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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기업의 인공지능 활용법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화 아이언맨의 ‘자비스’와 같은 개인용 인공지능 비서가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감탄했다. 또 빌게이츠는 향후 PDA(Personal Digital Agent)와 같은 맞춤화된 개인용 디지털 에이전트가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은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미래의 사회 구조를 형성할 것이며 우리는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인공지능은 ‘자비스’의 서비스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주요 기업들은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며 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 모델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도입할 때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인공지능 도입의 목적과 가치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거나 어떤 비즈니스 단계에서 인공지능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없는 경우다. 기업은 인공지능을 도입하기 전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하며 분석된 결과를 사람이 해석해 의사결정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과 사람들이 함께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팀으로 일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며 협력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인공지능은 인류사회에 많은 혁신과 발전을 가져왔지만 여전히 한계와 문제점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모델이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적으로 섣부른 판단이다. 인공지능은 강력한 도구지만 그 자체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기계 학습과 패턴 인식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 데이터 편향, 모델의 편향, 개인정보 보호, 윤리적 고려 사항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더불어 인공지능은 사람의 감성, 윤리적 판단, 창의성 등 인간적인 요소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인공지능 도입에 대한 조직 내 변화 관리의 부재도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즉,인공지능 도입은 조직의 프로세스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조직 내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지원이 없으면 인공지능 도입은 실패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합리적인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을 위해서는 목적과 가치의 명확한 정의, 데이터 품질과 가용성의 고려, 변화 관리와 조직 내 인력의 준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은 인공지능 도입의 잠재적인 이점을 인식하면서도, 전략적이고 신중한 접근을 통해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도입과 활용에 있어 윤리적인 고려와 투명성, 책임성을 갖추어야 하고 사회적인 영향과 역사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려가 필요하다. 특히 인공지능은 데이터에 의존해 작동하기 때문에 품질이 좋고 충분한 양의 데이터 분석이 요구된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인공지능의 특성과 작동원리 그리고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분석결과를 업무프로세스와 연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문제의 속성에 따라 사람이 해결할 문제, 인공지능과 협업할 문제, 인공지능이 더 잘 해결할 문제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은 도구로서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문제 해결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고려해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식과 인간의 지혜를 결합한 종합적인 접근이 기업경영에 있어서 인공지능을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진보 vs. 보수의 차이

필자의 미국 유학시절 시카고대에서 학교를 옮긴 교수가 수업시간에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보라고 했다. 대부분의 MBA 학생들은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즉, 보수는 기존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진보는 기존의 것을 버리고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들 답했다. 그러나 교수의 답은 뜻밖이었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세금’에 있다고 했다. 보수인 공화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세금을 낮추고, 진보인 민주당이 집권하면 세금을 올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은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움직이며, 정부는 공정한 관찰자의 역할만 하면 되기에 세금을 인하하면 민간은 소비를 촉진하고 기업은 투자를 늘린다고 주장한다. 반면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은 시장을 그대로 놔두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일으키고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시카고대는 시장 자유주의 중심의 대학으로 공화당 정책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며 공화당이 집권하면 시카고대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자문을 한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이 집권하면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실패로 귀결된다고 주창하는 프린스턴대·컬럼비아대 등 동부해안에 자리 잡은 대학들의 경제학자들이 대거 백악관의 정책자문으로 입성한다는 것이다. 복지혜택의 수혜자인 저소득층을 제외하고는 세금인상은 인기가 적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출된 미국 대통령 중 연임에 성공한 민주당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이 최초다. 미국 역사상 전쟁에서 승리한 대통령이 연임을 못한 경우는 드문데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공화당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대통령을 물리치고 무명에 가까운 아칸소 주지사였던 민주당의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경제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첨예한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전조를 시사한다.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은 ‘경제대통령’이라는 국민의 기대에 힘입었다. 부시 대통령을 겨냥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그의 구호가 유명세를 타며 지지를 얻었다. 클린턴은 집권 후 4년만에 걸프전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결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대통령이 됐다. 재정적자 해소라는 클린턴의 전무후무한 업적에도 세금 인상정책을 펴는 민주당이 클린턴의 뒤를 이어 3 연임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클린턴 이후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의 아들 부시가 연임한 뒤 민주당의 오바마가 연임했다. 그 이후엔 공화당의 트럼프가 단임에 그치고 다시 민주당의 바이든이 집권하는 등 미국정치 지형에 격랑이 일고 있다. 클린턴 이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화당 대통령이 연임 하고, 잠깐 민주당에 대통령 자리를 넘겨 준 뒤 다시 찾아오는 상황이 반복됐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미국의 중산층이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여유가 있던 시기에는 공화당 대통령을 두 번 찍고는 사회 안정화를 위해 자신이 세금을 더 내더라도 민주당으로 스윙 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클린턴 이후로는 공화당의 부시가 8년 집권한 이후 민주당의 오바마가 8년을 집권하고는 공화당의 트럼프가 연임에 실패를 한 것을 보면 미국의 선거 지형이 달라진 것 같다. 사실 클린턴 이후부터는 대통령 선거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접전을 벌이며, 선거 후에도 결과를 승복하지 않고 소송전을 벌이는가 하면,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고,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불복을 내세우며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는 미국의 소득불평등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심화되고 있고, 특히 과거의 중산층에 속했다고 생각한 백인 중산층이 더 이상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를 보면 2019년 0.395로 0.339인 우리나라보다도 높다.미국보다 지니계수가 낮다는 이유로 우리나라가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봤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도 1.5%로 낮췄다. 정치도 마찬가지로 위기이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중심으로 서서히 지지를 확보해 나가는 정책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이 집권했지만 여전히 민주당의 지지층도 37%로 팽팽하다. 대한민국은 ’팬덤정치‘라는 극한적 이념 갈등의 중심에 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경제활성화다. 경제활성화에 따른 소득 불평등의 감소는 자연스레 정치적 대립을 감소시키고 나아가 사회의 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이슈&인사이트] 이제는 글로벌 서비스 기업 육성할 때

한국 기업들은 6·25 전쟁으로 산업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진 잿더미 속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며 이제 세계적인 기업, 세계 속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전자, 반도체, IT 등 전통 제조업에서부터 첨단 산업에 이르기까지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뤘다. 최근 한국은 게임, K-팝, 드라마, 영화 등 문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다. 지금은 한국인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냉정하게 우리나라의 콘텐츠 산업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 폰이 보급되던 초기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게임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에 비해 중국 게임사들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상품성 있는 게임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당시 게임이 없으면 스마트 폰이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관련 회사들은 한국 게임사를 찾아 게임을 구매하기 바빴다. 그 중에 텐센트(Tencent)라는 기업은 한국 게임을 구매해 중국 전역에 배급하면서 고속성장을 이뤘다. 텐센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 게임사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면서 한국 게임사의 대주주로 등극했다. 텐센트는 게임을 단순히 유통하는 배급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접 게임을 제작해 배급하면서 아시아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드라마는 중화권을 넘어 중동, 아프리카, 남미,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까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초기 반짝 흥행에 그칠 것이라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장기간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에 이어 한국 영화가 유럽과 미국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면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한국에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한중 관계가 좋았을 때는 중국 기업의 투자를 받아 드라마를 제작했는 데 , 중국 자본 덕분에 한국 드라마는 완성도가 높아졌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셈을 해보면 중국 투자사는 한국 기획사의 10배 이상 수익을 챙겨갔다. 한한령 이후 새로운 후원자인 미국 넷플릭스가 등장했다. 거액을 투자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마찬가지로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챙겼다.’ 한한령 이후 K-팝이 전환위복이 되며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BTS가 빌보드를 석권했지만 과연 누군가 활동을 중단한 BTS를 이어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기우로 만들면서 K-팝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덕분에 기획사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심지어 대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획사들은 아이돌 그룹들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무대에서 공연할 때 그 수익금 중 얼마나 챙기고 있는가. 훨씬 큰 수익은 한국 아이돌 그룹을 불러들인 현지 기획사들이다. K-콘텐츠는 언제까지 지금과 같이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칠 수 있을까. K-콘텐츠의 대유행이 약해지면 K-콘텐츠 산업은 무너져야 하는가. 이제는 K-콘텐츠로 한국 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텐센트, 한국의 넷플릭스, 한국의 세계적 공연기획사를 육성해야 한다. 정부는 일찍이 문화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떠 K-콘텐츠 산업이 잘 성장하도록 지원해 왔다. 이제는 정부가 콘텐츠 개발(제작) 기업을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콘텐츠 배급사를 육성해야 할 것이다. K-콘텐츠가 언제까지나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때는 미국 영화사가 알라딘, 뮬란 등 세계 각국의 소재를 끌어다 자신의 수익을 높이는 것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유니콘 성장 발목잡는 낡은 규제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최근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도 글로벌 경기의 영향을 받아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반기에 반등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대기업들이 이러한데 재정적으로 취약한 벤처기업들의 어려움은 더 할 것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활발한 투자는 벤처생태계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최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벤처업계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벤처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금액은 8815억 원으로,지난해 동기(2조2214억 원)에 비해 거의 3분의 1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2022년에도 한해동안 벤처 누적 투자 금액이 6조7640억원으로 전년(전년 7조 6802억원)에 비해 11.9% 감소하며 벤처·스타트업 시장에서의 투자 경색 기조가 가시화되고 있다. 신규 투자 뿐만 아니라 미래에 신성장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니콘 기업 상황도 좋지 않다. 세계적으로 유니콘 기업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세다. 2019년 447개였던 유니콘 기업수는 올해는 현재까지 1209개로 2.7배 증가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19년 10개에서 올해 14개로 1.4배 증가하는데 그쳐 세계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이 유니콘 기업의 증가를 주도한다.미국은 유니콘기업이 2019년 218개에서 올해 655개로 3배 늘었다. 기업가치 측면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는데, 전 세계 유니콘 기업 가치는 2019년 1조 3546억 달러에서 올해 3조 8451억 달러로 2.8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290억 달러에서 325억 달러로 1.1배 증가하는데 그쳐 역시 세계 평균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 유니콘 기업 가치 상승도 역시 미국 선도한다. 미국 유니콘 기업가치는 2019년 6615억 달러에서 2023년 2조 523억 달러로 3.1배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유니콘 기업을 이야기 할 때 항상 지적하는 구조적 문제는 업종 편중 현상이다. 이커머스, 인터넛 서비스 등의 업종에 유니콘기업의 절반 이상이 쏠려 있는 데 비해 최근 주목받는 AI, 헬스케어 업종에는 단 1개도 없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유니콘 기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적으로 외부요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유니콘 기업의 개수와 가치의 증가 속도가 우리나라 보다 더 높은 것을 볼 때 외부요인 만은 아닌 것 같다. 원인은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유니콘 기업과 같이 혁신적인 벤처기업이 탄생해 국가 경제의 중심이 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왕성한 기업가 정신과 함께 기업을 지원하는 제도적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대기업으로 키우는데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먼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규제, 상법상 지배구조 규제다. 이런 규제들은 기업규모가 커질수록 더 강해지고 더 많아진다. 대기업으로 성장할 제도적 유인이 없다 보니 전체 기업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주요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이제는 유니콘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기업규모별로 차등적용되는 규제를 최소해야 한다. 대기업이 되면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파급력도 커지기 때문에 규제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과도하거나 국가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그 의미를 잃은 낡은 규제들은 과감하게 개선하거나 철폐해야 한다. 이는 대기업 특혜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환경을 정상화하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과거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관점에서 기업을 바라보면 어떠한 개선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경제와 기업의 현실을 즉시하고 대담한 규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유정주 팀장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이슈&인사이트]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굴레

신축 아파트의 미분양 증가와 대출금리 인상 여파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이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자금조달이 막히면서다. 더구나 사업성이 좋은 일부 정비사업지를 빼고는 시공사 구하기마저 ‘하늘의 별 따기’ 여서 정비사업추진위와 조합들의 한숨 소리가 갈 수록 커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추진위나 조합에서는 직접 사업을 시행하기보다는 자금조달과 시공사 선정이 쉬운 신탁사를 시행자로 내세워 사업을 추진하려는 곳이 늘고 있다. 신탁사를 통한 정비사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대체로 다음을 장점으로 꼽는다. 먼저 추진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고, 조합설립인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빠른 사업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조합임원과 용역업체간의 결탁에 따른 비리를 걱정할 필요 없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정비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탁사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시공사 선정부터 계약,시공 등의 전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가 가능해 사업 과정에서 빚어 질 수 있는 하자나 비리 등의 위험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신탁방식 시행은 현실적으로는 투명하지 못하고, 견제도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신탁사를 시행자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통상 해당 정비사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이른바 ‘추진세력’이 개입하게 되고(통상 추진세력이 추후 조합장이나 조합임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추진세력과 신탁사가 결탁할 경우 조합은 대응능력을 잃어 무방비 상태에 놓일 수 있어서다. 조합 시행의 경우 조합장이 비리를 저지르거나 업무를 소홀히 할 때 해임결의를 통해 교체할 수 있지만 신탁방식은 정비사업위원장을 해임하더라도 여전히 사업시행권은 신탁사에 있어 사업 운영의 주도권이 바뀌지 않는다. 즉, 비리를 저지른 정비사업위원장을 해임하더라도, 사업의 시행자는 신탁사여서 신탁계약을 해지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사업의 주도권은 신탁사에게 있다. 따라서 해임 후 선임된 새로운 정비사업위원장이 사업시행과정에서의 용역업체 선정과 비용지출 등에 대한 견제를 통해 사업을 정상화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신탁사에서 해임된 정비사업위원장과 협의한 용역업체나 시공자를 선정해 진행한다면, 새로 선임된 정비사업위원장이 용역계약을 해지하도록 해 견제하거나 관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탁방식의 경우 신탁사 소속직원이 그 가족으로 구성된 용역업체를 선정해 전체회의를 진행하도록 용역계약을 맺고, 용역비용을 부풀려서 토지소유자들이 부담하는 비용이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신탁사 직원이 차명으로 설립한 용역업체를 구분해 내는 것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어려워 견제가 쉽지 않다. 결국 그 비용은 고스란히 토지소유자(조합원)들의 부담으로 되돌아 오게된다. 더구나 신탁방식은 정비사업 비용 뿐 아니라 추가적인 신탁수수료도 지급해야 하므로 실제 정비사업의 해산과 청산과정에서 토지소유자들이 부담이 조합의 직접 시행에 비해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가급적 조합이 직접 시행하는 것이 더 투명하고 비용부담 측면에서도 더 유리할 수 있다.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토지소유자들이 일단 사업의 진행을 위해 신탁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신탁사와 결탁한 추진세력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견제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과 이 같은 단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신탁방식의 정비사업이 ‘공정·투명·신속’이라는 제 기능을 살리려면 다음의 제도적 보완이 선결돼야 한다. 먼저 용역업체 선정에 있어서 토지소유자들에게 그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사업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비용 내역을 토지소유자 개개인에게 의무적으로 통지하거나 또는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해 부당하게 용역계약을 체결하거나 용역금액을 부풀리는 경우 해당 비위를 저지른 담당직원은 물론 신탁사에 대하여도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견제수단도 마련돼야 한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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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한마디에 당정이 수능 ‘킬러 문항’,즉 ‘불수능’을 사교육 주범으로 지적하면서 입시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수능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은 현 상황에서 대통령의 이번 수능 난이도 관련 발언이 적절했느냐는 지적이다.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킬러문항이란 정상적인 공교육 과정으로는 풀기 어려운 고난이도 문제다. 통상 수능 과목당 한 두개의 킬러 문항을 반영한다. 교육부는 "킬러를 내지 않아도 좋은 문항을 개발하면 변별력은 갖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누구나 쉽게 맞출 수 있게’와 ‘공정한 변별’의 조화가 쉬운 일이라면 교육부는 지금까지 왜 안 했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한국 입시 문제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열정 등에 대해 30번 넘게 칭찬했다. 2009년 가나 의회 연설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케냐는 한국 보다 국민 소득이 높았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추월당했다. 이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 높은 교육열"이라고 했고, 2011년 새해 국정연설에서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교사들을 ‘국가설립자’라고 극찬했다. 한국은 교육을 통해서 양반 중심의 계급사회를 비교적 평등 사회로 바꿨다. 이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강하다. 교육동기가 미약한 일본·영국이나 학력이 부에 의해 세습되는 미국에 비해 한국의 교육은 대체적으로 공정함과 효율성을 갖추고 있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물수능으로 갈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AI(인공지능)시대에 암기력만으로는 AI와의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자연어 처리능력, 지각능력,학습능력, 추리능력이 있는 시스템이 AI다. 미래의 AI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은 추리능력의 학습가 함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곧 킬러 문제에 익숙해야 한다는 의미다. 불수능으로 가야하는 두번째 이유는 중국과 인도 등의 후발 국가의 도전으로부터 따돌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공계 대학의 연간 졸업생 규모를 보면 한국이 10만 명인데 반해 중국은 470만 명, 인도가 260만 명에 달한다. 인도의 교육열은 학원도시 코타에서 확인된다. 인구 60만 명 중 10만 명의 고교생이 매년 IIT(인도공과대) 진학을 목표한다. 인도에서 IIT 졸업장의 의미는 신분차별을 극복할 수 유일한 신분상승 사다리다. 그래서 입학 경쟁률이 100대 1에 이른다. 중국도 지난해 기준 수능(가오카오) 응시생이 1193만 명에 달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오카오 성적이 신분격차를 결정한다. 한국의 수능의 치열함은 이들 국가에 명함도 못 내민다. 수백 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1타 강사’들의 호화 생활이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과외비 부담으로 허리가 휘는 중산층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전두환 정권도 1980년 7월30일 과외 금지를 선언했다. 같은 날 광주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이어 8월15일에는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 시키는 두가지 큰 이슈가 ‘과외금지’ 조치가 묻혀 버렸다. 이 처럼 역대 정권들이 포퓰리즘으로 과외를 규제해왔다. 그러나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과외 문제가 단순히 교육적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 17명 중 서울대가 10명, 고려대가 4명으로 스카이대 출신 비율이 82%에 달한다. 윤 정부 1년을 맞아 장·차관 109명의 구성을 분석해 보면 서울대 58명(53%), 고려대 13명(12%), 연세대 12명(11%)으로 이른바 ‘SKY’ 출신이 76%다. 이 처럼 학력 계급사회를 심화시키면서 그 책임을 불수능에 떠 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수능으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절심함이 ‘불수능’의 천만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현대차, 중·러시장 ‘플랜B’ 준비해야

올해 초부터 현대차그룹의 질주가 거침없다. 1분기 영업이익이 6조4000억원을 넘어섰다. 한해 전체의 영업이익이 1조원 정도였던 시절을 감안하면 ‘서프라이즈’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영업이익 20조원 돌파도 무난할 전망이다. 반도체 등 여러 분야에서 심각한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동차 산업이 한국경제에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질주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높아진 위상과 함께 고가 브랜드 차종 판매 증가와 친환경차의 질주에 힘입었다. 세계 빅2 자동차 시장인 미국·유럽과 함께 인도 등 신흥국까지 ‘바닥’을 다진 결과이기도 하다. 글로벌 1~2위를 달리는 토요타와 폭스바겐 등이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차 등에 몰입하는 상황에서 전기차 시대로의 빠른 전환은 현대차와 기아에게 시장 점유율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현재 10∼11% 정도인 미국·유럽시장에서의 점유율 상승과 함께 현대차 기아가 공을 들이는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권과 중동,남미 등 신흥국에서의 시장 선점 기회는 훨씬 많다. 현대차 기아의 품질 수준과 브랜드는 세계 최상위급으로 자리매김 하며 모두가 사고 싶은 모델이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추종자가 아닌 퍼스트 무버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기회 요인이라면 위험요인도 있다. 바로 중국과 러시아 시장이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난해부터 러시아 공장이 멈춰 섰고 국제 사회의 경제 규제가 강화되면서 시장마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중국은 미중 갈등 틈바구니에서 자국 자동차산업 보호 정책이라는 높은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더구나 러시아 시장은 글로벌 제작사가 모두 철수한 상태에서 그나마 중국과 중앙아시아 자동차가 러시아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현대차는 러시아에서 생산과 판매가 전면 중단되면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가뜩이나 러시아에 우호적인 중국을 제외하고 모든 서방 자동차 회사가 러시아에서 철수한 상황이어서 현대차로서는 철수여부에 대한 기로에 서 있다. 생산과 판매 중단으로 함께 진출한 부품사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철수할 경우 손실이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시장도 만만찮다.현대차와 기아는 한 때 9%에 달하던 중국시장 점유율이 지금은 1%대로 떨어졌다. 이는 중국 정부가 한한령 등 정치 논리를 경제에 끌어들인 것이 주된 이유다. 그만큼 중국시장은 불확실성이 크고 위험요인도 상존한다. 그렇다고 연간 시장규모가 2500만대에 달하는 중국시장을 무작정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현대차와 기아는 불확실성 크고 리스크가 상존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다른 시장과 구별해 이원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중국 시장에 대한 차별화 전략으로 점유율을 올리고 매출을 늘린다고 해도 미중간의 갈등과 사회주의와 민주진영간의 신 냉전이라는 또 다른 큰 변수가 기다린다. 최대한 두 시장에서의 버티기 작전,이른바 ‘발 담그기 전략’을 펼치다가 한중관계 등에 따라 중국이 한한령 같은 정치 논리로 심각한 몽니를 부릴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발을 빼는 ‘플랜B’ 전략을 짜야 한다. 2000년대 들어 중국 휴대폰 시장을 주름 잡던 삼성전자 휴대폰도 최근 들어 현지에서의 맹목적인 애국주의 마케팅에 밀려 고전을 하는 상황이다. 사실 중국시장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음은 오래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중국 시장에서 위험성을 경고하며 투자를 거뒀고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이미 줄줄이 중국 시장에서 빠져나오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대차 기아는 중국에 대한 무리한 신규 투자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기존의 시설에 대해서도 구조조정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전체 자동차 사업부문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비중을 줄이고 신시장 개척을 강화하는 등 글로벌 자동차 사업 전략 전체에 대한 궤도 수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절이 하 수상한 만큼 유비무환이다.

[이슈&인사이트] 대만 포모사 해상풍력 단지로 본 내러티브의 힘

대만은 50여 년 전까지는 ‘포모사(Formosa)’라고 불렸다. 포모사라는 지명은 포르투갈, 서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 기니 등에서도 발견된다.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Ilha formosa’에서 유래했다. 포르투갈은 유럽 국가 중에서 대만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교역을 위해 일본으로 항해하는 도중에 대만을 발견하고 대만의 아름다운 모습과 울창한 숲을 보고 ‘포모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지도에 대만은 포모사라는 이름으로 표기됐고 20세기 중반 유엔 등의 국제기구 회의에서도 포모사가 단독으로 쓰이거나 대만과 병행해서 사용됐다. 대만은 원래 중국인들이 살던 땅은 아니었다. 이스터섬의 거대 석상인 모아이로 유명한 태평양 원주민인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 살았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은 기원전 1만8000년 쯤에 중국 남부에서 시작해 기원전 5000년 무렵 대만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이들은 발달한 항해기술을 이용해 태평양 일대로 퍼져 나갔다. 원주민이 아닌 민족이 대만을 처음 차지한 것도 중국이 아니라 네덜란드와 스페인이다. 북쪽은 스페인, 남쪽은 네덜란드가 요새를 만들어 점령했다. 이후 1642년에 네덜란드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대만 전체를 차지했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활약한 밀수무역 상인이자 해적인 정지룡이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린 연회에서 큐슈의 한 사무라이 딸과 결혼해 아들 정성공을 얻었다. 청나라 정부군에 쫓기던 정지룡은 청에 사로잡혀 죽고, 아들 정성공은 900척의 배와 2만5000명의 병력과 함께 대만으로 이동해 네덜란드군을 쫓아내고 대만에 정씨 왕국을 건국했다. 이후 한족의 본격적인 이주에 따라 대만 원주민들은 서부의 평야지역을 떠나 동부의 산악지대로 쫓겨났고, 높은 산에서 산다고 해서 이들 16개 원주민 종족들을 모두 고산족이라고 부른다. 대만은 여러모로 우리와 닮았다. 우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30년 넘게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가 있고 대만에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세계 1위 업체인 TSMC가 있다. 1인당 GDP도 3만2000달러 수준으로 서로 비슷하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7%를 넘는 에너지 수입국이라는 점도 닮았다. 우리처럼 제조업이 발달하고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섬나라인 대만은 중국이 해상을 봉쇄하면 에너지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탄소중립과 더불어 국가 안보를 위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절실하다. 대만은 우리처럼 전체 면적의 3분의 2가 산지다. 거대 산맥이 섬의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봉우리의 평균 고도가 3000m를 넘고 가장 높은 위산은 3997m에 달한다. 산이 많고 인구밀도가 높아 육상풍력은 2021년 말 기준으로 796MW만에 불과하다. 4면이 바다인 대만이 해상풍력으로 눈을 돌린 이유다.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서는 대만해협은 태풍과 거친 풍랑으로 유명하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 최대 난관이 대만해협이라는 얘기도 있다. 거친 바다 때문에 중국이 폭 170㎞쯤 되는 대만해협을 건널 수 있는 기간은 연중 두어 달밖에 안된다.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이 탄 스페르베르호는 대만해협에서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다 제주도에 상륙했다. 필자는 2019년 11월에 120MW 규모의 포모사 1 해상풍력 단지 준공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타이페이시에서 차로 2시간 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어촌마을인 먀오리현 주난에서 2~6km 떨어진 바다 위에 세워진 대만 최초의 상업용 풍력단지이다. 수심 15~30m 바다 위에 6MW 터빈 20기를 설치했다. 그로부터 3년 6개월이 지난 올해 5월에 포모사 2 해상풍력 단지가 완공됐다. 포모사 1 단지 뒤쪽으로 8MW 터빈 47기를 설치해 총 발전용량이 376MW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를 조성했다. 1년에 7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로써 대만은 단기간 내에 해상풍력 설치 용량이 504MW로 늘었다. 대만의 해상풍력 단지 조성은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포모사 3단지는 최대 2GW 규모로 2025년 운전을 목표로 건설이 추진 중이다. 이어 포모사 4단지는 최대 1.1GW 규모로 예정됐고 포모사 5는 기존의 고정식이 아닌 부유식 해상풍력 단지로 1.5GW 규모로 계획하고 있다. 대만이 해상풍력 단지에 포모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의미심장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으시고 그 것 들에 이름을 지어주셨다. 사물의 본질과 특성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지혜가 발휘된 사례다. 풍력 터빈은 사람마다 미적 기준에 따라 갈린다. 아름다운 풍광이 될 수도 있고,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인공조형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름이 사물의 시작을 알린다는 점에서 대만은 자신들의 과거 이름처럼 해상풍력 단지를 아름답다고 규정한 것이 아닐까? 내러티브의 힘이 잘 드러난다.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이슈&인사이트] 생활 속  웻클리닝으로 탄소중립 동참하자

의식주(衣食住)는 인간 생활의 3대 요소인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의(衣)가 맨 앞에 있다는 것은 옷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옷을 옷답게 만들어주고 더 오래 입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세탁이다. 세탁시장이 진화하면서 환경과 건강을 헤치는 드라이클리닝 대신 친환경세탁인 웻클리닝이 떠오르고 있다. 세계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carbon neutral)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산림 등)하거나 제거해서 실질적인 배출량이 0(Zero)이 되게 하는 개념이다. 즉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으로, 그래서 탄소중립을 ‘넷-제로(Net-Zero)’라고도 한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몇 가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번에는 ‘드라이클리닝에서 웻클리닝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동안 우리는 드라이클리닝이 고급 세탁인줄로 잘못 알고 있었다. 드라이클리닝은 환경과 건강 모두 헤치는 세탁방법이다. 드라이클리닝(dry cleaning)은 물 대신 유기용제를 사용한다. 물을 쓰지 않기 때문에 드라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드라이라는 단어 때문에 젖지 않고 세탁한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통상의 빨래처럼 기름에 적셔서 돌린다. 물에 젖는게 아닐 뿐이다. 모직물, 견직물, 레이온, 아세테이트 등 물 세탁을 할 경우 변형되거나 손상되기 쉬운 재질의 옷을 세탁할 때 드라이클리닝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정장 양복 등에 붙어있는 라벨의 세탁 표시를 보면 손빨래 표시에 X자를 해 놓은 게 보이는데, 이런 옷은 손빨래와 세탁기 사용 등 물 빨래를 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는 드라이클리닝이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규정했다. ‘환경보호의 전도사’로 잘 알려진 기업인 파타고니아는 ‘온리 드라이클리닝(Only Dry Cleaning)’이란 케어 라벨이 달린 옷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드라이클리닝이 빠진 자리는 웻클리닝(wet cleaning)이 대체되고 있다. 웻클리닝은 환경과 건강 모두에 도움이 되는 세탁방식이다. 독일은 세탁소의 60%가 웻클리닝을 도입했고, 미국 환경청(EPA)은 웻클리닝을 섬유를 효과적으로 세탁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기술로 인정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러시아 등이 웻클리닝을 도입했다. 드라이클리닝 중심이던 국내 세탁업계에도 웻클리닝 바람이 불고 있다. 드라이클리닝 방식이 환경과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물과 친환경 세제만으로 세탁하는 웻클리닝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국내에서는 2년 전부터 웻클리닝 방식의 세탁소와 관련 세제가 등장하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웻클리닝 업체의 국내 세탁시장 진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무인빨래방 브랜드 ‘워시엔조이’를 운영하는 코리아런드리가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ESG(환경·책임·투명경영)시대에 국내 최초의 웻클리닝 세탁소 브랜드 ‘어반런드렛’ 카페와 팩토리(세탁소)를 론칭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업체는 "피부를 살리자, 섬유를 살리자, 지구를 살리자(Save Skin, Save Fabric, Save Earth)"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구(Planet)를 살리고, 사람(People)을 살리고, 함께 번영(Prosperity)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이고, ESG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도 이제부터라도 건강과 친환경을 위해 드라이클리닝이 아닌 웻클리닝을 선택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인간 생활의 3대 요소인 의식주. 우리는 의부터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서 식과 주에서도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한국AI교육협회 회장

[이슈&인사이트] 싱하이밍 대사 발언과 한중갈등 해법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발언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와의 관저 만찬 회동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하는데 베팅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자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를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도 말했다. 더불어 민주당 유튜브는 싱 대사가 15분 동안 원고를 읽는 장면 등 이 대표와 싱 대사간의 회동 상황을 생중계하였다. 이에 우리 외교부 1차관은 다음날 오전 싱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하여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특히 다수의 언론매체 앞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것은 외교사절의 우호관계 증진 임무를 규정한 비엔나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을 통해 자국이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싱 대사 초치에 대한 맞불 조치로 정재호 주중한국대사를 불러 ‘깊이 반성’하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중국측과 한국 제1야당이 함께 빚어낸 참사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싱 대사가 보인 행내는 자국의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늑대처럼 공격적으로 임한다는 소위 ‘전랑외교’ 일환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몇 년 전 주스웨덴 중국대사가 스웨덴 공영방송에서 중국을 헤비급이라고 표현한 반면에 스웨덴을 라이트급이라고 비하하여 크게 문제가 되는 등 전랑외교로 인해 세계가 시끄럽다. 외교사절은 주재국에서 가능한 절제된(low key) 자세로 활동하고 본국과 주재국간에 문제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에 갈등을 완화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본자세이다. 반면 전랑외교는 주재국과의 우호협력관계 증진이라는 외교사절의 본연의 사명에서 어긋나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해침으로써 중국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 G2의 일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이 세계 지도국가가 되려면 세계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된다. 중국 정부가 전랑외교 대신에 자국의 외교관들이 국제법 등 국제규범을 준수하면서 본연의 사명에 충실히 하도록 하는 것이 자국의 국익에 부합할 것이다. 둘째, 싱 대사가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동안 이재명 대표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매우 잘못된 처사였다. 그리고 당의 유튜브를 통해 싱 대사의 발언을 생중계한 것은 외교의 민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싱 대사의 발언을 널리 알리는 확성기 역할을 한 것으로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싱 대사가 야당 지도자를 만나서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한국 정치가 여야 진영으로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으므로 이 틈을 노린 ‘갈라치기 책략’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온 일종의 ‘통일전선전술’ 일환이다. 그리고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라는 싱 대사의 발언은 한국 국민을 겁박하고 한국 국민 전체의 자존심을 해치는 행위이다. 이 대표는 현장에서 즉각 문제를 제기하고 싱 대사의 발언을 중단시켜야 했다. 야당도 국민의 자존과 국익 앞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각오로 외교문제에 임해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싱 대사가 기업들의 향응을 받았다는 등 개인비리가 있는 듯이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여당에서는 싱 대사에 대한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 선언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 양국관계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루속히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갈등을 치유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대통령실은 가능한 대외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실무부처인 외교부가 수습하도록 맡겨둬야 한다. 그리고 양국 인사들은 말을 할 때도 좀 더 신중히 함으로써 국민 감정싸움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양국간 소통을 모색하고 강화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정부 대표단 상호 파견이 쉽지 않으므로 의회 차원에서 물꼬를 터보는 방법이 있다. 우리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방중이나 중국 전인대 외사위원회 위원장의 방한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 주재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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