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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적대적=필패”…고려아연 ‘MBK는 적대적 M&A’ 강조하는 이유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를 '적대적 M&A'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으나, MBK파트너스는 우호적 인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볼 때 적대적 M&A로 규정될 경우 성공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양측의 입장 차이는 단순한 의견 대립을 넘어 인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적대적 M&A로 규정한 고려아연의 전략 22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측은 이번 인수 시도를 적대적 M&A로 규정하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이번 시도가 회사의 장기적 발전과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세계 최대 아연 제련업체로서 국가 기간산업의 성격을 띠고 있는 고려아연이 외국 자본에 넘어갈 경우 국내 기술 유출의 우려가 있다"고 강조하는 중이다. 고려아연 측 주장의 배경에는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적대적 M&A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의 인수 시도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얘기다. 실제 한국에서 적대적 M&A를 시도한 사모펀드는 대부분 실패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2019년 KCGI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반도그룹이 연합하여 한진그룹 경영권 확보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난 바 있다. 외환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재계를 충격으로 몰고갔던 소버린자산운용의 SK 경영권 장악 시도는 2003년 실패로 끝났다. 이어 2006년 칼 아이칸이 이끄는 해외 헤지펀드의 KT&G 인수 시도 역시 실패했다. 당시 시장은 물론 국민적인 여론도 적대적 M&A에 참여하는 사모펀드에 대해 크게 부정적인 분위기였다. 반대로 사모펀드지만 우호적 M&A를 시도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성공 사례가 많다. 지난 최근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사례가 있으며, 2013년 한앤컴퍼니가 웅진식품을 인수한 후 2018년 대만 퉁이그룹에 매각한 사례도 큰 저항 없이 이뤄졌다. 2022년 MBK파트너스의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인수도 대표적이다. 이런 과거를 비춰볼 때 이번 MBK파트너스의 M&A시도를 적대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고려아연의 전략적인 선택이다. 적대적 M&A로 규정해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 인수 무산을 위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얘기다. ◇정치권·시민단체 반대 움직임 확산 실제 효과도 나타내고 있다. 이미 일부 정치인들과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인수 시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려아연 공장이 있는 울산시의회와 김두겸 울산시장,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소액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 등은 “MBK와 영풍의 적대적 M&A에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추가로 고려아연이 세계 최대 아연 제련업체로서 국가 기간산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도 사모펀드 입장에서 넘어야 할 벽이다. 정부와 재계의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SK그룹이나 KT&G 사례에서도 정부와 재계의 지원으로 적대적 M&A를 막아낸 바 있다. 또 MBK파트너스의 투자자 구성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국, 캐나다 연기금과 싱가포르 국부펀드, 중국 자본 등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국내 기업의 해외 매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최근 미국에서 US스틸의 일본 제철 매각을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된 것처럼, 국내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작용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MBK “적대적 아닌 우호적 인수" 반박 반면 MBK파트너스는 이번 공개매수가 적대적 M&A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MBK파트너스 김광일 부회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는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합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최대주주로서 지분을 늘리기 위해 공개매수를 하는 것"이라며 “이번 공개매수는 현 최대주주와 합의한 경영권 인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적대적 M&A가 성공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 단순히 경영권 확보나 단기적 이익 추구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 발전과 산업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고려한 접근임을 시장에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지분 확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아이폰 16, 한달 뒤에나 받아요”…LGD, 애플 덕에 웃는다

애플의 신형 스마트폰 아이폰 16 시리즈가 전작에 이어 판매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를 납품하는 LG디스플레이는 아이폰 판매가 늘어나는 만큼 실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관심이 쏠리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자급제 제품으로 나온 아이폰 16 시리즈는 쿠팡·G마켓·롯데하이마트 등 국내 오픈 마켓 플랫폼에서 1차 물량이 사전 판매 시작 첫날 모두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사전 판매 물량은 순차적으로 배송된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 통신 사업자들에게 배정된 1차 사전 판매분은 제품 공개 이튿날인 지난 11일 완판됐다. 1차 출시국에 우리나라가 포함됐지만 이통사가 애플로부터 받아온 물량 자체가 평년 대비 적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신제품의 인기가 감지된다. 아이폰 16 프로 맥스 제품을 구매하고자 여러 옵션을 선택하면 다음달 18일부터 25일 사이에 배송된다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전작 대비 초반 실적이 부진할 것이라는 비평과는 상반된 지점이다. 또한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당초 애플은 올해 아이폰 16 목표 출하량을 최소 9000만대 넘게 설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전작 대비 약 10% 높은 수치다. 한편 아이폰 16의 흥행이 점쳐지자 LG디스플레이는 남몰래 미소를 짓고있다. 애플은 아이폰 16 시리즈에 유기 발광 다이오드(OLED) 패널을 적용했고, 내년까지 총 1억2000만대를 발주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또 아이폰 전체 판매량 중 70%는 프로 모델로, 일반 모델보다 패널이 크다. 이는 패널 제작사인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과 직결됨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약 4000만대 분량의 OLED 패널을 애플에 납품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절적 성수기에 진입하는 하반기에는 애플 아이폰 16 시리즈 출시 효과로 무난한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반면 금융 정보 업체 에프엔 가이드는 올해 LG디스플레이의 영업손실이 991억원으로 전년 대비 96.05%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HBM 시장 전망 불안… SK하이닉스·삼성전자 “기술력으로 승부”

HBM(High Bandwidth Memory) 시장 성장세를 놓고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시장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시장 전망의 불확실성을 대응하기 위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각자의 강점을 살린 전략으로 HBM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HBM 시장 전망…공급 과잉 vs 지속 성장 엇갈려 1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2024년 HBM 충족률(sufficiency ratio)이 -2.4%에서 0.6%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공급업체들의 공격적인 확장으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약간 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2024년에는 HBM3 수요가 크게 증가해 전체 HBM 수요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메모리 시장에 대해 보다 신중한 전망을 내놓았다.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수요가 여전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으면서 변화율이 정점에 근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향후 몇 분기 동안 이익 성장 기대치가 정점을 찍고 반전될 것으로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는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기존 대비 절반가량 낮은 12만원대로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HBM 시장의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2024년, 2025년, 2026년 HBM 시장 공급 부족률을 각각 2.7%, 1.9%, 0.9%로 예측했다. 이는 수요 증가가 공급 증가를 약간 상회한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HBM 시장 규모가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100% 성장해 2026년에는 3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곁들였다. 이에 대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것은 HBM 등 차세대 메모리의 시장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HBM은 기존 D램과 달리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기 때문에 공급 과잉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적정 재고를 확보하려는 고객사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어 적어도 2025년까지는 수요가 견조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 기술 우위 전략으로 시장 선점 나서 상반된 전망 속에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선택한 전략은 기술적 우위의 선점이다. 당장의 수요와 공급에 맞춰 반응하기 보다는 향후 시장 주도권을 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먼저 SK하이닉스는 HBM 관련 기술에 투자규모를 오히려 늘려가면서 과거 삼성전자가 보여줬던 '초격차'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HBM3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5세대 HBM3E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12단 HBM3E 제품의 3분기 양산을 앞두고 있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6세대 HBM4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AI인프라사업본부장 김주선 사장은 최근 열린 세미콘 타이완 2024에서 “6세대 HBM인 HBM4부터는 TSMC와 협력해 개발을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고객사에 적기 공급하기 위해 6세대 제품부터는 생산을 TSMC에 위탁해 기능성을 더욱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HBM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8단 HBM3E 칩에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좁혔으며, 12단 HBM3E 시장에서는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2분기부터 12단 HBM3E 칩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이정배 사장도 최근 “파운드리와 반도체 설계 역량을 모두 갖춘 삼성이 시장에서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HBM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조직 개편에도 나섰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연구소 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연구 개발 분야를 떼어내 사업부 각 개발실 산하로 옮기는 조직 개편을 진행 중이다. 이는 메모리 개발 역량을 한데 모아 시너지를 노리고, 연구소는 미래 기술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HBM 시장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고려할 때 두 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며 “글로벌 경쟁사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아 향후 시장 경쟁은 더 치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한종희 “삼성전자 강한 성장이 다음 목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디바이스 익스피리언스(DX) 부문장, 부회장)가 '강한 성장'(bold growth)을 새 키워드로 제시했다. 사업 구조를 미래형으로 과감히 전환함으로써 최근 삼성전자가 처한 복합 위기에서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19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한 부회장은 DX 부문 출범 3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에서 DX 커넥트 행사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한 부회장은 “그간 '원 삼성'(One Samsung)의 기틀을 다지고 사업 간 시너지 제고에 노력해왔다"며 “우리의 다음 목표는 '강한 성장'"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미래 성장을 위해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2021년 12월 DX 부문장 취임 당시 “'원 삼성'의 시너지를 만들고자 노력하자"며 “이를 위해 기존 사업부-제품 사이의 벽을 허물고 고객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탐구해야 한다"며 '원삼성'을 키워드로 꺼내든 바 있다. 한 부회장은 취임 3년을 맞아 이번에는 '강한 성장'을 새로운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 △의료 기기 기술(메드텍) △로봇 △전장 △친환경 공조 솔루션 등 4가지 핵심 영역을 공개하고, 차세대 신성장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DX 부문에 미래 신기술과 제품 확보를 위한 미래기술사무국을 신설했다. 또 미래사업기획단과 비즈니스 개발 그룹을 신설하는 등 '세상에 없는' 기술과 사업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차세대 헬스 영역을 더욱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7일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 간담회에서 한 부회장은 “미래 사업을 들여다보며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고 성과가 나오도록 하고 있다"며 “의료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미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IFA 2024에서 인공 지능(AI)을 기반으로 고도화된 건강 관리 서비스인 '삼성 푸드 플러스'를 공개했다. 시니어 고객에 초점을 맞춘 스마트싱스 기반 '패밀리 케어'도 연내 글로벌 다른 국가로 도입을 확대한다. 아울러 미래 먹거리로 점 찍은 로봇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다양한 영역에서 끌어올린다는 입장이다. 올 5월 삼성전자는 DX 부문 산하 로봇사업팀 연구·개발(R&D) 인력을 최고기술책임자(CTO) 부문으로 배치하는 등 관련 분야 강화 차원에서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전장의 경우 자회사 하만과 시너지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간다. 친환경 공조 솔루션도 기존 사업과 연계를 강화한다. 'AI 컴퍼니'로의 전환 계획도 내비쳤다. 이 과정에서 외부 AI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디바이스 사업 외 서비스·기업 간 거래(B2B) 사업에도 힘을 주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 삼성전자는 CES 2024에서 '모두를 위한 AI'를 선언하며 올해를 AI 가전의 원년으로 삼고 'AI 가전=삼성' 공식을 공고히 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한 부회장은 IFA 간담회에서도 “AI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소비자가 불편해하는 것, 싫어하는 것, 어려워하는 것을 해결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연결된 경험을 준비 중"이라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 AI 시대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노사 문제와 관련, 그는 “대립 아닌 상생 관계를 다져나가야 한다"며 “열린 자세로 진정성 있게 소통할 것"이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SIA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 814조원… 한·미 협력 강화할 필요성 커져”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이 1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미국 내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서라도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의 다자간 협력 체제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SIA는 한-미간 기술·경제 안보 정책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입장이다. 19일 SIA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은 6110억달러(한화 약 813조8520억원)로 전년 5269억달러 대비 15.9% 증가할 것으로 조사됐다. SIA는 미국 기업들이 올해 글로벌 시장 매출의 50.2%를 차지하며, 시장 점유율이 전년 대비 0.2%p 상승해 1위를 수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 2023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약 14%로 2위를 기록했다. 아울러 2030년까지 반도체 시장은 1조달러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성장세에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이하 칩스법, CHIPS and Science Act of 2022)'이 시행되자 올해 8월 기준 90개 이상의 신규 제조 프로젝트가 발표돼며 총 4500억 달러 투자 계획이 시행되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이로써 2032년까지 미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은 203% 가량 증가하고 10나노 이하 첨단 로직 칩 생산 능력은 28%로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SIA는 반도체 산업이 급성장하는 것과 달리 인력 수급에는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30년까지 엔지니어 2만7300명·컴퓨터 과학자 1만3400명·기술자 2만6400명 등 6만7000명에 달하는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인력 양성을 위한 포괄적 전략 수립 필요성이 강조된다. SIA는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STEM, Science·Technology·Engineering·Mathematics) 교육 강화 △고숙련 글로벌 인재 유치 △표준화된 기술 훈련 프로그램 개발 등을 제안했다. 2023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액은 593억달러(한화 약 78조9995억원)로 매출의 19.5%인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한국 기업들의 R&D 지출은 매출 대비 10.3%로, 미국(19.3%)과 대만(14.0%)에 이어 3위로 집계됐다. 국가반도체기술센터(NSTC)와 같은 각 기관들은 칩스법에 따른 R&D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SIA는 세계 주요국들의 반도체 정책을 소개하며 협력 수준 제고를 주문했다. 특히 한국·일본·유럽연합(EU)과 각각의 반도체 협력을 강화해야 하고, 세계반도체협의회(WSC) 등 다자 간 협력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한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과 규모에 대한 부분도 거론했다. 올해 5월 우리 정부는 국내 반도체 설계·제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약 190억달러(한화 약 25조3004억원)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발표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선 1월에는 향후 20년 간 4720억달러(한화 약 628조5152억원)를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와 같은 정부 지원에 대응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표했고, 새로운 전·후 공정 제조 능력과 R&D·설계 센터, 인력 개발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우리나라는 미국과 기술·경제 안보 정책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양국은 공급망·상업 대화(SCCD)를 통해 반도체 특화 워킹 그룹을 설립해 산업 공급망 강화·공동 R&D 노력 증진을 목표로 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고려아연에 우군 될까? LG·현대차·한화 ‘키플레이어’ 부각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LG, 현대차, 한화 등 주요 대기업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분쟁은 국내 비철금속 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고려아연 지분 구조와 대기업 전략적 제휴 18일 고려아연에 따르면 회사의 지분은 최윤범 회장 측(우호 지분 포함)이 33.99%를 보유 중이다. 만약 여기에 HMG글로벌(5.00%), 한화H2(4.79%), 한화임팩트(1.90%), LG화학(2.00%), ㈜한화(1.20%) 등 대기업들의 지분을 합하면 48.88%에 달한다. 지분 구조에 따라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주요 대기업들의 입장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고려아연은 최근 몇 년간 이들 대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사업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지난 2022년 11월 23일 고려아연은 LG화학과 2567억원 규모의 자사주 맞교환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LG화학은 고려아연 지분 1.7%(39만1547주)를, 고려아연은 LG화학 지분 0.47%(36만7529주)를 각각 취득했다. 양사는 같은 날 IRA 대응을 위한 포괄적 사업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이 협약에 따라 전지소재 분야에서 IRA 공동 대응에 합의했으며, 울산 전구체 공장의 생산능력을 2만t에서 5만t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이에 양사는 고려아연 계열사인 켐코와 LG화학의 합작회사인 한국전구체주식회사를 통해 울산 온산 산업단지에 합작 전구체 공장을 세우고 최근 시제품 생산도 마쳤다. 같은 날 고려아연은 한화그룹과도 1600억원 규모의 주식 맞교환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한화는 고려아연 지분 1.2%(23만8358주)를, 고려아연은 ㈜한화 지분 7.3%(543만6380주)를 각각 취득했다. 자사주 교환의 이유도 협력이다. 고려아연의 호주 암모니아 수입, 저장 시설, 크래킹 시설 등에 한화가 참여하고, 한화의 육상 풍력발전소 전력을 고려아연이 구매하며, 해상 풍력발전소를 공동 개발하는 방안 등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화의 첨단 발파 솔루션을 활용해 고려아연의 채굴 효율성을 높이고, 미국 블루 암모니아 투자 사업에 고려아연이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현대차그룹과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차 계열사인 HMG글로벌이 고려아연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구체적인 협력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재 영풍의 장형진 고문 측은 약 33.13%를 보유하고 있으며, MBK파트너스는 14.61%의 지분을 공개매수하는 것이 목표다. 성공할 경우 47.74%의 지분 확보가 가능하다. 이대로 제휴사들이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준다면 장 고문 측이 지분율에서 밀리지만 변수가 있다. HMG글로벌의 지분은 유증을 통해 납부와 신주발행까지 완료된 상태지만 현재 영풍 측이 신주발행무효의 소를 제기해 발목이 잡힌 상태라는 점이다. 이 소송에서 영풍 측이 승소하면 영풍의 지분 우위 상황이 된다. 결국 고려아연의 최 회장 측이 이기려면 지분투자로 엮인 우호지분의 100% 확보와 HMG글로벌의 신주 관련 소송의 승소가 조건이 된다. 반대로 영풍의 장 고문 측이 이기려면 HMG글로벌 소송의 승소나 한화와 LG화학 등의 '변심'이 필요하다. ◇LG·현대차·한화 등과 시너지 돈독…변수 될까 고려아연이 다른 회사들과 관계가 깊어진 것은 고려아연의 산업적인 위상 덕분이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산업에서 세계적인 위치다. 아연 생산량 기준 세계 1위, 은 생산량 기준 세계 3위의 기업으로, 국내 비철금속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2022년 기준 매출액은 10조9791억원, 영업이익은 1조1466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성과는 고려아연이 그동안 신재생에너지 및 수소,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을 중점 육성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추진한 덕분이다. 이 전략은 최윤범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통적인 비철금속 산업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고려아연은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전략은 신재생에너지 및 수소,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을 중점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LG, 현대차, 한화와 미래 사업 방향을 공유하며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 관계는 각 기업의 핵심 사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단순한 투자를 넘어선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볼 수 있다. 고려아연의 비철금속 산업에서의 세계적 위상과 2022년 기준 10조원이 넘는 매출 실적은 이러한 협력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향후에도 고려아연은 LG화학과는 배터리 소재 공급망 구축, 현대차와는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한화그룹과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이 기대된다. 이러한 협력 관계는 각 기업의 핵심 사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단순한 투자를 넘어선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볼 수 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발표하면서, 이들 대기업의 입장이 더욱 중요해졌다.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공식적으로 백기사 역할을 부인하고 있지만, 고려아연과의 기존 협력 관계를 고려할 때 현 경영진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MBK파트너스의 경우 사모펀드로서의 특성상 기존 협력 관계보다는 기업 가치 제고를 통한 수익 실현과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MBK파트너스는 과거 여러 기업 인수 사례에서 보여주었듯이, 단기간 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적절한 시점에 매각하는 전략을 주로 구사해왔다. 결국 이번 경영권 분쟁의 결과에 따라 국내 비철금속 산업과 배터리 산업의 미래 방향성이 결정될 수 있어,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국내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상황"이라며 “이번 분쟁의 결과는 한국의 미래 산업 전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캐릭터 강화하는 K-ICT…MZ·수익성 모두 잡는다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가 캐릭터 마케팅에 힘을 주고 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 강화를 통해 유입을 확대하고, 친근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에서 자체 캐릭터 지식재산(IP) 활용 범위를 넓히는 한편 새로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대중 접점을 확대해 브랜드 친밀도를 높이고, 수익모델을 다각화하기 위함이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확보한 MZ세대 팬덤을 토대로 다수의 캐릭터 굿즈 사업이 흥행하면서 새 수익원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이는 국내 캐릭터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캐릭터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관련 시장 규모는 2020년 13조6000억원에서 내년 약 16조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또한 이용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 캐릭터가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약 65.2%로 나타났다. LG유플러스는 자체 캐릭터 '무너크루'를 앞세워 글로벌 진출 범위를 넓히고 있다. 무너크루 활용 굿즈는 지난 2021년 100여종에서 올해 200여종으로 약 2배 증가했다. 디자인 문구 및 소품 위주에서 패션잡화·홈리빙 등으로 굿즈 종류를 확대한 것. 이 캐릭터는 MZ세대 'K-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사회초년생들의 공감을 얻으며 인기 캐릭터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는 캐릭터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일본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현지에서 운영했던 무너크루 팝업스토어엔 약 15만명 이상이 몰렸다. 올 초엔 현지 IP 거래 대행사 '인투코퍼레이션'과 수출 계약을 맺고 굿즈 판매를 시작했으며, 하반기에는 직접 제작한 굿즈를 현지에 공급하기 위한 라이선싱 계약도 협의 중이다. 향후 미국 등 해외 반응에 맞춰 품목을 늘려갈 예정이다. KT 역시 자체 캐릭터 '라온'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고속무선충전기·썬크림 등 약 50여종의 IP 기반 굿즈를 제작 중이며, 라이선스 계약 등을 통해 사업화하고 있다. 지난해 이 캐릭터에 대체불가토큰(NFT)을 연계한 프로젝트 상품을 발행한 데 이어 올해는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과 전략 협업을 추진 중이다.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프랜차이즈 영업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 라온은 지난 2018년 1020세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개발된 친환경 고양이 캐릭터로, 일상의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아울러 2030 온라인 전용 요금제 '요고'를 형상화한 캐릭터를 개발, 키링·쇼핑백 등 굿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중 키링은 지난 7월 열린 서울 일러스트 페어에서 준비된 수량이 모두 소진된 바 있다. 게임업계 역시 캐릭터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넷마블은 'ㅋㅋ(크크)', '토리', '밥', '레옹'으로 구성된 공식 브랜드 마스코트 '넷마블프렌즈'를 비롯해 모두의마블, 세븐나이츠 등 자체 IP를 활용해 콘텐츠를 확장하고 있다. 최근엔 쿵야 IP를 활용한 스핀오프 브랜드 '쿵야 레스토랑즈'를 활용한 굿즈를 다수 선보였다. 엔씨소프트는 메인 캐릭터 IP '도구리'를 활용한 캐주얼 게임 '도구리 어드벤처'를 개발 중이다. 이 캐릭터는 모바일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2M에 등장하는 몬스터를 활용한 캐릭터다. 직장생활의 애환을 담아낸 설정으로 2030 여성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눈에 띄는 지점은 앞서 언급된 기업들과 달리 굿즈 등 오프라인 사업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진출에 전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게임 경쟁력 강화를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ICT업계 한 관계자는 “캐릭터 마케팅을 통해 기업 자체를 알리기보단 고객 저변을 넓히고 새 사업방식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카카오나 현대백화점 등 수익 창출 사례가 늘면서 자체 캐릭터 육성 기조가 강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인텔의 몰락, 삼성전자는 안녕하십니까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콜드 플레이'의 명곡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의 가사는 몰락한 왕이 화려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이는 과거 '외계인을 고문해서 신제품을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았던 미국 종합 반도체 기업(IDC) 인텔의 모습과 판박이다. 인텔은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코어 시리즈를 출시하며 AMD를 압도하며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당시 인텔은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설계 기술력을 자랑했다. 인텔은 PC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훨씬 많은 칩을 꾸준히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는 최신 제조 공정 경쟁에서 경쟁 우위를 다져나갈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고, '내 손 안의 PC'인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 시장이 급성장하는 동안 PC 시장은 정체기를 맞았고, 이와 동시에 인텔의 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텔에는 과거의 찬란했던 유산들이 있어 타사 칩을 위탁 생산할 기회가 있었다. ARM 명령어 셋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칩을 설계해 판매했더라면 여전히 시장 내 인텔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텔은 자체 설계한 x86 아키텍처 칩으로 모바일 시장에 뛰어드는 최악의 수를 뒀고, ARM 아키텍처 대비 성능과 전성비 면에서 모두 처참히 깨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인텔 제국을 확실히 나락으로 보내버린 6대 최고 경영자(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6년의 재임 기간 중 원가 절감을 통한 단기 성과에 집착하며 2016년에는 전체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해고했다. 해고 인력 대부분은 연구·개발(R&D) 부서원이었고, 이들은 경쟁사로 이직해 인텔은 기술력 격차·규모의 경제 2개의 해자를 모두 상실했다. TSMC와 AMD는 엄청난 반사 이익을 보며 인텔을 제쳤다. 앞으로도 인텔의 미래는 밝지 않다. ARM 아키텍처가 PC 시장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퀄컴도 이를 기반으로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또 서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고, 고부가가치가 기대되는 AI 서버 영역에서도 인텔이 잘 만드는 중앙 처리 장치(CPU)가 아니라 그래픽 처리 장치(GPU)에 집중돼있다는 점도 악재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타사 칩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규모의 경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TSMC도 채택한 전략이어서 이제는 오히려 인텔이 넘어야 할 벽이 돼버렸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1.8나노(18A) 공정은 브로드컴의 반도체 제조 테스트에서 실패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인텔의 몰락이 삼성전자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첨단 기술 패권 다툼으로 번졌고, 삼성전자는 '칩4 동맹'의 질서 속에서도 줄타기를 하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 가운데 인공 지능(AI)·그래픽 처리·데이터 센터 등의 필수 요소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졌고, D램과 낸드 플래시 분야에서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어 과거의 삼성전자가 아니라는 비평도 쏟아진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해체한 HBM 전담 부서는 전영현 부회장이 부랴부랴 부활시키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격차'에서 '추격자'가 됐다는 말이 뼈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생존을 위해 혁신 기술 개발과 투자 확대에 있고, 무엇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변화 속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추진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로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 업계 최초로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기술을 도입했고, 3나노 공정에서 시장을 선도할 경쟁 우위를 확보해 TSMC에 열세인 상황 역전극을 모색하고 있다. 파운드리가 걸음마 단계라서 TSMC에 밀리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당연시 해서는 안 된다.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관료제에 가까운 인텔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려는 노력 조차 기울이지 않아 혁신과 멀어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인텔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56조2000억원’…산업 스파이에 피멍 드는 K-산업, 처벌은 ‘솜방망이’

첨단 산업 경쟁이 더욱 격화됨에 따라 기술 유출 사고 규모도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에 대한 사후 처벌 수위가 타국 대비 낮다는 점이 끊임 없이 지적돼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 10일 중국 반도체 제조사 청두가오전(CHJS)의 대표이사 최모 씨와 공정설계실장 오모 씨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임원 출신인 최 대표는 2020년 8월 중국 지방 정부와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으로 있던 오 씨 등 반도체 전문 인력을 상당수 영입했다. 이들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기술을 탈취해 부정 사용해 산업기술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를 사고 있다. 이들에 의해 유출된 기술은 18나노·20나노급 공정 개발에 관한 것으로, 경제적 가치는 4조3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수사 당국의 설명이다. 서울청은 추가 기술 유출이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며 이 사건에 대하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경제 안보의 근간을 뒤흔들었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반도체·2차 전지·자율 주행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해외로의 기술 유출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외국으로 산업 기술이 유출된 사례는 총 96건이다. 연도별로는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 23건으로 계속 늘어가는 추세다. 산업 스파이의 손에 넘어가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금액은 연 평균 약 56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2022년 한국경제인협회 조사 결과도 있다. 첨단 기술력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세계 각국은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한 첨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상대 국가의 산업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 핵심 기술 해외 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을 병과하고, 그 외의 경우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는 정작 실제 처벌이 미흡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1심 형사 공판 사건은 총 33건이다. 이 중 무죄(60.6%), 집행 유예(27.2%)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재산형·실형 선고는 각각 2건(6.1%)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지식 재산권 범죄 양형 기준'을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판단 근거로 삼는데 재계는 양형 기준이 낮아 상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형 기준이 존재하지만 '형사 처벌 전력 없음'과 '진지한 반성' 등이 사실상 작량 감경의 요소로 작용한다는 게 최대 불만 사항이다. 2022년 대만은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경제·산업 분야 국가 핵심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간주해 처리한다. 이 경우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 징역과 최대 1억 대만 달러(한화 약 42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미국은 기술 유출을 6등급 범죄로 보고 0∼18개월까지의 형량을 정해뒀다. 이 외에도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해 최소 15년 8개월에서 최대 33년 9개월까지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마련해뒀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이를 의식한 듯 지난해 11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해 법사위원회에 이관했다. 개정안은 기술 유출 행위자에 대한 벌금형 상한을 15억원 이하에서 65억원 이하로 상향하고, '산업 기술' 유출 행위에 대해서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서 3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한을 높여 처벌을 강화함을 골자로 한다. 또 고의적인 산업 기술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 한도를 기존 3배에서 5배로 높였다. 법무법인 세종 관계자는 “산업 기술 유출·침해 행위의 범위가 확대되고 처벌이 강화됨으로써 이와 관련한 법적 문제나 대응의 필요성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총체적 난국’ 인텔, 파운드리 분사 결정…전체 직원 15% 해고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한 미국 종합 반도체 기업(IDM) 인텔이 반도체 위탁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또 유럽·아시아에서의 신규 공장 건설 작업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1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인텔은 위기 탈출 차원에서 파운드리와 설계를 분리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올해부터 파운드리 사업부에 대해서는 별도 재무 실적을 발표해왔는데, 이를 완전 분리시켜 독립 자회사로 둔다는 것이다. 파운드리 자회사가 되면 독자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설계를 담당하는 회사의 주주 가치도 제고할 수 있게 된다. 실제 팻 겔싱어 인텔 최고 경영자(CEO)는 “두 사업부를 분리할 경우 제조 부문이 독립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독립성에 대한 고객 우려 완화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앞서 인텔은 겔싱어 CEO가 사령탑에 오른 이후 파운드리 사업 본격 재진출을 선언하며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 2년 간 투입한 자금은 250억달러(한화 약 33조3000억원)이다. 하지만 공장 건설에 거액이 들어감에 따라 시장에서는 수익성 악화 우려가 제기됐다. 아울러 독일·폴란드 공장 건립 프로젝트를 2년 간 멈추고 말레이시아 내 제조 프로젝트도 보류하기로 했고, 다수의 사무 공간도 축소하기로 했다. 또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집적 회로 반도체인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생산 기업인 알테라 지분도 일부 매각한다. 인텔이 2015년 인수한 이곳은 반도체 칩을 다용도로 맞춤 제작한다. 이와 동시에 인텔은 100억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 조정 계획안 발표해 전체 직원의 15%를 해고하기로 했다. 또 2024 회계연도 4분기에는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연간 자본 지출도 20% 이상 감축하기로 했다. 인텔은 또 아마존 웹서비스(AWS)와의 파트너십을 연장하고,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인공 지능(AI)용 맞춤형 칩 생산 계약을 맺었다고 공표했다. 이어 '시큐어 엔클레이브(Secure Enclave)' 기밀 계획에 따라 국방부에 공급할 군사용 반도체 제조를 위해 최대 30억 달러를 수주했다고 부연했다. 이는 지난 3월 반도체법에 의거해 정부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85억 달러와는 별개다. 겔싱어 CEO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하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실행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비판자들을 잠재우고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올해 2분기 인텔 실적은 월스트리트의 전망치를 하회했다. 3분기 실적도 예상치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꼬박 1년 전 37.99달러로 마감했던 주가는 이날 20.91달러로 폭락한 상태다. 시장은 인텔이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고 보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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