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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구조조정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최근 산업계 전반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한파가 맵차다. 시장 침체 장기화와 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 감축' 카드를 꺼낸 것이다. 자회사 분사 및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기업이 눈에 띄게 늘면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단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조직개편이란 이름의 인위적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구조조정 대상자가 된 이들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절차의 투명성, 명확한 선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계획안 설계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인 노동조합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는 이유에서다. 조직과 사람이 헤어질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기도 하다. 자신이 왜 '자리를 빼야 할' 사람이 됐는지도 모른 채 사측 통보에 짐을 싸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회사 발전에 크고 작게 이바지해 온 직원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희망퇴직의 자발성이 사실상 정리해고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잖다. 물론 부득이하게 구조조정을 결정한 후 희망퇴직과 관련해 개인 면담을 시행하는 것 자체는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퇴직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사례가 있단 것이다. 신청 기한을 연장한 후에도 이를 거부하면 각종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근래 들어선 이 같은 전략이 인력 조정 과정에 폭넓게 쓰이는 모양새다. 최근 한 대기업 임원이 자회사 전출 대상 직원 설명회에서 “자회사로 이동하지 않으면 태스크포스(TF)에 잔류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멸감과 자괴감에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을 빚고 있다. 사실상 자회사로 옮기지 않을 경우, 고된 업무를 맡기는 방식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음을 내포한 셈이다. 이를 듣는 직원들의 고용불안이 커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본사에 남아 모욕을 감내하기보단 마음이 편해질 것이란 판단에 자회사 전출이나 희망퇴직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자녀를 성인으로 키워 낸 부모 세대다. 희망퇴직 신청 가능 연령대가 30대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멀지 않은 미래엔 이들의 자녀들도 같은 일을 겪게 될 지 모른다. 나무에서 썩은 가지를 쳐내는 것과 같이 더 큰 성장을 위해선 때론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인재 확보가 필수적인 만큼 이런 조치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훗날 회사의 상황이 나아져 다시 인력을 모집할 때 과연 인재들이 믿고 지원할 수 있을까. 옆자리 동료의 밥그릇이 정당한 이유 없이 뺏기는 과정을 목격한 이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을까. 구조조정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이슈&인사이트] 삼성전자가 소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2001년 1월 일본의 경제주간지 동양경제는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회장을 '21세기형 경영자'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10년 만에 소니는 정크본드 수준으로 퇴락했다. 소니의 몰락은 최고경영자의 리더십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전체에 40년 전에 만연했던 이공계 기피 현상에서 빚어진 기술개발 핵심역량의 붕괴에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입시 배치 상황이 바로 소니를 몰락시킨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수한 이공계 지망생은 의약계로 진학하며, 공학계열은 차하위 학생이 진학한다. 서울공대생의 20%가 미적분을 모르고, 진학한 학생들도 반 이상이 의전원, 로스쿨, MBA 과정으로 전공을 바꾼다. 40년 전의 일본 사회의 이공계 기피에 의한 기술개발 핵심역량의 붕괴로 소니가 삼전(삼성전자)에 추월당하듯, 현재 한국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삼전이 대만의 TSMC 등에 추월당하는 평행이론이 전개되고 있다. 삼전이 소니를 이기고 최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던 것은 1980년대 초의 대학입시 배치표에 답이 있다. 당시 한국 최고 인재들이 진학했던 학과가 바로 전자공학과였다. 그들이 바로 삼전의 기술개발 핵심 인력인 이공계 박사 6천여 명과 연구 인력 6만 여명이었다. 1999년만 해도 삼전의 4배에 달하던 소니의 시가총액은 현재 ¼에 불과하다. 1999년만 해도 소니는 세계 5위의 특허 출원 기업이었고 삼전은 16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2022년 현재 삼전은 세계 1위다. 소니는 10위 내에도 이름이 없다. 아직은 삼전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0년대에 입학한 우수한 이공계 출신이 임원급 기술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국 업체 퓨처브랜드가 '미래 가치가 높은 브랜드 순위 1위 기업'으로 선정한 이유다. 그러나 10년 이내에 이들이 은퇴할 때 잃어버린 일본의 30년이 반복될 것이다. 2023학년도 속칭 명문대학으로 통하는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대학의 이공계 정시모집에 합격한 뒤 등록을 포기한 학생이 1,200여 명에 달한다. 이는 모집 정원 4,660명의 1/4에 해당한다. 이들 등록을 포기한 합격생 중 상당수는 의학 계열로 옮겨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라는 일본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1970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1985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를 150명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모든 현에 의대를 설치했다. 1961년 3,000명의 의대 입학정원이 1973년 6,200명으로 배가 되었고, 현재는 9,357명으로 3배가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의대 정원 확대가 일본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촉진하였고 그 결과가 소니 몰락을 초래했다. 소니와 삼성전자의 평행이론은 한국의 50배에 달하는 중국의 이공계 졸업생 470만 명에서 예견된다. 양적으로도 비교가 안 되지만 질적으로 더욱 무섭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의대 선호도가 지극히 낮다. 2019년 이래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특허 출원 1위 국이 되었다. 삼전의 미래사업기획단이 일본 전기 산업의 쇠퇴와 부흥의 미시적 연구에 국한하지 말고 한국, 일본, 중국의 사회 전반에 대한 마크로 연구로 큰 개혁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소니와 같은 편법이 아닌 기술력 본연에 충실한 해법을 내야 한다. 삼전 경영진이 사과했지만,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재용 회장이 작년 한 해 동안 7번이나 대통령을 수행하여 해외 방문하는 여유를 보인 점이다. 모건스탠리가 지적한 오류에 대한 해답도 요원하다. HBM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한다. 엔비디아에 대한 납품은 미뤄지고 있다. 비메모리 부문은 만성 적자다. 파운드리에서 막대한 투자에도 TSMC와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무차별 순매도한다. 8만 전자는 5만 전자가 되고 시가총액은 450조에서 350조 원으로 줄었다. 삼전이 소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호암이 반도체 선언을 하던 1983년 2.8 도쿄 선언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래사업기획단의 첫 과제는 의학 계열 진학 수준의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삼전으로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다. 윤덕균

[EE칼럼] 전력망 위기 극복, 국가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전력망이 한계에 다다랐다. 산업 발전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가지 도전 과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망 인프라는 이미 포화 상태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력망 운영의 복잡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곳곳에서 송전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외적 압박마저 가중되고 있다. EU는 2023년 10월부터 CBAM을 시행하고 있으며, 미 의회에서 준비 중인 탄소규제 법안들은 더욱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 의회에서 논의 중인 청정경쟁법(CCA)과 외국오염부과금법(FPFA)은 EU CBAM이 철강, 알루미늄 등 6개 부문에 국한된 것과 달리, 석유화학, 식품첨가물, 플라스틱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산업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EU 공급망실사법(CSDDD)까지 발효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사들에게 RE100 달성은 물론, 탄소배출, 환경영향, 인권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지속가능성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완제품 제조기업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 걸친 중소·중견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은 심각한 송전제약에 직면해 있다. 발전은 가능하지만 전력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송전선로 부족으로 계통 연결을 대기 중인 태양광 발전소의 용량만 10.9GW로, 이는 원전 11기에 맞먹는 규모다. 이러한 상황이 더욱 심각한 것은 전력망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2023년 기준 24.9GW로 2017년 대비 4배 증가했다. 문제는 이 중 약 70%가 전남·경북 등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송전망이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계통 연결 지연이 심화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전력망 확충을 책임지고 있는 한전이 대규모 부채로 적극적인 투자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대목이다. 전기요금 통제로 인한 적자 누적은 필수 인프라 투자마저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송전설비 증설에 대한 님비 현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단순한 기업 차원의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구축하고 싶어도 송전망 부족으로 계통연계가 불가능하고, 산업단지 내 자가발전 설비를 설치하려 해도 기존 전력망의 용량 제약에 막히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결국 전력망 문제는 개별 기업의 생존을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력망은 더 이상 한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도로, 철도와 마찬가지로 국가 핵심 인프라로서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이 인프라 투자 법안을 통해 대규모 전력망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나, 독일이 에너지 전환을 위해 송전망에 대규모 국가 투자를 단행한 것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한편, 송전설비 확충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발 문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독일의 사례처럼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전력 인프라 구축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일회성 보상을 넘어, 지역사회와의 지속가능한 협력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지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심 역할을 고민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지역별로 전력 생산자, 송전설비 인근 주민, 수혜 기업,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지역 전력망 협의체'를 통해 지역 내 대화, 지역 간 대화를 통한 대타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전력망은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산업 경쟁력과 일상생활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의 확충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없다.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국민이 이 문제의 당사자이며, 해결의 주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전력망 문제는 단순한 기반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우리의 주력산업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 역시 튼튼한 전력망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력망의 공공재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비용 분담에 합의하는 것이다. 정부의 과감한 투자, 기업의 책임 있는 참여, 지역사회와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어우러질 때, 우리는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윤희

[이상호 칼럼] 북한군 파병에 따른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딜레마

지난 6월 19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공식 국빈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시키는 조약에 서명했다. 특히 양국 간 군사 동맹에 준하는 군사협력 및 자동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조항을 조약에 명시하여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떤 형태로도 개입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이 조항이 한국을 겨냥한 러시아의 도발이라는 분석이 있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러시아가 북한의 탄약과 인력 지원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보는 의견이 많았다. 북한 병력이 러시아에 여러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정황은 이미 몇 주 전에 식별되었고 조만간에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한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많게는 1만 2천 명 정도의 병력이 참전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상황이다. 미국 국방부는 28일(현지시간) 북한이 러시아로 병력 약 1만명을 파견했으며 그 중 일부는 이미 우크라이나 쪽으로 더 가깝게 이동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훈련을 위해 러시아 동부 지역에 군인 총 1만명 정도를 파견했으며, 향후 수주간 우크라이나 가까이서 러시아 병력을 증원할 것이라고 덧붙혔다. 이에 한국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포함한 각종 장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상황 좌시 않고 대응하겠다“면서 한국의 개입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당장 공격 무기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원 여부는 북한의 우크라이나 개입 수준과 위협 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한편, 군과 국가정보원은 모니터링 요원과 전문가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해 북한군 포로를 심문·관리하고 우크라이나와 협력하여 북한의 전력과 전술을 탐색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소련이 지휘하고 중국이 지원하여 북한이 일으킨 6.25 불법 침략전쟁에서 유엔군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한국으로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무력 침공을 좌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러시아가 참전 대가로 한국을 위협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체계와 첨단 기술, 금전을 북한에 제공하는 등 소위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한국은 반드시 조치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한국은 그동안 돈독했던 관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러시아가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흥분해서 서둘러 행동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어떤 지원을 약속했고 어떻게 이를 실천하는가를 보면서 단계별로 상응한 대응을 하는 게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는 지원은 다양하다. 한국은 막대한 산업 생산 능력을 보유한 방위산업 강국으로 지금까지 유럽 전체가 지원한 포탄보다 한국 한 나라가 지원한 포탄 수가 훨씬 많다. 여러 첨단 무기와 장비로 완비한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은 미국 이외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다.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러시아의 힘을 뺄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 그러나 유럽 국가도 참전 안 한 전쟁에 한국이 단독으로 군사 개입을 할 필요는 없다. 만약 한다면 나토와 공조를 강화하면서 필요한 것만 제한적으로 지원하는 단계적인 접근 방식이 유효하다. 더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향후 동북아 지역 위기의 불씨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패배하지 않도록 서방세계의 국제 공조 강화가 필요하다. 매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일촉즉발 상황인 현 국제관계를 잘 관리하기 위해 한국의 냉정한 판단과 대응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상호

[기자의 눈] 정부 인증 배터리서 불나면 정부가 책임지나

배터리 화재로 인한 '전기차 포비아'가 극심해지자 정부가 나섰다. 배터리 인증제를 시행해 전기차 탑재 배터리에 더욱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발표에도 소비자들의 민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검사한다고 불이 안날 것도 아니며, 만약 정부 인증 배터리서 불이 나도 정부는 책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터리 인증제의 기준도 부실해 '유명무실한 정책'이 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15일 국토교통부는 전기차 배터리 안정성 인증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이 사업엔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여러 전기차 관련 기업들이 참여한다. 배터리 인증제의 목적은 단순하다. 배터리의 안정성을 정부가 직접 검사해 화재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다. 그간 제조사 자기인증으로 이뤄지던 절차에 정부가 개입해 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다소 허점이 많다. 첫 번째로 '정부 인증' 마크를 단 배터리를 정부가 책임 지냐는 것이다. 기존 자기인증 방식에선 온전히 자동차 회사가 책임을 져왔다. 차를 잘못 만들었으니 제조사가 당연히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이에 정부가 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정부에서도 안전하다고 했는데 불이 난다면 정부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심화된다면 전기차 화재 발생이후 책임을 묻는데 시간이 전보다 더 지체될 것이며 애꿎은 소비자만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로는 배터리 인증 기준이 팩이 아닌 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반면 대부분 관계자들은 '셀 단위' 인증을 강조하고 있다. 배터리는 셀을 모아 팩으로 구성된다. 보편적으로 소비자들이 알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는 '팩'이라고 불린다. 현행대로라면 전기차 화재 발생시 '배터리팩'을 조사하기 때문에 셀을 만든 배터리 회사는 책임에서 자유로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 배터리를 만든 제조사는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배터리 인증제도 발표 당시 '셀 단위' 인증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해당 내용은 빠져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도가 허점이 많은 유명무실한 정책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불이 나지 않을 것이란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를 받기 위해선 이를 뒤받쳐 줄 믿을 수 있는 국가 정책이 필요하다. 그저 보여주기식 제도가 아닌 정말 국민들을 위한 전기차 화재 대책이 나오길 촉구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EE칼럼]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지고 있다

다른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신뢰(trust)가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에너지 인프라는 최소 20~30년의 수명을 갖는 설비로서 초거대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발전설비, 송배전망, 천연가스 저장 탱크, 집단에너지 설비 등은 최소 몇천억 원 때로는 수조 원의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된다. 이렇게 큰돈을 조달하려면 설비 완공 후 안정적인 수익성을 보이는 현금흐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에너지 인프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독점 및 수요독점의 횡포에 취약할 수 있다. 당사자간의 장기계약, 정부의 규제 그리고 안정적 에너지 정책이 주는 신뢰성으로 이러한 문제점이 보완되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신뢰성 있는 안정적 에너지 정책을 통해 급속한 에너지 인프라의 건설을 지원해 왔다. 그 결과 다른 어떤 개발도상국보다 빠른 속도로 에너지 인프라를 건설했다.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 정부의 공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제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 산업의 규모 자체가 엄청나게 커지고, 산업구조도 공기업 독점체제에서 민간이 참여하고 경쟁하는 개방적 시스템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에너지 산업의 규모와 구조가 변했다고 해서 에너지 거래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갖는 신뢰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져 가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한전과 가스공사 등 대표적인 공기업의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그 결과 이들과 거래하는 수많은 에너지 사업체와 소비자들에게 그 위험이 전가되고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 미수금 및 부채 규모에 대한 '알람(alarm)'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그 후유증과 이에 따른 연쇄효과다. 재무적 어려움에 처한 한전의 송전망 공사 지연으로 동해안에 건설한 여러 석탄발전소와 원전의 가동에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현금이 떨어진 한전은 발전자회사에 대해 무리하게 중간배당을 받아냈으며 발전사업자에 대해 결제주기를 줄이고 대금 입금도 늦추려 하고 있다. 가스공사는 재무적 어려움과 자가용 직수입 사업자에 빼앗기는 시장을 만회하기 위하여 평균요금제에서 개별요금제로 공급방식을 일방적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오래된 발전소가 계약만료에 따른 개별요금제 적용으로 급전순위가 개선된 반면 효율성 높은 신규 발전소가 남은 계약기간으로 인하여 평균요금을 적용받는 바람에 급전순위가 역전되는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공급조건을 변경하는 것은 상법에서 말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 2011년 9·15 순환정전 전후, 거듭되는 전력부족으로 정부는 몇 차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걸쳐 민간 석탄발전소의 건설을 독려한 바 있다. 그러나 10여년 후 공급과잉으로 사정이 달라지자 당초 '차액계약(vesting contract)'으로 지급하려던 공급조건을 바꾸고 용량요금 지급에 어려운 입지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등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9년에 완공되어야 할 동해안-수도권 송전선이 2026년 이후로 무한정 연기되어 민간 발전소의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지역별 차등요금도 소매요금이 아닌 도매요금의 차등화며 이마저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분화로 섬세한 시그널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여건의 미성숙으로 소매요금 지역 차등화는 쉽지 않다고 하지만 발전설비를 갑자기 이전시킬 수도 없고 새로운 발전설비의 입지에도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도매요금 지역 차등화를 시행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게다가 비수도권에 신규 발전설비를 완공한 사업자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일 수 있다. 사업도 개시하기 전에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깜짝 방식으로 지역별 도매요금 차등화를 시행하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게 된다. 조성봉

[기자의 눈] 위기의 삼성전자, 멍에부터 벗겨줘야 산다

“'앞으로 몇 년 정신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처지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더 긴장됩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은 2012년 1월 미국 라스베가스 CES 현장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현재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그로부터 12년 뒤인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를 선보였던 삼성전자의 기술 리더십은 희미해지고 '추격자' 신세가 됐다. 고 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에 확실히 뒤졌고, 디바이스 솔루션(DS) 사업 부문의 근원적 경쟁력 그 자체라고 평가받던 최선단 D램 개발에서도 뒤처져 반도체 기술력을 의심받고 있는 형국이다. 슬픈 예감은 틀린 법이 없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DS 부문의 부진을 점쳤고, 이는 실적 발표날 사실로 드러났다. 전영현 DS 부문장(부회장)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반성문으로 절치부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반도체=삼성전자'라는 공식이 당연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추락했나. 집착에 가까우리만큼 지나친 원가 절감도 타당한 지적이지만 근본적 원인은 컨트롤 타워 부재에 따른 주요 프로젝트 지연 초래에 있다.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할 시기를 놓쳐 2016년 11월 하만 인수 이후 대형 인수·합병(M&A)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 구속을 피하기 위해 사외이사도 고위 공무원 출신 인사들을 선임해 대관에 신경 써 총수 리스크 방어에 총력을 다했다. 그 결과 기술 전문성 없는 사외이사들끼리만 △미래 기술·디자인 데모 △가전사업부·시스템 반도체·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운영 현황 보고·현장 답사·사업 전략 논의 △신제품 언팩 행사 참석·제품 전략 논의 △모바일·메모리 현황·전략 제품 서비스·사업 경쟁력 논의 등을 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과연 이것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위시한 전사적 제품력이 경쟁사에 밀린 이유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삼성전자 측은 “기술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경우 이해 충돌의 우려가 있어 제한을 뒀다"고 했다. 대만반도체제조(TSMC)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업계 유명 인사들을 저인망식으로 긁어모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어딘가 고장난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된 건 혹세무민을 일삼는 학자들과 정치권, 그에 기생하는 언론과 시민 단체들이 숨통을 옥죄었기 때문이다. 툭하면 '삼성 국유화론'과 자녀 승계 금지를 주장해왔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윽박지르는 게 이들의 일상이다. 우리 사회는 삼성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글로벌 무대에서 다시 불꽃 튀는 삼성전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멍에부터 벗겨줄 필요가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이슈&인사이트] 이사 충실 의무 주주 확대...개별 주주에 유리할까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국가와 회사는 비슷한 점이 많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다. 국가는 1인 1표, 회사는 1주 1표인 점도 비슷하다. 모든 국민과 주주의 개별적 이해를 모두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같다. 의사결정을 위해 대부분의 국가는 국회와 같은 대의기관을 두고 있다. 대의기관이 국민의 전체 의사라고 할 수 있는 총의(總意, Consensus)를 수렴하여 다수결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도 있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한다. 다수결과 조정의 결과, 일부의 이해는 반영되지 못하기도 한다. 불만이 있지만 결과를 수용한다.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비화하지도 않는다. 최선은 아니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합의된 질서있는 의사결정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개별 주주의 이해를 의사결정에 모두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대리인인 이사가 주인인 주주의 총의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진다. 그렇다면 총의는 무엇으로 표현될까? 대한민국 헌법 제46조 제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되어 있다. 흡사 상법 제382조의3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이사 충실의무와 비슷하다. 헌법상 국회의원의 복무 대상에 '국가이익'만 있고 '국민이익'은 없다. 이는 '국민이익'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국가이익'에 전체 '국민이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국민의 총의가 국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주의 총의는 회사로 표현된다. 총의를 따르지 않고 구성원의 이해를 모두 살펴야 했다면 반대가 극렬했던 경부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 건설이나 반도체 사업 진출 같은 대규모 투자 결정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은 복무 대상을 국가에서 개별 국민으로, 회사에서 개별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아닌 주인이 대리인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는 시스템을 통해 보완된다. 대의기관이 결과를 통해 국민에게 심판받는 것처럼 이사도 성과를 통해 주주에게 심판받는다. 대주주의 말만 따르면 성과가 어떠하더라도 이사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회사의 성과가 나빠지면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대주주다. 최근 기업 밸류업과 주주 이익을 개선하기 위해 상법상 이사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주 이익을 가장 크게 외치는 세력이 행동주의 펀드다. 이들 펀드의 목적은 수익이다. 이러한 목적이 나쁜게 볼 것 만은 아니지만 단기적 이익 추구를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용, 투자를 통한 기업의 영속과 장기적 성장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최근 한경협이 분석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에 성공한 기업의 가치는 장기적으로 개입 이전 보다 1%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통해 행동주의 펀드에 또 하나의 레버리지를 쥐어줄 경우 소액주주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살펴본 것처럼 이사 충실의무를 개별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소액주주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이사회가 모든 주주의 눈치를 보다 의사결정을 주저하고 기업 가치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소액주주를 위한 진짜 밸류업은 기업이 혁신할 수 있도록 규제장벽을 낮추는 데 있다. 유정주

[EE칼럼]기후변화 대응 막는 전력시장 경쟁 부재: 한전 자회사 재통합 논쟁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기후위기 대응의 첩경은 사실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발전 자회사 매각를 통한 전력 도매시장의 경쟁 촉진이다. 경쟁 촉진이란 말만 나오면 거품을 물며 민영화 프레임을 씌우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후환경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특히 한입으로 한전자회사들 매각에 학을 떼면서도 탈석탄을 동시에 외치는 자가당착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사실 공공기관의 공공성 사수는 기후위기대응 정책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둘 중 누가 선순위인지는 이미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발전자회사들이 진작에 기업공개(IPO)를 거쳐 민간에 매각되었다면, 탈석탄이라는 정책적 목표는 이렇게 저항에 가로막혔을 리가 없다. 민간부문이라면 기후변화 억제라는 대의명분에 이토록 조직적으로 저항을 할 수 있었겠나? 현재 가스발전을 주로 하는 민영 발전소들이 전력거래소의 급전 지시나 이익 정산에 찍소리나 할 수 있던가. 만약 석탄발전소가 민간에 매각되었다면 이미 기존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따라 도와주는 정부 부처도 없이 소리 소문 없이 퇴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뜬금없이 한전 자회사 발전사들의 모회사인 한전과의 재통합 논의가 나왔다. 1999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 자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별도의 조직을 운영한 탓에 제각각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최근의 연결재무제표로 연결된 한전의 적자 상황의 원인으로도 지적된 것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도 자회사 간 비협조로 인한 비효율도 한전적자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전력노조도 다시 한전의 직원이 되고자 하는 바램으로 재통합론을 오랫동안 지지해 왔다. 심지어 지난 국회에서는 발전자회사 구조개편 방안으로 이들 자회사들을 신재생에너지/화력/원자력으로 나줘서 자회사간 비효율적인 경쟁을 제거하고 한전 자회사들이 각 분야에서의 독자적인 시장 지배력을 주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경제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제안들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이란 시장경제의 장점을 거세(去勢)하는 것을 공통점으로 가진다. 오히려 지나친 경쟁을 통한 비효율성으로 전력 생산 단가가 높아져 한전의 적자가 심해지는 원인이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전력시장에선 그런 걱정을 할 정도의 경쟁이 제대로 있어본 적도 없다는 것은, 전력업계에 몸담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안다. 이익배분 구조부터 민간사들은 공공자회사들과는 아예 다른 처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허리띠를 졸라매는 적자생존이 이뤄지지 않으니 발전단가는 최대한으로 내려 갈리 만무하다. 이러한 경쟁시장의 부재는 1999년 당시 발전자회사 매각 계획에 대한 한전 및 발전 자회사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 기인한 바 크다. 매각이 이루어질 경우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경쟁적인 시장경제에서는 자연스럽게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상시 이뤄질 수 있는 요소였기에, 당장 눈에 보이는 노조의 반발은 당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게다가 민간 매각이 전력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이란 오해가 개혁에 대한 사회적 여론 악화를 일으켰다. 가격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형성될 때 가장 효율적인 수준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장기적인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었고, 개혁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현재의 어정쩡한 상태, 발전자회사 형태로 형식적 분가는 하였으되 아직은 연결재무로서 탯줄이 연결된 상태가 되었다. 발전자회사들을 민간에 매각하지 못한 채 발전공기업 형태로 두게 된 것이다. 자립할 능력도 안되면서, 분가하면서 부모한테 집 사달라 생활비 따로 달라는 자녀로 인해 초래되는 가계 경제의 비효율성을 떠올리면 된다. 별도 법인화 되면서 같은 지역에도 한전과 자회사별로 별도 지사가 설립되고, 임원부터 실무진까지 모두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제 와서 한전과 자회사들을 재통합하면 중복 기능 인력들이 풍년을 이룰 것이다. 전력 도매시장의 완전 경쟁체제 구축 실패에 대한 대가는 컸다. 비효율성은 곳곳에 내재되어 오히려 소비자들이 내는 부담을 가중시켜 왔다. 앞서 설명한 적자를 겪고 있는 모회사인 한국전력, 그 적자의 기준이 되는 발전원가가 경쟁부재로 인해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 그걸 기준으로 발전사별로 다르게 배분되는 이익구조로 인해 불만이 팽배한 민간 발전사들, 이러한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결정된 전기료를 아무 말없이 수용해야 하는 국민들, 경쟁적 전력시장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전력가격을 직접 결정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집권당과 정부, 이에 덧붙여 나름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이러한 비경쟁적 전력시장으로 인해 기후변화 억제 정책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 의아할 뿐인 해외의 시선들. 정치권력이 마무리 짓지 못한 어중간한 전력시장 개혁을, 행정부처가 어쩌지 못하는 입장도 십분 이해가 간다. 게다가 산하기관 및 발전공기업들은 담당 정부부처와 오랜 인력교류로 한 몸으로 얽힌 상황이다. 기후변화 억제라는 정책적 목표를 위해는 제살을 자르는 고통도 감수해야 하는 정부의 책무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제 식구 챙기느라 어정쩡한 태도밖에 취할 수 밖에 없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결국 지금처럼 한국전력과 여전히 탯줄로 연결되어 임의로 이익을 정산 받으며 정부로부터 성에 차지도 않는 보호를 받으며 겨우 명줄만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불만족스러우니 자회사 매각은 커녕 재통합에 미련을 가지며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도 저도 머리 아프고 한국전력의 적자는 해소해줘야 하니, 기후변화 대응 핑계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전기가격만 올리자는 의견이 대세이다. 기존 전력부문의 비경쟁 상황 (재통합이든 현재의 무늬만 자회사 분할)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비효율성은 그냥 일반 국민들이 십시일반 갹출해서 메꾸자는 거다. 물론 앞서 언급만 문제 중 몇 가지는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미봉책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혹은 소비자 권리 측면에서, 경쟁을 통하지 않은 묻지마 식 가격 인상을 수용하기가 매우 찜찜하다. 이상태로는 여전히 발전 전환부문의 탈탄소는 저항이 거셀 것이고, 탄소시장과 같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도 영원히 겉돌 것이다. 요컨데, 전기가격 조정 논의보다 도매 전력시장 정상화가 먼저이고, 이는 모든 기후변화 억제 정책들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유종민

[기자수첩] 이디야커피, ‘결정적 한방’ 필요하다

“이디야커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어요. 마케팅 힘으로 버티고 있지만 '결정적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죠." 최근 점심식사 자리에서 만난 커피 전문점 관계자가 전해준 이디야커피 평가였다. 창사 이래 첫 대대적인 리브랜딩(rebranding)으로 분위기 반전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애매해 업계와 소비자에 각인될 '뚜렷한 혁신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문제는 이디야커피가 이르면 올해 연말께 구체화된 리브랜딩 계획을 공개한다고 예고했으나, 10월 말이 다 돼서도 아직 이렇다 할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이디야커피의 연간 매출액이 전년 대비 0.8% 줄어든 2756억원으로 2012년 기업공개 이후 첫 마이너스를 거둔데다 리브랜딩에 따른 막대한 비용 투자도 고려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이디야커피는 리브랜딩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집중한다는 입장이나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물론 이디야커피가 최근 창립 이래 처음으로 유명배우를 브랜드 모델로 발탁한 것을 리브랜딩 첫 단추로 보거나, 올해 산리오캐릭터즈·짱구·캐치!티니핑 같은 인지도 높은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에 집중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회의적 반응이 따라붙었다. 즉, 브랜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본질인 상품과 가격의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견해였다. 지난 2001년 출범한 이디야의 가맹점 폐점률은 2021년 2.9%에서 이듬해 6.5%로, 같은 기간 계약해지 매장 수도 88곳에서 196개로 악화됐다. 개별 매장의 평균 연매출도 2019년 2억1693만원에서 2022년 1억8986만원으로 내려앉았다. 아메리카노 기준 1000원대 초저가 대용량 커피마저 등장한 상황에서 이디야커피의 '3200원' 가격경쟁력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 가맹점 수익 때문에 저가 조정이 어렵다면 현형 중저가 포지셔닝을 과감히 탈피하는 게 생존전략일 것이다. 이는 '디저트 특화' 브랜드로 고급화에 나선 투썸플레이스처럼 뼈를 깎는 리브랜딩 변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시장에 새로운 '이디야스러움'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결정적 한방'을 놓고 좌고우면할 여유가 없고, 소비자들도 너그럽지 못하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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