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칼럼] 남북한, 남남으로 살자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미국-이란 전쟁이 남북한 관계에 주는 교훈이 있다. 자유민주사회의 관점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체제라도 외부의 힘으로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쟁 직전 이란은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진 신정(神政) 독재와 심한 경제난으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지난해 말 이란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이란 정부는 유혈진압으로 수천 명의 국민을 학살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키고 “이란 국민이여, 일어나라"고 선동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시민혁명이 아니라 신정체제의 강화다. 트럼프의 잘못된 판단으로 애꿎은 주변 국가들과 전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다. 북한도 이란과 비슷하다. 21세기에 있을 법하지 않은 폐쇄적인 1인 독재를 유지하고 있다. 분단 초기에는 소련의 지원과 사회주의적 인력 동원으로 남한보다 더 잘산 적도 있지만, 지금은 경제 규모가 남한의 60분의 1 수준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 80여년이 흘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우리 헌법은 아직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그동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북 정책을 내놨지만, 남북한의 현실과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많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통일은 대박"이라며 범정부적인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통일 준비를 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북한과 최소한의 교류 협력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통일정책은 북한의 빈축만 샀고 정권이 바뀐 뒤 통준위는 해체됐다. 지난주 북한이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한 사실이 확인됐다. 헌법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조항을 지우고, 북한의 영토를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는 영토'라고 못 박았다. 2022년 김여정이 “제발 서로 의식하지 말고 살자"며 남한과의 절연을 선언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통일은 애국이고 분열은 매국"이라며 남북통일을 강조하던 분위기에 비하면 북한의 대남 정책이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북한은 2023년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했고, 이번 개헌에서는 김정은 1인 권력을 더욱 강화했다. 한국이나 국제사회가 희망하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사실 북한이 '두 국가'임을 명시하거나 “서로 의식하지 말자"고 하기 전부터 남북한은 남남처럼 살아왔다. 남한에서도 남북통일은 교과서나 정치적 구호로만 존재해 왔지, 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한국의 법과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지금도 북한을 미수복 영토, 반(反)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어 수시로 정치적 '북풍(北風)'에 이용된다. 최근에도 윤석열 정부는 평양으로 드론을 보내 북한의 도발을 유발하고, 이를 기회로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는 음모를 꾸몄었다. 남북한은 1953년 정전협정으로 잠시 전쟁이 멈춘 상태다.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한 '두 개의 국가'지만, 정부 간에 정식 연락망조차 없어 작은 충돌이 자칫 전쟁으로 번질 위험이 상존한다. 현실과 제도가 맞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제재 완화를 대가로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 개방을 유도하려 했다. 지금은 그것도 어렵다. 국제정세 변화로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대북 제재의 뒷문이 활짝 열리고 북한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은 2024년 3.7% 성장에 이어 작년에도 3%대의 경제성장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김정은에게 손짓을 해도 북한의 반응이 싸늘한 이유다. 이제 북한이 곧 붕괴한다거나, 북한에 '당근'을 제시해 개혁 개방으로 이끌겠다는 환상은 버리자. 북한 체제가 이른 미래에 변화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을 별개의 체제로 인정하고 남북한이 서로 위협을 느끼지 않을 법과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정말 실용을 추구한다면 '이북5도위원회'부터 폐지하기 바란다. 북한 땅을 밟지도 못하면서 이북 5도 지사를 임명해 매년 수백억 원의 세금을 낭비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그만하자. 같은 민족이라면서 원수처럼 지내기보다는 차라리 평화로운 이웃으로 지내는 편이 낫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의 종전을 공식 선언하고 남북간에 평화협정과 외교관계를 맺어 한반도에 안정된 평화를 구축하는 일부터 하면 좋겠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신연수 칼럼] 브라보! K-반도체

삼성전자가 1분기 영업이익 57조 원을 돌파하며 한국 기업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중 50조 원이 반도체에서 나왔다. 올해 한국 수출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하리라는 기대가 높은데, 이 역시 반도체 덕분이다. 한국 경제는 이제 반도체를 빼고 상상할 수가 없다. 미-이란 전쟁의 와중에도 3월 수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 수출액의 38%가 반도체였다. 작년에 2400 수준이던 코스피가 올해 6000을 돌파하는 데도 반도체의 비중이 40% 가까이 됐다. 인공지능(AI) 기술이 경제와 안보는 물론이고 인간 생활 전 분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시대다. 'AI 산업의 쌀'인 반도체 역시 단순한 정보기술(IT) 부품에서 벗어나 모든 산업의 핵이 되고 있다. 수요는 폭증하는데 고품질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세계적으로 몇 개 없다. K-반도체가 각광받는 이유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제품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줄섰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물론이고 일반 D램 메모리까지 품귀 현상을 빚어 두 회사는 이미 내년까지 주문이 밀려 있다고 한다. AI 덕분에 반도체 산업에 '슈퍼 사이클'이 찾아왔다는 평가다. 지금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만 K-반도체가 늘 웃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역사는 눈물겹다. 2000년대 초 유동성 위기로 부도 직전까지 갔을 때 직원들은 돌아가며 무급휴직을 했다. 월급의 10~30%를 자진 반납했으며 구내식당 반찬 수를 줄이면서 버텼다(이인숙 등 저술, ). 최태원 SK 회장이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하려 할 때 그룹 안팎에서는 반대가 심했고, 적자 회사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때도 그랬다. 하이닉스의 '독한' DNA와 리더의 안목이 만나 오늘의 SK하이닉스가 탄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또한 불굴의 도전사를 가졌다. 이병철 창업자는 1980년대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지배하던 반도체 시장에 '무모한 도전'을 선언했고, 이건희 전 회장은 '초격차 전략'으로 세계 1위 기업을 만들었다. 최근 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는 수모를 겪었지만, 세계 최초로 HBM4를 상용화하며 반전을 시작했다. 반도체는 IT 수요에 따라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아주 큰 산업이다. 공장 건설에 수십조 원이 드는 데다 2~3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불황일 때 대규모 투자를 해야 호황일 때 과실을 따먹을 수 있다. 이 주기를 견디지 못하고 잔인한 '치킨 게임(chicken game)' 속에 일본 엘피다 같은 기업들이 쓰러질 때 K-반도체는 살아남아 호황을 맞았다. K-반도체의 성과는 대단하지만, 과제도 많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 장비와 핵심 부품들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삼성전자는 작년에 등기임원을 제외한 임금 총액이 전년보다 22% 늘었지만, 임직원 수는 오히려 줄었다. SK하이닉스는 1년간 임금이 67%나 늘었지만 직원 수는 6.7%밖에 안 늘었다(에너지경제신문 4월 2일자 '대기업, 고용은 제자리… 인건비만 뛰었다'). 반도체 산업의 온기가 다른 산업이나 국민 전체로 퍼지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작년 12월 'AI시대, 반도체 산업 전략' 보고서에서도 밝혔듯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비롯한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 또 반도체 공장을 수도권에만 짓지 말고, 대만이나 미국처럼 지방으로 분산하는 것이 산업 안보 측면에서도 좋다. 이번 미-이란 전쟁으로 불거진 것처럼, 중동 지역에 치우친 헬륨 등 반도체 소재와 장비 생산처를 다변화할 필요도 있다. 반도체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도 큰 숙제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반도체, 조선, 방산을 빼고는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미운오리새끼였던 하이닉스가 AI를 만나 백조가 되었듯이 10~20년 뒤 경제는 무엇이 주도할지 아무도 모른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가기 위한 교육제도 전환과 인재 양성 시스템 구축, 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북돋는 체계 마련 등 정부가 할 일이 많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신연수 칼럼]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겪어야 할 일을 겪는다(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요즘의 국제 정세는 이 유명한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저술한 에 나오는 이 말은, 정의(正義)보다 힘이 우선인 국제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 국제정치학의 고전이 되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맞붙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멜로스라는 작은 섬나라는 중립을 지켰다. 아테네가 항복하라고 하자 멜로스는 “신이 정의로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며 버텼다. 아테네는 멜로스를 정복해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노예로 만들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최고지도자 폭살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이란이 아무리 무자비한 독재국가라도 다른 나라의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무력으로 침해하는 행위는 유엔 헌장을 위반한 것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9·11 테러 이후였고, 부시 정부는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가 테러리스트 손에 들어갈 위험'을 이유로 내세웠다. 그래도 '임박한 위협'이 없는데 증거를 조작했다고 두고두고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 트럼프 정부는 “이란의 핵 개발과 선제공격 위협"을 이유로 들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트럼프는 부시처럼 거짓말이라도 성의있게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내 맘에 드는 정권을 세우겠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와 그린란드 합병 위협 등으로 더 이상 놀랄 일마저 없어진 것인가. 문명의 21세기에 강대국의 약소국 침탈이 일상화되고 있다. 주변 국가들을 공습하며 전쟁을 확대하는 이란 역시 불법 무도한 것은 마찬가지다. 제1,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뒤 국제사회가 공들여 쌓아온 국제규범과 질서는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 미국-이란 전쟁의 결과는 그동안 미국이 해왔던 전쟁들을 보면 알 수 있다. 2001년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은 20년간의 장기 전쟁 끝에 2021년 불명예스럽게 철수했다. 이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은 24만 명을 넘고 미국이 쓴 비용은 1000조 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결국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아 전쟁 이전으로 돌아갔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또한 이라크를 극심한 내전으로 몰아넣었고, 그 과정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IS(이슬람 국가)가 탄생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이런 전쟁들은 중동의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미국의 안보와 패권도 해쳤다. 그래서 존 미어샤이머 교수 같은 미국의 석학들은 '민족주의와 종교적 특성이 강한 나라들에 외세가 개입해 체제를 바꾸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결과들은 '미국의 오만함이 낳은 참사'라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투키디데스의 기록 역시 강자의 논리를 대변하려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오만함을 경고한 것이었다. 그는 절대 권력의 오만함이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지 보여주려 했다. 실제로 아테네는 멜로스 학살 다음 해 시칠리아 원정에 나가 대패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희미한 빛은 비친다. 미-이란 전쟁 발발 후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전쟁에 반대한다"며 미국의 협조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대국민 TV 연설에서 “전쟁은 더 불안정한 세계와 더 열악한 삶을 가져올 뿐"이라면서 “평화와 국제법을 준수하는 나라들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마크 커니 총리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강대국들의 힘 자랑으로 흔들리는 세계를 중견국들이 바로잡자'고 연설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중견국 혼자로는 패권국에 맞서기 어렵지만, 중견국들이 연대해 인권 존중과 지속가능한 발전, 영토 보전을 지켜내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자고 호소했다. 국제질서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결코 과거와 같은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세계에는 깨어있는 많은 시민들이 있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정부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예정된 실패를 강행하는 일부 권력자들 외에는. 다행히 여러 나라들이 중재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이란은 하루빨리 외교적 타협점을 찾아야 하고 주변 국가들은 중재에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대통령의 말폭탄이 불안한 이유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다주택자들을 향해 “집을 팔라"고 압박하고 있다. “돈이 마귀" “망국적 부동산 투기" 같은 강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자랑하는 성과들을 끌어와 “부동산 정상화는 5000피,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다"고도 했다. 몇 년이나 미뤘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재개하는 것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의 하나다. 국민 삶에 필수적인 집을 투기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도 옳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이런 압박이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 호소에 가까워 보인다.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선거를 앞두고 뾰족한 대책은 없고, 말로 기선 제압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8.98%로,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높았다. 지난주까지 52주 연속 상승했으니 사실상 1년 내내 쉬임없이 오른 셈이다. 매매가뿐 아니라 전월세금까지 치솟아 서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재명 정부 들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부동산 대책을 4번이나 내놨다. 작년에는 서울과 경기도의 거의 모든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을 거래허가 대상으로 묶고 금융 대출까지 막는, '사상 최강의 규제'라 불리는 10·15대책을 내놨다. 새해 들어서는 수도권 핵심지역에 6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1·29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아직은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전쟁에 나선 것인데, 그래서 더 불안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상승→부동산 대책 →효과 없음→ 더 강한 대책 → 집값 더 상승으로 이어졌던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까지 나서서 요란하게 부동산 전쟁을 벌인 결과는 처참했다. 주택 소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하고, 서울 아파트는 점점 더 안전자산이 되어갔다. 사실은 다양한 요인으로 집값이 올랐지만, 국민의 인식 속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으로 각인되었다. 언론을 탓하는 것도 닮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땅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 언론들의 여론몰이'를 탓했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어깃장을 놓는 일부 언론도 문제지만, 옳은 비판도 많다. 정부가 수도권 주택을 실거주 아니면 구매할 수 없도록 규제했기 때문에, 다주택자가 집을 팔려 해도 팔 수 없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고 정책을 보완해 주는 문제 제기였다. 다주택자가 현재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인지도 의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다주택자는 2019년 15.9%에서 2024년 14.9%로 되레 줄었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00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들의 평균 매입가는 1억 6000만 원 수준이다.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주택은 서울 아파트가 아니라 대부분 임대 목적의 빌라나 다세대주택이라는 얘기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나 금융대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구매한 사람은 30대 생애 최초 구입자와 더 좋은 지역으로 옮기려는 40대 구매자로 보인다. 이들을 '마귀'이고 '악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집값 상승을 다주택자들의 투기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실무자들이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1·29 공급 정책은 졸속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용산은 국제업무지구 기능 훼손, 교통과 교육 여건 악화, 사업 지연 등을 이유로 서울시가 반대하고 있다. 과천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마사회 이전에 대해 전혀 상의가 없었다며 마사회 노조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태릉CC는 문재인 정부 때도 추진했다가 세계문화유산과 그린벨트 훼손 우려, 주민 반대 등으로 좌초됐던 곳이다. 1·29대책이 실현 가능성 점검이나 지자체와의 조율 없이 숫자 위주로 급조됐다는 반증이다. 때로는 투기 심리와의 기싸움도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집값 상승의 원인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정책을 보완해야 할 때다. 부동산은 주식시장보다 복잡한 시장이다. 수요와 공급뿐 아니라 일자리, 교통, 교육, 문화 등 삶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집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쾌도난마식 해법에 조급하기보다 실용적이고 꾸준한 정책으로 집값을 안정시킨 최초의 민주당 정부가 되길 바란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신연수 칼럼] 대통령의 말폭탄이 불안한 이유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다주택자들을 향해 “집을 팔라"고 압박하고 있다. “돈이 마귀" “망국적 부동산 투기" 같은 강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자랑하는 성과들을 끌어와 “부동산 정상화는 5000피,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다"고도 했다. 몇 년이나 미뤘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재개하는 것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의 하나다. 국민 삶에 필수적인 집을 투기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도 옳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이런 압박이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 호소에 가까워 보인다.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선거를 앞두고 뾰족한 대책은 없고, 말로 기선 제압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8.98%로,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높았다. 지난주까지 52주 연속 상승했으니 사실상 1년 내내 쉬임없이 오른 셈이다. 매매가뿐 아니라 전월세금까지 치솟아 서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재명 정부 들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부동산 대책을 4번이나 내놨다. 작년에는 서울과 경기도의 거의 모든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을 거래허가 대상으로 묶고 금융 대출까지 막는, '사상 최강의 규제'라 불리는 10·15대책을 내놨다. 새해 들어서는 수도권 핵심지역에 6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1·29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아직은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전쟁에 나선 것인데, 그래서 더 불안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상승→부동산 대책 →효과 없음→ 더 강한 대책 → 집값 더 상승으로 이어졌던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까지 나서서 요란하게 부동산 전쟁을 벌인 결과는 처참했다. 주택 소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하고, 서울 아파트는 점점 더 안전자산이 되어갔다. 사실은 다양한 요인으로 집값이 올랐지만, 국민의 인식 속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으로 각인되었다. 언론을 탓하는 것도 닮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땅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 언론들의 여론몰이'를 탓했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어깃장을 놓는 일부 언론도 문제지만, 옳은 비판도 많다. 정부가 수도권 주택을 실거주 아니면 구매할 수 없도록 규제했기 때문에, 다주택자가 집을 팔려 해도 팔 수 없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고 정책을 보완해 주는 문제 제기였다. 다주택자가 현재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인지도 의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다주택자는 2019년 15.9%에서 2024년 14.9%로 되레 줄었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00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들의 평균 매입가는 1억 6000만 원 수준이다.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주택은 서울 아파트가 아니라 대부분 임대 목적의 빌라나 다세대주택이라는 얘기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나 금융대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구매한 사람은 30대 생애 최초 구입자와 더 좋은 지역으로 옮기려는 40대 구매자로 보인다. 이들을 '마귀'이고 '악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집값 상승을 다주택자들의 투기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실무자들이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1·29 공급 정책은 졸속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용산은 국제업무지구 기능 훼손, 교통과 교육 여건 악화, 사업 지연 등을 이유로 서울시가 반대하고 있다. 과천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마사회 이전에 대해 전혀 상의가 없었다며 마사회 노조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태릉CC는 문재인 정부 때도 추진했다가 세계문화유산과 그린벨트 훼손 우려, 주민 반대 등으로 좌초됐던 곳이다. 1·29대책이 실현 가능성 점검이나 지자체와의 조율 없이 숫자 위주로 급조됐다는 반증이다. 때로는 투기 심리와의 기싸움도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집값 상승의 원인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정책을 보완해야 할 때다. 부동산은 주식시장보다 복잡한 시장이다. 수요와 공급뿐 아니라 일자리, 교통, 교육, 문화 등 삶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집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쾌도난마식 해법에 조급하기보다 실용적이고 꾸준한 정책으로 집값을 안정시킨 최초의 민주당 정부가 되길 바란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신연수 칼럼] AI시대, 기대와 두려움

요즘 어딜 가나 인공지능(AI)이 화제다. 지인들의 모임에서는 AI로 음악과 동영상을 만들었다는 경험담이 꽃을 피운다. 주식시장에서는 AI로 인한 반도체와 에너지 수요 폭증으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 'CES 2026'은 본격적인 '피지컬(Physical) AI'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는 사람처럼 뛰거나 앉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LG전자 '클로이드'는 빨래, 요리 같은 집안일을 대신할 홈로봇으로 인기를 끌었다. 2016년 바둑 천재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배해 충격을 준 지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AI가 인간의 삶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그 사이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글과 음악, 영상 등 세상에 없던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AI'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에이전트형 AI'로 발전했다. 이젠 '실물형(피지컬) AI'로 나아간다. AI가 컴퓨터 안에 머물지 않고 로봇 등을 통해 물리적 행동을 하는 단계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해방돼 문화와 여가를 즐기게 된다'고 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일까? 아니다. AI시대는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한다. 기업들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AI를 개발하고, 상위 10%의 전문가들이 에이전트형 AI 덕분에 5명의 비서를 둔 것 같다고 기뻐할 때 한편에서는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KBS 다큐멘터리 '멋진 신AI세계'는 지난해 시험에 합격한 공인회계사들이 취업은커녕 실습할 기관을 찾지 못해 정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3년차 신입 회계사가 할 일은 AI가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회계법인들이 회계사들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계사뿐 아니라 세무사, 웹툰 작가, IT 종사자 등 예전엔 전문직이었던 분야에서 청년들이 AI와 취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분야는 기자, 변호사, 의사 등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한국에서 AI가 대체할 일자리가 327만 개로, 전체의 13%를 넘으리라고 분석했다. 더구나 사라질 일자리의 60%가 화이트칼라 전문직이라는 것이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동안의 기술이 인간의 신체활동을 대신했다면, AI는 인간의 정신활동까지 대체한다는 면에서 혁명적이다. 전문가들이 AI는 인간이 불을 발견했을 때나 인쇄술을 발명했을 때처럼 인간의 문명을 통째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다. 저명한 외교관이자 이론가인 헨리 키신저는 국방과 안보에 AI가 사용됨으로써 국제사회의 질서도 바뀔 것이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이미 우리는 AI가 낳은 부정적 결과물의 하나인 '파편화된 세계'를 보고 있다. 한국에서 AI 열풍이 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너도나도 AI 배우기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한국을 AI 3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AI를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것 못지않게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보완해야 한다. AI 디바이드(divide)는 디지털 디바이드를 초월할 것이다. AI는 경제적 사회적 파장을 넘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생성형 AI가 만든 음악과 그림, 글을 인간이 만든 작품과 구별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럴 때 인간 고유의 창의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작가 장강명이 물은 것처럼 AI가 노벨문학상 수준의 소설을 1분에 한 편씩 만드는 시대에도 소설은 '인간 영혼을 담은 예술'일 수 있는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성(理性)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이 지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내는 산물보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더 우월하다면, 인간 이성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상품의 가치는 그 안에 내재된 인간의 노동 때문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AI시대에도 설득력을 가질까.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지적 결과물을 내놓는 시대는 거꾸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인생의 참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랑, 책임, 의미, 가치… 이러한 인간의 미덕을 고도로 발휘하지 않는다면 AI시대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악몽이 되고 말 것이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