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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건설업 외면하는 청년들, K-건설의 위기

“건설현장에서 청년을 찾기가 힘들다. 내가 50대인데 현장에서 막내급이라 심부름을 자주한다." 최근 만난 한 건설근로자의 한탄이다. 그는 이대로라면 10년 후의 한국 건설현장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건설업에서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현장은 보수가 많지 않고 육체 노동이 심한 '막일'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산업 재해도 심각하다.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청년층에겐 매력이 떨어진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최근 5년간 청년층 졸업 후 첫 일자리 산업으로 건설업은 5%대 미만이다. 농림어업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심지어 건설업에 취업한 청년들 마저도 '탈건'이란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건설업계 탈출'을 뜻하는 신조어다. 업종별 직장인들이 가입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에서 건설업 코너를 보면 “탈건만이 답일까요?", “정말 궁금한데 왜 건설형들은 다 탈건을 꿈꾸는 거야?" 등 탈건을 주제로 한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건설업은 말 그대로 '사람 장사'다. 인력의 질이 곧 경쟁력이다. 청년층 유입 감소는 생산성 저하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각종 건축·시설물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청년들의 빈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면서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숙련·외국인들이 주로 일하는 건설현장 등에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공기가 늘어나고 부실 공사나 산업 재해의 가능성도 높을 수 밖에 없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현장에 대다수가 외국인 근로자"라며 “현장에서 아무리 통역 앱을 돌리고 해도 소통에 한계가 있고 통제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최근 건설업계에서 하자 분쟁과 안전 사고가 늘어난 이유는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들이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청년층 유입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설기능인 등급제가 있다. 건설근로자의 체계적인 경력관리와 합리적 보수 체계를 위해 근로일수·자격·교육·포상이력 등을 기준으로 초·중·고·특급의 4단계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의무사항이 아니며 신뢰도가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청년들이 건설현장을 외면하면서 K-건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K-건설의 미래를 위해 청년층 유입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직업으로서의 비전 제시와 합리적 보수 체계·산업 안전 강화 등 일자리의 질 개선을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이현주 기자 zoo1004@ekn.kr

[기자의 눈] 좀비기업 퇴출 이전에 장외시장 거래 활성화부터

금융당국이 거래소에 상장돼 있으나 기업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좀비기업'을 대상으로 상장폐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이고, 코스닥시장 상장사의 상장폐지 절차는 3심제에서 2심제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이는 좀비기업을 방치할 경우 기업사냥꾼의 시세조종 도구 등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지난 달 28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여의도에서 열린 금융 관련 연구기관장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상장 기업에 대해서는 거래소 퇴출이 적극 일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만큼, 금융당국 간 큰 틀에서 합의점이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문제가 돼 온 부분은 좀비기업으로 분류되는 상당수 기업들의 거래가 장기간 정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거래정지 기업들의 정지 일수를 분석한 결과 평균 500일 이상 거래가 묶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자 찬성하는 측은 팔고 싶어도 거래가 장기간 정지돼 있어 팔지 못해 재산권을 침해받는다는 의견과 반대하는 측은 사실상 투자한 자산이 대부분 증발하는 만큼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의견으로 나뉜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을 보면 유가증권시장 20개, 코스닥 56개 등 총 76개 종목이 거래가 정지중인 상태다. 특히 아리온과 이큐셀은 각각 2020년 3월 19일과 3월 20일부터 거래가 정지돼 왔다. 좀비기업의 정리는 시급한 문제로 금융당국의 이같은 조치는 환영할 만 하다. 하지만 정규시장이 거래소에서 퇴출됐다 해도 이들 기업들이 장외시장에서 활발히 거래가 이뤄져야 시장의 안정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문제는 대표적인 장외시장인 K-OTC는 오히려 위축중인 상태다. 금융투자협회가 내놓은 '2023년 K-OTC시장 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일 평균 거래대금은 33억3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5.6%가 감소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2020년 '상장폐지종목의 장외거래 특성 분석' 보고서를 통해 “상장폐지기업의 부담을 경감하고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장외시장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장외시장을 통해 충분한 재기와 거래의 기회를 제공해 거래소 퇴출위기에 놓인 기업이 자발적으로 대안시장을 선택하고 상장폐지 이후에도 장외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래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국내 자본시장의 성장을 도모한다면 2부 리그인 K-OTC와 코넥스에 대한 육성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실패가 끝이 아닌 재기를 위한 발판이, 스타 기업의 발굴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성모 기자 paperkiller@ekn.kr

[기자의 눈]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초라한 성적표는 예상된 결과

당국과 손을 잡고 호기롭게 문을 연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가 시장으로부터 당차게 외면받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월 19일 출시된 자동차보험 비교·추천 플랫폼의 한 달간 서비스 이용자 수는 약 12만명이며 계약 체결 건수는 약 6100건에 그쳤다. 최근엔 차 보험료를 애써 내린 보험사의 상생금융 행보가 무색하게 정작 소비자가 이전보다 높은 금액을 받아드는 헤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플랫폼 상품에 보험사 홈페이지보다 3% 비싼 보험료를 부과하는 데 대해 보험료 산정 근거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시장으로부터 제기됐다. CM(사이버마케팅) 보험료에 플랫폼 수수료를 단순 합산한 금액을 플랫폼 고객에게 들이미는 건 '이중부과'라는 지적이다. 플랫폼 수수료인 PM 수수료율에 대해 보험사들은 플랫폼 보험료가 더 저렴해지면 자사 채널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입장을 앞세우고 있기에 이 같은 기싸움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일각에선 처음부터 이런 결과가 예상됐다는 시각도 나타난다. 서비스 출시 직전까지 보험업계와 핀테크 업계가 밥그릇을 잡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소비자 편익은 뒷전됐다는 평가다. 앞서 표준 API 사용을 두고선 개별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을 추천해주기 어렵다는 플랫폼 업계의 만류가 따랐다. 표준 API는 공통 데이터만을 취합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보험 상품별 특약을 반영하기 어렵다. 이에 개별 API 사용이 무산됨으로써 보험 비교라는 본질적 기능부터 잃었다는 지적이다. 수수료를 두고도 막판까지 첨예한 대립각이 이어졌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핀테크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두고 몇 퍼센트를 지급할 것이냐로 업계 입장이 갈렸다. 현재 보험사가 지불하는 수수료율은 3%대로, 대형 보험사의 경우 이를 보험료에 포함시켜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보험사마다 플랫폼 수수료율의 적용 수준도 다르며 현재 일부 회사는 개별 다이렉트 채널을 이용하는 게 더 저렴하다. 플랫폼 적용 수수료를 낮춰야한다는 지적에 금융당국은 “시장에서 결정해야 하는 가격을 정부 차원에서 규제할 수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결국 보험상품 특성을 반영해 '제대로' 이뤄진 상품 비교도 되지 않는 데다 수수료 부담으로 가격 경쟁력은 낮아진 서비스만 남은 셈이다. 초반 관심과 기대가 꺾이면서 자동차 보험 이후 바통을 이어 받을 다른 보험상품의 흥행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혁신을 외치다 소모전만 치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지금, 진정한 서비스 혁신을 위한다면 밥그릇 경쟁이 소비자 편익에 대한 경쟁으로 변모해야 하지 않을지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눈] 내수부진 가구업계 ‘프리미엄 덫’ 벗어나야

한국 가구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판 이케아'라 불리는 니토리와 중국 이커머스 공룡기업 알리익스프레스 등 외국기업들이 지난해부터 가격 경쟁력과 젊은세대 공략을 내세워 마케팅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014년 유럽의 글로벌 가구공룡 이케아가 한국에 상륙해 다양한 디자인의 중저가 가구를 쏟아내면서 '집안 가꾸기' 트렌드 유행과 함께 국내 홈퍼니싱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이케아의 진출 이후 국내 가구시장은 가격경쟁력에서 밀린 한샘·현대리바트·신세계까사 등 국내기업 주도의 프리미엄 가구시장과 이케아코리아의 중저가 가성비 가구시장으로 양분돼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케아는 조명과 다양한 생활소품 등 집안 꾸미기에 최적화된 '가성비 디자인 가구'로 신혼부부 등 비교적 저연령대의 고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반면, 국내 가구기업들은 고가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오래 사용 가능한 가구를 찾는 구매력 있는 고객층을 대상으로 제품 개발을 이어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프리미엄 전략이 천연원목 등 프리미엄 소재를 사용했다는 제품 요소를 제외하면 주고객층으로 삼은 30~50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특장점이 없어 확고한 타겟층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학생용 가구 같은 제품은 일부 기능성만 부각시켜 고가에 판매하고 있으며, 고령화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감에도 '노인을 위한' 맞춤형 가구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부동산시장 불황과 신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여파가 국내 가구시장 침체로 이어지면서 국내 주요 가구기업은 지난해 줄줄이 적자를 냈다. 이케아코리아마저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88% 줄어드는 고전을 겪었다. 그나마 한샘이 예외적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국내 가구업계 경기가 여전히 안 좋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국내 가구기업들이 생존하려면 '한정된 차별화전략'보다는 '유연한 특화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가구도 하나의 전략적 제품이지만, 사실 고객층이 제한적이고 고부가가치 요소를 빼고는 수요 확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지금 유통시장은 20~30대 젊은세대와 1~2인가구 등 뉴 트렌드가 주도하고 있는 만큼 국내 가구업계도 과감한 변신과 도전이 필요하다. 해외가구 경쟁자들이 호시탐탐 내수시장을 노리고 있는 시점에 '프리미엄의 우물' 안에 갇혀 있다가는 생존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눈] ‘복수의 화신’ 된 이재명…커지는 총선위기론

더불어민주당이 공천 파동을 넘어 사상 초유의 '심리적 분당' 사태에 이르렀다. 민주당은 공천 관련, '사천' 논란이 일어나며 하루도 잡음이 끊기질 않고 있다. 특히 '하위 20%' 통보가 시작되면서 연쇄 탈당이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내 하위 20% 통보를 받은 의원들은 대다수가 비이재명(비명)계로 분류된다. 이들은 20~30%의 경선 득표율 감산 페널티를 가진 채로 원외 친이재명(친명)계 후보와 경선을 치르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명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이 대표를 친위하지 않았던 친문재인(친문)계 후보자들도 대부분 공천 배제(컷오프) 당했다. 단수 공천을 받은 비명계 의원은 윤건영 의원이 유일하다. 특히 '비명 학살' 공천의 가늠자로 꼽히던 임종석 문 전 정부 비서실장까지 컷오프되면서 당내 계파 갈등을 넘어서 분당 위기에 봉착했다. 공천 첫 시작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이어지는 심사 발표에서 비명계에 대한 공천 학살이 계속되는 이유는 이재명 대표의 '복수혈전'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황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당시 표결 이후 이 대표 지지층 커뮤니티에는 '가결' 표를 던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의 목록을 제작해 '살생부'라고 불리며 돌아다녔다. 민주당 안에서는 최소 29표 이상의 반란표가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민주당이 하위 평가자로 분류한 31명과 비슷한 수치다. 당 일각에서는 이 '살생부' 명단이 공천 기준이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친명계로 꼽히는 김성환 의원은 MBC라디오에 출연해 현역 평가 하위 20%에 비이재명계가 많은 이유에 대해 “의원 평가 항목 중에 다른 의원들과 당직자 및 지역권리당원, 주민들의 평가가 작년 11월, 12월 중 이뤄졌다"면서 “그 직전인 9월 말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됐을 때 도대체 누가 가결 표를 던졌을까 논쟁이 한참 있던 시기에 평가가 이뤄져 그 요소들이 평가에 반영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말하기도 했다. 하위 10% 통보를 받은 설훈 의원 역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졌다고 말한 이후 하위 10% 결정이 났다고 생각한다"며 “정치를 무슨 복수혈전하듯이 하느냐"고 지적했다. 체포 동의안 표결은 무기명이어서 누가 어디에 투표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누가 가결 표를 던졌을 것이라는 의심이 총선 공천의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면 공당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공천 보복을 당한 당사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때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0점을 맞은 분도 있다고 하더라"며 웃어 공천 배제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어지는 줄탈당에도 “경기하다 질 것 같으니 안한다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며 “규칙이 불리하다고 해서경쟁의 과정에서 국민, 당원이 선택하는 걸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현재 민주당의 공천 파동은 최고조다. '하위 20%' 통보를 받은 의원들의 줄탈당도 계속되고 있다. 역대 총선에서 극심한 공천 파동에 시달린 쪽은 대부분 필패(必敗)였다. 이런 식이라면 오는 4·10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이 아닌, 민주당이 심판받게 될 것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기대 못 미친 ‘밸류업’, 동력 잃기 전 추가 정책 내놔야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일본 증시도 오랜 기간 상상하기 어려웠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의 증시도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한국 증시는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2600대에 안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최고점이었던 3000대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박스피'로 불리는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많은 기대와 관심을 끌었다. 일본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증시도 경제 규모에 걸맞는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모였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보다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더 크게 나타났을 정도다. 그러나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사항이 발표된 후, 시장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세부 안이 공개된 직후 코스피 지수는 1% 가량 하락했고, 특히 '저PBR'로 분류된 종목들의 대부분이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증시가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전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제도의 구체적인 시행이 올해 하반기로 예정되어 있어, 단기 자금이 다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제 혜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상법 개정안 등도 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가 '자율'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분이다. 금융위원회는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지만, 강제성이 부재한 상황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밸류업 프로그램, 나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제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 추가적인 정책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여전히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증시에 관심을 두는 지금, 시장의 신뢰를 얻고 개혁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기자의 눈] PF부실 비극 막으려면 양보가 필요한 때

남의 돈으로 부동산 사업하던 기업들이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내던지고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였던 '부동산 투자는 불패'라는 말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있다. 특히 자기자본 없이 과도하게 대출 레버리지를 활용한 시행사와 시공사가 곡소리를 내며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고위험 투자군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고금리 대출과 대출 연장 만기 우려, 미분양 속출 등이 건설사의 자금줄을 꽉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사 폐업 수가 지속 증가하고 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에는 1736개사, 2022년에는 1901개사, 지난해는 2347개사가 폐업했고, 올해는 그 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올해 56개사가 폐업했고 다섯 곳은 부도를 냈다. 최근에는 시공능력평가 100위권의 유수 건설사도 줄줄이 법정관리 행에 접어들기도 했다. 총선을 기점으로 한 '4월 위기설'도 확산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30위권대 건설사를 포함한 17개 건설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근거는 부족하나 그만큼 건설경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남의 돈을 귀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케하는 현실이다. 앞으로 부동산 PF는 현재 5% 수준의 자기자본비율에서 20% 이상까지 끌어올리도록 재구조화가 추진되는 분위기다.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면 분양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고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리스크 관리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벌어진 PF 부실사업장의 대수술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다. 선순위 채권자(1금융권)와 후순위 채권자(2금융권 등)간 입장차가 있고, 이 외 수많은 이해 주체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엔 시간이 걸린다. 건설업계에선 이자 감당이 어려우니 정부와 금융권에서 일시적 유동성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21년 전까지 부동산 시기에 무분별하게 인허가를 내줬고, 금융권도 건설사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라고 부추긴 책임도 있으니 고통을 분담하자는 입장이다. 부실 사업장을 조속히 정리해 시장을 정상화시키려면 이해 관계자들이 한 발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는 취득세, 양도세 등 세금을 절감해서 다주택자의 활로를 열어줘야 하고, 금융권은 건설사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의 금리를 책정하고, 건설사는 수분양자를 위해 분양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고 계약금 할인 및 중도금 무이자 등을 실행해 미분양 해소에 힘을 써야 한다. 이래야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고, 하향 안정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양보하지 않으면 부동산 시장은 긴 시간 방황을 겪을 수도 있다. 김준현 기자 kjh123@ekn.kr

[기자의 눈] 누구를 위한 ‘단통법 폐지’인가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단통법)이 1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정부는 이동통신 시장 경쟁 촉진을 위해 단통법 폐지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강조하지만 정작 업계나 소비자 반응은 시큰둥하다. 단통법은 첫 시행 때 취지가 무색할 만큼 그간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른바 휴대폰 성지는 전국 곳곳에서 성행해왔고,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차별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들이 유통 대리점 간 가격비교를 할 수 없게 되면서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성지 정보와 암호 가득한 시세표를 입수한 소수의 소비자들만 더 큰 혜택을 보는 형국이었다. 문제는 단통법이 사라진다고 해도 단말기 구매 가격이 큰 폭으로 줄어들진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미 10년 전 이동통신 3사가 점유율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보조금 경쟁에 나선 것과 달리 포화 상태인 현 시장 환경에선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경쟁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통법 폐지는 정부가 그간 통신과점 해소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알뜰폰 활성화 정책과도 대척점에 있다. 정부 요구로 이동통신 요금제는 더 저렴해지고 세분화하는 가운데 유통대리점의 추가 지원금까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은 고사 위기에 처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전날 방송통신위원회는 단통법 폐지 전 시행령 개정부터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전면 폐지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우선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빠르게 지원금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역차별 해소 방안은 아직 전무하다. 혼란한 틈을 타 '공짜폰', '갤럭시 대란' 등 자극적인 단어를 담은 허위광고도 쏟아지는 모양새다. 일부 정치권에선 단통법 폐지가 '총선용 포플리즘'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과거 호갱 없애자고 만든 단통법이 또 다른 호갱을 양산한 것처럼 빠른 법 폐지에 집중하기보단 소비자와 시장 보호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소진 기자 sojin@ekn.kr

[기자의 눈] ‘제약 세계화’ 막는 AI 데이터 규제 개선해야

제약 분야의 인공지능(AI) 연구자는 최근 국내 AI 기반 신약개발 현주소를 물은 기자에게 “아직 초기단계라 국가별 경쟁력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면서도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면서도 AI 신약개발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AI 기술 자체는 세계 최상위권임에도 신약개발 상용화를 뒷받침할 법 제도 등 인프라 부족으로 자칫 초기부터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실제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우리나라의 'AI 기반 신약개발 알고리즘 기술수준'은 미국·유럽·중국에 이어 세계 4위이나 관련 특허의 질적 수준, 관련분야 논문 1건당 피인용 평균수치 등은 세계 10위권 밖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I를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료'인 빅데이터 활용도에서 경쟁국에 한참 뒤쳐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약개발을 위한 빅데이터는 환자의 유전체 등 '생물학 데이터', 신약 후보물질인 각종 '화합물 데이터', 약물의 실제 인체 투여 반응을 보여주는 각종 '임상 데이터' 및 '약리학 데이터'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약 선진국인 미국·유럽과 비교해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수 자체가 적고, 표준화가 미흡해 통합 및 호환이 어려우며, 비공개 데이터가 많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유전체 등 생물학 데이터는 개인정보 보호에, 약리학 데이터는 기업 지식재산에 해당돼 공개 수준이 더욱 낮다.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보유기관과 협의 또는 허락받는 데에만 수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다. 정부는 2021년 '데이터 3법'을 개정해 개인정보 익명화 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나, 익명화가 오히려 데이터의 품질과 호환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 차원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이나 데이터 유출 없이 AI가 솔루션을 도출하는 연합학습 기반의 신약개발 플랫폼 'K-멜로디' 사업 등도 추진 중이지만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웅제약이 지난 40여년 간 신약연구 과정에서 축적해 온 총 8억개의 화합물 데이터를 자체 구축해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다. 국내 제약사는 글로벌 빅파마와 연구개발(R&D) 격차가 커 AI 기반 신약개발은 R&D 격차를 줄일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모처럼 찾아온 글로벌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데이터 사용절차 간소화 △익명화 데이터 통합운영 △연합학습 기술개발 가속화 등 정부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미달에 익숙해진 친환경 정책들

입찰 미달 사태는 친환경 정책을 취재하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태양광 발전 전력판매계약인 고정가격계약은 최근 3번 연속 미달됐다.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달성 수단인 녹색프리미엄은 미달을 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탄소배출권 경매시장은 1년 반 넘게 계속 입찰 미달이다. 해당 제도는 에너지와 환경 분야에서 주요 핵심 제도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제는 미달됐다고 기사를 쓰는 게 민망할 정도며 미달을 면하는 게 더 큰 뉴스가 될 정도다. 정부 사업이 입찰 미달된다는 건 정부가 수요를 잘못 판단했고 즉각적인 정책 수정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관련 정부부처들이 반복되는 미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전면 수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이들 제도는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묶여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2030 NDC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2030년에 40% 줄이겠다는 탄소중립기본법으로 정해진 정부 계획이다. 2030 NDC에 따라 각 산업군의 목표 탄소 감축량은 정해졌다. 2030 NDC를 바탕으로 설계된 제도는 아무리 미달나더라도 근본 원인을 건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친환경 정책에서 미달은 한 번 미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 미래에 처리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마라톤 거리 42.195킬로미터(km)는 정해져 있다. 처음에 천천히 갔는데 제한시간 안에 완주하려면 나중에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 탄소감축도 지난해에 덜 줄였다면 올해는 더 많이 줄여야 한다. 녹색프리미엄은 대놓고 미달하라고 만들어 논 것 같다. 올해 물량으로 재생에너지 전체 발전량 규모에 달하는 4만5731기가와트시(GWh)를 풀어놨다. 이는 지난해 전체 발전량의 7.8%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물량이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력이 부족하다고 그러니 미달될 정도로 많다고 생색을 낼 작정으로 녹색프리미엄을 이 규모로 풀었나 싶다. 맨날 미달되니 가격 경쟁 의미가 없다. 게다가 녹색프리미엄은 배출권 확보 실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반쪽짜리 RE100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기록한 낙찰률 35.9%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친환경 정책의 미달사태를 해결하고 2030 NDC 달성으로 이어지려면 정부가 기업에게 환경 규제를 따르라고 더 옥죄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에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걸 달갑지 않아한다는 것이다. 환경부에도 규제보단 산업 육성을 더 강조한 게 현 정부다. 정부 부처들에 환경 규제를 강화하지 말라고 압박하겠지만 언제까지 숨길 일이 아니다. 2030 NDC는 지난 2022년 문재인 정부 당시 확정된 제도다. 2030 NDC가 정 마음에 안 들면 뒤집어엎는 결단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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