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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난 11일 초복(初伏)에 서울과 대구에서 ‘개고기 식용’을 둘러싼 해묵은 찬반집회가 열렸다.서울 종로 보신각에선 ‘식용 종식(반대)’을 요구하는 동물보호단체와 ‘식용 권리’를 주장하는 대한육견협회가 같은 장소에서 마치 견원지간(犬猿之間·개와 원숭이간 적대 관계)처럼 서로 헐뜯기 바빴다.대구에서는 동물보호단체가 전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개시장’을 빨리 폐쇄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대구 칠성시장 내 식용 개고기 도살시설과 철창살 개우리 등이 개고기 불법유통 및 혐오시설인 점을 강조하며 조기폐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개고기 식용 찬반 움직임은 해마다 되풀이 되고 있지만 양측의 주장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럼에도 반려동물(반려견)을 키우는 집들이 늘어나면서 식용 반대의 여론이 더 많아지고, 개 식용 인구도 줄어들고 있다.실제로 국내 민관 기관과 단체들이 참여한 ‘개 식용 문제 논의 위원회’의 설문조사에서 ‘개고기 먹지 않는다’는 비율이 85%, ‘앞으로 개고기를 먹을 의향 없다’도 80%를 넘었다.사실 개고기 식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베트남 정도로 알려졌다. 중국과 베트남도 경제 성장과 함께 반려동물 인구 증가, 동물보호 인식 확대로 우리처럼 식용을 둘러싼 찬반 논란과 국가 차원의 식용 금지를 추진하고 있는 추세다.우리나라의 경우, 개고기 식용은 가장 가까운 조선시대에 성행할 정도로 하나의 식문화로 받아들여졌고, 근대화를 거치면서도 1980년대 중반까지 복날 음식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었다.그럼에도 개고기 식문화를 모든 국민이 선호하지 않았고,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일시적인 제한조치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반면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 식용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난 2005년 정부는 ‘식용건 위생관리 정책연구’를, 2008년엔 서울시도 조례로 개 식용 합법화를 추진했고, 그 해 여름부터 보신탕업소 위생검사를 하면서 ‘제도권 내 관리’를 통한 합법화를 용인했다.이렇듯 개고기 식용을 놓고 찬반 대립은 반복돼 왔고, 그럴 때마다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양측간 소모전만 이어져 오고 있는 형국이다.무엇보다 작금의 개고기 식용 논란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관련법의 모순된 조항을 수정하고 일원화시키는 작업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축산법으로는 엄연히 개를 가축으로 규정해 놓고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으로 가축에서 배제시키는 모순적용으로 사실상 개의 도살과 개고기 가공·유통을 양산하는 꼴이 돼 버렸다. 그런 상태에서 식품위생법으로 개고기가 식품원료가 아니라고 정의해 버려 개고기 식품을 만들어 파는 업소를 위법의 망에 걸려들게 했다.개(고기) 관련 법들마다 규정이 서로 배치되니 개 사육업자나 개고기 판매유통업자의 ‘왜 개고기만 금지시키려 하느냐’는 반발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대안도 없이 공방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행위다. 차라리 격년마다 개고기 식용 인식과 유통 시장 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토대로 개고기 식용사업의 축소·전환을 유도하길 제안한다. 개고기 산업은 사양산업이다. 반려견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이 넘쳐나고 있어 ‘관습상 보양음식’이 발 붙일 곳은 좁아지고 있다. 기존의 개고기 도살 및 유통 사업자들에게는 퇴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한시적 합법 운영을 허용해 비위생적, 비윤리적 도살과 유통 문제점을 해소해 일정 수준의 수익구조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다른 보양식품 업종으로 전환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데스크 칼럼] 작전세력과 전쟁, 이번엔 승전보를 듣고 싶다

"단 한 번의 주가조작만으로도 패가망신한다는 원칙이 자본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엄정 대처하겠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금융당국과 검찰이 자본시장을 병들게 하는 ‘작전세력’에 본격적인 철퇴를 꺼내들었다.이복현 금감원장은 ‘증권범죄와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며 ‘페가망신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연일 호소 중이다. 검찰도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을 주축으로 거침없는 행보에 나섰다. 합수단 ‘부활’ 1년만에 자본시장 교란 사범 373명을 재판에 넘겼고, 이 중 48명을 구속한데 이어 범죄수익 1조6387억원을 추징 보전한 상태다.국회도 화답에 나섰다. 사안의 심각성을 받아들여 지난달 30일 주가조작 등에 과징금을 최대 2배로 물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 본회의 통과를 결의했다.금융당국이 제안하고, 검찰이 추상 같은 법집행을 추진하고, 정치권까지 동참한다니 일이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듯하다.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소위 ‘선수’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과연 이번에는"이라며 갸우뚱한 반응이다. 증권범죄 일당인 세력을 뿌리 뽑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인 셈이다.공권력의 삼각공조 의지에도 시장에서의 이런 부정적 인식은 왜 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우선 세력이 지닌 특성 자체가 첫 번째 원인이고, 둘째는 이런 특성을 키워준 법 집행의 한계가 두 번째고, 세력과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확고한 의지에 대한 의문이 세 번째 이유이다. 세력의 주가조작 행위는 사실상 범죄를 입증하기까지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에 대한민국 증시를 뒤흔든 ‘라덕연 사건’이다. 라 회장이 구속되면서 한 이야기가 이를 방증한다. 라 회장은 "가치투자를 했을 뿐, 주가조작을 목적으로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모든 주가조작 세력은 그럴듯한 M&A, 신사업 진출, 신약개발 등은 물론이고 오래전 단골주제였던 자원개발 테마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근사한 미끼’를 던지고 주가를 끌어올린다. 이 부분에서 ‘거짓임을 알면서도 주가를 올릴 의도성이 있었는지’를 입증하기는 매우 난해한 부분이다. 통정매매나 자전거래 등 거래 기록을 가지고 얼마 만큼의 위법성을 규정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가 남는 것이다.세력의 황당해 보이기까지 한 해명이 당혹스럽지만, 이런 뻔뻔함을 조장한 것은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의 탓이 크다."잡혀도 (감옥 가서)2~3년 고생하면 빌딩하나 생긴다"라는 그들만의 ‘보험’이 있기 때문이다.세력이란 범죄공동체를 묶는 가장 강력한 결속력은 결국 돈이다. 성공하면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불법이득을 챙기고, 혹시 걸려도 돈은 남는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자에서부터 바지사장, 리딩방 운영자까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이들이 받는 처벌이라고 해야 경제사범으로 고작 2~3년의 실형이고 운이 좋으면 불기소 되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난다.실제 2016~2021년 불공정거래로 고발·통보된 사건 중 불기소율은 53.5%에 달한다. 최근 4년간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로 제재를 받은 643명의 23%는 재범 이상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5개 종목 하한가 사태’의 배후로 의심 받는 인터넷 카페 운영자 강모 씨도 과거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전력이 있다. 에디슨모터스(에디슨EV) 주가조작 의혹으로 1800억대 부당이득을 챙긴 이모씨 역시 이번 구속 이전에도 주가조작으로 실형을 받은 전과가 있다. ‘SG증권발 주가폭락’을 부른 라덕연 사건에는 현직 증권사 간부가 연루된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자본시장 선진국인 미국은 비슷한 범죄에 어마어마한 추징금과 징역형이 내려진다. 2009년 다단계 폰지 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에는 징역 150년형이 내려졌고, 8년여에 걸친 회계 부정과 주가 조작을 벌인 엔론의 창업자 케네스 레이 역시 징역 45년형을 선고받았다.이번에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는 주가조작 의혹의 배후들은 과연 얼마의 처벌을 받을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하지만 이들은 벌써 발 빠르게 대응중이다. 구속 수감된 라덕연 회장과 ‘에디슨모터스 사건’의 이모 씨는 ‘남부지검의 전관이 포진해 있다’고 알려진 같은 법무법인에 수임을 맡긴 상태다. 이번에도 이들이 다시 소리만 요란한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자본시장에서 활개를 치게될지 우려된다.회계사 출신의 이 씨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증권범죄합수단을 해체할 당시 ‘저승사자’ 손에서 한번 풀려났던 경험이 새록새록 떠오를 듯 하다.사법당국의 ‘증권범죄와의 전쟁’이 이번에는 승전보를 울리길 기원하며 현재 구속된 세력의 핵심인물이 과거 주가조작이 한창일때 자신감을 내보였던 한마디를 건넨다. "코스닥 종목의 90%는 사실상 작전입니다. 다 아시지 않습니까… 3년여만의 컴백인데 저희도 모든 것 걸고 합니다" -주가조작세력 ‘전주’ J회장이들의 입에서 남부지검이 공언한 "패가망신 당했다"는 탄식이 나오길 기대한다.

[데스크 칼럼]

정당의 핵심 집권전략은 지지층을 넓히는 것이다. 새 지지자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산토끼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산토끼를 누가 많이 잡느냐가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아쉬운 입장에서야 산토끼든 집토끼든 모두가 소중하다. 둘 다 잡기도 말처럼 쉽지 않다. 다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 현실정치에선 산토끼보다 집토끼를 잡는 게 더 중요하다. 남의 표를 끌어오기보다는 우리 표를 빼앗기지 않는 게 우선이다.이 원칙은 우리 정치 지형과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 전체 유권자의 기본적인 이념성향은 대략 보수와 진보가 각각 45%대 45%이고 나머지 10%는 중도다. 정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양당 중심 체제라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성향도 그 비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역대 선거 결과가 그랬다. 선거 때 후보 경쟁관계, 이슈 등에 따라 이 비율이 조금씩 조정돼 어디 한 쪽으로 기울면서 승부가 결정 났다. 이념 성향은 좀처럼 상대 진영으로 바뀌지 않는다. 특정 진영 지지자가 해당 진영에 실망했다고 해서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냥 중도로 대기하고 있다가 그 실망 요인이 사라지면 다시 원래 진영으로 돌아간다.이런 상황에서 우리 표를 지키려면 상대 당을 거세게 몰아붙여 우리 표를 다지는 게 효율적이다. 상대방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통해 우리 측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방어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나라 각 정당들은 이처럼 각 진영의 표를 결집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이른바 ‘가두리 정치’를 해왔다. 가두리 정치는 국민들을 한 쪽 진영에 묶어두고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넓은 바다나 강 등에 그물을 치고 그 그물 안에 물고기를 가두어 기르는 가두리 양식처럼 말이다.고상하게 말하면 심리학의 인지부조화이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신념·태도·행동이 서로 맞지 않으면 느끼게 되는 불편감을 줄이려고 하는 심리를 이용, 가두리 정치로 개인의 기존 신념·태도·행동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정치권은 이 가두리 정치를 위해 특정 프레임을 짜 갈라치기한다. 지역·세대·계층 등의 편을 갈라 상대방을 적으로 몰면서 자기편을 열광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개딸’(개혁의 딸), 문재인 전 대통령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박근혜 전 대통령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노무현 전 대통령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등이다. 처음엔 단순히 누구를 사랑하는 지지모임이었던 게 해를 거듭하면서 상대를 배격하는 극단적인 세력으로 자리잡아왔다. 실제 개딸이 얼마 전 같은 진영 내 다른 세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박’(겉과 속이 다른 인물) 색출에 나선 적도 있다.특정 정치인의 팬덤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이어져오던 대중스타 지지세력 ‘오빠부대’ 현상이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16대 대선 때 정치권으로도 옮겨왔다.정당 또는 정치인은 최근 들어 당초 거리를 둬온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현상)에 의존, 진영을 결집시키고 세력을 확장한다. 가두리 정치를 위해선 가짜뉴스·괴담 등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선동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자극적이고 일방적인 입장을 전달하며 수퍼챗(라이브방송 직접 후원 기능) 수익 등 실속을 챙기는 유튜버들이 활개를 치게 한다. 그 사이 국민의 사실 접근이 방해받고 과학적 사고가 마비된다. 당연히 사회혼란을 부르고 국력은 낭비될 수밖에 없다. 과거 유모차 부대를 거리로 나서게 하고 촛불집회를 요란하게 열었던 광우병 사태 등의 결과가 어땠나. 정치권은 그 혼란과 피해를 국민에게 안겨주고도 책임지는 사람 아무도 없이 가두리 정치의 또 다른 이슈로 희생양 찾기에 정신이 빠져 있다.가두리 정치 상황에선 각 진영 내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내부 견제 도 이뤄질 수 없다. 민주당은 금태섭 전 의원에 본때를 보여줬다.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 처리의 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한 게 죄목이다.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가 조리돌림 당한 뒤 내쳐졌다. 당 대표로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고도 윤 대통령을 수차 공개 저격한 이유로 미운털이 박혔다. 가두리 정치의 원조 수단은 지역감정이다. 정치의 지역감정 악용은 국민의 의식을 갈기갈기 찢어놨다. 영남·호남·충청 등의 정치색은 각 지역의 맹주 역할을 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이 사실상 결정했다. 그런 정치색은 3김이 모두 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데도 그 그림자가 아직까지 짙게 드리워져 있다.보수정권은 안보·성장, 진보정권은 환경·복지를 프레임으로 내걸어 유권자들을 각 진영에 가둬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보수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 바로 북풍(北風) 카드 등으로 하락세였던 지지율의 반전을 시도했다. 2020년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2019년 탈북 어민 북송사건 등 대응과정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대북 강경대응 노선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까지 언급하며 안보의식 고취에 나섰다.이재명 대표는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이슈화로 자신의 ‘사법리스크’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여권으로부터 ‘괴담’ 전파의 진원지로 지목받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대일관계 개선 행보를 비판하는데 화력을 모으고 있다. 장외투쟁까지 주도하면서 오염수 관련 ‘핵 폐수’, ‘방사능 테러’ 등으로 규정했다. 오염수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전문가들엔 ‘돌팔이’란 딱지를 붙였다. 각 진영은 가두리 정치에 빠져 보수는 평화논의의 판을 걷어찼고 진보는 먹거리 밥상을 뒤엎었다. 정치권이 가두리 정치에 매몰돼 안보나 먹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 대해선 마땅히 준엄한 심판이 따라야 한다. 양 진영이 총력을 쏟고 있는 가두리 정치의 효과는 갈수록 작아진다. 일방적인 대북 강경정책은 안보 불안의 역효과를 키우고 감성적인 일본 오염수 반대론은 거꾸로 먹거리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북한이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는 것이나 개방경제에서 어처구니없는 소금 사재기가 일어나는 게 그 사례다. 국민들도 가두리 정치에 이제 점차 등을 돌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양 진영이 그토록 공을 들인 안보 팔이 또는 안전 장사의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못한 것 같다.그런데도 정치권은 아직 가두리 정치에서 벗어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진영 간 갈등·대립·반목·분열만 갈수록 커져갈 뿐이다. 그냥 서로가 앞으로 나란히다. 각자 앞만 보고 제 갈 길만 간다는 뜻이다. 옆을 보고 대화와 타협을 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정치본령은 이미 실종됐다. 아니 죽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년을 넘기고도 아직 원내 절대 다수당인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만나 둘이 밥 한 번 먹은 적 없다. 그런 우리 정치에 뭘 기대하겠나.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은 사사건건 국회에서 막히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개혁에서 식물정부나 다름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어떤 이유로도 온당치 않다.결국 국민들이 똑똑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사실 확인과 과학적 사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객관적이면서 공정한 시각으로 유연한 입장을 갖는 게 필요하다. 사실 진영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다. 가두리 정치에 갇혀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그 상처와 피해는 깊고 넓었다.국민은 선거 때만 되면 주권자로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가두리 정치에서 국민은 한낱 물고기일 뿐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표를 먹고 사는 대리인, 바로 정치인이 양식하는 그 물고기 말이다. 그저 정치인 낚시나 양식의 대상인 셈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불쾌하고 참담한 일이다. 국민이 그런 물고기 신세 안 되려면 정신 바짝 차리는 수밖에 없다.

[정훈식 칼럼]무너진 주거사다리

주필 전세 수난시대다. 무자본 갭투자 이른바 ‘빌라왕’으로 불리는 전세사기 사건이 곳곳에서 터지면서다. 빌라왕의 먹잇감이 된 전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해 난리고 일반 전세입자들도 역전세난에 발을 동동거린다. 애먼 선의의 주택임대인들도 날벼락을 맞고 있다. 가뜩이나 전셋값 급락으로 차액환급이 발등의 불인 가운데 전세를 월세로 돌려달라는 세입자들의 갑작스런 요구에 전세반환금 마련을 못해 아우성이다. 이래 저래 서민들만 피곤한 세상이다. 전세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거형태다. 지난 수십 년간 월세→전세→내집 장만으로 이어지는 주거사다리의 한 축으로주택수급 안정과 서민의 주거안정에 기여해 왔다. 그런데 이 전세시장이 전세사기로 얼룩지며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아무 탈 없었던 전세시장이 하필이면 이제와서, 왜,갑자기 주택공급 시장의 천덕꾸러기가 됐을까. 여기에는 무엇보다 지난 문재인정부의 주택 정책실책 탓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물론 주택시장 침체와 나홀로 가구 증가 등 세태변화 탓도 있다. 전세 투기와 시장 붕괴는 3년 전부터 예견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집권하자 마자 "부동산 가격 문제에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규제·억제 중심의 고강도 대책을 쏟아부었다.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확대, 다주택자 양도세·종부세 징벌적 과세폭탄, LTV·DTI등 대출규제 옥죄기,재개발·재건축 규제 강화,초과이익 환수제 부활 등 약 30차례에 걸쳐 온갖 규제와 압박을 총동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8·2대책을 내놓으며 "이번 대책은 집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불편해지는 것으로,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좀 파시라"며 압박했다. 한편으로는 "우리 국민의 40%가 임대주택에 살지만,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은 10%밖에 안 된다"며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세제·금융 혜택을 드리니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시면 좋겠다"며 임대사업을 권장했다. 수요 있는 곳에 제때, 제대로 공급해야 한다는 시장원리를 거스르며 수요를 억누르는 데 만 열을 올렸으니 결과는 뻔할 뻔자였다. 수요는 느는데 공급이 달리니 결국 수급불균형으로 집값이 폭등했고 이것이 전세시장으로 옮겨 붙었다. 문재인정부의 170석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입법폭주가 기름을 끼얹었다. 2020년 서민주거안정을 명분으로 대표적인 포퓰리즘 입법으로 지목된 임대차 3법을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였다. 전세 시장에 대혼란을 초래한다는 전문가들의 반대 목소리를 무릅썼다. 임대차 기간을 ‘2+2년’으로 연장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한편 계약갱신권까지 반 시장 종합세트를 들였다. 가뜩이나 2020년에는 전세공급의 한 축을 담당했던 민간 임대사업제도 마저 사실상 폐지하며 화를 키웠다. 등록된 민간임대주택사업자는 임대료가 저렴하고 임대보증금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돼 있어 보증금 반환사고가 나지 않는 구조다. 그 틈을 전세보험조차 들지않은 전세 사기꾼이 파고들어 이지경이 됐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적중했다. 임대차 3법으로 전세매물이 잠기면서 전세가격은 미친 듯이 뛰었다. 서울아파트 전세가격(KB국민은행 조사 기준) 상승률은 2020년 6월 0.35%에서 7월 1%, 8월 1.18% 9월 2.0%로 상승폭을 키웠다. 연간 12.25%라는 기록적인 폭등장세를 기록했다. 폭등장세는 이듬해에도 이어져 2021년에도 11.86% 폭등했다.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주택 매매가격에 대한 전세가격의 비율인 전세가율이 70∼90%,더 나아가 매매가보다 전세가격이 높은 역전현상까지 빚어지자 이른바 갭 투자의 먹잇감이 됐다. 수중에 돈 몇 푼 없이도 집을 사들여 집값이 오르면 큰 차익을 볼 수 있는 여건이 되면서 대학생이고 주부고 너도나도 갭 투자에 뛰어들었고 갭 투자자들의 먹잇감은 아파트에서 연립,단독 등으로 확대되며 오늘의 지경에 이르게됐다. 여기에는 빌라왕 같은 전세사기꾼들도 활개를 쳤고 시장에서 경고음이 나왔지만 당국은 규제에만 집중했다. 포퓰리즘 입법폭주가 부른 참사다. 애초 에 신중하게 접근했더라면 호미로도 안 막아도 될 일을 결국 가래로도 막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피해와 책임은 모두 ‘정책실패 청구서’로 국민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도 무리한 정책과 입법에 대해 책임지거나 반성하거나 사과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전세가격이 최고점이었던 2021년 임대차 계약 2년 만기가 도래하는 가운데 역전세난은 심화하며 집주인들은 차액 환급에 비상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세 사기에 겁먹은 세입자들이 월세로 전환을 요구하거나 계약해지로 대거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일반 전세입자와 집주인간의 보증금을 둘러싼 갈등이 분출하고 있다. 가뜩이나 고금리로 집주인들도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이른바 역전세 대란이 시작됐다. 한국은행은 역전세 위험가구가 전국적으로 100만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전세를 월세로 돌리려는 월세전환 수치는 빠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거대 야당 민주당을 중심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한다며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사기 피해를 입은 전세입자에게 국민혈세를 투입한다는 게 골자다. 한 마디로 병 주고, 약 주고다. 근본대책이 아닌 땜방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정부와 정치권은 사기피해자 구제는 물론이고 냉철한 진단과 근본적인 처방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전세시장이 이 지경이 된 배경을 철저히 따지고 여기서에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전세시장을 망가뜨린 임대차 3법과 민간임대사업 등 임대사업 제도의 전반적인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찔끔 찔끔 대책을 발표할 게 아니라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한 시스템부터 점검해서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게 그 근본 해법이다. 그래야 무너진 주거사다리도 다시 세우고 서민의 내 집 마련 꿈도 살릴 수 있다.정훈식 정훈식 주필

[데스크 칼럼] 넘쳐나는 제주도·영호남 재생에너지 해법 찾아야

이제 봄철에 제주도는 블랙아웃(대정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때문이다. 전기 수요가 줄어드는 봄철이면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하는 전기가 남아돌기 때문이다.대정전은 공급하는 전기가 모자라도 발생하지만 남아도는 전기에 의한 과부하로 전력계통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어난다.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출력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쉽지 않다. 이에 전력수급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대정전에 직면할 수 있다. 일조량이 좋은 휴일이나 연휴에는 전력 수요는 낮아지고 태양광 발전은 증가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안정적 전력계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5년부터 제주도에 적용됐던 봄철 전력수급 대책이 올해부터는 호남과 영남 지역으로 확대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따르면 2018년 7.5GW 수준이던 태양광 설비 용량은 올해 26.4GW까지 늘었다. 특히 태양광 발전설비는 땅값이 상대적으로 싼 영남과 호남지역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에 산업부는 단기적 대책으로 공공기관의 태양광 발전시설부터 출력제한 조치를 취하고, 이어 전압과 주파수 변동에도 발전설비 가동이 가능하도록 고성능 인버터를 설치하지 않은 태양광 발전설비에 출력제한 조치를 시행한다. 또한 남아도는 전력을 양수발전에 활용하고, 출력 조절이 가능한 수력, 바이오발전 순으로 발전을 선제적으로 줄여 나갈 방침이다. 이마저도 부족하면 석탄, LNG에 이어 원자력발전까지 출력 조정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현재 제주도는 안정적인 전력계통 운용을 위해 육지에서 전체 사용량의 약 40%의 전력을 끌어다가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물론 남아도는 전기를 육지로 보낼 수 있는 송전설비가 구축되고 있어 이 설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로 제주와 완도간 약 90km를 잇는 ‘제3 해저케이블’ 공사다. 제3 해저케이블 공사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방식으로 구축된다. HVDC는 교류송전에 비해 전력손실을 줄여주고 신재생에너지와의 계통연계에 신뢰성을 높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향후 전남 신안 등 해상풍력으로 생산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하는 서해안 HVDC 해저케이블 구축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에선 LS전선이 기술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대한전선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장거리 HVDC 구축 경험은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세계 HVDC 시장은 2030년 1430억달러 규모로 성장 될 것으로 예상된다. LS전선, 대한전선 등 국내 기업들이 당당하게 세계시장 점유율 한 축을 담당해 줄 것으로 믿는다. 물론 남아도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기존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계동을 적기에 조절할 수 있는 송·변전 설비 구축도 필요하다. 또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확충 이용도를 높이고, 남는 전기를 수소 생산 등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문제는 대규모 투자사업에 들어갈 재원 확보다. 한국전력이 연간 30조원의 막대한 영업손실을 보는 현 상황에선 모든 게 그림의 떡이다. 민간 사업자에게 다양한 전력계통 사업부문 참여를 유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한전이 스마트 그리드사업에 과감하게 투자 할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렇기에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대폭 확충 등에 함몰돼 비현실적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에 맞는 전기요금책정방안 등도 마련해 일관되게 시행해야 한다. 산업부도 호남과 수도권을 잇는 서해안 송전설비의 확충, 조속한 동해안 송전설비 구축 등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위한 꼼꼼한 장기대책을 세우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를 믿고 따라온 태양광·풍력 발전사업자들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데스크 칼럼] 국민 현혹하는 정치

소매점에 가보면 미끼상품이란 게 있다.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전략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통상 원가 또는 일반 판매가격보다 훨씬 싸게 판다. 일단 미끼상품으로 고객들을 불러들인 다음 이들 고객이 값 비싼 다른 상품도 많이 사게 한다. 수익을 올리는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다. 미끼상품에 끌려 해당 소매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고객 중엔 소매점에서 미끼상품만 골라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 소매점의 상술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현명하다는 평을 들을 만 하다. 소매점 입장에서 보면 얌체 고객이지만. 하지만 미끼상품만 사는 고객은 드물다. 대체로 미끼상품에 더해 비싼 품목들까지 장 바구니에 많이 담는다. 고객으로선 알뜰 소비를 하려 한 것이겠지만 결국 과소비로 이어지고 만다. 그래서 소매점의 미끼상품 판매 전략은 종종 사람들의 빈축을 산다.미끼상품은 정치권이라고 없는 게 아니다. 검찰이 들여다보는 더불어민주당의 과거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도 정치권에 미끼상품이 발붙이지 못했다면 가능했겠는가. 상품이나 정치나 소비자 또는 국민을 상대로 판다는 측면에선 똑같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사는 상품이다. 정치인이 자신을 뽑아 준 유권자, 국민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하다. 민심에 귀 기울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민을 의식해 좋은 정치를 하도록 하는 게 민주정치 원리다. 그 원리가 지지를 받는 것은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 개인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선심 정치를 반드시 나쁘게만 볼 수 없다. 국민의 복지 혜택을 넓히는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정치 미끼상품의 문제는 과도한 선심성에 있다. 개인 또는 정당 지지를 얻기 위해 내건 선심 정책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현실화하지 않으면 사기(詐欺)다. 그런데도 이건 그나마 차라리 낫다. 국민 스스로 "속았다" 생각하고 위로하면 된다. 국민에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오는 경우는 선심 정책의 강행이다. 그 부담이 국민에 고스란히 전가돼서다.요즘 정치권의 선심 경쟁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4.10 총선을 겨냥해 호객행위에 나섰다. 민심과 표의 향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권이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지율 20~30%를 오르내리며 국정동력을 얻지 못한 윤석열 정권, 현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전 대표까지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거대 야당이 이런 선심경쟁을 더욱 부채질한다. 정치권은 최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서두르고 해야 할 일은 꾸물거린다. 우선 여야가 해서는 안 될 선심성 정책을 마구잡이로 쏟아낸다. 단적으로 대학생 1000원 아침밥 확대를 놓고 장군멍군하는 게 그렇다. 마치 물건 흥정하듯이 한다. 1000원 아침밥 제공 논의는 당초 학기 중 대상 확대에 그쳤다. 이제는 방학 중에도, 또 점심·저녁까지 주자고 한다. 걱정이 갈수록 태산이다. 여야가 승부처인 청년 표심 잡기의 심산이 아니었다면 이럴까 싶다.무상급식 논란의 새로운 버전이다. 대상이 586 부모세대를 겨냥한 중등학생에서 MZ 자녀세대를 타겟팅한 대학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무상급식 논란은 2011년 서울시에서 무상급식의 선별지원이냐 보편지원이냐를 놓고 줄다리기하다 주민투표까지 간 것을 말한다. 2012년 4월 19대 총선, 12월 18대 대선을 앞둔 때였다. 급기야 당시 오세훈 시장이 그 책임으로 물러났다. 그 오 시장이 10년 넘게 지나 다시 시민의 지지를 받아 컴백한 것은 아이러니다.야당이 최근 줄줄이 제안한 정책도 선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 국민 최대 1000만원 기본대출, 대학생 학자금 대출의 졸업 후 취업 때까지 이자 면제, 대중교통 반값 정기권 발행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야는 또 텃밭 표를 겨냥한 입법에 모처럼 손을 맞잡았다. 서로 으르렁대더니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협치가 극적으로 이뤄졌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의 ‘텃밭 사업’이라 불리는 ‘쌍둥이 공항법’을 속전속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안들은 대구·경북(TK) 신공항을 건설하고 광주의 군 공항을 이전하는 내용이다. TK 신공항 건설사업비는 12조 8000억원, 광주 군 공항 이전 사업비는 6조 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정치권과 정부는 꼭 해야 할 일엔 팔짱을 끼고 있거나 굼뜬 모습이다. 전기요금 인상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한 달도 안돼 관련 당정회의를 네 차례나 열었다. 그 자리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요금 인상 결정은 미루었다. 한국전력공사의 경영악화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전의 영업손실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3조원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루 이자비용만 25억이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전 적자가 전기요금을 제 때 올리지 않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탓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도 전기요금 인상을 머뭇거린다. 한전의 자구노력이 미흡하다며 핑계를 댔다. 그런 자구노력이 천문학적인 한전 적자 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설령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구노력은 나중에 챙기고 요금 인상 먼저 하면 안되나. 한전은 정부 말 잘 듣는 공기업이다. 한전 자구노력 요구는 요금 인상 뒤에 해도 늦지 않다.여야가 국가 재정 관리에 필요한 재정준칙 도입에 뜸을 들이고 국민연금 개혁에 뜨뜻미지근한 것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혜택의 적용 시기를 연장한 것이나 최장 69시간 근로시간제 개편을 놓고 미적거리는 것 역시 전형적인 표 의식 행태로 꼽힌다. 재정을 수반하는 선심 정책은 초콜릿처럼 달콤한 유혹이다. 마약처럼 중독성도 강하다. 한번 돈 풀기 시작하면 끊기가 어렵다. 그런데 재정은 화수분처럼 한정 없이 꺼내 쓸 수 있는 현금 인출기가 아니다. 재정은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마련된다. 정치인들의 생색용으로 쓰라고 낸 돈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내는 돈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것도 아닌데 표를 얻기 위해 나라 곳간의 바닥까지 박박 긁어, 아니 빚 내고 부도수표까지 발행해 무분별하게 선심 정책을 남발하면 그 책임은 결국 국민이 짊어질 몫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뚝심과 결단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의 지도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의지·추진력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두 사람이 현재 서로 마주하기조차 꺼리는 사이일지언정 적어도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한 가지만이라도 함께 결의하고 실천했으면 한다. 돈 푸는 선심 정치의 중독에서 만이라도 벗어나는 것 말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얼마 전 사회 전반에서 들끓은 저항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연금개혁을 밀어붙였다. 우리는 그런 용기 있는 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가.

[데스크 칼럼] 근로시간 개편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핵심축인 근로시간 개편이 ‘개문정차(開門停車)’한 상태다. 정부가 시동만 걸어둔 채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한다는 개편안은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노동계는 물론 젊은 MZ세대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자 윤대통령이 서둘러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때문이다. 당초 고용노동부는 이달 17일까지 근로시간 개편안을 입법예고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재검토가 떨어지자 부랴부랴 MZ세대 주축 노조와 청년 근로자, 중소기업 노사, IT업계와 연구기관 등과 현장간담회를 갖고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조만간 전국민 6000명 대상으로 근로시간 개편 관련 여론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17일 입법예고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올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 또한 희망 섞인 전망일뿐이다. 윤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입장에서 윤석열 당선의 지지표였던 2030세대의 이반은 내년 4월 국회의원선거 필승전략에 발등의 불이 떨어진 격이다. 가뜩이나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취임 첫 달인 지난해 5월에만 ‘50%’를 찍었을뿐 이후 줄곧 ‘30% 박스권’(한국갤럽 여론조사 기준)에 갇혀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내년 선거에서 야당을 찍겠다는 응답이 과반을 기록할 정도로 ‘국정 안정’보다 ‘권력 견제’ 여론이 더 높다. 이같은 ‘반(反) 여권 정서’는 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국정 동력을 저하시킨다. 근로시간 개편안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기업 경영주 입장에선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근로시간을 늘리기를 원한다. 현행 주 52시간으로는 납기를 맞추기 힘들고, 규정을 어기면(시간 초과하면) 법 위반으로 범법자가 될 처지에 몰리기 때문이 주 52시간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친기업 노선의 윤 정부와 여당은 이런 주 52시간제를 ‘기업 규제’로 규정하고 주 69시간제의 개편안을 내민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는 ‘근로의 주체’ 노동계의 주장이 빠져있다. 그동안 경제단체 위주의 설명회, 간담회에 몇몇 중소벤처기업 근로자를 참석시켜 ‘일을 더해서라도 돈을 더 받고 싶다’는 발언을 마치 근로자 대표 입장인양 치장됐다. 기업들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로봇의 진화로 ‘내 일자리가 사라질까 걱정하는’ 21세기의 산업 근로자들에게 ‘일을 더하는 것만이 생존’이라는 구시대적 근로 가치관이 통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자, 착각이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 최근 발표한 ‘MZ세대 기업(인) 인식조사’ 결과가 이같은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 2030세대들은 취업하고픈 기업으로 ‘월급과 성과보상체계가 잘 갖춰진 기업(29.6%)’보다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 보장되는 기업(36.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전경련도 "(MZ세대가) 월급과 정년보장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인식변화가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근로시간 연장이 더 우려스러운 점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저출산’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물가, 고금리로 국민들의 경제적 여유가 침식되고 있는 마당에 부족한 생계비를 근로시간으로 더 때우라고 한다면 어느 월급쟁이 부부가 자녀 갖기를 원하겠는가. 좋은 정책은 국민의 삶에 공평한 복지를 가져다 주는 것이지, 특정 집단의 편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이진우 칼럼용 유통중기부 이진우 부장(부국장)

[데스크 칼럼] 지방에서도 지방, 시민들의 청약 열기는 뜨거웠다

사흘 동안 1만2000여명 방문. 총인구가 10만 정도인 전라북도 정읍에서 열린 최초 1군브랜드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수요자들의 뜨거운 열망이 분출됐다. 정읍 시민 적어도 10명당 1명 이상이 모 대형건설사 분양 견본주택에 방문한 수치여서 업계뿐 아니라 지역 여론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정읍의 면적은 전북 시·군중 4위로 평야가 펼쳐져 경지율이 높지만, 경제·사회·인구적으로 보면 지방에서도 벽지로 분류된다. 이렇다 할 유력 대기업 계열사도 없고 농업 비중이 높은 소도시로 생활인프라도 부족하고 인구 유출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전인 1960년대 농업이 주력산업이었던 시절 인구가 27만명을 넘을 만큼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지척에 있는 전주(64만), 익산(27만), 군산(26만) 등 중소도시들과 비교해도 인구는 반의 반토막,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이다. 특히 전북 인구 상위 1~4위까지인 전주, 익산, 군산, 정읍 인구를 총망라해도 고작 수도권에 위치한 수원특례시(120만) 수준이다. 경기도 화성시(91만), 성남시(92만), 고양시(107만) 인구를 감안할 때 정읍이 얼마나 작은 도시인지 실감이 된다. 참고로 전북 인구는 176만 정도로 이는 서울(942만), 경기도(1360만), 인천(297만) 등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라남도(181만), 경상북도(259만), 경상남도(327만), 부산(331만), 대구(236만) 등과 비교해도 열위에 있다. 이렇게 인구 규모면에서 타지역에 비해 떨어지고 있는 전북에서도 소외받고 있는 정읍에서 이런 대형건설사 분양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건설업계는 단순히 정읍 시민들의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으며, 지방에서도 청약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하지만 첫 1군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바로 정읍시민들 뿐 아니라 전북도민들의 지역 발전에 대한 숙원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1군 브랜드, 그것도 그간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 집중됐던 세련된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대도시 못지않게 높다는 반증이다. 수도권, 지방 대도시에서만 공급됐던 1군 건설사 아파트, 소고기로치면 한우 1등급 품질이다. 왜 지방 사람이라고 소고기 맛을 모르겠는가? 1등급 소고기가 수도권, 지방 주요 도시에만 공급되다보니 정읍 시민들, 인근 주민들도 시위하듯 수천명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 이 아파트는 청약 결과 975건이 몰리며 정읍 역대 최다 청약 통장 접수 건수를 기록한 바 있다.물론, 1군 브랜드가 최근 전북에서도 잇따르긴 했다. 군산에서는 최근 개발한 택지에 ‘군산디오션시티’ 등 총 6200여가구 대규모 브랜드타운이 형성되며 신흥 부촌으로 떠올랐다. 이는 새만금 개발 본격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 전북대병원 건립 추진이 인구유입 전망 등 호재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심화된 부동산 경기 침체, 급격한 금리인상 여파로 지난 1월 말 기준 전북의 미분양 주택 물량은 4086가구로 지난해 12월 대비 1566가구 대비 62.1% 급증했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고장이 돼야 할 것이다. 지역 경제 위기감에 전북은 특별자치도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전북보다 인구가 적은 지자체로 충북과 강원, 제주가 있었다. 항상 충북이나 강원보다 낫다는 얘기를 해왔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전북의 1인당 국민소득은 충북, 강원보다도 낫다"고 지적했다. 또 변화와 혁신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도민들에게 주문했다. 김 도지사의 과감한 지역 발전 정책 추진으로 낙후된 전북에 젊은이들이 자꾸 모여서 1군 브랜드 아파트가 많이 지어지고 대도시못지않은 청약 열기도 이어지길 고대해본다.

[데스크 칼럼] 기업가치 좀먹는 정치셈법

이번엔 KT다. NH, 신한, 우리금융지주 등 굴지의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인선이 3월 정기주주총회를 끝으로 완전히 봉합됐지만, KT 대표이사 선임을 둘러싼 잡음은 현재진행형이다.KT의 상황을 보면 차라리 국내 금융사 인선은 빠르게, 조속하게 마무리됐다고 느껴질 정도다. 금융사 스스로도 관치금융, 주인 없는 회사라는 이름표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CEO에 낙하산이 오더라도, 낙하산이 올 조짐이 보이더라도, 당국이 금융사의 CEO 인선에 과도하게 개입한다고 느껴질지라도 금융사 직원들과 주주들은 으레 또 올게 왔구나 싶다. 금융사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도 길어야 한 달을 넘지 않는다.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노조의 몽니이자 고집, 아집으로 비춰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개월 가까이 이어진 이른바 KT 사태는 어떠한 각도로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작년 말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CIO)가 구현모 당시 KT 대표를 차기 대표 후보로 결정한 것을 두고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었다. 이어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도 논란 끝에 후보직을 사퇴했으며, 사외이사 2명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 대표이사 후보가 사의를 표명한 것은 사외이사진 스스로 KT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가 강충구, 여은정, 표현명 사외이사의 재선임 안건에 대해 "지배구조와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중대한 실패를 했다"며 반대를 권고한 것이 이러한 의구심을 뒷받침한다. 구현모 대표가 법인 돈으로 상품권을 사들인 뒤 되파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약식 기소됐는데, 사외이사진들이 이에 대해 특별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 ‘지배구조 및 관리감독 실패’의 방증이라는 게 ISS의 진단이다. 이들 이사진 재선임 안건에 대해서는 2대 주주(7.79%)인 현대차그룹도 반대했다. 결국 이들 사외이사 후보 3인은 31일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동반 사퇴했다. 현재 KT 이사회는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출신인 김용헌 사외이사만 남게 됐다. KT의 지배구조가 불안정하고, 사외이사진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일각의 지적도 일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KT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정부, 여당의 의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달 초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를 "구현모 아바타"라고 평가 절하한 사례만 봐도 그러하다. 이들은 검찰과 경찰을 향해 "구 대표, 일당들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개 기업의 CEO인선에 정치권까지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KT의 이사회가 사실상 해체된 것은 "관치경제를 넘어 권치경제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갈한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발언에 수긍이 가는 이유다.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은 주주의 피해, 고객들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당장 KT 주가는 올해 들어 12% 넘게 급락했다. 경쟁사인 SK텔레콤 주가가 2%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11% 올랐다. KT의 주주 행세를 하고 싶은 정부와 정치인들이 스스로 자중해야 하는 이유다.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리포트에서 "CEO 선임 후에도 향후 3년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최소 한 개 분기가 소요되고, 11월부터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2024년 경영목표 수립을 시작하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올해는 최고 의사결정권자 부재 속에 KT가 시스템으로만 움직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KT 주주 입장에서는 정부, 정치권, KT이사회 모두 곱게 보일 리 없다.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는 이젠 일상화된 정부, 정치권의 개입이라는 ‘구태’를 차곡차곡 끊는데 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mediasong@ekn.kr

[데스크 칼럼] 민주당의 ‘이재명 덫’ 탈출법

창당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개인 덫에 갇혀 있다. 지금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때 기세등등했던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다. 몽골 기병처럼 기민하고 유연한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룡 정당으로서 무기력하고 굼뜬 이미지 만 보일 뿐이다.문재인 정권 시절 민주당의 100년 집권론까지 제기됐다. 그것도 이해찬 당시 대표 입에서 나왔다. 당연히 논란의 대상이 됐다. 오만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 2월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차 때의 상황이었다. 민주당의 100년 집권이 가시화하는 듯 했다. 2020년 총선에서 실제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냈다.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을 함께 거머쥐었다. 민주당으로선 100년 집권이 단순한 꿈이나 환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요즘 민주당에선 그런 호기나 자신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 또는 불안감에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민주당의 최근 상황은 지난 금요일인 17일 이 대표의 대비된 행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대표는 그날 오전 9시 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윤석열 정부의 저자세 외교를 강력 비판했다. 그 자리에서 ‘하수인’ ‘조공’ ‘숭일’ 등 거친 표현까지 썼다. 이 대표는 그로부터 1시간여 뒤인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섰다.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의혹 사건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것이다. 이 대표의 이런 모습은 그날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국민들은 앞으로도 그런 장면들을 자주 볼 것이고 그 때마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제 앞가림이나 잘 하지, 뭐 잘 났다고 남의 탓을 하나"이지 않을까. 이 대표 개인의 ‘사법 리스크’가 민주당에 터 잡고 있는 한 이 대표는 물론 민주당의 어떤 정치행위나 정책도 제대로 먹힐 수 없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마지막 믿는 구석은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의회 권력이다. 이마저도 내년 4.10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앞으로 1년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권력일 뿐이다.이 대표는 지난 3.9 제20대 대통령선거를 100일 앞둔 2021년 11월 20일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문재인당’인 민주당의 대선후보로서 높은 정권교체론에 맞선 이 대표의 승부수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 대표는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권력을 내줬다. 그런데도 그 선언으로부터 9개월여 뒤 ‘이재명의 민주당’은 현실화했다. 대선 패배 불과 84일 만인 6.1 재·보궐선거에 나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더니 그로부터 88일 만인 지난해 8월 28일엔 무려 80% 가까운 득표로 당 대표에 선출됐다. 여기에 걸린 기간은 겨우 6개월도 안됐다. 당 대표가 된 데 그친 게 아니다. 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의 구성원인 최고위원 9명 중 7명이 이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이 대표가 민주당을 접수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선 이재명 간판만 내걸고 졌으니 그나마 이 대표만 책임지면 됐다. 이젠 명실공히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거듭나 자칫 잘못하다간 동반 침몰할 수도 있다.‘이재명의 민주당’은 현재 민주당의 짐이다. 이 대표를 둘러싼 개인 비리 혐의가 한 둘이 아니다. 한 가지라도 입증되면 중형을 면치 못할 혐의들이다. 이 대표 관련 각종 혐의는 아직 유죄로 확정된 게 없다. 그러나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이미 기소됐거나 앞으로 속속 기소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엔 이 대표 체포동의안까지 국회에 날아들었다. 그 체포안이 가까스로 부결돼 이 대표는 위기를 넘겼다. 이 대표 체포안이 추가로 제출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그 때도 부결될 것으로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당내 일각의 분석이다. 최근엔 당내에서 이 대표 거취 결정 또는 인적 쇄신 요구도 터져나왔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발언으로 지옥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친형을 강제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고 한 게 이유였다. 당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죄 혐의로 기소됐다. 나중에 대법원 판결로 살아 돌아왔다. 그 판결조차도 재판거래 결과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이제는 그 때와 전혀 다르다. 민주당의 집권시기가 아니다. 혐의의 가짓수나 내용을 보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이 대표 주변 인물이 죽음으로 내몰린 게 벌써 다섯 명이다. 더 이상 정치보복 타령이나 정치탄압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며 위기에서 벗어날 형편이 못 된다. 자꾸 방벽을 높이 쌓으면 공세도 그만큼 강해지는 법이다. 이 대표의 혐의는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이 대표는 변호사 출신이 아닌가. 모른다면 측근들에 솔직히 물어봐도 된다. 민주당에도 검사·판사 출신 의원들이 많지 않는가. 민주당과 이 대표의 현 위기는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도 그를 당의 대통령 후보와 대표로 연거푸 선출했다. 이 대표도 그간 관행으로 자리잡아온 ‘대선 패배 후 정치 공식’을 깨고 곧바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격이다.이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로 당과 지지자들에 적지 않은 충격과 상처를 줬다. 그 책임을 외면해 또다시 당과 지지자들에 부담이 되고 있다.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로 꼽히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중 각각 자식과 형을 감방에 넣는 아픔을 겪었다. 이 대표에 빗발치는 의혹은 가족을 겨냥한 게 아니다. 이 대표 본인, 그것도 개인비리 관련 의혹이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자신의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전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이튿날 아침 "이게 검찰 수사 때문이지, 저 때문이냐"고 반문했다. 그런 이 대표는 당일 점심 때쯤 전모 씨의 유서가 발견되자 곧바로 전모 씨 빈소를 찾아 무려 7시간을 대기하다가 겨우 조문했다. 그 유서엔 이 대표를 향해 "더 이상 희생은 없어야 한다", "이제 정치 내려 놓으시라"고 한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이 대표는 그 뒤 달라지고 있다. 지난 14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어쨌든 제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당한 일이어서 저로서야 어떤 방식이든 간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한 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지난 16일 당 의원총회에선 "내년 총선에서 당이 패하면 당도 어려워지고 내 정치도 끝난다"면서 "총선 승리를 위해선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를 후원해온 당의 핵심 원로가 당초 입장을 바꿔 선당후사(先黨後私)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질서 있는 퇴진’ 또는 ‘인적쇄신 결단’ 요구도 있었다. 이 대표로선 억울하겠지만 뭔가 결단해야 하는 시점을 맞았다. 이 대표가 결단한다면 그 결단이 무엇이든 미봉에 그쳐선 안된다. 꼼수를 두려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구동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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