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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반년 가까이 지속되는 후판 협상…경쟁력 고민은 뒷전

“차라리 정부에서 나서 조정자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후판 협상이 반 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지만 출구가 없다는 목소리다. 철강·조선업계가 각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다소 엇나간 의견마저도 힘을 얻고 있다. 후판은 두께 6mm의 두꺼운 철판으로 주로 선박 건조에 쓰이는 철강재다.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철강과 조선업계 사이에서 진행되는 후판 가격 협상이 갈수록 장기화되는 추세다. 현재 철강업계의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산 철강 제품의 밀어내기 공세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탓에 후판 가격 인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조선업계가 불황을 겪던 시절, 상생 차원에서 후판 가격을 낮춰 줬던 만큼 이제는 조선업계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조선업계는 3~4년 동안 지속된 장기 불황의 터널을 지나 겨우 수익성 회복을 시작하는 시점이라 원가 절감이 간절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최근 국내 철강사의 후판보다 훨씬 값싼 중국산 후판이라는 대체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국산 후판의 가격이 인상될 경우 그만큼 중국산 후판을 많이 활용할 수밖에 없어 후판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실익이 없다는 주장이다. 양 측의 입장의 옳고 그름도 중요한 문제이나 결국 이번 가격 협상의 본질은 '경쟁력'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철강·조선업계 모두 가격을 제외한 다른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한 탓에 사활을 걸고 가격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조선업계는 대규모 수주 성공으로 눈에 띄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위상은 더 이상 과거처럼 압도적이지 않다. 지난해 9월 20일 기준으로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수주 집계를 살펴보면 중국 조선사가 70%를 차지했으나 국내 조선사는 25%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지난 2011년 국내 조선사는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75%를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3년 만에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압도적이었던 기술 경쟁력이 점차 따라잡히는 상황에 국내 조선업계도 원가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에 집중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와 유사한 문제를 더욱 가혹하게 체험하고 있다. 중국 철강사들이 글로벌 수출처를 가져가는 것을 넘어 국내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후판 수입은 지난해 상반기 68만8000t(톤)으로 2023년 상반기보다 12% 늘었다. 안방마저 내주고 있을 정도로 경쟁력이 흔들린 상황이기에 가격만큼은 유리한 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격이 이토록 중요해진 상황에서 양 측에 상생을 강조하더라도 우이독경(牛耳讀經)에 그칠 뿐이다. 가격 협상에 사활이 걸린 상황이라 상생은 자연스레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양 측이 가격 협상을 반 년 가까이 지속할 정도로 치열하게 하는 만큼 다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크게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 아쉽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한국형 AI’의 개념·방향성 재점검할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에서 따온 이 문장은 우리 고유 개성이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표현을 함축한다. 오랜 기간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켜온 가치는 이른바 'K-○○'로 치환돼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K-팝(POP)과 K-콘텐츠는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국제적 위상과 품격을 높였다. 이제 K-게임, K-반도체, K-푸드, K-스포츠, K-문학 등으로 외연을 넓히는 모습이다.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과 한강 작가, 손흥민 선수, 불고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적(K) 인공지능(AI)의 정의는 아직 명확히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 떠나서 추상성을 물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큰 틀이 없다.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AI 기본법엔 '한국형 AI'의 개념과 기준이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AI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그렇다 보니 기업의 구상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를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의 감정을 가장 섬세히 고려한, 한국 문화·법규 등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한국인의 일상에 가장 최적화된… 일견 엇비슷한 듯 보여도 추구하는 결과값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다른 국가와의 차별점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를 뒷받침해야 할 기능 구성은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한 탓이다. 우리나라 정체성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대표주자를 떠올리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대중은 '한국적이어서 믿을 수 있는' 게 아닌 '성능 좋은' AI를 찾게 되고, 국내 기업의 AI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자체 모델과 외부 모델을 동시 활용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류가 된 양상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합종연횡을 통한 비용 절감·기능 고도화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빅테크의 AI를 활용한 앱 서비스를 개발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란 비판도 적잖다. 이는 AI 개발 방향이 성과와 편의에 치우쳐진 결과다. AI에 대한 철학을 정립하면서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일단 하고 보자'는 생각에 준비 없이 진행되다 보니 갈피를 못 잡게 된 것이다.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단 빅테크의 움직임에 편승한 모양새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밀려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K-콘텐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창적인 매력에 진정성을 더했기 때문이다. 세계에 'K-AI'를 새기기 위해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보다도 '한국만의 AI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궁리해야 한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BYD부터 딥시크까지… ‘반중 감정’ 아닌 ‘기술’이 필요

자동차부터 AI까지 중국 기업들의 파죽지세가 연일 들려오는 가운데 우리 기업, 정부는 뚜렷한 대비책보단 '반중감정'을 활용한 민심잡기 수준의 대응책만 내놓고 있다. 우리 국민 뼛속 깊이 박힌 중국 제품에 대한 불신을 통해 내수 시장을 아직까진 지키고 있지만, 이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막아도 싸고 좋은 제품은 시장에서 승리하기 마련이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산업 전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자동차, AI 쪽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전기차 브랜드 BYD와 최근 AI 시장을 뜨겁게 달군 딥시크다. 전기차 브랜드 BYD는 지난해에도 친환경차 판매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테슬라, 현대차 등 유려한 기업들을 제치고 달성한 성과다. 이들의 경쟁력은 단연 가격이다. 100만명이 넘는 직원, 정부의 든든한 지원, 완벽하게 지은 자동화 공장까지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 BYD는 지난 1월 한국 진출을 공식화했고 2000만원대 전기차 아토3 출시를 확정했다. 딥시크는 중국의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소비자들이 흔히 알고 있는 오픈AI의 '챗gpt'와 유사한 기술이다. 딥시크가 주목받은 것은 약 80억원이라는 파격적인 개발비용 때문이다. 오픈AI 등 기존 업계에선 수천억원을 투자해 만들던 것을 이들은 10분의 1 수준의 금액을 투자해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최첨단 기술 공세를 퍼붓고 있는데 한국 업계는 '중국은 위험해'란 감정으로 방어에만 급급하다. BYD 전기차에 대해 소비자 및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산을 어떻게 믿냐, 목숨걸고 타다 죽을 일 있냐 등 추상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BYD의 배터리 기술이 한국 기업보다 뛰어나고, 이미 이들이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는 사실은 흐린 눈으로 보고 있다. 딥시크는 정부가 나서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며 서비스를 제한했다. 우리 기술이 더 뛰어나고 우리가 먼저 개발했다면 국가적으로 나서서 이런 제한을 걸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중국을 넘기 위해선 한국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BYD 전기차는 못미더워", “딥시크 쓰면 개인정보 다 털려" 같은 회피적인 태세를 취할 때가 아니라, “BYD, 딥시크보다 더 경쟁력 있는 기술을 만들어야 해"라는 혁신적인 자세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기업의 적극적인 R&D, 소비자들의 깨어있는 인식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유가족 요구가 전문성 삼킨 제주항공 2216편 사고 조사

어제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사망자 179명에 대한 49재가 열렸다. 유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강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해당 사고 조사를 이끌어야 할 장만희 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이 “건설교통부·부산지방항공청장 출신이어서 셀프 조사의 우려가 있어 이해 관계가 의심된다"는 유족 측 주장을 국토교통부가 적극 받아들여 제척됐다는 점이다. 항공기계공학을 전공한 장 전 위원장은 대한항공 정비본부에서 경력을 시작해 건교부에서는 항공기 안정성·항공사 안전 감독·사고 조사 등을 담당한 바 있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행 위원 활동 이력이 있다. 그런 만큼 일평생 항공 사고와 예방 분야에 몸 바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에서도 “국내 최고 전문가를 배척하면 조사를 어떻게 하느냐"며 말이 많았다. 항공 사고 조사는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고도의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어서 △기계적 결함 △조종사 과실 △정비 문제 △기상 요인 등 다양한 변수를 종합 고려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관련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데, 논리나 합리성이 아니라 유가족의 일방적 요구가 전문가를 밀어낸 꼴이다. 국토부는 항공 산업 진흥·규제·사고 조사까지 전권을 가진 기관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는 분명 개선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토부가 모든 인력 풀을 가진 상황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단순한 출신 배경 하나로 배척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심지어 유가족은 국토부를 못 믿겠다며 사고 조사에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를 넣어달라고까지 했지만 당국이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며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항공 선진국들은 사고 조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기하고자 전문가를 투입해 철저히 검증한다. 그 덕에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세계 최고의 항공 사고 조사 기관이라는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누가 조사하느냐를 두고 예송 논쟁이 벌어지고, 정작 중요한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된다. 항공 사고 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 원인 분석이 아니라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정 집단이나 정서가 개입해 조사 과정을 좌우한다면 결과의 공정성은 물론 재발 방지 대책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반 지성주의적 사회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사고 조사에서 중요한 건 당국을 믿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언제 일어날지 모를 다음 번 사고에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소통 없는 금융위의 상폐 간소화 정책

지난달 2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은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상장폐지 기준이 되는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을 높이고 상장폐지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코스피의 경우 상장폐지를 앞두고 주어지는 개선기간이 최대 4년에서 2년으로 줄어든다. 코스닥은 3심제에서 2심제로, 개선기간도 2년에서 1년6개월로 단축된다. 주식시장 내 저성과 기업의 적시 퇴출을 위해 상장폐지 요건은 강화하고, 절차는 효율화한다는 것이 취지다. 하지만 주주연대는 금융위의 정책에 반대했다. 졸속정책이라는 것이 골자다. 조기 상장폐지가 만능은 아니다. 기존 대주주들은 소액주주들에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은밀히 자산을 유출시킬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는 재산적인 피해를 받을 수 있다. 금융자산의 손상 사유 중 하나가 활성 시장의 소멸이다. 이를 본 국내 소액주주들은 불안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 지난해 증권사 실적을 서학개미가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투자 이민'은 나날이 늘고 있다. 본질적으로 한국 종목들의 매력이 없는 상황이기에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다. 그래도 충분히 한국거래소의 매력을 높일 방법도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로는 주주들과의 '소통'을 통한 합리적인 시장 운영이다. 주주친화적인 시장 제도는 투자 이민을 막고, 국내에 자금을 유입시켜 국내 자금 순환에 일조할 수 있다. 그런데 주주연대연합은 공론의 장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화그룹주주연대, 주주연대범연합 등은 2023년 거래정지를 당한 이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시장의 문제를 환기시켰고, 합리적인 제안도 많이 했다. 그리고 이화그룹 주주들은 30만명에 이를 정도로 대표성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창구에 초대 받지 못했다는 것이 유감이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감사보고서 작성 기준 내 불확정적 요소 배제 △거래정지 종목 단계적 주식 매매 허용 △상장폐지 사유 공개의무화 등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증시가 점점 악화된다면 그 피해는 모두에게 미친다. 자금은 순환되지 않기에 산업은 생기를 잃게 된다. 적시에 자금 공급이 어려워, 국가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사실을 정책 관계자들이 모두 주지하기를 바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기자의 눈] 또 나온 이자장사 의존 논란, 은행 탓일까

4대금융(KB국민·신한·하나·우리) 뿐 아니라 BNK·JB 등 지방금융그룹이 '역대급' 실적을 내면서 또다시 '이자장사'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의 고충을 외면한다는 이유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금리 인하폭을 가산금리에 '충분히' 반영하라고 발언하는 등 금융당국도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다수 은행들의 이자이익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이같은 지적은 타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은행들도 할 말이 있다. 기준금리 인하로 순이자마진(NIM)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금융지주들이 자사주 매입·소각을 비롯한 주주환원 강화 등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계획을 밝혔음에도 주가가 악영향을 받은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은행들의 이자이익 확대가 가계와 기업향 대출이 불어난 것에 기인한다는 점도 돌아봐야 한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등을 이유로 사실상 대출금리 인하를 막은 탓에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출금리를 올리면 2금융권을 넘어 카드론을 비롯한 '급전'에 손을 대는 금융소비자들이 불어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은행 입장에서도 연체율 상승세 지속에 따른 고민을 안게 된다. 실제로 최근 신용카드 연체율은 '카드 대란' 이후 최고 수준이다. 증권가에서 금리 인하시 연체율이 낮아져 은행들의 건전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 지경이다. 비이자이익 감소도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각에서는 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 급등이 이뤄졌다고 토로하지만, 환율은 11월 중순부터 이미 1400원대로 진입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 미국의 선방,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따른 통상 갈등 격화 등이 반영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비기축통화국인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 보다 1.5%포인트(p) 가량 낮았으니 외환(FX) 손실은 피할 수 없었다. 다수의 금통위원들이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 부양에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펴면서도 금리 인하 필요성에 공감하는 상황이면 향후에도 고환율 관련 리스크가 지속될 공산이 크다. 은행의 '주력사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결국 비은행 계열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사격이 필요하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에 밀려 기대치를 밑도는 개혁이 이뤄진 것은 아쉽지만, 최근 금융지주가 보유 가능한 비금융회사 주식이 5% 이하에서 15%까지 높아지는 등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길 바란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눈]인재를 사는 중국, 시간을 사는 한국

최근 샤오미가 딥시크를 개발한 핵심 인력에게 연봉 20억원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앞다퉈 보도됐다. 실리콘밸리조차 놀랄 파격적인 제안이다. 인재 영입에 집중하는 중국의 투자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소식이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되풀이됐다. '반도체 위기'를 외치는 재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정치권에 읍소하고 있다. 혁신은 사라지고 구태만 남았다. 극명히 엇갈린 두 풍경은 '미래 경쟁'과 '과거 답습'이라는 해법의 현격한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20억 연봉은 '사람'이 곧 미래라는 선언이다.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최고의 두뇌를 확보하고 기술 혁신을 가속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를 거쳐 이제 반도체까지. 그들의 무대가 넓어질수록 한국 기업의 활동 반경은 좁아진다. 반면 주 52시간 이슈는 '시간'에 매몰된 과거형 해법의 답습이다. 문제 해법을 노동 시간 연장에서만 찾는 낡은 사고방식은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중국의 고액 연봉 전략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인재 쏠림, 기술 탈취 등 잠재적 문제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기업들이 미래 경쟁력의 핵심을 '인재'에서 찾고 과감한 투자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가 애써 무시한 중국 기업이 이제 한국 기업들에 뼈아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주 52시간 완화가 단기적 효과를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은 창의성과 효율이 떨어지고, 인재는 빠져나가며, 혁신은 멈춘다.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은 없다. 20억 연봉을 과감히 제시하며 미래 인재 확보에 나서는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행보와, 주 52시간제 완화라는 낡은 해법에 매달려 정치권에 읍소하는 한국 기업의 소극적인 모습은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다. 진정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고 싶다면 낡은 '시간' 중심의 경쟁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지금은 '인재'와 '혁신'이라는 미래 경쟁력의 핵심 가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미래 지향적인 체질 개선에 당장 나서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 눈] 커피 한 잔 받자고…체감은 미미한데 출혈은 막대한 ‘상생금융’

손해보험사들이 올해 자동차 보험료를 0.8~1.0% 인하한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치솟아 적자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의 결정이다. 지난달 22일 메리츠화재가 선두로 개인용 차 보험료 1%를 낮출 것이란 소식을 전한 뒤 삼성화재, DB손보 등이 줄줄이 인하를 결정했다. 오는 3월 중순~4월 책임 개시되는 계약부터 인하된 보험료가 적용될 예정이다. 자동차보험으로 인해 득보다 실이 많은 상황에서도 이같은 결정을 내린 건 정부가 강조하는 '상생기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의 부담이 줄면 많은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가입자가 2400만명에 달하는 만큼 국민보험으로도 여겨져서다. 치솟는 물가로 서민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어느정도 소방수 역할도 할 것이란 예상도 더했다. 당국의 의도는 좋지만 상생기조에 편승하기 인해 업계가 실제 감당해야 할 부담은 꽤나 크다. 특히 지난 2022년 이후 올해까지의 인하로 4년 연속 보험료를 할인하면서 부담감은 몇 배로 더 크게 느껴질 수있다. 앞선 보험료 인하 누적분까지 약 8%가량으로, 21조원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보험료는 실제로 크게 줄 전망이다. 출혈폭은 대폭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7개 손보사(삼성·현대·DB·KB·메리츠·한화·롯데)의 지난해 1~11월까지 손해율은 평균 82.9%로 집계돼 이미 적자 구간에 들어섰다. 가뜩이나 지난해는 폭설과 폭우 등 차 사고 상승 요인이 많은 해였기에 손해율과 적자 규모는 이보다 더 클 수 있다. KB손보의 지난해 연간 자동차손익은 87억원으로 전년(488억원) 대비 82.2% 크게 줄었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9월까지 957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54% 급감했다. 3분기 기준으로는 1년 만에 77% 급락한 132억원의 손익을 거뒀다. 문제는 업계가 보험료를 더 내릴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인하율이 1%에 그치면서 실질 인하액이 차 한대당 3500~7000원 미만 수준을 나타내게 된 점이다. 최근 오른 물가를 감안하면 연간 커피 한 잔 가격을 할인 받는 셈이다. 결국 손실은 손실대로 보고 정작 당국이 기대한 실효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일거양득'을 노렸지만 '일소무득' 형국이 나타날 수 있단 우려다. 이제는 고루하기까지한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업계도 살고 소비자도 살림살이에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석이조, 금상첨화의 방안을 고민해야할 때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 눈] 한강 덮개공원, 문제는 소통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한강변 '덮개공원' 사업이 한강유역환경청(한강청)과의 협의 부족으로 난관에 부딪혀 해당 지역 재개발 조합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도대체 시와 환경청은 인근 지역 재개발 사업의 규모와 비용, 파급 효과 등을 감안했을 때 여태까지 사전 협의와 조율도 없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한강 덮개공원 사업은 한강 바로 옆 재개발 아파트단지와 한강 사이의 올림픽대로 구간에 덮개 구조물을 설치해 시민들이 편하게 오가게 해 한강 접근성을 높이고 사업성·공공성도 보장하자는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반포1단지와 서래섬 사이가 첫 번째 시도다. 오세훈 시장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시는 재개발 조합의 기부채납을 활용해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와 한강청의 사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재개발 일정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시는 한강청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2016년 설계도면 작성 계획에서 한강청이 사실상 동의했지만 최근 갑자기 입장을 번복하는 바람에 제대로 협의가 안 됐다는 것이다. 반면 한강청은 당시 동의한 적이 없고 세부계획을 수립해 오면 검토하겠다며 반박하고 있다. 실제 한 한강청 관계자는 “시가 초기 단계에서 조언을 구한 것 외에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간 서울시가 덮개공원과 관련해 의견을 조율해 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강청이 사업을 허가하지 않은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천법상 제방 위에 영구 구조물 설치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반포 일대는 지대가 낮아 홍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두 기관의 소통 부재로 피해는 애꿎은 시민들이 보고 있다. 덮개공원 사업 지연에 따른 피해가 천문학적이다. 반포 정비계획을 변경해 건축심의와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다시 받아야 경우, 110억원의 설계비가 손실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사업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 부담도 1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오는 2027년 하반기로 예정된 입주 일정도 최소 1년 이상 연기될 수 있다. 조합원들만 속을 끓이는 상황이 됐다. 만일 시가 원론적 부분을 넘어 법적·기술적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한강청에 충분히 전달해 협의했다면 이번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신속한 협의를 위해 시가 한강청에 하루빨리 구체적인 법적·기술적 해결책을 전달하기를 기대한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 눈] 물 넘어 공기까지 침투한 녹조 독소…안이한 대응 언제까지

낙동강 인근 주민 97명 중 46명의 콧속에서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녹조 문제가 단순한 수질 문제가 아니라, 공기를 통해 호흡기로도 유입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환경부는 즉각 반박했다. 기존 조사 결과를 근거로 “공기 중 조류독소는 검출되지 않았다"며 추가 조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환경부의 반응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낙동강의 녹조 문제는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 국제적으로 녹조 에어로졸이 공기 중으로 확산된다는 연구는 이미 다수 존재한다. 녹조가 번성하는 지역에서는 독소가 공기 중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공기 중 불검출'을 강조하며 문제를 축소하고 있다. 2023년 한국물환경학회에 의뢰한 연구도 녹조 발생이 적었던 해의 자료를 근거로 했다는 점에서 신뢰성을 의심받는 상황이다. 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는 환경부의 대응을 두고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공기 중 검출 여부를 떠나, 이미 주민들의 몸속에서 녹조 독소가 검출됐다는 점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가 녹조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는 사이 주민들은 점점 더 건강상의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녹조 피해는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한 환경 활동가는 “우리 마을 조사 대상자 14명 중 절반이 녹조 독소에 노출됐다"며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겠냐"고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어민들은 죽은 물고기가 그물에 대량으로 걸려 올라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환경부는 “민·관·학 공동 조사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이는 또 다른 시간 끌기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도 공동 조사를 언급했지만 결국 환경단체의 조사 방식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실질적인 조치 없이 '불검출'이라는 입장만 반복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태도가 아니다. 낙동강 녹조 문제는 더 이상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녹조 독소는 강에서 머무르지 않고, 농산물과 공기를 통해 사람들의 삶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이를 외면해선 안된다. 전문가들은 녹조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물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4대강 사업 이후 정체된 물은 점점 더 오염되고 있다. 환경부는 이제라도 녹조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한 반박이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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