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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건설업 온열질환 대책, ‘1보 전진’ 있었지만

지난 7일 경북 구미시의 낮 기온이 섭씨 37.2도까지 치솟았다. 이로 인해 이날 아파트 공사장에 첫 출근한 베트남 국적의 20대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이후 정부와 대형 건설사들이 뒤늦게나마 폭염 대응에 나선 모습은 다행이지만, 중소 현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망자 29명 중 20명이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건설노조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폭염에 본인이나 동료가 실신하거나 이상 증세를 보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56.6%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는 '대책은 있으나 강제성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는 응답이 61.2%, '1군 대형사 위주로만 적용돼 중소규모 현장은 사실상 무방비'라는 응답이 42.4%를 차지했다. 설문대로라면 '머슴 노름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실감난다. 실제로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은 물론 현대건설·포스코이앤씨 등 대형사들도 폭염 시 휴식시간과 냉방장치 등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불신은 있다. 건설노조는 “실제 현장을 가보면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홍보하는 것만큼 현장에서 구현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꼬집는다. 문제의 핵심은 폭염 대책 시행이 결국 건설사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용노동부가 지난 17일부터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의무화한 것은 반가운 조치다. 지침을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제야 건설현장 폭염 대책의 시행이 제대로 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중소규모 현장은 여전히 사각지대가 될 전망이다. 인력·예산의 한계, 다단계 하도급 구조 등으로 인해 안전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전체 추락사고의 42.7%가 공사비 50억원 미만의 소규모 현장에서 발생했다. 반면 공사비 1000억원 이상 대형 현장은 18.8%에 그쳤다. 영세한 중소 건설사들은 공사비가 빠듯해 근로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열악한 여건이라 해도, 누구도 생계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일해서는 안 된다. 실효성 있는 단속과 현장 중심의 관리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법은 또다시 종이조각에 불과하게 된다. 누구도 더 이상 일하다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지금보다 훨씬 더 철저한 단속과 관리가 필요하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 눈] 국그릇 든 대통령, ‘쇼’가 아닌 제도를 남겨라

“후루룩". 이재명 대통령은 식판 위에 놓인 국그릇을 통째로 들고 마셨다. 지난 14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을 찾아 신입 공무원들과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은 자리였다. 얼굴 전체가 국그릇에 가려졌고, 식판은 말끔히 비워졌다. 국그릇도 직접 치웠다. 이후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의 옆모습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소탈한 '보통 사람'의 모습을 보여줬다. 문득 이런 광경이 그리 낯설지 않다. 당장 윤석열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을 찾아 식판에 고추장불고기를 담고 공무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엔 식판을 퇴식구에 직접 반납했고, 조리사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구내식당을 이용하고선 직원들에게 깎듯이 인사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다른 역대 대통령들도 취임 초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다. 문제는 취임 초기의 이런 파격 행보와 격식 파괴가 대통령과 정권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만 해도 성공한 기업가 이미지로 당선돼 강한 리더십과 실용주의를 내세웠지만, 결국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횡령·배임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윤 전 대통령도 직접 고기를 굽는 등 '소탈'함을 자랑해왔지만 결국 12·3 불법 비상계엄과 각종 비위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 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자의 전통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게 있다. 임기 내내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공금을 절대 사적으로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먼저 이 대통령이 관저의 식비와 비품비 등 사적 비용을 자부담하는 전통을 확립해라. 미국은 이미 19세기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동안 실천한 적이 있지만, 이 대통령은 아직까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도 이를 묻는 에너지경제신문의 질문에 “바빠서 겨를이 없다"며 대답이 없다. '별 걸 다 묻는다'며 귀찮아하는 태도마저 엿보인다. 진짜 파격은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에서 나온다. 국그릇을 들고 국을 마시는 대통령의 '소탈한 한 끼'보다 국민이 알고 싶은 건, 그 식사의 비용을 누가 부담했는가다. 과연 이 제안을 받아 들여 이재명 정부가 공금 집행과 관련해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을까? 출발은 살짝 불안하다. 지난해 국회에서 대폭 삭감됐던 대통령실과 검찰의 특수활동비가 이번 추경을 통해 절반가량 되살아났다. 삭감 당시의 명분은 사라진 채 '내로남불'만 남았다. 국그릇 하나로 시작된 '보통사람 대통령' 이미지가 단지 '쇼'가 아닌 제도화된 정치문화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이재명 정부가 남길 수 있는 진짜 유산이 될 것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기자의 눈] 믿고 샀다가 물렸다…리포트는 왜 늘 ‘매수’일까

처음 주식에 발을 들였을 때, 기자도 리서치 리포트를 믿었다. '매수' 의견이 붙은 종목이라면 당연히 오르는 줄 알았다. 분석도 꼼꼼하고, 목표주가도 훨씬 위였다. 그대로 샀고, 지금도 몇 년째 물려 있다. 주가가 반 토막이 나도 애널리스트는 '매수'를 바꾸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리포트 속 '매수'는 '진짜 매수'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왜 비관적으로 보느냐"며 항의하는 개인 투자자, “이번 리포트 이후 인터뷰는 어렵겠다"는 기업 홍보팀. 애널리스트는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기업과 관계를 지켜야 하고, 투자자와 신뢰도 잃지 말아야 한다. 이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나온 리포트의 상당수는 여전히 '매수'다. 아무리 실적이 꺾이고 주가가 빠져도, '매도'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낸 수천 건의 리포트 가운데 '매도' 의견은 0.1%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찾아보기 힘들고, 무려 18곳의 증권사는 상반기 내내 단 한 건의 매도 리포트도 내지 않았다. 실적이 꺾인 기업조차 “저평가" “일시적 조정"이라며 낙관적으로 해석된다. 시장을 읽는 나침반이어야 할 리포트가 오히려 기대만 부풀리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2차전지 대표 종목 중 하나는 몇 분기째 실적이 뒷걸음질 치고 있지만, 최근 수십 건의 리포트 중 단 한 건만 '중립'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매수'였다. 일부 리포트는 “주가 하락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시장을 탓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종목은 영업이익이 반 토막이 났는데, 목표주가는 도리어 상향 조정됐다. 실적은 낮추면서도 주가 기대치는 높이는, 앞뒤 맞지 않는 해석이다. 이런 흐름은 리서치 기업의 구조적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 애널리스트가 분석하는 기업은 동시에 자기 회사의 유력 고객일 수 있다. 부정적인 리포트 한 줄에 향후 인터뷰가 막히거나, 마케팅 협조가 끊기는 건 업계에선 낯설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리서치센터는 직접 수익을 내지 못하는 조직이라는 인식도 여전하다. 수치 분석보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이유다. 물론 최근엔 일부 증권사에서 다른 흐름도 감지된다. 주가가 급등한 방산·증권주에 대해 '보유'나 '트레이딩 바이' 의견을 내는 경우가 생겼다. “좋은 기업이 항상 좋은 주식은 아니다"는 조심스러운 메시지도 조금씩 담긴다. 리서치 리포트는 투자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와도 같다. 하지만 그 지도가 늘 같은 길만 표시한다면, 결국 아무도 그 경로를 믿지 않게 된다. 애널리스트가 때로는 불편한 현실도 짚어낼 수 있어야, 리포트는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소니의 변화에서 찾는 LG전자의 내일

LG전자는 요즘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찾는 건 기업의 당연한 과제임에도 그 중에서도 LG전자는 유난히 속도를 높이고 있다. 분주한 행보로 주목받는 대표사례가 LG의 냉난방공조(HVAC)사업이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기존 H&A(가전) 사업본부에서 HVAC를 분리해 'ES사업본부'를 신설한데 이어 최근 첫 기자간담회를 열어 오는 2030년까지 매출 20조원 달성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재성 ES사업본부장은 “데이터센터용 냉각솔루션 수주를 지난해보다 3배 이상 확대해 시장보다 2배 빠른 성장 속도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LG전자는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로봇, 스마트팩토리, 모듈주택, 신소재 등 다양한 기업간 거래(B2B) 영역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LG전자는 글로벌 가전업계의 맹주다. 지난해 미국 월풀과 매출 격차를 11조원 가까이 벌리며 3년 연속 글로벌 생활가전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제조사들의 추격이 심상치 않다. 저가 공세로 시장을 파고든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이제 중저가를 넘어 프리미엄 영역까지 진출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더구나 LG전자는 스마트폰과 반도체라는 '굵직한 축'이 없다. 국내외 경쟁 전자기업들과 구별되는 뚜렷한 아킬레스건이다. 따라서, LG전자의 체질 개선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라는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성공한 기업일수록 기존에 잘 하던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변화는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LG전자는 '제2의 소니'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브라운관TV와 워크맨으로 성장했던 소니는 경쟁이 치열해지자 2010년대 들어 '탈(脫)전자'를 선언했다. 2012년 매출의 70%를 차지하던 전자제품 비중이 이제 30%대로 줄었고, 그 빈자리에 게임과 영상콘텐츠 등 엔터테인먼트로 메웠다. 이같은 체질 개선 결과, 소니는 지난해 말 주가가 25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지금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과감한 결단'과 '변화'라는 두 혁신 키워드가 소니의 '제2 부흥기'를 이끈 핵심 동력으로 꼽히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지금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변화와 혁신의 골든타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급변하는 시대, 변화 없이는 기업이 살아남기 어렵다. LG전자의 과감한 도전만이 '제2의 소니'를 넘어서는 새로운 성공 방정식이 될 것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기후에너지부의 ‘기후 영역’은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기후에너지부 혹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안을 두고 논의가 뜨겁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과 환경부의 전부 또는 일부 업무와 합쳐야 한다. 현재 논의 상황을 지켜보면 전자는 상수이고, 후자는 변수인데, 대통령실과 국정기획위원회는 후자 변수에서 막판 고민이 많은 듯하다. 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부의 최소 조건은 산업부의 에너지 부문과 환경부의 온실가스 감축계획 수립 및 탄소배출권 부문을 합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환경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문 아래에 산업부의 에너지 부문을 두면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기후에너지부의 최소 조건으로도 환경부의 자원순환 부문을 가져오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다. 자원순환 부문은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확보한 폐자원을 소각하면서 열에너지를 공급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다. 열에너지가 에너지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기후에너지부가 자원순환 부문까지 맡는 게 낫다는 것이다. 쟁점은 대기(기상)와 물관리 부문이다. 기후에너지부의 기후를 기후위기 대응으로 한정한다면 기상과 물관리를 가져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기후적응 개념까지 확장한다면 기상과 물관리 부문도 흡수할 수 있다. 최근 수백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미국 텍사스 홍수를 봤을 때 기상과 물관리 부문은 기후적응에서 필수 관계이다. 이재명 정부가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두고 고민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기후위기 대응과 기후적응은 단어 하나 차이지만 업무의 영역이 너무나 다르다. 자연보존 부문은 아무래도 기후에너지부로 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기후에너지부에 멸종위기 동물 보호와 국립공원 관리 업무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 건강을 신경 쓰는 환경보건 부문 등 환경 규제에 집중된 분야도 마찬가지로 평가된다. 기후에너지부가 기상과 물관리 부문을 맡지 않는다면, 기후에너지부와 환경부가 공존하는 시나리오로 갈 듯하다. 다만, 환경부에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큰 업무가 떨어져 나가면 환경부 영향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산림청을 환경부에 보내자는 안도 언급되고 있다. 혹은 기후에너지부가 기상과 물관리 부문까지 맡게 된다면, 환경부 없이 기후에너지환경부만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보전과 환경보건 부문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외청으로서 갈 수 있다. 한 부처가 기후위기 대응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하도록 하고 싶다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더 낫다고 본다. 기상과 물관리 부문이 기후적응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 기상 예보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에, 물자원은 친환경에너지로 활용된다. 전기차 부문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가져가지 말고 산업부의 자동차 부문으로 넘기는 것도 방법이다. 전기차는 에너지 부문은 아니고 수송 쪽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수송의 탄소감축까지 맡길 생각이면 모르겠다만, 전기차 산업 육성을 잘할 산업부에 넘기는 걸 고려할 만하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진통제 맞은 부동산 시장…‘규제 쇼크’ 다음 처방은?

지난달 27일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대출 규제 대책은 시장에 강한 신호를 던졌다.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게는 수도권 규제지역 내 주담대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한 것이 핵심이다. 1주택자의 갈아타기 수요는 실거주 요건을 충족하면 예외가 허용된다. 여기에 생애최초·신혼부부 특별대출 등 정책 대출의 보금자리론 전환 제한, 전세·신용대출 규제 예고, 실거주 요건 강화까지 더해지며 사실상 '영끌 매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읽힌다. 이광수 '광수네 복덕방' 대표는 새 정부의 이같은 강력한 규제 정책을 두고 최근 유튜브 '매불쇼'에 출연해 “1주택자가 전세자금 대출로 집을 사는 경우가 속출할 정도로 대출이 방만하게 운영됐다"며 “진보 정권 사상 처음으로 집값을 잡은 정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서울 아파트값은 대책 발표 직후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세로 전환됐다. 일부 지역에선 급매물이 늘고 매수 문의도 줄었다. 급등하던 전세가율도 진정 기미를 보인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단기적 '진통제'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근본 치료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단기적 수요 억제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해법은 결국 공급"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수도권 분양은 급감했고, 2021~2023년 착공 감소 여파가 올해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상반기 신규 아파트 공급은 200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다. 정부 규제로 수요는 눌러도 공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집값 반등 가능성은 살아 있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진통제는 아픈 걸 잠깐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병을 낫게 하진 못한다"며 “공급과 시장 구조에 대한 처방이 없으면 이번 규제도 일시적 효과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다음 대책은 실수요와 투기 수요를 더 정교하게 가르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가 주택, 다주택자, 외국인 매수에 대한 풍선효과가 재차 감지되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적 수요엔 날카로운 규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대책이 실수요자에게 체감되려면, 집값이 일정 기간 안정되거나 하향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은 단지 '사면 안 되는 분위기'가 아니라, 매수심리가 위축된 시기일 뿐이다. 심리를 안정시킬 해법은 명확한 공급 정책과 예측 가능한 제도 설계다. 진통제를 처방한 정부가 이제 고민할 차례다. 다음은 해열제일까 항생제일까. 정답은 병의 원인에 얼마나 정확히 접근하느냐에 달려 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먹고 살만 하다’는 말이 사치로 들리는 시대

오랜만에 모임에 나갔다가 못 본 새 살이 많이 오른 옛 친구를 만났다. 함께 모인 친구들이 농담 삼아 다들 한마디씩 보태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채솟값이 너무 비싸서…." 친구의 위트 있는 응수로 모두가 한참 웃다가 “요즘은 먹기가 겁이 난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외식물가도 물가지만 밥상물가까지 크게 올라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푸념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축산물 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계란값은 한 판(특란, 30개 기준)에 7218원을 기록했다. 계란 한 판이 7200원을 넘어선 것은 조류인플루엔자(AI) 대유행이 있었던 지난 2021년 이후 처음이다. 밥상에 빠지지 않는 식재료인 쌀과 깐마늘 가격도 평년대비 각각 15.2%, 19.2% 올랐다. 한통에 3만원에 육박하는 수박은 감히 장바구니에 담기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전에는 '먹고 살만 하다'는 표현은 단순히 음식과 생존을 넘어 경제적·생활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요즘은 이 말도 사치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다행히 오는 21일부터 전국민 소비쿠폰이 풀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실 직원들과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며 “가까운 식당을 찾아 외식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소비쿠폰 지급이 '외식물가 잡기'에 맞는 처방은 아닐지라도 '폐업 100만 시대'에 몰린 소상공인의 먹고사는 문제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최근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2.9% 오른 1만230원으로 결정했다.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아쉬움을 표하고는 있지만, 2.9%는 역대 정부 첫해 최저임금 인상률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물론 해마다 오르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도 인건비 증가에 떠밀려 외식물가가 또다시 크게 뛰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식품·유통 기업들도 '밥상물가 잡기'에 동참해 이달 대규모 할인행사를 펼친다. 주요 품목은 라면과 빵, 커피 등의 가공식품으로, 행사에 참여한 기업 수는 식품기업 16곳과 유통기업 5곳이다. 비록 정부의 권고에 따른 한시적 행사일지라도, 기업들의 동참이 팍팍했던 국민들의 식탁에 작지만 반가운 숨통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한뜻으로 힘을 모아야 모두가 '먹고 살만 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중국 공세, 물량보다 자본이 더 무섭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내 한 전자제품 매장. 점원에게 저렴한 중국산 가전 제품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TCL·하이센스 TV를 추천했다. 성능이 나쁘지 않은데 독립기념일(7월4일) 할인까지 더 많이 적용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세탁기 코너로 가자 점원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각 브랜드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듯했다. 연신 컴퓨터에서 'Made in China' 제품을 검색했다. 그러면서 유통사 자체브랜드(PB) 세탁기가 중국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하이얼 제품은 어디 있냐고 묻자 “중국산이 아닐텐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전통 미국 브랜드'라고 치켜세웠다. '소비의 나라' 미국인의 인식을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브랜드와 그 나라에서 만들어진 제품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가전제품 매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GE를 미국 회사라고 강조했다. 중국 하이얼이 54억달러에 GE 가전사업부를 인수한 게 2016년이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자본을 축적한 중국 기업들은 2010년대 글로벌 기업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지리자동차는 스웨덴 자동차 브랜드 볼보를 품었다. 메르세데스-벤츠 모기업 다임러 최대주주 자리에 등극하기도 했다. 메이디는 독일 산업용 로봇 제조사 쿠카를 사들였다.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텐센트는 라이엇게임즈와 슈퍼셀을, 안방보험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등을 각각 인수했다. 완다그룹은 세계 최대 영화관 체인 AMC Theatres를 한때 소유했다. 미국 정부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칭화그룹이 마이크론 인수를 시도한 적도 있다. 중국은 '자본 공세'를 펼치면서도 원래 기업들의 색깔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인 대부분이 볼보는 스웨덴차, 벤츠는 독일차로 인식한다. 미국인들은 GE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물량보다 자본을 앞세운 '중국산 공세'가 더 무섭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들 회사가 내는 수익은 다시 중국 기업들에게 들어가 연구개발(R&D)이나 생산시설 확충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은 이들과 전세계 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한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는 실력을 길렀다. 이제는 자본력을 갖춰 몇몇 우리나라 업체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국 정부도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가 됐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에너지고속도로’가 몰고 올 수도권 쏠림…지역균형발전의 퇴보

정부가 '에너지고속도로'라는 이름 아래 전력 인프라 확충을 본격화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맞물려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 등 수요지로 신속히 보낼 수 있도록 초고압 송전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구상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너지 수요의 수도권 쏠림을 더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권에는 반도체 클러스터,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다소비 산업이 몰리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수도권 입주가 입지·물류·인력 측면에서 유리하니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반면 강원·동해안 일대에 밀집한 석탄화력 발전소들은 송전 인프라 미비로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정체되고 있다. 생산한 전기를 보낼 길이 없어 멈춰 선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에너지고속도로'를 제시했다.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바로 연결해 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의 해소가 아니라 고착을 의미할 수 있다. 전기를 쉽게 보낼 수 있게 되면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더욱 밀집되고, 지방은 '전기만 생산하고 수요는 없는'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애초에 정부가 제정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의 핵심 취지는 지역 안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발전소 인근에 공장·산업단지·데이터센터 등을 유치해 불필요한 송전망 건설을 줄이고, 지역에 일자리와 부가가치도 남기자는 구상이었다. 이는 송전망 확충에 드는 사회적 갈등과 천문학적 비용을 줄이고, 지역 균형발전을 이끄는 실질적 대안이었다. 하지만 에너지고속도로 정책 방향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지방의 전기는 수도권으로 흘러가고, 수도권의 산업과 인구는 더 밀집되는 구조. 이는 장기적으로 전력 수급의 비효율성은 물론,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도 어긋난다. 전력망은 국가의 혈관이다. 어느 한 곳에만 피가 몰리면 다른 곳은 쇠약해진다. 지방 발전소 인근에 수요처를 유치하고, 지역 내 전력 자립률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에너지 안보'이자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이다. 정부는 다시 한 번 '분산에너지'라는 초심을 되새겨야 할 때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극장 생존 분투기

국내 대표 멀티플렉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환경이라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아쉽게도 정반대다. 흥행작 부진으로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침체기의 수렁에 빠졌다. 올해 들어 매월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큰 폭으로 출렁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월 한국·외국 영화 전체 누적 관객 수는 890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말 개봉한 '하얼빈'(207만 명), 올해 설 연휴 '히트맨2'(165만 명), '검은 수녀들'(127만 명)에 힘입어 관객 수를 유지했다. 하지만 2월에는 지난달보다 300만 명 이상 줄어 547만 명에 그쳤다. 3월에는 643만 명이 극장을 찾았지만 한국영화 관객 수가 100만 명대로 뚝 떨어졌다. 특히 4월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2022년 5월 이후 최저치인 543만 명을 찍었다. 5월과 6월은 할리우드 영화 덕분에 극장가가 반짝 활기를 띄었다. 5월에는 올해 개봉작 가운데 337만 명으로 최다 관객을 동원한 할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이 박스오피스를 이끌며 1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853만 명이 극장을 방문했다. 6월은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의 인기와 'F1 더 무비' 개봉이 더해지면서 771만 명이 극장에서 영화를 즐겼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범죄도시4'가 천만 영화에 등극하며 홀로 1150만 명을 동원했던 흐름과 비교하면 극장가 부진이 너무나도 길어지고 있다. 매년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등 OTT 플랫폼이 급성장하며 물량 공세를 펼쳐 관객이 이탈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흥행작이 좀처럼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극장가는 영화 상영의 '본업' 대신 '부업'으로 손길을 뻗고 있다. 순수한 관객 매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다. 극장으로 다시 관객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멀티플렉스는 스크린X(CGV), 광음시네마(롯데시네마), 돌비시네마(메가박스) 등 특별관의 수를 확대하고 있다. 좌석의 등받이가 거의 180도로 젖혀지는 리클라이너로 교체하는 등 관람 환경의 질 개선에 집중한다. 또 '시네마 천국' '셔터 아일랜드' 등 명작 재개봉, 스포츠 경기 중계, 콘서트 등 공연 실황 상영 등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현실이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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