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의 오랜 숙원이었던 인수합병(M&A) 규제를 비수도권 중심으로 완화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저축은행 총여신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됐는데, 규모가 작은 비수도권 소재 저축은행끼리 M&A를 완화한 것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겠다는 당국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과거 저축은행 사태에 이어 최근까지도 새마을금고 사태로 금융권의 건전성 이슈가 계속되는 만큼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다른 저축은행 간에 리스크 전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수도권을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규제 완화로 비수도권의 M&A가 이뤄지고 별다른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향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M&A 전면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숙원 저축은행 M&A 규제, 비수도권 한해 제한적 허용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최근 발표한 ‘저축은행 대주주변경 및 합병 등 인가기준 개정안’은 비수도권 저축은행에 대해 영업구역이 확대되는 저축은행을 최대 4개까지 소유, 지배를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저축은행 79곳의 영업권은 서울, 인천·경기 등 수도권과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강원, 광주·전라·제주, 대전·세종·충청 등 총 6개로 구성됐다. 기존에는 동일 대주주가 기존 영업구역을 넘어 3개 이상의 저축은행을 지배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비수도권 저축은행에 한해 동일 대주주가 영업구역이 확대되는 저축은행을 최대 4개까지 지배하도록 허용했다. M&A 규제 완화의 핵심은 비수도권이지만, 수도권도 적기시정조치 대상 저축은행이 포함되는 경우에 한해 영업구역을 최대 4개까지 허용했다. 적기시정조치란 경영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된 회사에 대해 당국이 단계적으로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제도를 뜻한다. 쉽게 말해 규모가 크거나 건전한 수도권 저축은행 간에 합병은 금지하되, 경영난에 빠진 수도권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M&A를 일부 풀어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상회사가 수도권의 부실한 회사를 인수하도록 허용해준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현재 부실한 저축은행은 수도권에 없다"고 했다.◇ 저축은행 총여신 절반 이상이 서울...비수도권 규제완화 당국 취지와 상충
업계에서는 금융사가 M&A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이미 대주주 적격성을 까다롭게 심사하고 있는 만큼 저축은행의 M&A를 자유롭게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계속해서 요구해왔다. 만일 당국이 보기에 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는 대주주에 대해 결격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충분히 불허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논리다. 특히나 비수도권 저축은행은 상대적으로 수도권 저축은행보다 자본력, 수익성 측면에서 열위에 있기 때문에 비수도권 간에 합병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영건전성을 제고하겠다는 당국의 취지와 상충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국내 저축은행 79곳 가운데 자산규모 3000억원 이하인 저축은행은 18곳이었다. 18곳 중 영진저축은행, 평택저축은행 등 2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저축은행은 경남, 부산, 경북, 광주, 전북, 충남 등 비수도권에 몰려있다. 여수신 잔액도 수도권에 쏠려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전국 저축은행 총여신 잔액 110조7912억원 가운데 서울이 67조7881억원으로 전체 잔액의 61.18%를 차지했다. 대전(8710억원), 경남(7861억원), 전북(4702억원) 등 비수도권의 상당수는 총여신 잔액이 1조원에도 못 미쳤다. ◇ 금융당국, 저축은행 대형화 난색...계열사 연쇄부실 리스크 우려그럼에도 금융당국이 비수도권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M&A 규제를 완화한 것은 최근 금리 인상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금융권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30개 부실 저축은행이 파산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규모가 작은 비수도권 저축은행부터 우선적으로 M&A를 허용해 혹시 모를 리스크 전이 가능성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다. 즉 당국 입장에서는 특정 대주주가 M&A를 통해 다수의 저축은행을 보유할 경우, 대주주 모럴해저드와 같은 이유로 모회사가 흔들리면 저축은행 계열사도 연쇄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저축은행 고위급 관계자는 "태광그룹, 상상인그룹처럼 금융그룹 내에 두 개의 저축은행을 보유한 곳은 합병을 통해 비용 감축, 건전성 제고 등을 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그러나 당국은 저축은행이 합병했을 때 영업구역이 커지는 것뿐만 아니라 중대형사가 생기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현재는 저축은행의 대주주가 국내외 금융지주, 외국계 사모펀드 등 우량한 회사들로 바뀌었고, 저축은행의 건전성 관리, 리스크 관리 능력도 상당 수준으로 올라왔다"며 "거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당국의 상황도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경영 효율화,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수도권, 비수도권 등 지역 구분 없이 M&A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2금융권 살얼음판...대규모 M&A시 제2새마을금고 사태 가능성도한편에서는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처럼 자칫 저축은행 M&A가 제2금융권 전반의 위기설, 뱅크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양주동부 새마을금고는 지난달 6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으로 인해 경기 남양주동부 새마을금고가 인근 화도새마을금고로 합수합병됐다. 가뜩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으로 금융권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당시 합병은 자산건전성에 대한 고객들의 불안을 자극시키며 뱅크런 사태로 이어졌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지방 저축은행 30개를 합쳐도 수도권 대형사 한 곳을 이기기 어려울 정도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에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당국의 이번 규제 완화는 양극화 현상을 선제적으로 막아보겠다는 건데, 지금은 대형사들도 버티기 힘든 만큼 어느 누가 M&A에 나설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다만 영업권역 확대를 노리는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이번 규제 완화가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당국의 정책은 그간 저축은행 업계의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영업구역 확대를 노리는 회사 입장에서는 이번 규제 완화로 M&A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평가했다.ys106@ekn.kr금융당국이 최근 발표한 ‘저축은행 대주주변경 및 합병 등 인가기준 개정안’은 비수도권 저축은행에 대해 영업구역이 확대되는 저축은행을 최대 4개까지 소유, 지배를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진=연합)지난해 12월 기준 저축은행 지역별 현황.(자료=예금보험공사)서울의 한 대형 저축은행.(주: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사진=에너지경제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