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18일(화)



[EE칼럼] 자동차 정비소, 전기차 시대 배터리 중개소로 육성하자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5.27 10:59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할리우드 유명 영화감독 론 하워드의 1992년 作, “Far and Away"에는 서부개척시대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정부 소유 땅을 공짜로 나누어주는 흥미로운 방식이 그려진다. 주어진 시간 동안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한 멀리 질주하여, 땅을 차지했음을 선언하는 깃발을 도착한 곳에 꽂으면 거기까지를 소유지로 인정받는 경주가 그것이다. 극 중에서 아일랜드 가난한 소작농 출신 조셉 도널리(톰 크루즈 분)가 이 경주에 참여, 우여곡절 끝에 광대한 땅의 소유권을 획득한다. 미국 정부가 미개척지 개발에 투입할 외지 노동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으로 국가 재산인 토지를 사실상 무상으로 매각했던 역사적 사례를 극화한 것이다. 이처럼 보통 무상 또는 시가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국가 또는 공공의 재산을 개인에게 매각하는 행위를 '불하(拂下)'라 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불하'가 그동안 전기차에 탑재되었다가 폐차 등으로 탈착된 배터리, 즉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에도 적용되었다. 사실 사용후 배터리는 전처리 후 일정 공정을 통해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희귀 유가금속 등을 추출하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전기차 배터리 자체는 용량이 새로 샀을 때와 비교해 약 70~80% 이하로 감소하면 주행거리 감소, 충·방전 속도 저하 등으로 차량 구동용으로는 활용이 어렵지만, 다른 에너지 저장수단으로 활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래서 전기차에 한 번 쓰이고 난 이후, 배출된 배터리는 남은 수명이나 배터리 건강상태(SOH) 등에 따라 다른 차량용 배터리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무정전 전원장치(UPS) 등으로 '재사용'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용후 배터리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용 자산이 될 수 있다.


한편 적어도 2020년까지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받아 전기차를 구매한 경우, 전기차主가 해당 차량의 폐기 등 자동차 등록을 말소할 때 관할 주소지의 지방자치단체에 사용후 배터리를 반납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었다. 표현을 바꾸어 말하자면 보조금을 지급한 정부(지자체)가 사실상 사용후 배터리를 보조금 형식으로 선구매함으로써, 소유권을 확보하여 일종의 국가 재산으로 보유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비즈니스를 위해서 사업자가 지자체로부터 이를 '불하'를 받아 활용하였다. 그리고 이런 불하 과정에서 사용후 배터리의 수거 및 보관 함께 성능평가를 통한 상품성을 확인하는 역할을 하는 '거점 수거센터'를 공공재원으로 전국 주요 거점에 구축,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비즈니스 육성을 지원하는 체계로서 운영되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체계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2020년부터 사용후 배터리 반납 의무가 폐지되면서, 구매보조금을 지원받은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도 그 소유권이 지자체에서 전기차주에게로 이전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2021년부터는 지자체에 반납하지 않아도 되는 사용후 배터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향후 전기차 확산 추세를 고려한다면, 이런 비반납 사용후 배터리도 함께 급증할 수밖에 없어, 지자체 반납 배터리 발생이 사실상 끝날 것으로 예상하는 2028년부터는 사실상 발생하는 모든 사용후 배터리가 전기차주의 소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사용후 배터리 소유권 변경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함께 던져준다.


우선 대략 배터리 3,500대 정도면 포화될 현재의 공공 거점 수거센터의 저장용량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급증하게 될 전가차주 소유 사용후 배터리를 소화할 수 있도록, 이를 대신할 거점 수거센터를 추가로 구축해야 한다. 다만, 전기차주가 소유권을 지닌 만큼, 이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가능하면 공공보다 민간재원으로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앞으로는 지자체 대신 전기차주가 재활용·재사용 사업자와 사용후 배터리를 거래해야 하는데, 협상력 면에서 열세인 개별 전기차주가 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재활용·재사용 사업자로서도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이나 사업의 다양한 위험 배분 차원에서라도 개별 전기차주보다는 다량의 배터리 묶음으로 거래하는 단일한 사업자와 거래하는 것이 좋다. 결국, 개별 전기차주의 사용후 배터리를 위임받아 '중개(仲介)' 또는 직집 구매하여 재판매하는 '중계(中繼)' 거래를 하는 일종의 '거래소' 역할이 필요하며, 민간 거점 수거센터가 이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민간 거점 수거센터 겸 신규 사용후 배터리 거래소의 유력한 후보로 자동차 정비소를 고려해볼 만하다. 사실 국내 자동차 정비소들은 수익 구조상 주로 내연기관차 정비에 특화되어 있어, 중장기적으로 전기차 확대 및 내연기관차 축소라는 수송부문의 전환에 취약,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만일 신규 비즈니스인 사용후 배터리 거래소로 전환·육성한다면 전기차 확대로 인해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배터리 순환 시스템 완비와 함께 수송부문 탄소중립 정책 추진에 따른 자동차 정비업에 대한 정의 전환을 지원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거래소 구축·운영을 위한 구체적인 법·제도와 함께 전환지원을 유도할 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며, 이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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