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부 여헌우 기자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다자무역 체제 종식을 선언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도입된 브레턴우즈 체제와 이어진 우루과이 라운드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는 “우리는 이제 '트럼프 라운드'를 목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30여년 이어온 WTO 체제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을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기업들은 전세계를 누비며 부를 축적했다. 새로운 무역 질서의 시작은 한국 입장에서 불확실성 그 자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인데 갑자기 앞이 안보이는 격이다.
잡음은 벌써 나오고 있다. '깡패' 미국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하자 우리나라 정·재계는 눈치 보기 총력전을 펼쳐야 했다. 곧 발표될 반도체 품목관세를 두고도 그 범위와 여파를 걱정하느라 바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증시가 출렁이고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기업들은 정상적인 투자나 고용 판단조차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상황에 정치권은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칠 입법·규제를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법인세를 올리고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를 골자로 상법을 개정했다. 경제계가 극구 반대하는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내용을 담은 '더 센 상법'도 속전속결이 예상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현재 국회 권력 지형이 여대야소라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이 민감한 경제 현안들을 대화와 설득 없이 정치적 동력만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취지는 좋았으나 거대여당 폭주에 한국 경제가 뒷걸음질 친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다. 임대차3법, 탈원전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 논리'는 언제나 경제에 부작용을 일으켰다.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다. 새로운 경제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확립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경제 정책 추진에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재계 목소리를 무조건 수용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국제 정세를 면밀히 살피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앞이 안 보이면 비상등을 켜고 서행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