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금)



[이슈&인사이트] 시진핑 권력집중 강화한 중국 양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3.12 11:31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이강국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중국의 국정 운영방침을 정하는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지난 4일 시작돼 11일 막을 내렸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지난 5일 전인대 정부 업무보고에서 올해 경제성장률(GDP) 목표를 5% 안팎으로 제시했다. 국방예산을 지난해 대비 7.2% 늘렸는데, 3년간 연속 7% 이상의 증가율(2022년 7.1%, 2023년 7.2%)을 기록하게 됐다. 리창 총리는 지난해 5.2% 경제성장률을 달성해 목표(5%)를 초과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부동산, 지방채무, 중소금융기관 등의 리스크가 나타났다"고 언급하여 중국 경제의 문제점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번 양회에서 '새로운 질적 생산력'(新質生産力)이 부각되고 중국 언론들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 표현이 등장한 것은 지난해 9월 시진핑 주석이 헤이룽장성을 방문했을 때 “과학기술의 새로운 자원을 결합하고 전략적 신흥산업과 미래산업을 선도하여 '새로운 질적 생산력'을 형성하자"고 제시하면서다. 과거 '고품질발전'과 유사하지만, '생산력'이라는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차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인공지능(AI), 우주 분야 등에서 펼쳐질 미국과의 경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자 '과학기술자강'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한중관계, 중일관계 등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바, 주변국 외교보다는 미중관계,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에 집중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다만, 왕이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와 관련해 언급했였는바 “세계가 충분히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한반도 문제를 이용해 냉전적 대결로 역행하려는 이는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한반도 문제 해결책으로 '쌍궤병진'(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 추진하는 것)과 '단계적 동시 조치'(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면 미국과 유엔이 대북 제재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것) 원칙을 언급했다.


한편, 이번 양회에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겸직해온 외교부장자리에 류젠차오 당 대외연락부장이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별도의 인선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마 추후 개최될 제20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3차 전체 회의(3중 전회)에서 인선 방침이 정해 진 후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외교부장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양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1991년 당시 리펑 총리에 의해 시작되고 주룽지 총리를 거치면서 정례화돼 지난 30여 년간 이어져 온 총리의 폐막식 내외신 기자회견이 폐지된 것이다. 전인대 폐막식 총리 기자회견은 취재가 제한된 나라인 중국의 권력서열 2위인 총리로부터 경제운용 방향과 목표, 주요 쟁점 등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로 '양회의 꽃'이라고 일컬어졌는데, 폐지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과거에는 총리가 경제문제를 관장했으나 시진핑 주석이 지도자가 된 후 경제문제까지 장악하며 총리의 위상이 약화되었고, 더군다나 리창 총리는 시 주석 비서 출신이라 존재감이 크게 떨어져 시 주석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 공산당 3중전회가 개최되지 않아 새로운 정책방향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곤란함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총리 기자회견장에서 중국 경제나 인권문제 등 민감하고 부정적인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한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일례로 2020년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당시 리커창 총리가 “중국인 6억 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8만5000원)밖에 안 된다. 1000위안으로는 중간 규모 도시에서 집세를 내기조차 어렵다"는 '소신 발언'을 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중국이 '전면적인 샤오캉사회'(小康 : 모든 국민이 풍족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를 달성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리커창 총리 발언으로 인해 인민들의 실제 생활상이 드러나 중국 지도부가 더 놀랐을 것이다.


국가주석 연임 제한을 철폐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 지 5년이 된 시점에서 개최된 올해 양회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법적으로 명문화한 '국무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시진핑 주석에 대한 권력집중을 한층 강화시켰다. 덩샤오핑 시기인 1982년 개헌과 함께 개정·도입된 국무원조직법은 '총리 책임제'를 명시하는 등 당·정 분리 원칙을 담고 있었다. '국무원조직법 개정안' 통과는 당 중앙집중영도, 당·정 일체의 시진핑 주석 1인 체제를 법률로 명시한 조치로, 총리의 전인대 기자회견 폐지와 오버랩되면서 절대 권력을 가진 시진핑 체제가 확실히 구축되었음을 대내외에 각인시킨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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