이다. 양회는 경제성장률(GDP) 목표를 5% 내외로 잡았다. 이는 코로나 19 봉쇄 충격으로 인한 데미지와 높아진 대외 불확실성, 그리고 정부부채 관련 우려 등을 반영한 보수적인 목표 수준으로 평가된다. 저장성, 장쑤성, 상하이시에서 외국인 투자와 민영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업적을 쌓아온 리창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개혁개방을 흔들림 없이 심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리창 총리는 개혁개방 지속 방침이라는 슬로건 아래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경제 즉, 공동부유와 빅테크 기업 규제 등으로 인한 민영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3연임 축하 축전을 보내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며 교류와 협력을 한층 더 심화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직면할 도전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와 장기화로 인해 중국사회가 경성화되고 있어 한중관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상당 기간 동안 시진핑 중심으로 돌아갈 것임을 감안해 시진핑 개인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대중국 대응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둘째, 시진핑 주석이 정협회의에서 미국이 중국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직격탄을 날린 만큼 미중간 경쟁과 충돌 양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미중 양국의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양국과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경제안보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세계 경제 침체와 함께 한국의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가 둔화되면서 한국의 무역수지가 악화되어 왔다.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리창 총리는 전인대 폐막식 직후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 경제 전망을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가니 앞날을 기대할 만하다’는 뜻의 ‘장풍파랑 미래가기(長風破浪, 未來可期)’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 목표를 5% 내외로 정했지만 골드만삭스는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5.5%에서 6%로 상향 조정해 중국경제가 둔화 국면에서 성장 쪽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 대한 투자는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지만, 무역역조 해소를 위해서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는 중국시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며 판매자(seller)로서 중국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이강국 전 중국 駐시안 총영사 이강국 전 중국 駐시안 총영사

[특별기고] 포천 6군단 부지 첨단산단 유치 견인차

첨단 산단은 소위 ‘대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의 전방위적인 지원은 물론이며, 유치(誘致)만 하면 해당 지역은 수조~수십조 원의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5일 국토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국가의 미래 먹거리가 될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이하 첨단 산단) 후보지를 발표했다.현 정부 들어 첫 산단 유치이자 최대 규모로서 전국의 지자체들은 앞다퉈 ‘우리 지역’으로 모시기 위한 유치전을 뜨겁게 펼쳤다. 그 결실로 경기도에서는 용인시와 비수도권 14개 지역이 후보지로 선정됐다. 특히, 용인시와 같은 경우 2042년까지 국가로부터 약 300조 원 이상의 예산을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비수도권 14개 지역 역시 각 지역의 미래 성장을 책임질 첨단 산단이 들어서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뜨거운 감자’에 포천시가 보이지 않는다. 유치전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첨단 산단 유치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무조건 성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성패 여부를 떠나 우리 시도 적극적으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포천시에 과연 유치가 가능할까"라는 의견도 있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니다. 첨단 산업이라는 것은 집적(集積)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고, 지금까지 경기북부는 이러한 첨단 산업에 있어 사실상 불모지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과연 정확한 데이터 분석에 따른 상황 인식인지 아니면 "경기북부는 어렵다", "포천은 안된다"는 식의 과거부터 내려온 막연한 패배주의적 인식에 기반한 것인지는 한 번 되짚어 봐야 한다.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첨단 산단 유치. 결코 어느 지역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 어느 곳도 100% 확신을 갖고 도전하지 않는다. 그저 첨단 산단을 유치해야 하는 당위(當爲)와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여 유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성패(成敗)는 그 이후에 일이다. 유치에 성공한 용인시를 비롯하여 고양, 남양주, 화성, 이천, 평택, 안성시가 모두 그런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물론, 결과적으로 용인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실패했으나 필자는 이 지역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지난(至難)한 유치 도전을 통해 경험을 쌓았고, 실패에 따른 값진 교훈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향후 이 지역들은 이번 도전을 발판 삼아 또다시 첨단 산단 유치에 도전할 것이고, 경험이 없는 타 지역보다 분명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즉, 우리 시의 첨단 산단 유치가 더욱 요원(遙遠)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렇기에 우리 시는 지금이라도 첨단 산단 유치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아니. 명운을 걸어야 한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포천은 반세기 동안 우리 시민들의 희생의 상징인 6군단 부지가 있기 때문이다.1950년대부터 6군단은 우리 시 중심부를 차지하며 도시를 두 동강 냈고, 우리 시민에게 군부대 주둔에 따른 각종 규제를 강요했다. 반세기 동안 이러한 희생을 감내한 우리 시민에게 이제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희생의 상징’ 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6군단 부지를 이제는 ‘희망의 상징’으로 변모(變貌)시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아리스토텔레스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불확실한 가능성보다 항상 더 낫다"고 했다. 이제 우리 시도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걸음 한 걸음 첨단 산단 유치를 위해 묵묵히 나가야 한다. 그 중심에 6군단 부지가 있다.서과석 포천시의회 의장서과석 포천시의회 의장. 사진제공=포천시의회

[포천시장 특별기고] 포천, 인문도시로 가는 길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온 국민이 팔 걷어붙이고 산업화 일꾼으로 나섰다. 그 결과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이루게 됐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는 우리 것보다 서구의 선진 문물이 좋다는 인식을 만들어냈고,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는 원인으로도 작용하게 됐다. 특히, 서구 문화를 모방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우리 전통문화와 가치관은 마치 부정적인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까지 생겨났다. 급격한 산업화로 가치관과 사회 규범마저 혼란해졌고, 인간 소외현상은 가속화됐다. 이로 인하여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 됐던 것이다.그런 가운데서도 아무런 대가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돕는 의인들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열광한다. 한편으로는 갑질과 테러 등을 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보며 공분하기도 한다. 모두가 팍팍하기만 할 것 같은 세태 속에서 이런 정서적 공감대는 어떤 이유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과거와 단절된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내면 속에 우리 고유의 보편적 정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서로 소통하고 신뢰와 배려로 함께 사는 삶을 중시했던 인문학적 통찰, 사람다움이 넘치는 인문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인간소외 문제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단절을 회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문 가치 중요성이 강조되는 과거의 좋은 전통을 되살려 ‘인간과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현재 문제들을 극복하고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도 아름다운 자산으로 남겨주어야 한다.소통과 신뢰를 기반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시민이 중심이 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고, 모두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살기 위하여 사람과 사람을 잇는 품격 있는 인문도시 포천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인문’이라는 용어가 막연하고 시민 관심 밖일 수도 있지만, 우리 포천은 예부터 철학과 문학, 예술 등 지역에 많은 유-무형 인문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다. 시민과 함께 잠들어 있는 포천의 인문 향기를 되살리려 노력한다면, ‘품격 있는 인문도시 포천’ 구현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모든 학문 기초가 되며, 사람에 관한 학문으로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폭넓은 독서와 학습, 그리고 깊은 사색이 무엇보다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꼭 이 방식을 특정 지을 필요는 없다. 봉사활동을 통한 깊은 사색만으로도 인문학적 통찰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타 지자체의 시민인식 조사를 보면 다수 시민은 인문학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인문도시 조성 정책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나와 상관없는 학문이나 정책으로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 뿐이다. 충담사의 안민가 중 ‘군다이, 신다이, 민다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논어의 ‘君君臣臣 父父子子’ 구절을 원용한 것으로, 제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된다는 의미다. 틀린 게 아니고 다름을 인정하며 모두 각자 정해진 위치와 여건에 맞추어 인문학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인문지기도 하나씩 늘어날 것이고, 포천의 인문자산들은 ‘포천학’이라는 인문 향기를 내뿜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품격 있는 인문도시 포천’ 구현은 결과를 정해놓고 시작하기보다 ‘시민이 과연 행복할까?’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또한,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에만 치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소통과 신뢰를 중심으로 인문학적 통찰을 가진 시민 중심으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간과 그 삶의 가치’ 회복을 중요시해야 한다. 또한 시민이 인문정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나와 관련 있는 정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시민이 원하는 참여형 인문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 인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도 자신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생활 밀착형 인문 프로그램을 보다 많이 개발하고 접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나아가서는 시민 개개인의 자발적인 인문 활동 참여와 소통, 그리고 자기표현의 장을 마련해 줌으로써 지역단위 인문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시민 스스로 조성하여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인문생태계를 구현해내는 것이 우선 목표인 셈이다.‘품격 있는 인문도시 포천’ 구현 사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지라도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긴 여정의 어디쯤에선가 인문의 향기는 포천시민 삶 속에 스며들게 될 것이며, 비로소 인간성이 회복된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10년 후, 또는 20년 후. 인문학적 소통능력을 갖추고 서로 소통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포천시민들 모습을 상상해본다. 시민 누구나 인문으로 행복의 문을 여는 도시, 포천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포천시장 백영현백영현 포천시장. 사진제공=포천시

[기자의 눈] 금융당국 규제 필요성...경종 울린 SVB 사태

지난주 은행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차, 금융정책을 논하다’ 토론회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단연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그리고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금융정책이었다. 특히 A교수는 실리콘밸리은행 지주사인 SVB파이낸셜그룹(종목명 SIVB) 주가가 작년 1월부터 연말까지 계속해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시장은 SVB의 리스크를 인지했음에도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SVB 뱅크런 사태가 발생하기 불과 일주일 전, 특화전문은행 모델로 SVB를 언급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3월 2일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실무작업반 제1차 회의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을 두고 ‘별도 인가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생각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한다’고 했다. 신한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SVB와 같은 특화은행, 스몰라이센스 도입 등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현 당국의 주장이다. SVB와 시그니처은행 등 잇따른 파산 여파에도 당국은 "당초 계획대로 6월 말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규제 개선에 대한 의지를 거듭 표명했다.시중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사들의 건전성과 손실흡수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국의 주문은 조금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은행 시스템 위기가 확산되는 형국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특히 실리콘밸리은행의 총자산이 2500억 달러를 하회하면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각종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것은 국내 은행과 당국에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즉 우리나라 은행이 위기의 진원지로 전락하지 않은 것은 당국의 엄격한 건전성 규제 덕분이었던 것이다.그러나 전 세계에서 은행 위기설이 증폭되는 현 상황에서, 5대 은행의 경쟁 체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당국의 정책은 갈수록 의문이 든다.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마저 UBS에 인수된 것은 아무리 덩치가 큰 은행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런 와중에 은행을 더 늘린다는 당국의 정책이 앞으로 금융소비자와 대한민국 금융 발전에 어떠한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인가.정책의 유연성과 아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당국이 현장의 의견을 듣고, 상황에 맞지 않은 정책들을 수정하겠다는 것은 비난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은행을 향한 당국의 회초리가, 향후 금융시스템 위기와 붕괴의 진원지가 된다면 그 정책은 결코 환영받을 수 없다. 지금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은행권에 대한 관리 감독 완화이지, 경쟁체제 완화가 아니다. 전 세계 금융권의 위기에서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ys106@ekn.kr

[이슈&인사이트]주택 미분양 해법은 부담가능한 가격

고금리에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발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국내 주택시장 침체,특히 미분양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주택이 7만5359가구에 달한다. 증가속도는 매우 가파르다. 미분양주택은 지난해 3월과 6월에 각각 2만7000가구, 2만8000가구 수준을 유지하다가 같은 해 7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해 8월 3만3000가구에 이어 6개월만에 127% 폭증했다. 미분양 폭증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주택사업자와 금융기관의 경영악화로 연결돼 금융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미분양 주택은 잠재적인 빈집이다. 빈집이 증가하면 그 지역은 경제적으로 활력을 잃고, 환경적으로 슬럼화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공동체가 와해될 수 있다. 이미 농촌지역은 빈집이나 폐가들로 인하여 회복력(레질리언스)을 거의 상실했으며 이런 현상은 중소도시로 점점 더 확산되며 지역의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비해 미분양 주택은 도시의 빈집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도시 빈집 시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미분양 주택 문제는 경제 문제를 넘어서 지속가능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연이은 주택시장 활성화 조치로 최근 미분양 주택 증가추세가 약간 꺾이기는 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주택시장 활성화 조치의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는 불투명하다. 주택 미분양의 원인과 실태를 좀 더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월 대비 변동보다는 좀 더 길게 과거 추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지난해 7월부터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게 된 이유는 뭘까. 공급과잉 탓일까,아니면 고금리 때문일까. 지난해 전국의 공동주택 공급실적은 분양승인을 기준으로 28만7624가구로 전년 대비 14.5% 감소했다. 이전 5년에 비해서는 9.8% 줄었다. 이를 반추어보면 과잉 공급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은 고금리로 귀결된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빠른 속도로 인상하면서 덩달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도 급상승했다. 이로 인해 급증한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은 신규 분양 열기를 앗아갔다. 문재인 정부들어 잘못된 정책으로 집값 폭등세가 지속되면서 서울의 경우 연 소득에 대한 집값 비율인 PIR이 20배에 육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끼지 않고는 기존 주택이든, 분양주택이든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미분양을 줄이고 주택시장을 살릴 수 있는 해법은 뭘까. 고금리가 내린다면 미분양 주택이 줄어들까, 아니면 주택가격이 내린다면 고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분양받으려 할까. 답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의 고금리 상황에서 치솟은 분양가격은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일반 무주택자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하에서,어떻게 해야 주택구입에 나설까? 주택 구입 목적에 따라 다르다. 실거주와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실수요자들에게는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부담가능한 주택(Affodable Housing)일 때 구입에 나설 것이다. 이에 비해 투자(투기) 목적인 경우는 당장의 대출부담보다는 주택 가격 상승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다. 주택 미분양의 해법은 결과적으로 금리를 내리거나 일반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리는 대외변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낮출 방법은 없다. 금리는 올해 상반기에 정점을 찍은 뒤에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나 소비자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현 상황에서 결국은 실수요자들의 눈높이에 맞는,부담가능한 분양가 수준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길 밖에 없다.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아파트 분양 전망 지수가 전국 67.8(수도권은 59.0)로 어둡다. 이런 상태라면 2∼3년 후에는 미분양은 물론 준공 후에도 빈집 상태인 악성미분양이 넘쳐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당국과 건설업계가 부담가능한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지속가능과학회 회장

[EE칼럼]값싼 에너지 잔치는 끝났다

작년 에너지 시장은 대혼돈 그 자체였다. 불과 3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폭락했던 에너지 가격이 2021년 하반기부터 급반전하더니 지난 겨울 지구촌 곳곳에서 난방비 폭탄이 터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유럽에서 예상 밖의 따뜻한 겨울로 에너지 재고가 평년 수준을 웃돌며 최근 에너지 시장이 안정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 특히 중국 경제의 향방 등 불안 요소가 도사리고 있어 올해도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에너지비용의 증가는 곧바로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며 세계 경제를 옥죄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럽중앙은행은 지난해 유럽 인플레이션의 약 50%는 에너지가격 폭등에 기인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비용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경험했던 것처럼, 실업증가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 증가로 발생하는 수요견인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고약하다. 더 큰 문제는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만성화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금세기 인류 공통 의제가 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탄소중립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는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식량 가격 인상 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다.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1880년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10년마다 평균 0.08도씩 상승했고 1981년 이후에는 10년마다 0.18도 높아져, 지표면 온도는 이미 18세기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약 1.2도 높아졌다. 기후변화는 홍수, 가뭄, 혹한, 폭우 등 기상이변을 초래하며 식량 생산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식량 가격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이유다. 둘째, 화석에너지 발 인플레이션(fossilflation)이다. 현재 전 세계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85%가 화석에너지다. 현대 문명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하루아침에 폐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등 서구를 중심으로 화석에너지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상태다. 그것도 2050년까지 화석에너지를 몰아내려고 한다. 탄소제로 즉,탄소중립 정책을 통해서다. 이 계획대로라면 화석에너지의 완전퇴출은 30년도 남지 않았다. 화석에너지 개발 투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어 공급능력은 갈수록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목표와 달리 화석에너지 수요를 극적으로 줄이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수급불균형이 만성화되어 화석에너지 가격은 수요의 지속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 지난해 전 세계가 경험한 에너지 위기가 그 예고편이다.셋째, 친환경 발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다. 전 세계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에너지의 전기화와 전기 생산의 무탄소화로 특징지워지는 그린화에 이미 돌입했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는 그린화를 이끄는 대표적 녹색기술이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약 6배 많은 광물이, 해상 풍력발전은 가스 복합발전에 비해 7배 많은 구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주요 광물 가격 인상 발 인플레이션이 예상하는 이유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가격이 과거 5년 평균 대비 5배 이상 폭등한 현상이 그린플레이션의 전주곡이다. 화석에너지에 의해 지탱되던 저비용 에너지 시대가 저물고, 고비용 에너지를 감내해야 할 탄소중립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국가별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탄소중립의 흐름을 피할 도리는 없다. 특히 주요 광물 자원은 물론이고 재생에너지 자원 마저 빈약한 우리나라는 화석에너지 시대에 이어 탄소중립 시대에서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에너지 비용을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시대에 대응하는 방법은 고비용 에너지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길 밖에 없다. 한전 등 에너지공기업의 적자로 지탱되는 에너지가격 인상 억제와 같은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으로는 고비용 에너지 시대를 넘을 수 없다. 이제 값싼 에너지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비용 에너지에 적응할 수 있는 경제체질 개선에 나설 때다.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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