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상황에 글로벌 정치 리스크까지 가세하면서 재계 주요 기업들이 ‘비상 경영’ 체제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에 소비 심리는 급감하는데 중국 공산당 대표회의, 미국 중간선거 등 국제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각종 사건사고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삼성, SK, 현대차 등은 ‘경제 블록화’에 따른 해외 진출 관련 압박까지 받고 있어 셈법이 복잡하다.1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이 중국 반도체 생산기업에 대한 규제를 공식화한 데 따른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일(현지시간) 특정 반도체에 대한 제한적 수출 통제 방침을 공개했다. 중국에 첨단 반도체 및 제조 장비를 넘기지 않겠다는 게 골자다. 삼성·SK처럼 중국 내 생산시설을 둔 외국 업체의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아야 한다.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별도 허가에 따른 사업 지연, 불확실성 증대 등을 걱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이 고조되며 직격탄을 맞게 된 셈이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과 관련 개별 기업이 아닌 기술·장비 등을 포괄적으로 규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시장에서는 대규모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미국·중국 정면 충돌 상황이 더 연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오는 16일 중국 공산당 대표회의, 다음달 미국 중간선거 등을 앞두고 정치적 의도로 대결 구도를 조성할 수 있어서다. 중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등 굵직한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재계의 골칫거리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 등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강제 병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키이우 공습, 크림대교 폭발 등 물리적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전날에는 삼성전자가 입주한 키이우 내 사무소 건물이 폭격을 받기도 했다. 재계는 이미 코로나19 회복 국면에서 시작된 ‘3고’의 늪에 빠져 비상 경영 체제 돌입을 선언한 상태다. 전세계 시장을 덮친 공급망 붕괴와 이로 인한 물가 상승, 미국의 급격한 긴축으로 인한 금리 인상과 환율 급등 상황을 엄중히 여긴 것이다. 한국은행은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원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1400원을 넘어 1450원대까지 넘보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 심리가 위축돼 재화를 판매하는 데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금리와 환율이 오르면 각종 자금 조달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달러가 홀로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와 경쟁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확대 등 장점은 희석되지만 원자재 수입금 증가 같은 단점만 부각되는 효과가 있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글로벌 기업들은 글로벌 정치 리스크로 인한 ‘경제 블록화’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미국, 중국, 유럽 등이 제조업 시설 자국복귀(리쇼어링)를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법안을 발표하자 현대차가 현지 생산 일정을 갑작스럽게 재점검하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도 해외 사업장 확장에 적극적이다. 인천 송도에 세계 최대 규모 ‘바이오의약품 위탁 개발·생산’(CDMO) 시설을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해외 공장 건설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밝혔다.재계 한 관계자는 "한두 가지 큰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전체적인 경영 환경이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yes@ekn.kr10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위치한 삼성전자 지점 본사 건물 일부가 파손됐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