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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가장 먼저 국제정치적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및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주요국의 한 축으로 부상한 우리에게 한미동맹에 따른 상당한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하마스-이스라엘간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주춤하면서 전황이 장기화되면 지원 요구가 커지고 전후 복구도 그만큼 미뤄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반도체를 비롯한 경제적 이슈와 함께 대만을 둘러싼 긴장을 높이고 있고,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한 상황에서의 식량이나 경제문제의 악화는 외부적 도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안보적 상황은 세계 경제의 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의 공급망 붕괴가 통상과 산업발전의 기회를 제한할 것이다.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어우러져 러시아와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기회가 제한되었고, 경제 악화로 세계 각국의 구매력마저 떨어지며 이래저래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현대차가 장부가격 2873억원인 연산 20만대 규모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단돈 1만루블(약 14만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이같은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국내 상황도 녹록치가 않다. 지난해 상반기 법인세 납부액을 보면, 글로벌 호황이었던 K-팝의 영향으로 엔터테인먼트와 게임 등 콘텐츠 분야와 제조업 중에는 자동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IT분야의 불황으로 상위 10대 기업의 법인세 납부액은 지난해 7000억원으로 2022년(7조3000억원)의 10분의 1토막으로 줄었다. 법인세 세수가 줄었다는 것은 기업의 수입이 줄었고 경기가 그만큼 나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물가상승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해 국민의 체감경기는 최악을 치닫고 있다. 특히 전세 사기로 청년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11월까지 국토교통부에 접수된 전세 사기 피해 1만2433건 중 67%가 수도권에서 발생했고, 피해자 중 70%가 30대 이하 청년층에 집중됐다. 가계부채도 1876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가구당 약 1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셈이다.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에 따라 이자부담률도 역대급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초에 발표된 통계청의 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의 비소비지출(평균 1280만원) 중 이자비용이 247만원으로 전년대비 18.3% 증가하며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국내 이슈 중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합계출산율 0.73이 상징하는 저출산이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임은 물론, 외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중세 유럽의 흑사병보다 더 빠른 인구소멸을 의미한다. 이젠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새해는 저출산을 극복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는 결국 정치인데, 새해 대한민국 정치의 시계는 4월10일에 있을 제22대 총선에 맞춰져 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를 구성해 떠난 민심 붙잡기에 나섰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분당의 위험 속에서 헤매고 있다. 두 정당 모두 서로의 약점에 기댄 반사이익을 기대할 뿐 아직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극복할 만한 뾰족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87년 체제 이후 철 지난 운동권의 이념에 파묻혀 정치권을 점령해 각종 특권과 이익을 누리며 국민 위에 군림해온 x86 세대의 퇴출이 가시화됐다는 점이다. 73년생 한동훈의 등장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그와 띠동갑인 85년생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가 되었을 때 시동 걸린 세대교체가 정치 자체의 개혁으로 바뀔 가능성이 보인다.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구태를 보여온 정치인을 모두 퇴출시키고 도덕성과 품격,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선도할 사람들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구성된 제22대 국회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이익이나 출세, 당리당략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국회의원과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패거리 정치의 보스를 위해 희생하고 기여한 정도가 아니라 마을과 지역사회에서부터 국민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해 온 청년들이 정치를 통해 국가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년의 정치에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는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 큰 차를 타고 비서를 대동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중교통 타고 팔을 걷어붙이고 밤새워 토론하며 정책을 만들어 가는 실무형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22대 국회의 첫 회기에서 국회의원의 특권을 모두 없애는 법을 발의하고 제일 먼저 통과시키는 헌신적인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