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동시에 해외 순방을 간 사이 전국에 쏟아진 물 폭탄으로 다수의 인명사고를 낳은 수해가 발생하면서 당정의 외교성과마저 빛이 바래지고 있다. 윤 대통령과 김 대표는 17일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 마자 수해지역인 경북 예천과 충남 공주·충북 오송을 각각 방문했지만 ‘뒷북 대응’이라는 정치권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최근 유럽 순방 일정을 연장하면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것에 대한 지적을 이어갔다. 특히 국내에 호우 피해가 속출하는데도 대통령이 귀국을 늦춰 ‘컨트롤타워 공백’ 사태가 빚어졌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제헌절 경축식 후 기자들과 만나 ‘수해 상황에서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게 맞느냐’는 질문을 받고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 민생을 생각하면서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취재진과 만나 "최근 12년 내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났고 일기예보로 예견됐는데, 대통령과 여당 대표, 주무 장관 전부 자리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사실상 컨트롤타워 부재로, 국가가 없다는 걸 이재민들이 실감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최고위원 회의에서 "대통령 오판이 부른 참사"라며 "재난과 안전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다. 대통령 본인이 한 말"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소속 의원들에게 ‘해외출장 자제령’을 내렸고 적절한 시점에 수해 복구를 위한 당 차원의 봉사활동도 준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충북 오송 궁평 제2지하차도 침수 사고 현장을 방문,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수해 상황에서 해외 순방 일정을 연장한 것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에 "좁쌀 같은 눈으로 계속해서 흠집내기, 트집잡기에만 골몰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이 직접 (순방국) 현장에서 실시간 보고도 받고 때로는 화상회의도 하면서 (수해와) 관련된 중요한 지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확히 이야기하면 순방을 연기한 게 아니다. 거기(우크라이나)가 전쟁 지역이지 않으냐. 오래전부터 이미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고 이미 우크라이나 방문이 예정돼있던 것을 보안 문제 때문에 나중에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주 윤 대통령은 6박8일 일정으로 리투아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를 방문했고 김 대표는 ‘70년 한미동맹’을 다지고자 국민의힘 대표단을 이끌고 5박7일 일정의 방미길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관국 자격으로 참석한 데 이어 폴란드에서 한-폴란드 정상회담을 열었다. 순방 도중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우크라이나 평화연대 이니셔티브’를 포함한 지원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대표단은 미국 동서를 횡단하며 워싱턴 D.C, 뉴욕, 로스앤젤레스(LA)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백악관과 국무부, 상·하원, 싱크탱크 등 미국 조야 인사들을 두루 접촉했다. 당정 수장들이 해외 순방 일정에 돌입함과 맞물려 전국에 폭우가 시작되면서 닷새째 쏟아진 물 폭탄으로 전국에서 산사태, 지하차도 침수 등이 잇따라 사망· 실종자가 50명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청주 미호강 제방이 터져 침수된 오송 지하차도 사고 현장에서는 이날 현재 누적 사망자가 13명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은 극비리에 진행된 우크라이나 방문을 마친 뒤 폴란드로 복귀하는 열차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화상 연결해 집중호우 대처 점검 회의를 주재하며 호우 피해 및 대응 상황을 긴급 점검했다. 윤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경찰은 지자체와 협력해 저지대 진입 통제를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긴박한 행보와 비상한 주문도 국내 수해사고가 난 뒤였다. 김 대표는 미국 방문 일정을 마무리한 뒤 폭우 피해 복구를 위해 항공편을 변경해 귀국을 앞당기기도 했다. 귀국과 동시에 수해 현장 방문 일정을 분주하게 추진했다. 당정에 대한 지지율도 다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는 만큼 이번 수해 대응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10∼14일 닷새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1.0%포인트 떨어진 38.1%로 집계됐다. 수해가 이번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6월 셋째주부터 상승해 6월 다섯째주 42.0%까지 올랐던 윤 대통령 지지율은 7월 첫째주 들어 하락세로 전환했고 이번 조사에서 2주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이번 조사에서 13∼14일 이틀에 걸쳐 실시한 정당 지지율의 경우 국민의힘이 직전 조사(6월 19∼23일)보다 1.0%포인트 내린 37.0%, 민주당은 0.4%포인트 오른 44.2%를 각각 기록했다. 양당 간 지지율 격차는 종전 5.8%포인트에서 7.2%포인트로 벌어졌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지율에 영향을 준 주요 이슈로 윤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과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논란이 꼽힌다. 해외 순방 호재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하락세 신호를 보이는 만큼 앞으로의 여론 상황마저 당정에 긍정적이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대통령 순방 호재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하락 흐름을 막지 못하며 용산(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는 동시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claudia@ekn.kr김기현-side 왼쪽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수해를 입은 충남 공주시 옥룡동 한 아파트를 찾아 피해상황을 확인하는 사진. 오른쪽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충북 괴산군 대피소에서 폭우 이재민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