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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방에서도 지방, 시민들의 청약 열기는 뜨거웠다

사흘 동안 1만2000여명 방문. 총인구가 10만 정도인 전라북도 정읍에서 열린 최초 1군브랜드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수요자들의 뜨거운 열망이 분출됐다. 정읍 시민 적어도 10명당 1명 이상이 모 대형건설사 분양 견본주택에 방문한 수치여서 업계뿐 아니라 지역 여론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정읍의 면적은 전북 시·군중 4위로 평야가 펼쳐져 경지율이 높지만, 경제·사회·인구적으로 보면 지방에서도 벽지로 분류된다. 이렇다 할 유력 대기업 계열사도 없고 농업 비중이 높은 소도시로 생활인프라도 부족하고 인구 유출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전인 1960년대 농업이 주력산업이었던 시절 인구가 27만명을 넘을 만큼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지척에 있는 전주(64만), 익산(27만), 군산(26만) 등 중소도시들과 비교해도 인구는 반의 반토막,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이다. 특히 전북 인구 상위 1~4위까지인 전주, 익산, 군산, 정읍 인구를 총망라해도 고작 수도권에 위치한 수원특례시(120만) 수준이다. 경기도 화성시(91만), 성남시(92만), 고양시(107만) 인구를 감안할 때 정읍이 얼마나 작은 도시인지 실감이 된다. 참고로 전북 인구는 176만 정도로 이는 서울(942만), 경기도(1360만), 인천(297만) 등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라남도(181만), 경상북도(259만), 경상남도(327만), 부산(331만), 대구(236만) 등과 비교해도 열위에 있다. 이렇게 인구 규모면에서 타지역에 비해 떨어지고 있는 전북에서도 소외받고 있는 정읍에서 이런 대형건설사 분양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건설업계는 단순히 정읍 시민들의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으며, 지방에서도 청약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하지만 첫 1군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바로 정읍시민들 뿐 아니라 전북도민들의 지역 발전에 대한 숙원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1군 브랜드, 그것도 그간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 집중됐던 세련된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대도시 못지않게 높다는 반증이다. 수도권, 지방 대도시에서만 공급됐던 1군 건설사 아파트, 소고기로치면 한우 1등급 품질이다. 왜 지방 사람이라고 소고기 맛을 모르겠는가? 1등급 소고기가 수도권, 지방 주요 도시에만 공급되다보니 정읍 시민들, 인근 주민들도 시위하듯 수천명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 이 아파트는 청약 결과 975건이 몰리며 정읍 역대 최다 청약 통장 접수 건수를 기록한 바 있다.물론, 1군 브랜드가 최근 전북에서도 잇따르긴 했다. 군산에서는 최근 개발한 택지에 ‘군산디오션시티’ 등 총 6200여가구 대규모 브랜드타운이 형성되며 신흥 부촌으로 떠올랐다. 이는 새만금 개발 본격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 전북대병원 건립 추진이 인구유입 전망 등 호재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심화된 부동산 경기 침체, 급격한 금리인상 여파로 지난 1월 말 기준 전북의 미분양 주택 물량은 4086가구로 지난해 12월 대비 1566가구 대비 62.1% 급증했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고장이 돼야 할 것이다. 지역 경제 위기감에 전북은 특별자치도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전북보다 인구가 적은 지자체로 충북과 강원, 제주가 있었다. 항상 충북이나 강원보다 낫다는 얘기를 해왔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전북의 1인당 국민소득은 충북, 강원보다도 낫다"고 지적했다. 또 변화와 혁신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도민들에게 주문했다. 김 도지사의 과감한 지역 발전 정책 추진으로 낙후된 전북에 젊은이들이 자꾸 모여서 1군 브랜드 아파트가 많이 지어지고 대도시못지않은 청약 열기도 이어지길 고대해본다.

[기자의 눈] 韓 시장 공들이는 애플, 책임의식도 갖춰야

지난달 우리나라에 상륙한 애플 간편결제 서비스 ‘애플페이’가 보여주는 초반 기세가 놀랍다. 출시 첫날에만 가입자 100만명을 확보했다. 수치는 애플페이를 지원하는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 단말기 보급이 확대되면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여지가 크다. 국내 간편결제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애플페이를 들여온 현대카드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애플과 협력설이 흘러나오던 시점부터 신규 가입자가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에만 새로운 회원으로 86만6000여명 확보하면서 국내 전업 카드사 중 증가세 기준 선두를 기록했다. 국내 간편결제 시장 강자인 삼성전자는 애플에 대응하기 위해 네이버와 손잡았다. 또 삼성전자가 애플과 마찬가지로 스마트워치를 이용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애플은 과거부터 국내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펼쳐 왔다. 지난달 출시된 애플페이가 벌써부터 많은 화제를 모으는 이유다. 애플이 출시하는 신제품이 침투하는 속도도 빠르다. 무선이어폰 ‘에어팟’과 스마트워치 ‘애플워치’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밖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애플이 한국 시장을 흔드는 만큼 책임에는 미흡했다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달렸다. 세금 회피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애플 한국지사는 7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음에도 정작 납부한 법인세는 628억9000만원에 불과했다. 매출에 비해 이익이 크게 낮았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 매출 대부분을 수입대금으로 지급해 의도적으로 영업이익률을 낮췄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애플이 자체 앱 마켓인 ‘앱스토어’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을 저질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만 이동통신사에 신제품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과 수리에 필요한 비용을 전가하는 관행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선지 애플을 고객사로 둔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유독 애플에 관한 질문을 곤란해한다. 애플에 불리한 정보를 흘렸다가는 어떤 불이익이 가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애플은 최근 서울 강남구에 국내 다섯번째 오프라인 매장인 ‘애플스토어 강남’을 열며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협력업체와 일반 시민을 위한 기업윤리에도 공을 들여야할 시점이다. 국내에서 존재감이 커지는 만큼 높아진 책임의식을 기대한다.이진솔 이진솔 산업부 기자

[EE칼럼]무너진 개화 질서, 이래도 기후위기론이 사기인가

올 봄 한반도에서는 꽃 피는 시기가 전반적으로 열흘 이상 빨라지며 개화 질서가 파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원래 벚꽃보다 1주일 가량 앞서 피는 목련이 올해는 벚꽃과 같이 피거나 오히려 더 늦게 피었고 벚꽃은 제주에서 서울까지 시차 없이 전국에서 일제히 만개했다. 3월에 기온이 초여름 수준인 25도 안팎까지 올라가면서 매화, 개나리, 진달래 등도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꽃의 개화시계가 고장나 버린 셈이다. 현재의 속도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21세기 후반에는 봄 꽃 개화 시기가 2월로 앞당겨질 것이라 하니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변하는 건 시간 문제다. 문제는 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다는 점이다. 꽃들이 일찍 피면서 지상보다 아직 온도가 낮은 땅속에서 뒤늦게 태어난 꿀벌들은 제 역할인 수분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먹이(꽃)를 구하지 못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식물과 곤충간 동조화가 깨지고 있다. 생태계 붕괴는 농작물의 수확 감소와 인류의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에 무감각한 사람들이나 기후위기를 과학자들의 사기극으로 치부하며 국제사회의 친 환경 노력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환경보호에 앞장서 온 유럽에서 조차 최근 친 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약진하고 있고 ‘녹색반란’에 부딪쳐 각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도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지난달 20일 공개한 보고서는 각국의 온난화대책 지연에 대한 위기감을 표출했다. IPCC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에 비해 지구기온이 이미 1.1도 올랐고, 2030년대 전반에는 2100년까지의 억제 목표인 1.5도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2035년에 온실가스를 2019년 대비 60%, 2040년에는 69% 감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례 없는 대담한 대책을 각국에 촉구한 것이다. 사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세계적으로 석탄 의존도가 높아졌고,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가 약화됐다.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Emissions Gap Report 2022’에 따르면 국제적 지원이 따르지 않는 각국의 무조건부 NDC(국가 온실가스감축 기여)가 완전히 구현돼도 ‘2030년에 1.5도 상승’ 시나리오보다 배출량이 230억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적 지원이 전제된 조건부 NDC의 완전한 구현의 경우에도 1.5도 시나리오 보다 배출량이 200억톤을 초과한다. 현재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NDC 목표는 탄소중립으로 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부는 2030년에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NDC를 유엔에 제출했다. 7억 2700만톤에서 4억 3660만톤으로 줄이는 것이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온실가스가 각각 전년 대비 3.5%, 6.4% 줄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위축됐던 경기가 회복되면서 2021년에는 다시 3.5% 늘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지난해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NDC를 달성하려면 2018년 이후 연 평균 4.17%씩 배출량을 줄여야 하지만 되레 늘고 있으니 NDC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지난달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의 36%(2021년 기준)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낮췄다. 산업계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후퇴한 것이다. 대신 발전 부문의 감축 목표를 44.4%에서 45.9%로 높였으나 구체적 대안이 뒷받침되지 않은 수치만의 상향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의 탈 원전 정책 때문에 온실가스를 제대로 줄이지 못했고, 전기요금 등 에너지 요금도 ‘정치요금’으로 억제돼 에너지절약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계속운전해 안정적 전력공급과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당장 이달 설계수명이 끝나는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 절차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2년간은 운전 정지가 불가피하며, 온실가스 감축 차질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 순위 7위로 ‘기후악당’ 소리를 들었던 우리가 이렇게 안이한 대응을 한다면 기후위기는 되돌리기 힘들다. 지구가 파멸에 이르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기자의 눈] 尹 대통령 지지율 추락 부채질 與 최고위원 리스크

"불을 끄려고 불을 더하고 물을 막으려고 물을 붓는 일과 같다."공자의 제자인 안회는 어지러운 형국인 위나라로 가서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한다. 공자는 하직 인사를 하러 온 안회에게 "네가 아무리 독실한 말을 할지언정 위나라 왕은 권세로 너의 말솜씨를 이기려 덤벼들 것이니 ‘이화구화’와 같다"며 만류했다.박근혜 전 대통령 ‘촛불 탄핵’을 기점으로 보수정당의 입지는 중앙정부와 국회, 지방정부 등 모든 곳에서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그럼에도 5년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기쁨은 잠시. 대선 이후 지난해 말 이준석 전 대표의 낙마로 지도부가 공석이 되면서 8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이어왔다. 마침내 김기현호로 새 지도부가 꾸려졌지만 출범 한 달만에 지지율이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최고위원 리스크 늪’에까지 빠졌다.이번 국민의힘 지도부는 ‘친윤(친윤석열)일색’이다. 당 대표부터 최고위원, 당직 모두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마음)이 구심점이다. 전당대회 준비단계부터 당원들 사이에서도 "무조건 윤심으로 모아야 한다", "내년이 총선이기 때문에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겨를이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다.새롭게 탄생한 당 지도부 역시 22대 총선 압승이 숙원 과제다. 당정이 민생을 챙기겠다고 나선 이유도, 야당을 향한 ‘사법리스크’ 저격의 명분을 위해 하영제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가결로 이끌 수 밖에 없던 이유도, 야당의 입법을 저지하는 이유도 모두 집권당 그들이 생각하는 ‘민심’과 지지율을 챙기겠다는 이유에서다.이런 상황에서 ‘당원 1호’인 대통령과 당 지지율은 여당의 골칫거리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한 달동안 하락세를 유지하다가 겨우 벗어났다. 일제 강제징용해법과 근로시간 개편안 등 결정하는 현안마다 여론은 부정적으로 들끓는다. 당 지도부가 대학교 학식을 먹고 청년세대 리더들을 만나면서 상황을 모면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심각한 건 여당 최고위원들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나름대로 수습하고 있지만 오히려 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김재원 최고위원은 ‘5·18 정신 헌법 수록 불가’·‘전광훈 목사 우파 진영 천하통일’ 발언에 이어 제주 4·3사건 관련 발언으로도 뭇매를 맞았다. 태영호 최고위원도 "4·3 사건은 김일성 일가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는 발언을 한 데 이어 사과까지 거부해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조수진 최고위원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비우기’ 운동을 언급해 도마에 올랐다.최고위원들이 윤 대통령의 결정과 언행에 부가 설명을 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이 4·3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아 야당과 여론의 비판이 잇따르자 이를 수습하고자 ‘4·3 기념식은 3·1절이나 광복절보다 조금 격이 낮은 기념일이니 대통령 불참에 무조건 공격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 조수진 위원 역시 윤 대통령이 양곡법 개정안에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비판 여론이 잇따르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지나친 충성으로 ‘이화구화’가 돼 버렸다. 부정적인 여론의 불씨를 끄려고 나섰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집권당의 임무인 정부 지지율 견인과 총선 압승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도겠지만 민심이나 사회 분위기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발언으로 논란만 격화시켰다. 한 마음으로 모인다는 집결력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민심을 살피고 통치자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간언을 할 줄 아는 용기 또한 여당의 책무다.claudia@ekn.kr

[EE칼럼]폐 매트리스 재활용 시장 구축 시급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기후변화센터는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대수 의원실과 함께 ‘순환경제를 위한 침대 폐 매트리스 회수 및 재활용 활성화 방안’ 세미나를 진행했다.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대형 폐기물인 침대 매트리스 재활용 시장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임을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실제로 많은 지자체에서 대형 폐기물인 침대 매트리스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불법 소각하거나 쓰레기로 쌓아 놓아 2차 공해에 노출돼 있다. 글로벌 매트리스 시장은 지난해 기준 43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40%를 차지한다. 과거에는 입식문화인 유럽과 북미가 훨씬 컸지만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다. 한국은 관련 기업의 매출액 기준 지난해 2조원 수준으로 전년대비 20% 급증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인한 수면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소비 트렌드와 겹치며 매트리스 시장은 다양화하며 확대되고 있다. 더불어 1인 가구 증가, 중저가형 매트리스 보급, 온라인 유통 확산 등으로 교체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EUROPUR의 통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미국 등에서 지난해에만 2000만~3000만개의 폐 매트리스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폐 매트리스 발생 통계가 아예 없다. 환경공단에서 제공하는 2016년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연간 약 80만개로 집계됐으나 이 마저 표본이 전체 가구 중 0.1%, 사업장 0.8% 수준이다. 침대 매트리스는 통계법 제18조에 따라 승인받은 조사항목이 아니라서 집계 및 보유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통계법은 아직 온돌문화에 머물러있다. 지난해 침대 매트리스 불법 소각문제가 발생한 통영시가 침대 매트리스 처리 현황을 자체적으로 조사했다. 대부분 일일이 손으로 뜯어내서 분리하는 수작업인데 처리시간도 많이 걸리고 작업환경도 매우 위해한 상황이다. 또는 통째로 분쇄한 후 철 스크랩만 분리해서 재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마저도 소음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으로 운영이 중단되기도 한다. 지자체별로 데이터 보유 현황이나 관리가 천차만별인데 예산, 기술 등의 여건으로 지자체의 처리 역량은 현저히 떨어진다. 처리되지 못하고 쌓인 채 방치돼 폐 매트리스에서 자연 발화 되기도 하고 불법재사용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EU는 2018년 ‘WEEE(Waste Electrical and Electronic Equipment) 지침’에서 매트리스, 가구 등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회원국별로 매트리스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을 도입,2035년까지 매트리스를 포함해 도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최소 65% 재활용 하는 목표를 수립했다. EU회원국 중 프랑스가 최초로 매트리스 EPR을 시작했는데 제조사와 유통사로 구성된 조합이 최신식 분해공정을 구축, 고품질 원료를 추출하고 재활용 하는 시장을 만들었다. 정부와 기업(생산, 유통, 호텔 등), 시민들간 협력을 통해 매트리스 순환경제를 1조5000억원 규모로 키웠다. 미국은 국제수면제품협회가 비영리단체 ‘매트리스 재활용 협의회’를 설립해 2015년부터 ‘바이 바이 매트리스’ 프로그램을 시작해 현재 3개 주(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에서 참여 중이다. 소비자 가격에 폐 매트리스 처리 비용을 포함시켜 재활용 처리 뿐 아니라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 하고 있다. EU와 미국은 폐 매트리스 분리를 위한 전자동시스템을 구축했다. 수면시장 규모는 계속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서둘러 매트리스의 폐기를 줄여서 유용한 자원으로 반복 사용하는 재활용 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관련 산업의 육성과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시장 구축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폐 매트리스 통계를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재활용을 비롯한 산업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폐 매트리스의 스프링 철과 섬유 부산물을 전 자동으로 분리하는 기계의 설계기술을 확보한 업체가 있지만 시장 조성이 안돼 실제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 ESG경영 차원에서 매트리스 제조사들도 분리 배출과 수거를 지원하고, 재활용 관련 기술과 서비스 개발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원인자 부담원칙’에 따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해야 한다. 재활용 시장은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이고 매트리스 생산 기업과 수거·해체업체,재활용업체 등이 협력하지 않으면 형성되기 어렵다. 환경부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이슈&인사이트]인공지능 서비스 대중화를 위한 조건

최근 챗GPT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챗GPT는 오픈에이아이(OpenAI)라는 회사에서 내놓은 생성형 인공지능 채팅서비스로, 발전 속도와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준이 기존 인공지능 서비스와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다. 챗GPT가 이렇게 주목을 끄는 이유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인공지능 서비스보다사람들의 말을 가장 잘 알아듣고 그럴싸하게 대답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연어 처리와 학습된 지식의 조합을 굉장히 잘하는 인공지능서비스다. 인공지능 기술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연구됐지만 다양한 사회적 데이터 수집과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역량의 한계로 실제 사용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기술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은 생활 속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감정이 없는 차가운 인공지능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숨어있는 의미를 파악해 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최근 나오는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이런 인식을 뛰어넘으며 인공지능 서비스가 우리에게 편리한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다만 이것은 다양한 정보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인터넷의 발달과 정보기술의 고도화가 사람들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UNDP의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정보 취득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소득 수준 격차로 이어진다. 따라서 인공지능 서비스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에서 캐즘(Chasm)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인공지능 서비스의 사용법을 쉽게 알릴 수 있는 교육 및 안내 등이 제공 돼야 한다. 즉,인공지능 서비스의 기능과 장점을 설명하고, 쉽게 접근 가능한 사용 방법이 제공해야 한다. 아무리 인공지능서비스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더라도 일부 지역이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는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나 모바일 디바이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이나 디지털 기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둘째,인공지능 서비스의 유료화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 서비스 유료화는 기업 수익창출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유료화로 인해 사용자들의 서비스 이용 제한성이 발생하게 된다. 즉, 유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기존의 무료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정보에 한계가 있어 정보에 대한 차별성이 존재하게 된다. 이 경우 소비자들이 다양한 비용을 지불하게돼 정보를 얻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거나 서비스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정보를 얻기 어려워지는 정보 비대칭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소득수준 격차가 발생하게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합리적인 요금으로 서비스의 가치를 증명하고, 일반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보안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따라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개인정보유출 문제를 우려한다. 따라서 서비스 제공자들은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보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용자들에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서비스 이용 시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 사용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안전한 서비스 제공은 사용자들의 개인정보 보호 뿐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의 평판과 신뢰도를 높이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끝으로,다양한 계층에게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인공지능 서비스가 높은 수준의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일부 지역이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는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된 정보에 접근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나 모바일 디바이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이나 디지털 기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학습 데이터나 알고리즘의 문제, 개발자들의 편견 등으로 인공지능 서비스에서 생성되는 정보가 일부 그룹이나 개인에게 편향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해당 그룹이나 개인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지고 사회적 차별이나 부정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 서비스 기업들은 정보소외 문제에 대해 보다 공정하고 폭넓은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기자의 눈] MZ세대에게 닥친 탄소중립 과업도 생각해주길

요즘 TV 예능프로그램 등을 보면 귀에 에어팟을 끼고 업무를 보는 MZ세대 직장인에 대해 ‘눈을 부라리는 세대’ 등으로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MZ세대를 이같이 풍자하는 것은 웃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MZ세대에 닥친 탄소중립 과업에는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MZ세대는 신입사원부터 정년퇴직에 가까울 때인 2050년 무렵까지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향한 모든 길을 뚫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MZ 아버지 세대가 이룬 경제성장·민주주의 달성 못지 않거나 그 보다 더 어려운 과제다. 탄소중립은 지금까지 인류역사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현장에서도 예전 사례를 찾기 힘드니 막막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탄소중립만 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했던 탄소배출산업을 뒤집으면서 경제성장도 해야 하는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왼쪽을 보면서 오른쪽을 동시에 보라는 것과 같다. MZ세대에 탄소중립 모순 극복의 능력과 ‘깡’이 없지 않다.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안에 반발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앞에서 문서를 집어 던질 수 있는 게 MZ세대다 에너지 분야에는 무탄소 에너지를 보급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전력시스템을 만들 인재들이 많다. 산업계에서도 탄소배출을 줄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할 능력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MZ세대의 윗 세대인 586세대가 탄소중립 정책을 주도한다. 지금부터 탄소중립 정책의 기초를 잘 짜줘야 MZ세대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부담을 덜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보다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수립 중이다. 아직 산업계에서 배출량을 줄이는 데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다. 지금부터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산업계에서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그만큼 미래에 줄여야 할 감축량은 늘어난다. MZ세대가 미래에 늘어난 온실가스 감축목표량을 감당하려면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 개발에 투자를 많이 해놔야 한다. 국민이 탄소중립에 관심을 가져줘야 그만큼 정부도 힘을 얻고 MZ세대를 위한 투자 규모를 늘려주지 않겠는가. wonhee4544@ekn.kr이원희(증명사진)

[이슈&인사이트]AI 시대에 걸맞은 새 제도 설계해야

인공지능 열풍의 진원지가 된 챗GPT- 3.5는 무려 1750억개의 매개변수를 사용해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대한 실제 정보와 일치하는 정보를 출력하는 과정을 거치는 초거대 AI다. 챗GPT-4는 이 보다 더 많은 매개변수에, 텍스트는 물론 영상과 이미지까지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복합 정보처리) 모델로 그 활용도가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미세 조정(Fine-tuning)만 하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해 전이 학습이 가능하다. 이른바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이 본격 출현했다. 최근 인터넷에 챗GPT-4를 이용하면 이용자가 제시한 내용을 알아서 정리해 발표 자료를 작성해준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발표 자료 준비가 한결 편해질 것이라는 기대에 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분위기다. 그 며칠 후에는 챗GPT 이용자들이 입력한 내용에 회사 기밀이나 민감한 개인정보도 많은 데, 이런 내용을 운영사인 오픈AI가 볼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탈리아 데이터보호청이 유럽연합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 위반 조사를 위해 챗GPT 접속을 일시 차단한다고 발표해 챗GPT 이용 관련 보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이처럼 개인정보 보호와 충돌하는 면이 있다. 국가별로 개인정보로 보호하는 데이터의 범위나 규제 정도는 다르지만,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 수집·활용하는 많은 데이터에는 개인정보가 포함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2020년 개인정보의 식별이 어려운 가명정보 개념이 도입됐지만, 실무에서는 가명 처리 비용이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재식별 위험성으로 인해 애초 기대보다 활용도가 낮다. 정보주체의 권리의식이 강해지면서 개인정보 보호 규제 역시 강화되고 있지만, 개인정보를 활용한 사회적 편익과 비례성도 유지돼야 한다. 허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라면 더욱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피하고자 원본 데이터의 통계적 변수 분포와 상관관계만 모방한 재현 데이터(합성 데이터)를 만들어 새롭게 생성된 가상의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방법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재현 데이터를 주문 제작 방식으로 생산해 제공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다만 여러 데이터 항목이 조합되거나 원본 데이터 자체 분포가 편중된 경우에는 아직 정보 주체의 재식별률이 높은 편이라 재현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학습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에 저작권을 침해하는 데이터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GPT 개발사인 오픈AI에서 내놓은 DALL-E 2나 스태빌리티AI사의 스테이블 디퓨전은 이용자가 텍스트로 지시하면 그 내용에 따라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그런데 이렇게 이미지를 생성하는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학습한 데이터 세트에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이미지 중에는 저작권이 인정되는 이미지가 있고, 심지어 상업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이미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이미지 제공업체인 게티이미지는 스테이블 디퓨전이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스테이블 디퓨전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상황이다. 이런 법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국회에서도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에 포함된 저작물에 적법하게 접근해 창작성을 향유하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 있는 개인정보의 침해 문제나 저작권 위반 문제는 그런 법 제도가 현재처럼 인공지능이 발달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정보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 출판업자들이 독점 출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장했던 저작권의 기원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규범이 만들어진 취지를 감안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EE칼럼]우리는 여전히 화석연료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 물질문명은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다. 산업혁명 이전에 인류는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널리 사용했으나 18세기 말부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졌다. 여기에는 15~17세기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선박을 만들기 위한 목재 수요가 증가한 것도 한 몫 거들었다. 숲은 황폐해져 갔고 공장은 가동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석탄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석탄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발열량이 높으며 매장량이 충분해서 인기를 얻었다. 석탄은 증기기관, 선박, 발전소 등에서 사용됐고 이를 통해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동차 산업의 성장에 따라 석유 수요가 급증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석유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원이 됐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투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동 지역에서 석유 생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석유의 시대가 도래했다. 1970년대 이후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석유 가격이 급등하자 전 세계적으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천연가스 사용을 확대했다. 석탄에 비해 온실가스가 덜 배출되는 천연가스는 화석연료의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수요가 더욱 늘어났다. 1980년대 들어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자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사용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 등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고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에 대해 서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인식 아래 1997년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에 대해 2008~2012년에 1990년 대비하여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했다. 이 때 선진국들의 감축 의무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교토메커니즘이라고 부르는 3대 시장메커니즘이 도입했다. 바로 배출권거래제(Emission Trading), 공동이행(Joint Implementation),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다. 이 가운데 선진국들이 개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지원을 통해 발생한 감축량을 자국의 감축 의무에 활용하는 청정개발체제가(CDM)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추진됐다. 중국은 청정개발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이 때문에 ‘CDM는 중국개발체제(China Development Mechanism)의 약자’ 라고 불리기도 했다. 교토의정서가 2020년 만료되자 국제사회는 오랜 협상을 거쳐 2015년 파리협약을 채택했다.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지 3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화석연료 소비를 얼마나 줄였을까? 1차 에너지 기준으로 전 세계는 기후변화협약 체결 원년인 1992년에 약 82억3000만 TOE(석유환산톤)를 소비했으며 이 중 화석연료가 71억8000만 TOE로 전체의 87.3%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총 소비량 132억9000만 TOE에 화석연료는 110억5000만 TOE로 비중이 83.1%다. 산업화와 인구증가, 경제성장 등으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은 약 30년 새 1.5배 이상 늘어난 가운데 전체 소비량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간(4.2%포인트)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80%이상을 화석연료에 의존해 살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30세를 넘었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는 30세를 ‘뜻이 확고하게 섰다’는 의미의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최근에 기후변화 음모론과 같은 이야기들이 줄어들고, 기후변화가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인한 것이라는 데 대부분 공감하는 것은 기후변화협약이 이립에 들어섰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은 필자만의 희망 섞인 바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30년 동안 화석연료 비중이 4.2%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2050년 탄소중립까지 앞으로 30년 동안 우리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했을 때 경험했던 에피소드로 글을 마친다. 당시 공식 회의석상에서 한 태평양 도서국가 대표가 자기들과 같은 국가들은 해수면이 높아져서 국토가 사라져가고 있다며 협상 타결을 눈물로 호소했다. 잠시 회의장이 숙연해지는가 싶더니 금새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고성을 주고받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미국 뒤통수를 친 사우디, 믿는 구석이 있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또 미국의 뒤통수를 쳤다. 사우디 입김이 가장 센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가 추가 원유 감산을 결정했다고 2일(현지시간)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감산량은 하루 최대 116만배럴 규모다. 이 중 50만배럴이 사우디의 몫이다. 그 바람에 국제 기름값이 다시 꿈틀댔다. OPEC+는 지난해 10월에도 200만배럴을 감산했다.작년 봄부터 미국은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급하게 올렸다. 그 바람에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는 등 금융시장이 휘청했지만 물가를 잡으려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 마당에 원유 추가 감산은 미국에 제대로 한방 먹인 꼴이다. 고물가 늪에 빠진 다른 나라에도 원유 감산은 악재다.◇ 뒤틀린 미국-사우디 관계사우디의 ‘반란’은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우디는 중동 내 미국의 최대 우방국이다. 미국이 원유 증산 신호를 보내면 고분고분 따랐다. 사우디는 1986년부터 달러당 3.75리얄에 환율을 고정시켰다. 자연 리얄화 가치는 달러 가치에 연동된다. 그만큼 두 나라 경제는 밀접하게 얽혀서 돌아간다. 세계 석유 무역은 대부분 달러로 결제된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했다. 사우디는 그 대가로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아래서 평화를 누렸다. 지난 2018년, 그러니까 5년 전에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잔혹하게 살해됐다. 배후 인물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목됐다. 카슈끄지는 미국에 머물며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유세에서 인권을 탄압하는 사우디를 ‘파리아(Pariah)’ 취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아는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낮은 불가촉천민을 가르킨다. 한국 언론은 보통 ‘왕따’로 번역한다. 이 사건 이후 미-사우디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는 사우디의 실권자다. 그런 사람을 암살 배후로 몰았으니 두 나라 관계가 좋을 리가 없다. 작년부터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먹구름이 몰려왔다. 국제 기름값도 껑충 뛰었다. 어쩔 수 없이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7월 ‘왕따’ 공약을 어기고 사우디로 가서 왕세자를 만났다. 바이든은 사우디가 원유 증산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데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 웬걸, 사우디는 거꾸로 갔다. 바이든이 떠나고 3개월 뒤 OPEC+는 일 200만배럴 감산을 결정했다. 그 통에 국제 유가가 뛰면서 비OPEC 석유수출국으로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혜택을 입었다. 인플레이션 고삐를 죄려던 미국의 계획도 차질을 빚었다. 당시 미국은 "후과가 있을 것"이라며 사우디에 경고장을 날렸으나 엄포에 그쳤다. 이번 116만배럴 추가 감산에 대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OPEC의 감산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과’는커녕 사우디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 틈 비집고 들어선 중국사우디도 믿을 구석이 생겼다. 바로 중국이다. 바이든이 떠나고 다섯달 뒤인 작년 12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사우디를 찾았다. 사우디는 누구 보란 듯이 시 주석을 성대하게 환영했다. 미국에 끌려다니던 사우디는 ‘차이나 카드’를 새로운 무기로 장착했다. 이후 두 나라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지난달 사우디는 중국이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 동맹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 합류하기로 했다. SCO는 2001년 중국과 러시아의 주도로 출범한 다자협의체다. 지난달 중순엔 중국 수출입은행이 사우디에 무역대금 결제용으로 위안화 대출을 실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에 맞설 ‘페트로 위안’ 구상이 첫 발을 뗀 셈이다.더 놀랄 일은 지난달 사우디와 이란이 외교 관계 복원에 전격 합의했고, 이를 중국이 주선했다는 점이다. 사우디는 이슬람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로 사사건건 얼굴을 붉히는 사이다. 두 앙숙 사이에 중국이 다리를 놓았다. 사우디와 이란은 성명에서 "회담을 주선한 중국 지도자들과 정부에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팔짱을 끼고 이를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한·사우디 관계도 영향을 받을까지난해 11월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의 첫 손님으로 왕세자를 맞는 등 극진하게 대접했다. 왕세자는 ‘사우디 비전 2030’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사막에 첨단 신도시를 건설하는 네옴시티는 그 일환이다. IT 기술 선진국인 한국도 핵심 파트너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사우디는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과 가까워지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도 영향이 있을까? 큰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한국은 사우디가 상대하기에 편한 나라다. 초강대국 미국이나 중국처럼 버겁지 않다. 게다가 한국은 첨단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국방 분야에서도 두 나라가 손잡을 공간이 넓다. 지난달 7일 칼리드 빈 살만 사우디 국방장관이 윤 대통령을 예방했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를 ‘중요한 경제·안보 파트너’라고 부르며 "한국은 사우디와 방산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4일 연합뉴스는 군사전문 매체 제인스닷컴 등을 인용, "사우디아라비아군에 한국의 천무 다연장로켓(MLRS)이 배치된 모습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한국은 2030 세계박람회 유치를 놓고 사우디, 이탈리아, 우크라이나와 경쟁하고 있다. 한국과 사우디가 접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박람회 유치는 각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틀어진 미-사우디 관계는 국제 정치에선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한방 먹은 미국이 어떤 식으로 사우디를 다잡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국제 정치를 지배하는 기준은 첫째도 국익, 둘째도 국익, 셋째도 국익이다. [경제칼럼니스트]▲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2022년 12월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를 만났다. 이후 두 나라 관계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중국은 3월10일 베이징에서 중동의 두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관계 복원을 주선했다. 가운데는 중국 외교를 총괄하는 왕이 공산당 정치국원. 사진=로이터/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7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오찬을 함께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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