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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기후변화정책,산업육성에 초점 맞춰야

매일 새벽에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블룸버그 등 뉴스 매체와 트위터 등을 통해 다양한 글로벌 뉴스를 확인한다. 이렇게 전 세계 주요 일간지나 인터넷을 훑다 보면 지금까지도 2030년 NDC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타령을 연일 하는 국가로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한 것 같다. 미국과 EU, 일본 그리고 중국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에게 기후변화 정책은 곧 산업정책이요, 국가의 장기성장 잠재력을 확보하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후변화 정책이 단순히 온실가스 감축으로만 취급되는 모양새다. 이를 강력히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온실가스 감축이 수입산으로 달성되더라도 상관없다. 그들에게는 NDC 목표 달성이 중요할 뿐 탄소중립을 향한 수십 년간의 긴 여정에서 한국의 관련 산업 생태계 구축은 관심 밖이다. 국가 잠재 성장력, 연금고갈, 국가장기재정과 국가부채 역시 다루지 않는다. RE100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재생에너지에 당장 올인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언론기사나 유튜브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가 선진국인 만큼 2030 NDC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는 데 지난해 새 정부가 출범하자 이제는 산업경쟁력을 화두삼아 RE100 때문에라도 재생에너지 확대만이 답이라고 한다. 그들은 송전망과 ESS 관련해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비용,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생태계 구축 및 전력시장 제도개선 전략을 심도 있게 고민해 보았는지는 의문이다. 한편으로 영국의 더클라이밋그룹이라는 민간단체에서 주도하는 RE100이 한국에서는 국가과제로까지 당당히 자리잡게 된 것도 세계에서 드문 경우다. 더클라이밋그룹이 RE100을 주장하는 이 시간에도 영국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북해에서 여전히 생산, 수출하고 있다. 자동차 메이저 제조사가 없는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고, 전기자동차(EV)만 판매한다는 계획이지만 여전히 북해에서 화석연료인 석유·가스를 뽑아낼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세기에 걸쳐 개발한 국내 기술 상당수를 우리 손으로 안락사시키려는 정책들이 버젓이 제안되기도 한다. 탈원전은 물론이고 초초임계압 석탄화력 발전기술에 이어 이제는 LNG 발전까지도 기후위기 주범이라며 개발중단을 요구한다. 그런데 가스 터빈은 이제 막 국산화의 고도화 단계에 진입했다. 그 터빈엔진으로 발전기에 이어 항공기 엔진까지 개발함으로써, 에너지 산업 뿐 아니라 국방산업과 우주산업에까지 부가가치를 창출할 미래 기술인데도 말이다.기후변화, 기후위기, 넷제로 등 미사여구(rhetoric)로만 나열된 주장이 국가를 경제위기에서 구할 수는 없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 중국은 실용주의적인 저탄소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아래 미국 주도로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마스터 플랜을 추진하며 탄소무역장벽을 쌓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미국은 석유와 천연가스 역시 꾸준히 생산할 것이다.필자는 올해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의 메인 아젠다가 2030 NDC 감축목표는 아닐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주요국과는 달리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과 시행령에 NDC 감축목표를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국가계획에서 의무적으로 따르도록 법제화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NDC 타령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딜레마다. 2030년이라는 목전의 연도에 감축 시한을 법에서 못 박다 보니 국내 산업생태계 구축과 기술개발을 할 여유도 없게 자책골을 날린 셈이다. 앞으로 수십 년, 아니 100년을 가야 할 저탄소 기술개발과 탄소무역 경쟁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후변화 정책을 감축정책 위주에서 산업육성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E칼럼] 원전 확충보다 더 급한 사용후 핵연료 처리

1954년 세계 최초로 구소련에서 오브닌스크(Obninsk)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된 이래 원자력 에너지는 세계 주요국에서 에너지믹스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 왔다. 특히 1970년대 석유위기를 계기로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자력 에너지는 국가의 에너지 안전보장 강화에 기여하는 대체에너지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와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을 거치면서 확산세가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까지 ‘원전 르네상스’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원전 건설 붐이 일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일부 국가에서는 여론 악화 등으로 인해 원전 축소 또는 폐기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화석연료 수급 및 가격 불안정성과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대처 수단으로 원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특별 보고서는 원전 이용을 확대하는 길을 선택한 국가에서는 수입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줄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점유율이 확대된 저탄소 전력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원전 없이 지속 가능한 청정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성이 큰 데다 비용도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IEA에 따르면 현재 세계 32개국에서 440기의 원전이 운영되고 있으며, 전세계 발전량 중 원전의 비중은 약 10%로 저탄소 발전량에서 수력(17%)에 이어 제2위를 차지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원전을 환경과 기후친화적인 녹색분류체계(그린택소노미)에 포함시키기로 했고,우리나라도 택소노미에서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규정했다. 주요국 정부의 최근 원전 정책을 보면 미국은 경제적인 이유로 폐쇄위기에 몰린 원자로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을 개시하는 한편 소형모듈원자로(SMR)나 제4세대 원자로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발효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의해 도입된 생산세 공제 대상에도 원자력을 포함시켰다. 영국은 지난해 4월 발표한 에너지안전보장전략에서 2050년까지 최대 24GW의 원전 설비용량을 갖춰 원전 발전량 비중을 현재 15%에서 2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신설 계획중인 사이즈웰(Sizewell)-C 원전 프로젝트에는 정부의 직접출자 외에 규제자산 베이스(RAB) 모델에 의한 지원도 적용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2월 원전 의존도를 낮추려던 기존 계획을 철회하고 2035년까지 최소 6기의 대형 경수로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7월에는 세계 최대 발전회사인 EDF를 100% 국유화하고,원전 건설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률도 입안했다. 일본은 올해 5월 성립된 ‘GX(Green Transformation)탈탄소전원법’에서 원전을 이용한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탈탄소 사회 실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했다. 아울러 ‘원칙 40년, 최장 60년’이라는 원전 운전 기간의 틀은 유지하면서 심사 등으로 원전이 정지됐던 기간을 소정의 운전기간에서 제외해 사실상 그 기간 만큼 연장 운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스웨덴은 43년만에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향후 20년 내 원자로 10기를 건설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5기의 원자로를 갖고 있던 핀란드는 올해 4월에 1600MW 규모의 올킬루오토(Olkiluoto) 3호기 가동을 개시했다. 40년만의 새 원자로 가동이다. 네덜란드는 1~1.6GW 규모의 신규원전 2기를 2028년에 착공, 2035년 완공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3%에서 13%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인류에게 청정에너지는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많은 기술적 난제와 불안정성을 갖고 있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온실가스 감축과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두 토끼를 잡을 수 없다. 주요국이 원전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다. 올 여름 폭염 속에서도 우리나라 전력 운영예비력에 여유가 있었던 것은 원전 덕이 크다. 올해 초 수립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원자력 발전량 비중 목표를 2022년 29.6%(실적치)에서 2030년 32.4%, 2036년 34.6%로 끌어 올렸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차질없는 계속운전과 추가적인 원전 건설이 요구된다. 이를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급한 것은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폐기물이 포화상태인데도 부지내 임시저장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정책당국의 태도는 일종의 ‘직무유기’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사용 후 핵 연료 공론화를 시작했지만 여지껏 결론을 못내고 있다. 우리 내부의 여건부터 정비한 바탕 위에서 세계 원전 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온기운 예교협 공동대표

[이슈&인사이트] AI가 인류에 던진 과제

최근 인공지능의 부상으로 AI 전문 지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AI 숙련 전문가를 고용하기 위해 높은 연봉을 기꺼이 지불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멀지 않아 인공지능이 다양한 분야에 널리 이용되면서 인공지능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논란도 커질 것이다. AI시스템은 학습된 데이터만큼만 성능이 향상된다.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되기 때문에 기존의 편견을 지속시켜 잠재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개인적 차원에서 차별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특히 AI가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고 삶의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 영향력이 긍정적이고 공평하며, 인간의 가치에 부합하도록 하는 인공지능의 윤리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윤리적 문제를 소홀히 하면 사회적 혼란, 기술에 대한 신뢰 및 긍정적인 발전의 기회 상실 등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해로운 방식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또 윤리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AI는 의도치 않게 물리적(로봇공학의 경우) 또는 심리적(딥페이크 또는 잘못된 정보의 경우)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AI 시스템의 자율성이 높아짐에 따라 행동에 대한 책임 부여가 복잡해지고 있는다. AI가 결정을 내릴 때 또는 일이 잘못됐을 때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렵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용자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AI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잠재적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특히 AI가 특정 부문에 집중해 해당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고용 시장을 혼란에 빠뜨려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거나 증권거래와 투자에서 여러 AI 시스템이 유사한 데이터와 전략을 사용하면 의도치 않게 시장 추세를 증폭시켜 과대평가와 그에 따른 폭락을 초래하면서 금융 거품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AI의 성장을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고, 혁신이 사회적 가치와 규범에 부합하도록 보장할 수 있도록 인간의 가치, 권리,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개발, 배포, 운영하는 ‘윤리적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른바 8가지 핵심원칙이다. AI가 편견을 강화하거나 차별하지 않도록 공정하게,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AI의 모든 행동에 대한 오류나 피해에 대한 구제를 책임있게, 개인 데이터의 안전하고 합의된 사용을 의무화하고, 일관되고 예측가능하게 작동하도록 안전하게, 인류를 위해 유익하도록, 그리고 AI가 인간의 결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강하는 것으로 인간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마지막으로 AI 윤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AI가 진화하는 사회 규범에 부합하도록 한다. 전반적으로 윤리적 AI는 단순히 설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속적인 감독과 다양한 신념 및 가치와의 뿌리 깊은 연관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역동적인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윤리적 AI를 신념과 가치에 대한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질적으로 윤리적 AI를 어떻게 담보하고 보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 윤리적 AI 관행을 장려하는 정책이 필수이다. 여기에는 알고리즘 의사결정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데이터 사용에 대한 사전동의를 얻는 등 윤리적인 AI로서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업계 전반의 표준을 마련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윤리적 무결점을 검증하는 것은 AI 시스템이 실제 세계에 적용되기 전에 설계와 동작을 면밀히 조사하는 엄격한 테스트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산업 분야에 AI 적용에 있어서 안전하고,비용효과가 있다는 점을 적절한 기술로 보장할 수 있는 AI 테스트 관련 기술기업 육성과 연구개발(R&D)에 대한 정부차원의 정책마련이 시급하다.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데스크칼럼] 초전도체주, 금융당국의

잔치는 끝났다. 초전도체를 둘러싼 진위 논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보도로 사실상 막이 내리는 모습이다. 학문적으로는 ‘LK-99’라는 물질이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체인지를 놓고 아직 매듭이 남은듯하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폭풍이 몰아친 후 폐허만 남은 형국이다.초전도체 이슈는 지난달 22일 국내 퀀텀에너지연구소가 "LK-99가 섭씨 127도에서 초전도성을 나타낸다"는 내용의 논문을 공개하며 촉발됐다.초전도체는 물리학계에서 100년 이상의 난제였다. 현재 버려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전기 에너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신물질 개발. 이 위대한 연구가 한국의 한 연구소에서 풀렸다니. 전세계 학계가 들썩였다. 하지만 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질이론센터,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 등 세계 유수한 연구기관의 검증 결과는 회의적이었다.문제는 주식시장에서 벌어졌다. 곧바로 테마가 형성됐다. 시장에서는 서원, 서남, 신성델타테크, 덕성, 대창, 파워로직스 등의 종목이 거론됐다. 거래량은 폭발했고 주가는 치솟았다.서원의 경우 7월 31일 5만9000주에 불과했던 거래량이 첫 상한가를 기록한 8월 2일 19000만주를 넘어섰다. 거래량이 322배 늘어난 셈이다. 서원은 4일에 거래량이 1억주를 넘기도 했다. 이는 총상장주식수 4747만주의 2배가 넘는다.기간을 넓혀보자. 본격적으로 초전도체 테마주가 움직인 8월초부터 네이처의 발표 이후인 8월 18일까지 13거래일간의 거래량을 분석하면, 서원의 거래량은 4억7275만주로 총상장주식의 10배 규모다. 거래대금은 1조354억원. 테마 형성 이전 시총이 610억이었으니 시총의 17배가 회전한 것이다.서원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서남은 같은 기간 한 번의 거래정지가 있었음에도 거래량이 3억9810만주를 기록해 상장주식의 18배가 회전됐다. 하루에 총주식의 2배 물량이 13일간 계속 거래된 셈이다. 거래대금은 3조6186억원으로 직전 시총의 32배 수준이다. 덕성, 신성델타테크, 대창 등 관련주 대부분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전세계가 놀란 신기술을 기대했으니 이 같은 폭발적 거래 패턴이 이해된다 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해당 회사가 관련성을 부인했음에도 주가는 요동쳤다는 점이다. 서남은 지난 7일 ‘어떠한 연구협력도 없다’고 밝혔지만 해당일 주가는 상한가를 지켰고 14·15일 연속 상한가를 띄었다. 덕성 역시 16일 관련성을 부인하지만 15·16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다.정작 이 기간 대주주들은 먹튀 행태를 보였다.서남은 최대주주였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코리아 등이 지난 14일 주식 225만주를 장내에서 매각했다. 서원은 16일 최대주주인 조시영 회장의 동생 조시남씨가 보유 주식 전량인 59만3520주를, 파워로직스는 최대주주인 탑엔지니어링의 자회사인 에코플럭스가 12만6060주를 각각 매도한다.아이러니하게도 초전도체는 증시에 ‘가뭄에 단비?’ 같은 재료였다. 올해 증시를 주도했던 이차전지주의 화려한 피날레를 초전도체주가 이어받아 증시 자금을 빨아들였다. 하지만 5배 가까운 폭등 이후 남은 건 ‘개미들의 무덤’ 위로 원위치 뿐이다.노벨상까지 운운했던 달콤한 테마가 증시를 휩쓰는 동안 정작 위험을 경고하는 금융당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는 시세조종에 관해 다음처럼 고지하고 있다. "증권시장의 자유로운 수급상황에 의해 정상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주가를 특정세력이 인위적으로 상승·하락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특정 종목의 주식 거래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혹시라도 과도한 개입이 위험하다고 한다면, 어떤 개미들이 단 13일간 전체 시총의 30배, 총상장주식의 18배를 거래시킬 수 있는지 묻고 싶다.김현우 자본시장부장

[EE칼럼] 미래 산업을 위한 미국의 전력망 구축 시사점

우리 몸 속에는 전기가 흐른다. 전기 신호가 심장을 뛰게 하고 근육을 움직이며 뇌에 자극을 전달한다. 이를 생체전기(bioelectricity)라고 한다. 사람의 몸은 가만히 있을 때 약 100W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워쇼스키 자매는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이를 영화 매트릭스에 구현했다. 전쟁 중에 인간이 기계의 에너지원인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지 못하게 방해하자 기계들은 인간을 붙잡아 생체전기를 뽑아내서 사용한다. 의료분야에서는 생체전기를 질병 진단과 치료에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제세동기는 심장이 멈췄을 때 고압전류를 아주 짧은 시간 심장에 통하게 해서 정상적인 맥박으로 회복시킨다. 우울증치료제인 프로작은 몸속에서 액체 형태의 전기로 바꿔서 사람의 기분을 전환한다. 흔히 인바디라고 부르는 생체측정 장치는 생체전기 저항분석법을 이용해 체지방량을 예측한다. 다리와 팔에 약한 전류를 통과시키는데 근육은 전기가 잘 통하고, 지방은 잘 통하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다. 체중에 비해 흐르는 전기가 많으면 근육이 많은 것으로, 체중에 비해 흐르는 전기가 적으면 지방이 적은 것으로 추정한다. 전기는 인체 뿐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최종 사용부문의 전기화, 에너지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핵심수단으로 강조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내연기관차, 가스보일러와 같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술을 전기차나 히트펌프와 같은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기술로 대체하고 있다. 이는 저탄소 에너지원을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전력망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전력망의 용량과 유연성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미국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미국은 크게 서부·동부·텍사스주 등 3개 전력망으로 구성돼 있다. 송전 용량 제약으로 이들 전력망 간에는 전력 송전이 거의 없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에 주요 대도시가 있어 인구와 산업이 집중됐다. 특히 수력발전소는 동부와 서부, 화력발전소는 동부와 중부에 몰려 있어 기존 전력 시스템에서는 장거리 송전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이 증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풍력발전은 중부, 태양광발전은 남부의 자원량이 우수하다. 중부와 남부의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동부와 서부로 보내야 하는데 현재 송전망 용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발전용량은 1250GW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전력망 접속 대기중인 용량은 2000GW 이상이다. 태양광 947GW, 풍력 300GW, 저장장치 670GW가 접속 대기 중이다. 전력망에 접속하려면 평균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늘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제정으로 향후에는 접속대기 기간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늘어나는 청정에너지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2035년까지 총 송전 용량을 현재보다 1~3배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2026년에 건설을 시작한다고 해도 매년 2253~1만6254km의 송전선을 새로 깔아야 하는 셈이다. 사정은 만만치 않다. SunZia 송전망 건설 사업은 남부 뉴멕시코 풍력단지에서 서부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약 800km 길이의 500kV 2개, 송전 용량은 4.5GW의 선로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2006년 사업을 시작했지만 지역주민, 환경단체, 지자체, 군부대 등과의 장기간의 협의 과정을 거치며 올해 하반기에 건설을 시작해 2025년에 준공 예정이다. 무려 20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이에 미국 에너지부(DOE)는 2022년 1월 ‘더 나은 전력망 구축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고 같은해 11월에 미국 전력망 현대화와 확장에 13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말 미국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신규 발전원의 계통연계 간소화 규정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 규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송전망 제공자는 개별 사업 단위가 아닌 여러 사업들을 묶어 전력망 접속 검토를 해야 한다. 사업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것에 비해 동시에 여러 사업을 검토할 수 있으므로 접속 대기중인 사업들을 처리하는데 효율적이고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접속을 희망하는 사업자는 보증금을 납부해야 하며, 토지 허가 또는 건축 허가를 획득해야 한다. 접속 신청을 철회하면 철회 위약금을 부과한다. 투기적이고 실행이 어려운 접속 신청을 억제하고, 송전망 제공자가 상업운전에 도달할 가능성이 큰 접속 신청에 대한 검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이다.둘째, 송전망 제공자는 정해진 기한 내에 접속 검토를 마쳐야 하며,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다. 또 표준화되고 투명한 검토 절차를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접속 신청 처리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 셋째, 단일 접속 지점 하에 있는 지역에 복수의 발전설비를 설치할 때 접속 신청을 한 번만 해도 되도록 허용한다. 또한 접속 신청자는 커다란 변동사항이 아니라면 새로운 접속 신청 없이 발전설비를 추가할 수 있다. 발전설비와 저장장치를 동시에 운용하는 사업을 위한 조항이다. 이 규정은 태양광발전과 같은 인버터 기반 자원에 대한 모델링 및 성능 표준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기 사용량은 2013년 4748억kWh에서 10년 뒤인 2022년에는 5479억kWh로 약 15% 증가했다. 반도체, 이차전지, 데이터센터 등에 대한 투자 확대와 전기차 확산 등으로 2036년에는 7032억kWh로 2022년에 비해 약 2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 몸에 전기가 잘 흘러야 건강하듯이, 우리 산업에도 전기가 잘 공급될 수 있도록 전력망 관련 규제와 절차를 개선하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곽인찬 칼럼] 중국, 중진국 함정에 빠지나

중국 경제가 심상찮다. 세계 경제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중국은 수출 세계 1위 국가다. 경제 규모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다른 나라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무엇보다 부동산이 불안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1990년대 초반 일본 경제가 무너질 때 집값, 빌딩값이 폭락했다. 그 뒤 일본은 근 30년 동안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도 진앙은 부동산이었다. 리만 브라더스를 비롯해 대형 금융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곧 비우량 주택담보채권에 대량으로 투자했다. 집값이 급락하자 채권은 휴지조각이 됐다. 중국에서 부동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요즘 중국 경제는 여기저기 골병이 든 듯하다. 성장률은 뚝 떨어졌고, 수출은 몇 개월째 감소세다.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를 보이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온다. 게다가 청년실업률(16∼24세)은 6월에 21%를 넘어섰다. 7월 통계는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쩔쩔매다니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세계은행은 10년 전 ‘차이나 2030’이란 보고서를 냈다. 중국 국무원 산하 싱크탱크 발전연구중심(DRP)과 공동으로 썼다. 좀 오래된 자료이지만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보고서에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을 다룬 대목이 있다. 1960년에 중진국이던 101개 국가 가운데 불과 13개국만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한 나라는 일본, 홍콩, 싱가포르, 아일랜드, 대만 그리고 한국 등이다. 반면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의 여러 나라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중간소득 국가에 도달했지만 선진국으로 점프하지 못했다.보고서가 중진국 함정을 다룬 이유는 명백하다. 중국도 자칫 그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2030년 전에 고소득 국가로 진입하려면 6대 개혁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시장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구조개혁을 단행하라. 둘째 혁신의 속도를 높여라. 셋째 ‘그린’ 경제로 가는 기회를 잡아라. 넷째 모두를 위한 사회보장 제도를 구축하라. 다섯째 추가 세수를 통해 재정 시스템을 보강하라. 여섯째 세계 시장과 통합을 가속화하라.말이 쉽지, 구조개혁은 뼈를 깎는 작업이다. 예컨대 보고서는 국가 역할을 축소하고 민간부문을 강화하라고 주문한다. 실제론 어떤가?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전례없이 민간기업을 옥죄고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을 대표하는 혁신기업이다. 그러나 창업자 마윈은 정부에 대고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대에서 사라졌다.세계 시장과 통합도 갈 길이 멀다.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을 앞세워 독자 노선을 걷자 미국은 디커플링 전략으로 맞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앙숙이다. 그러나 대중 견제만큼은 일심동체다. 바이든은 얼마전 "중국은 똑딱거리는 시한폭탄"이라며 중국을 자극했다. 지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은 첨단기술 공급망 3각 연대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반도체의 경우 대만까지 합해서 칩4 동맹은 사실상 반중 연대다.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지 여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세계은행 보고서를 잣대로 재면 선진국 도약은 쉽지 않아 보인다. 40여년 전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 네 글자를 외교 기조로 삼았다. 힘을 더 비축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라는 뜻이다. 특히 초강대국 미국과 다투지 말 것을 당부했다.2200년 전 한나라의 명장 한신은 젊을 때 불량배 바짓가랑이 밑을 긴 적이 있다. 겁쟁이 취급을 받았지만 장차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당장의 치욕을 참았다. 한신과 덩샤오핑은 닮은 구석이 있다.사실 중국 부동산이 곧 무너질 것처럼 보는 건 과장된 측면이 있다. 부동산 거품을 빼기 위해 돈줄을 조이는 건 보기에 따라선 더 큰 재앙을 막는 과감한 결정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압축성장에 따른 진통기에 들어선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중국은 중진국 중에서도 상위 소득국가에 속한다. 조금 더 참으면 선진 고소득국가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바로 이런 때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게 과연 현명한 전략일까. 어쩌면 중국은 지금 제 손으로 중진국 함정을 파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가 뒤틀리면 정치고 뭐고 다 소용없다. 중국이 덩샤오핑의 선견지명과 한신의 지혜를 곱씹어 볼 때다.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기자의 눈] 잼버리 파행에도 국회는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남 탓’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남 탓 하는 모습을 비유한 말이다.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국회 여야의 오늘날 현주소이기도 하다. 여야는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를 앞두고 지금까지 8개월간 다양한 현안 문제를 해결하고자 치열하게 임시회를 열었지만 지독하게 남 탓만 되풀이하고 있다. 연초부터 금융·마약·부동산 등 여러 현안을 두고 핑퐁질을 반복하면서 ‘덮어두자’는 식의 정치권 관성은 결국 세계잼버리대회 파행이라는 문제를 야기시켰다. 문제 해결을 제쳐두고 남 탓만 반복하던 정치권의 고질병으로 결국 국제 망신만 얻은 셈이다. 하필 잼버리 기간 동안 숨 막히는 폭염이 이어지는 등 불가피한 점도 있었지만 간척지인 새만금에 야영장을 마련했으니 그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형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미리 알았을 터다. 대회 개최 전부터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우려도 이미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회 기간 중에도 ‘곰팡이 달걀’과 시중보다 비싼 ‘바가지 얼음컵’ 등 먹거리 문제에 수백명이 탈진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영국과 미국 등 일부 참가국들이 텐트를 접고 퇴영하기도 했다. 세계 행사인 만큼 준비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5년이 넘는 준비 기간, 5명의 공동위원장, 1000억원의 예산이 무색할 정도로 부실하게 진행됐다.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 전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으로 겨우 마무리했지만 스카우트 대원들이 떠난 자리에는 정쟁만 남았다. 공동위원장 5명에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3개 부처 장관이 선임됐다. 그러다 보니 관가에서는 책임이 분산돼 버렸다. 정계에서는 여야가 유치 시기와 개최 시기를 두고 다투고 있다. 여야는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던 문재인 전 정권 때 유치됐고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 개최했다는 점에서 해결보다 정쟁에 힘을 쏟고 있다. 몇 년 전 풍경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난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을 마무리한 뒤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치한 결실’, 더불어민주당은 ‘짧은 기간 준비를 잘한 덕’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과 상반되는 말이 있다. ‘반구제기(反求諸己)’다. 화살이 적중하지 않았을 때 본인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남을 탓하지 않고 본인의 자세와 실력을 탓하는 자세다. 핑계댈 거리는 지천에 깔렸다.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서, 입고 나온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기 싫은 사람을 마주쳐서 등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남 탓 하기는 쉽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정책을 좌우하는 사람들이라면 스스로를 먼저 살펴 문제점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채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오세영 기자수첩

[EE칼럼]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거는 기대

문재인 정부 5년간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에너지계획의 기본에서 많이 벗어났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에너지믹스를 합리적으로 재정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조화시키고, 전력망을 적기에 건설하고, 에너지 시장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전 정부의 영향이 너무 커서 새 정부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착수됨에 따라 다시 기대를 가져본다. 전력수급계획은 미래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이를 어떻게 공급할지 결정하는 것이 기본적인 틀이다. 지금까지 전력수요 예측은 경제 성장률 예측치와 가전기기의 교체주기 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기후온난화 대응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전기자동차와 인덕션 레인지 처럼 화석연료를 사용하던 것 들이 전기화되는 것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크게 미흡했다. 탄소중립을 위해 전통적인 화석연료 사용분이 전기로 전환되는 부분도 전력수급계획에서 반영돼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정부에서 수립한 ‘탄소중립 2050’ 계획은 원전 증설을 배제한 채 태양광을 중심으로 목표를 달성하려다 보니 국민 1인당 1억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 돼 버렸다. 이 또한 바꾸어야 한다. 둘째, 전력 생산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가 확대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낮을 때에는 실시간으로 어떻게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지에 대해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이 들쭉날쭉해도 다른 발전원이 출력을 조절해줘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짐에 따라 다른 발전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30% 이하로 하는 방식의 전력 수급은 특정 지역에서는 이미 초과해 버려서 이제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시간으로 전력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도 이번 전력수급계획에서는 고려돼야 한다. 특히 태양광이 많은 전남 지역이나 풍력이 많은 제주 지역에는 더 이상 재생에너지를 짓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해결한다고 또 돈을 써가면서 문제를 더 키울 이유는 없다. 또 전력망을 안정화하는 비용도 재생에너지 때문이라면 재생에너지 발전단가에 포함시켜야 한다. 셋째, 재생에너지 공급 일변도의 이전 계획은 부지도, 사업자도 정해지지 않은 재생에너지 건설 용량을 확보해 뒀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에 전력망을 연결하는 데는 그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현재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준공돼 전력망의 연결되지 않거나 가까스로 우회적으로 전력을 송출할 수밖에 없는 허수의 발전원이 상당수 있다. 따라서 건설 기간이 짧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전력망 계획에서 우선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와 같이 건설 기간이 10년이 넘는 발전소의 경우 건설 도중에 전력망을 연결할 수 있다. 따라서 발전소를 짓는 것 뿐 아니라 전력망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넷째, 무엇보다도 에너지 계획은 안정적 공급과 사회적비용 최소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이 원칙을 ‘안전’과 ‘깨끗’이라는 해괴한 원칙으로 바꿔놓았다. 이 원칙이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도 이번 전력수급계획을 통해서 확인해 봐야 한다. 다섯째, 환경급전도 손질해야 한다. 환경급전은 전력을 공급할 때 연료비가 가장 싼 발전원부터 한전이 구입하도록 한 것으로 연료비가 들지 않는 재생에너지가 가장 우선 구매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연료비만 들어가지 않을 뿐 발전단가는 가장 높다. 결과적으로 전남지역에서 한전은 값싼 원자력 전기를 줄이고 이 보다 4배 비싼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서 국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그러니 한전은 적자를 면할 수가 없다. 연료비가 아니라 발전단가가 싼 순서로 전기를 사들이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제11차 전력수급계획은 어떻게 하면 앞으로 한전이 적자를 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을 담아야 한다. 전력수급계획을 불합리하게 세워놓고 전기 요금을 더 올리자고 하면 안된다. 새로운 전력수급계획에도 한전이 계속 적자를 보는 구조라면 그것은 국민을 위한 계획이 아니다.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정권의 방송장악과 정상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처럼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변한 것이 별로 없다. 100여 명의 전 정권 임명 인사들이 여전히 공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공영방송은 더욱 그렇다. 지난 5월 30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면직되면서 정권교체 1년이 지나서야 겨우 방송개편의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2개월이 지나면서 KBS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원이사장 및 이사들의 면직이 진행되고 있다. 정권교체와 함께 제일 먼저 방송을 장악하고 이후 KBS와 MBC의 모든 시사프로그램의 PD, 진행자, 작가, 출연자들을 교체하며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었던 문재인 정부에 비하면 거북이걸음이 아닐 수 없다. 여론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영방송은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중립성과 독립성이 생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권교체와 함께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것은 뭐라고 포장해도 반민주적 행태임이 분명하고, 정치권이 작금의 사태를 놓고 방송장악이냐, 정상화냐를 두고 다투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정권을 잃은 쪽은 ‘장악’, 잡은 쪽은 ‘정상화’라 주장하니 논란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는 말이다. 필자가 보기엔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나 똑같이 언론장악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언론장악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그 근본 이유는 박근혜 정부에서의 공영방송은 비교적 여야의 주장을 공정하게 방송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에 비록 경영진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임명됐지만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가장 큰 노조가 모두 친 민주당 성향이 강했고 자연히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은 집권 후 3개월 만에 완성됐다. KBS 이사회와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 이사들에게 압력을 가해 사퇴를 유도했는데, 그때만 해도 집권세력의 막무가내 사퇴 요구가 통했을 때였다. 그런데도 KBS 사외이사였던 강규형 명지대 교수가 강력히 저항하자 말도 안되는 법인카드 불법 사용을 이유로 면직 처분했다. 강 교수는 소송을 냈고 4년이 넘는 외로운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면직이 불법이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경영진 교체 후엔 인사권을 활용해 국장급 인사를 단행하고, 이후 프로그램 개편, PD와 작가 교체 등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 인사들을 모두 방송계에서 퇴출시켰다. KBS는 특히 TV와 라디오의 모든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들을 막대한 출연료를 줘가면서 외부인사로 채웠는 데, 그들이 모두 정권에 우호적 인사들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심지어 KBS 라디오의 아침 시사프로그램인 ‘최강시사’는 당시 최강욱 변호사를 진행자로 삼아 프로그램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가 불과 한 달여 만에 최 변호사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가는 바람에 명칭만 그대로 남은 케이스다. 이들 중 대다수는 지금도 남아 그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이들은 여전히 친 민주당 인사들을 중점적으로 출연시키고 윤석열 정부를 희화화시키거나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념과 가치를 공유한 사람들에게 막대한 보수가 지급되는 일자리를 주는 것은 물론 그들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향후 정계진출의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이 더 위험한 이유는 방송사 노조들이 문재인 정부와 경영진에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때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에서는 견제세력이 전혀 없었다는 게 근본 문제였다. 친정부적 행태를 보이다가 윤석열 정부로 바뀌니 반정부적으로 돌아서서 마치 정권을 견제하는 정론처럼 ‘화려하게’ 변신했다. 그래서 이들을 공영방송이라기 보다 ‘노영방송’이라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하려면 정권으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그러나 방송노조가 경영과 인사, 심지어 편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 아래서는 정상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정권교체와 함께 경영권 개편을 위해 공영방송이 흔들리는 사태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처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수 없다면, 아예 민영화해 국민의 혈세라도 아끼는 것이 좋지 않겠나.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중국 경제가 시한폭탄?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은 똑딱거리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중국은 연간 8%씩 성장했다. 지금은 연간 2%에 가깝다"고 말했다. "중국은 곤경에 처해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중국 경제를 두고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진다. 디플레이션이 걱정이다, 청년실업률이 다락같이 올랐다, 수출이 예전같지 않다 등등 분야도 다양하다. 압권은 부동산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거다. 이러다 중국판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터질 수 있다거나 일본식 불황이 올 거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화불단행(禍不單行), 곧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더니 지금 중국 경제가 꼭 그렇다. 그런데 가만, 중국 경제가 과연 시한폭탄일까? 행여 미국을 비롯해 서방국들은 중국 경제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아닐까? 중국 경제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자. ◇ 디플레이션 우려 지난 9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0.3%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2021년 2월(-0.2%) 이후 2년5개월 만이다. 선행 지표인 생산자물가는 마이너스로 진입한 지 오래다. 디플레이션 곧 저물가는 일본을 30년 가까이 괴롭힌 원흉이다. 디플레이션은 사람으로 치면 시름시름 앓는 병이다. 금방 숨이 넘어가는 건 아니지만, 두고두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우리말 골병이 딱 어울린다. 물가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소비할 마음이 없다. 얼마 뒤면 가격이 더 싸지기 때문이다. 소비가 줄면 기업은 생산과 투자를 줄인다. 생산·투자가 줄면 공장이 서고, 공장이 서면 고용이 준다. 고용이 줄면 소비가 준다. 디플레이션 악순환이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3년 가까이 이어오던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했다. 이를 계기로 억눌려 있던 ‘보복소비’가 나타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웬걸, 중국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부동산을 비롯해 주변 여건이 소비를 짓누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디플레이션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 통계조차 숨기는 청년실업률 이론상 공산주의 국가에선 실업이 있을 수 없다. 생산수단을 독점한 국가가 모든 이에게 일자리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딴판이다. 지난 6월 중국 청년실업률(16∼24세)은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일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도 청년실업이 늘 골치다. 그러나 중국에 대면 양반이다. 7월 한국 청년실업률(15~29세)은 6%에 머물렀다. 두 나라 청년실업률은 대상 연령이 다르다. 하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중국의 실제 청년실업률은 공식 통계를 배 이상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는 "(7월) 20일 현지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베이징대 장단단 교수팀의 분석 결과 지난 3월 기준 중국의 16∼24세 청년층의 실제 실업률은 46.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보도했다. 한국 청년의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은 지난 7월 16.8%를 기록했다. 중국엔 탕핑족이 있다. 가만히 누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캥거루족도 있다. 구직난 속에 취업을 포기하는 ‘전업자녀(全職兒女)’라는 말까지 나왔다. 식사와 청소 등 집안일을 하는 조건으로 부모로부터 급여를 받는 청년을 가리킨다. 정식 근로계약을 맺기도 한다는 점에서 캥거루족과 차이가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청년실업률을 공개하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푸링후이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15일 "올해 8월부터 청년실업률 공개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된 이유는 경제·사회 발전으로 노동 통계를 좀 더 최적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들어도 군색한 변명이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청년 실업률이 이처럼 높다니 놀랍다. 어느 나라든 청년 실업은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이다. ◇ 태풍의 눈 부동산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은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개발회사다. 1992년에 설립됐고 2007년 홍콩 증시에 상장됐다. 광둥성에 본사가 있고, 종업원은 7만명에 이른다. 이렇게 큰 회사가 지난주 만기가 돌아온 액면가 10억달러 채권 2종의 이자 2250만달러(약 300억원)를 지불하지 못했다. 앞으로 한달 주어진 유예 기간 안에 이자를 갚지 못하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다. 어려움에 빠진 건 비구이위안 뿐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새 중국 부동산 업체들은 정부가 돈줄을 죄면서 허덕거리고 있다. 이미 지난 2021년 헝다(恒大·에버그란데)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헝다는 비구이위안만큼 큰 부동산 개발업체다. 헝다는 현재 채권자들과 부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또다른 부동산 개발회사인 완다(萬達)도 지난달 디폴트 위기를 겪었다. 부동산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이를 만큼 중요한 산업이다. 부동산이 무너지면 경제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벌써 불똥이 금융권으로 튈 기세다. 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까 조마조마하다. 중국에서 발행한 회사채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을 담보로 한다. 부동산 값이 급락하면 정크 본드가 속출하고, 그 손실은 회사채에 투자한 금융사에 돌아간다. 지난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때 리만 브라더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비우량 주택담보채권에 대량 투자했다 파산했다. 부동산 시장 불안이 중국판 리만 브라더스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방정부 재정도 불안하다. 중국에서 땅은 지방정부 소유다. 부동산 개발회사는 지방정부에 돈을 주고 땅 사용권을 얻는다. 토지 사용권을 팔아서 지방정부가 올리는 수익이 전체 수익의 약 40%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이 수익이 줄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지방정부 재정은 더욱 나빠진다. 중국이 1990년대 초 일본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나온다. 당시 일본은 집·건물 가릴 것 없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불황 수렁에 빠졌다. 가계와 기업이 오로지 빚 갚기에 몰두한 나머지 소비가 사라지고 투자와 생산이 줄었다. 이를 ‘대차대조표 불황’이라 한다. ◇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중국이 처한 어려움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견제 전략과 시기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슬로건 아래 고율 관세로 중국의 목을 졸랐다. 트럼프는 2018년 1월 중국산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30~50%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신호탄으로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다. 2019년 5월엔 행정명령을 내려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가 미국 기업으로부터 핵심 부품을 구입하는 길을 차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이 제동을 걸면 최첨단 반도체 생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마당에 또다른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일본, 대만이 미국에 동조하는 칩4 동맹 이야기까지 나온다. 21세기에 반도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중국 경제가 타격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미국은 세계 1위 경제대국 지위를 넘보는 나라를 용납하지 않는다. 1980년대 일본 경제는 그야말로 잘나갔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이 나온 것도 바로 이때다. 그러자 미국 의회는 ‘일본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던 1985년 미국 정부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를 확 끌어올렸다. 인위적인 엔고는 일본 경제에 자산 거품이라는 치명상을 안겼다.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은 1980~1990년대 외교노선을 도광양회(韜光養晦) 네 글자로 정리했다. 자기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힘을 더 키울 때까지 미국에 맞서지 말하는 뜻으로 해석됐다. 반면 시진핑 국가주석의 외교노선은 유소작위(有所作爲)로 요약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은 적극 나서서 이뤄낸다는 의미다. 떨쳐 일어난다는 뜻의 굴기라는 용어도 자주 쓰인다. 심지어 전랑(戰狼) 외교라는 말까지 나왔다. 전랑은 늑대전사란 뜻이다. 글로벌 패권에 도전한 시 주석의 외교 전략이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고, 미국은 즉각 반응했다. 덩샤오핑이 오늘의 미·중 관계를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 과도한 우려인가? 사실 중국 부동산 기업들이 처한 어려움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시진핑 주석은 "집은 사는 곳이지 투기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을 되풀이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집값 거품을 잡기 위해 2020년 8월 이른바 삼도홍선(三道紅線) 규제를 도입했다. 3대 레드라인은 부채비율 70% 미만, 시가총액 대비 부채비율이 100% 미만, 단기 차입금 대비 보유 현금 1배 이상을 말한다. 셋 중 하나만 걸려도 신규 대출을 끊고 기존 대출은 회수하는 강력한 규제다. 헝다 등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바로 이 레드라인에 걸렸다. 부동산 거품 제거는 당국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엔 늘 대가가 따른다. 돈줄을 죄는 긴축에 경기침체라는 대가가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동산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달 하순 시 주석은 당 중앙정치국 회의를 열어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회의는 "부동산 시장 수급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부동산 정책을 적시에 조정하고 최적화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회의에서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시 주석의 언급이 빠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당국이 부동산 시장을 지원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 인민은행은 단기 정책금리를 잇따라 인하하는 등 고위층의 ‘정책의 최적화’ 방침에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기획재정부 산하 국제금융센터는 9일 ‘불안한 중국 경제, 위기인가?’라는 제목으로 외부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국 위기론은 과도하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현재의 경기 부진이 중국 정부가 구조조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 기인하고 있는 만큼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부동산 시장 위축을 비롯한 경기 하방 압력은 지속될 것으로 봤다. ◇ 위기 유의하되 과장은 피해야 세계은행은 2006년 보고서에서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 현상을 깊이 분석했다. 왜 어떤 나라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어떤 나라는 중진국에서 정체 또는 후퇴하는지 원인을 살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등이 정체에 빠진 대표적인 나라다. 반면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선진국 도약에 성공했다. 그 차이는 경제체질 혁신과 과감한 투자에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때 함정에 빠질 위험에 처했다. 그러나 IT 혁신으로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했고, 연구개발(R&D) 투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스템 반도체 절대강자인 TSMC 사례에서 보듯 대만 역시 체질 개혁으로 함정을 피해갔다. 중국이 한국과 대만처럼 중진국 함정을 슬기롭게 극복할지는 미지수다. 미국 등 서방의 견제는 또다른 변수다. 지금과 같은 국가주도형 경제체제가 머잖아 한계를 드러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중국 경제 위기론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이슈다. 다만 유의하되 현상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서방 정치인이나 언론은 중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려는 또는 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언급한 중국 성장률 수치도 부정확하다. 그는 "2%에 가깝다"고 했지만,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1분기 중국 경제는 전년동기에 비해 4.5%, 2분기는 6.3% 성장했다. 중국은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잡았다. 7월 소비자물가가 2년 5개월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한달치로 디플레이션 여부를 가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동산 시장도 ‘정책 최적화’로 방향을 튼 만큼 당분간 동향을 지켜보는 게 현명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중국 경제 곳곳에 불안한 구석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압축성장 이후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것도 흔한 일이다. 다만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곤란하다. 한·중 두 나라 경제는 깊숙이 연결돼 있다. 비중이 점차 줄곤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한국이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냉정하게 봐야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GLOBAL-MARKETS/VIEW-USA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디폴트 위기에 빠지면서 중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상하이에 있는 비구이위안의 상하이 센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CHINA-ECONOMY/PROPERTY-INVESTMENT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이 베이징에 건설 중인 주거용 건물(8월11일 촬영).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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