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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건강체크] 자각증상 없는 경동맥협착증, 관리 안하면 뇌경색 초래

[에너지경제신문 박효순 메디컬 객원기자] 뇌혈관이 막혀 발생하는 허혈성 뇌졸중의 30%는 경동맥협착증 때문에 발생한다. 경동맥은 심장에서 뇌혈관으로 이어지는 목 부위의 동맥으로, 뇌로 가는 혈액의 80%가 지나간다. 이 경동맥에 동맥경화가 진행되어 혈관이 점점 좁아지는 질환을 경동맥협착증이라고 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경동맥협착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17년 6만 8760명에서 2022년 12만 5904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연령대별로는 60∼70대가 66%가량 차지해 가장 많았다. 60대부터 환자가 많이 증가하는 이유로 강동경희대병원 신경외과 고준석 교수는 "만성질환이 잘 관리되지 않은 결과가 60대쯤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라며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지 않아 혈관 손상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경동맥협착증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경동맥협착증의 원인이 되는 동맥경화는 주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과 같은 만성대사질환과 흡연 때문에 발생한다. 만성대사질환 환자가 늘면서 자연스레 경동맥협착증 환자도 늘고 있다.이렇듯 경동맥협착증은 방치해 협착이 심해지면 언제, 어떻게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는 무서운 질환이다. 심하게는 뇌경색으로 인한 뇌 기능 마비뿐 아니라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70% 이상 진행된 경동맥협착증이 발견되었다면 증상이 없어도 즉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문제는 경동맥협착증이 위험한 이유로 혈관이 절반 가까이 좁아져도 자각증상이 없다는 점이다. 증상이 없어 초기 진단이 어렵고, 발견되어도 증상이 없어 치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50대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흡연자라면 위험군이므로 예방적 차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진단은 경동맥 초음파 검사로 비교적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경동맥의 협착이 심하지 않거나 증상이 없으면 약물치료를 시행한다. 경동맥이 70% 이상 좁아져 있고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수술(경동맥 내막 절제술)이나 시술(경동맥 스텐트 확장술)이 필요할 수 있다.경동맥 내막 절제술은 협착 부위의 동맥경화 찌꺼기를 직접 제거하는 수술이다. 대부분 전신마취를 하고 진행한다. 원인 물질을 직접 제거할 수 있어 수술 후 재협착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경동맥 내막 절제술은 △협착이 매우 심하거나 △스텐트 확장술을 시행하기에는 혈관 굴곡이 너무 심한 경우 △경동맥협착증이 심해져 뇌색전증을 일으킨 경우 등에서 유용한 치료 방법이다.경동맥 스텐트 확장술은 전신 상태가 좋지 않은 고령 환자, 심장병을 동반한 환자, 전신마취가 부적합해 수술 위험성이 높은 경우 비교적 안전한 방법으로 선택할 수 있다. 경동맥 내로 미세 도관과 미세 철사를 이용해 풍선 위치시키고 풍선으로 협착 부위를 확장한 후 스텐트를 거치해 치료한다. 전신마취가 필요 없고 회복이 빠른 편이다. 그러나 동맥경화 찌꺼기를 직접 제거하지 않기 때문에 재협착 가능성이 경동맥 내막 절제술보다는 높다.강동경희대병원 신경외과 고준석 교수가 경동맥협착증의 원인과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동경희대병원

[이슈&인사이트] 대통령의 중동 순방과 ‘제2의 중동 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4박 6일 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잇달아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에너지와 건설, 첨단기술 등 전반에 걸쳐 중동의 핵심 협력국인 양국과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새로운 협력 영역을 발굴하며 우리 기업들의 중동 진출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 실권자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가 전통적인 에너지, 건설 등의 분야에서 자동차, 선박도 함께 만드는 첨단산업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고 관광· 문화교류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국제 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현 상황에서 에너지 시장의 핵심 국가이자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에 대해 시장안정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말했다. 양국 간 경제·국방·안보 등 포괄적인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도 채택했다. 한·사우디 공동성명 발표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이후 43년 만이다.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네옴 프로젝트를 비롯해 사우디가 추진 중인 키디야·홍해개발·로신·디리야 등 기가 프로젝트와 이와 연관된 인프라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관광·스마트팜·특허·해운 및 해양수산·통계·사이버안보·식약 규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잠재력이 크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앞으로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사막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포럼에 주빈으로 참석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윤 대통령의 숙소인 영빈관에서 행사장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 친근감을 표시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다음번에 오시면 사우디에서 생산한 현대 전기차를 함께 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국빈 방문 계기에 현대차는 사우디 국부펀드와 공동으로 약 5억 달러를 합작 투자해 전기자동차 조립공장을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윤 대통령은 포럼 연설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함께 같이 갈 친구를 선택하라’는 아랍 속담을 인용한 뒤 "대한민국은 미래를 위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카타르 방문에서는 현대중공업과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 간에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17척에 대한 건조 계약이 체결됐다. 정상 임석하에 스마트팜 협력, 건설·건축 분야 첨단기술 협력, 국가 공간정보 협력, 중소벤처 협력, 무역투자촉진 프레임워크 등의 MOU도 맺었다. 사우디와 카타르는 우리의 주요 교역국이자 중동지역 정치 경제의 핵심 플레이어로 이들 국가들과의 우호 협력은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1호 영업사원’으로서 세일즈 외교에 공을 들여왔는데, 주요 대상이 바로 중동이고 성과도 많이 냈다. 지난해 11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방한때 체결한 계약 및 MOU 사업규모가 290억 달러에 달하고, 올해 1월 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하며 300억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번 한·사우디 정상회담을 계기로 모두 51건 156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약 및 MOU가 체결됐다. 카타르 방문 일정에서 MOU·계약 총 12건을 체결해 46억달러 규모의 수출·수주 성과를 거뒀다. 특히 HD 현대중공업이 카타르 에너지와 39억달러 규모의 LNG 운반선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조선업계 사상 단일 계약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이로써 지난 1년 간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로 대표되는 중동 ‘빅3’에서 거둔 성과만 792억달러(약 107조원)에 달한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열사의 땅 중동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원동력이 됐다. 이제 107조원이라는 거대한 ‘경제 운동장’이 중동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총 5000억 달러(676조2500억원)의 사우디 ‘오일머니’가 투입되는 네옴시티 사업에 한국기업의 참여 기회도 늘어날 전망이다. 방산 협력도 기대감을 키우게 한다. ‘제2의 중동 붐’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번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더욱 튼튼해진 기반위에서 시장개척을 가속화하면서 한편으로 중동국가들과 지속가능한 상호 호혜적 협력을 이루어 경제위기 타개는 물론 새로운 발전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 주재 총영사

[기자의 눈] 연금개혁, 칼을 뽑았으면 무를 썰어라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 엇갈리고 있다. 독일에서 ‘위기론’이 나오는 사이 프랑스는 유로존 평균 대비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통일 직후 유행하던 ‘유럽의 병자’라는 말이 다시 들린다. 프랑스는 각종 경제지표가 개선되며 고무된 분위기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두 나라는 산업구조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수년간 프랑스가 각종 개혁을 수행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취임 이후 사회구조를 지속적으로 가다듬었다. 노동개혁, 공무원감축, 연금개혁 등을 추진했다. 엄청난 반대에 지지율이 폭락했지만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사회 환경도 녹록지 않다.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며 과거에 했던 모든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 노동·교육·연금개혁 없이는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다. 윤석열 정부가 취임하며 이 같은 ‘3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실상 제자리걸음 중이다. 국민연금만 놓고 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국민연금은 애초부터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거칠게 표현하면 ‘합의된 폰지사기’다. 앞으로 돈 낼 사람이 계속 줄어드는데 기금이 지속 가능할 리가 없다. 정부는 이 와중에 여론 눈치 보느라 바쁘다. 국회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은 수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연금개혁과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발언한 내용을 보면 기가 찰 정도다. 대부분 사람들은 살 빼는 방법을 안다. 덜먹거나 더 움직이면 된다. 두 가지를 같이 실천한다면 금상첨화다. 체중 탓에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이 ‘밥을 더 먹고 대신 운동을 많이하자’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연금개혁도 마찬가지다. ‘더 내고 덜 받는’ 안을 내놔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제3차 국민연금 심의위원회를 열고 개혁안을 확정한다. 국무회의를 거친 종합운영 계획안은 이달 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구체적인 숫자 없이 방향성만 담긴 계획안이 나올까 걱정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자신들이 전 정권과 똑같이 이 분야에서 무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칼을 뽑았으면 무를 써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yes@ekn.kr여헌우 산업부 기자 여헌우 산업부 기자

[EE칼럼] 지금이 신재생에너지 R&D투자 늘릴 때다

가정이지만 ‘만일 십오 년 전 녹색성장 때부터 신재생에너지를 기술기반의 국내 산업 육성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전열에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안타깝게 당시에도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R&D보다는 보급 주도의 정책이 지배적이었다. 기술개발에 자금을 쏟기보다는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설치만 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으니, 아직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국산 보다는 당장 설치 가능한 수입산으로 물량 목표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 결과 국내의 태양광·풍력 발전 산업 생태계는 붕괴됐고, 오늘날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은 해외 종속형으로 변질됐다. 탄소중립도 좋고 넷제로도 좋고 2030 온실가스 감축도 다 좋지만, 장기적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국내 산업기반이 없고 부가가치 제고로 연결되는 글로벌 밸류체인 구축에도 실패한다면 좋다고 하는 이 모든 정책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무의미하다. 미국, 유럽, 중국, 호주, 일본 모두 자국의 기술과 산업, 자원 육성을 근간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정부는 최근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R&D 예산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보조금 나눠먹기 식으로 무분별하게 집행된 재생에너지의 보급 관련 예산을 조정하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산업육성을 위한 R&D 예산은 이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일수록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우선되어야 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시장간의 역할이 분권화된 미국에서는 화석연료를 선호하고 재생에너지를 터부시했던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 오히려 재생에너지 보급속도는 역대 최대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결과가 그랬기에 트럼프를 이은 바이든 행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에서 비교우위를 갖게 됐다.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팔 전쟁으로 인한 중동위기 고조, 미국의 경기침체설 재부상 등 거시경제 지표가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신재생 에너지 분야 투자가 끊이지 않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옥시덴털 페트롤리움은 탄소포집저장 사업인 스트라토스(Stratos)에 11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여기에는 아마존, 쇼피파이와 같은 이커머스 기업은 물론 휴스턴 텍사스 풋볼팀까지 가세했다. GE는 올해 해상풍력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는 데도 관련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R&D 예산을 줄이면서 일부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한다. 사업성 갖춘 R&D는 굳이 정부 재정 지원없이 민간이 주체적으로 수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력 및 가스시장을 보면 이러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공공 물가안정 차원에서 철저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미국의 옥시덴탈도 바이든 행정부의 투자 인센티브 없이는 탄소포집 사업을 개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전 정부의 탈원전 내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분야 투자를 게을리 하는 사이에 해외 유수 메이저들의 저탄소 전열은 재정비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에 이르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혹한 에너지 전환 비용 청구서를 받게 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탈원전 정책 속에서 혼선을 겪었고 지금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비슷한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치적 구호와 목표수치로만 점철되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대립구도 아래서는 지속가능한 기술개발과 산업생태계를 이룰 수 없다. 사회적 피로현상만 누적될 뿐이다.송전 계통과 ESS 등 제반 장애요인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태양광과 풍력의 보급은 속도조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동안 2030 NDC 목표에 매몰돼 물량위주로 추진된 부작용을 해소한 후 전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R&D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전환 딜레마

내연기관차는 약 3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1~3차 협력사를 통해 단순 부품부터 모듈에 이르기까지 융복합적인 생산 과정과 최종 조립단계를 거쳐 완성차가 탄생한다. 협력사를 제외하더라도 완성차 업체의 최종 제작 공정에는 수많은 부품의 조립과 검사, 출고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많은 인력이 투입돼 유기적으로 생산 활동을 벌인다. 그런데 최근들어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열리면서 기존의 자동차 제작 생태계가 무너지고 자동차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부품수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기존 내연차의 경우 자동차를 굴리기 위해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고 이것을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등의 과정에서 엄청난 부품이 소요된다. 하지만 전기차는 배터리 배터리 하나로 모든 에너지를 얻기에 에너지 생산과정이 생략되면서 엔진과 동력전달장치(변속기·구동장치),전기장치 외에는 사실상 부품이 필요없게 된 것이다. 특히 내연기관차에서 엔진과 변속기는 가장 높은 난이도를 가진 제품으로 약 1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지만 전기차에서는 이 자체가 필요 없다.실제로 전기차의 부품수는 1만3000개에서 1만8000개 정도로 내연기관차의 절반 수준이다. 이렇게 부품수가 적은 만큼 제작 공정과 조립과정이 단순화돼 생산 인력도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전기차의 경우 생산인력은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30%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말이 옛말이 된 셈이다. 문제는 현대차·기아 등과 같은 기존 내연기관차 업체들이 전기차로의 전환과정에서 기존 인력의 재배치나 전환배치 또는 인력 감축 등 근무조건 변경에 따른 갈등으로 전기차로의 전환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국내 완성차 업체의 경우 노조의 위력이 상대적으로 거센 상황이어서 해당 기업으로서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노조에서는 해당 생산 인력에 대한 기존 근로조건 보장은 물론 정년연장 등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완성차 업체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기존의 생산 인력의 관리를 비롯한 전기차에 최적화된 인력의 안정적인 확보가 최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직된 노사문화와 함께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신규 인력부족에다 기업규제가 여전히 상존하는 상황이어서 국내에서의 생산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앞세운 미국은 물론 EU 등 우리나라 기업의 주력 수출 시장에서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옥죄면서 국내 기업들의 국내에서의 생산 여건이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에 따른 인력 수요감소는 완성차 업체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최근 전기차 전용공장을 건설하면서 기존 인력을 40%이상 감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게다가 모듈화 공법 도입과 자동화 등으로 인력수요는 앞으로도 더 줄어 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으로서는 자동화는 경영안정 측면이나 제품 경쟁력 확보차원에서 매력이 아닐 수 있다. 노조와의 갈등이나 안전사고로 인한 시간적·경제적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고 필요하면 24시간 생산체제도 가능해 제품가격을 낮출 수 있고 이렇게되면 판매량도 늘어 높은 성장을 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동화에만 매달릴 수 만은 없는 현실이다. ESG 시대를 맞아 기업에게 고용창출과 사회공헌 등 상생이라는 사회적 책무가 강조되고 이것이 또 하나의 경쟁력 지표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완성차 업체들이 기존 인력의 업종전환이나 직무 전환 교육은 물론 전기차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이에 맞춰 노조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 의사만 좇는 세상, 4차 산업은 누가 키우나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대한민국은 의사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사 직종이 ‘신의 직업’으로 추앙받으며 의대 진학 열풍이 거세다. 고졸 수험생은 물론 재학중인 대학생들도 멀쩡한 기존 학과를 그만두고 반수,재수를 통해 의대 문을 두드리고는 게 일반화됐다. 심지어는 강남권 등 일부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진학에 맞춘 진학반을 운영하는 세태다. 디지털 혁명, 인공지능 등의 4차 산업혁명의 성공 열쇠는 인재 양성에 있다. 중국은 연간 이공계 졸업생이 460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 한국은 10만여 명에 불과하다. 양적인 열세와 함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질적인 문제다. 서울공대의 최고 경쟁학과가 전국 대학의 의예과, 치의예과, 한의예과, 수의학과, 약학과에 못 미친다. 서울공대보다 지방대 의대를 나와서라도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걸 선호한다. 이공계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설립된 영재고 졸업생이 의대에 진학하면 각종 불이익을 주고 있지만, 의대행을 막지 못한다. 의대 선호 현상은 2023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고려대·서강대·연세대·한양대 4개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 수는 73명으로 전체 모집 인원인 47명보다 많았다. 종로학원이 2023학년도 정시모집 추가 합격자 발표를 마감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모집 결과를 분석했더니 최종 1343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이는 세 대학 모집 정원(4660명)의 28.8%에 달한다. 자연 계열 등록 포기자의 상당수는 의·약학 계열에도 중복으로 합격해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 신입생 3606명 중 225명이 1학기에 휴학했다. 재수해서 의약계를 지망하겠다는 의도다. 초등학교에서는 때 이른 입시 준비로 의대 입시반 광풍이 불고 있다. 의대·치대·한의대 등 의학 계열 학과 입학을 위해 초등학교 입학부터 준비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학부모들 사이에 ’영어 유치원-초등 의대 반-자사고‘는 의대 입학으로 가는 ‘로열로드’로 꼽힌다. 문제는 이공계 인재들의 이대 쏠림 현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한국의 미래산업,이른바 4차 산업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광풍을 잠재워야 할 정부가 나서서 기름을 붓는 격이다. 정부는 과학기술계의 카르텔 타파를 명분으로 내년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 대비 5조2000억 원이나 깎으면서, 부족한 의료인력을 확충한다며 의대 정원에 늘리기에 혈안이다. 물론 의료인력 부족 현상도 해소해야 한다. 의사 부족으로 지방 의료가 붕괴하면서 환자들은 서울로 몰리고,환자 부족으로 지방 병원 붕괴가 가속화되는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기에 정부는 국립대 병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지방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지방 의료를 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가 의사 인력 확충·지원이 정부 의료 개혁의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하는데 그 타당성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청주 종합병원 심장내과에서 최근 ‘심장내과 의사에게 연봉 10억 원을 주겠다’라는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속초의료원은 연봉 4억 원을 주고 응급실 의사 3명을 충원했다’라는 등의 토픽으로 등장하는 의사 구인 이슈다. 그런데 본질적인 해법을 압구정동에 성형외과가 수백 개가 밀집된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구인난의 본질이 의사의 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극심한 편중 현상에서 기인한다. 극심한 의사 난의 화두가 ‘지방’, ‘응급’, ‘수술’ 등 이른바 의료 3D직종에 속한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해도 3D 기피는 상존한다. 의료 3D 해소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의사 증원만이 해법이라면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활용하는 해외 의료 고급 두뇌를 수입하는 대안도 있다.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 취약지역과 취약 분야에 대한 낙수효과도 기대난망이다. 현행 의료 문제는 한국의 미래 산업의 경쟁력에 약화 문제에 비해서 작은 문제다. "의사만 늘리면 4차 산업 첨단 연구는 누가 하나?"라는 산업계의 절규에 정부는 답해야 한다.윤덕균 교수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기자의 눈] CF연합 출범,

오는 27일 무탄소연합(CF연합 : Carbon Free Alliance)이 공식 출범한다. 이회성 초대 회장은 최근 출범을 앞두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는 어떤 나라보다 앞서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반드시 대응은 해야 하는데 비용은 내기 싫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전 세계 국가들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다같이 하자고 하면서도 자국에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글쎄요’ 한다. 이런 프리라이딩을 막는 정책을 수립하는 게 주요 과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말처럼 한국전력공사의 심각한 적자로 전력시장이 붕괴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도 쉽지 않은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탄소감축과 재생에너지 보급은 공기업인 한전이 지난 수년간 ‘에너지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는 구호 아래 역대급 적자 속에서 모든 비용과 부담을 떠안았기에 가능했다. 안정적 전력공급이라는 의무도 당연히 수행했다. 그 결과 한전은 전력시장에서 도매로 구입하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 판매단가로 인해 최근 3년간 누적적자가 47조원에 달하고 있어 경영위기를 넘어 기업 존폐를 위협받고 있다. CF연합은 민간 주도를 표방한다. 그런데 한전도 포함됐다. 우리나라와 규모가 비슷한 영국과 독일은 탄소중립에 필요한 금액이 2500조원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은 수력발전 비중이 전체의 50%를 넘어 원전을 제외해도 무탄소 전원의 비중이 80%를 넘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원자력을 빼면 무탄소 전원이 8%(태양광 5%, 풍력 1%, 수력 1%, 바이오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작년에 전력시장에서 재생에너지에 지급한 전력판매대금, 신재생에너지 인증서 판매대금이 10조원에 달한다. 민간 기업들이 과연 이러한 부담을 짊어지면서 탄소감축에 적극 나설지 의문이다. 결국 원전 개발 외에 각종 비용은 앞으로도 한전이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즉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기업들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한전이 최소한 본전은 해야 한다. 계속 부채로 남겨 놓으면 결국 미래세대에 부담으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한전이 조속하게 경영이 정상화 될 수 있도록 가급적 빨리 전기요금을 정상화 할 필요가 있다. CF연합의 첫번째 과제다.전지성 정치경제부 기자.

[EE칼럼] 온실가스 감축, 해법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총 배출량이 전년보다 3.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지난해 6월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 잠정치’를 발표할 당시 2022년에는 에너지수요가 증가할 것이므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감축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다행히 실제 배출량이 줄었다.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7억2700만톤을 정점으로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3.5%, 6.4% 줄었다가 2021년에 다시 3.3%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에 다시 3.5% 줄어든 6억 5500만톤을 기록했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6% 늘었는데도 배출량은 오히려 줄어 배출원단위(GDP 당 배출량)가 5.9% 감소했다. 1990년 이후 최저 배출원단위로, 그만큼 배출 효율성이 개선됐음을 의미한다. 주목되는 것은 국내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전환 부문의 배출량이 총 배출량보다 더 많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전환 부문 배출량은 2억1390만톤으로 전년보다 4.3% 줄었다. 이는 총 배출량 6억 5450만톤의 32.7%로, 전환부문 배출량 비중이 2018년 36.9%에서 크게 낮아졌다. 2018년만 해도 전환부문의 배출량 비중은 산업 부문의 비중(35.9%)을 웃돌았지만 그 후 역전돼 지난해에는 산업 부문(37.6%)과 격차가 더 벌어졌다. 우리나라 전환 부문 배출량 비중은 세계 전체 전환 부문 배출량 비중(4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전환 부문은 여전히 국내 주요 배출 부문으로 이 부문의 감축 여하에 따라 향후 총 배출량 감축여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발전량이 3% 늘었는데도 전환 부문의 배출량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전원 구성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석탄 발전량이 198.0TWh에서 193.2TWh로 감소한 가운데 원전 발전량은 158.0TWh에서 176.1TWh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1TWh에서 53.2TWh로 각각 증가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로 원전 발전량이 11.5% 늘어난 것이 배출량 감소에 크게 기여했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 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무탄소 청정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가 불가피하다. 신재생에너지는 우리나라 지리적 여건이나 일조량, 풍속·풍량 등 자연여건, 주민 수용성 등을 감안할 때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송전선로 확보 등도 난제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원전의 활용도 제고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의 운영허가 기간 연장과 이용률 향상, 신규 설비 건설 등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에서 설정한 원전 이용률은 79.7%다. 이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경우 추가적인 온실가스 배출 없이 전력공급을 늘릴 수 있다. 원전 이용률을 90%로 높일 경우 원전 발전량은 2030년에 227.8TWh로 제10차전력수급기본계획 수치에 비해 약 13% 늘어난다. 하지만 이용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원전 가동일수를 연간 330일 이상으로 늘려야 하고 과도한 정비기간도 줄여야 한다. 규제기준 개선과 가동중 정비 등 정비기술도 향상돼야 한다. 따라서 전원 구성에서 신재생에너지만을 의미하는 RE100보다는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수소·암모니아, CCUS(탄소 포집·이용·저장) 등을 적절히 조합한 무탄소에너지(CFE·Carbon Free Energy) 쪽으로 가야 한다. 수소·암모니아 발전은 실증시험이나 실용화 목표 등을 보다 구체화하고 신재생에너지 못지 않은 정책적 지원도 요구된다. CCUS의 경우 우리나라는 대규모 지하 탄소 저장소가 마땅치 않은 만큼 이용 쪽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광물탄산화나 인공광합성, 메탄생성(metanation) 등이 좋은 예다. 탄소 재순환(recycle) 기술을 잘 이용하면 화력발전을 조기 퇴출시키지 않고도 에너지안보와 안전성 측면에서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기후악당’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우리나라에서 최근의 탄소배출량 감축이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배출량 감소가 아직 추세로 굳어졌다고 보기는 이르다. 전환 부문의 2030년 NDC 배출량 목표가 1억4590만톤으로 2018년(2억6840만톤)보다 45.9%를 줄여야 하는 만큼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올해부터 8년간 연평균 4.7%씩 줄여야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무탄소에너지 기반의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감축 노력이 요구된다.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이슈&인사이트] 영화 속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술의 태피스트리 속에서 우리는 생성 AI(Generative AI)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GPT 시리즈와 DALL-E와 같은 첨단시스템은 텍스트에서부터 이미지, 스트리밍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창작적 표현을 반영하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디지털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기술적 도약은 역사적으로 한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며 새로운 규범과 행동을 요구한다. 생성 AI의 물결에는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설렘과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이 섞여 있다. 생성 AI는 의료,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며 효율성의 새로운 여명을 약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첨단기술의 오용, 잠재된 편견, 예상치 못한 사회적 영향의 그림자도 어김없이 몰고온다. 이처럼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세상을 우리가 쫓아가거나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다. 다행스럽게도 다가올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문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영화다. 끝없는 상상력으로 허구적 현실을 만들어 내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계는 오랫동안 AI를 소재로 다루면서 미래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블레이드 러너’(1982)와 같은 고전적인 작품은 첨단 AI가 극도로 발전해 인간과 같은 욕망, 그러나 다른 의도를 가진 의인화된 AI 개체인 ‘리플리컨트’가 인간과 뒤섞인 사회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다. ‘엑스 마키나’(2014)는 AI 의식의 수렁을 깊이 파고들면서 인간과 AI를 구분하는 복잡하고 때로는 불안정한 경계를 탐구한다. ‘매트릭스’(1999)는 기계가 지배하는 암울한 세계에서 인간을 폭압하는 기계의 모습을 디스토피아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Her’(2013)에서는 좀 더 내면적인 관점도 제시된다. 이 영화는 지배력이나 의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서적 연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인간과 기계 사이에 잠재적 관계가 현실에서 특히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흔든다. 영화는 이야기 속 긴장감과 함께 인간의 의식을 정의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공지능이 인간과 구별된다는 관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의 대중화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2023년에도 AI를 다루는 영화는 우리가 직면할 도전과 기회를 계속해서 투영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시뮬란트’와 ‘크리에이터’는 고도화된 AI와 인류가 공존하며 겪는 갈등과 대립을 다루면서 ‘인간다움’과 ‘AI다움’에 관한 공감과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성 AI의 복잡한 지형을 탐색하다 보면 은막의 상상력과 우리가 보고 있는 기술 발전 사이에 점점 좁혀지는 간극을 발견한다. 그러나 영화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해주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지의 바다를 헤쳐나가듯 조심스럽다. 영화는 그 자체로 허구의 세계를 반영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진실과 우리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는 마치 흥미로운 나침반 역할을 하면서 단순한 오락을 넘어 미래의 사회를 경험하는 창문이다. 때로는 심오한 철학적,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우려와 호기심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영화의 메시지에 사로잡혀 있기만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 인간들끼리 보다 사려 깊은 대화와 신중한 행동을 도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시대의 문화와 기술, 심지어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허구적 사실을 반영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이런 영화적 거울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서 기술 진보, 특히 AI의 발전이 가져올 변화와 그 영향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상상의 경계를 넘어 실제로 새로운 기술 영역을 탐색하고, 이를 활용하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인간의 근본적 가치와 기술의 발전을 조화롭게 결합하면서 공평하고 책임 있는 미래를 구축해야 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현실에서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객관적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해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생성 AI의 방향성은 우리의 공동체적 선택으로 결정될 것이다. 이런 결정은 확고한 윤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하며,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과 시너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수용하는 선택, 구축하는 보호 장치, 추구하는 비전이 다음 세대를 위한 생성 AI의 유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김한성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고문

[기자의 눈] 이번엔 은행 금리인상…금융소비자는 혼란

은행 가계대출 금리가 오르고 있다.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조정하면서 대출 금리를 높이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잇따라 인상하고 있다. 앞서 지난 1일 하나은행이 하나원큐아파트론과 하나원큐주택담보대출 금리 감면율을 축소했고, 지난 11일에는 국민은행이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높였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도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인상하며 대출 금리 인상 행렬에 동참했다. 기준금리는 지난 2월부터 이달까지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으나 시장금리가 오른 만큼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은행권 설명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의 실질적인 배경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축소 기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가계대출이 증가하자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매주 점검회의를 열고 가계대출 억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확대를 억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은행들이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은행이 높은 이자로 돈을 버는 이자장사를 비판하며 은행이 대출 금리를 높이는 것을 제한해 왔다. 당시에는 기준금리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지만 은행들은 가산금리 조정 등으로 대출 금리가 오르는 것을 억제해 왔다. 이후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50년 주담대 출시 등에 따라 가계대출은 증가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금융당국에 대한 가계대출 관리 부실 책임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은행은 금리 인상 카드를 통해 다시 대출 관리에 나서고 있다. 시중은행의 금리 방향이 금융당국 기조에 따라 바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자로 수익을 벌어들이는 은행들에게 대출 금리 인상이 ‘허용’된 것은 반길 만하지만 은행권에서도 혼란스럽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예대금리차 공시를 하고 있고, 대환대출 플랫폼도 운영하면서 대출 금리를 낮추는 정책도 동시에 펴고 있다. 은행들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오락가락한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금융소비자다. 대출 금리가 시장보다 금융당국 입김에 따라 좌우되는 모습이 지속되면 대출 금리의 예측 가능성이 줄어들고 결국 그 부담은 차주들에게 돌아간다. 금융당국의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dsk@ekn.kr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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