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전세계적으로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대자동차, 기아, 쌍용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소비 시장의 ‘전기차 리더’들이 모두 출혈 경쟁을 예고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상황이 긴박하다.19일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지난 16일(현지시간) ‘ID. 2all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보급형 이상의 성능을 갖췄지만 가격을 2만5000유로(약 3476만원) 수준으로 책정한 게 특징이다. 전륜구동 기반인 이 차는 완충 시 최대 450km(WLTP 기준)를 달릴 수 있다. 트래블 어시스트, IQ 라이트, 지능형 EV 루트 플래너 등 첨단 기술도 대거 넣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시장에서는 폭스바겐이 신차의 판매가를 상당히 공격적으로 책정했다고 해석한다. 첨단 운전 보조시스템과 인포테인먼트 등을 그대로 탑재했음에도 기존 엔트리급 모델인 ID.4(국내 기준 5490만원) 대비 가격을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전기차 가격을 깎아 수요를 늘리겠다는 전략은 테슬라가 처음 구사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모델3와 모델S, SUV인 모델Y와 모델X 등의 판매가를 최대 20% 내렸다. 다만 이는 인하 보다는 ‘정상화’ 느낌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테슬라는 앞서 반도체 대란 등으로 공급이 부족하자 공지 없이 수차례 판매가를 인상해왔기 때문이다. 후발주자인 경쟁 상대들은 진짜 인하 전략을 구사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테슬라에 이어 포드가 곧바로 머스탱 마하-E의 북미 판매 가격을 최대 8.8% 할인했다. 북미에서 시작된 ‘치킨게임’이다. 이 와중에 비야디(BYD)가 최근 일부 모델 판매가를 바꿨다. 일단 이달 31일까지 ‘쑹 플러스’와 세단 ‘씰’ 가격을 각각 6888위안(약 131만원), 8888위안(약 169만원) 깎아줄 계획이다. 테슬라 모델 3, 모델 Y와 경쟁하는 차량들이다. 전기차 시장 북미·유럽 1위 테슬라,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1위 BYD, 유럽 2위 폭스바겐이 동시에 할인 공세를 펼친다는 얘기다.우리나라 기업인 현대차·기아의 경우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판매를 늘려가고 있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1차 타격을 받은 상황에 출혈 경쟁까지 벌어지자 고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가 마진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판매를 늘리기 위해 이 같은 분위기에 동참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쌍용차는 처지가 조금 다르다. 최근 전기차 U100의 차명을 ‘토레스 EVX’로 확정하고 막바지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 회사의 성공적인 전동화 전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이 차의 임무다. 당장 해외 시장으로 뻗어갈 확률은 낮지만 내수 점유율 확보를 위해 가격 정책에 대한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다.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들도 전기차 ‘규모의 경제’를 이뤄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본다. 보조금 없이도 내연기관차와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유럽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며 제조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보조금이 줄며 노르웨이,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전기차 판매가 올해 들어 급감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올해 안으로 전기차 가격이 휘발유차와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전기차가 가격적으로도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며 이 같이 보도했다. NYT는 전기차의 주요 부품인 배터리 가격 하락과 완성차 업계의 가격 인하 경쟁을 그 근거로 들었다.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원가의 40% 가량은 배터리가 차지한다"며 "국내에 이차전지 기업들이 많은 만큼 현대차·기아·쌍용차도 다양한 형태로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해달라고 주문하는 등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yes@ekn.kr기아 오토랜드 화성 전기차 생산 라인.폭스바겐이 16일(현지시간) 공개한 ‘ID. 2all 콘셉트카’.쌍용차 토레스 EV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