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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축구산업으로 본 ‘글로벌 밸류체인’ 중요성

축구 팬들에게 최근 잇따라 희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두 번의 멋진 헤딩골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조규성 선수가 유 럽 리그 진출에 성공했고, 이강인과 김민재 선수가 엄청난 몸값으로 유럽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이적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남의 나라 선수일로만 여겨지던 이야기들이 한국 선수들에게도 현실이 됐다는 사실에 축구 팬의 입장에서 놀랍기도 하고 가슴 뿌듯하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을 국제사회와 한국의 경제, 그리고 글로벌 밸류체인 개념에 적용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스페인의 발렌시아 구단은 브라질 선수 영입을 위해 이강인 선수를 급하게 다른 구단으로 이적시키려했다. 이 구단은 이강인을 영입하고자 하지만 이적료가 부담스러운 마요르카 구단에서 당장 현금으로 이적료를 받는 대신, 이강인이 마요르카에서 다른 구단으로 이적한다면 해당 이적료의 10%를 받겠다는 ‘셀온’(Sell-on) 조건을 제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발렌시아가 이강인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면서 마요르카는 이 조건을 고민하지도 않고 선수를 이적료 없이 받아들였다. 최근 프랑스의 파리생제르망은 이강인을 영입하면서 마요르카에 이적료만 2200만 유로를 지급했다. 애초에 발렌시아가 마요르카와 셀온 조건에 합의했더라면 그들도 큰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민재 선수는 중국과 터키 리그를 거쳐 이탈리아 리그 나폴리에 입단한 첫해에 팀에 33년만의 우승을 안기고 최근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적할 당시 600만 달러의 이적료를 발생시킨 김민재는 이후의 이적으로 꾸준히 원래 소속인 전북 구단에 이익을 제공하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연대기여금’ 규정에 따르면 해당 선수를 영입하는 구단이 이적료 일부를 선수 육성에 참여한 학교와 구단에 배분해야 한다. 김민재가 처음 프로선수로 뛰었던 전북 구단은 이 규정으로 상당한 수입을 꾸준히 얻는 셈이다. 축구 산업은 선수 발굴과 이적, 국가와 지역별 리그, 중계방송과 광고, 축구용품과 유니폼 등의 생산과 판매 등으로 운영된다. 전 세계에 이윤이 누적되고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복잡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과거에는 남미 출신의 선수들이 유럽에서 활약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많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선수들이 유럽 무대를 누비고 있다. 중동 국가와 같은 국제축구계의 ‘큰 손’ 들도 유럽 최고 구단을 인수하거나 자국 리그의 활성화를 위해 엄청난 이적료를 앞세워 유명 선수 유치에 나서고 있다. 세계적인 리그는 실시간으로 중계방송되는데, 이 네트워크의 일부로 한국 사회도 생산자이며 동시에 소비자다. 앞에서 언급된 사례들과 셀온 조건 등은 한국 축구와 스포츠 산업에 수익을 창출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이런 수익창출의 연결고리는 축구 뿐만 아니라 ‘글로벌 밸류체인’ 차원에서 일반 경제에도 적용된다. 글로벌 밸류체인은 국제사회에서 여러 경제와 산업이 연결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국가 및 지역 간 산업의 연결성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누적시키면서 각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산업과 경제의 의존을 의미한다. 이는 제품이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자원이나 가공공정의 조합으로 이뤄지며 다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네트워크를 가진 축구 산업도 글로벌 밸류체인의 한 면이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중요한 생산 과정에 참여한 특정 산업이나 단위는 그 과정의 중요도 등에 따라 이윤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어느 산업이 제품 관련 글로벌 밸류체인 전체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을 담당한다면, 그 부분에서 얻는 경제적 가치가 클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산업들이 국제적 생산의 어느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하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연계된 과정이나 산업에서 셀온 조건과 같은 융통성 있는 합의를 주도해 도출해낼 협상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셀온 조건을 만들고 관철시키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며 그것으로 이윤을 누적시키는 지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U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초고령 사회, 은퇴의 재구성 필요하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찰을 통해서 내적 음성(inner voice)을 따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소명(召命)의식’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일을 하든 ‘평범한 일상과 일터에서 자신이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는 것’으로 해석되며 심리학과 경영학에서도 주목하는 영역이다. 일에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크다. 소명의식을 가진 학생은 학업에 대한 몰입도와 진로선택에 대한 효능감과 성숙도가 높고, 직장인은 담당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으며 직무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내외 기업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같은 조직, 같은 업무 안에서 구성원간 소명의식의 차이는 뚜렷하고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공통적인 결과가 많다. 통계학적으로 한 국가의 평균수명이 연장됐다는 사실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개인적 노화와 더불어 초고령사회를 향유할 이상적 조건으로 건강과 재정, 일과 대인관계와 사회참여 등을 손꼽는다.민수기 8장 23~25절 부분을 제외하면, 성경 속에 은퇴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적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이는 비기독교 문화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은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공식적으로는 1889년 독일에서 비롯됐다고 거론한다. 하지만 인류사의 획기적 사회변화가 안정적인 문화로 정착되기도 전에 인류는 초장수시대로 진입하면서 지난 100여년 간 지속돼 ‘은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고령자의 은퇴는 이제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피할 수 없는 강렬한 충격이 됐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공식적 은퇴를 겪은 노인에게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재능과 기질, 삶의 경험에 비추어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는 제2, 제3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개인적 소명의식을 재평가할 기회이기에 유익한 변화임은 틀림없다. 은퇴 후에도 할 일(노동)이 있다. 여기서 ‘노동’이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학자들은 정의한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의 현실에서 은퇴 고령자의 급격한 증가는 국가와 젊은층에게는 잊고싶은 악몽이다. 역설적이지만 서구식 은퇴와 연금제도모델을 이제 막 수용한 우리나라는 이를 정착시키기도 못한 상황에서 다시 서구발 ‘재구성된 은퇴’ 모델 도입을 고려해야 할 처지다. 산업화의 중추적 역군으로 활약한 액티브 시니어 세대가 ‘은퇴·연금·100세 장수시대’라는 삼박자를 무탈하게 향유하려면 새로운 은퇴 패러다임에 적응할 준비가 필요하다.우리나라는 소명의식이나 노동, 은퇴, 여가에 대해 세계 선도적 연구활동이 미약하고 문화적,제도적 기반도 부족한 가운데 산업화를 마치자마자 급격한 저출산·초고령 시대로 진입했다. 고령의 은퇴자들이 고백하기를 "이제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부디 ‘잘 죽는 법’을 배우고 싶다"라고 한다. 노년기에 이르러 개인적 소명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매 순간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소명을 지키기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선진사회의 노년학 학자들은 노인이 갖춰야 할 미덕으로절제, 겸손, 인내, 단순함, 믿음(절대자를 향한 뜨거운 반응), 소망(마지막 때를 향하는 사실을 인정·다음세대를 위한 투자· 평안한 죽음을 대비), 그리고 사랑(사람·장소·공동체를 향한 진심어린 돌봄) 등을 꼽는다. 10년 뒤인 2035년 우리나라에서 노인이 1600만명으로 비율이 30%를 넘는다. 은퇴고령층을 위한 부양비,연금,의료비 폭증에 대한 대안은 과연 적절한지 우려된다. 국가생산력 감소,소득세 인상에 따른 가처분 소득 감소,부동산 잠재가치 폭락,기업의 해외이전,젊은 인재의 해외이민을 우려하는 경고등이 켜졌다. 엄청난 변화와 충격과 세대간 갈등을 극복하려면 속히 은퇴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비해야 한다. ‘놀고 즐기는 100세 시대’는 어쩌면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방준석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이슈&인사이트] 첨단산업 리쇼어링 특단대책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2023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리쇼어링)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소득세ㆍ법인세 감면 기간을 늘리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는 2년 이상 경영한 국외 사업장이 국내로 이전ㆍ복귀하면 5년간 100%, 추가 2년은 50%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앞으로는 7년간 100%, 추가 3년간 50%의 감면 혜택을 받는다. 또 사업구조를 바꿔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도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미ㆍ중 갈등 등으로 공급망 위기를 겪으면서 높은 해외의존도에 따른 문제점이 부각되고, 주요국 간에 리쇼어링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 국면에서 정부가 리쇼어링 정책에 전향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환영한다. 다만, 다른 경쟁국의 지원규모에 대비하면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평가도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기업의 유턴 실적을 보면 이런 평가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은 지속적인 유턴 제도 확대에도 불구하고 2020년 이후 2022년 3분기까지 유턴 기업 수는 고작 70개사(누적 기준·전국경제인연합회 정책자료)에 정도에 그쳤다. 일본은 2020년 5월∼2022년5월 사이에 유턴기업이 439개사에 달한다. 일본 국회는 반도체나 희귀금속 등 중요 물자 공급망 강화를 위한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법인세율을 37%에서 23%로 점차 낮추고, 리쇼어링 기업에 대해 20억달러를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리쇼어링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2010년 ‘리메이킹 아메리카’를 외쳤던 오바마 정부부터 트럼프, 바이든 대통령까지 정권이 바뀌어도 리쇼어링은 변함없이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지원법(Chips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여 생산 시설을 미국 내로 적극 유치하고 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고용 증가 등 효과도 확연하다. 미국 리쇼어링 이니셔티브(Reshoring Initiative)에 따르면 2022년 리쇼어링과 외국인직접투자에 따른 제조업 고용은 2021년 23만8739명에서 2022년 36만4904명으로 늘었다. 2010년 기점으로는 60배나 증가했다. 유럽연합(EU)은 미국 칩스법이나 IRA와 같은 직접적인 리쇼어링 지원 정책은 아니지만, 2023~2024년 EU가 추진할 정책방향의 투트랙인 그린딜ㆍ디지털 전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1월 그린딜 산업계획, 3월 핵심원자재법(연내 3자 협상타결 목표)을 발표하는 등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한 조치들을 빠르게 채택하고 있다. 한국도 2013년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2년 해외진출기업 국내복귀 동향’에 따르면 2022년 24개 유턴 기업이 1조1089억 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연간 투자액이 1조 원을 넘어서는 등 리쇼어링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실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기업에게 와닿는 파격적 유턴 지원책이 없기 때문이다. 높은 상속세ㆍ법인세 세율, 경직적인 노동시장 등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주요인이다. 각종 규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몇 가지 인센티브 확대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고작 10년 간의 세금 감면헤택 만으로 국내로 돌아올 기업이 얼마나 될까. 특히 경제안보 측면에서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은 더 확대해야 한다. 2022년 국내복귀기업 중 중견ㆍ대기업의 비중은 37.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반도체, 소재, 스마트폰 등 첨단산업 등 공급망에 민감한 기업은 6곳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더라도 ‘첨단산업’ 리쇼어링 지원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PF발 금융위기,근본 해법은 미분양 해소

최근 새마을금고에 대한 예금주들의 대규모 자금인출 사태로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비상이 걸렸다. 새마을금고에 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위기설이 퍼지자 불안한 예금주들이 자금 인출에 나서면서 두 달 만에 7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독권한이 없는 금융위원장까지 진화에 나서 뱅크 런(Bank-run·한꺼번에 예금가입자들이 돈을 인출해 은행이 파산하는 현상) 길목에서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동네 은행’ 정도로 생각하는 새마을금고의 자산규모는 284조원으로 1금융권의 중앙은행을 제외하면 명실상부한 업계 1위 금융사다. 부산은행,대구은행 등 지방은행과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의 총자산을 모두 합쳐도 새마을금고 자산에 못미친다. 이런 새마을금고가 뱅크 런 위기까지 내 몰린 원인은 PF대출 부실로 연체율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2018년 말 1.35%였던 새마을금고 연체율은 지난 6월에 6.4%까지 올랐다. 부동산 PF연체율은 무려 15.5%로 치솟았다. PF대출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수익성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자금조달 방식이다. 일반적인 대출은 신용이나 담보 등 돈을 빌리는 사람의 상환능력을 보지만 PF대출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프로젝트 자체의 경제성만으로 대출을 하기 때문에 아파트의 분양 실적과 사업의 정상적인 준공은 PF대출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2022년 이전까지만 해도 부동산시장 활황에 힘입어 PF대출을 통한 금융권의 수익성 확보는 ‘땅 집고 헤엄치기’ 처럼 쉬웠다. 하지만 2022년 이후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금리인상으로 투자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끝없이 오를 줄 알았던 집값은 꺾였고 미분양은 급증했다.2021년 말 1만7710가구였던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1년 만에 6만8107가구로 3.5배나 늘었고 지난 2월에는 7만5438가구로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로 지난 5월에 6만8865가구로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정부가 ‘위험수위’라고 보는 6만2000가구 이하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미분양이 늘어난다는 것은 PF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5대 시중은행의 PF대출 잔액은 2021년 말 10조9339억원에서 지난 6월에는 16조4238억원으로 늘었다. 증권사 PF연체율은 15.88%에 달한다. 결국 금리인상으로 비롯된 집값 하락이 미분양 급증,특히 준공 후 미분양 증가와 함께 PF대출 부실로 이어지면서 부동산시장 불안이 금융시장 위기로 전이되고 있다. 정부가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규제지역을 파격적으로 푼 1·3부동산대책을 두고 ‘둔촌주공 구하기’,‘집 부자 살리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사실은 집값 살리기보다는 금융시장 살리기가 솔직한 정부의 속마음이다.새마을금고발 금융위기의 급한 불은 껐고 미분양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PF발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요즘시대는 미분양과 연결된 PF라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흔들어버릴 수도 있는 만큼 PF대출의 근본문제인 미분양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미분양 해결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미분양을 매입하는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시장에서 미분양을 소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간접적인 개입이 더 효과적이다. 수도권보다는 지방의 미분양이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만큼 분양가 할인 등 건설사 자구노력을 전제로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한시적으로 취득세·재산세·양도세 등 세제혜택을 통해 최대한 지방 미분양을 해소하는 근본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 하락세가 멈추고 반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지금이 미분양 해소를 위한 골든타임이다. 정부와 금융권, 건설사는 미분양 해소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 기상재해는 인류 모두의 책임

7월 중순 집중호우로 사망자와 실종자 등 70명에 가까운 인명피해가 났다. 예측을 넘어서는 극한호우가 인명 피해를 키웠다.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상황이 아니다. 전 세계가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갑작스런 강우가 한정된 시간에 집중되다 보니 돌발 홍수와 산사태가 상시화되는 상황이다. 집중 호우와 같은 개별 기상 현상과 기후 변화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정확히 단정 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기후 변화가 게릴라성 폭우와 같은 극한의 강우 현상의 빈도와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하는 과학적 증거가 많다. 기후 변화는 지구 표면의 대기 및 해양에서의 물의 증발→구름→강수→지표수화→다시 증발이라는 물 순환에 영향을 미친다. 온실 가스 배출 증가로 인한 지구 대기의 온난화는 폭우 발생에 기여하는 몇 가지 주요 요인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는 대기 수분 증가다. 기온이 높아지면 바다, 강, 지표면에서 물의 증발이 가속화돼 대기의 수분 양이 증가한다. 이렇게 늘어난 수분 함량은 강렬한 강우 호우의 연료가 된다. 두번째는 대기 순환 패턴의 변화다. 기후 변화는 제트 기류 및 몬순 시스템과 같은 대규모 대기 순환 패턴을 변화 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극한 강우 현상의 발달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내곤 한다. 결국 인류가 만들어낸 온실 가스의 증가와 기후변화는 매년 적지 않은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우리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가장 위기감과 좌절감을 주는 사실 중 하나는 초기에 행동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은 상태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구 온난화를 관리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탄소감축량은 급증한다. 결국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기후위기라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이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환경적 도전이다. 우리는 기후변화 대책의 시급성을 몸으로 더 느껴야 한다. 가장 빠른 산업화 국가로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기후변화를 일으킨 선진국 중에 우리나라도 포함돼 있다. 이번 여름의 극한호우와 이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야기한 기후 변화와의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책무가 있다. 이제는 상황 개선을 위해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행동은 너나 할 것 없이 정부,기업,개인 등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연구 및 대응 전략과 전술을 업데이트하고 그에 맞춰 온실 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에 높은 수준의 ESG 활동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감시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더불어 범 국가적 노력과 기업들의 ESG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개인(소비자)는 그린 컨슈머(Green Consumer)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캠페인에도 적극 나서고 선진적인 환경단체에 후원금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 해변을 걸으며 해양쓰레기를 줍고, 산악 모임에선 타인이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한편 야생동물에게 물을 주는 등 이른바 ‘플로깅’의 생활화도 필요하다. 더 적극적 활동을 위해 노벨상 후보였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행동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 육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과거의 ‘괴담’이 지금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기후변화와 기상재해는 인류 모두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다.박세원 S&P Global 상무/거시경제 및 국가리스크 한국 총괄

[이슈&인사이트] 학습의 조건

이번 여름에 필자는 국외출장 중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는데 어려움을 여러 차례 겪었다. 시애틀공항에서는 체크인과 보안검색 대기줄이 길어서 항공기를 놓친 여행객을 여럿 봤고 필자도 그 중 하나였다. 미국출장을 마치고 간 에콰도르에서는 출장단 중 2명이나 짐과 사람이 따로 도착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귀국 길에는 출발지연으로 환승을 하는 미국 공항에서 8시간이나 대기하기도 했다. 계속 이어지는 사고, 심각한 지연 등을 목격하거나 겪으면서 미국의 공항시스템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COVID 19 팬데믹 이후에 폭증한 여행객들을 공항이 잘 대처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카운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일 처리가 무척이나 더딘 모습을 보면서 공항의 하드웨어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한다기 보다는 사람들의 작업 능률이 예전 같지 못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주창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지 않더라도 반복이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복은 일처리 지각단위,이른바 ‘스키마의 청크(chunk)’ 단위를 크게 만들고, 이는 일처리 속도를 빠르게 한다. 다시 말해, 특정 자극에 반복된 노출은 한 번에 처리하는 정보의 양을 늘리고, 이는 정보처리 속도를 끌어올린다. 상황에 익숙하게 하는 반복 훈련이야말로 평소의 일처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경우에도 적응처리를 할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한다. 신입사원이 처음에는 일 처리가 미숙해서 실수도 자주 하고 느리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능숙하게 처리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공부도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예습과 복습이 공부 잘하는 비결이라고 귀에 따갑게 들어왔다. COVID 19로 촉발된 온라인 학습 환경 아래서 학습효과를 늘리기 위해 온라인 예습과 오프라인 심화학습을 결합한 플립러닝이 크게 전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든 분야에서 실제로 작업이나 지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심지어 잊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깝게는 고려시대의 청자제작 기법의 맥이 끊기며 여러 장인들이 새로 그 기법을 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고대인들이 현대 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유물과 유적들을 남긴 것을 보면서 미스테리로 여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고대의 지식이 제대로 전수 됐다면 인류의 기술과 지식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됐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많은 분야에서 지식은 왜 후대에 제대로 전수되지 않는 걸까. 기록을 자세히 남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대개 정보를 지식으로 잘못 이해하면서 오해가 발생한다. 정보는 의미가 있는 단편적인 자료이며, 지식은 이런 정보를 체계화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한마디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한다’는 우리 속담에서 구슬은 정보이고, 꿰는 것은 지식이다. 지식은 크게 사전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지식을 기술할 때 대부분 사전적 지식으로 기록을 남기기에 실제로 적용을 하려면 절차를 몰라서 아예 어떻게 시작할지를 모르거나 숱한 시행착오를 하기 때문에 자세한 기록만으로는 실행하는데 부족하다. 더군다나 절차적 지식이 자세히 기록돼 있더라도, 문자로 남기거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적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식전수는 더욱 어렵게 마련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암묵적 지식이 중요한 사업에는 도제제도가 성행했다. 그러나 도제제도는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현대의 대량생산 체제로 오면서 많은 산업에서 계량화, 표준화를 통해 지식전수의 대량화를 추진했고 사전적 지식, 절차적 지식을 자세히 담아 이른바 매뉴얼화, 시나리오화를 확립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암묵적 지식 또는 내재적 지식을 외재적으로 표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너무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항공분야에서는 고가의 시뮬레이션 비행 연습장치로 조종사들을 훈련시킨다. 항공분야 외에도 모든 분야에서 학습한 사전적 및 절차적 지식을 직접 체험을 하면서 암묵적 지식을 내재화하고 이 토대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강조되는 창의성도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복훈련과 더불어 체험학습을 통해 탄탄한 기초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이슈&인사이트]

올해 6월 1일 대법원은 신 개념 운송 플랫폼 ‘타다’의 전 경영진에 대해 무죄를 최종 선고했다. 2019년 2월 택시업계가 타다 경영진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면서 시작된 소송이 4년 만에 끝이 났다. 타다는 사업을 시작할 당시 ‘11~15인승 승합차 기사를 알선하는 운송서비스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법령해석에 따라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시작했다. 필자는 업계 지인으로부터 사업자가 3차례에 걸쳐 정부의 법령해석을 받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 그 때마다 사업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서비스가 시작되자 고객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격은 비싸지만 기존 택시와는 다른 차별적인 서비스 제공과 이용의 편의성이 부각되며 이용하는 승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이에 위기를 느낀 기존 택시업계는 강력 반발했다. 여러 명의 택시기사가 분신하는 등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 결국 정치권은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금지하는 ‘타다 금지법’을 만들었다.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정치권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일견 수긍이 간다. 하지만 혁신의 싹을 잘라버렸다는 부정적 평가는 피할 수 없게됐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타다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 할 수 있도록 제도권으로 편입했지만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과거 영국에서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실직위기에 처한 마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붉은 깃발법이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환생한 느낌이다. 신 산업이 나타나면서 사회적인 갈등을 일으킨 사례는 많다. 우버, 에어비엔비, 로톡, 강남언니 등도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 산업 출현이 어려운 것은 비단 기존 사업자의 반발 뿐만이 아니다. 규제로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격진료이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원격진료가 허용되면서 대면진료가 어려운 환자들이 큰 혜택을 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20년 2월 정부가 원격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할 당시 2만4727명에 불과하던 원격 진료 환자 수는 1년 뒤인 2021년 1월 159만2651명으로 늘었고 2022년 1월 기준으로는 누적 352만 3451명에 이른다. 덩달아 굿닥, Dr. Call 등 원격진료 플랫폼 이용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원격진료가 전면 허용되면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자 원격진료는 다시 불법이 됐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운영하며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제도화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많은 신기술 제품들이 인증절차가 없다는 이유로 또는 기존 제품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증을 받지 못해 공공조달에 참여할 수 없거나 제품의 출시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령의 개정도 필요하지만 담당 공무원의 적극적인 규제개혁 의지 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공무원의 규제개혁을 장려하기 위해 ‘적극행정’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적극행정은 ‘공무원이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규제개혁 추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규정위반시 책임을 면해주고 성과를 낸 공무원에 대해서는 포상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적극행정 도입에도 여전히 보수적인 공직사회의 분위기상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공무원들조차 적극행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특히 신 산업을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기술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기존 사업자의 반발, 규제, 행정절차 등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은 요원해진다. 정부는 기업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킬러규제 개선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시의적절하고 환영할 만한 조치다. 다만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이상호칼럼]바그너 반란,최대 피해자는 러시아 국민

러시아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킨 지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 동기나 현 상황 등 분명하게 밝혀진 게 없다. 바그너 반란은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하루 만에 종료되고 반란 수괴인 프리고진이 망명하며 사태가 정리된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후 프리고진이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과 면담했고, 바그너 그룹은 해체되지 않고 벨라루스 주둔지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배신자를 끝까지 추적해 철저하게 처단하는 러시아의 전통과 달리 이번 반란을 대하는 푸틴의 대응이 예상과 다르게 온건하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러시아 군부의 견제에 불만을 품고 벌인 권력투쟁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바그너는 큰 희생을 감수하고 바흐무트 등 우크라이나 전쟁 격전지에서 전공을 세웠으나 이런 성공에 위기를 느낀 군부가 바그너를 정규군에 편입시켜 무력화하려고 시도했고,이에 프리고진이 격분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프리고진은 야심가다. 그는 범죄자 출신의 사회 낙오자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푸틴 핵심 세력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푸틴 승인 아래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을 조직했다. 바그너는 아프리카와 중동 여러 나라에 개입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시리아 전쟁에 참전해 전공을 세우는 등 많은 활약을 했으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큰 정치적 야심을 가진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자 자신이 앞으로 러시아 정계를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푸틴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꿈을 가졌을 수 있다. 러시아 정규군도 상대하기 어려운 대규모 정예 용병 집단을 가진 프리고진이 군부의 견제 때문에 자신의 야망이 좌절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그너가 없다면 프리고진의 존재 가치와 정치적 야심을 이루기 위한 기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러시아 내 지지 세력을 규합해 본인을 견제하는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부 핵심 세력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실행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친다. 예상보다 일이 커지자 프리고진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상황을 수습하려했지만 반란의 결과는 실패였다. 이번 사태로 러시아의 취약점이 국제사회에 노출됐고 푸틴의 권위는 손상됐다. 일각에서 이번 반란이 푸틴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지만, 푸틴에게 충성하는 군부에 대한 도전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과 다름없다. 프리고진은 쇼이구 등 군부 지도자를 제거하면 푸틴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 독재 권력자는 일인자인 자신에 도전할 수 있는 실력자의 부상을 막고 부하들의 충성 경쟁을 통한 상호 견제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는 러시아만 아니라 중국, 북한 등 독재 국가의 특징이다. 프리고진이 인기도 있고 전공도 세웠지만 러시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푸틴이 프리고진을 제2인자로 인정해 본인의 위상과 권위를 스스로 흔드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푸틴은 손상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확대해 러시아 힘 빼기를 가속할 것이다. 이에 따라 조기 종전 가능성이 희박해졌고 러시아가 승전을 위해 핵무기 사용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은 커졌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푸틴은 바그너 그룹을 존속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보다 바그너는 실전 경험을 충분히 갖춘 정예 병력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황에 따라서는 바그너 그룹이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 제2의 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이 경우 병력과 장비 부족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를 크게 압박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러시아 군부나 다른 정치세력이 권력과 영향력을 강화해 푸틴에 도전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여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프리고진 등 이번 사태 주동자들의 운명은 비관적이다. 아직 활용 가치와 사태 수습 때문에 방치하고 있지만 푸틴은 본인의 권위에 도전한 이들을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그너 반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러시아 국민이다. 전쟁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경제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 통제가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아직 수습 단계여서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푸틴이 권위를 회복하고 철권통치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서서히 몰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권위주의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지만 약점이 노출된 독재 권력은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교수

[이슈&인사이트]1톤 전기트럭의 힘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1톤 트럭의 위력이 대단하다. 1톤 전기트럭은 출시된 지 약 2년 만에 국내 누적 판매대수가 10만대를 넘었다. 전기차 중 누적판매 대수가 10만대를 넘은 것은 1톤 전기트럭이 유일하다. 최근에는 한 달만에 단일 차종으로 5000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꼽혔다. 국내 1톤 전기트럭 시장은 현대차의 ‘포토2’와 기아의 ‘봉고3’가 주도하는 가운데 최근 중국 BYD의 ‘T4K’가 가세했다. 1톤 전기차는 높은 가성비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판매 신기록 행진 중이다. 특히 보조금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조금이 차값의 50%에 달해 2000만원이며 차를 장만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메리트다. 정부 보조금이 일반 승용차의 2배에 달한다. 여기에 엔진오일 교체가 필요없고 충전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관리 및 운영비가 덜 드는 데다 많은 짐을 싣고도 가속력이 좋고 언덕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 환경오염 저감은 덤이다. 1톤 전기 트럭은 이런 장점과 함께 많은 문제점과 개선과제도 안고 있다. 제일 큰 한계점으로는 주행거리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짐을 싣지않은 빈차로 완충시 주행거리가 200㎞이고,짐을 실으면 이 보다 훨씬 줄어든다. 겨울철엔 130㎞까지 떨어진다. 그래서 ‘무늬만 트럭’이라는 비아냥도 듣는다. 소상공인의 경우 자동차 사용시간이 길어 하루에 주행거리가 150㎞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상태로 하루에 두 번 이상 충전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1톤 전기트럭이 이용하는 공공용 급속충전기마저 턱없이 부족해 제때 충전이 어렵다는 점이다. 더구나 급속충전기라고 하지만 충전 속도도 느리다. 이 때문에 고속도로 등의 휴게소 충전기를 대부분 1톤 전기트럭이 차지해 일반 전기차의 충전이 방해받는 실정이다. 일반 승용차의 2배에 달하는 1톤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도 형평성 논란을 빚고 있다. 1톤 전기차에 대한 높은 보조금 지급의 취지가 기존의 노후 디젤트럭을 대체하자는 것인 데 기존 트럭은 그대로 둔 채 전기트럭으로 한 대 더 구매함으로써 환경오염 저감 효과가 반감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래서 국회 정책토론회 등에서 이런 지적이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언론 등에서도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4만대 이상의 1톤 전기트럭이 판매될 전망이어서 현장에서는 문제점 개선에 대한 압력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환경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상용차 보조금 제도 등 개선 용역도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개선의 방향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1톤 전기트럭 보급활성화는 한국전기차협회장을 맡고 있는 필자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 온 사안이다. 이 차종은 이른바 생계형 차종으로 대부분이 디젤차인 데다 노후화돼 사업자들의 수익개선이나 환경개선 측면에서 큰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기존 디젤 차량을 폐차시키는 인센티브제와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 등이 향상돼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그러나 이런 전제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시행되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보조금은 다른 차종과의 형평성을 맞추고 노후 디젤트럭에 대한 폐차 인센티브를 통해 실질적인 환경 개선효과를 유도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제작사 차원에서 잘 팔린다고 안주하지 말고 주행거리 연장 등 차종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보조금 축소와 노후 디젤차 폐차 등 전제조건이 도입되면 이 차종은 판매가 급감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조사 입장에서 주행거리를 300㎞대로 늘리고 급속충전이 가능하도록 충전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얼마 전 제작사에서 발표한 충전 속도는 그대로 두고 주행거리만 10~20Km 늘리겠다는 개선방향은 ‘흉내내기’에 불과하다. 정부차원에서는 기능이 떨어지는 1톤 전기트럭을 판매하는 제작사와 무리하게 인센티브를 늘리면서까지 판매를 촉진시키는 문제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순살자이

최근 신축아파트에 대한 부실시공 논란이 거세다. 설계도면에서 규정된 철근을 빼고 시공했다는 ‘순살자이’, 폭우 속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했다는 ‘물갈비자이’, 비로 누수와 침수됐다는 ‘침수자이’와 ‘흐르지오’, 철근 다발이 외벽을 뚫고 나왔다는 ‘통뼈캐슬’ 등 웃픈 신조어가 난무한다. 이들 아파트는 모두 신축 중이거나 지어진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신축아파트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특히 ‘순살자이’의 사례는 시공과정에서 부실이 드러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 상태로 입주가 진행된 후에 이런 사태가 빚어졌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2000년 이후 최근 몇 년 새 아파트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고환율과 고금리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발 원자재가격이 크게 뛰면서다. 특히 시멘트와 철근가격이 종전보다 50%이상 오르자 시공사들은 이미 계약한 공사단가로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급기야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시행사(조합 등)와의 분쟁이 분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시공사들은 공사원가를 낮추는 방법으로 손해를 보전하고자 철근을 빼돌리거나,콘크리트를 묽게 타설한 것이 이 같은 부실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얘기 마저 나돈다. 지난해 1월 시공 중이던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후 국토교통부는 공공공사에만 적용해 온 표준시방서의 민간공사까지 확대, 감리의 공사중지 명령 의무화로 감리 내실화, 국토안전관리원에 대해 현장점검과 지도권한 부여, 부실시공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 대응 등을 골자로 한 부실시공 근절방안을 내놨다. 그런데도 이를 비웃듯이 건설현장에서는 순살자이, 물갈비자이, 통뼈캐슬 등 부실시공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더구나 국토부가 GS건설의 시공 사업장 8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조사완료된 14곳 중 12곳에서 모두 48건의 안전문제 또는 시공불량이 지적되며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삼풍백화점,성수대교에 이어 광주 화정 아이파크 등의 붕괴사고로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책임자의 처벌과 반성, 부실시공 근절방안 발표를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똑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시공사,감리,주무관청 등의 현장관리 소홀이 1차적인 책임이지만 필자는 이 보다 더 근본적으로 낙후된 시공자 선정 및 수주 방식과 건설현장에 뿌리 박힌 비정상적인 하도급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시공사는 공사를 따내기 위해 무조건 낮은 가격에 더 나은 조건으로 조합원들을 현혹하며 출혈수주에 나서고 공사를 따낸 뒤에는 낮은 단가의 공사대금을 맞추고 이익까지 만들어내기 위해 하도급 가격을 후려친다. 이렇게 해서 공사를 받은 하수급업체는 인건비를 낮추거나 철근 등 자재를 빼먹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공사를 하다보니 부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니 제대로 된 공사가 이뤄질 수 없고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당국은 더 일이 커지기 전에 근본적인 ‘약방문’을 내야 한다. 바로 제값주고 제대로 공사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현재의 부실시공 근본문제가 시공사 선정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시공사 선정관행을 확 뜯어고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간시행 공동주택도 정부가 표준공사비를 공시하고 적정공금액으로 입찰을 유도할 것을 제안한다. 이 표준공사비를 기준으로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한 시공사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보증과 향후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서류 및 검토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해 적정한 단가로 입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하도급을 금지해 시공사가 책임시공을 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거나 부득이한 사유만으로 한정해 하도급을 허용하는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시공과정에서의 감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시공사의 법 위반과 부실시공 등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자이아파트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최근 3년 전부터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신축 아파트에 대한 부실시공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당국은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을 되새길 시점이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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