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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비대면 주담대 제동 건 법원의 등기시스템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이 활발해진 것은 불과 2~3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2020년 비대면 아파트담보대출을 출시한 데 이어 2022년 카카오뱅크가 비대면 주담대를 출시할 때만 해도 비대면 주담대가 활성화될 수 있을 지에 의문을 가지는 분위기였다. 통상 주담대는 규모가 커 차주들이 자세한 상담을 받길 원하는 데다 서류 제출, 등기 절차 등 번거로운 과정이 많기 때문에 비대면 영업에 제약이 많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시중은행에서도 비대면 주담대 상품을 내놓곤 했지만 인기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라졌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찾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영업점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이 부각됐고, 디지털 선호도가 커지면서 지금은 비대면 주담대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전체 여신(42조9000억원) 중 29%를 주담대(12조5000억원)가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법원행정처가 오는 31일부터 도입하는 '미래등기시스템'은 비담대 주담대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래등기시스템은 주택 거래 과정의 복잡한 등기 절차를 모바일 앱을 통해 간소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되는 것이다. 취지만 놓고 보면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는 현재에 부합하는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현장의 부동산 거래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등기시스템에서는 주택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의 소유권이전등기와 주담대를 제공하는 은행과 매수인 사이의 근저당설정등기 절차를 오프라인(대면) 또는 온라인(비대면)으로 일원화하도록 하고 있다. 보통 소유권이전등기는 법무사를 통해 대면으로, 근저당설정등기는 비대면으로 처리하는데 미래등기시스템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하려고 하면 모바일 앱을 통해 매도·매수자가 직접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야 한다. 법무사에게 부탁하기만 됐던 등기 과정에 불편함이 생기는 데다, 등기 이전에 시차가 생기는 등 리스크가 있어 부동산 거래자들이 비대면보다는 대면 절차를 선호할 것이란 게 은행권 예상이다. 이 경우 근저당설정등기를 위해서도 은행 영업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비대면 주담대는 사실상 취급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일부 시중은행은 비대면 주담대를 중단하기도 했다. 인터넷은행업계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비대면 주담대 취급이 어렵게 되면 직격타를 맞을 수밖에 없어 걱정스러워하는 눈치다. 무엇보다 은행권은 미래등기시스템이 충분히 홍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등기 과정을 디지털화하며 문제가 생기고 있는 만큼 충분한 계도기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원행정처와 은행연합회, 은행권은 16일 미래등기시스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논의하기 위해 간담회를 가진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은행권의 목소리가 잘 전달돼, 본래 취지에 맞게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미래등기시스템이 현장의 혼란 없이 도입될 수 있길 바란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혹시 엄마가 돌아가셨나요?”...목소리의 정체

“나유라 씨 휴대폰 맞으시죠. 엄마 친구 ㅇㅇㅇ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얼마 전 퇴근 시간 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요즘 광고성 전화나 보이스피싱이 많다보니 모르는 전화번호는 가급적 받지 않는데, 한 번 수신거절을 했음에도 바로 연달아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휴대폰 너머 한 여성은 술에 취한 듯,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나의 이름과 엄마의 이름을 도박또박 말했다. 목소리를 들은 순간 말할 수 없이 불쾌감이 들었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문자 부탁드린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은 직후에도 문자로 다시 한 번 해당 내용을 확인했다. 가뜩이나 최근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의 무사함에 안도할 때가 많았다. 그녀의 목소리와 문자는 나를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엄마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고, 해당 친구 이름도 실존하는 인물이긴 했지만 번호가 달랐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받기 수일 전, 정부24를 사칭한 사기문자를 클릭했다가 악성코드에 노출된 모양이었다. 스미싱, 보이스피싱 피해는 엄마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또 다른 가족도 잠결에 교통법규 위반 벌금 부과 관련 문자를 확인했다가 악성 앱인 걸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스미싱 범죄는 부고, 결혼소식을 알리는 식으로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문자 확인만으로 전 재산을 도둑맞을 수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202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올해 3월 중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를 위한 계좌개설안심차단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민생침해범죄, 보이스피싱, 착오송금으로부터 국민재산을 보호하겠다는 다짐도 넣었다. 스미싱 피해자들은 갈수록 늘고 있는데, 정부의 예방 대책은 갈수록 더딘 느낌이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말고, 문자메시지의 인터넷주소는 클릭하면 안된다는 게 예방법의 전부다. 이러한 예방법은 만약 문자를 클릭했다가 범죄에 노출되면, 문자를 클릭한 피해자의 과실이라는 이야기와 같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범죄자를 색출하고, 범죄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은 없는걸까. 혹은,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피해자의 과실로 치부하는 게 손쉬운 방법이라서 손을 놓고 있는걸까. 아직도 보이스피싱이 개인의 일쯤으로 치부하는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부모와 자식들은 낯선 목소리에 애를 태우고 있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韓 증시 ‘기피’, 정치권이 키운다

“비트코인이나 미국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세요. 국내 주식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최근 한 투자은행(IB) 전문가가 한 말이다. 이는 처음 듣는 말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많은 이들이 흔하게 한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언제 들어도 마음 아픈 말이 아닐까 싶다. 새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로 코스피지수가 2500선을 돌파하며 유의미한 반등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증시에 대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흐름이 지속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뒤따른다. 그나마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은 약간의 호재가 발생하면 “중장기적인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부연한다. 지수가 역사적 저점에 닿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국내 증시는 지난해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에 따른 관세 부담 우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발생한 정치리스크 등으로 큰 폭의 하락세를 겪었다. 증시 반등을 위해 우선 해결돼야 할 문제는 계엄발(發) 정치리스크 해소다.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안정감을 심어주는 게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낮았던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정치리스크로 더 낮아졌다. JP모건은 최근 한국 성장률을 1.7%에서 1.3%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내수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정치·정책 불확실성으로 급락하는 등 내수 부문이 취약한 상황인데, 당분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곧 현실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관세 부과 정책을 대비하기 위해 정치권의 단합이 중요하다. 외부적으로 미국과 협상을 도모하는 것과 동시에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것이다.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서로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리스크를 키울 때가 아니란 의미다. 미국의 강력한 자국 보호 무역주의로 우리 기업이 마주하게 될 환경은 매우 가혹할 것으로 예고됐다. 특히 수출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는 '2025년 글로벌 통상환경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5년은 우리나라 기업에게 험난한 풍파(Storm)와 같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이 '한국 주식도 투자 매력이 상당하다'는 말이 오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를 바라본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조선업계 슈퍼 사이클, 이번이 마지막 기회

최근 오랜 불황의 파고를 넘어선 조선업계가 모처럼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동반 흑자를 달성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국내 대형 조선 3사가 지난해 3분기 일제히 흑자를 달성했다. 최근 각 조선사의 일감이 3년치가 쌓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지난해 4분기에도 동반 흑자가 예상된다. 지난해 연간으로 본다면 13년 만에 나란히 3사가 모두 흑자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최근 조선업계가 슈퍼 사이클(초호황)에 돌입한 영향이다. 선주가 주문을 해야 일거리가 발생하는 산업의 특성상 조선업은 선박 교체 주기에 맞춰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손꼽힌다. 선박 교체 주기가 몰려 한꺼번에 일감이 쏟아지는 시기를 슈퍼 사이클이라고 불러왔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 산업이 세 번째 슈퍼 사이클에 돌입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첫 번째 슈퍼 사이클은 1963~1973년 동안이었고 두 번째는 2002~2007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슈퍼 사이클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이 언제 찾아올지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여러 관측들이 나온다. 다만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조선 산업에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0~20년 이후에는 중국에 추월당해 국내 조선사를 찾는 선주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예상이다. 이 같은 예상이 나오는 이유는 지금도 국내 조선 산업을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차 슈퍼 사이클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 조선사는 국내 빅 3의 그림자도 밟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실제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가 지난해 9월 20일 기준으로 집계한 글로벌 수주 잔고를 살펴보면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 잔고를 살펴보면 중국 조선사가 70%를 차지했으나 국내 조선사는 25%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지난 2011년 국내 조선사는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75%를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3년 만에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오랜 기간 동안 불황에 시달려온 조선사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슈퍼 사이클 기간만큼은 시름을 잊고 샴페인을 터트려보고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 조선사가 가격 경쟁력이라는 뚜렷한 강점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세 번째 슈퍼 사이클이 끝나는 직후 국내 조선사의 일감이 크게 줄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국내 조선 산업이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을 맞이할 때까지 생존하고 지금의 위상을 지켜내려면 더 이상 중국이 쫓아올 수 없을 만큼 기술력과 경쟁력을 개선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AI 지속가능성 실현하려면 ‘복제’는 안 된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속 우주비행사 캐릭터 버즈 라이트이어의 명대사다. 찬란한 비행을 꿈꾸며 한계를 극복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강한 울림을 줬다. 지난해 산업 현장을 취재하며 버즈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공지능(AI)이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미지의 세계로 항해하는 그의 도전정신이 일견 닮아서다. 공상과학 소설의 결말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AI는 운신의 폭을 계속 넓히며 산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주요 기업부터 중견·중소기업까지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혁신 방향을 찾기 분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별다줄(별 걸 다 줄인다)'이란 신조어처럼 '별 거에 AI를 접목하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최신 기술로 중무장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업 대표들은 세일즈를 자처하며 판로 뚫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한 통신사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AI 투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도태되면 죽는다'는 압박이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확보에 대한 현장 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연함이 무색하게 현재까지 선보인 AI 서비스 기능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대화 요약, 질의응답, 통역, 보이스피싱 차단 등 주요 구성은 사실상 동일해 소비자 입장에서 느끼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아직 초기 단계임을 감안하더라도 기업의 정체성이 담긴 AI 기능은 현재로썬 찾기 힘들다. 한 마디로 눈에 '확' 띌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AI가 없다는 의미다. AI 발전의 토대가 돼야 할 법적 가이드라인의 부재가 길었던 점이 주효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요 정책 방향과 전문인력 양성 등이 담긴 AI 기본법은 최근에서야 국회 문턱을 넘었다. 보완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각계 의견을 효과적으로 모으고, 국내 시장 여건과 해외 동향을 종합 고려해 강력한 법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기업 역시 '한탕주의'에 젖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작금의 AI 투자 양상을 보면 본업이 뒷전으로 밀릴 만큼 기술 개발에 치우쳐지거나, 사업 방향성이 부실한 경우가 적잖다. '남들이 다 하니까' 섣불리 뛰어드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물론 수많은 실패작 가운데서 새로운 기술 모멘텀을 발굴할 수도 있지만,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AI 서비스가 무한 증식된다면 대중은 금세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이는 곧 발전이 정체되는 현상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득 기술 등장 초창기 밀물처럼 들이닥쳤다가 엔데믹 직후 썰물처럼 빠져나간 메타버스를 떠올려본다. 어쩌면 첨단 기술이 무한한 공간 너머로 진출하는 걸 방해하는 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다가온 ‘트럼프 2.0’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그의 공약대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보편 관세 부과 등이 실현된다면 한국 산업계는 큰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트럼프를 찾아가 한국 산업의 역량을 어필하고 그간의 우호적이었던 관계들을 잘 설명해 조금이라도 우리 기업들에 유리한 쪽으로 마음을 돌려놔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로를 끌어내리고 비판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쁘다. 트럼프 취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스탠스로 협상에 임할 것인지,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은 여전히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유세 때부터 강력한 '관세정책'을 내세웠다. 그는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매기고 이외 모든 수입국엔 10~20% 보편관세를 매길 방침이다. 또 미국 우회수출 기지인 멕시코산 자동차에는 1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의 강세로 미국 산업에 타격이 전망되자 강력한 보호주의로 자국 산업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트럼프는 전기차도 싫어한다. 그는 “전기차는 사기"라고 언급할 정도로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인 인물이다. 이에 그는 바이든 정권이 작품인 IRA 폐지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외의 다른 변수도 많지만 이 두 가지 성향만 보더라도 한국 산업계 특히 자동차, 배터리 업계엔 엄청난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이나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기존 제공되던 세액공제 혜택이 사라지고, 원래 없었던 관세가 부과된다면 매출과 비용에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서야 할 곳은 정부다.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불안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이를 잠재울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판을 바라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올해는 '불확실성의 해'라고 긴장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대통령 체포하기에 혈안돼 국외 사정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갈등은 잠시 미뤄두고 국가의 미래와 기업의 먹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자세를 보이길 촉구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참사의 기억법, 한국 사회는 성숙해졌나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 2024년 제주항공 2216편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 10년 새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대형 참사들이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1인 미디어의 발달로 매 사건마다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지고, 명예 훼손 우려가 큰 악성 게시물들이 판을 쳐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할 언론은 사실 관계 파악을 소홀히 해 조회수와 속보 경쟁에 목을 맨다. 그러다보니 299명이 사망하고 실종된 5명은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세월호 사고 당시에는 탑승자 전원을 구조했다는 대형 오보가 났다. 무안공항에서 생겨난 제주항공 참사에선 '기장·객실 승무원 6명 구조'라는 제목의 속보가 나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큰 사고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지만 결국 179명이나 사망한 대형 참극으로 귀결됐다. 또 여권 번호와 성별 등 개인 정보가 적힌 탑승객 명단을 사진으로 찍어 여과 없이 속보로 내보내는 부끄러운 행태도 목격됐다. 방송사들은 활주로에 동체 착륙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흙무더기에 덮힌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해 폭발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내 자극적인 보도를 했다. 일부 몰상식한 시민들이 유가족을 참칭하며 가짜 인터뷰를 진행해 진짜 유가족들이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2장 제3조는 '정확한 보도'를, 제10조는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를, 제11조는 '공적 정보의 취급'을, 제12조는 '취재원에 대한 검증'을, 제15조는 '선정적 보도 지양'을 명시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무시되기 일쑤다. 시간이 지나도 참사를 대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아 '정론직필'은 공염불에 불과한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언론과 시민 사회의 대대적인 변화가 나타났고, 독일·일본은 재난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혁하고 재난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문화를 구축했다.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법이다. 그런 만큼 이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고쳐야 하고, 언론과 시민들의 자성을 통한 의식 수준 제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국정혼란 때마다 춤추는 ‘물가 인상’

물가 인상엔 권력 공백기가 적기인가. 계엄령 파동과 탄핵정국에 따른 국정 불안의 어수선한 틈을 타 지난해 말부터 식품·화장품·패션 등 업종에서 가격인상 물꼬가 터졌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줄인상에 나섰던 유통업계에 또 다시 국정 불안이 호재로 작용하는 있는 분위기다. “원부자재·물류비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렸다"는 업계의 해명마저 8년 전과 '판박이'다. 더욱이 물가 안정을 내걸고 몇 년 간 가격 동결의 뚝심을 보였던 업체마저 인상 카드를 꺼내든 것이 시기의 우연이라 보기엔 찝찝한 느낌을 남긴다. 물론 업체들 속사정을 들어보면 나름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글로벌 통상 환경 등 대외변수까지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 1500원(6일 오전 현재 1469.5원)을 넘보고 있어 기업의 가격 인상은 수익성 보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만 치솟고 있어 국민들의 생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시급)은 지난해(9860원)보다 170원(1.7%) 찔끔 오른 1만30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세로 위기 상황이던 2021년(1.5%) 이후 역대 최저 인상률이며,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2.3%)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1만원대 시대'라는 의미 부여는 서민생활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물가 인상이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진행되는 점도 문제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1인 4역을 소화해야 하는 형국인지라 물가 안정을 포함한 주요 민생현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민간시장의 동향을 실효적으로 제어할 조치 능력마저 버거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4개월 연속 1%대 물가 상승률을 유지중이지만 환율 급등 여파로 1월 소비자물가가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국정이 혼란스러울수록 빨리 수습하고, 국민생활을 안정시키는 게 정부의 책무다. 물가 변동성이 확대되는 설 명절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과일을 비롯해 국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으며, 수입가공식품도 고환율로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가격인상 충격을 최소화하는 실효성 높은 물가대책이야 말로 국정 혼란을 막고 민심을 진정시키는 상책(上策)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 눈] 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묘수’로 유상증자 ‘무리수’ 뒤집다

고려아연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주들에게 '산타'가 되어 깜짝 선물을 내놓았다. 바로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지배주주의 전횡과 방만한 경영이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자생적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소액주주가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이 제도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자 실제로는 도입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았다. 상법에 도입됐으나, 기업들이 정관에 반영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기 때문이다. 즉, 원치 않는 기업들은 적용하지 않아도 됐다. 재계가 집중투표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한 배경에는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과 외부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처럼 재계가 사활을 걸고 저지하려 했다는 점은 오히려 이 제도가 얼마나 선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인지를 반증한다. 그런데 이번에 고려아연은 상식을 뒤집는 선택을 했다. 그들은 오히려 이사진을 열어주는 선택을 했다. 최윤범 회장 측의 지분율이 낮아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국내 상장사 중에는 낮은 지분율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대방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고 승리한 경우가 많다. 지난달 상장사 주총에서는 법원이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을 인정했음에도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의결권 수거함을 들고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MBK파트너스가 지분율을 높이더라도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것이 K-주주총회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MBK에게 이사진을 열어주는 통 큰 선택을 했다. 이는 고려아연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회사로 격상시킬 전망이다. 우선, 주주권이 한 단계 격상됐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1주의 가치는 예전보다 제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이사회 중심의 선진 경영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MBK와 같은 동아시아 1위 사모펀드가 엄선한 걸출한 이사 후보들이 이사진에 합류하면, 회의체 기구인 고려아연 이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최 회장은 집중투표제를 들고 나오며 이미지 쇄신에도 성공했다. 그간 최 회장은 유상증자라는 '최악의 수'를 둔 경영자로 인식됐으나, MBK 등 주주와의 공생을 선택함으로써 '대인배의 풍모'를 지닌 인물임을 보여줬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기자의 눈] 정쟁 몰두해 민생 에너지법안 외면, 국회의원은 탄핵 안되나?

행정부와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의 탄핵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는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연이어 통과시켰다. 또한 민생과 내수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연봉은 1억6000만원으로 그들이 대표한다는 국민들의 동의 없이 셀프인상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민생법안이라는 에너지 관련 현안 법안들 통과에는 이런 막강한 힘을 사용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실소가 나온다. 실제 국회는 지난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력망특별법, 고준위특별법 등 국가경제에 시급한 현안들을 차일피일 방치하고 있다. 끝없는 정쟁과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며 주요 현안들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각부처 장관들에게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은 기업현장의 애로사항들을 적극 청취하면서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고 반도체특별법, 인공지능기본법, 전력망특별법 등 기업 투자와 직결되는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적극 소통해 주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법안을 상정하지도 못하고 국회로 부터 탄핵당했다. 민생법안을 챙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회의 요구대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의원은 헌법 제65조에 따라 대통령·국무총리·장관·헌법재판소 재판관·감사원장 같은 공무원들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탄핵심판에 소추할 수 있다. 국민들의 대표라는 명분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민생에 필요한 입법 활동을 하지 않거나 당리당략에 따라 민생과 국가경제에 필수적인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않거나, 국회 상임위원회나 본회의, 국정감사 등에 출석하지 않거나 성실히 임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고준위 특별법은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을 영구 처리할 수 있는 방폐장을 구축하기 위한 법안이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풍력발전 촉진방안을, 전력망특별법은 국가 핵심 전력망의 적기 확충 방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2050탄소중립은 물론 산업계와 민생의 근간이 되는 발전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법안들이다. 그러나 국회의 외면 속에 업계의 어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기업들과 국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큰 사황이다. 탄핵안은 빛의 속도로 통과시키고 민생법안은 뒷전인 게 우리 국회의 현주소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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