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금)



[이슈&인사이트] 무리한 의료개혁, 대학교육도 흔들린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3.14 13:54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추진 중ㅇ인 의료개혁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심각하다. 1만 명이 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가 병원을 떠났고, 의대 학생들도 학업을 중단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의대 교수조차 집단 사직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의사 수 증가로 인식하는 여론조사를 믿고 밀어붙이는 결과다. 의료 체계가 마비되는 혼란의 책임은 고스란히 정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를 8개월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의 입학정원 증원은 고등교육법 제34조 5(대학입학전형계획의 공포)'에 분명하게 규정된 대학입시 4년 예고제'를 무시한 파행이다. 1981년 국보위 시기의 혁명적인 졸업정원제 이후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뜯어고쳤던 대입 제도 수시 개편에 따른 수험생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1995년 5·31 교육개혁에서 처음 도입한 제도가 '예고제'다.


대학의 입학정원을 교육부가 쥐고 있는 현실에서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3조 ③항의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학과 개편 및 정원 조정이 있는 경우'를 교육부 장관이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면 '예고제'는 통째로 사문화(死文化)돼버린다. 의료개혁을 위한 의대 입학정원의 조정이 '대학 구조개혁'에 해당한다는 교육부의 주장은 억지다.


의대의 입학정원을 확대한다고 당장 의사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2025년에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은 아무리 빨라도 2035년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의사로 활동하게 된다. 의예과·의대 6년을 마치고 의사면허를 받고 나서도 다시 4년 이상의 전공의·전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에 대한 정부의 압박도 지나치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하는 공직자도 선거를 핑계로 사표를 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련 과정의 전공의가 전문의의 길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정부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시도는 법치가 아니다. 오히려 헌법 제15조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면허정지'가 사법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을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더욱이 전공의가 수련병원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도 아니다. 1년 단위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다. 계약 연장을 포기하고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전임의가 일반의로 취업하는 것을 막는 것도 억지다.




수련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도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6년 후 100개 수련병원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 지금도 수련병원은 37%의 전공의와 16%의 전임의에 의해서 운영되는 비정상 상태다. 수련병원은 36시간 연속 근무와 주당 77.7시간의 살인적인 근로를 강요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보수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의대 정원은 한꺼번에 65%나 늘이면 100개 수련병원은 87%가 수련의로 채워지게 된다. 전문의의 수련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도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상급종합병원을 무턱대고 수련병원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 수련의를 지도할 '교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대 입학정원의 지나친 증원이 대학 사회에 미치게 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은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신입생만 의대로 쏠려가는 것이 아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재학생의 이탈이 더 심각한 문제다. 전국의 자연대·공대·약대가 초토화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애써 만들어 놓았던 반도체 계약학과도 유탄을 피하기 어렵다. 파장은 이공계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기하·미적분을 선택해서 문과계열의 학과에 진학한 재학생도 이동의 기회를 엿보게 된다. 의대 증원의 파장이 가라앉을 때까지 전국의 모든 대학이 재학생의 연쇄 이동으로 감당할 수 없는 몸살을 앓게 될 수밖에 없다. 사교육 시장만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의사를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 '자유·공정·정의'를 외치면서 '성공한 과학대통령'을 꿈꾼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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