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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희 칼럼] 한일정상회담이 남긴 과제

"망국 외교, 굴욕 외교,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윤석열대통령의 방일 후 한일정상회담 결과와 강제동원 해법을 비판하는 대규모 시민단체 집회로 연일 뜨거운 분위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끝내 일본 하수인의 길을…. 역사를 저버린 이 무도한 정권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라고 비판하며 야당도 이에 합세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반일 정서에 기댄 선동의 DNA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며 "체포안 표결에서 누더기가 된 방탄복을 ‘죽창가’로 땜질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국인이 한일문제에 대해 마냥 냉철한 머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성보다 뜨거운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영화 ‘영웅’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어느 새 두 주먹을 불 끈 쥐게 되는 우리 국민이 가장 화나는 대목이 바로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한 태도이다. 그러나 한번 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한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맥락 하에서 냉철하게 한일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국제정치로 고개를 돌려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제사회의 평화를 유지해오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중국의 경제발전을 도우면 민주화가 촉진되고 결국 국제적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중국을 국제사회로 적극 끌어내고 지원했던 미국의 셈법과 달리 중국은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해 미·중간 새로운 패권경쟁과 신냉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독자적으로 중국의 도전을 막는 것이 힘겨워진 미국은 이제 한미일, 쿼드, 인도태평양전략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동맹과 파트너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도전을 막으려 한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서 제1도련선 국가들의 중요성이 상승한 반면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약화된 측면이 있다. 지난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대일관계는 역사, 영토 분쟁 등의 문제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특히 문재인정부 시기에는 양국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광복절 연설에서 "진정성을 갖고 대화하겠다"며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 일본과 대립을 피하는 징용 배상방안을 찾고 있었다. 그 해답으로 내놓은 것이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이다. 이 대안이 국민의 눈높이와 감정에는 매우 불만족스럽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안보, 경제, 중국의 부상에 따른 신 국제질서 재편 등에서 ‘공동의 이익’을 풀기 위해 협력해야만 하는 대내외적 압력에 노출된 한국정부가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참으로 불편한 이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지정학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처지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감정’에 치우친 외교정책을 구사하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이나 문재인 정부 때 ‘죽창가’를 내세우는 맹목적인 민족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민족주의 감정을 동원하고 소비하는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경계해야 한다. 한일문제는 일도양단식의 시원한 해결은 어렵고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의 위상은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어깨를 겨루는 경제대국이다. 자신감을 갖고 맹목적인 반일(反日)이나 숭일(崇日)에서 벗어나 극일(克日)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주듯이 국제정치는 ‘naked power’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이 속에서 외교는 냉철한 머리로 국익의 관점에서 실리를 찾아 나가는 끊임없는 여정이다. 최근 한동훈 법무장관이 출국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손에 들고 간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강대국의 등장 과정에서 패권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오늘날 미중 패권경쟁 하에서 한국외교가 풀어내야 할 복합방정식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강제동원 해법 역시 이런 구조적 맥락에서 평가해야 한다. 윤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쌍수를 들고 반기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 그간의 물밑 진행상황이 충분히 짐작된다. 다만 외교는 실리 못지않게 모양새나 명분도 중요하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것이고 사람 간의 관계처럼 국가 간에도 ‘감정’이나 ‘정서’가 존재한다. 이 감정을 별 게 아닌 것으로 치부하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가슴 아픈 모진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낸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 그리고 마음 상해있는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섬세한 배려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라는 숙제는 결코 한국 혼자 풀 수 없다. 한국이 먼저 주도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준 만큼 이제 공은 일본에게 넘어갔다. 지금까지 일본의 행태로 보아 틈날 때마다 과거 역사를 반성하는 성숙한 독일의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통 크게 반을 채워 내민 물 컵에 성의 있게 남은 절반의 물을 채우는 것은 일본의 몫이다. 계속 부끄러움을 모르는 역사의 소인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열린 미래로 함께 나아가는 이웃이 될 것인가는 이제 일본의 선택에 달려있다.송문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정치평론가

[이슈&인사이트]소상공인들이 흔히 범하는 착각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작년에 신용보증재단중앙회가 발표한 ‘2022년 상반기 보증지원기업의 폐업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업한 소상공인 10명 중 4명은 ‘재창업을 이미 했거나’(24.1%), ‘준비 중’(15.5%)으로 나타났다. ‘재충전 중’(12.9%)이라는 응답자 중에서도 53.4%가 ‘향후 재창업을 계획한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업종 선택에서 폐업 전과 동일 업종을 선택하는 경우는 53.5%로 절반이 넘었다. 소상공인의 폐업과 창업을 반복하는 ‘회전문식 창업’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심리학 용어로 ‘우월의 착각’이란 말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은 일반 사람들보다 낫다’라고 착각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런 현상은 대중매체나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지만 코로나19 상황의 창업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은 망해도 나는 잘 해낼 수 있다’는 우월의 착각과 유사한 개념으로 ‘내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통제 착각이 있는데 최근 한 연구는 ‘통제착각’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소상공인들에게 작용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밝혀냈다.작년 말 한국유통학회, 한국마케팅학회, 한국광고학회, 한국소비자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통합학술대회 (DMAC)에서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폐업이나 업종전환을 하지 않고 버티는 소상공인의 행동을 설명하는 신현정씨의 박사학위 논문이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됐다. 이 논문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매출 감소와 늘어나는 대출로 부채가 증가하는 데도 취업이나 업종전환을 모색하지 않고 사업을 지속하는 소상공인의 심리를 밝혔다. 암담한 상황에도 수많은 소상공인들은 자신의 기술과 능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환경을 제어할 수 있다는 통제 착각에 빠져 사업을 지속하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개인이 통제불능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통제착각이 큰 소상공인 일 수록 회복탄력성이 높았다. 통제착각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과는 상관없는 결과를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경향 때문에 불확실한 환경에서 성공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리고 회복탄력성이 클수록 사업지속의도가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회복탄력성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결과에 이르는 긍정적 심리적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통념상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역경이 왔을 때, 회복탄력성이 큰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념과는 다르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회복탄력성을 가진 기업가는 도전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더 높으므로, 사업을 포기하기보다는 사업기회를 탐색하고 사업을 지속할 의향이 크다. 수없이 사업에 실패하고도 또 다시 대출을 신청한 소상공인 중에는 ‘리어카를 살 돈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듯 회복탄력성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나 통제에 대한 착각으로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인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회 탐색과 함께 사업기회에 내재된 잠재된 위험을 지각하는 것과 저마다 가진 인지편향을 이해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것으로 이것은 기업가의 판단에 달려있다. 따라서 기업가의 편향이 없는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기업의 미래 방향과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간단한 심사를 거쳐 무작위로 선정한 컨설턴트를 소상공인 경영컨설팅에 무작정 투입해 왔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컨설팅 지원을 지양하고, 소상공인의 인지편향을 제대로 반영한 새로운 경영컨설팅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이 과정을 이수한 컨설턴트를 소상공인의 경영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박주영 숭실대 경영대학 교수

[이슈&인사이트] 친환경 기업에

요즘 MZ세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제품을 구입할 때 가성비 보다는 환경을 생각하는 친환경 가치 소비를 이끌고 있다. 의식 있는 소비자들이 제품 소재와 생산, 유통 등의 과정에서 상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따져보고 구매를 결정하고 있다.정치, 사회, 문화적 신념을 소비를 통해서 표출하는 이른바 ‘미닝 아웃(Meaning out) 소비 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가치 소비 문화가 전 세계 소비자들과 기업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가격이 좀 더 비싸더라도 라벨 없는 생수나 친 환경 인증 상품을 선택한다. 내가 구입한 물건이 숲, 바다, 동물을 헤친다면 아무리 저렴하고 쓸 만 해도 안 산다는 신념으로,사회적·윤리적 가치를 반영한 제품을 고르고 있다. 기업들 역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친환경 경영에 나서고 있다. 유명 핸드백 하나 만드는데 악어 3마리가 필요한 데 이를 버섯 가죽으로 대체해 핸드백을 개발한다는 뉴스 보도도 있었다. 바다에서 수거한 폐그물과 섬유 폐기물로 만든 에코닐을 소재로 모자와 가방 등의 제품도 생산되고 있다. 폐기된 옷으로 만든 재활용 실,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 식물자원으로 제작한 친환경 플라스틱, 상업용 폐식용유로 만든 산업용 포장필름(비닐) 등 다양한 친환경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빈 용기를 가져가면 화장품 내용물만 구매할 수도 있다.제품의 포장 비닐을 종이 재질로 변경하고 포장을 간소화한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종이나 친환경 소재를 이용하여 제품을 담고 있다. 세계 인구가 꾸준히 늘며 상품·서비스 수요 증가가 계속되면 언젠가는 지구상의 모든 자원이 고갈 될 것이다. 친환경 소비풍조에 맞춰 이제 폐기물도 쓰레기가 아닌 자원으로 대접받는 시대다. 지금까지의 경제구조, 즉 자원을 제품으로 생산·사용 후 폐기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는 폐기물을 자원으로 다시 사용하는 순환경제 구조 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고장 났거나, 유행이 지났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제품들도 가치 있는 자원이므로 수리하고, 리폼하고, 다시 제조하고, 재판매 해야 한다. 각종 자원들이 폐기되지 않고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원료를 다시 뽑아 내지 않고, 가공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탄소 발생과 에너지 고갈을 줄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적으로 마스크 15억6000만 개가 바다에 버려졌다. 그런데 마스크가 분해되는 데 450년 이상 걸리고, 분해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화해 해양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나마 많은 소비자들이 플라스틱컵, 빨대, 포크, 물티슈, 냅킨 등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 노력한다. 비슷한 품질이라면 환경친화적이고, ESG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가치 소비, 환경친화적 신념에 맞는 소비이다. 지속 가능한 경영, 환경을 중시하는 경영 추구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환경친화적 기업의 매출도 상승하고 있다. 이제 소비자와 기업들에게 친환경 소비와 제품생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소비자들의 가치 소비 트렌드는 기업을 바꾸고, 기업의 ESG(환경·책임·투명경영)를 촉구한다. 소비자들은 더 나아가 불필요한 제품 소비를 줄이고, 기업에 친환경 경영을 더 요구해야 한다. 친환경 기업, ESG 모범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구입하는 것으로 기업의 ESG경영을 유도할 수 있다. 버려진 페트병에서 뽑은 원단으로 만든 티셔츠를 하나 사면 플라스틱 물병 4.8개를 줍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부터 폐기물을 활용한 의류와 신발을 신고,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고, 폐 페트병으로 만든 스니커즈를 구매하는 것으로 친 환경제품 소비문화를 확산하고 친 환경기업에 돈쭐 좀 내봐야겠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 변수

지난해 12월28일 대통령실이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데 이어 외교부가 인태전략 설명회를 개최했다. 3대 비전으로 ‘자유·평화·번영’을, 3대 협력 원칙으로 ‘포용·신뢰·호혜’를 제시했다. 지역적 범위는 미국,일본,중국 등 북태평양과 동남아·아세안,인도 등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인도양 연안 아프리카, 유럽·중남미 등으로 상당히 넓다. 중점 추진 과제는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질서 구축’ 등 아홉 가지이다. 인태전략 발표는 윤석열 정부가 새로운 외교 지향점으로 제시한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GPS· Global Pivotal State)’의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포괄적 지역전략의 밑그림을 완성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미국, 일본, 캐나다 등은 중국을 ‘질서 파괴자’로 정의하는 등 강한 언어를 사용했지만 한국은 중국을 ‘주요 협력 국가’로 표현해 포용을 택함으로써 차별성을 보였다. 한국의 인태전략 발표 직후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각국이 단결·협력해 지역 평화와 안정, 발전 및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주장하며, 배타적인 소그룹에 반대하는 것이 지역 국가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도 중국과 더불어 중한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 발전을 이끌고 지역의 평화 안정과 발전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적극 공헌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인태전략에 견제와 기대의 메시지를 함께 밝힌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입장이 이렇게 나온 데는 윤석열 정부가 ‘상호존중의 한중관계’ 정립의 기조하에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국익관점에서 결정하고, 한편으로 중국 변수를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외교정책을 추진해 온 것이 주효한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창설국으로 참여했다. IPEF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목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중국과 한국이 영구적인 이웃이자 분리할 수 없는 파트너라고 전제하고, 양국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톤을 낮췄다. 둘째, 한국은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지난해 6월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파트너국으로 초청돼 사상 처음으로 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중요 국가이자 중국과 상호 중요한 협력 동반자로서 광범위한 공동이익을 보유하고 있다"라며 "관련 각 측이 양자 관계를 발전시키고 아시아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발전을 수호하는 데 공동으로 노력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셋째, 한국 정부는 ‘칩4 동맹’ 참여 문제에 신속한 결정을 했다.지난해 8월11일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박진 장관은 중국측에 ‘칩4’ 예비회담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하면서, 중국이 우려하는 입장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이 ‘칩4’에 들어가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봤을 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도전 요인들이 산재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인태전략이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가치와 국익을 확보하고 대외정책의 지평을 확대하는 이정표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특히 날로 격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 상황에서 인태전략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중국 변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아직까지 중국은 한국의 인태전략에 부정적인 입장을 명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으나 내심은 다를 수 있다. 사드보복을 한 바 있고 중국내 코로나19 급증 상황에서 한국이 불가피하게 중국발 입국에 제한을 가한 데 대해 ‘비자보복’ 조치를 취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언제라도 인태전략에 대해 어깃장을 놓을 수 있다. 정부는 중국 변수를 면밀하게 살피고 상황 발생시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인태전략을 추진해야 한다.이강국 전 중국 駐시안 총영사

[홍성걸 칼럼]국민의힘 김기현 지도부의 과제

지난 8일 국민의힘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렸다. 예상대로 소위 윤심(尹心)을 업은 김기현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으로 당선되었고, 최고위원도 모두 친윤계로 채워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1년이 지나서야 천신만고 끝에 비로소 자신과 합을 맞출 여당 지도부를 만들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은 가시밭길처럼 험난했다. 중도층의 반대와 지지기반의 이탈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김기현 후보를 대표로 선출하려는 의도가 역력한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다. 대표선출 방식을 책임당원만 참여하도록 바꿨고, 잠재적 후보자들을 강압적으로 주저앉혔다. 경선 과정에서도 필요할 때마다 대놓고 김 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가 용산으로부터 발송되었고, 잠재적 위험을 제거했다. 이것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기에 비판은 높았다.한국 정치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관계는 3김(金)시대까지 대통령의 압도적 우위에 따라 여당이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비판을 받다가 노무현 대통령 이후 많이 달라졌다. 대체로 5년 단임의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손발을 맞춰 정권과 명운을 함께 하기 때문에 보통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과정과 이후 이준석 대표와의 관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갈등적이었다. 그것이 김기현 체제 수립과정에서 용산의 행보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출과정이 요란했기에 김기현 대표 체제의 첫 과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증폭된 계파 간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그것도 공천권을 앞세운 강압에 의한 일방통행식 관계 개선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의 관용에 의한 아름다운 통합이어야 한다. 안철수나 이준석, 유승민 등 당내 갈등 요인을 적이 아니라 아군으로 포용하는 대인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경선과정에서 이탈한 중도층과 일반 국민의 지지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야당이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21대 국회의 마지막 1년을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교육, 노동, 연금 등 3대 개혁을 내세운 윤 정부는 사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관련 입법이 불가능하다. 특히 노동개혁은 친노동 기조를 갖는 민주당의 반대가 불을 보듯 뻔한데다 건설노조, 운송노조 등과의 전면전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노동계의 투쟁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게다가 야당은 국정보다 형사피의자인 이재명 대표 보호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김기현 체제가 야당의 비난에 일일이 대응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비난과 불신을 한몸에 받는다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필승을 기대하기 힘들다. 총선 전까지 여론의 지지도를 높이면서 야당의 악담과 비난에 핍박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김기현 체제는 윤석열 정부와 함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악화된 한일관계의 개선, 남북관계 경색과 북한의 증가하는 위협, 계속되는 에너지 가격 폭등과 공급망 재편, 전쟁 등 대외변수와 정체된 기술혁신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경제난 등 다양한 위기 요인 속에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특히 민주당과의 상호 비난으로 땅에 떨어진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면 총선을 앞둔 여당으로서 안정적 다수 의석 확보는 불가능하다. 만일 총선에서 패배하면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문제가 복잡할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개인이나 정당의 정치적 이익보다 중장기적 국익을 위해 필요한 일을 과감히 실천하면서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불신과 비난을 받는 이유는 입으로만 국익과 국민을 떠들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당리당략만 앞세우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대놓고 떠드는 것만 국민의 생각과 이익이 아니다. 말 없는 다수의 국민은 정치인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판단하고 있다.실물 정치를 모르는 백면서생의 조언이라 무시하지 마시라. 인간처세(人間處世) 견리사의(見利思義)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소용없을 것이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챗GPT 바로 알기

챗GPT가 연일 세간에서 화제다.챗GPT가 소개된 것은 4개월에 불과한데 이미 시중에서만 200종이 넘는 책이 판매 중이고, 수많은 세미나와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주제는 챗GPT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챗GPT와 몇 마디 문장을 주고받다 보면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양하고 복잡한 질문에도 방대한 인터넷 문헌을 요약하고 함축하여 바로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것도 사실이다.챗GPT에 이미 많은 투자를 해온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오피스 제품군에 챗GPT의 가공할 위력을 통합하여, 다양한 아이디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예컨대 챗GPT를 이용해 메일에 대한 답장을 자동으로 생성해 주거나, 나의 답장을 각색해 주는 기능도 등장했다.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져 챗GPT는 가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챗GPT가 그간의 인공지능 한계를 한단계 더 끌어 올린 것은 분명하지만, 과도한 기대 역시 금물이다. 특히 챗GPT로는 불가능한 영역까지 상상력에 포함돼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가짜 뉴스로 번지는 형국이다. 챗GPT에 대한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사실 몇 가지를 나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챗GPT의 쓰임새를 보다 잘 이해하여,소설 같은 상상력에 현혹되지 않고 보다 현명하게 챗GPT를 활용할 수 있는 파워유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첫째,챗GPT는 ‘사전에 훈련된’ 모델이다. 따라서 실시간으로 검색을 한다거나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에 선보인 챗GPT는 2021년도까지의 자료를 수집해 훈련된 것이다. 따라서 그 이후에 발생한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한다. 예컨대 "2023년 3월 12일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이 누구야?"라고 질문을 던져보자. 챗GPT는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현재 대한민국대통령은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입니다. 그는 2017년 5월10일 대선에서 당선되어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2022년 대선에서 재선을 선언하여 2022년 5월9일부터 20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도 놀라운데 거기다 5년 단임제인 대한민국에 존재하지도 않는 재선이라는 소설을 마구생성해 낸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전자의주가를 예측해 달라거나,경기 전망을 물어보는 등의 작업은 애초에 기대해서는 안된다. 둘째,챗GPT의 놀라운 성능은 하드웨어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투자에 의한 것으로 과거의 기술을 뛰어넘는 혁신이 아라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연산량을 키운 모델을 초거대 AI라고 부른다. 챗GPT는 인터넷에 떠도는 거의 모든 문장을 수집하여 학습했다. 이 정도의 학습을 위해서는 막대한 하드웨어의 투입과 함께 천문학적인 전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한 경쟁과 싸움은 계속 되겠지만, 이보다 더 거대한 모델이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 지능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더 사람과 비슷해진다는 착각을 불러 올 수 있지만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셋째,챗GPT가 생성한 모든 문장은 그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챗GPT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로부터 문장을 ‘생성’해 내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인터넷의 자료가 거짓인지, 참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전혀 엉뚱한 다른 문장까지 동원하여 짜깁기를 한다. 현재 수준에서는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다른 검색 도구 등을 사용해 재확인해야만 한다. 넷째,챗GPT는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에 맞는 문장을 생성’하는 하나의 기술일 뿐이다. 사람의 지능을 구현하는 기술을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라고 부른다. AGI는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며 그런 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모든 인공지능 기술은 AGI가 아니라 ANI(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다. ANI는 AGI와 달리 지능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행동을 ‘흉내’ 내는 기술이다. 챗GPT는 사람을 흉내 내는 단순한 ANI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ANI의 규모를 충분히 복잡하고 크게 구성하니 AGI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심지어 ANI가 충분히 더 복잡해지면 그게 바로 AGI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능과 생각은 아직 인류가 그 정의와 작동 기저를 모르는 미지의 세계다. 알지도 못하는 세계를 기계에 구현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합하지 않는 말이다. 앞으로 더 복잡한 ANI를 구현하려는 경쟁이 계속되더라도 그것이 AGI가 될 거라고 보는 것은 기우다. 어쨌든 빠르게 발달하는 기술이 AGI처럼 느껴지는 것은 흥미롭고 짜릿한 경험임에는 틀림 없다.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디지털금융 주임교수

[이슈&인사이트] 우크라이나 전쟁 1년과 중국의 ‘漁父之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넘어 섰다. 이 전쟁에서 양쪽 병사 수만명이 목숨을 잃는 등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났는데도 휴전이나 종전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은 채 전쟁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국제적 비난과 경제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높이고 있다. 푸틴은 지난 2월 21일 국정연설을 통해 미국과 맺은 핵무기 통제 조약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핵무기 경쟁과 같은 극도의 긴장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과거 1980년대 냉전시대가 다시 돌아온 듯하다. 중국은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행동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양 진영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중국은 서방 주도의 경제 제재에 불참하고,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과 산업 고립화 전략이 분산, 약화된 틈을 이용해 전략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발 물러나 ‘평화의 중재자’임을 자처하며 러시아와 정치,경제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수장은 기존의 친분과 신뢰를 확대하며 국제적 이슈 뿐만 아니라 국내적 통치 체제에도 상당 부분 동일한 지향점을 추구했기 때문에 미국과의 대결을 위해 상대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상호 인식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안보적 완충지를 확보하고, 중국은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을 늘려 러시아의 대중 경제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와 함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지배력을 넓히는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었다. 실제로 중국은 올해 국방예산을 1조 5537조 위안(약 293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7.2%나 늘리며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할 방법을 하루빨리 찾지 못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과 러시아의 유착을 더 더 강화시킬 것이다. 이렇게되면 중러 양국이 군사안보는 물론이고 에너지 및 경제 발전,더 나아가 탈 달러화에 이르기까지 전략적 협력 파트너 관계가 견고해져 반미 패권주의를 더욱 강화하게 할 것이다.한국은 미국의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를 기회로 활용하는 중국의 숨은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전략적인 행보를 취해야 한다. 국제 질서의 대 격변기에서 한국은 강대국간 힘의 충돌이 한반도에 번지지 않도록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외교 전략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해야할 것이다. 강대국들과의 적대적 관계 형성이나 협력 단절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 강대국과 외교적 협력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강대국의 힘이 한반도에서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서 샤오미 등 중국 브랜드들이 삼성과 아이폰 등 기존 판매 상위 제품들의 자리를 빼앗고 시장을 장악했다고 한다.우방이든, 적이든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국은 미국 관계와 별개로 중국과도 치밀한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완전한 승리는 어렵다. 설사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통신,항만,도로 등 대부분의 인프라가 붕괴된 만큼 경제 전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뼈아픈 한국전쟁은 우크라이나에게 거울이고,우크라이나 상황은 우리의 거울이다. 전 세계가 열광했던 한국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의 명대사가 떠 오른다. "제발 그만해,이러다가는 다죽어…." 전쟁 당사자들은 중재자를 찾아 의사소통을 확대하고 외교적 노력으로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빠른 협상만이 더 이상의 재앙과 파멸을 막는 길이다.박세원 S&P글로벌 한국지사 상무

[이슈&인사이트] 에너지 요금정책과 정치경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에 평균 기온마저 평년을 크게 밑돌며 에너지 소비량이 급증한 가운데 전기, 가스, 열 등 에너지 요금에 택시, 지하철과 버스요금까지 그동안 억눌렸던 공공요금 인상의 봇물이 터졌다. 지속된 인상 요인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꽁꽁 묶어두었던 공공요금이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맞물려 임계점을 넘어 일시에 터져버린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에너지 요금 인상이 이루어지자 갑자기 두 배 가까운 청구서를 받아 든 소비자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시장가격을 반영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말이다.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는 에너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 지원금을 줌으로써 부담을 완화해 주고 있다. 서민들에게 지원이 반갑기는 하지만 우왕좌왕하는 땜질식 정책은 자칫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차제에 에너지 관련 요금정책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함께 숙고해보자. 세계적 정치학자인 S. Krasner는 Defending National Interest(1978)에서 19세기 후반부터 100여 년에 걸친 미국의 에너지를 비롯한 원자재 획득 관련 정책을 분석한 결과, 고위 정책책임자들이 정의한 ‘국익’의 관점에서 정권교체와 관계 없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 왔음을 밝혀냈다. 이처럼 에너지정책은 가치나 이념이 아니라 무엇이 장기적 국가이익이냐의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우리와 같이 부존자원이 거의 없으면서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제조업 기반의 나라는 더더욱 그러하다. 에너지의 획득이나 생산비용 절감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금정책은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정부의 개입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필자는 십 수 년 전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는 어느 개도국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 나라는 정부청사에도 시도 때도 없이 정전이 일어나는데 그 빈도가 하루에도 대여섯 번이나 되었다. 관계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전기공급 부족 때문이란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나다 보니 어떤 지역에는 가로등을 비롯해 가정집에 대낮인 데도 전깃불이 켜져 있었다. 함께 다니던 공무원에게 물으니 그곳은 서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40%에 달하는 저소득층에게는 전기요금을 면제해 주기 때문이란다. 선거 때마다 표를 얻으려 에너지 요금 감면을 약속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부자들이 사는 동네와 건물들에도 항상 전기가 켜져 있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부자들에게는 전기요금 부담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전기사용량에 따라 누진제를 적용하면 절약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더니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서 전기요금 제도를 누진제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전기공급량을 아무리 늘려도 항상 전기는 모자랄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전기공급의 부족이 아니라 요금제도에 있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극단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요금제도는 소비행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장원리를 벗어난 국가개입은 매우 위험하다. 선거 때마다 통신요금 인하를 약속하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요금 인하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정치적 이유로 요금 인상 요인을 시장가격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소비량은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결국 작금의 사례에서 보듯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시점에 반영하려면 그만큼 저항이 크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또다시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세금을 통해 지원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곧 사용자가 아닌 국민이 부담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사용자는 여전히 에너지 요금이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요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싼 것은 이 때문이다. 요금정책의 미래가 위 사례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디지털 전환의 가치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도입은 우리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산업의 고도화에 중점을 두던 시기에는 효율적인 생산방법을 연구하고 개선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아날로그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디지털로 기술로 연결하고 이를 활용하는 디지털 전환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가 출현하게 되었으며,이는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기업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지만 과도하게 수집된 개인정보의 활용 문제와 디지털 격차 확대 등의 부작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한,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나 집단이 이를 활용하면서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발생하고 이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존재하는데 이는 디지털 전환이 사회 구조적인 변화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은 경제·사회 발전 및 생활의 편의성을 향상시키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자칫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양면성이 존재함을 인지해야 한다. 즉,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발생되는 세대 및 계층간의 정보격차 그리고 기업들의 소비자 기만 행위와 같은 부작용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요구되는 것이다. 최근 사회의 프로세스가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활용 격차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디지털 활용 능력 및 디지털 기기 접근성에 불편을 느끼는 계층의 소외감을 야기시키며 사회적 불이익과 불평등을 초래해 오히려 디지털 기반의 경제성장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대간 계층간의 디지털 활용 역량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디지털 전환에 익숙해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 특성을 반영하여 조작하기 쉬우며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디자인 해야 한다. 즉, 기술 중심의 프로세스 설계가 아닌 아날로그 프로세스에 디지털 기술을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디지털 전환이 계속되면 계층간 격차가 커지고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디지털 격차에 따른 소외계층을 줄이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초석이며 디지털 전환의 주요 성공요인이 될 것이다. 또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업들은 빠르고 간편하게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의 확대로 인해 소비자들은 물건구입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들어가는 정보탐색 비용을 낮추고 편리함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소비자들에게 가치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의 비대칭 독점과 같은 문제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서비스 플랫폼의 소비자 기만행위도 발생한다. 일부 플랫폼 기업은 기업의 비즈니스에 유리한 정보만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또 서비스 가입의 구독 해지 및 거래 취소 절차를 찾기 복잡하게 하는 이른바 다크패턴(Dark Pattern)과 같은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친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유용한 도구다. 따라서 앞으로도 디지털 전환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것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편익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디지털 전환이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기회가 되고 유용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 중심적 사고가 요구된다. 즉, 디지털 기술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그들과 소비자 모두의 이익을 고려해 진정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서비스 모델을 운영하고, 그들의 개인정보와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기업의 노력이 없다면 소비자들은 디지털 전환으로부터 이탈할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진정한 디지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적인 서비스와 제품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 이러한 디지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소비자 중심의 사고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소비자의 권익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디지털 전환의 진정한 가치를 생각할 시간이 왔다.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북극에 대한 한국의 역할은?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많은 국가들이 북극지역의 지하자원 개발의 잠재력과 경제적 이익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북극에 인접한 북미, 러시아, 유럽의 국가 등에서 더 적극적이다. 이 국가들은 여러 논제에 대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별도의 정책이나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때로는 이것이 충돌하면서 국제적 갈등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07년 러시아는 북극점 아래 북극해의 바닷 속 깊은 산맥인 ‘로모노소프’ 해령(海嶺)에 자국의 깃발을 꽂고 북극점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인접 국가들은 이를 계기로 영유권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군사적 충돌 가능성과 안보 위기로 이어졌다. 오랫 동안 러시아 및 구 소련의 위협에 대응해온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최근 이런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압박감과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북극지역의 천연자원은 충분한 매력을 준다. 러시아는 야말반도 지역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해 유럽과 중국으로 에너지를 수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한국도 가스운송선의 건조 등 이 에너지 운송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기후변화로 북극을 관통하는 북극항로까지 열리면서 북극 개발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북극지역이 가진 미래 가능성은 국가간 분쟁과 충돌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북극지역은 경제적 가치, 정치적 이익, 군사적 경쟁과 같은 국제사의 문제들이 마구 뒤엉킨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들을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북극이사회’를 설립했다. 북극이사회는 북극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평화롭게 이야기하고 해결점을 찾으려는 북극인접 국가들의 ‘정부간 협의체’이다. 주로 기후변화 문제와 오염원의 북극권 이동, 북극해의 변화, 북극지역 원주민의 보호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정부 대표와 전문가들이 고민과 논의를 한다. 이를 통해 해법을 찾고 문제해결을 위한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이 바로 ‘조약’ 또는 ‘국제법’이다. 그러나 북극이사회는 그 자체로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국가들이 조약을 체결하도록 논의를 끌어내고 협상을 수월하게 하는 무대일 뿐이라는 한계가 있다, 북극지역에 관한 국제법 활용은 꾸준히 확산돼 왔다. 북극점과 노르웨이 본토 사이에 위치한 ‘스발바르제도’에 관한 영유권 문제를 처리하려고 만들어진 ‘스발바르 조약’을 살펴보자. 이 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과 러시아, 노르웨이와 영국 등 북미와 유럽의 몇 몇 국가들만 서명했다. 하지만 현재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이 조약에 서명하며 조약이 명시한 의무를 받아들이고 동시에 세계의 많은 국가가 평화롭게 스발바르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비교적 최근에 러시아와 노르웨이가 체결한 ‘바렌츠해 및 북극해에서의 해양경계 획정 및 협력에 관한 협정’은 북극지역의 영유권 갈등을 조약으로 해결한 최근 사례이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의 법들이 서로 통일되지 못하고 충돌하며 새로운 갈등을 낳기도 했다. 북극지역은 오랫동안 이해관계가 교차하며 분쟁을 낳았던 무대다. 한국도 국제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북극지역에 관한 복잡한 이슈들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국제사회에서 북극지역에 관한 적극적인 역할을 찾고 실천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북극항로를 비롯한 이 지역의 활용에 관심이 많은 한국은 다양한 정책들을 실천해왔으며, 최근에는 ‘극지활동진흥법’을 제정해 지역에서 한국이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정부의 기본계획 마련 등을 명시했다. 북극이 가진 매력 뒤에는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또 다른 과제들이 숨겨져 있다. 북극이사회의 공식 옵저버 지위를 가진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책임도 가진다. ‘국내법의 역외적용’과 같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극지활동진흥법’과 같은 국내법과 정책을 바탕으로 정부와 국민들이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단순히 국가적 이익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다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이 되기 위해서 이러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돼야 한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법학박사 EU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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