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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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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 석유화학 퍼펙트 스톰] ⑦ ‘구조적 위기’ 한화토탈에너지스, 고위험 전략 성공 여부에 존폐 달렸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10 06:30

곳간 비운 고배당 정책, 사실상 디폴트 위기 자초

‘백 투 베이직’, 위기 속 미래향 디지털 전환 투자

50대 50 지배 구조 발목…빠른 의결이 생존 관건

한화-토탈 양대 주주 이해 관계 일치가 최대 과제

한화토탈에너지스 CI

▲한화토탈에너지스 CI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는 지난달 2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나프타 분해설비(NCC)의 연 270만~370만톤 감축을 축으로 한 구조조정의 큰 방향을 제시했다. 석화업계 10개사도 연내 자율구조 개편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생존의 기로에 선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위기 실태와 원인, 정부의 관련산업 정책 및 해법 시나리오·실행 트랙을 짚어본 뒤 주요 석유화학업체별 구조개편 선택지와 재무·고용 파급을 차례로 점검해 '누가, 무엇을, 언제' 바꿔야 하는 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한화토탈에너지스(HTE)는 중국발 저가 범용 제품의 범람에 따른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불황과 한화그룹-프랑스 토탈에너지스의 합작사(JV, Joint Venture) 형태의 지배 구조에서 비롯된 전략적 경직성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파고에 동시에 휩쓸리고 있다. 단기적으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주문한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Basic)' 전략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술적 후퇴로 평가된다.


그러나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은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POE)와 탄소 포집·활용(CCU) 같은 고부가 가치 기술로의 전환이라는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고위험 전략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 이 야심 찬 전환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고 극심한 재무적 압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양대 주주사의 완전한 이해관계 일치가 선행돼야 하는데 그 성공은 결코 보장돼있지 않다.


급전직하한 실적

재무 붕괴는 수치상으로 명백하게 드러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에 따르면 2022년만 해도 한화토탈에너지스는 매출 13조9912억원, 영업이익 2240억원을 기록하며 견조한 실적을 보였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상황이 반전됐다. 2023년 매출은 11조4816억원으로 급감했고 삼성그룹에서 한화그룹으로 넘어간 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2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2024년에는 영업손실 규모가 2047억원으로 대폭 확대됐고, 올해 상반기에는 2420억원으로 더 커져 악화일로를 걷고 있음을 드러내 일시적인 부진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 탓에 수익 창출 능력이 근본적으로 훼손됐음을 시사한다.




수익성 붕괴는 곧바로 대차 대조표의 위기로 전이됐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기업의 부채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총차입금 비율은 작 초 5배 수준에서 올해 3월 기준 87.4배까지 치솟았다고 평가했다. 이는 현재의 이익 창출 능력으로는 부채를 상환하는 데 약 88년이 걸린다는 뜻으로, 사실상 디폴트 상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수치는 핵심 사업이 현금 창출을 거의 멈췄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업이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익의 급감은 일시적 손실 문제를 넘어 현금 흐름과 상환 능력의 위기로 번진 것이다.


시장의 냉정한 평가…신용 등급 전망 줄하향 조정

국내외 신용 평가사들이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함에 따라 위기의 심각성은 재확인됐다. 신평사들은 한화토탈에너지스가 처한 상황을 단기적인 경기 순환 문제가 아닌, 장기적인 구조적 문제로 진단했다.


글로벌 신용 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석화 시장의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향후 1~2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 의미 있는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한국기업평가도 “누적된 초과 공급으로 업황 개선이 지연되고 있는데 향후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있기 때문에 있어 시장이 반등하더라도 재무 안정성 개선 속도는 더딜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기 취약성 키운 고배당 정책의 후폭풍

외부 환경이 위기의 주된 요인이지만 내부적 요인 또한 HTE의 위기 대응 능력을 약화시켰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한화그룹과 프랑스 토탈에너지스가 50대 50으로 지분을 소유한 지배 구조로 이뤄져있고, 합작사 특유의 고배당 성향을 유지해왔다. 특히 실적이 부진했던 2021년과 2022년에도 각각 2625억원, 441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배당금으로 지급했고 배당 성향은 99.7% 수준이었다.


양대 주주사의 현금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러한 정책은 현재의 불황기에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사내 유보금을 고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순손실로 인해 2023년부터 배당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과거의 현금 유출은 이미 회사의 자본 기반을 약화시킨 뒤였다.


이는 한화토탈에너지스가 계획했던 설비 투자(CAPEX)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위기 탈출을 위한 투자 여력을 스스로 제약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이는 주주들의 단기적 현금 확보 요구와 합작사 자체의 장기적 전략적 필요가 충돌하며 발생한 구조적 취약점이라는 지적이다.


한화토탈에너지스 대산 공장 전경. 사진=한화그룹 제공

▲한화토탈에너지스 대산 공장 전경. 사진=한화그룹 제공

합작사의 딜레마…전략적 민첩성 저해하는 공동 소유 구조

업황이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지배 구조는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수익성 없는 사업부의 폐쇄, 대규모 인수·합병(M&A), 급진적인 사업 재편과 같은 구조조정은 두 거대 주주사의 완전한 합의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복잡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합의 도출 과정은 더디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HD현대-롯데케미칼과 LG화학-GS칼텍스 간 NCC(Naphtha Cracking Center) 설비 통폐합 논의되고 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경쟁사들이 생존을 위한 과감한 조치에 나서고 있지만 한화토탈에너지스에서는 대대적인 구조 개편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양사 주주의 전략적 우선 순위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화그룹은 국내 산업 생태계와 고용 유지를 중시할 수 있는 반면,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토탈에너지스는 순수한 재무적 관점에서 투자 대비 수익률이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사업 철수나 매각을 선호할 수 있다.


위기는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지만 합작사 구조는 안정과 합의를 우선시하도록 설계돼있기 때문에 잠재적 이해 상충은 해결 가능한 문제를 존폐의 위협으로 키울 수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김승연, 내실 다지기 결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해 6월 한화토탈에너지스 대산공장에 찾아와 임직원들을 격려하며 '백 투 베이직' 경영을 강조했다. 이는 R&D 경쟁력 강화와 안전 경영을 핵심 가치로 삼고, 본질에 집중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는 외부 시장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통제 가능한 내부 운영을 완벽하게 다져 재무적 출혈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백 투 베이직 전략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첨단 기술을 활용한 고도화된 운영 효율화로 구체화되고 있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극심한 재무 위기 속에서도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 될 △사물 인터넷(IoT) △디지털 트윈 △VR 활용 안전 교육 △드론 활용 설비 점검 등 디지털 전환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심각한 재무 위기 상황에서 미래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일견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경영진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위기 이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디지털 역량 확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계산된 위험 감수이자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재도약의 승부수, 기술을 통한 미래 베팅

한화토탈에너지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위기 속 생명줄은 태양 전지 봉지재용 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EVA) 사업이다. 이곳은 투명성과 순도, 저수축성 등에서 월등한 품질로 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절대 강자'다.


전략적으로 EVA 사업은 회사 전체가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현금을 창출하며, 앞으로 소개될 더 위험하고 장기적인 신사업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는 핵심 엔진 역할을 수행한다.


POE 사업 진출은 태양광 소재 분야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시장을 선점하려는 HTE의 차세대 전략이다. POE는 내구성과 내습성 등에서 기존 EVA보다 뛰어난 특성을 지녀 고효율 차세대 태양광 패널에 필수적인 봉지재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POE 시장은 2030년까지 63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유망 분야다.


가장 장기적인 베팅은 정부 주도의 '서산 CCU 메가프로젝트' 참여다. 2000억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공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속 가능 항공유(e-SAF) 등 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미래 탄소 규제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단기적인 생존은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운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김 회장이 제시한 전략의 성공적인 실행에 달려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회생은 전적으로 기술 중심의 사업 구조 전환이 돼야 가능하다. 이는 기존의 핵심 자산인 EVA 사업의 수익성을 방어하는 동시에, 차세대 성장 동력인 POE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해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회복으로 가는 길은 좁고 위험으로 가득 차 있지만 회사가 채택한 기술 기반의 전략 방향은 타당하다. 남은 질문은 이 전략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충분한 재무적 여력과 통일된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한화토탈에너지스 관계자는 “당사는 체질 개선을 통한 원가 혁신·원료 산지 및 제품 판매 다변화 및 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를 통해 기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신규 사업 기반 원료 도입 다변화·R&D 기반 미래 신 성장 산업의 핵심 기술 확보를 통해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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