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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평가와 향후 과제-외교통상분야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외교통상정책 성적표는 ‘미흡’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이념외교를 펼쳐 사실상의 반일·반미 노선을 걸은 것을 수정하는 기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신 냉전체제와 북핵 위협이 현실화 되고 있고, 신 보호주의가 국제통상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올바른 방향설정이다. 그래도 미국과 일본에 성급한 ‘러브콜’을 보내는데 급급하고, 국내적으로 친미세력의 찬사를 받는 수준의 외교에 머물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는 이미 정치적 화해를 넘어 정말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단계까지 악화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판정한 대법원 판결의 강제집행 문제를 이제는 종국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엄연히 대법원의 배상 최종판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우리 정부가 설립한 재단이 대신 피해자들에게 배상(대위변제)해 주려하더라도 이들이 변제금을 자발적으로 수령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의 일본기업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권리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미동맹 70주년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대위변제를 해법인양 제시해버렸다. 일본의 반응이 유보적인 이유다. 우리가 대일 무역 맞보복을 철회했는데도 일본은 대한 무역보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국제중재에 회부해 구속력 있는 국제재판 판결을 받아내면 된다. 한·일 청구권협정 제 3조가 일방당사국의 회부로도 중재절차가 진행되도록 이미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법원 배상판결이 국제법 위반임을 국제판례가 확인해주어야 이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 국회가 특별법을 통과시켜 대위변제를 통해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모두 소멸시킬 수가 있다.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한일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문재인 외교가 무시한 이런 진정한 해법이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에 의해서도 방치되고 있다. 바늘 허리에 실을 꿰어 양국간 민감한 현안들을 바느질해 나가려 하는 셈이다. 지난 4월27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워싱턴선언’을 채택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반도에 실효성 있는 핵억지 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최대 현안이다. 미국 정상이 강력한 핵우산을 제공하고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문서로 확인했기에 확장억제 체제가 강화됐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과대포장된 것은 문제다.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고 확장억제 체제를 구축한 것은 이미 오래됐다. 북한의 핵 위협의 심화 정도에 비례해 미군의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횟수도 어차피 늘려야 할 일이었다. 확장억제 강화를 정상간의 합의로 선언한 것이 성과라면, 이를 대가로 한국 정상이 자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는 것을 공식 확인해 준 것은 역사적 부담이다. 가장 확실한 핵억지 수단은 자체 핵무기 개발이다. 후세를 위해서라도, 외교적 수사로 얼버무리면서라도, 어떻게든 핵 개발 포기라는 약속만은 공식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처럼 핵물질 재처리를 통해 수천 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비축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기존의 확장억제 체제를 재확인하고 어차피 강화해야 하는 핵자산 파견을 증대하는 합의에 그친 상황이 아닌가.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등과 안전보장 조약을 체결하고 핵을 포기한 실수의 대가를 오늘날 러시아로부터 침공당하고 핵 위협에 직면한 상황으로 치르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핵을 암암리에 개발하려 해도 개발단계마다 워싱턴선언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미국은 전기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 수출제품을 차별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차별적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급감하고 있고, 반도체 분야는 사실상의 기술이전을 요구받고 대중국 반도체 투자를 제한받고 있다. 유럽과 일본 기업들도 마찬가지 규제를 받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나,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처럼 자동차와 반도체라는 단일 품목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나라는 없다.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서도 대중국 투자를 통한 생산의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이런 미국의 신 보호주의 정책의 구체적 기준이 마련된 것이 지난 1년 동안인데도 정부는 로비는 커녕 그 정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동안 우리 기업들은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수백 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확약했다. 이러한 투자의 대가로라도 정부가 챙겼어야 할 반대급부는 실종된 상태다. 한미FTA를 통해 경제동맹까지 맺고 있는 국가의 대표자가 백악관과 미 의회를 공식 방문한 자리에서 그 생명줄인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의 차별문제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동맹국 간 공급망 협력을 심화해 가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나, 상대국 핵심 산업의 축소나 공동화를 초래하면서도 투자를 압박하고 핵심 산업정보 제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 70년을 정리하는 정상회담이니 만큼 ‘호혜의 원칙’이 양국 경제동맹의 기본가치가 돼야 한다는 점을 짚었어야 했다. 윤석열 외교는 ‘한미 가치동맹’을 공언하고 워싱턴선언에서도 이것을 강조했다. 양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러한 ‘가치의 공유’를 넘어 ‘가치 동맹’을 결성하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배타적 블록에 우리가 동참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윤대통령은 직접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라고 언급했고,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지원을 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진정한 가치외교는 그걸 대놓고 선언해서 주변 전체주의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전체주의 국가의 지도자처럼 국가책임자가 나서서 이를 외쳐대는 것이 오히려 그러한 가치외교를 정말로 펼쳐나가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 문재인 정부의 이념외교의 유산을 떨쳐내려 하면서 또 다른 이념외교를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선린·실용외교의 길이 다시 멀어지고 있다.최원목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E칼럼]독일의 탈원전은 정치적 산물,롤모델 될 수 없다

지난 4월16일 유럽에서는 미래 에너지믹스 방향 설정을 놓고 완전히 상반된 정책이 충돌했다. 독일은 이날 0시를 기해 모든 원자로를 정지시키고 62년간의 원자력 시대를 종식하는 완전 탈원전 실험에 돌입했다. 몇 시간 뒤 핀란드는 탈 원전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유럽 최대 규모의 올킬루오토 신규 원전 3호기 가동을 시작하며 복원전에 나섰다. 이번 탈원전과 복원전의 성패는 향후 에너지전환, 기후변화, 에너지안보에 대한 논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미래 에너지믹스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탈원전과 복원전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안보 증진 수단으로서 원전의 역할과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견해차이에서 비롯된다. 탈원전은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에 기초해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복원전은 원자력의 과학적 안정성과 기술적 통제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구온난화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원전이야말로 기후변화 방지와 각국의 에너지안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불가피한 에너지라는 주장이다. 양쪽 주장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으며 각 주장의 합리성과 현실성은 현재 인류가 처한 도전과 각국의 사정에 맞춰 상대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기후변화 방지와 안전을 명분 삼은 독일의 탈원전 실험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비중이 월등히 높은 갈탄의 퇴출보다 탈원전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갈탄은 거의 유일한 국산 에너지로 탈석탄은 격렬한 정치적 저항에 부딪인 데 비해 녹색당의 연정 참여 조건으로 채택된 탈원전에 대한 정치적 저항은 높지 않았다. 결국 독일의 탈원전은 안전과 기후변화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흥정의 결과물로 볼 수도 있다. 진짜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면 결코 탈석탄에 앞서 탈원전을 추진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의 연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12톤으로 원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의 5.19톤보다 훨씬 많다. 독일의 탈원전은 세계 에너지시장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 탈원전으로 인한 발전 공백을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계획이지만, 1년 내내 전기를 생산하는 기저 전원인 원전을 태양과 바람에 의존하는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원전 감소는 곧 화석에너지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칙이다. 독일에서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비중을 줄이자 바로 석탄발전이 증가했던 경험이 하나의 증거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석탄, 가스 수요의 변동성도 덩달아 높아져 세계 에너지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2021년 말 북해 풍력발전이 감소하자 독일의 석탄발전이 즉각 증가하면서 석탄 가격이 폭등했던 것과 같은 유사한 사건이 앞으로 더 큰 폭으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의 탈원전은 EU 차원에서는 평가되어야 한다. EU는 국가 간 전력망이 그물처럼 연결돼 있어 전력 수급 차원에서는 거의 단일 국가와 같다. 독일의 탈원전과 별개로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체코 등 많은 국가가 속속 복원전으로 돌아서고, 독일은 프랑스에서 부족한 전력을 계속 수입한다. 독일 탈원전은 EU 차원에서 큰 변화가 아닌 이유다. 충청도에 원전이 없다고 우리나라가 탈원전 국가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독일의 탈원전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우리나라는 독일처럼 인접 국가와 연결된 전력망을 갖고 있지 않고 유럽에 비해 재생에너지 잠재력도 크지 않다 그렇다고 독일의 갈탄처럼 마땅한 국산에너지도 없다. 현실적으로 원전 말고는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수급 안정·에너지안보의 세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용빼는 재주는 없다. 독일의 탈원전은 결코 우리의 롤 모델이 될 수 없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 1년에 보내는 제언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요약>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 간 보수 일변도 정책을 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지지층 반발을 무릅쓰기도 했다. 대통령이 진영을 넘어 국가 공동체를 우선하는 정책을 펼 때 유권자들은 대통령다움을 느낀다. 이념과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해 윤 대통령이 복지 정책을 주도할 것을 제안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집권 1년을 맞는다. 성적표는 보기 민망하다. 지지율은 30% 안팎 박스권에 갇혔다. 왜 이럴까. 보수 일변도 정책을 펴면 외연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다. 야당은 물론 중도층도 등을 돌린다. 나는 윤 대통령이 진보 어젠다, 특히 복지 확대를 주도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등돌린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보수 지지층의 반발이 무섭다고? 김대중 대통령은 대일 외교에서 정략보다 국익을 앞세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썼다. 두 대통령은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본받아야 할 사례다. ◇ "나는 천황에게 덕담을 건넸다"야당이 대일 외교를 비판할 때마다 용산 대통령실과 집권 국민의힘은 김대중 대통령 사례를 든다. 김 전 대통령이 일본 국회 연설에서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맞다. 김대중은 1998년 10월 일본을 국빈 방문해 ‘천황’을 만났다. ‘김대중 자서전’을 들춰보자 "도쿄에 도착한 첫날, 아키히토 천황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나는 천황에게 덕담을 건넸다. ‘천황 폐하, 황태자 부부는 보기에도 아름다운 커플입니다.’ 나는 ‘천황’이라 호칭했다. 외교가 상대를 살피는 것이라면 상대 국민이 원하는 대로 호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만찬 다음날 김대중은 오부치 게이조 총리를 만났다. 이때 "나는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며 그동안 두 나라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거론했다"고 회고했다. 여기서 나온 게 바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곧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이때 일본 대중문화도 전면 개방했다. 김 대통령은 "더이상 문화 쇄국주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한국이 일본의 문화 식민지가 될 거란 우려가 나왔다. 기우였다. 문화 개방은 오히려 일본에서 한류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 ‘사쿠라’ 비난에도 굽히지 않은 소신1964년 6·3 사태가 터졌다. 한일 국교 수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때 김대중 의원은 ‘왕사쿠라’로 매도당했다.다시 자서전을 보자. "한일 회담을 하는 당사자들을 무조건 매국노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야당 안에 괴이한 소문이 돌았다. "김대중은 여당 첩자다. 사쿠라(여당에 매수된 야당 정치인)다. 사쿠라 중에서도 왕사쿠라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세계의 흐름, 민심의 향배를 모르고 강경 투쟁만을 부르짖던 야당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 기반만을 강화시켜 주었다"고 회고했다. ◇ "이라크 파병은 불가피한 선택"진보 노무현 대통령도 종종 보수색 짙은 정책을 폈다.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미국은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9월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3000명 넘는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다. 노무현은 "반미면 어때?"라고 했던 인물이다. 진보 시민단체 등 지지층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퇴임 후 노 대통령은 ‘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파병 문제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생각해 봐도 역사의 기록에는 잘못된 선택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참으로 어렵고 무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것이긴 했지만 당시 파병 외교는 아주 효율적인 외교였다고 생각합니다."2004년 12월 노 대통령은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자이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이때 노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병사를 힘껏 포옹하는 사진은 노무현 시대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사진이 됐다. ◇ "한국 영화, 자신 없습니까?"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 개시가 발표됐다. FTA는 경제를 넘어 안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다. 보수 야당은 찬성하고, 여당과 지지층은 거칠게 저항하는 묘한 일이 벌어졌다. 특히 스크린쿼터 축소를 두고 영화계의 반발이 심했다. 그해 3월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갖고 현장에 나온 영화배우 이준기에게 물었다. 당시 이준기는 ‘왕의 남자’로 인기가 대단했다. "한국 영화 경쟁력을 지켜낼 자신 없습니까?" 이어 "자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열고 나가자"고 영화인들을 설득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2020년 2월에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한국 영화를 위한 잔치였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스크린쿼터 축소해서 한국 영화가 쪼그라들었다는 말은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윤 정부는 보수 일변도 진보가 보수적인 정책을 펼 때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대통령다움을 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고, 스스로 실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자는 주장에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난 1년 윤 대통령은 보수 일변도 정책을 폈다. 대미, 대일 관계는 한층 단단해졌다. 반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는 더 멀어졌다. ‘건폭’ 등 기득권 노조 때리기도 멈출 줄을 모른다. 이런 정책은 보수층의 환호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이 그 증거다. ◇ 보수가 주도하는 복지나는 윤 대통령이 긴 시야에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진보적인 정책을 펴길 바란다. 이념 갈등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와 자식, 직장 상사와 부하가 마치 딴 나라에 사는 듯하다. 빈부 격차도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복지는 통상 진보의 어젠다로 통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진보 정부가 주도하면 보수 정부는 마지못해 끌려간다. 선거 때 표를 의식해서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중도층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차라리 복지를 보수정부가 주도하면 어떤가? 당연히 재정에 부담이 간다. 현 정부 정책 기조와도 어긋난다.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수 지지층의 반발도 예상된다. 세금을 더 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 유지라는 대의(大義)에 초점을 맞추면 복지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별 사회복지 지출을 보자. 2020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4.4%를 사회복지 비용으로 썼다. 이는 프랑스 (34.9%), 덴마크(29.3%), 스웨덴(25.9%) 등 유럽국가는 물론 일본(24.8%), 미국(24.5%)에도 한참 못 미친다. OECD 평균은 23%다. 왜 이들은 복지에 이렇게 큰 돈을 쓸까? 그래야 사회 분열을 막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일찍이 경제학자 존 갈브레이스 교수는 명저 ‘풍요로운 사회’에서 절대 빈곤이 사라진 미국에선 소득 불균형이 경제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공원, 교통시설, 교육 등 인프라에 대한 공공투자 확대를 제시했다. 국가 공동체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누가 하든 불가피한 일이라면 보수, 진보를 가릴 필요가 없다. 차라리 보수 정부가 나서면 복지를 넓히되 마구잡이 복지를 제어할 수 있다. 복지 어젠다는 야당 협조를 끌어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층 반발을 넘어서는 결단을 내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대통령의 혜안이 돋보인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1월 전남 목포의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과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을 잇따라 찾았다. 노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 4년 남았다. 보수(補修)하는 보수(保守 )가 살아남는다. 윤 대통령에게 지지층 울타리를 넘어서는 통 큰 정치를 기대한다. <경제칼럼니스트>▲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0일 집권 1년을 맞는다.[대통령실 제공] 사진=연합뉴스▲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6월 1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 김성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사장과 함께 전시물을 살펴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작년 6월 1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OECD 사회복지 지출 국가별 비교. 출처=e나라지표

[기자의 눈] 尹대통령 국빈 방미서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에서 태양광 발전에 ‘태’자도 꺼내기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여파는 외교에까지 미쳤다. 국제협력에서도 태양광은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윤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국내기업과 미국기업이 에너지 분야에서 총 23건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중 소형모듈원전(SMR)과 수소를 중심으로 MOU를 체결했고 태양광은 단 한 건도 등장하지 않았다. SMR과 수소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지만 아직 제대로 상용화되지 않은 에너지원이다. 이들로 MOU를 체결해도 당장 의미 있는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 태양광은 미국에서 실제로 대규모로 진행되는 사업으로 국내 기업의 효자 수출상품으로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태양광 제조기업인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수출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재생에너지 부문 매출에서 지난해 동기 대비 48.4% 증가한 1조3661억원을 기록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방문해 태양광 패널 250만개를 주문했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태양광 시장에서 더 높은 효율을 보이는 태양광 패널을 개발하는 경쟁도 치열하다. 윤 정부가 에너지산업 수출에 관심이 있다면 태양광은 사실 국제협력에서 빠질 이유가 없다. 태양광이 국제협력에서 빠진 건 정치적인 이유로 보인다. 태양광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육성 정책으로 성장했으나 각종 비리로 문제를 일으키며 윤 정부의 심기를 건들였다. 국무조정실은 지난해 9월 예산 부실 집행 등 태양광 사업에 대한 일부 비리를 포착했다. 올해 봄에 태양광은 호남에서 대규모 정전을 일으킬 위험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내 태양광 시공업자와 발전사업자가 일으키는 일부 문제점과 미국에 태양광 부품을 수출하는 제조업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태양광 발전사업과 시공업, 제조업 간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로 이번 미국과 MOU에서 태양광을 제외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에너지 수출 전략에서 태양광을 정치적인 이유로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다. wonhee4544@ekn.kr이원희(증명사진)

[특별기고]윤석열 정부 취임 1년 평가와 향후 과제…정치분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은 야당이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지배하는 태생적인 한계와 함께 여당 내 당권을 둘러싼 불협화음도 그 어느 정권보다 컸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직선적인 성격이 국정에 그대로 투영된 1년이었다. 우선 윤석열 정부가 물려받은 유산부터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3분의 2의 압도적인 국회의석을 앞세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틀을 앞두고 ‘검수완박’ 법안까지 처리해 윤 정부의 검찰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만료 직전까지 수많은 공공기관 임원과 기관장들을 민주당 사람들로 가득 채워 사실상 정부가 바뀌어도 2~3년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문재인 사람이 넘쳐나는 정부가 되었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 온 윤석열은 초보 정치인이다. 그래서 정치적 계산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언급함으로써 비판을 자초하기도 한다. 표를 의식하고 돌아가야 할 길을 무조건 직진하여 불필요한 반발을 초래하기도 한다. 반면 그것이 옳은 길이고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정치적 이익은 결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인간 윤석열의 특성은 지난 1년간의 국정운영 곳곳에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으로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서로 다른 정당에 의해 지배된 분점정부로 출발했다. 분점정부는 협치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기에 어느 쪽이든 양보해야 하지만 서로 양보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직전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대표로 선출했는데, 이 대표는 적어도 7~8개의 의혹과 혐의를 가진 형사피의자 신분으로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대통령도 형사피의자인 이 대표를 만날 생각이 없고, 민주당도 그런 대통령이 원하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의사가 없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민주당은 또 다른 혐의로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될 것이 두려워 단 하루의 공백도 없이 임시국회 회기를 연장해오고 있다. 여야의 극단적 대립 속에 여당인 국민의힘이 제출한 법안은 입법이 무산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년간 국회는 한동훈 법무장관 대 민주당 의원들의 설전이 벌어져 아이들 싸움만도 못한 허접한 일이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국회의 유일한 순기능은 경제적 어려움에 지친 국민을 웃게 만드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교육·노동·연금 등 3대 개혁은 이뤄지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운 시급한 사안이지만 제21대 국회의 임기 말까지 어떤 진전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윤 대통령은 이른바 ‘도어스테핑’이라는 출근길 간이 인터뷰 방식으로 기자들과의 즉석 인터뷰를 도입했다. 이는 국정의 주요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어 국민과의 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발언으로 발목을 잡힐 수도 있고 국정운영을 위한 최선의 대안이 채택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결국 유엔 방문 때 있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짧은 만남 직후 실언 파동으로 중단되었다. 주요 정책이슈에 대한 윤 대통령의 성적표는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문재인 정부에서 많은 덕을 보았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매우 부정적이고, 개혁추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겐 큰 지지를 받고 있다. 건설노조, 화물연대, 공공운수노조 등의 구조적 악행이나 특권의식에 대한 법치 회복에 많은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전면 투쟁으로 맞서는 식이다. 개혁이나 변화는 기득권을 해체해야 가능하기 에 기존 질서에서 이익을 누리던 기득권 세력의 극심한 반발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어떤 개혁이든 찬반이 교차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국가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개혁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데,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당선이나 정권에 눈이 멀어 국가에 필요한 개혁을 뒤로 미루기 일쑤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국익을 위해 언젠가 (욕을 먹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 내가 하겠다’는 입장에서 먼저 일본에 양보한 윤 대통령의 접근은 좋은 예다. 외교적 측면에서의 1년의 성적표는 초반에는 실점이 많았다가 후기에는 만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토정상회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참여, 유엔 방문 등으로 이어진 초기 외교에서는 의전이나 실언이라는 측면에서 점수를 잃었다. 그러나 야권의 반대를 무릅 쓰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했고 국빈 방문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공식화한 것은 작지 않은 성과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를 언급하여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한 것을 두고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일각에선 ‘알아서 긴 굴욕 회담’이라고 비난하지만 미중 패권경쟁 속에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윤석열 정부가 남은 임기에 성공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인사 문제다.‘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정권의 성공과 실패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발굴해 쓰느냐다. 윤 대통령 자신을 비롯해 핵심 자리에 검사 출신들이 과도하게 많다는 비판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대통령실의 인사기획관과 인사비서관이 모두 검사 출신이다 보니 인재를 발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둘 중 하나는 인사혁신처 국장급이나 민간 헤드헌팅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전문가를 기용하는 것이 좋다. 초보 정치인 윤석열을 도울 정치 자문그룹도 필요하다. 지난 1년 정치적 측면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까먹은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여당 지도부 교체과정의 불협화음이었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력히 외쳤던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독립적으로 조언하기 어렵다. 현실 정치와 무관한, 그래서 자신의 미래와 관계없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상황 판단과 대안을 직언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 필요하다. 그들의 조언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최종적 판단은 대통령의 몫이기 때문이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특별기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평가와 향후 과제-경제 분야

고물가·고금리의 위기국면에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현안 대응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1년을 준비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공급측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에 토대를 두고 있다. 감세와 규제개혁, 경제체질 개선과 미래산업 육성을 추진하여 기업의 활력과 혁신, 투자를 유인한다. 이를 통해 기업 주도의 빠른 성장과 도약을 달성하고 궁극적으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실현하는 것이 정책목표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에 한국형 산업정책을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기조 아래 지난 1년간 추진된 정책들이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는지를 평가해보자. 먼저 한국경제가 직면한 대표적 과제를 살펴보자. 첫째, 저성장이다. 최근 발표된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93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0.9% 성장에 그쳤다. 대통령 표현대로 초저성장이다. IMF는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1.5%로 전망했고 OECD는 잠재성장률을 1.8%로 예측했다. 둘째,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이 전년동기대비 1%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수출이 급감해 마이너스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에 월 100억 달러 이상의 높은 실적을 달성한 반도체의 수출이 작년 10월부터 하락세로 접어들고 올해 60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중국 수출도 팬데믹 기간에는 감소세로 돌아섰는데 최근 리오프닝이 본격화되고 있는데도 회복 조짐이 안 보인다. 셋째, 금융시스템의 안정화가 중요해졌다. 최근 자산시장 가격 하락과 함께 금융시장 위험이 커지고 있다. 국내적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PF 등의 부채 부실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경상수지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1월과 2월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세가지 과제 해결을 위해 정부 정책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지를 먼저 감세와 규제개혁부터 점검해보자. 조세감면과 관련해 법인세는 최고세율을 25%에서 24%로 1%포인트 낮췄으며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는 대기업의 경우 현행 8%에서 15%로 높이고, 올해에 한해 투자증가분에 대해 10%의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거대 야당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낸 정부의 노력에 합격점을 줄 수 있겠다. 규제개혁은 초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과 같은 정책의 방향성,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애로의 광범위한 수집과 신속한 해결 등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낡은 규제에 발목 잡힌 K스타트업’이 현 시점의 규제개혁 자화상이다. 실적보다 현장과 전문가 중심의 실용적, 체계적 접근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현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 중의 하나는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의 신속한 추진이다. 지난해 10월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육성방안을 발표했으며 올해 2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작년 12월에는 미래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신성장 4.0 전략’을 수립하고 15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기할 점은 4월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한미 기술동맹의 추진체가 구성됐다는 사실이다. 조만간 한미일 기술동맹도 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과거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신속한 정책 추진과 첨단기술 국제협력의 신기원 수립은 ‘A학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제체질 개선과 관련하여 정부는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구조개혁과 금융, 서비스, 공공 등 3대 경제혁신을 제시하고 있는데 아직은 두드러진 성과를 찾기 어렵다. 노동개혁에서 근로시간 유연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주 69시간’ 논란은 아마추어적인 정책추진의 대표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유연근로제는 중소기업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건의사항으로서 정부는 노사 타협안을 만들어 유연화 방안을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당면 현안인 수출과 관련해서는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금년 통관수출이 작년 대비 4.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2월에 개최된 수출전략회의에서 올해 수출 목표액을 작년 실적보다 0.2% 높은 6850억 달러로 제시하고 본인 스스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일명 수출 플러스 전략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대통령의 각오가 정말 실현될지가 자못 궁금하다. 아이디어 하나를 더한다면 수출 불모지인 일본시장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의외의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무방비로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현 정부에서 한미동맹 강화는 불 보듯이 뻔한 방향이었으므로 정부 어느 부서에서는 대중 전략을 준비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옐런 재무장관이 공식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강조했듯이 한국과 중국과의 교역과 관계는 끊을 수가 없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충분히 공존할 수 있으므로 조만간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금융 안정화와 관련해 부동산PF, 가계부채, 금융기관 외화유동성 문제 등의 불안요인에 대해 정부는 계속 모니터링 중이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스템 위기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은 강화되었지만 작년 레고랜드 사태 발발 후 초기진화에 실패한 사례를 볼 때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이 SVB 사태에 즉각 대처하여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뻔한 문제를 조기 진화한 사례를 참고하여 갑작스러운 사태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의사결정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현 정부의 노력으로 수출과 저성장, 금융위기 예방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피벗 스테이트’로 도약하기에는 불충분하다.새 시대에 맞게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기업에 서비스하는 기관으로 ‘정부문화’를 뒤집어야 한다. 기업도 각자도생의 틀을 깨고 ‘혁신을 위한 협력적 상생생태계’로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 1980년대 일본의 ‘고객만족경영’이 세계 산업계의 로망이었듯이 새 시대의 한국 ‘기업주도 경제문화’가 세계의 표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

[데스크 칼럼] 넘쳐나는 제주도·영호남 재생에너지 해법 찾아야

이제 봄철에 제주도는 블랙아웃(대정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때문이다. 전기 수요가 줄어드는 봄철이면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하는 전기가 남아돌기 때문이다.대정전은 공급하는 전기가 모자라도 발생하지만 남아도는 전기에 의한 과부하로 전력계통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어난다.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출력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쉽지 않다. 이에 전력수급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대정전에 직면할 수 있다. 일조량이 좋은 휴일이나 연휴에는 전력 수요는 낮아지고 태양광 발전은 증가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안정적 전력계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5년부터 제주도에 적용됐던 봄철 전력수급 대책이 올해부터는 호남과 영남 지역으로 확대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따르면 2018년 7.5GW 수준이던 태양광 설비 용량은 올해 26.4GW까지 늘었다. 특히 태양광 발전설비는 땅값이 상대적으로 싼 영남과 호남지역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에 산업부는 단기적 대책으로 공공기관의 태양광 발전시설부터 출력제한 조치를 취하고, 이어 전압과 주파수 변동에도 발전설비 가동이 가능하도록 고성능 인버터를 설치하지 않은 태양광 발전설비에 출력제한 조치를 시행한다. 또한 남아도는 전력을 양수발전에 활용하고, 출력 조절이 가능한 수력, 바이오발전 순으로 발전을 선제적으로 줄여 나갈 방침이다. 이마저도 부족하면 석탄, LNG에 이어 원자력발전까지 출력 조정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현재 제주도는 안정적인 전력계통 운용을 위해 육지에서 전체 사용량의 약 40%의 전력을 끌어다가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물론 남아도는 전기를 육지로 보낼 수 있는 송전설비가 구축되고 있어 이 설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로 제주와 완도간 약 90km를 잇는 ‘제3 해저케이블’ 공사다. 제3 해저케이블 공사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방식으로 구축된다. HVDC는 교류송전에 비해 전력손실을 줄여주고 신재생에너지와의 계통연계에 신뢰성을 높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향후 전남 신안 등 해상풍력으로 생산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하는 서해안 HVDC 해저케이블 구축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에선 LS전선이 기술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대한전선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장거리 HVDC 구축 경험은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세계 HVDC 시장은 2030년 1430억달러 규모로 성장 될 것으로 예상된다. LS전선, 대한전선 등 국내 기업들이 당당하게 세계시장 점유율 한 축을 담당해 줄 것으로 믿는다. 물론 남아도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기존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계동을 적기에 조절할 수 있는 송·변전 설비 구축도 필요하다. 또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확충 이용도를 높이고, 남는 전기를 수소 생산 등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문제는 대규모 투자사업에 들어갈 재원 확보다. 한국전력이 연간 30조원의 막대한 영업손실을 보는 현 상황에선 모든 게 그림의 떡이다. 민간 사업자에게 다양한 전력계통 사업부문 참여를 유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한전이 스마트 그리드사업에 과감하게 투자 할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렇기에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대폭 확충 등에 함몰돼 비현실적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에 맞는 전기요금책정방안 등도 마련해 일관되게 시행해야 한다. 산업부도 호남과 수도권을 잇는 서해안 송전설비의 확충, 조속한 동해안 송전설비 구축 등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위한 꼼꼼한 장기대책을 세우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를 믿고 따라온 태양광·풍력 발전사업자들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기자의 눈]

하루가 멀다 하고 ‘음주운전’ 사고가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최근 경기도 광주시에선 면허 취소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190% 상태의 운전자가 택시를 들이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50대 택시 운전기사는 숨졌고, 조수석에 탑승했던 승객의 양측 팔이 골절되는 등 중상을 입었다. 지난달 8일 대전에서도 60대 남성이 술에 취한 채 차를 몰다가 맞은편 인도로 돌진, 배모양을 비롯해 인도를 걷던 어린이 3명을 치는 ‘대낮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배양은 목숨을 잃었으며, 현장에 있던 어린이들도 크게 다쳤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남성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0.108%였다. 게다가 상습범이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음주운전은 계속되고 있고, 그로 인한 사고 역시 진행 중이다. 사회는 물론, 전문가들은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 정도로 치부하는 현행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강하게 목소리 내고 있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 등 제도가 강화되고 있으나,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그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호주에선 혈중알코올농도 0.15%를 넘은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면 초범은 최소 1년, 재범은 최소 2년에서 최대 영구 박탈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독일과 미국에선 경우에 따라 영구 박탈하기도 한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에도 형량이 높다. 영국만 봐도 최소 1년 6개월∼최고 14년 형의 엄벌을 내리고 있으며, 미국 워싱턴주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최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행법 상 음주운전에 대해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고 해도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지만, 대개 징역 8년을 넘은 경우가 거의 없다. 얼마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음주운전 처벌자를 대상으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부착해야만 하는 ‘조건부 운전면허’를 발급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부착 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여전히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 발의는 눈에 띄지 않는다.음주운전은 엄연한 범죄다. 음주운전으로 사망 사고를 일으킨 자는 ‘살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이라도 국회에선 처벌 하한선을 높이는 법안 마련에 힘 써야 하며, 법원과 검찰은 선고와 구형을 강화해야 한다.김아름 산업부 기자

4대 키워드로 보는 日 기시다 방한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8일 한국에 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6~17일 일본을 방문했다. 기시다의 방한은 그에 대한 답방 성격이 짙다. 두 나라 정상이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외교가 12년만에 복원되는 셈이다. 기시다 총리는 어떤 사람이며 그가 서울에 와서 무슨 말을 할지 등을 4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키워드 1: 히로시마기시다는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명문 가이세이고등학교와 와세다대학(법학 전공)을 나왔다. 하지만 기시다의 뿌리는 히로시마에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히로시마에서 중의원을 지냈다. 기시다는 지역구(히로시마 1구)를 물려받았다. 현재 10선 의원이다. 2016년 5월 기시다는 외무상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조율했다. 오바마는 평화기념공원에서 연설했다. 원자폭탄을 투하한 당사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이었다. 당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19~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주재한다. 장소는 두말할 나위 없이 히로시마다. 미국 언론은 벌써 바이든 대통령이 원폭 투하를 놓고 사과를 할지 말지에 관심을 보인다.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엔 윤석열 대통령도 초청국 정상으로 참석한다. 기시다는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의 열성팬이다. 고교 시절 2번 타자에 내야수로 활약했다. 지난 3월10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한·일전에선 시구를 하기도 했다. ◇ 키워드 2: 외교기시다는 2012~2017년 5년 간 외무상을 지냈다. 아베 신조 총리 내각에서다. 전후 최장수 기록이다. 아베 전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가 가지고 있던 4년 기록을 깼다. 2015년 12월 하순 기시다 외무상은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났다. 여기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가 도출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의지가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는 문재인 정부 들어 흐지부지됐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이슈까지 불거지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최근 기시다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 외교 주특기를 잘 살린 덕이 크다. 지난 3월 16일 기시다는 윤 대통령을 만나 한·일 관계 정상화로 가는 길을 텄다. 닷새 뒤엔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기시다·젤렌스키 회동은 마침 중·러시아 정상회담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국제적인 주목을 끌었다.기시다는 지난달 중의원 보궐선거 유세 중에 폭발물 피습 사건을 겪었다. 이 역시 지지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일단 대피한 뒤 바로 그날 유세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한때 30%를 밑돌던 지지율은 최근 50%를 넘어서는 등 순풍에 돛을 달았다. ◇ 키워드 3: 무색무취기시다 총리를 표현할 때 흔히 ‘무색무취’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그가 속한 자민당 내 고치카이파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고치카이파는 총리를 다수 배출한 명문 파벌로 온건 보수를 지향한다. 기시다는 2012년부터 고치카이파의 수장을 맡았다. 지금은 기시다파로 불러도 무방하다. 기시다는 정계에 진출하기 전 5년 동안 일본 장기신용은행에 근무했다. 은행원은 꼼꼼함이 무기다. 또 외무상으로 5년 동안 일하면 누구라도 신중함이 몸에 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시다에겐 ‘재미 없는 남자’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때론 과단성을 보인다.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는 혼전 속에 치러졌다. 집권 자민당 총재는 자동으로 총리가 된다. 이때 기시다는 고노 다로 전 외무상에 절대 열세였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기시다는 중·참의원 의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1·2위가 겨루는 결선투표에선 고노를 가볍게 제치고 일본 100번째 총리 자리에 올랐다. ◇ 키워드 4: 분배기시다 총리의 경제정책은 소득 재분배로 요약된다.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그는 작년 2월 의회에서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s)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성장의 과실이 주주뿐 아니라 고객, 납품사, 종업원, 노조, 지역사회 등에 골고루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오로지 성장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와 대비되는 말로, 2020년 다보스포럼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일본 자민당은 보수의 본령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시장만능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아니다. 기시다 총리가 이 시점에 소득 불균형 해소에 힘을 쏟는 이유를 톺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지난 3월 도쿄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본인 스스로 ‘사죄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일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말했다.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면 이 표현을 입에 올린들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셔틀 외교가 복원됐지만 한·일 관계는 늘 아슬아슬하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은 눈앞에 닥친 현안이다. 위안부, 독도, 교과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윤 대통령이 성큼성큼 걷는 스타일이라면 기시다 총리는 돌다리도 두들기는 타입이다. 개성이 다르지만 오히려 그래서 뜻밖의 ‘케미’를 기대해 본다. <경제칼럼니스트>▲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자의 눈] 작전세력의 피해자 코스프레

"연예인, 그룹 회장, 국회의원, 병원장, 프로골퍼…"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發) 무더기 하한가 사태로 많은 인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과 라덕연 H투자자문사 대표, 가수 임창정 등 이미 알려진 인물들만 여러 명이다.참 아이러니 한 것은 ‘남 탓’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라 대표도 자신은 손해를 본 피해자이며, 시세 조종은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가 폭락의 배후로 김 회장을 지목한 상태다. 김 회장은 강력하게 반격하고 있다. 키움증권과 김 회장은 2일 서울경찰청에 라덕연 H투자자문업체 대표를 ‘정보통신망법상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라 대표의 발언은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회사의 명예와 신용을 심각하게 실추시켰다고 비판했다.임창정도 60억 피해를 주장하고 있지만, 주가 조작 의혹 모임에 참석한 영상 등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의혹을 더하는 중이다. 특히 임창정은 라 대표를 ‘종교’라 칭하며 청중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적극 권유하기도 했다. 또 그는 주가조작세력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골프장 계약 자리에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언급되는 사람마다 "나는 죄가 없다. 돈을 잃은 피해자다"라고만 외치고 있다.주가조작의 정황들은 넘쳐나는데 피해자만 가득하다. 매수자와 매도자가 짜고 치는 ‘통정거래’는 불법이다. ‘운용자금 1조원 돌파’ 파티까지 열며 돈 버는 재미를 느끼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서로 피해를 주장하며 법적 공방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검찰과 금융당국이 관련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검사 시절 ‘경제수사통’으로 불리던 이복현 금감원장은 "재산의 유무 또는 사회적 위치 고려 없이 신속하고 엄정하게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빠른 시일 내에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있는 조사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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