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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제약 세계화’ 막는 AI 데이터 규제 개선해야

제약 분야의 인공지능(AI) 연구자는 최근 국내 AI 기반 신약개발 현주소를 물은 기자에게 “아직 초기단계라 국가별 경쟁력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면서도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면서도 AI 신약개발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AI 기술 자체는 세계 최상위권임에도 신약개발 상용화를 뒷받침할 법 제도 등 인프라 부족으로 자칫 초기부터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실제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우리나라의 'AI 기반 신약개발 알고리즘 기술수준'은 미국·유럽·중국에 이어 세계 4위이나 관련 특허의 질적 수준, 관련분야 논문 1건당 피인용 평균수치 등은 세계 10위권 밖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I를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료'인 빅데이터 활용도에서 경쟁국에 한참 뒤쳐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약개발을 위한 빅데이터는 환자의 유전체 등 '생물학 데이터', 신약 후보물질인 각종 '화합물 데이터', 약물의 실제 인체 투여 반응을 보여주는 각종 '임상 데이터' 및 '약리학 데이터'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약 선진국인 미국·유럽과 비교해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수 자체가 적고, 표준화가 미흡해 통합 및 호환이 어려우며, 비공개 데이터가 많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유전체 등 생물학 데이터는 개인정보 보호에, 약리학 데이터는 기업 지식재산에 해당돼 공개 수준이 더욱 낮다.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보유기관과 협의 또는 허락받는 데에만 수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다. 정부는 2021년 '데이터 3법'을 개정해 개인정보 익명화 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나, 익명화가 오히려 데이터의 품질과 호환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 차원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이나 데이터 유출 없이 AI가 솔루션을 도출하는 연합학습 기반의 신약개발 플랫폼 'K-멜로디' 사업 등도 추진 중이지만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웅제약이 지난 40여년 간 신약연구 과정에서 축적해 온 총 8억개의 화합물 데이터를 자체 구축해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다. 국내 제약사는 글로벌 빅파마와 연구개발(R&D) 격차가 커 AI 기반 신약개발은 R&D 격차를 줄일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모처럼 찾아온 글로벌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데이터 사용절차 간소화 △익명화 데이터 통합운영 △연합학습 기술개발 가속화 등 정부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미달에 익숙해진 친환경 정책들

입찰 미달 사태는 친환경 정책을 취재하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태양광 발전 전력판매계약인 고정가격계약은 최근 3번 연속 미달됐다.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달성 수단인 녹색프리미엄은 미달을 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탄소배출권 경매시장은 1년 반 넘게 계속 입찰 미달이다. 해당 제도는 에너지와 환경 분야에서 주요 핵심 제도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제는 미달됐다고 기사를 쓰는 게 민망할 정도며 미달을 면하는 게 더 큰 뉴스가 될 정도다. 정부 사업이 입찰 미달된다는 건 정부가 수요를 잘못 판단했고 즉각적인 정책 수정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관련 정부부처들이 반복되는 미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전면 수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이들 제도는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묶여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2030 NDC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2030년에 40% 줄이겠다는 탄소중립기본법으로 정해진 정부 계획이다. 2030 NDC에 따라 각 산업군의 목표 탄소 감축량은 정해졌다. 2030 NDC를 바탕으로 설계된 제도는 아무리 미달나더라도 근본 원인을 건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친환경 정책에서 미달은 한 번 미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 미래에 처리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마라톤 거리 42.195킬로미터(km)는 정해져 있다. 처음에 천천히 갔는데 제한시간 안에 완주하려면 나중에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 탄소감축도 지난해에 덜 줄였다면 올해는 더 많이 줄여야 한다. 녹색프리미엄은 대놓고 미달하라고 만들어 논 것 같다. 올해 물량으로 재생에너지 전체 발전량 규모에 달하는 4만5731기가와트시(GWh)를 풀어놨다. 이는 지난해 전체 발전량의 7.8%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물량이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력이 부족하다고 그러니 미달될 정도로 많다고 생색을 낼 작정으로 녹색프리미엄을 이 규모로 풀었나 싶다. 맨날 미달되니 가격 경쟁 의미가 없다. 게다가 녹색프리미엄은 배출권 확보 실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반쪽짜리 RE100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기록한 낙찰률 35.9%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친환경 정책의 미달사태를 해결하고 2030 NDC 달성으로 이어지려면 정부가 기업에게 환경 규제를 따르라고 더 옥죄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에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걸 달갑지 않아한다는 것이다. 환경부에도 규제보단 산업 육성을 더 강조한 게 현 정부다. 정부 부처들에 환경 규제를 강화하지 말라고 압박하겠지만 언제까지 숨길 일이 아니다. 2030 NDC는 지난 2022년 문재인 정부 당시 확정된 제도다. 2030 NDC가 정 마음에 안 들면 뒤집어엎는 결단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쿠팡 블랙리스트의 양면성

“블랙리스트 명단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폭언이나 도난 등 문제 사유가 있는 직원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린 것은 잘못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요?" 최근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이 논란되자 유통업계 한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기피직원의 채용을 막기 위한 기업의 블랙리스트가 '일자리 얻을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선 잘못된 행위로 볼수 있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유를 보면 쿠팡의 블랙리스트가 충분히 공감이 간다는 견해로 풀이됐다. 쿠팡의 블랙리스트는 물류센터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명단이다. 쿠팡이 블랙리스트로 추정되는 'PNG 리스트' 엑셀 문서 파일을 내부자료로 작성해 왔다는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엑셀 파일에 담긴 명단은 등록일자와 근무지, 요청자와 작성자에 이어 이름과 생년월일, '원바코드'로 불리는 로그인 아이디, 연락처 순으로 기재돼 있다는 것이다. 등록 사유로는 '폭언, 욕설 및 모욕', '도난사건', '허위사실 유포' 등 총 48개 유형으로 분류돼 있다고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물류센터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는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고, 심지어 지금껏 별다른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이 줄곧 제기돼 왔다. 실제로 쿠팡에 앞서 2022년 새벽배송 플랫폼 마켓컬리는 일용직 근로자 대상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가 결국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2019년 CJ대한통운의 유사 사건도 같은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이같은 전례에 비춰봤을 때 쿠팡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쿠팡 블랙리스트 논란이 커진 이유에는 명단 대상이 단순히 물류센터 근로자들로 국한되지만 않았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쿠팡 블랙리스트에는 물류센터 취재를 진행한 기자를 포함해 경찰청 출입기자들 정보까지 올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개인의견을 밝힌 유통 관계자가 주장한 기업의 블랙리스크 작성 의도를 벗어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결격 사유가 있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기업의 정당한 자기방어권이라는 주장을 십분 인정하더라도 소속 근로자가 아닌 다른 대상자를 임의로 정해 블랙리스트로 확대 작성할 수 있다는 합법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건 기업의 월권행위이자 개인의 정보보호 및 인권을 침해하는 탈법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쇄신 속도 내는 카카오…봄날은 온다

'전면 쇄신'을 선언한 카카오가 인적 쇄신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음 달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정신아 카카오 대표 내정자의 취임과 함께 핵심 계열사 대표들이 대거 교체될 전망이다. 이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김성수·이진수 공동대표 체제에서 권기수·장윤중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고, 카카오게임즈는 조계현 대표에서 한상우 최고전략책임자(CSO)로 대표이사를 교체하기로 했다. 그밖에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페이, 카카오브레인,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카카오 VX 등도 대표이사 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는 인적 쇄신과는 별개로 그룹 전반의 컨트롤타워도 정비하고 있다. 최근 카카오는 그룹 컨트롤 타워인 CA협의체 산하에 세부 위원회를 만들고, 위원회 별 역할을 부여했다. 세부 위원회는 △경영쇄신위원회 △전략위원회를 비롯해 △브랜드커뮤니케이션위원회 △ESG위원회 △책임경영위원회 등이다. 경영쇄신위원회는 김범수 창업주가 위원장을 맡아 그룹 전체의 쇄신을 주도하고, 전략위원회는 정신아 대표 내정자가 이끈다. 브랜드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으로는 '컬리' 출신 이나리 전 총괄 부사장이 영입됐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위원회는 권대열 위원장이 맡기로 했다. 권 위원장은 당분간 책임경영위원회 위원장직도 겸임한다. 카카오의 쇄신 작업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건 창업주 김범수 창업주가 지난해 12월 낸 메시지다. 당시 김 창업주는 쇄신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하며 “카카오의 위상에 걸맞은 체계를 갖추고, 사회의 신뢰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찾는데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선 쇄신 작업이 다소 더딘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지만, 카카오의 '최악'은 지났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실적 측면에서도 개선세가 뚜렷하다. 카카오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1% 감소했지만, 4분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109% 증가했다. 업계에선 카카오가 꾸릴 '새 판'은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적 쇄신이 마무리되는 데다 '쇄신'의 키를 쥔 정신아 대표 체제가 본격적인 닻을 올리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혹독한 겨울을 지낸 카카오가 올봄에는 다시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비상하길 기대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공모주 수요예측, 이대론 위험하다

“이번에도 또 상단 초과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유독 확정 공모가가 희망 공모가 최상단을 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공모가격은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밴드 상단을 초과하는 가격을 제시하거나 가격을 미제시한 기관 투자가 비율이 높으면 공모주의 기존 희망가 범위보다 높게 확정된다. 현대힘스, 우진엔텍, 포스뱅크 등 올해 수요예측을 진행한 공모주 모두 밴드 상단을 초과한 공모가를 확정했다. 올해 첫 조단위 대어급 IPO로 기대를 모은 에이피알 역시 이달 초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공모가 밴드(14만7000원~20만원) 상단을 초과한 25만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매번 공모가가 밴드 상단을 초과하면 공모가 희망밴드가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고 수요예측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수요예측 제도는 해당 기업의 가치를 분석해 적정한 공모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진행되는 제도다. 하지만 최근 IPO 시장에서는 그 의미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모가 최상단을 초과해 공모가가 확정되는 경우가 늘어나자 밴드 내에서 가격이 확정되면 오히려 흥행에 걸림돌이 되는 분위기다. 높은 공모가에도 IPO 시장으로 자금이 대거 몰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높은 공모가=따따블(공모가 대비 4배 상승)'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투자자들에게 각인되면서 투자 수요를 더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올 들어 상장 첫날 따따블을 기록한 기업들은 모두 공모가가 밴드 최상단을 초과했다. 기업가치가 높고 주가도 높게 거래되는 사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재 IPO 시장은 과열 양상으로 가면서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수요예측 흥행이 따따블을 기록해도 다음날 차익 실현 수요로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뒤늦게 매수한 투자자들은 피해를 보는 상황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공모주를 상장 당일 매도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당연하게 통용되고 있을 정도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생각

정부가 주가 부양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대통령이 새해 첫 행보로 증시 개장식을 찾더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금융당국이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주가를 올리라며 기업들 팔까지 비트는 모양새다. 약발이 있는지 증시도 나름 들썩이고 있다. 이 와중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자꾸 걸린다. 새마을 운동 구호를 외치듯 모두가 이 말을 쓰고 있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접근법이 문제다. 우리나라 증시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큰 게 '정상'이라고 믿는 듯하다. 공부를 한 번도 한적 없는 학생이 시험에서 '0'점을 맞고 '성적이 잠깐 내려간 상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국 증시는 저평가 받은 적이 없다. 지금 주가가 실력이다. 지주사, 중간지주사, 사업회사, 자회사 모두를 상장시켜주는 게 우리다. 기업은 온갖 규제에 발목이 묶여있다.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제조업은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늪에 빠졌다. 3류급 정치가 경제를 망치고 강성노조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나라다. 경영 능력 없는 총수 일가 아들·딸이 회사를 망치는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국민적 사랑을 받던 기업도 '묻지마 무한 계열사 상장'을 하더니 탐욕스러운 경영진과 함께 몰락해버린다. 북한이 각종 미사일을 쏴대며 전쟁을 준비한다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있다. 주주환원 강화 등을 요구하는 정부의 노력이 헛수고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다만 자꾸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생각을 하면 증시 부양의 초점이 단순히 수급에만 맞춰지게 된다. 공부 안 하는 학생에게 문제집만 잔뜩 사주는 꼴이다. 우리나라 증시에 당장 필요한 건 수급이 아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계속해서 진통제만 놓아줄 수는 없다. 이마트가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까? 일요일에 문을 열지 말라는 황당 규제를 10년 넘게 받았다. 경제 체질을 구조조정하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 정부는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은 지배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징벌적 상속세는 손보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이 가능한 공정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투자하고 싶은 기업들이 많이 생겨야 돈이 모이는 법이다. 한국 증시 몸값이 글로벌 표준까지 올라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글로벌 선거의 해, 탄소중립 갈림길

2024년은 '글로벌 선거의 해'다. 전 세계 76개국의 나라에서 치러지는 각종 선거에 지구촌 인구의 절반이 넘는 약 42억 명의 인구가 투표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최대 관심사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유럽연합(EU)의회 선거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가 집권하고 유럽의회도 최근 득세하고 있는 극우세력이 장악할 경우 현재의 탄소중립, 기후위기 대응 등에 대한 각국의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선거를 앞둔 글로벌 민심은 탄소중립에 우호적이지 않다. 유럽연합(EU)은 기업들의 탄소 중립 실현을 강제하기 위해 2022년 제안한 법안의 규제 대상에서 금융 기업을 제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덴마크과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을 늘리기 위해 1998년 체결된 에너지헌장조약(Energy Charter Treaty) 탈퇴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지난해 휘발유·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미루고, 이후에도 휘발유·경유차 중고차 거래를 허용하는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는 유지하겠지만 가계의 생활비 부담 등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취지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낵 총리는 미국이 모두에게, 특히 스스로에게 밀어붙이고 있는 터무니없는 '기후 의무'를 매우 실질적으로 되돌렸다"고 평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에서 날아온 전혀 처리되지 않은 더러운 공기 속에 숨 쉬면서 불가능한 것에 수조 달러를 쓰며 즐겁게 굴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 모두는 매년 석탄화력발전소를 수백개씩 짓고 있으며 독일도 막 여기에 동참했다"면서 “수낵 총리가 너무 늦기 전에 이런 사기를 알아챈 것을 축하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측은 이같은 변화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을 공격하는 데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부터 기후변화를 중국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2019년에는 미국을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시키기도 했다. 유럽 의회도 6월 선거에서 우파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최근 수년 동안 에너지 위기와 생활고 등으로 극우 정당들의 세력이 커지고 시민들의 각종 보조금 요구 시위가 빗발치는 등 탄소중립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계에서도 이같은 글로벌 정세 변화에 따라 탄소국경세 등 우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안들의 변동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업들의 실적둔화는 물론 한전 적자, 민생고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총선 전후로 에너지안보를 고려해 탄소중립과 에너지정책을 재점검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총선에 묻힌 금융법안

송두리 금융부 기자 4·10 총선을 앞두고 금융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오는 19일부터 2월 임시국회가 열리지만, 그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금융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에 처리되지 못하는 법안들은 폐기 수순을 밟고, 22대 국회에서는 법안 발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정무위원회의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과 행정안전위원회의 새마을금고법 개정안,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 등이 있다. 산은법 개정안은 여당과 야당의 입장 차이가 뚜렷한 법안이다. 산은법 개정안은 산은 본점은 '서울'에 둔다는 기존 산은법의 문구를 '부산'에 둔다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두고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산은을 부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국민의힘과 산은의 부산 이전 명분이 뚜렷하지 않고 제대로된 절차를 밟는 것이 필요하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 반면 새마을금고법 개정안과 수은법 개정안은 여당과 야당이 크게 이견을 보일 만한 법안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새마을금고법 개정은 지난해 11월 새마을금고가 발표한 혁신안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개정안에는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을 단임제로 하고, 전무이사와 지도이사를 경영대표이사로 통합하는 등 지배구조를 손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수은법 개정안은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현행 15조원에서 30조원 이상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확대되면서 각종 정책금융 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수은으로부터 수출 금융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방산업계 중심으로 수은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큰 상황이다. 산은법과 같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법안의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법안 처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에서 공회전하고 있는 금융 법안들을 보면 여야간 큰 이견이 없는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의식해 대치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총선 국면에 국회의원들의 모든 관심이 공천에 쏠려 있어 우선순위가 아닌 금융 법안은 논의 대상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총선 이후 22대 국회에서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만큼 금융법안의 처리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국회만 바라보고 있던 업계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금융주 주가 급등세...중장기 추세로 이어져야

연초부터 금융주 주가가 급등세다. KB금융 주가는 1월 8일 5만2200원에서 이달 현재 6만3000원대로 20% 넘게 급등했고, 이 기간 하나금융지주(31.15%), 우리금융지주(17.72%) 등도 강세를 보였다. 한화생명(44.25%), 미래에셋생명(36.6%) 등 보험사 주가도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금융위원회가 국내 상장사의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기업 특성을 고려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금융주 주가에 불을 지폈다.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의 기업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데다 최근 금융지주사들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에 주력하고 있는 점도 금융주에 대한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그간 우리나라 금융주는 사상 최대 실적, 주주환원 확대 등의 온갖 노력에도 기를 펴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는 금융사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한쪽에만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나라 은행들을 향해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며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판에 은행들은 즉각 '억' 소리나는 상생금융을 내놨고, 이는 작년 한 해 순이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정부가 은행권의 비은행 및 비이자이익 확대, 글로벌 진출 강화 등을 독려하거나 이에 대한 규제 완화에는 미온적이면서 이자이익 비판에만 혈안이 된 점은 여러모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방침이 향후 금융사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투자자들이 보험, 은행을 포함한 금융주의 밸류에이션보다 정부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최근 금융주의 주가 강세가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언제, 어떻게든 금융당국의 기조로 인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금융사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대상일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주의 저평가 현상, 그리고 금융사를 향한 정부의 온당치 못한 비판과 규제는 분명 바로잡아야 한다. 금융주의 주가가 '반짝' 강세가 아닌 중장기적인 상승세로 이어지고,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시급하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새로운 테마주 ‘저 PBR’, 가치함정에는 주의

주가순자산비율을 뜻하는 PBR은 주식투자를 논할 때 주가수익률(PER)·자기자본이익률(ROE)과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는 기초지표다. 주식 1주당 기업의 순자산가치의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 측정하는 것으로, 그 값이 1보다 낮을 경우 대개 저평가된 종목으로 평가한다. 최근 국내 증시 대부분 종목들이 저 PBR 종목으로 분류됐다는 통계가 나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삼스럽지만 그만큼 오랜 세월 국내 증시가 저평가돼 왔다는 의미며, 정부가 직접 나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나선 것은 다시금 '국장'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 충분한 요소다. 적극적인 PBR 제고 정책을 펼친 일본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찍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요즘 '저 PBR주'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는 것은 마치 과거 이차전지·초전도체 등 테마주를 연상케 한다. 1월 증시 약세를 겪어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개인투자자들이 확대되는 주주환원 정책, 장기간 이뤄질 기업가치 개선에 기대를 걸고 낮은 PBR 을 보유한 종목을 앞다퉈 사들이는 모양새다. 한편으로는 또 수많은 개미들이 저 PBR의 '함정'에 빠져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흔히 가치투자를 공부하는 초보 개미들이 범하는 실수로, 저 PBR이라고 해서 언젠가 주가가 반드시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가치 함정(Value Trap)'에 걸렸다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PBR 산출에 쓰이는 순자산이 기업의 자산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특히 PBR은 기업이 가진 부채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도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해당 종목의 사업이 정확히 어떤 업종인지, 그 업종의 업황과 전망이 어떤지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시점 제무재표 상으로 견실한 기업이더라도 업종이 사양산업이라던가, 회사 내부에 문제가 존재할 경우 주가는 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깊은 해외 증시에서도 주가가 수년째 바닥을 기고 있는 저 PBR주는 많다. 저명한 가치투자가이자 워렌 버핏의 스승으로 불렸던 벤저민 그레이엄 역시 3년간 보유한 저 PBR주가 성장하지 못할 경우 과감히 정리했다고 전해진다. 주식이란 단순히 기업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매수자와 매도자의 의사 합치가 이뤄져야 거래가 되는 만큼, PBR이라는 단편적인 지표에 매몰되지 말고 전반적인 실적과 외적인 요소를 두루 살펴 투자에 나서기를 권한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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