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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에너지식민지 전쟁 중인데 우리끼리 서로 못믿어

과거의 식민지 전쟁이 총칼을 앞세운 무력 전쟁이라면 요즘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전쟁에 가깝다. 주권이 독립된 나라라도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면 나라 경제는 타국에 종속된다. 러시아가 마음 먹고 가스관을 틀어막으니 세계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다.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우리나라는 살아남기 위해 발전소만큼은 국내산 기술로 만들겠다는 에너지 산업 육성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 업계, 정치권, 환경단체 등은 힘을 합쳐도 모자를 판에 산업 육성 과정에서 서로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부 기업들은 지원과정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정치권과 환경단체들은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정부는 논란을 피하고자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괜한 논란에 얽히는 게 부담스러워한다. 일부 기업은 산업 육성으로 혜택을 보게 돼 있다. 기업이 본 혜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니 전기요금 인상으로 국민이 추가로 부담할 몫이다.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산업 육성에 모두가 군말 없이 따라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인 것이다. 산업 육성 정책 중에 태양광 탄소인증제, 풍력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수소발전 전력구매 입찰시장 국내산 가점 등이 있는데 모두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열렸던 수소발전 입찰시장을 보자. 수소발전 입찰시장을 두고 업계에서 뒷얘기가 무성하다. 일부 국내산 수소연료전지가 수소발전 입찰시장에 대거 참여하게 됐는데 과한 혜택 아니냐는 이야기다. 낙찰가가 공개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비싸다면 과한 혜택이라는 꼬리표가 또 붙을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소발전 입찰시장 평균낙찰가격이 기존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시장의 수소연료전지 평균 거래 가격보다 약 10%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RPS 시장가격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RPS 시장 가격이 워낙 요동쳐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날 기준 RPS 시장의 현물시장으로 보면 수소연료전지 전력거래가격은 킬로와트시(kWh)당 약 300원(REC 가중치 1.9 반영)으로 계산된다. 산업부는 이보다 10% 낮은 kWh당 270원을 말하는 것일까. 그럼 일반적인 태양광 RPS 시장 현물시장 전력거래가격인 1kWh당 약 225원(REC 가중치 1.0 반영)보다 20%(45원) 비싸다. 수소연료전지가 RPS에서 워낙 비싼 전력거래가격을 받다 보니 10% 낮더라도 전력시장에서 그리 저렴하지 않을 수 있다. 가뜩이나 수소연료전지는 야당과 환경단체로부터 연료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고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고 지적받는 에너지원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수소발전 입찰시장을 두고 한 소리 듣느니 정보를 미리 투명하게 공개하고 협력을 구하는 게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나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wonhee4544@ekn.kr이원희(증명사진)

[EE칼럼]중국의 자원 무기화…

강천구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중국이 미국의 무역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1일부터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제한에 나섰다.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한 품목 중심으로 보복 카드를 하나씩 꺼내고 있다. 수출 제한품목을 희토류로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갈륨은 40일분 정도를 비축하고 있지만 게르마늄은 비축 대상에 제외돼 비축 자체가 없다. 주로 디스플레이 업체가 사용하는 갈륨 40일분은 대략 6개월~1년치 분량이다. 정부는 이번 중국의 수출제한에 따라 게르마늄을 비축 품목으로 추가 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갈륨의 시장 가격이 kg당 345달러로 한달 만에 22.12% 급등했다. 게르마늄도 3일 현재 kg당 1440달러로. 한달 전인 7월(1340달러)에 비해 7.46%가 오르며 고공행진 중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3일 국가 안보와 이익 보호 차원에서 이달 1일부터 갈륨과 게르마늄 관련 품목의 수출 제한을 예고하자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치솟고 있다. 중국은 미국, 일본, 네델란드 등이 자국으로의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자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제한을 전격 발표했다. 이들 국가가 반도체와 장비를 중국에 주지 않겠다고 하자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재료를 주지 않겠다고 맞선 것이다. 세계 빅2 경제대국인 미·중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자원민족주의 확산과 후폭풍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냉전 이후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글로벌 시장이 붕괴되면서 산업 전반을 넘어 다방면에서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EU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중국의 주요 광물 세계 시장 점유율 60% 이상인 광물은 디스프로슘(100%), 테르븀(100%), 갈륨(94%), 마그네슘(91%), 네오디뮴(85%), 게르마늄(83%), 천연흑연(67%) 등이다. 더구나 중국은 올 상반기에만 해외 자원개발에 1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 동기보다 131%나 늘어난 것이다. 주로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나미비아.탄자니아), 남아메리카(볼리비아), 동남아(인도네시아) 국가들이다. 중국은 핵심광물의 공급을 막아 주요국의 첨단제품 생산을 위험에 빠뜨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발표한 갈륨과 게르마늄은 반도체, OLED(유기발광 다이오드) 등 첨단산업은 물론 야간 투시경과 같은 전쟁물자에도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티타늄, 텅스텐 등 군수용 광물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주요 전략용 군수 광물 13개 중 텅스텐, 바나듐, 희토류, 갈륨 등 8개는 중국 지원 없이는 제품 생산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특히 희토류가 문제다. 미국은 2025년까지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위해 캐나다, 호주 등 우방국과 결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당장의 수급이 문제다. 적어도 2030년까지는 각종 핵심광물의 공급을 간접적으로라도 중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중국의 조치가 당장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세계 광물시장을 장악한 중국이 주요국을 상대로 전선을 확대할 경우다. 미국에 이어 EU도 핵심 원자재법을 통해 공급망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산업 등은 척박한 토양에서도 정부와 기업의 유기적 협력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기업의 ‘각자도생’형 자원 확보 노력이 뒷받침됐다. 안정적인 자원 공급망 확보는 해외 자원개발이 우선돼야 가능하다. 우리의 자원개발은 자본, 기술, 인력, 경험 등에서 선진국에 뒤쳐져 있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연속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자원강국이 될 수 있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한국형 글로벌 공급망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위해 공급망 핵심 기업과 기술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와 함께 공급망 협력 채널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은 2021년 10월 인도 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를 결성했고, EU는 2020년 9월 원자재 전략적 파트너십, 일본은 2021년 4월 일본-인도-호주를 잇는 공급망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우리나라도 정부간 협력채널로 ODA 지원 대상, FTA 네트워크 등 협력 기반을 활용해 공급망 협력 의지가 있는 국가와 우선적으로 채널을 가동시켜야 한다. 그리고 기업이 진출한 국가와도 협력을 넓혀야 한다. 즉 원자재 생산 인프라 구축 여건이 있어 기업 주도로 협력이 가능한 국가와 공공부문 협력이 필요한 국가로 나눠 유형화 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업주도의 경우 호주 광산개발, 인도네시아 니켈, 칠레 리튬과 구리, 정부주도는 비교적 핵심광물이 풍부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희토류 풍부) 등이다. 세계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있다. 그러나 자원이 풍부하다고 선진국은 아니며 선진국이라고 해서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의 영토가 아니라 자원의 영토를 얼마나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다.강천구 인하대 교수 강천구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이슈&인사이트] 중국의 단체관광 허용과 한중관계 발전

중국 정부(문화여유부)는 지난 10일 한국·미국·일본 등 세계 78개국에 대해 자국민의 단체여행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1월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에 따라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20개국에 단체여행 빗장을 풀었고, 3월에는 네팔, 베트남, 이란, 요르단,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등 40개국에 대한 자국민 단체여행을 추가로 허용했다. 1·2차 단체여행 허용 국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한국과 미국·일본 등은 이번에 포함시켰다. 아울러 비자 신청 외국인에 대한 지문 채취도 올 연말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이번 한국에 대한 단체여행 허용은 ‘사드 보복’ 이후 6년여 만에 중국인의 한국행 단체관광이 자유화됐다는 의미다. 2017년 3월 중국은 여행사를 통해 한국 관광을 사실상 금지했고, 여행사들의 단체 상품 판매가 일제히 중단되면서 중국인의 한국행 단체관광객은 끊어졌다. 그 후 중국 일부 지역에서 한국 단체관광이 다시 시작됐다가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향한 자국민 단체관광이 ‘명시적’으로 금지됐다. 이번 조치의 배경에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첫째, 다음달로 다가온 항저우 아시안게임(9월23일 개막) 흥행을 위해서는 주변 주요국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미국 고위인사들의 방중과 대중국 디리스킹 정책을 계기로 미중 관계가 다소 긴장 완화 분위기로 돌아섰는데, 이런 분위기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둘째,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될 정도로 침체한 중국 경제 상황 때문이다.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는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0.3%)에 진입했고, 수출은 3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세(-14.5%)를 보이는 등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부진하다. 관광객 급감도 중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올해 1분기 중국에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은 5만3000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분기(370만명)의 1.4%에 그쳤다. 강력한 반간첩법 시행과 비자 신청 외국인에 대한 지문 채취로 관광객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셋째, 전랑외교 전사로 불리는 친강 외교부장이 낙마하고 한반도 등 동북아에서의 국가간 역학관계를 잘 이해하는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이 외교부장으로 복귀한 것도 한 요인이다. 올해 초 박진 외교부 장관이 친강 신임 중국 외교부장 취임 축하인사 통화때 친 부장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한국의 방역 강화 조치에 우려를 표명하는 등 경색된 분위기였다. 반면, 지난 7월 14일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박진 장관과 왕위 위원간의 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진행됐고 이때 인적교류 확대 등을 위해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는 18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중국이 가능한 한미간 밀착을 견제하기 위해 단체관광 제한 조치를 푼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우리는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보다도 사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드 배치는 북핵이 고도화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취한 한국의 주권행사다. 이제 중국도 보복조치의 지속은 무의미하다고 인식할 것이다. 그동안 사드문제로 국론이 분열돼 국익이 많이 손상됐다. 일부세력들은 "성주 참외가 전자레인지 참외가 될 것"이라며 사드 배치를 반대했지만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가 인체에 거의 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괴담’으로 국가의 행정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교류의 모멘텀을 다시 살려야 한다. 한국의 TV드라마, K-팝으로 대표되는 ‘한류’ 열기는 양국 국민을 정서적으로 가깝게 하는 데 기여했다. 무엇보다도 문화콘텐츠 교류 확대에 힘써야 한다. 양국관계의 뿌리인 지방간 교류도 활성화해야 한다. 지방은 이념이나 가치적 요인의 영향을 덜 받는 지방은 다양한 협력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방정부를 통하는 게 훨씬 지속 가능하며 중앙정부간 협력을 효과적으로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침 3여년만에 한중 페리 운항이 재개되는 등 지방간 교류를 위한 좋은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인문교류, 청소년교류, 우호도시연합회 개최 등 다양한 행사를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기자의 눈] 中企 근무환경이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청년노동자 주축의 노동조합 협의체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와 공동으로 ‘청년근로자-중소기업 공감소통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 사장과 청년근로자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기업과 비교해 열악한 중소기업의 근로문화 개선을 위해 당사자들인 경영자와 청년직원들이 마주앉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경영환경 고충’을 이해시키려는 고용주와 ‘근로환경 개선’을 호소하는 근로자 사이에 얼마나 진솔한 얘기가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날 참석자들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진행을 맡은 사회자와 중소기업 근로현황에 관해 주제발표를 한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모두 ‘이 자리가 다른 어떤 자리보다 부담이 크고 긴장되는 자리’라는 소감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행사는 중기중앙회 부회장과 새로고침 의장의 인사말과 중기연 연구위원의 발표를 끝으로 비공개로 바꿔버렸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비공개 방침은 새로고침과 사전에 합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한 뒤 "그동안 오해가 있거나 이해가 부족했던 점에 좀더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비공개하기로 했다. 사후공개 역시 공개 후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중기중앙회가 의미 부여를 했던 첫 행사인데다 대화 내용이 민감한 만큼 공개하는데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토크콘서트’라는 행사명을 붙여놓고 미공개 전환에 대화내용 사후 공개마저 않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오히려 이같은 비공개 운영이 중소기업계가 숨겨야 할 정도로 열악한 근로문화 상황을 자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중소기업들이 힘들다는 사실은 국민들도 다 안다. 그럼에도 대기업에 상생을 촉구하는 중소기업들이 반대로 내부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상생 노력을 기피한다면 중소기업의 인력난 등 고질적 문제는 탈출구가 없을 것이다. 중기중앙회가 어렵게 청년노동자단체와 첫 대화의 물꼬를 튼 점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왕이면 일반국민에게 중소기업계가 애쓰고 있음을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 kch0054@ekn.kr김철훈 기자 김철훈 유통중기부 기자

[주원 칼럼] 앞뒤 확 꼬인 ‘경기종합지수’ 손 볼때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0일 새롭게 수정해 제시한 경제전망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부진이 완화되고 있다"며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 5월 제시한 1.5%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면서 "상반기에 경기 저점을 형성한 후 하반기에는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그 다음날 민간연구기관인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2023년 3분기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가 연내 흐름을 반전시키기는 힘들 것"이라며 올해 경제성장률을 역대 최저 수준인 1.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연구기관이 같은 사안을 놓고 상반된 전망을 내놓으면서 경제계에서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동시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경제 상황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 즉 ‘현재의 경기 국면 판단’, 그리고 경제가 좋아지는 방향인지 나빠지는 방향인지를 가늠하는 것 ‘미래 경기 국면 예측’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우선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데 있어 어떤 지표를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리고, 특히 향후 경제의 방향성을 판단하는 것은 말 그대로 예측이어서 더 큰 불확실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계청은 연구자나 연구기관들의 경기 국면 판단과 예측에 도움이 되도록 ‘경기종합지수’라는 것을 매달 발표한다. 경기종합지수는 크게 경기동행지수, 경기선행지수, 경기후행지수로 구성된다. 동행지수(순환변동치)는 현재의 경기국면을 판단하는 데,선행지수(순환변동치)는 향후 경기 방향성을 예측하는 데,후행지수(순환변동치)는 나중에 경기 국면을 확인하는 데 각각 활용된다.그런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으로 유발된 경제 위기 이후 경기지수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바로 선행지수와 동행지수가 가리키는 경기 방향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경기 선행지수는 2021년 6월 이후 계속 하락하다가 올해 4월 바닥을 찍고 2개월 연속 상승 중이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향후 어느 시점에서 실제 경기 저점이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과거 경기순환사이클에서 선행지수가 실제 경기 저점보다 짧게는 1개월 길면 8개월 미리 반등했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이번 경기 저점은 2023년 5월에서 2023년 12월 중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경기동행지수는 2023년 2월에 바닥을 찍고 강하게 올라가다가 6월에는 주춤거리며 소폭 하락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두 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첫째는 이론상에만 근거할 때, 동행지수의 2월 저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선행지수가 4월에 저점을 찍었기 때문에 동행지수는 선행지수보다 먼저 반등을 할 수 없다. 이에 따르면 경기 저점은 아직 오지 않았고, 대략 하반기 언제 쯤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어떤 이유로 선행지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실제 경기 저점이 2월이고 이후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올해 6월 의 동행지수 하락은 일시적이고 향후 다시 반등하면서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최근 정부나 국책기관의 하반기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은 두 번째의 시나리오와 궤를 같이한다. 반면 첫 번째 시나리오는 동행지수가 미래 어느 시점에서 다시 찐 바닥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하반기 경제 상황은 좋지 않을 것이라는 민간의 시각과 합치된다. 어느 쪽이 맞을지는 모른다. 다만 두 번째의 낙관적인 시각이 맞는다면 통계청 경기선행지수의 무용론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은 분명해 보인다. 통계청은 수년에 한 번씩 경기종합지수를 개편한다. 각 지수는 여러개의 개의 경제 지표들로 구성돼 있는 데 개편 때마다 구성 지표에 대해 가감한다. 최근 개편의 주된 이유는 선행지수가 경기선행을 하지 않고 경기동행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경기선행지수가 동행은 고사하고 되레 후행하고 있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근본적인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이런 혼란은 코로나 위기 이후 인플레이션, 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경제 디플레이션 등 다양한 경제 충격이 혼재하면서 기존의 경제를 움직이는 규칙에 큰 균열이 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전통적인 경제 이론이 아닌 새로운 세상에 맞는 새로운 경제 이론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난감하다. 정부의 시각대로라면 선행지수가 동행지수에 후행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그것이 경기후행지수이지 경기선행지수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어쩌면 많은 연구자들이 경기 판단과 전망에 대한 근거 없이 이제는 경험과 직관에만 의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반기 경제전망을 놓고 민간부문과 국책기관이 비관론과 낙관론으로 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경제학 박사

미·이란 수감자 교환에 한국이 왜 나와?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미국과 이란이 수감자 교환 석방에 합의했다. 각각 5명씩이다. 그 여파로 한국 내 동결된 이란 자금 60억달러(약 8조원)도 해제 절차를 밟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1일(현지시간) "우리는 한국 정부와 이 문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공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로부터의 송금에 어떤 장애도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이란 간 비밀협상에 제3국인 한국이 주요 변수로 등장한 게 이채롭다. 미국과 이란은 세상이 다 아는 앙숙이다. 두 나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미·이란 비밀협상 지난 6월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작년 12월 뉴욕에서 미국과 이란이 수감자 석방과 핵 협상 재개를 위한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미국 관리들이 중동 오만을 여러차례 방문했다. 비밀협상은 일부 열매를 맺었다. 지난 10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이란에 부당하게 구금된 미국인 5명이 석방돼 가택연금에 들어간 것으로 이란 정부가 확인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이란 외무부는 석유 결제 대금 등 동결된 자국 자산에 대해 한국의 은행들이 해제 조치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11일 이란 국영 IRNA통신은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금이 스위스 은행으로 이체됐다고 보도했다. IRNA는 이 돈이 유로화로 환전된 상태이며 카타르 중앙은행 내 계좌로 송금될 준비가 돼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란은 해당 자금을 확실하게 손에 넣은 뒤 미국인 수감자 5명을 석방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지는 송금 절차가 복잡한 탓에 미국인 석방은 9월에나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0일 "미국인 석방을 대가로 풀리는 자금은 인도주의적 목적으로만 사용이 허용된 제한된 계좌로 송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이란계 미국인 시아마크 나마지, 에마드 샤르지 등 5명을 간첩 혐의 등으로 수감 중이다. 나마지는 2015년 이란 출장 중 체포돼 간첩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샤르지는 2018년에 간첩 혐의로 역시 10년형에 처해졌다. ◇ 1981년 알제 협정과 닮은꼴 이란이 ‘인질’을 석방하고 미국이 자산 동결을 푼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다. 1981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날 이란은 미국인 인질 52명을 석방했다. 인질로 잡힌 지 444일만이었다.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부 부장관이 협상을 주도했다. 그 땐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가 중재자로 나섰다. 이른바 알제 협정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협정은 인질 석방과 함께 "미국이 이란 자산에 대한 동결과 무역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두 나라는 알제리 중앙은행을 통해 동결 자산을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이란 협상에서 동결자금 해제는 핵심 변수 중 하나다. 자금을 주고 받는 통로가 그때는 알제리 중앙은행, 지금은 카타르 중앙은행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 왜 원수가 됐을까 1979년 이란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과 이란은 사이가 아주 좋았다. 팔레비 왕은 친미 노선을 밟았다. 하지만 성직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혁명 세력이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공화국을 세운 뒤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해 11월 호메이니를 추종하는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했다. 이때 대사관 직원 등 52명이 인질로 잡혔다. 시위대는 미국에 대해 망명한 팔레비 왕을 송환할 것, 이란 내정에 간섭한 것을 사죄할 것, 동결한 미국 내 이란 자산을 해제할 것 등을 요구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80년 봄 ‘독수리 발톱 작전’ 곧 무력에 의한 인질 구출 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델타 포스 특공대는 악천후 속에 인질 구출은커녕 대원 8명이 사망하는 손실을 입었다. 호메이니는 "신의 가호로 모래바람이 불어 미국 구출작전이 실패했다"고 큰소리를 쳤다. 1980년 가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카터는 공화당 소속 레이건에게 완패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인질구출 작전 실패가 최대 패인이 됐다. 결국 미국은 군사력 대신 협상을 통한 인질 구출로 방향을 틀었고, 알제 협정을 통해 52명을 돌려받는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으로서 위신은 크게 깎였다. ◇ 이란 핵 개발 놓고 충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이란 핵무기 개발을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제재 조처를 발표했다. 이른바 포괄적 이란 제재법(CISADA)은 이란에 투자하는 외국 금융사와 기업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바로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오바마는 이를 무기로 이란을 압박했다. 이란은 한 발 물러섰다. 마침내 미국을 비롯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P5)과 독일, 곧 P5+1은 2015년 이란과 핵합의를 맺었다. 공식적으로 이를 포괄적 공동행동 계획(JCPOA)이라 부른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서 손을 떼는 조건으로 각종 제재를 완화하는 게 핵심이다. 이때 이스라엘은 합의 조건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며 반대했다. ◇ 트럼프 핵합의 탈퇴 2018년 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맺은 핵합의에서 탈퇴했다. 이때 미국 보수파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 뒤 미국은 더 센 제재 조처를 잇따라 발표했다. 2018년 가을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나라는 미국과 거래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컨더리 보이콧이 되살아났다.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엔 비상이 걸렸다. 미국은 6개월 간의 유예기간을 두었고, 유예는 2019년 5월에 종료됐다. 미국은 전세계 기업들을 상대로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IT 기업 ZTE, 통신업체 화웨이가 과녁에 올랐다. 화웨이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이 2018년 1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체포된 것도 이란 제재 위반과 연관이 있다. 트럼프를 꺾고 2021년 1월에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핵합의를 복원하려 애쓰고 있다. 바이든은 오바마 아래서 부통령을 8년(2009~2017년) 간 지냈다. 지난 6월엔 이라크가 동결된 이란 자금 27억달러를 해제하는 데 동의했다. 이번에 나온 수감자 교환 석방과 한국 내 동결자금 해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 중간에 낀 한국 한국은 이란과 전통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서울 강남을 가로지르는 테헤란로가 그 증거다. 테헤란로는 1977년 원래 삼릉로에서 이름을 바꿨다. 한국은 이란산 원유 주요 수입국 중 하나다. 하지만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 정책을 펴면서 한·이란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 2010년 한국과 이란은 원화 결제를 시작했다. 이란은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계좌를 텄다. 이를 통해 이란은 원유 수출대금을 원화로 받았다. 대신 한국은 전자제품 등 수출대금을 이란이 지불하는 원화로 다시 받았다. 미국의 규제망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고 2019년 5월 이란산 원유 수입 길이 막히면서 한국과 이란을 잇던 원화 결제 계좌마저 꽉 막혔다. 덩달아 이란에 주어야 할 원유수입 대금도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계좌에 그대로 묶였다. 그 규모가 많게는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 적게는 60억달러(약 8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바로 이 돈이 미국과 이란 간 수감자 석방 교섭에서 협상카드로 쓰인 것이다. 모하마드레자 파르진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12일 한국에 동결된 자금이 약 70억달러에서 원화 가치 하락으로 거의 10억달러 정도가 줄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란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동결자금을 풀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한국은 두 가지 이유로 머뭇거렸다. 먼저 북한 핵 개발에 대한 국제 제재와 형평성 문제가 있다. 한국이 이란 자금을 풀어주면 다른 나라를 상대로 대북 제재 동참을 호소할 명분이 사라진다. 또 하나, 대 이란 제재를 주도하는 우방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기야 2021년 1월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근처 바다를 운항하던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가 약 석 달 만에 풀어주었다. 당시 이란 정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70억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같은 해 9월엔 이란이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중재를 통해 동결 자금을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란은 정식 중재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올해 초엔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중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해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했다. ◇ 동결 해제 이후 과제 동결된 자금은 어차피 우리가 이란에 주어야 할 돈이다. 따라서 미·이란 양국이 수감자 석방 조건으로 동결을 풀기로 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다. 한·이란 관계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제거된 셈이다. 다만 줄 돈은 주되 우리가 이란으로부터 받을 돈은 없는지도 함께 따져보아야 한다. 법무법인 율촌의 신동찬 파트너변호사는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2023년 8월7일)에서 "한국·이란 간 원화 결제 계좌가 2019년 5월 갑자기 닫히는 바람에 상당수 한국 기업도 이란 측 상대방 바이어 등으로부터 받아야 할 물품 대금 등을 떼인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동결 자금을 내주면 한·이란 관계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직은 시기상조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 합의 재개 협상은 아직 초기 단계일 뿐이다. 공화당의 반발도 변수다. 짐 리시 상원의원은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부당하게 억류된 미국인의 귀국을 환영하지만, 동결된 60억달러의 이란 자금을 해제하는 것은 위험하게 인질극을 더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 이란 강경파는 60억달러 해제를 인질 석방에 대한 ‘몸값’으로 간주한다. 결정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면 대 이란 정책은 언제든 180도 뒤집어 질 수 있다. 사실 이란이 바이든 행정부와 수감자 교환에 적극 나선 것도 ‘트럼프 변수’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으로선 미·이란 핵 복원 협상과 내년 가을 대선을 지켜보면서 당분간 신중히 처신하는 게 상책으로 보인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IRAN-USA/DETAINEES 미국과 이란은 지난주 수감자 교환 석방에 합의했다. 협상에 따라 양국은 한국 내 은행들에 동결된 이란 자금 60억달러도 해제하기로 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Iran US 이란에 수감된 미국인 모라드 타바즈의 딸이 2022년 4월13일 영국 런던에서 아버지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주 미국과 이란은 타바즈를 포함해 미국인 수감자 5명을 석방하기로 합의했다. 타바즈는 영국 국적도 갖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EE칼럼] 전기료 문제 근본해법은 소매전력시장 개방

소매 전력 가격 결정에 있어 본질인 경쟁시장체제 도입은 뒤로한 채 정부주도의 요금 조정만 계속 반복하는 것은 언 발의 오줌 누기에 다를 바 아니다. 전기요금을 포함한 공공요금은 언제까지 국민 눈치를 봐가면서 이렇게 경직적으로 결정할 것인가. 해당 기업이 아닌 당정대에서 결정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죄를 지은 거 마냥 매번 국민들에게 호소하듯 전기료 인상에 따른 이해를 구하는 것을 더 이상 보기 싫다. 경제학자로 강단에서 평생 경제학을 가르친 이창양 산업부장관이 이런 비 시장적인 모습을 보이며 얼마나 자괴감이 들겠나. 전기요금 논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전기료를 인상할 때는 국민적 저항이 거세고, 반대로 인하 때는 주주들의 반발에 직면한다. 자유경제시장에서는 정부가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값싸고 질좋은 원자재 확보와 경영효율성 제고 등은 궁극적으로 자유경쟁을 통해 해결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이를 모두 정부가 책임지려하니 일처리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덮어지며 상처만 곪는다. 처음부터 무리였던 한전공대 설립안도 경쟁체제 하에서라면 감히 꺼내지 못할 포퓰리즘 정책이다. 하지만 이런 화두를 꺼내면 ‘민영화’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갑자기 좌우 양 진영에서 뜨거운 감자로 취급해 버린다. 피해야 할 대상이나 더러운 오물이라고 비유하는 것이 낫겠다. 경제학적으로 ‘민영화’와 ‘경쟁체제’는 서로 필요충분 조건도 안된다. 한국전력은 코스피에 상장돼 민영화된 지 오래지만 근본적인 시장원리에 기반한 경쟁체제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송배전은 국가기간망 관리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전기 도소매는 충분히 경쟁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보다 전기 경쟁체제 도입이 더 근본적이고 시급하다. 지금처럼 한전이 소매시장에도 발 담그며 다른 업체에 PPA(직접 전력거래계약)도 ‘윤허’하는 식으로 해봤자, 들러리 구색 맞추기만 될 뿐 한전의 소매독점은 그대로 유지되고 경쟁 구도 도입도 절대 불가능하다. 전력 소매시장에서 한전이 손 떼게 해야 한다. 전기요금을 시급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피상적이다. 누적된 적자로 인한 에너지공기업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현 시스템을 연명하려는 기득권(민·관·학)의 구실로 밖에 안 보인다. 어차피 대주주인 정부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에너지 공기업들은 어차피 스스로 제 머리를 깎을 수 없기에 요금을 올리라는 전문가들의 열띤 목소리에 대해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도 이런 전문가들 의견에 못이기는 척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아가 전기 소비자인 대다수의 국민들도 이런 정부의 한 발짝 느린 에너지 가격 조정의 수혜자이므로, 서로의 눈치를 봐가면서 점진적 인상에 눈감는 모양새다. 그러니 정책당국으로서는 욕먹을 일 없고 인심(표)도 잃을 일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향후 에너지 생산 원가가 급락할 때는 과연 에너지 공기업들이 전기 소매가격을 내릴까? 소시민인 필자 입장에선 어렵다고 본다. 실제로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지난해 8월 천연가스 가격이 연초대비 276%나 치솟았다가 올해는 지난해 고점 기준으로 71%나 급락했다. 이에 따라 올해 8월 초 독일의 전기 소매가는 1년 전 8월 고점 기준으로 97%나 내렸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애초부터 전기 등 에너지 가격을 통제했기 때문에 연초 소매가격이 kwh 당 1분기 11.4원, 2분기엔 8원 등으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여전히 적자인 에너지 공기업들의 곳간을 걱정한 많은 관계자들은 소매가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장흐름에 기반한 국제 시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움직임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렇게 에너지 가격 통제를 계속할 것 인가다. 최종 소매가는 단순히 통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부담을 골고루 나눠 지기 위해 발전사를 비롯한 많은 이해관계자들도 거의 통제되다시피 한 정산가격을 받아들이며 희생을 감수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효율이 발생한다. 해외에서 천연가스 등의 원자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는 정치적 개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도입한 원자재를 유통·가공하는 단계에서 국내 발전사의 마진 폭을 연쇄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해당 사업자라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정부 개입이라고 발끈 할 법 한데도, ‘을’의 입장이다 보니 순응한다. 더 나아가 최종에너지 소매가격이 가격국제 시세와 거꾸로 가는데도 국민들에게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소비행태를 기대하는 것은, 길거리에서 장애인 유도 점자블록도 설치하지 않고 시각 장애인에게 무사히 목적지를 찾아가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기고] 서울∼양평고속도로,현장에 답이 있다

전진선 양평군수 2021년 4월30일 ‘서울∼양평고속도로’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되고 지난 5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위한 노선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양평군민은 빠른 시일 내 고속도로가 착공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대안 노선안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정쟁으로 확산되어 국토교통부장관의 서울∼양평고속도로 추진 중단 발표로 이어지며 사업이 표류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12만5000여 양평군민은 허탈과 실망감 속에서 사업 재개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은 서울과 거리를 좁혀 의료,문화시설 등 주민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고 2600만 수도권 주민에 대한 식수공급을 위해 각종 중첩규제로 고통받아온 양평군민들의 숙원이다. 이런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이 하루빨리 재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양서면 분기점의 ‘예타 노선’과 강상면을 분기점으로 하는 ‘국토교통부 대안 노선’에 대해 양평군수로서 "어떤 노선이 양평군에 더 이익이 되는 노선일까, 양평군민이 원하는 노선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통해 견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국도 6호선의 교통량 분산과 군민의 고속도로 접근성을 높이는 출입시설(IC) 설치가 가능한 노선이어야 한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주요 목적은 주말마다 교통 혼잡이 극심한 국도 6호선의 교통량 분산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예타 노선은 하루 1만5800대, 대안 노선은 2만2300대가 이용할 것으로 예상돼 대안 노선이 40% 이상 교통량 분산효과가 더 큰 것으로 제시됐다. 또 예타 노선과 대안 노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양평군에 고속도로 출입시설(IC) 설치 여부다. 예타 노선은 국도 6호선과 만나는 곳에 철도,학교 등의 시설물로 인해 양평군에 IC 설치가 불가다. 이에 비해 국토부 대안 노선은 국지도 88호선과 접속하는 양평군 강하면에 양평군민이 원하는 IC 설치가 포함돼 있다. 둘째, 양평군민의 피해가 적고 다수가 원하는 노선이어야 한다. 예타 노선 분기점 인근 양서면 주민은 마을 위로 40m가 넘는 교각을 600m이상 설치해야 하므로 마을이 양분화되는 것은 물론 고속도로로 인한 소음, 경관훼손, 환경파괴 등 문제로 예타 노선에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양평군민 절대 다수는 양평군에 IC가 설치되는 노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셋째, 서울∼양평고속도로는 환경을 고려한 노선이어야 한다. 양평군은 2600만 수도권 식수를 공급하는 지역으로 환경보전을 제1의 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이제 새로운 고속도로도 수질보전과 환경을 고려하는 노선으로 결정돼야 한다. 예타 노선은 한강을 횡단해서 상수원보호구역과 철새도래지 수변구역을 관통하는 데 비해 국토부 대안 노선은 수변구역을 통과하지 않고 상수원보호구역은 약 3.5km, 철새도래지는 약 2km를 적게 통과해 상대적으로 환경훼손이 적다. 어느 노선이 그동안 환경을 지켜온 양평군민 뜻에 맞다고 생각되는가? 앞의 세 가지 사항에 대해 현재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국토부의 타당성 조사 자료 뿐이라 대안 노선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을 통해 국토부의 대안 노선과 예타 노선을 비교 검토해 어느 노선이 타당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서울∼양평고속도로에 대한 논점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오직 노선으로만 한정해서 국도 6호선의 교통량 분산, 그리고 양평군민과 환경을 고려한 최적의 노선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토부가 제안한 ‘두 노선에 대한 전문가들의 적절성 검증’이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양평군 어느 지역에라도 IC를 설치하고 대안 노선보다 더 양평군에 이익이 되는 다른 노선이 있다면 이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부와 국회는 사태 장기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양평군민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여 하루빨리 양평군에 가장 이익이 되고 양평군민이 원하는 방향인 강하 IC를 포함하는 노선으로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듣고, 비교한다면 서울∼양평고속도로의 최적 노선이 어디인지 그 답이 보일 것이다.kkjoo0912@ekn.kr전진선 양평군수 전진선 양평군수

[EE칼럼] 기후위기와 위험사회, 사회적 성찰을 요구하다

7월 중순의 집중 호우에 이어 긴 폭염과 한반도를 관통하는 제6호 태풍 카눈까지, 대한민국이 호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새만금에서 열렸던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역시 이례적인 기후로 큰 곤욕을 치렀다. 이는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극한 폭염은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 유엔은 급기야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규정지었다. 기후변화는 이미 ‘기후위기’이고, 기후위기는 위험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위험 상황 자체도 문제지만, 현대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복잡성이 그 위험을 더욱 증폭시키는 게 더 큰 문제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86년에 펴낸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산업화와 과학의 발전이 현대사회에 초래한 위험의 특징을 조명했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곤 하는데, 그 시작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 파장이 어디까지일지 다 가늠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현대사회가 마주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벡의 지적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상황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현대사회에 초래할 수 있는 피해와 혼란은 쉽사리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자원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 공급이 하루라도 끊긴다면 각종 사무가 마비되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 서비스, 교통 인프라 등 모든 게 멈춰 서게 된다. 대규모 정전 사태가 길어지면 국가의 안보도 위협받는다. 이토록 중요한 전기의 수급 문제를 생각할 때 ‘적정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산업화 시대의 통념만으로는 이미 대응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에 현대사회의 혈관과 같은 전력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다음을 재점검하며 나아가기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기후위기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후기술(climate technology) 내지 녹색기술(green technology)을 둘러싼 세계 주요국 간 경쟁이 계속되는 이상, 이 분야에서 한국이 도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태양광, 풍력, 차세대 원자로는 물론이고 스마트 그리드와 같은 송배전망의 혁신, 축전지·배터리,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그린 수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기후기술 분야에서 주요국들이 산업·무역 정책 수단을 활용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런 경쟁 속에서 한국이 더욱 전향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특정 기술을 둘러싼 소모적인 정쟁을 멈춰야 한다. 다양한 기후기술들을 서로 경합하고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로 보는 종합적인 관점과 정책적인 지원이 정부와 정치권에 절실히 요구된다. 종합적인 관점이 있어야만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더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둘째, 화석연료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이려는 데에 사회 전체가 역량을 집중해야만 한다. 한국의 1차 에너지 소비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산업의 원료로 쓰이는 부분은 감안하더라도 전력 생산을 위해 소비하는 화석연료 비중(2021년 기준 석탄 34,3%, 가스 29.2%)이 너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의 이유로 화석연료의 공급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결국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해서 공급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기후위기 시대에 마땅히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나 RE100(재생에너지 전기 100%)과 같은 시대적 요구가 국내 기업들에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화석연료 화력 발전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화력 발전 시설에 기후기술을 접목해 사용하는 것을 공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전기의 사용자인 우리 모두가 절약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전기 사용으로 인해 과도하게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그로 인한 재해와 위험도 증폭시킨다. 우리의 편의를 위한 행동이 결국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자각과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벡은 위험사회 극복을 위해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를 요구했다. 근대화로 인한 위험사회에 살게 됐다고 해서 근대성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그 원리와 위험의 성격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위험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과 그 구조적 특징, 그로 인한 혜택과 문제점을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 성찰이 요구된다.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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