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글로벌경제를 제조와 금융 중심의 ‘골리앗기업’이 이끌었다면, 21세기 경제는 혁신창업기업 스타트업(start-up) ‘다윗기업’이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최근 20여년 간 글로벌 경제와 시장의 변화의 주인공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스타트업이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 알리바바, 틱톡은 물론 국내의 네이버, 카카오, 넥슨, 쿠팡 등도 시작은 개인창업에서 출발했다. 이들 스타트업들이 역외와 역내 경제에서 새로운 부가가치, 새로운 직종(일자리) 창출을 선도하고 있다. 한낱 ‘목동’에서 당당한 ‘장군’로 성장한 ‘스타’ 스타트업을 꿈꾸며 벤치마킹하는 국내외 창업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성공의 열매를 맛보기 위한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스타트업(창업)은 했지만 점프업(성장)하기까지 성공보다 좌절이 더 많은 ‘정글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돌팔매질을 연마하는 ‘다윗 후예’ 스타트업들을 소개한다. [에너지경제신문 김유승 기자] 오는 5일 서울 성수동에서 다 쓴 폐(廢)이차전지 분리막을 활용한 고기능 섬유소재 ‘텍스닉’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텍스닉은 스타트업 라잇루트가 전기차의 수명이 다한 폐 배터리 분리막을 재활용한 소재다. 땀에서 발생한 습기를 의류 밖으로 배출하고, 비를 막는 투습·방습·방풍 기능까지 제공해 최근 각광받고 있다. 오는 17일까지 문을 여는 텍스닉 매장은 텍스닉 소재와 적용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출시 한 달 만에 삼성물산을 포함한 9개 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라잇루트가 자신있게 소개하는 텍스닉 전시·체험 공간이다. 라잇루트는 친환경 전기차의 배터리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려진 플라스틱 분리막 패널을 섬유로 탈바꿈하는 기업이다.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는 "코로나19로 사업이 어려워져, 돌파를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려 했던 시기에 이차전지 폐기물 문제를 접하게 됐다"며 "2020년부터 1년 6개월간 연구를 지속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소개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섬유 원료의 대표주자인 페트병은 단일소재로 비교적 재활용이 어렵지 않은 반면, 분리막은 난이도가 높아 그동안 대부분이 소각돼 왔다. 라잇루트는 소각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독자적 기술을 개발해 분리막이 코팅된 원단인 리사이클 라미네이팅 원단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기술로 국내에서 특허 2개를 획득했고, 유럽·미국·중국에도 개발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신 대표는 "리사이클 소재 기업들이 가진 한계가 원재료 수급이 어렵다는 것인데, 라잇루트는 그런 부분이 없어 사업 확장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대세인 만큼, 기업들은 분리막 소재 섬유의 개발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뜨거운 관심을 보여 왔다. 출시 한 달도 안 되어 아홉 개의 기업에서 연락이 왔을 정도다. 그중 삼성물산의 ‘빈폴 골프’ 라인(제품 일부)와 29CM 플랫폼에 입점한 ‘무음’에서는 지난 2월 텍스닉 소재의 상품이 출시돼 판매 중이다. 신 대표는 기업들이 텍스닉에 느끼는 매력으로, 분리막 구조를 그대로 보존해 별도 처리를 하지 않더라도 투습 방습 방풍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을 꼽았다. 일반 옷을 비롯해 등산복, 운동화와 잡화까지 다양한 제품에 소재를 사용할 수 있고 무게가 가볍다는 것도 장점이다. 실제로 라잇루트와 협업한 삼성물산 패션 브랜드 빈폴은 방수 등 필요한 기능은 전부 갖췄으면서도 원단 무게가 가벼워 공장 작업 효율이 올라갔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신 대표는 "이미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많은 만큼, 앞으로 환경 친화적 제품을 만드는 걸 돕고 싶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텍스닉 소재를 만들어나가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현재 텍스닉 소재는 아웃도어 신발과 가방 등 기능성이 요구되는 쉘(Shall)과 가죽자켓, 부츠 등 패셔너블한 소재인 스타일 라인 두 가지다. 앞으로는 원단 이전의 실 단계인 원사 개발에 집중해 더 다양한 소재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지금은 원단 코팅 방식으로 제작하는 만큼 원단 종류와 적용 상품에서 한계가 있으나, 실인 원사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면 인테리어 상품이나 차량용 시트에도 적용할 수 있어 제품 범위가 더욱 확장되기 때문이다. 라잇루트는 분리막 외 새로운 재활용 소재를 개발해달라는 기업들의 요청도 줄을 이어,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 소재들은 텍스닉이 아닌 새로운 브랜드로 명명할 예정으로, 라잇루트는 운용하는 브랜드를 계속 늘려갈 방침이다. 신민정 대표는 "라잇루트는 주요 고객으로 해외를 바라보고 있다"며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해외 기업들을 공략해 나갈 의지를 표명했다. 친환경 상품 개발을 선언하고 활발한 변화를 이뤄나가는 글로벌 기업들은 라잇루트에게 ‘블루 오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해외 진출 준비를 꾸준히 해 온 라잇루트는 프랑스 신발기업 세 곳의 소재를 제공한 것을 계기로 앞으로 해외 고객을 더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라잇루트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 사진=김유승 기자 K-스타트업 미니컷 550 라잇루트 소재 사진 지난 2월 출시된 삼성물산의 빈폴골프 라인 제품으로, 라잇루트의 텍스닉 소재가 사용됐다. 사진=라잇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