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악재가 계속 이어지며 현대자동차그룹이 해법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추진하며 수출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유럽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코로나19, 반도체 수급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풀어야 할 숙제를 끝내기도 전이라 부담감이 더 크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고민은 글로벌 주요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이 IRA를 통해 자국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겠다고 선언하자 급하게 대책 마련에 나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전날 전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했다. 올해 들어 7번째 미국 출장이다. 그는 25일(현지시간) 조지아주에서 열리는 첫 전기차 전용공장 착공식에 참석한 뒤 IRA 대응책 마련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장의 가동 시기를 앞당기는 방법 등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55억달러(약 7조8000억원)를 투자해 조지아주 서배너에 첫 전기차 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가동 예정 시기는 2025년이다. 현대차는 IRA 대응 차원에서 미국에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안도 급하게 살펴보고 있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전일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라며 "배터리 부품의 경우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합작법인 설립을 포함해 다각적인 현지화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현대차의 2030년 전기차 187만대 판매 목표 중에 28%를 차지하는 주요 시장이다. 더 큰 문제는 유럽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 내 비정부기구인 ‘유럽운송환경연합(T&E)’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보조금 차등 지급 등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산업 측면에서 보면 EU가 ‘유럽판 IRA‘를 공론화한 셈이다. 보고서는 "중국 업체들이 유럽에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2025년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 점유율이 최대 18%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유럽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노골적인 자국우선주의 정책에 자극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자동차 제조사가 많은 유럽 입장에서 미국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자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몰아주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자동차를 만든 뒤 다양한 국가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다리 삼아 수출한다는 전략 자체를 손봐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특히 현대차 입장에서는 미국과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무섭게 세력을 불리고 있던 중이라 타격이 더 클 전망이다. 현대차 아이오닉 5와 기아 EV6는 주요국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판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 반도체 수급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파가 여전하다는 점도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급 부족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와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한 경영 불확실성이 향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외교적인 방법으로 일정 수준 활로를 찾아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IRA 시행 당시에도 우리나라의 외교력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던 만큼 향후 유럽 등 주요국 행보를 면밀히 관찰하고 민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배터리 공급 다변화 기조에는 동참해가되 전기차 보조금 문제에는 적극 대응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며 "외교 노력과 외국 브랜드와의 연대 등을 통해 미국 상·하원의원 등 정치권을 설득해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이 중간선거 이후 FTA 체결 국가에만 해당 법 적용을 유예해주는 결정을 내리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유럽 등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외교적으로 많은 도움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yes@ekn.kr1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 5 생산라인 자료사진. 현대차 울산공장 전기차 생산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