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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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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월남 패망의 도화선이 된 정치인의 막말 설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29 15:57

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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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여야 정치인들의 설화(舌禍)가 도를 넘고 있다. 설화는 자신을 망가트릴 뿐 아니라 그가 속한 조직, 더 나아가 국가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월남(남베트남) 패망의 단초를 제공한 마담 누의 어처구니없는 설화다. 마담 누는 고 딘 디엠 월남 총통의 영부인이다. 그는 당시 틱 쾅 둑 승려가 디엠 정권의 반불교·독재에 저항해 소신공양(분신)으로 열반한 뒤 디엠 정권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 여론이 들끓자 "만약 다른 바비큐 승려가 나타나면 나는 손뼉을 치겠다"고 발언했다. 1963년 당시 월남은 디엠 총통의 독재정권 하에 있었다. 가톨릭 신자인 디엠은 불교 승려들이 반정부적이라며 강제로 절을 폐쇄하고 승려들을 해산하는 등의 반불교 정책을 폈다. 틱 쾅 둑 승려는 정치적 저항으로 1963년 6월 11일 사이공 도심 한복판에서 소신공양을 했다. 틱 쾅 둑 스님은 당시 베트남의 덕망 높은 고승이었다. 소신공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혼이 육체를 초월하는 수준이 된 고도의 정신력을 가진 고승만이 가능하다. 사이공 도심 한복판에서 많은 군중 앞에서 실제 불길에 휩싸인 틱 쾅 둑 스님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AP 통신기자 맬컴 브라운은 이 장면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몸을 불태워서 봉공한다는 소신공양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소신공양한 틱 쾅 둑 스님을 ‘바비큐’로 폄훼한 마담 누의 발언이 알려지자, 디엠 독재정치에 불만이 많았던 승려들의 소신공양이 줄을 이었다. 틱 누 탄 꽝이라는 여승도 소신공양에 참여하는 등 68명의 승려가 소신공양에 동참했다. 이를 계기로 학생과 시민, 심지어 공무원까지 가담해 대도시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맬컴 브라운이 찍은 사진이 미국에 보도되면서 미국 사회가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으로 베트남 지원 정책에 대한 재검토 여론이 일어나고 사이공의 여론 조사에 착수한했고 두통 반 민 장군 중심의 군부 쿠데타에 대한 공작을 통해 미국은 디엠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디엠은 목숨을 잃게 된다. 이후 미군철수 등의 과정을 거치며 월남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불가에서는 입을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한다. 화를 자초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초입 수행자들에게 묵언수행을 부여한다. 불교에서는 항상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몸으로 짓는 신업은 살도음(살상·도둑· 음행)의 3가지 업이 있고, 뜻으로 짓는 의업에는 탐진치의 3가지 업이 있다. 그런데 입으로 짓는 구업에는 거짓말(妄語), 이간질(兩舌), 악담(惡語), 그리고 꾸밈말(綺語) 등 4개의 업이 있다. 따라서 삼업 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구업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혀 아래 도끼 들었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등의 설화를 파급만 크고 절대적인 실익이 없는 업보로 취급한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잘 짖는다고 명견이 아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일구이언이부지자(一口二言二父之子)",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등도 설화를 경계하는 경구다.

중국 오대 시대의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라는 정치가가 있다. 그는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고 하니 처세의 달인이었다. 그는 정치인들에게 경고한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구시화지문· 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안신처처우·安身處處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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