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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분산에너지 활성화, 제대로 성과 내려면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넘어오는 전기가 송전선 건설 지연으로 못 오고 있다. 수도권으로의 수요집중과 원거리에 위치한 발전설비 건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해안에 석탄발전소가 몰리고 원전이 확대되어 765kV를 건설해야 하면서 홍역을 치른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왜 이런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가. 문제의 원인을 해소하지 않은 채 분산화를 활성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전력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되는데 발전설비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하기 때문에 분산화가 안 되는 것이다.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수도권으로 사람이 몰리고 기업이 몰리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제조업이 이 복잡한 곳에 몰리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그 이면에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전기요금이 있다. 배달비를 더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전기요금을 무는 것 자체가 특혜다. 수도권에 전력수요가 몰리는 가장 큰 이유다.전력수요가 몰리면 수도권에 발전소를 많이 지으면 될 일 아닌가. 그런데 수도권에 누가 원전이나 석탄발전소를 감히 지을 수 있겠는가. 멀리 떨어진 한적한 바닷가에서도 힘든데 말이다. 그나마 수도권에 건설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었던 발전설비는 가스발전소다. 그런데 가스발전소는 아직도 여러 면에서 불이익을 보고 있다. 첫째, 발전설비에 대한 장기계획을 세우는 전력수급기본계획 때문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그 전신이 장기전력수급계획인데 전기사업법에 1989년에 들어왔다. 사실은 원전건설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든 계획이다. 석탄발전소도 이 계획의 덕을 많이 봤다. 서해안에 영흥, 당진, 태안, 보령의 석탄발전단지도 그렇게 지을 수 있었다. 계획에 반영된 발전설비는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공기가 10년 이상인 원전이나 7-8년인 석탄발전소는 착착 건설되지만 공기가 짧은 가스발전소는 착공시점의 전력수급을 계산해서 미뤄진다. 원전이나 석탄을 수도권에 지을 수는 없으므로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건설했다. 새로운 입지 구하는 것이 어려워 6기에서 10기의 발전소가 한 부지에 들어섰고 대단위 발전단지에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려니 송전선 용량이 모자라게 된 것이다.둘째, 연료가격이다. 가스발전소의 연료인 발전용 LNG는 가정용 도시가스를 교차보조하는 바람에 값이 비싸졌다. 그렇지 않아도 LNG로 들여와서 비싼데 값이 더 올라갔다. 우리나라의 가정용 도시가스는 LNG로 들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발전용 천연가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이처럼 가격에서 불이익을 보는 바람에 수도권에 가스발전소를 건설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집단에너지 열병합발전소에 대한 규제다. 지역난방은 전세계에서 가장 주택밀도가 높은 우리나라 수도권의 에너지 절약형 난방방식이다. 수도권은 아파트, 연립주택 및 다세대주택으로 정의되는 공동주택의 비율이 90%에 달한다. 집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동주택에서 집단에너지는 높은 에너지 효율을 보이고 난방비를 절감시키는 요인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집단에너지 사업자인 한난의 열요금이 정부의 가격규제로 오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민간 집단에너지사업자의 열요금도 한난 열요금의 110%를 상한으로 규제되고 있다. 수도권에 열병합발전소가 생각만큼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게다가 열병합발전소에 공급되는 LNG 가격은 발전용 LNG 가격보다도 비싸다.정부는 지난해에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을 통해 분산화를 위한 새로운 지원제도를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이를 위해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분산화가 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꾸 덫 칠하는 모양새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지역차등 전기요금을 도입하고, 발전설비 계획 방법도 바꾸며, 발전용 LNG 가격과 열병합발전소용 LNG 가격을 낮추면서 열요금도 정상화해야 한다. 부차적인 방법을 아무리 많이 추가해도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분산화는 쉽지 않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 천연가스값 하락, 에너지위기 완화로 착각 말아야

최근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하고 재고가 가득 찬 데다 온화한 날씨까지 예상되자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끝나가는 것 아니냐는 국내외 기사들이 눈에 띄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유럽의 LNG 인프라 부족이 보여주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올 4월 영국에서 LNG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보다 하락했던 이유는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유럽이 구매한 LNG를 전송해 줄 터미널이 부족해 LNG 저장시설과 유럽의 파이프라인 인터커넥터가 있는 영국이 수송로 역할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파이프라인이 최대용량으로 가동되었으나 그보다 더 많은 LNG가 영국으로 들어왔고 당시 온화한 날씨로 유럽의 가스 수요가 줄어들면서 영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급락해 남아도는 천연가스를 전력생산으로 돌리면서 영국은 잠시나마 유럽의 대형 전력 수출국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러나 영국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영국 에너지비용 결정방식이 몇 달 또는 몇 년 전 선물로 결정되기 때문인데 에너지 위기 이전보다 여전히 3~4배가 더 높았으며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온화한 기후 역시 에너지 위기를 부추겼다. 지난해 겨울 따뜻한 날씨로 눈이 내리지 않았고 적설량 부족과 올여름 가뭄이 만나 라인강의 수위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냉각수가 필요한 원전은 물론 라인강으로 운반해야 할 석탄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전력공급은 줄어들었고 저렴한 내륙운송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유럽경제 침체에도 영향을 미쳤다.유럽의 LNG 재고가 충분하다지만 유럽의 여러 기업은 급등한 에너지요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공장을 멈추고 있다. 지난 9월 세계 최대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은 가스와 전기요금이 10배가 올라 공장 2곳을 폐쇄하고 1곳을 가동 중단했다. 최근 BASF는 치솟는 에너지비용으로 유럽지역 생산을 영구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의 아연제련소들은 생산량 감축과 가동중단을 단행했고 천연가스로 만드는 비료는 생산능력의 70%가 멈춰섰다. 인플레이션으로 수요파괴가 예상 된다지만 에너지비용 급등으로 현장의 공급능력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 핵심산업의 가동중단은 고스란히 구조조정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는 유럽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더욱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올 겨울을 무사히 보낸다 하더라도 유럽은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 유럽은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보다 몇 배는 더 비싼 LNG로의 경제전환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가. 아직 본격적인 에너지 위기가 벌어지기도 전임에도 유럽 각국의 시민들은 급등한 에너지요금을 내는 대신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이며 청구서를 불태우고 있다. 값비싼 천연가스 대신 장작은 물론 쓰레기와 말똥까지 태우고 있다. 헝가리는 EU 단일대오에서 이탈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공급받으면서도 벌목규제를 완화했고 장작 수출을 금지했다. 이탈리아와 스웨덴은 친러 극우세력이 집권하며 에너지 위기가 비료와 식량난, 경제위기를 거쳐 민주주의의 위기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성만 커졌을 뿐 유럽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위기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저렴한 기존 에너지원이 충분히 공급되어 모든 것의 가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시작된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서 정책당국은 지금까지 공급을 늘리지도 가격을 내리지도 못했다. 유난히 수요 절감에 집착하는 이유다. 그러나 유럽에 한파가 몰아치는 순간 그들이 설정한 적정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더 많은 천연가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중국의 봉쇄가 끝나는 순간 LNG 수급은 다시 어려워질 것이다. 독일과 영국 국민은 한파에 대비해 전기담요를 구매하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들은 올겨울 전력 수요 절감을 바라는 정책당국의 희망과 반대되는 양상이다.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8월 피크에 비해 65%가 하락했지만 MWh당 115유로의 가격은 석유로 환산하면 180달러에 달하며 10년 평균 천연가스 가격의 5배가 넘는다. 디젤 가격은 재고 부족과 함께 다시 가격이 상승하고 있으며 일본은 톤당 70달러면 비싸다는 석탄을 최근 395달러에 도입했다. 현재 화석연료는 선진국들도 감당하기 힘든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러시아는 관광홍보와 가즈프롬 소개 영상에서 ‘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 이란 메시지와 함께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얼어붙는 영상으로 유럽을 조롱했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당국의 판단은 러시아의 조롱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으며 현재진행형이다.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EE칼럼] 전력거래가격 상한제 흔들림없이 시행해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망 위기도 장기화되고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겠다’며 큰 소리 치던 서유럽 국가들은 에너지난으로 고통 받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말 노르트스트림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발트해 아래에서 폭파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 가스관을 통한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제는 전쟁이 끝나도 에너지 가격이 단기간에 낮아지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영국의 전기·가스위원회는 내년 에너지 요금이 올해의 3배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고, 독일에서는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시위와 겨울철 난방연료로 장작과 석탄 사재기가 시작된 지 오래다. "값싸고 오래 타는 석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건강에 좋진 않겠지만 추운 것보다는 낫다." 독일 시민의 인터뷰 내용이다. 에너지 위기는 우리에게도 밀려 왔다. 도시가스 가격은 올 들어 38.5%가 올랐고, 전기요금은 10월 인상분을 포함하면 거의 23%가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한전의 예상적자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예상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가구 당 월 8만원 정도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게 한전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1~8월 정산단가(구입가격) 143.6원에 한전비용(송배전 및 판매비용 대략 20원/kWh 추정)을 합한 단가가 164원 수준인데 판매단가는 116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kWh 팔면 50원 정도 손해 보는 장사다. 그러고도 시장한계가격(SMP)은 당분간 더 오를 전망이다. 일반회사라면 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나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전기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한전은 망해서도 안되고, 망할 수도 없는 기업이다. 일부라도 적자를 덜어내자는 것이 SMP 상한제다. 세계 각국은 이미 SMP 상한제와 유사한 횡재세(windfall tax)를 부과하고 있다. 유럽연합(EU)는 9월 30일 에너지이사회 긴급회의를 열고 12월부터 화석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데 합의했다. EU 법안 초안에 따르면 가스 외에 태양광·풍력·원자력·석탄을 활용하는 발전사들이 벌어들이는 초과이익의 일부가 횡재세로 회수된다. 물론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이 조치로 마련되는 1400억 유로(약 197조원)는 소비자 부담 완화에 활용된다. 발전사 수익은 MWh 당 180유로(kWh 당 250원) 이하로 제한된다. 미국도 횡재세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해 엑손모빌은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며 횡재세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업부는 ‘전력시장 긴급정산 상한가격제도’와 ‘고정가격계약의 전력거래가격 정산방식 개선’을 발표하고 SMP 상한제의 12월 시행을 예고했다. ‘전기사업법 제4조(전기사용자의 보호)와 전기사업법 제33조(전력거래의 가격 및 정산) 2항의 ’전기사용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전력거래가격의 상한을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가 법적 근거다. SMP 상한은 약 160원으로 하고 발전사업자 연료비가 상한을 초과하는 경우 실제 연료비는 별도로 보상하겠다는 것과, 고정가격계약을 체결한 신재생의 경우 SMP가 고정가격보다 높을 때 고정가격을 상한으로 하겠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정부는 "시장충격을 완화하고 전기 소비자 부담을 경감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적근거와 명분이 확실한데도 정부는 즉각적인 시행을 망설이고 있다. 탈원전 때와 비교되는 장면이다. 물론 업계는 반발한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다", "손실이 날 때는 정부가 도와주지도 않다가 큰 수익이 날 때 세금만 걷어가겠다는 건가"라는 주장이 주류다. 일부 전문가들도 여기에 동조한다. 툭하면 목소리를 높이는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SMP 상한제에 꿀 먹은 벙어리다. SMP 상한제에 침묵하는 것은 동의한다는 뜻인가. 그보다는 이쪽(민자발전·태양광사업자) 저쪽(산업부·소비자) 사이에서 눈치보기를 하는 것 같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내거나 또는 부도가 난다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현재의 상황은 특별하다. 미국의 횡재세 부과는 1차,2차 세계대전과 올해까지 세 차례나 된다. 정부의 SMP 상한제는 필요한 조치다. 소비자 보호와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독자들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묻고 싶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EE칼럼] 유럽 에너지 위기의 교훈

"우리는 현재 러시아와 에너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 파리와 프라하에서 만난 국제에너지기구 및 다른 에너지 워크샵에서 만난 유럽의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록 포탄이 오고 가는 물리적 전장은 우크라이나이지만, 유럽 전체가 에너지 영역에서 러시아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는 영원히 수입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현재 올 겨울 및 내년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TV 미디어 및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 에너지 위기 문제를 다루면서,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자립에 대하여 방송하고 있고, 많은 시민들도 일상 대화 속에서 에너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지를 논하고 있다. 지난 주 유럽 현지를 방문하여 에너지 전문 기관 및 전문가들을 만나 보니, 심각성과 단호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유럽은 우선 단기 대책으로 올 겨울용 가스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3월 최저점을 찍은 유럽 가스 저장량은 2000만 톤에 불과하였지만,노르웨이·미국·앙골라·세네갈로 LNG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고가의 가격 때문에 구매를 포기한 아시아 국가의 물량과 중국의 LNG 소비 감소에 따른 잉여LNG 등으로 약 5200만 톤의 LNG를 확보하여 2022년 9월 유럽 가스 저장용량의 90%이상인 7200만톤의 가스를 확보하였다. 게다가 평균이상으로 온화한 10월의 날씨 덕에 이제는 재고의 95%가 차서, 일시적으로 가스를 더 채우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으며, 가스 현물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가스 공급의 긴급 확보 이외에도 가스 및 전력 절약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스 이외의 원자력·석탄·석유· LPG 등 다른 대체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노력도 병행하여 일단 이번 겨울에 대한 대비는 어느 정도 하게 되었다.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제 유럽에 매우 추운 겨울 날씨가 오게 되면 가스의 재고는 급속히 소진될 것이고 가스에 대한 우려가 다시 시작될 것이며 가스 현물 가격 역시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유럽의 가스 저장 시설의 재고량이 95%에 달하여 안심이 되는 듯 하지만, 사실 유럽은 LNG보다 파이프라인에 의존하다 보니, 가스 LNG저장 시설과 재기화 용량이 상당히 적어서 안전 재고를 다 확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유럽의 가스 사용량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300BCM인데 현재 가스 저장 시설은 100BCM이어서 3분의 1정도만 저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가스 재고는 일시적인 것으로서 올 겨울 혹독한 추위가 닥친다면 유럽은 가스 위기를 겪을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특히, 금년 겨울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러시아산 가스 기초 재고가 내년에는 거의 바닥 수준에 접근하기 때문에, 내년과 내후년의 에너지 위기는 지금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다각도로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중기 대책으로, 유럽은 현재 LNG 터미널 및 저장 탱크를 늘리는 노력을 발빠르게 수행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저장용량을 빠른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구축이 가능한 부유식 해상 터미널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 또한 가스 구입처에 대한 다각화도 계속 노력하여, 아프리카와 캐나다 지역까지도 LNG 추가적인 수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장기 대책으로는 재생에너지의 보급 속도 가속화, 원자력의 부활 등으로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 완전한 독립 추구를 강화하고 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해외 에너지와 경제 의존도가 유럽 보다 훨씬 높은 대한민국에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3%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어 에너지 안보가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에너지 수입이 올해 200조원에 달하여 무역수지 적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 경쟁력확보에 에너지는 매우 중요하므로 유럽이 겪고 있는 에너지 위기는 곧 우리 경제의 위기이다.유럽은 러시아에게 경제적으로 부흥할 수 있도록 해준 가스를 무기로 사용한 것에 대한 배신에 격분하고 있으며, 러시아를 믿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철저히 반성하고 있다. 향후 어떤 식으로 종전이 되더라도 러시아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이기에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우리나라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를 더욱 우리 스스로 확고히 하여야 한다. 에너지 안보를 위하여 유럽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에너지 안보 전략을 연구하고 재정비하여야 한다. 기존의 에너지 정책의 세가지 축 (Trilemma)인 공급량 확보, 가격 안정 및 환경 보전의 측면에서의 균형을 추구하되, 또 추가적으로 위기에 대한 복원력(Resilience)을 강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아야 할 것이다.우리도 유럽처럼 저장성이 취약한 가스에 대한 에너지 안보 강화가 필요하다. 유럽의 상황으로 가격이 오르고 물량이 부족한 위기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극복할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 단기적으로 2~3년 내에 중동국가에서 도입이 종료되는 약 1000만 톤의 LNG 계약에 대하여, 이를 대체할 도입 물량 확보와 도입선 다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가스 소비 절약, 원전 최대 가동 및 재생에너지·석탄·석유 및 LPG 등 대체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여 가스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중장기적으로도 유럽 국가처럼 재생에너지 및 원전 보급을 더욱 촉진하고 활용하여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며, 가스 저장 인프라를 추가적으로 확보하되 FSRU등 저렴한 혁신 기술을 활용하고, 동맹국 및 주변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여 에너지 안보 능력을 강화하여야 한다. 유럽의 상황을 보면서 에너지 안보는 우리의 삶과 경제 활동에 매우 소중한 것이며, 이론이나 구호가 아닌 실제적인 대책으로 스스로 확고하게 구축하고 점검하여야 할 사항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다.김희집 에너아이디어 컨설팅대표

[EE칼럼] 적설량 관측 국산 신기술에 거는 기대

첫눈, 첫눈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내린 눈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잴 수는 있을까.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어렵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눈이 계속해서 내려도 내린 눈이 녹아버리거나 바람에 쓸려 나가고, 또 눈 자체의 무게 때문에 쌓인 눈이 내려앉을 경우 내린 눈이 모두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강우량(降雨量)과 달리 강설량(降雪量)이라는 말은 사전에는 있지만 기상학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적설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적설이란 특정 시점에 쌓여 있는 눈의 양을 말한다. 강설량과 달리 이는 얼마든지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하다.전통적인 적설 관측방법은 적설판이라는 판 위에 높이를 잴 수 있는 자를 세워놓고 쌓인 눈의 높이를 재는 방법이다. 물론 사람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최근 들어서는 사람이 눈으로 직접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초음파나 레이저, CCTV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지난 2015년 연구개발(R&D)를 통해 세계 최초로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를 개발했다. 이후 기술원은 R&D 성과를 사업화로 이끌어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적설계를 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실제로 현재 전국 방방곡곡에는 모두 400대가 넘는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가 설치돼 있다.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주변 환경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매우 정확하다는 점이다. 초음파 적설계 등 기존의 적설계를 모두 대체할 수 있었던 이유다. 특히 올해는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의 성능 시험 방법에 대해 ‘국제표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 성능 시험은 ‘이러한 방법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국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국제표준으로 등재됨에 따라 우선 기대되는 것은 기상 관측 장비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술력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 향상과 함께 신뢰도를 끌어 올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제표준 개발 단계 중 세계적인 기상장비 회사와 해외 판권 계약을 하고 국외에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 316대를 수출하기도 했다.재해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폭설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확한 관측이 가능한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의 등장은 폭설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폭설의 예측과 대책을 세우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전망이다. 폭설을 정확하게 관측하는 것은 기후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산·학·연이 협력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적설계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고 수입대체뿐 아니라 국제표준까지 만든 점을 인정받아 기술원은 지난 10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주최한 제52회 계량측정의 날 행사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우리나라에서 측우기가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은 지금부터 약 600년 전인 1400년대 중반이다. 특히 세종 24년인 1442년 6월 세종실록에는 측우기라는 이름과 함께 측우기의 길이와 직경 등 구체적인 규격까지 기록되어 있다. 전국적인 우량 관측망이 구축된 것도 바로 1442년이다. 조선시대의 이 같은 측우기 제작과 설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것으로 유럽보다 200년 정도나 앞선다. 유럽에서 측우기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39년이다. 갈릴레오의 제자인 카스텔리가 스승에게 쓴 편지가 남아 있는데 여기에 빗물을 재는 내용이 들어 있다.측우기가 제작·설치된 이후,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우수한 기상관측 장비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의 경우는 측우기 제작 이후 감히 600년 만의 쾌거라고 부르고 싶다. 국내에서 연구개발을 통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상 관측 장비를 개발하고 사업화로 수입을 대체하고 국제표준까지 만든 것은 다초첨 레이저 적설계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600년 만의 쾌거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작은 것 하나를 이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사실이다. 비록 작은 첫 걸음이지만 소중하게 키우고 성과를 더욱더 확산해야 한다는 뜻이다.첫눈은 언제 내릴까.설악산에는 지난달 10일 올 가을 첫눈이 내렸다. 지난해보다 9일 빠른 날짜다. 지난달 24일에는 강원산지 곳곳에 함박눈이 내렸다.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지역은 아직 첫눈이 내리지 않았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에는 11월 10일에 첫눈이 내렸고 2020년에는 12월 10일 첫 눈이 관측됐다.전국에 설치된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가 이 글의 독자들에게 첫눈의 설렘을 가득 안겨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안영인 한국기상산업기술원장

[EE칼럼] ‘폴란드’ 낭보, 원전수출에 국가적 역량 결집 계기로

최대 약 40조 원 규모에 달하는 한국형 원전(APR1400)의 수출 물꼬가 터졌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폴란드 최대 민간발전사 제팍 그리고 폴란드 전력공사가 지난달 31일 최대 원전 4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협력의향서에 서명을 했다. 물론 아직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계이지만 폴란드 정부가 본 계약 전까지 경쟁 입찰을 부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3년 만의 쾌거가 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폴란드 수출은 상대적으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폴란드로서는 정부 간 협상 형태로 진행된 원전 프로젝트의 우선권을 미국에 주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폴란드 1단계 원전 사업자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결정된 배경이다. 하지만 바로 이어 3일 만에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2단계 사업의 첫 번째 협력대상국으로 우리나라를 점 찍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민간 주도 사업은 그 특성 상 정부협상과 달리 철저히 기술력과 경제성을 따져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번 수출 물꼬를 틀 수 있었던 이유를 세 가지만 간추려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첫 번째로 들 수 있다. 사실 최근 건설된 원전 중 공기와 예산을 준수한 사례는 UAE에 우리가 건설한 바라카 원전이 유일하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1996년에서 2016년 사이 건설된 83기 원전의 평균 공기는 190개월이었으나 우리나라가 같은 기간 건설한 13기의 공기는 56개월로 약 1/3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의 원전건설 경쟁력을 입증하는 통계다. 이에 더해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은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과 미국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NRC)의 표준설계인증을 모두 취득함으로써 기술력과 안정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둘째 이유는 세계 원전 수요 증가에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잔뜩 움츠러들었던 원전 시장은 최근 탄소중립 조류에 힘입어 훈풍이 불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실질적인 탄소중립의 중요 수단으로 재평가하고 원전 확대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110기의 원전이 계획 중이고, 330기의 원전이 제안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이 442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신규 원전 건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세 번째 이유는 탈원전 정책의 폐기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원전은 안전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일축하고, 국내 원전 생태계 붕괴를 수수방관하는 나라의 원전을 수입할 멍청한 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원전 수입국은 미래 40년 이상 사용할 원전을 구입하려는데, "한국 원전은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며 과거 타령만 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난처함이 측은하기만 하다. 이번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가 없었다면 원전의 수출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올해 말까지 자금 조달 방안, 총예산, 공정 기한 등을 포함한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의 원전사업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금융조달 능력에서 수주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원전건설이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하고 고위험, 장기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이집트 원전의 전체 사업비의 85%에 해당하는 25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연 3% 저금리 차관을 제공하면서 수주에 성공한 반면, 당시 우리나라는 연 8% 이자율로 80억 달러 조달을 제안하여 고배를 마신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저금리 금융 제공 여부가 최종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차원에서 작년 말 지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원전을 제외하고 밀어붙였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이번 정부에서 원전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원전이 녹색분류체제에 포함되지 않으면, 저금리 자금 조달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전 수출은 국가 차원의 거래다. 사업자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가의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EE칼럼] 탄녹위, 에너지정책에 대한 신뢰와 공감 넓혀야

지구촌은 홍수, 가뭄, 폭염 등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전 세계가 자연재해로 입은 손실이 약 85조원 규모로 추정되며, 2010년대의 기후 관련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1970년대 보다 약 8배 증가하였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137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거나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RE100 확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탄소국경조정세 도입 등 국제사회에서는 탈탄소 경제체제 구축을 위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전 세계 국가들은 에너지 전환과 함께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은 화석에너지 의존을 벗어나고 친환경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2030년까지 총 400조원을 투자하여 에너지 소비의 절감, 공급망의 다변화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 탈탄소 경제체제 구축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패러다임의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0년 12월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고, 2021년 5월에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구심점 역할로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하여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였다. 올 3월에는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되었고 이에 따라 얼마 전에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출범하였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평가해보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2050년의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상응하여 중간목표인 2030년의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함으로써, 기후악당 이미지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국내적으로는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이행기반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 선언 이후 짧은 기간 동안의 압축적인 논의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였고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마련하는데 미흡함이 있었다. 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추진전략’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이번 전략은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계획 수립에 중점을 두고, 충실한 소통과 민관협력을 기반으로 민간과 지방 주도로 탄소중립을 실천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과 분과위원회 수를 절반으로 줄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발표된 지 1년 그리고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된 지 5개월이 흘러서야 나온 것이라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책임 있는 실천, 혁신 그리고 사회적 합의 등을 강조한 점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발표된 탄소중립 녹색성장을 위한 4대 전략과 12대 과제는 우리가 직면한 현안들을 짧게는 2030년까지 길게는 2050년까지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지만, 몇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있다. 우선 올 4월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에너지정책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으로 발표한 것 중 하나인 ‘시장기반 수요 효율화’이다. 주요 내용은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구조를 확립하며,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요금원칙을 확립하고 한전 독점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여 다양한 수요관리 서비스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 대다수는 오래전부터 지금의 에너지가격체계와 에너지산업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2019년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가 가장 높은 정책수단은 재생에너지도 원자력도 아닌 ‘효율 향상’으로 나타났다. 효율 향상을 위해서는 다양한 조치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 기능이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고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가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가격 기능인데 지금 우리의 에너지 가격시스템은 정부와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현안은 에너지 관련 시설에 대한 수용성을 어떻게 높이고,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30 NDC와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외에 현실적으로는 원자력발전의 고준위폐기물처리장 부지, 태양광 혹은 풍력발전 설치 부지, 소각장·매립지 부지, 송전탑 건설 부지 등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2050 탄소중립은 고사하고 2030 NDC 달성도 어렵게 된다. 소통과 합의에 대한 중요성은 모든 정부에서 강조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하는데는 한계에 부딪쳐 왔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소통이 부족했음을 미흡한 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는 어느 한 정부나 정권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와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해당사자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 한 말을 지키는 것이다. 정부는 국정운영원칙 중 하나로 국익과 실용을 강조하면서 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며, 선택된 정책이라도 사후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면 수정·보완하고, 수많은 가능성에 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 이행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출범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E칼럼] 선진국 주도 환경운동과

삼성전자가 RE100 참여를 발표한 후 RE100은 우리 에너지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을 고리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는 진영은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유지, 나아가 생존 자체를 위해서라도 RE100 확대가 필수적이라 주장한다. 물론 해당 진영 내 강성 환경운동 세력이 견지해온 반기업·반산업적 태도에서 벗어 났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부존자원·내수시장 규모 등에서 열위인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에 비추어, RE100이 국내 기업·산업에 불리함을 고려해 본다면, 재생에너지 이익공동체의 이익 추구를 위한 우회적인 레토릭처럼 들린다. 오히려 국내 기업·산업의 입장은 한국이 RE100 관련 글로벌 호구가 아니라고 일갈한 한 일간지의 최근 칼럼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해당 칼럼은 애초 자발적 민간 캠페인이었지만, 국내 기업에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비자발적 불공정한 수단으로 변질하여, RE100이 탄소 국경조정세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과 함께 미국·유럽 등 서구권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고 질타하였다.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발간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Apocalypse Never, 저자 마이클 셸런버거)’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묵직한 화두를 던져준다.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대표적인 청소년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왜 스웨덴, 즉 과거 서구 제국주의 열강 국가 출신일까. 콩고·브라질·인도네시아 등에서 이들에게 식민·수탈을 당했고, 현재 저개발·개발도상국 단계에 머물러 있는 국가 출신일 수는 없는 것일까. 이들 국가의 미래세대 목소리가 거세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 화두는 두 가지 개념, 소위 ‘환경 쿠즈네츠 곡선’과 ‘사다리 걷어차기’를 소환한다. 우선 환경 쿠즈네츠 곡선은 국가의 소득수준과 환경의 질과의 역(逆) U자 관계, 쉽게 말해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환경질이 악화하지만, 임계수준을 넘어선 경제성장 단계에서는 환경 개선 노력으로 오히려 환경질이 양호해진다는 가설이다. 직관적으로나 역사적 경험적으로나 설득력 있는 교과서적 이론으로, 충분한 국민소득 수준에 도달한 툰베리의 고향 스웨덴 등 서구권 국가들이 환경·기후 위기를 인지, 적극적 대응에 나서는 현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반면 저개발·개도국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인간적인 삶을 위해 처참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발전을 하려면, 도로·항만 같은 사회간접 자본이나 기계화된 영농, 수력·석탄 화력 같은 값싸고 고품질의 전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서구권 국가들, 특히 그린피스 등 서구권 국제환경 운동 단체들은 이를 외면한 채, 환경파괴·기후 위기 등을 이유로 이를 방해·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구권 환경운동이 선진국들이 마치 사다리를 걷어차 저개발·개도국이 더는 추격 못 하게 하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 같은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더욱이 기후변화 대응 관련 저개발·개도국에 간헐성·에너지 밀도 면에서 저품질인 태양광·풍력 사용을 강요하는 것 역시 저개발·개도국보다 서구권 국가들의 이해를 위한 것일 수 있다. 같은 소득일 때 콩고보다 과거 미국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훨씬 많이 배출했다는 점을 들어 저자는 이들의 이기심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기후변화 대응 담론 역시 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서구권 국가들의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결과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조금만 관점을 바꿔서 보면 그렇다.물론 당면한 기후 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에는 이처럼 각자가 처한 정치·경제적 이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서구권 국가들이 만든 자료나 해당 국가들에 유학한 인사들에 의존하며, 서구권 국가들의 이해가 반영된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 내면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분명 필요해 보인다. 더욱이 RE100을 넘어 탄소 중립 정책 수립에서도 이제는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함께 심도 있게 고민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앞으로 현 정부에서 새롭게 수립하게 될 탄소 중립 정책은 이런 고민이 반영되길 기대해 본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E칼럼] 에너지위기 시대 ESG 바로 세우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뜨거워지는 만큼 이에 대한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미주리주, 루이지애나주, 텍사스주의 연금펀드는 ESG의 대명사격인 블랙록으로부터 그들의 펀드를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하였다. 미국 최대규모의 공적 연금펀드인 캘리포니아의 캘퍼스(Calpers)는 지난 10년간 타 펀드와 비교하여 현저히 낮은 수익률을 기록함으로써 연금에 의존하는 은퇴자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캘퍼스는 ESG 중심의 이데올로기화된 투자방식이 2백여만 명의 은퇴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주가가 치솟긴 하였지만 사실 수년 전부터 누적되어 온 탄소중립발 에너지 분야의 투자위축으로 인하여 ESG 투자성과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되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투자라 할지라도 투자자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투자자 관점에서는 무용지물이 아니라 해악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ESG 투자의 수탁자가 이행해야 할 ‘신인의무(fiduciary duty) 준수’의 요구도 증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정치적 올바름을 이데올로기화한 이른 바 워크(Woke) 운동의 반작용으로 안티 워크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다. 엘런 머스크는 ESG는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젊은 행동주의 투자가인 비벡 라마스웨이는 앤티 ESG 투자를 표방하는 ‘스트라이브자산운용(Strive Asset Management)’이라는 펀드사를 설립하였다. 라마스웨이의 앤티 ESG 펀드는 몇 차례 라운드를 거쳐 그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ESG의 불분명한 정체성 역시 논란거리다. 탄소중립형 친환경 투자를 표방한다고는 하지만 블랙록의 에너지 ETF를 보면 ESG 반대 진영의 대표 펀드인 스트라이브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와 비교했을 때에 큰 차이가 없다. 엑슨모빌, 쉐브론, 코노코필립스와 같은 화석연료 회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유사하여 두 펀드 사이에 차별성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화석연료 투자를 지양한다고 하였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대부분의 ESG 펀드는 화석연료 비즈니스의 투자 역시 꾸준히 유지하거나 오히려 증대시켰다. 우리나라의 ESG 펀드 역시 그 포트폴리오 구성을 보면 대부분의 대기업은 다 포함되어 특별한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미국 일부 법계에서는 ESG 그룹의 반트러스트 위반 여부도 검토 중이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ESG의 명암을 둘러 싼 논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많은 영역이 회색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ESG는 분명히 이 시대의 추세이긴 하지만 좌우의 이념적 논쟁과 결부되어 특정 그룹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술, 담배, 도박과 같은 이른 바 죄악주(sin stock)의 구분은 비교적 선명한 편이지만,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의 대부분 지표는 상당히 주관적이며 정성적이기 때문에 이념적 수단화될 경우 이는 결국 투자자의 손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ESG의 명분을 넘어선 심각한 파급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상당수 정부 정책이 탑다운으로 이루어지는 거버넌스 하에서는 국책은행이나 국민연금이 이처럼 이념화된 ESG에 접근할 때에는 더욱 더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릇된 투자로 인한 손실은 국민의 세부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백만 연금은퇴자의 생계에 영향을 주는 미국 캘퍼스 연금펀드의 부실성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ESG는 사적이면서도 이념적 영역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집행을 의무화할 경우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부실 정책금융의 부담은 국민의 부담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초변동성과 초연결성의 시대에서는 한 번의 잘못된 결정으로 천문학적인 손실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념화된 ESG의 무리한 확장 보다는 ESG 바로 세우기에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E칼럼] 자금시장 위기 부추긴 에너지정책 실패의 교훈

최근 국내 자금시장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자 정부가 ‘50조원+α’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등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시중의 돈가뭄은 여전하고 회사채와 기업어음(CP) 금리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다간 자금 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중의 자금난이 심화된 것은 대내외 금융환경이 급속히 나빠진 가운데 강원도가 레고랜드 발행 채권에 대해 지급보증을 거부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올 하반기 들어 한국은행의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회사채금리가 치솟으면서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경기악화와 부동산경기 침체로 회사채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디폴트 위험이 커져 자금이 안전자산 쪽으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됐다. 3년물 기준으로 국채와 회사채(AA-)의 금리차(스프레드)가 1.3%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져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은 시중 자금이 안전자산 쪽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금융시장이 가뜩이나 불안한 가운데 지방정부마저 지급보증을 거부하니 시중자금이 더욱 안전한 곳으로 흐를 수 밖에 없게 됐다. 여기서 주목할게 있다. 바로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고신용·고금리 회사채를 찍어내며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전은 막대한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운용자금으로 매월 2조원대 회사채(한전채)를 발행하고 있다. 한전은 신용등급이 최고(AAA)여서 투자자들이 한전채를 다른 하위 등급 기업의 회사채보다 선호한다. 더구나 최근 한전이 회사채 발행 물량을 늘리면서 이를 소화시키기 위해 금리를 6%대까지 올리는 바람에 저신용·저금리 회사채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올해 들어 한전채 발행규모는 23여조원으로 지난해 10조 4300억원의 두배를 넘었다. 한전의 대규모 자금조달 필요성과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맞아떨어지면서 자금이 한전채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전의 영업적자와 부채가 한동안 증가세를 지속해 한전채 발행 물량 증가와 자금 싹쓸이 현상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전의 영업적자는 지난해 5조 8601억원에서 올해 상반기에 14조 3033억원으로 늘었고, 올해 연간으로는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의 부채는 올해 6월 말 현재 연결기준으로 1년 전보다 28조 5000억원 늘어난 165조 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기업들중 1위다. 한전의 적자와 부채증가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한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아무리 내놓아도 ‘백약이 무효’일 수 있다. 금융당국이 한전의 회사채 발행물량을 제한하고 대신 은행대출을 늘려주도록 하는 조치를 황급히 발표했지만 이는 직접금융시장을 규제하는 임시방편적 조치에 불과하다. 한전이 시중자금의 블랙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부실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전이 부실의 늪에 빠진 것은 한마디로 정부의 에너지정책 실패 때문이다. 불합리한 전원믹스와 전기요금 정상화 지연이 부실을 심화시켰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가스발전이 늘면서 연료비가 증가하고 특히 러·우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전의 전력구입금액이 급증했다. 발전원별 전력구입단가를 볼 때 LNG복합화력은 지난해 1~8월 kWh당 108.79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에 213.31원으로 96.1% 늘었지만, 원자력발전은 같은 기간 64.7원에서 54,26원으로 오히려 16.1% 줄었다. 원전축소와 가스발전 증가가 전력요금 인상압력을 키운 것이다. 한전의 전력구입금액은 올해 1~8월에 55조 7987억원으로 전년동기 34조 185억원보다 64% 늘었다. 반면 전력판매수입은 올해 1~8월에 43조 1517억원으로 전년동기 38조 7156억원보다 11.5% 늘어나는데 그쳤다. 전력구입금액과 전력판매수입의 격차만큼 한전의 적자는 커질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절실한 것은 전력구입금액이 늘어나는데 맞춰 전력요금을 실효성 있게 인상하는 것이다. 그래야 한전의 부실 심화를 막고 전력소비도 줄이며 탄소중립도 실현할 수 있다. 물가안정을 우선시 해 전력요금 정상화를 미룰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을 정책당국이 인식해야 한다. 정책당국은 현재 전력도매가격을 결정하는 계통한계가격(SMP)에 상한제 를 적용한다든지 한전이 발전 자회사에 대해 적용하는 정산조정계수를 0으로 한다는 것과 같은 반시장적 조치만을 취하려 하고 있다. 이는 정공법이 아니며,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할 뿐이다. 이제라도 잘못된 에너지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 비용절감과 에너지안보를 위해 원전을 충분히 활용하며, 연료비연동제를 실효성 있게 운용해야 한다. 올해 들어 연료비 조정단가와 기준연료비 등을 올리긴 했지만 누적된 요금 인상 압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5원인 분기별 연료비 조정폭을 확대하고 정부의 유보권한도 축소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연료비만을 반영하는 변동비반영시장(CBP)을 환경비용 등 제반비용까지 포괄적으로 반영하는 가격입찰빙식(PBP)으로 바꿔야 한다. 전력요금의 ‘정치화’를 막는 것은 전력시장 정상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다.온기운 에교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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