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한 국제유가가 100달러 돌파마저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가격은 약 4년래 최저 수준에 맴돌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5일(현지시간)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0.57% 오른 배럴당 91.17달러에 마감했다. 같은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도 전일대비 0.36% 오른 배럴당 86.91달러를 기록했다. 두 유종은 올 들어 20% 가량 급등하면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에 이른 상황이다. 이처럼 국제유가가 고공행진하는 배경엔 지정학적 갈등이 계속 고조되고 있어서다. 이스라엘은 지난 1일 시리아 주재 이란대사관을 공습하자 이란이 보복을 다짐했고 2일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정유시설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이런 와중에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에 원유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인 멕시코가 지난달 원유 수출량을 35% 감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멕시코 원유 수출은 2019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는데 그 결과 미국에서 생산된 원유는 내수용으로 더 많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들의 원유생산량도 감소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결과 지난달 멕시코, 미국, 카타르, 이라크에서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원유가 감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상반기 감산 정책을 유지하기로 발표한 상태다. 이같은 상황 속, 미국에서 원유 수요가 가장 많은 여름철 드라이빙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을 점치고 있다. 컨설팅업체 라피단 에너지 그룹의 밥 맥널리 회장은 “국제유가 100달러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질적인 지정학적 리스크에 가격이 조금 더 반영되면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 체이스는 브렌트유가 오는 8~9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내다봤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브렌트유와 WTI의 올해 평균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각각 86달러, 81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이와 반면, 또 다른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가격은 날개없는 추락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물 천연가스 선물가격은 MMBtu당 1.78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월 저점대비 약 13% 반등했지만 올해 약 30% 하락한 상황이다.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2월 2020년 6월 이후 처음으로 2달러선 밑으로 내려갔다.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로 인해 LNG 소비국의 난방수요와 그에 따른 가스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천연가스 재고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공급업계 단체인 GIE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지난달 천연가스 저장량은 685억9000만 입방미터로 겨울철 시즌이 끝난 후 사상 최대 수준이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5년 평균치보다 각각 43억2000만 입방미터, 211억6000만 입방미터 더 높다. 미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3월 마지막주까지 집계된 천연가스 저장량은 22억 5900만 입방피트로 전년 동기대비, 5년 평균치 대비 각각 23%, 38.9% 높다. 그러나 천연가스 가격이 앞으로 더 하락하기엔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많다. 주요 수입국들이 싼 값에 대량으로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데이터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달 아시아로 향한 액화천연가스(LNG) 물량이 2400만톤으로, 3월 기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중국, 인도, 태국 주도로 지난달 아시아 LNG 수입량은 전년 동기대비 12% 급증했다. 여기에 천연가스가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에노지 캐피털 파트너스의 더그 키멜먼 창립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천연가스는 AI붐에 따른 전력수요를 연중무휴로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비용 효율적인 에너지원"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