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금)



[이슈&인사이트] PF시장 부실과 디레버리징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3.18 08:22

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썰물이 오면 준비되지 않은 배는 갯벌에 남겨진다. 마찬가지로, 최근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 아래에서 신용 창출이 제한되면서 한때 넘쳐나던 부동산 시장의 자금도 말라가고 있다. 이 상황은 특히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에 큰 도전이 되었다. PF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인데, 이 시장은 전반적인 신용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펌프로 아무리 물을 가져다 댄다한들, 기존의 신용흐름이 막히면 PF 시장의 '배'는 쉽게 떠오르지 못하고 갯벌에 갇혀 버린다.


경제에서 신용은 마치 생명수와 같다. 특히 PF 시장의 경우 이 '생명수'가 얼마나 원활하게 흐르느냐가 생존에 결정적이다. 자산 가격이 결정되는 방식을 이해하면 현재 PF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투자자들에게는 리스크를 감안한 적절한 자산 수익이 기준금리나 단기금리 이상이 되어야 한다. 만약 어떤 자산의 예상 수익률이 낮다면 해당 자산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가격도 떨어진다. 고금리가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면 장기 보유가 예상되는 자산의 가격은 더욱 크게 떨어진다. PF 프로젝트들은 미래에 완성될 자산의 가치에 기반하며, 높은 금리 환경에서는 이러한 미래 자산의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높은 리스크와 고수익을 목표로 하는 PF 같은 신용 거래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금리의 변화는 PF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현재와 같은 부실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PF 시장이 직면한 문제들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 원인을 파악하려면 먼저 금리와 인플레이션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금리는 인플레이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과거 30년간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로 공급 문제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지정학적 위험과 같은 구조적 문제들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험했던 저금리 시대의 도래는 어려워 보인다. 저금리는 대출 비용을 낮추어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지만, 현재와 같은 금리 수준이 오랫동안 유지된다면 PF 시장의 문제는 단기간 내에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이는 높은 금리가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압박하고, 투자자들이 고위험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PF 프로젝트는 주택공급과 관련이 있으므로 주택 수요에도 영향을 받는다. 2017년 이후 주택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평균 연소득의 20배에 달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러한 높은 주택 가격 때문에 대부분의 수요자들은 주택 구매를 위해 대출을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현재 가계 대출은 GDP 대비 105%에 달하며, 전세 보증금까지 고려하면 그 비율은 160%까지 치솟는다. 이처럼 높은 가계 부채 비율은 주택 시장의 수요를 억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이 빚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주택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PF 시장의 중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에서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가계부채 감소, 즉 디레버리징을 겪었다. 주택시장은 단기적으로 침체했지만 디레버리징을 통해 장기적으로 주택수요의 안정을 되찾으며 주택가격은 재차 상승한다.이와 비슷하게 캐나다와 호주에서도 디레버리징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계부채 감소 노력은 결국 주택가격의 지속 가능한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정부는 가계대출의 위험을 줄이려는 몇 가지 조치를 도입했다. 이러한 조치는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수요 감소를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사례와 같이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의 디커플링이 이루어진다면, 부동산 시장도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PF 시장이 직면한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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