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윤수현 기자] 여야는 선심 협치와 경쟁을 오가며 ‘퍼주기 정책’에 나서고 있다.자신의 지역구에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면 함께 손을 맞잡고 일사천리로 진행하면서도 특정 유권자 집단에 해당하는 정책에는 경쟁 구도로 맞서고 있다.게다가 국가 세수가 급감하면서 곳간이 비어가는 와중에도 국가 부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재정준칙을 도입을 미루는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을 높이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여야 포퓰리즘 정책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전기가스요금 동결· 통신비 지원전국민 1000만원 기본 대출청년층 교통비 지원학자금 대출 이자 면제 법안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중소기업 청년 근로자 교통비 지원 사업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개정안아동수당 지급 대상 13세 미만까지 확대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기준 1000억원으로 상향 / TK신공항 특별법·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 국회 처리 / 대학생 ‘1000원 아침밥’ 제공 확대◇ 여야, 예타면제 완화·쌍둥이 공항법 등 ‘협치’…MZ세대 위한 정책은 ‘우후죽순’ 제안21대 국회 여야는 정치권 안팎으로 ‘극강의 대립관계’라고 불린다. 여야 간 협의를 이뤄 정책을 마련하는 게 아닌 정부와 여당 간의 논의로 정책을 발표하거나 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하는 등의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그런 여야가 협치를 이룬 사례는 최근 들어 두드러진다.국회는 지난 13일 본회의에서 대구·경북(TK)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인 ‘쌍둥이법’을 나란히 통과시켰다. 이날 대구·경북 신공항에는 재석 254명 중 228명이, 광주 군 공항 이전에는 재석 256명 중 245명이 찬성했다.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조항과 함께 대구시가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과 관련해 기존 부지를 양도 받고 부족한 사업비는 국고로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또 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은 공항 이전 사업을 위해 국가가 사업 시행자에게 필요한 비용을 보조하거나 융자하게 하고 종전부지는 특별구역으로 지정해 개발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쌍둥이법’ 통과에 여야 영·호남 의원들은 각 당의 지역구 ‘텃밭 사업’으로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 공항사업에은 비용만 20조원 이상이 투입되기 때문이다.여야는 본회의 하루 전인 12일 예타면제 기준을 완화하는 법안을 1분만에 통과시키기도 했다.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는 SOC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두 배로 올리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예타 조사 대상이 되는 총 사업비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국비 300억원→500억원)으로 상향했다.예타는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평가하는 제도다. 이번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총 사업비가 1000억원 이하인 도로, 철도, 항만 등의 사업은 예타 없이 추진할 수 있다.지난해부터 예타가 진행 중인 충남 서산공항(530억원), 국비 500억원 가량이 투입되는 제2인천의료원, 사업비 889억원 규모인 울산 R&D 비즈니스밸리 연결도로 개선 사업 등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전망된다.기재위 소위의 결정에 ‘반쪽짜리 국가재정법 개정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재정준칙의 한계선 없이 예타 기준만 완화했다는 점에서다. 안전장치 없이 예타 기준을 완화할 경우 정치권에서 선심성 사업과 공약을 남발해 재정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재정준칙은 재정지표에 목표를 부여하고 관리하는 재정운용체계를 뜻한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재정준칙 법제화’를 내놨다. ‘포퓰리즘’적 재정 운용을 막고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안전핀을 도입하자는 취지에서다.정부가 제안한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을 경우 적자 한도를 2% 이내로 조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재정준칙안은 지금까지 7개월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여야는 지역구 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안 통과에는 손을 잡는 동시에 MZ세대를 겨냥한 정책에는 경쟁하고 있다.대표적인 정책은 ‘천원의 아침밥’이다. 정부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 대상을 지난해 28개 대학교 48만명 학생에서 41개 대학 69만명으로 늘렸다고 발표했다. 이후 민주당은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며 전국 대학으로 넓히자고 주장했다.이에 정부와 여당은 ‘희망 대학 모두’로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민주당은 곧바로 ‘점심·저녁 중 한 끼도 1000원에 먹을 수 있게 하자’는 안을 제안했다. 또 일반대 뿐 아니라 전문대 학생도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방학 중에도 1000원에 아침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다만 중앙 정부와 각 대학의 지원만으로는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당 대학이 속한 지방자치단체가 추가경정예산 등으로 지원하자는 구상도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졌다.MZ세대 표심 공략으로 국민의힘은 통신비 부담 완화, 청년층 교통비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학자금 대출 이자 면제 법안, 중소기업 청년 근로자 교통비 지원 사업 등을 추진을 내세우고 있다.민주당은 ‘기본대출’ 카드도 꺼내 들었다. 정부가 보증을 서서 전 국민에게 최대 1000만원을 최장 20년간 낮은 이자로 빌려주는 내용이다.민주당은 은행의 초과이득을 환수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하지만 ‘기본대출’을 실행할 경우 전국민이 대출 신청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여야의 치열한 협치와 경쟁 속에서 정작 시급한 정책 개정은 뒤쳐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 최대 국정과제라고 꼽을 정도로 대수술이 필요한 근로개편안, 연금개혁, 저출산고령화 대책, 선거법 개혁 등 사안들은 아직도 논의만 단계에서 맴돌고 있다.◇ 전문가들 "예산 상황 고려 없는 표심 정책…재정적 지속가능성 살펴야"전문가들은 여야의 제동 없는 선심정책 가열 상황을 두고 "예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표심을 위한 연대"라고 비판했다.특히 여당의 경우 국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왔던 기조와 달리 입장을 바꾸면서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박창환 정치평론가는 "정부에서는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불과 며칠전까지 국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했다"며 "게다가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에 들어선 뒤 여야 간 대화나 타협이 제대로 되는 장면을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박 평론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때에는 호흡을 맞추고 민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협치를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치인들이 권력도 있고 재정도 충분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표심에 대한 욕심이 생길 수 있다"며 "심지어 여당의 경우 집권을 했으니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혁을 해야 하는데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지지율과 인기가 하락하니 애초에 내세운 개혁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박 교수는 "하지만 재정의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서 표심만 쫓을 경우 포퓰리즘 정책에 빠지는 것"이라며 "표심에만 쫓는 정책을 추진하느라 나라에 빚이 생긴다면 결국 미래세대들에게 재정 부담만 짊어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여야의 정치 행보에 ‘선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이유는 뚜렷하다. 나라 곳간 상황을 살피지 않은 채 안전장치 없이 예산이 막대하게 쏟아지는 사업을 추진하는데 급급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전문가들은 정책을 마련할 때 선심성으로 비춰지지 않으려면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살펴야 하고 단발성이 아닌 거시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예타 면제 완화의 경우 자재비, 인건비, 물류비 등이 올랐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업 추진과 운영 측면에서는 이해가 된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결정에 선심성이 배제됐다고 주장하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박호정 교수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도 마찬가지다. 물론 식사비가 올라 학생들의 부담이 커진 건 맞지만 중요한 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며 "국내에 공장을 짓거나 사업체를 마련하게끔 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보편적인 복지를 실행하는 게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없다"고 부연했다.박창환 평론가는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예산이 남았다고 무조건 쓰거나 모자라다고 무조건 아끼는 게 아니라 사용처에 대한 원칙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지금 지방의 문제는 이유 인구 감소다.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해야 지역 경제가 살고 활성화 되지, 공항이나 철도를 짓는다고 무조건 지역 인구나 경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며 "지방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결과적으로는 기업만 이득을 보고 지방 재정 적자만 누적시키는 사업들이 많기 때문에 진정 지역민에게 환원이 되는 게 맞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다만 정책을 두고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려면 사후 평가가 돼야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어떤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판단하려면 정치적으로 국민들의 여론과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지 등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사후적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다"며 "사업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반대하는 원리로 접근한다면 이미 발달된 지역만 발전시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최 소장은 "일본의 경우 지역 공항을 많이 유치하면서 이동이 편리해졌기 때문에 관광 수요가 늘었다. 우리나라 영종도에도 국제공항을 지을 때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 세계적인 공항으로 자리잡았다"며 "지역 공항의 경우 당장 필요가 없다고 보거나 수요가 적다고 판단하기 이르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일 때도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비판이 많았다. 서울시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라며 "무조건 사회적 약자 계층이나 서민들에게 지원하면 포퓰리즘이고 대기업이나 부자에게 지원하면 투자라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claudia@ekn.kr/ysh@ekn.kr(왼쪽)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서울 구로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일하는 청년들의 내일을 위한 두 번째 이야기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오른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천원의 아침밥’을 제공하는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제1학생회관 식당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