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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사장 안전 강화, 협박으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근로자 사망사고가 계속 일어난 포스코이앤씨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 사고가 나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산재 사망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온 국민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자칫 '산업계에 대한 협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까지 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똑같은 사망사고가 상습적·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것을 검토해봐도 좋을 것"이라며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여러 차례 공시해서 주가가 폭락하게 하라"고 말했다. 산재가 지속된 기업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경각심을 강하게 줄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의도적인 공시 반복으로 주가를 폭락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정 의도로 어떤 기업의 주가를 폭락하게 만든다면 문제가 되는 기업 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에 주식을 투자한 일반 국민들도 피해를 입는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일부 인사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주가 조작 등 주식 시장을 어지럽힌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본시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경우 결국 해당 기업에 투자한 일반 국민들이 선량한 피해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현 정부는 그 어느 정부보다 주식 시장 투자를 장려하는 정부가 아니던가. 부동산에 치우친 가계 자산을 주식 시장으로 유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신음하는 코스피와 코스닥의 가치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다. 정부가 주가 부양을 외치면서 정작 특정 기업에 산재 발생을 이유로 페널티를 주기 위해 주식시장에 개입하려는 것은 옳바른 방향이 아니다. 심지어 포스코이앤씨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지도 않은 비상장 건설사다. 그렇지 않아도 노란봉투법 및 법인세 강화 등 세제 개편으로 재계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주가를 떨어뜨려 특정 기업을 벌주고자 한다면 산업계 전반이 투자 동력을 잃는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국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전제조건으로 한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큰 출혈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사기가 떨어진 산업계를 복돋아주지는 못할망정, 주가를 폭락시켜 벌주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과유불급이다. 이런 말 없이도 이 대통령의 경고에 건설업계는 물론이고, 모든 한국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의 주가 폭락 발언은 이번 한 번 경고로 마무리되야 한다. 만약 정부 당국이 특정 기업의 주가를 정말 의도적으로 폭락시킨다면 일반 국민과 개인 투자자들이 입는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정상화’의 길 위에 선 상법 개정

“미국에서는 경영자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이른바 '뒷통수를 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 의사결정에 대해 주주들이 일정 수준의 신뢰를 보내는 것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엄격한 제재가 뒤따르고, 제도적으로도 강력한 견제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자본시장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한국은 그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일부 대주주 일가가 전체 주주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회사 자금을 사익추구에 동원하거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비지배주주를 희생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는 '뒷통수를 맞는' 존재로 전락했고, 기업 의사결정에 대한 신뢰는 좀처럼 쌓이지 않았다. 최근 상법 개정 흐름은 이 오래된 관행을 끊어내기 위한 시도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확대 등 비지배주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하나둘 마련되고 있다. 덕분에 경영자나 기업이 이제는 비지배주주의 눈치를 실질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승계를 위한 인적분할'이라는 의심이 팽배했던 하나마이크론, 파마리서치, 빙그레 등이 경영진의 결정을 철회한 사례는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그동안 '선택적 고려'에 그쳤던 주주들의 권리가 비로소 법과 제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이 늘어나면 경영 자율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변화다. 기업 운영의 왜곡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도 높아진다. 정상화로 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유다. 이번 상법 개정은 하나의 변곡점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특이하게 발전한' 기업 운영 형태에서 벗어나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을지 가늠하게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단기적으로는 부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 제고와 안정적인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주 모두의 이익을 향한 진정한 정상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통신업계, 흙탕물 싸움 말고 ‘선의의 경쟁’을

야구계의 불문율 가운데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을 때 과도한 세리머니나 몸짓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승리에 과도한 집착보다 상대팀에 향한 배려와 예의가 먼저라는 의미다. 마운드에서 한솥밥을 먹는 프로선수들의 동업자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휴대폰 대리점을 뒤덮은 현수막을 보면서 문득 불문율을 떠올린 이유는 SK텔레콤(SKT)의 대규모 유심정보 해킹사고 이후 공포 마케팅이 활개친 탓이다. 'SKT 위약금 드디어 면제', '번호이동 지금이 기회'와 같은 흔한 광고문구부터 '해킹은 내 인생이 털리는 것', '통신사 안 바꾸면 아이도 위험' 같은 자극적인 문구까지 등장했다. 급기야 SKT가 이를 근거로 경쟁사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는 촌극도 발생했다. 경쟁사를 저격해 소비자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마케팅이 좋은 인상을 줬을 리 없다. 실제 대리점 현장을 취재하던 중 만난 30대 고객은 “한 번 씩은 개인정보 유출 이슈를 겪었으면서 아닌 척하는 게 더 얄밉다"고 말했다. 시류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마케팅의 기본이라지만, 국가재난으로 번진 사안이라면 조금은 달랐어야 했다. 동업자 정신이 실종된 흙탕물 싸움은 서로에게 강한 생채기를, 소비자에게는 깊은 불신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통신사의 마케팅 방향은 보안체계 강화로 선회한 모습이다. 주요 기업들은 최근 정보보호 투자 계획과 핵심 전략을 앞다퉈 발표했다. 이들이 계획한 보안 관련 투자 규모는 총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전문 인력 확충과 인프라 확대, 기술 고도화를 통한 '제로 트러스트(지속 검증)' 체계 구축에 방점이 찍혔다. 윤리적 신념이나 사회적 책임 등을 토대로 제품을 구매하는 가치소비가 확산하는 시장 동향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보안 수준이 뛰어난 통신사는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고, 이는 기업 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는 정보보호 기술 품질과 신뢰도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굳이 경쟁사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고품질 서비스를 적절한 가격에 제공한다면 가입자는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통신 3사의 '보안 경쟁'은 공포 마케팅을 펼치는 것보다 훨씬 고무적이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나은 편익을 제공하고, 시장 발전을 도모하길 바란다. 통신업계의 '동업자 정신'은 이래야 의미가 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휘청이는 회사, 노조는 “더 내놔”

하반기 완성차 업계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간 수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던 미국 시장에 25% 관세라는 큰 걸림돌이 생기면서 영업이익이 박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락세는 2분기부터 시작됐고 3, 4분기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노조는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를 요구하며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마치 위기의 징후를 모른 척하는 듯한 태도다. 회사는 휘청이고 있는데, 노조는 “더 내놓으라"는 목소리만 높이는 형국이다. 현대차·기아 노동조합은 그 어느 때보다 '역대급' 임금, 복지 인상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 상여금 900%(현행 750%에서 대폭 인상), 성과급으로 영업이익 혹은 순이익의 30% 지급,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도입, 정년 만 64세 연장, 각종 복지와 특별성과급 등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요구가 줄을 잇는다. “매출 100조 시대에 성과급 2000만원은 기본"이라는 일부 주장까지 나온다. 이해는 간다. 물가가 올랐고, 근로자의 삶의 질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다. 경영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진 지금, 사측이 부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요구는 결국 구성원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와 기아의 실적은 전년 대비 역성장을 기록했고, 하반기 전망은 더욱 어둡다. 환율 상승과 원자재 가격 부담까지 겹친 이중고 속에서 기업의 숨통은 점점 조여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크게 증가한다면 구조조정이나 생산 축소 같은 거센 후폭풍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노조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말은 진부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노조가 진짜로 조합원을 위한 조직이라면,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일자리 안정에 집중해야 한다. '더 받는 싸움'이 아니라, '더 오래 함께 가는 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측의 유연한 소통과 노조의 책임감 있는 결단이다. 외풍에 휘청이는 회사를 붙잡는 건 경영진만의 몫이 아니다. 일터를 지키고 싶은 이들의 상식과 연대가 진짜 힘이 될 수 있다. 위기와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상식적인 자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잘 될때 더 받았으니 위기일 땐 내려놓는 방법도 아는 참된 노조가 되길 바란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중간 결론, 겸허히 받아들여야

작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2216편 참사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17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해당 사고에 대해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내놓은 중간 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사조위는 음성 기록 장치(CVR)과 비행 기록 장치(FDR) 판독을 근거로 기계적 결함은 없었고 조종사가 엔진을 잘못 끈 과실의 정황이 확인됐다고 결론냈다. 이어 내년 4월 경 최종 결과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고 6월 중 공표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중간 결과 발표에 대해 제주항공 조종사 노동조합(JPU)와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 유가족들은 사조위가 기장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사실상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불복하는 셈이다. 조종사 단체들은 비상 상황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고인이 된 동종업계인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항공 사고의 60~88%는 인적 오류(Human Error)에 기인한다는 통계가 존재하는 만큼 '기장 무오주의(無誤主義)'를 경계해야 한다. 제주항공 2216편 사고 조사에는 △사조위 8명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1명 △미국 연방항공청 2명 △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BEA) 2명 △유럽 항공안전청 2명 △보잉 2명 △GE사프란 8명 등 총 25명이 참여했다. 외국의 권위 있는 기관들과 기체·엔진 제작사 관계자들이 합동 조사단원 자격으로 참여했다는 건 사조위가 입맛에 맞는 결론을 독단적으로 도출해낸 게 아니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조사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사조위의 중간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며 핏대 세우는 건 국제 공조 결과 역시 부정하는 셈이기에 지양해야 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 부속서(ICAO Annex) 13과 사조위 운영 규정 제29조는 사고 조사에 관해 사고 당사자와 유가족 등 이해 관계자의 제척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고 조사 과정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국제적 표준으로 이해 관계자의 개입을 허용할 경우 과학적인 조사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에 명문화 됐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부분을 모를 리 없는 조종사협회가 “사고 조사에 유가족 단체가 지정하는 외부 민간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조사 진행 전 과정을 재검토하라"고 성명을 낸 건 대놓고 이해 관계자 개입을 요구한 것이자 다소 감정이 실린 대응이어서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물론 사조위가 국토부 산하에 있어 독립성 논란이 제기된 점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이고,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언급해 괜한 논란을 촉발한 건 매우 아쉽다. 하지만 국내에서 항공 사고 조사에 필요한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가장 폭넓게 보유한 곳 역시 사조위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진상 규명을 향한 여정은 길고 험한 법이다. 사조위의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하고 최종 사고 조사 결과가 나오면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역시 중요하다. 피로 쓰인 항공 안전을 지키는 첫걸음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의사 출신’ 정은경 복지장관, 산업계 목소리도 귀 기울이길

정은경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의료보건 및 제약바이오업계의 기대가 크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출신인 정 신임 장관에 대한 환영의 입장을 밝히고 1년 반 끌어온 의정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질병관리청장으로서 보여준 위기관리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체계 구축과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에 대한 포부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정 신임 장관이 한의약의 과학화·표준화·세계화를 위한 정책적 의지를 보여줬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이고, 바이오헬스 업계도 비대면진료 제도화 등을 밝힌 정 장관에게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정 장관이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풀어야할 과제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정 장관은 의료인력의 적정 규모를 과학적으로 추계하겠다고 밝혔지만 공공의료 확대 방침에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의료계를 설득해 얼마나 의료인력을 늘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특히 제약업계는 정 장관이 밝힌 제네릭(복제약) 약가인하 방침에 우려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제네릭 매출 비중이 큰 국내 제약업계에 제네릭 약가인하는 제약업계의 수익성 악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내 제네릭 약가가 주요국에 비해 비싼 것은 맞지만 반면 신약 약가는 주요국에 비해 낮다. 우리 정부는 신약에 대한 약가우대 정책을 통해 제약사의 신약개발 의지를 고취시키고 고수익 신약 중심으로 수익구조 개선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신약이든 제네릭이든 약가인상은 곧 환자 및 재정부담 증가라는 점에서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약가체계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이 외에도 바이오업계는 정 장관에게 산업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마련을 기대하고 있다. 정 장관은 취임사에서 K-바이오백신 펀드 조성 등을 통한 제약바이오 강국 실현을 강조했지만 현재 K-바이오백신 펀드는 1~4호 펀드 합쳐서 조성 금액이 3800억원대에 그치며 집행률도 20%대에 불과하다. 바이오업계는 수 천억원대 메가펀드보다 수 백억원대 소규모 펀드를 다수 조성해 초기 개발 단계의 바이오벤처에게 시의적절하게 자금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업계로부터 두루 환영과 기대를 받고 임기를 시작한 정 장관이 국민보건증진과 산업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기자의 눈] 소비쿠폰 덕 못보는 대형마트, 할인 행사 부담만

휴가철이 낀 3분기 업계 전통 성수기를 맞았음에도 대형마트들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정부가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처에서 제외돼 아쉬운 듯 입맛만 다시는 실정이다. 민생지원금 대상은 연매출 30억원 이하의 업체·가맹점으로 제한돼 있는데, 소상공 지원이라는 정책 목적상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대형마트는 소비쿠폰 사용이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는 유동성 확대에 따른 소비 여력 회복으로 시장 전반에 낙수 효과가 확산되길 기대하는 눈치다. 여기에 수요 확보를 위해 주요 먹거리 위주로 대대적인 할인행사까지 펼치면서 방어전까지 펼치는 모양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시장에서 바라보는 대형마트 경기 전망은 유독 낮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3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간 전망치는 전 분기(75) 대비 27포인트(P) 오른 102였다. 2021년 3분기(106) 이래 4년 만에 기준치(100)를 넘은 수치다. RBSI는 100을 넘으면 다음 분기 경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업태별로 편의점(108)과 온라인쇼핑(105)가 기준치를 상회하고, 슈퍼마켓과 백화점이 각각 100을 기록했다. 반면 대형마트(89)만 기준치를 하회했다. 시장에서는 소비쿠폰 사용처에서 제외된 것을 주 원인으로 꼽지만, 단지 이 이유만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당 지표에서 대형마트와 같이 소비쿠폰 사용이 불가능한 백화점·온라인쇼핑몰은 긍정적인 전망치를 보여서다. 실제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과 함께 영업시간 제한(자정부터 오전 10시), 새벽배송 금지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성장이 정체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유통업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2% 늘었다. 반면 오프라인 가운데 대형마트만 0.8% 감소했다. 소비쿠폰 수혜가 물 건너 간 가운데 울며 겨자먹기로 할인까지 주도해야 하니 역차별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는 8월 6일까지 주요 대형마트들은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축산물 등 수요가 많은 품목을 최대 40% 저렴하게 선보인다. 유통업체 모두 정부 지원에 더해 자체 할인을 의무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내수 진작을 목적으로 정부가 현금성 지원까지 꺼냈지만, 고통 분담만 요구하며 오프라인 마트를 고사시키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기 침체 속 주요 대형마트들도 실적 부진 등 어려움을 겪는 점을 고려하면, 업계 전반에 걸쳐 형평성 있는 정책 설계로 역차별 논란을 해소하려는 시각이 필요하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 눈] 모험자본이 키운 혁신의 힘, 코스피 5000을 여는 열쇠

구글, 아마존, 메타의 창업 스토리를 보면, 모두 변변찮은 사무실조차 없었다. 구글과 아마존은 창고 한 켠, 메타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시작했다. 이들이 가진 거라곤 기술과 아이디어뿐이었다. 꿈을 실현할 돈은 없었다. 미국 나스닥을 이끄는 빅테크가 된 세 기업의 출발점에는 미래를 꿈꾸는 창업자와 가능성에 투자한 모험자본이 있었다. 코스피 5000을 위한 성장 동력을 얘기할 때 모험자본은 잘 거론되지 않는다. 반도체, 제조업 등 기존 산업 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있어야 코스피는 더 빠르게 높이 오를 수 있다. 혁신기업과 신산업을 육성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 모험자본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아직 리스크를 감내하고 혁신을 뒷받침할 자금이 부족하다. 대부분 자금은 부동산·대기업·배당주 등 보수적 자산에 집중되어 있다. 수십 년간 깨지지 않는 부동산 불패 신화 탓에 부동산에 자산이 집중되는 경향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자본시장에서는 대기업과 안정적인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기업에 돈이 몰린다. 이로 인해 새로운 산업을 발굴하는 혁신 스타트업에 공급될 자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아직 정부 주도의 모태펀드가 벤처투자 시장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마중물을 부어도 민간에서 화답하지 않으면 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되긴 어렵다. 고위험 투자인 만큼 민간이 선뜻 나설 요인도 적다. 미국 자본시장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한 데는 모험자본의 역할이 컸다. 모험자본은 미래에 성공할지도 모를 회사를 믿고 미리 돈을 빌려주는 투자다. 대부분 매출조차 없지만, 가능성에 투자한다. 스타트업에서 중견·상장사로 올라갈 사다리를 구축하고 더 많은 혁신 기업을 코스피로 끌어올리는 기반이 된다. 미국 나스닥 시장이 성장한 배경에는 '모험자본 투자 → 혁신기업 창업 및 성장 → 기업공개(IPO) 및 회수시장 → 대형 성장주 편입 → 지수 상승'이라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구글은 클라이너 퍼킨스와 세쿼이아 캐피탈 두 회사에서 각 1250만달러씩 총 25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페이스북도 창업 초기 피터 티엘에게 5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미국 기업 역사를 돌아보면, 창업 초기 벤처캐피탈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한국에서도 신산업을 육성하는 벤처투자 생태계가 활성화하길 고대한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기자의 눈] 또 흔들리는 킥스 정책, 지속가능한 솔루션 나올까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과 함께 2023년 도입된 신지급여력제도(K-ICS·비율) 관련 정책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혼란과 피로도 누적되고 있다. 규제 충족을 위해 전력질주하는 와중에 종목이 마라톤으로 바뀌는 식이기 때문이다. 킥스 비율은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것으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여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해당 제도가 도입된 이후 보험사들은 후순위채를 비롯한 보완자본을 천문학적인 규모로 발행했다. 기존 제도 보다 강화된 자본규제에 빠르게 맞추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최대 10년간 활용 가능한 경과조치까지 동원됐다. 2018년 시가기준 지급여력제도 초기 버전을 내놓은 이후 매년 수정안을 발표하고 10번의 영향평가를 거쳐 시행했음에도 현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1년여만에 '자본의 질'을 언급하며 기본자본 기준 도입을 검토하면서 심각해졌다. 보완자본의 본질이 부채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기본자본을 많이 보유할수록 건전성이 높아지는 것은 맞지만, 이자비용을 감수하면서 만들어 놓은 수치의 의미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기본자본을 늘리기 어렵다는 '집단지성'을 충분히 고려했냐는 토로도 곳곳에서 나왔다. 당국 스스로가 4년 연속 자동차보험료 인하 등으로 보험수익 확대를 어렵게 만든 가운데 기준금리 인하로 다수의 보험사가 투자수익도 늘리기 어렵게된 탓이다. 해외 사례(50~70%)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도 부족했다는 평가다. 대형사 위주로 적용하는 케이스를 들여온다고 해도 대형사 구분이 나라 마다 같은지, 그 기준이 합리적인지 등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보험사 중 기본자본 킥스 비율이 마이너스인 곳도 있는 만큼 시행 가능 여부부터 살펴봤어야 한다는 지적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를 중심으로 나온 보험계약마진(CSM)을 기본자본에 포함하는 솔루션은 난국 돌파를 위한 아이디어다. 이는 예상 보험금 등을 보험수익으로 인식 가능한 IFRS17의 특성을 활용한 것으로, 연착륙을 도울 수 있다. 일각에서는 관련 정책이 '샤워실의 바보'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의 비유로, 샤워실에서 튼 물이 차갑다고 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맞은 사람이 다시금 찬물로 급하게 돌리는 행동을 들어 섣부른 정부 개입이 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특유의 '빨리빨리' 대신 실질적 소통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을 수립하는 흐름이 정착될 필요가 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눈] 집값은 잡았지만, 실수요는 놓쳤다

이재명 정부가 6·27 규제 시행을 통해 집권 초기부터 천명했던 '집값 잡기'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금융권은 6억원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부터 전세대출도 신용대출도 일제히 문고리를 걸어 잠궜다. 갑작스런 발표와 시행으로 인해 대출을 계획 중이던 수 많은 사람들이 돌연 자금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규제 이후 3주 남짓한 시간 동안 어느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수천만원 단위의 계약금을 날린 이야기부터 이사 계획을 다시 짜거나 대출이 가능한 동네를 알아보기 위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는 불만이 가득찼다. 은행권에서도 혼선은 이어졌다. 6·27 규제의 시행 시점이 익일로 발표되면서 전산에 적용될 시간조차 확보되지 않아 비대면 대출 영업이 문을 닫아야 했다. 당시 상황을 두고 한 은행권 관계자는 “서류 양식을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정확한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기다리는 와중 규제는 이미 시행된 상황이었기에 영업점이 혼란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은행권은 전산 작업을 마친 일주일 정도가 지난 뒤에서야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접수를 속속 재개했다. 발빠른 시행은 동시에 맹점을 낳기도 했다. 전세퇴거자금대출은 은행마다 해석 차이로 사실상 올스톱되면서 대책 시행 이후 93% 급감했다. 규제 예외 대상에 대해 '불분명한 기준'이 제시되자 은행이 대출을 내 줄수도, 안 내줄수도 없는 상태가 된 까닭이다. 이 역시 원인은 '성급한 시행'이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당국이 시차를 두고 조건을 새롭게 추가하자 혼선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대책 시행 후 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의 예외 기준이 '임대차 계약일'이라고 밝혔다가 사흘 뒤 '주택 소유권 취득일'이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이 조건에 대해선 이를 '계약날짜'로 간주할지, '등기접수일'로 해석할지 또 다른 혼란이 생겨났다. 당국이 세부 안을 검토하는 지금도 서민의 발이 묶인 채 시간이 흐르고 있다. 갑작스레 축소된 정책대출로 인해 계획을 수정하게 된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들도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당국은 이번 규제에서 정책대출도 예고 없이 연간 공급계획 대비 25%를 감축했다. 신용대출이 나오지 않아 급전이 필요한 중·저신용자는 고금리 대출로 발을 돌리고 있다. 일각에선 당국이 일단 밀어붙이고, 금융사가 속도에 발을 맞추다 스텝이 꼬이는 모양새가 거듭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당국의 추진력에 함께 시름하는 건 실수요자들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우산이 작은 중·저신용자들은 어떤 유예나 보호장치 없이 고스란히 규제라는 비를 함께 맞으며 서 있다. 목표를 위한 과감한 결단과 빠른 시행도 중요하지만, 당초 목표인 '집값 안정화'가 원래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살펴보며 가야한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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