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대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뒤바꿀 만한 전황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선을 러시아 본토로 돌리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서방 지원 여론을 언제까지 장담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와 반란 이후 리더십 장기 유지에 의문점이 붙은 러시아 사이 치열한 여론전이 전개되는 양상으로 풀이된다. 다수 외신을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일일 연설에서 "전쟁은 러시아의 영토, 상징적 중심지, 군기지로 서서히 되돌아가고 있다"며 "이는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우며 지극히 공정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우크라이나 드론(무인기) 공습이 이뤄진 지 수 시간 뒤에 나왔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 공군은 전쟁을 먼 얘기쯤으로만 여겨온 평범한 러시아인들에게 충격을 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리 이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은 "이제 전쟁은 이를 걱정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러시아 당국은 (드론을) 전부 요격했다고 말하면서 이런 상황을 애써 못 본 척하기를 원하지만, 뭔가는 실제로 타격을 가한다"고 덧붙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인 일상에 전쟁이 미치는 악영향을 막으려 해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점점 더 많은 무인기를 단순한 정찰 목적을 넘어 실전 배치하면서 전쟁을 러시아 본토로 끌어들이고 있다. 미하일로 페드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수복하는 반격 과정에서 드론 공습이 더 자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용병그룹 바그너그룹 반란 이후 균열이 노출된 푸틴 대통령 철권통치에 틈을 더욱 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과거와 달리 이런 시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데는 ‘대반격’ 성과가 부진한 가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변수가 늘 수 있다는 우려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육군 장교 출신 리처드 켐프는 이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칼럼에서 "시간은 우크라이나군의 편이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가 내년 미국 대선과 전쟁터의 날씨 변화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긴 부진을 끝내고 러시아군 1차 방어선을 뚫어내더라도, 몇 주만 지나면 가을이 오고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전차 이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켐프는 "우크라이나로선 가을부터 최소한 땅이 얼어붙기 시작하는 11월까지는 공세 작전을 진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경우 더 큰 문제는 내년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이다. 켐프는 미 대선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전쟁이 성과 없이 길어지면 전쟁 지원에 동의해 온 유권자들 표심이 변할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IRS) 등이 바이든 가족 조사에 관한 증거를 넘길 때까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위한 선적 승인을 거부할 것을 공화당 의원들에게 촉구했다. 켐프는 무엇보다 미국이 ‘전쟁 장기화’보다 러시아 정권 붕괴를 더 두려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크게 승리해 러시아가 분열되면 세계가 여러 방면에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켐프는 이 때문에 미국이 지난달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신속 가입에 반대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F-16 전투기, 장거리 미사일 제공에 미온적인 것도 러시아 정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무기를 지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 본토 위협을 평가절하하며 다방면에서 여론 수호에 나서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군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진지를 공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새로운 병력을 투입하고 있으나 진격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위 ‘반격’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테러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수십억 달러어치의 지원이 사실상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하게 소모되고 있다"며 모스크바 드론 공습에 "우크라이나가 절망적 행동에 의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러시아가 마인크래프트를 비롯한 비디오게임을 우크라이나 전쟁 미화 여론전 수단으로 삼는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온라인 위협을 분석하는 우크라이나 컨설팅사 ‘몰파르’는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러시아판 월드오프탱크, 월드오브워쉽, 플라이코프, 아머드워페어 등에서 러시아의 선동 사례 수십건을 확인했다. NYT는 특히 이런 게임을 이용한 선동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도 앞서 정부가 대중에 가치를 주입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으로서 게임산업의 역할을 직접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게임은 인간 개발을 도와야 한다"며 "보편적 인간 가치와 애국심의 틀 내에서 개인을 교육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hg3to8@ekn.krPresident Putin attends Main Naval Parade in St Petersburg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타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