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데스크 칼럼] 인공지능(AI) 이중성과 AI 민주주의

아마 올해 초에 있었던 일로 기억된다. 몇몇 지인들과 점심 자리에서 우연히 인공지능(AI) 관련 대화가 오갔다. 이야기의 주제는 생성형 AI '챗GPT'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생활 어느 영역까지 파고들 것인가를 희망과 우려의 시각으로 추측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이날 대화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AI를 사법부에 도입할 경우, 판사와 AI의 역할 규정을 둘러싼 이견이었다. 즉, AI를 주심 재판관으로 맡기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이날 참석자 4명 가운데 3명은 인간 판사의 법과 관습에 입각한 '인간다운 판결'을 지지했다. 반면에 나머지 1명은 인간 판사가 재판 관련 데이터를 지원하는 보조역할을 충실히 하면 AI 판사가 불편부당한 법리 해석으로 '법대로 판결'을 낼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우리 법조계에 'AI 판사 등장'이 현실화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AI 기술 또는 산업은 국가와 개인, 인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AI를 보는 인간의 시선은 희망과 우려가 혼재한다. 당장 제약바이오산업에서 난치병 치료에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치료의 난제(결점)들을 찾아내고 '불치 극복'의 새로운 기전 개발 소식이 들리면서 만성적 병마에 신음하는 환자뿐 아니라 무병장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AI 기술을 탑재한 자율주행차·항공·선박·드론 등 무인 모빌리티의 급성장, AI 로봇을 이용한 재난지역 구조작업, 심지어 현재의 심각한 이상기후 문제까지 AI가 일정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와 '착한 AI 만능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AI 개발자와 전문가 대부분은 '착한 AI' 효과가 가져다 줄 인류 유토피아를 선전하고 있다. 반대로 AI 기술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에서 무기체계에 적용돼 인간 살상을 거들고 있으며, 국가나 특정집단이 국민이나 구성원의 개인정보를 독점해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나쁜 AI'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착한 AI든, 나쁜 AI든 AI 기술이 지닌 이중성 때문에 컴퓨터 공학자와 정치사회 전문가들은 AI 개발과 사용에 인간윤리 규칙 적용, 활용 절차와 결과 책임을 규정한 법적 장치 등을 제도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1대 국회에서 '인공지능 기본법'이 추진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그러나, 지난 5월 말 22대 국회에 들어서자마자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을 가장 먼저 대표발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8월 28일까지 여야 의원 합쳐 모두 8건의 AI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내용들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으로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해 3년, 5년 단위로 기본계획 수립·운영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또는 민관기구로 인공지능윤리위원회, 국가인공지능센터, 인공지능협회 등을 실무기구로 두자는 내용들이다. '착한 AI'를 장려·지원하고, '나쁜 AI'를 차단·제재하겠다는 입법 취지와 방향도 비슷하다. '사피엔스' 저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예루살렘히브리대학)는 AI사회가 데이터 권력에 기반한 '디지털 제국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정부나 특정 집단, 기업에 데이터 권력 독점을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치권 차원에서 인공지능법을 서둘러 제정하려 움직임을 바람직하다. 다만, 선진국에 뒤처진 국내 AI 기술을 앞당기려는 조바심 때문에 인공지능법을 공급자(개발기업)나 규제자(정부) 중심 위주로 밀어부쳐서는 안된다. 착한 AI의 최종 수혜자, 나쁜 AI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일반국민일 것이다. AI기술과 데이터 사용 정보를 일반국민과 공유하고, 효과를 분점하는 'AI 민주주의'가 나쁜 AI의 디스토피아 미래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 하라리 교수의 충고를 인공지능법을 준비하는 우리 정치권이 되새겨 보길 바란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기자의 눈]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 맨 정부

최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값이 멈출 줄 모르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넷째 주(26일 기준)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주보다 0.26% 오르며 23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앞서 지난 7월 초 정부는 가계부채를 줄이고 수도권 집값 상승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보다 강력한 대출규제인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그 계획을 이달로 미루면서 국민들에게 집값을 잡을 의지가 없다는 오해의 빌미를 제공했다. 대출규제에는 주택시세 대비 대출한도를 정하는 LTV(담보대출 인정비율)와 연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로 대출을 규제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등이 있다. DSR은 대출을 실행하는 주택의 원리금(원금+이자)과 나머지 대출의 이자만으로 계산하는 DTI에 비해 더욱 강화된 규제로, 모든 대출을 원리금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DTI 대비 대출한도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DSR을 한 번 더 압박하는 것이 스트레스 DSR이다. 가계부채 증가 및 수도권 집값 상승세를 막기 위한 수단이라면 2단계 스트레스 DSR 보다 더한 규제도 타당하다. 하지만 어차피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에 이러한 규제를 2개월 가량 미룬 점은 국민들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일각에서는 이달부터 줄어드는 대출한도를 의식한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수도권 아파트시장을 자극해 집값 상승에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 정책은 절대 시장 수요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 만약 강한 신호로 분위기를 뒤집고 싶다면 시장의 예상을 뛰어 넘는 빠르고 강한 정책을 내야한다. 현재 시장에는 확실한 공급책과 불안심리를 잠재울 수 있는 강경한 대책이 필요하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책이 오히려 구매욕구를 자극해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할지, 전고점에 도달한 집값이 단기급등에 부담을 느껴 한풀 꺾일지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또 다시 모호한 정책 스탠스를 취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부터 시장에선 “정부가 집 값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이게 결국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세의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 확정된 공급 대책을 조기에 확정, 실행해 공급 측면에서의 불안 요인을 확실히 잠재워야 한다. 또 하반기 예상되는 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도 명확한 신호를 보내 빚을 내 주택을 구매하는 '영끌족'을 최소화해야 한다. 김다니엘 기자 daniel1115@ekn.kr

[박원주의 내년 예산 분석] 2025 정부 예산안에 대한 기대와 우려

정부 경제운용계획이나 다양한 정책발표가 국민 앞에 희망과 개혁을 약속하는 '얼굴'이라고 한다면 다음해 예산안은 그 '속내'에 해당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약속이라도 예산안, 즉 돈표 안에 구체적 지출계획이 없다면 말장난에 그치게 된다. 지난 8월 27일 정부는 전년 대비 3.2% 증액된 677조4000억원의 세출 예산안을 발표했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각 정부 기관과 이해관계 집단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을 것이고 국세 수입 등 재정 여건도 몇년째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우선순위 조율을 위한 재정당국의 고민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장 예산내역서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 홍보자료만 나와 있는 상황에서 이번 예산안에 어떤 정책적 고민과 해법을 담았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다만, 재정의 역할이 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미래 성장을 준비하는 것이며, 정부가 약속한 개혁과제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지원도 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예산안에서 들여다 보아야 할 몇 가지 지점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 번째 이슈는 재정의 경기부양 여력이다. 당장 우리 자영업자,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는 심각한 내수 위축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 지난 7월 국세청은 작년 폐업신고를 한 사업자 수가 98만 6000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중 48만여명이 사업 부진을 이유로 폐업했다. 돈이 안 벌려서 사업을 접은 것이다. 상당수는 은행 대출을 갚을 여력도 없는 처지일 것이다.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들이 이자율 인하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 급등 우려로 금리 조절도 쉽지 않다. 어려운 시기에 경기를 부양할 책임이 온전하게 재정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년 대비 3.2% 증액된 예산안은 우려스럽다. 물가 상승까지 감안한다면 이 정도 예산 증액으로 재정이 내수시장을 부양할 힘은 없어 보인다. 물론 건전재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 재정은 개인의 가계부와는 다르다. 경기가 부진할 때 긴축 재정은 경제 활동을 위축시켜 조세 수입의 감소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건전재정의 길에서 더 멀어지는 것이다. 또한 정부 부채구조가 건전하다 해도 국민들과 공기업들이 빚더미위에 앉아 있다면 건전재정은 기만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2024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98.9%로 세계 4위 수준이며 최근 은행권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곳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민 생계의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건전재정은 경기가 과열되는 시점에서 예산의 증가를 억제하고 세수를 충실하게 확보하면 될 일 아닌가? 두번째, 2년째 대규모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내년도 세제개편을 통해 금투세 폐지, 상속세 세율 인하 등 감세 정책을 펼치는 것도 지금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적절치 않아 보인다. 내년도 경제 전망이 불확실한 만큼 소비, 수입 증가, 기업경영 호전 등 재정 당국이 기대하는 세입증가 요인들이 시나리오대로 작동할지 확실치 않다. 내년도 세수가 정부추계치보다 부족한 사태가 재발하는 경우 긴축 편성된 세출 예산을 지탱할 재원마저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 세번째, 미래 성장동력의 준비에 대해서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우리 수출시장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추격하기 어려운 차별적 기술격차를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 내년도 우리 정부의 R&D 예산 규모는 29조7000억원으로 올해에 비해 3조원 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재작년 29조원에 달했던 재정 지원 규모를 R&D 효율화를 명분으로 3조원가랑 줄였던 것을 원상 복구시킨 것에 그치는 수준이다. 내용적으로 인공지능, 반도체, 전략산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 육성에 더 큰 비중을 둔 점은 크게 평가해 줄 수 있지만 2년 전에 비해 교역환경이 더욱 악화된 지금 R&D예산 규모가 재작년 수준 복구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아쉽고 걱정스럽다. 네 번째,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서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 내년도 중소기업부 정부예산안은 15조 3000억원 수준으로 올해에 비해 2.3% 늘어났다.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의 근간이고 우리 국민들 대부분의 일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라도 지원 예산이 늘어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지원예산의 구성만 봐서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별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시가 든다. 정부 지원 예산이 아무리 커도 중소기업 제 1의 고객은 바로 대기업이다. 대기업과의 동등하고 균형 잡힌 거래와 상생성장의 근간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중소기업 정책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에서 대중소기업간 동반-상생 성장을 위한 재정적 표현은 일부 밸류업 프로그램 말고는 보이질 않는다. 정부 중소기업 정책이 본래의 사명과 목적을 찾아가는 노력이 정부 예산안에 보다 충실하게 반영되기를 바란다. 다섯 번째, 정부가 천명한 각종 개혁시도가 재정을 통해 충실하게 지원되고 있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핵심으로 한 의료개혁은 의료계의 지속된 반발로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국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응급실 방문도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지금은 아프면 안 된다'는 주변의 목소리도 흔치 않게 들린다. 정원 증원 결정 당시 가장 많은 우려가 있었던 부분은 당장 의과대학의 시설과 장비, 교수 요원의 양적, 질적 수준이 한꺼번에 2천명의 학생을 추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번 정부 예산안에서는 의료개혁 지원을 위해 총 2조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이중 4000억원을 전공의 수련비용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 지원만으로 당장 내년부터 2천명의 학생을 받아 충실하게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의대 정원의 숫자를 단계적으로 늘려가면서 이에 맞추어 교육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해 나갔다면 의료 개혁은 훨씬 더 수용성을 갖고 진행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들의 미래 도전과제에 대해 정부가 할 일을 제 때 하고 있는지도 이번 예산안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민간 차원의 국제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인 RE100은 우리 수출기업들의 생산활동에 사용되는 전력 100%를 일정시점까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여 거래가 불발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기업들도 RE100 요건을 맞추기 위하여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대부분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를 생산기반이 밀집된 수도권으로 끌고 올 수 있는 송전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수도권 기업들은 RE100 요건을 맞출 방법이 없어 미래 지속가능성이 현저하게 훼손되고 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은 남아나는 지역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소진하기 위해, 지역경제와 고용에 그다지 효과도 없으면서 전기만 어마어마하게 쓰는 외국계 데이터센터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서해안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풍력발전 사업의 경우도 연근해에서 육지로 전력을 끌어올 해저케이블 인프라가 없어서 사업 진척이 극도로 늦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의 출구가 제때 마련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앞으로 해외에 나가야만 조업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는 불문가지이다. 모두 한전의 송전 인프라 건설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벌어지는 일들이다. 시장에 돈이 없어서 송전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독점 송배전 사업자인 한전의 재무적 역량이 충분치 않아 새로운 투자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만약 민간의 송배전망 투자를 허용하고 이를 한전이 임대하여 영업할 수 있게 한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지만 한전 민영화에 대한 우려로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재정이 투자자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문제를 인지했다면 답을 찾는 노력이 어떤 형태로든 재정에 반영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2025년 정부 예산안은 이제 막 예산실 문턱을 넘어 국회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지금 재정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우리 경제의 미래에 불가역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과거 국회 예산심의가 상당 부분 지역구 예산 확보를 위한 주변적 거래의 장이었다면 올해만큼은 국운을 결정하기 위한 진지하고 심도 있는 검토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원주

[윤석헌 칼럼] 금융의 공공성과 감독체계 개편

지난 23일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 김현정 의원 및 조국혁신당의 신장식 의원이 공동 주최한 '금융공공성 확보를 위한 금융감독 강화 방안' 토론회에 참가했다. 토론회는 금융의 공공성(모두를 위한 필수 사회서비스) 인식에서 출발하여 금융감독체계 개편 대안 제시로 마무리했다. 현대 금융은 국가가 마련하는 규제감독제도안에서의 예금, 대출, 투자, 보험 등 국민 '모두가 필요로 하는 필수 사회서비스'라는 점에서 공공성을 지닌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직접 담당하지 않고 민간에게 이양하는 과정에서 효율성 제고를 위해 상업성(이윤창출)을 허용한다. 결국 금융은 공공성과 상업성의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게 되고, 따라서 양자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양자는 서로 조화되면 시너지 창출도 가능하나, 상충되면 비효율이 발생하거나 심지어 금융위기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금융의 핵심적 중개기능 관련 공공성을 살펴보자. 첫째, 정부가 은행에 인가한 지급결제기능은 국가 금융경제시스템 작동에 필요한 필수 서비스로 금융공공성의 기반을 제공한다. 이를 무시하고 최근 티몬과 위메프사태 및 머지포인트사태에서는 이커머스기업들이 지급결제를 수익창출 수단으로 이용하려 시도함으로써 소비자 피해를 초래했다. 둘째, 은행 대출은 상업성과 공공성을 모두 지닌다. 은행의 일반대출은 대출신청자 신용도를 기준으로 우량고객을 선택하고 비우량고객은 배제하거나 또는 고객들 간 금리 차등화를 통해 상업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은행이 상업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경제∙사회적 대출 수요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로, 코로나19 사태에서 취약계층 지원용 대출이나 4차 산업혁명 촉진을 위한 혁신기업 대출 등은 모두 국가 운영에 필수적이다. 은행 입장에선 상업성이 중요하겠지만 이들을 무시하면 국가 내지 사회의 부담이 증가한다. 결국 상업성과 공공성 간 균형이 필요하다. 셋째, 금융정보 업무에도 상업성과 공공성이 혼재한다. 예로, 어느 대출신청자의 부실확률이 5%로 파악됐다고 해서 이것만으로 우량, 불량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출신청자 그룹 전체가 0~5% 구간임을 알았다면, 그 때는 5%는 불량신청자로 분류된다. 그룹 전체 정보를 알게 됨으로써 개별정보 가치가 높아진 것인데, 은행이 인가시 허용받은 대로 대출신청자 개별정보를 모아 분포, 평균, 분산 등 유의미한 공공정보를 분석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즉 개별정보를 모을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가 은행의 공공정보 창출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창출한 정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상업성 기준에 따르면 5% 불량신청자 대출은 거절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분포, 평균 등에 담긴 정보가치 상승이 공공성 덕분임을 감안하면 상업성과 공공성 기준의 균형잡힌 적용이 바람직해 보인다. 넷째, 시스템리스크를 관리∙통제하는 최종대부자기능과 예금자보험기능은 공공성을 지니는 국가위험관리 기능의 일부로 개별 금융사 위험관리의 기반을 제공한다. 이를 토대로 개별 금융사는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스템리스크를 정부, 중앙은행, 감독당국, 금융사들 간 분담 및 협력체계를 통해 관리할 수 있다. 이렇듯 정부와 사회로부터 다양한 공공성 혜택을 누리는 금융은 이를 사회와 고객에게 환원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환원은 금융의 또 다른 특성인 상업성으로 인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부가 금융산업진흥을 명분으로 금융사의 과도한 상업성 추구에 눈감은 결과, 금융소비자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저축은행사태, 동양사태, DLF사태 및 사모펀드사태 등 2008년 금융위원회 출범 이후 이어지는 금융사고들이 이를 증거한다. 금년 상반기 홍콩ELS사태도 같은 맥락이었고, 지난 7월 티몬/위메프사태도 전자금융업 육성과 연관됐다. 한편 그간 금융산업진흥정책이 금융감독정책을 압도해왔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위 설치법 제1조(목적)에 제시된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찾기는 용이하지 않다. 금융은 상업성과 공공성 간에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금융감독의 강화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정책이 금융산업정책과 대등한 입장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금융위의 금융산업정책업무는 기획재정부로 보내고 금융감독정책업무는 금감원의 감독집행업무와 통합하여 효율화하는 게 금융산업 선진화의 첩경이다. 국회가 이런 방향으로 추진해 달라는 게 지난 23일 토론회 다수의 요구였다. 윤석헌

[기자의 눈] 결국 폭발한 코인 사기 피해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28일 벌어진 하루인베스트 대표 피습사건이다. 백주대낮에 경비가 삼엄한 법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놀랍지만, 가상자산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루인베스트는 1조4000억원대 '코인 먹튀' 의혹을 받고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코인 예치 서비스업체다. 투자자들이 예치한 가상자산을 출금 정지 시키고 본사 사무실을 폐지하는 등 재산상 이득을 편취했다는 혐의다. 이번 피습 사건을 벌인 피의자만 해도 노후 목적으로 모은 자산 대부분을 하루인베스트에 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언뜻 보면 화를 참지 못한 피의자, 또는 수많은 투자자를 피눈물 흘리게 한 하루인베스트 대표 측에 책임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잖아 제2, 제3의 피습사건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 가상자산 분야에 대한 제도가 미비했던 최근 시기까지 수많은 코인 사기가 집중적으로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그간 가상자산의 존재와 시장 형성을 애써 외면해 왔던 정치권 때문에 '법률 공백'이 발생했고, 발 빠른 사기꾼들은 그 틈을 노려 수많은 투자사기 피해자를 양산해 왔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이를 어디 하소연할 데 없이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호소해 봐야 피해자의 탐욕과 무지를 탓하는 손가락질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등이 시행됐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다. 이미 수많은 투자 피해자가 발생한 이상 이번 피습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낳는 '방아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피해자들도 스스로 자제하고 법원 등의 보안을 강화해야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관련 제도 보완을 충실히 해 미래까지 이어질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투자자 보호에 중점을 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다음은 2단계, 가상자산 발행 등 산업 진흥을 위한 입법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아직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등 기존 경제범죄 관련 법령을 손봐 코인 투자자들도 즉각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코인뿐 아니라 갖은 신산업이 발생하고 있는 문명의 시대에 법의 구멍으로 인한 야만의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할 때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EE칼럼] 위해성 기반 대기환경 정책으로의 전환을 준비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대기질 관리를 하는 방식이 주로 배출원으로부터의 오염물질의 농도를 저감하고자 하는 규제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해왔다. 이러한 정책 관리 수단은 상당 기간 잘 관리되고 그 정책 부합성과 투자 자원의 효율성이 입증되었다. 또한 산업계와의 적절한 협력과 논의를 기반으로 단계별 추진이 되어왔으며, 과거 우리나라의 부족한 자원을 감안할 때에 경제 생산 부문과 환경 관리 부문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환경관리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우리나라가 대기 문제와 관련하여 대외 요인 등의 관리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산업용 대기 환경관리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룬 것은 정부와 산업계의 지속적인 소통에 근거해 왔는데 이제 어느 정도 수준의 대기질 관리 단계에서는 추가적인 총량 절감이 상당한 투자 비용에도 눈에 들어나는 성과를 이루기 어려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과거의 관리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배출 설비로부터의 배출량 관리를 넘어서 실제적인 피해의 대상인 주민들의 건강 보호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기 중의 다양한 대기오염물질이 호흡을 통해 체내로 유입되고 이로 인하여 여러가지 독성 또는 발암성이 높은 성분에 쉽게 노출될 수 있어서 다른 환경매체에 비해 즉각적이고 피할 수 없이 건강 위해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대기환경 관리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지역에서는 대기질 측정망을 통하여 실시간 자료를 측정하여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제공되는 데이터는 주로 초미세먼지, 미세먼지, 오존,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그리고 아황산가스와 같은 물질의 공기 중 질량 혹은 농도 자료들이다. 주로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는 분체상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구성 물질의 화학적 특성이 다를 있을 뿐 아니라, 단순 무기질 물질이 아니라 유기화합물의 형태를 갖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배출원으로부터의 1차 오염물질이 시간을 지나며 화학작용을 통하여 2차 오염물질로 변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측정을 통하여 총량으로 대기질을 표시하는 방식은 이러한 세부적인 부분을 전부 담아 내기가 어렵다. 특히 지역별로 산업 설비의 구성과 배출물질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가지고 정책 목표를 정하고 규제를 만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론적인 취지에는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 있어서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대기분야의 전문가들은 그런 측면에서 보건 분야의 전무가들과 적극적인 공동 연구나 학술 세미나들을 개최하여 인체 위해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성적인 접근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미세먼지의 위해성 규명은 질량 농도의 측정이 아닌 미세먼지 구성성분의 건강영향에 미치는 작용 원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밝혀져야만 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지속적인 자료 축적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살펴보면 최근 한 연구결과에서는 미세먼지 중의 나트륨, 암모늄 등과 같은 구성이온물질의 심혈관계질환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밝혀졌다. 이같은 내용들을 점차 축적하여 데이터 베이스화 하게 되면, 지역별 인체 위해성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자료를 가지게 되고, 선별적 배출 오염원의 추가적 강화 이유에 대한 경제계의 도움과 양해를 구하는데 있어서도 활용될 수 있다. 더 많은 산업별로 배출되는 미세먼지 구성 원소의 종류와 성분을 파악하고 나아가 물리 화학적 특성들을 세밀히 작성하고 분류하여 위해성 등급에 대한 조사 작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미시적으로는 주요 구성 원소종류와 각 구성성분들의 건강영향을 추적하는 연구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제는 국민 보건을 최우선시하는 대기환경 정책으로의 전환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신뢰성 있는 환경위해 연구에 대한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또한 보건 분야나 화학 공학 분야 등과 융합적 분석에 기반한 연구를 확대하고 그 결과를 반영한 대기환경 정책을 발굴하고 제안할 수 있는 체계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본다.이러한 정책 전환 시도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위해성이라는 개념으로 인한 시민들의 과도한 우려와 함께 일부 산업 시설에 대한 님비(NIMBY)현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우려는 적극적인 소통과 홍보를 통하여 정부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기서

[이슈&인사이트] 2025년 예산안: 재정 건전성과 미래 준비, 그러나 부족한 경기 부양

2024년 8월 28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총 677조 4,000억 원 규모로 전년도보다 3.2% 증가한 2025년 예산안 편성지침을 의결했다. 이번 예산안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복지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보건·복지·고용 분야에 249조 원이 배정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4.8% 증가한 수치다. 특히,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이 한층 강화되었다. 또 다른 주요한 특징은 연구개발(R&D) 투자와 인프라 구축에 대한 강조다. 정부는 지난해 연구개발 예산삭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2025년 R&D 예산을 24.8조 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2025년 예산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정부의 강력한 재정 건전성 유지에 대한 의지다. 이번 정부 들어 총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3.9%로, 과거 정권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비율을 GDP 대비 -3% 이내로 개선하고, 국가채무 비율을 2028년 말까지 50%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 미만으로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균형재정과 재정건전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재정 건전성 유지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정이 지나치게 악화되면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으며, 이는 외국인 투자 감소와 금리 상승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재정건전성의 주요 지표인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정부채의 리스크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의 정부채를 평가할 때, 재정건전성이 높을수록 정부채의 리스크가 낮아져 상대적 매력이 커지기 때문에,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본의 유입이 지속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미연준)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한국과 미국 간의 금리 차이가 2%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대규모 해외자본 이탈이 발생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국제적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대내외 경제환경을 고려했을 때, 정부의 강력한 재정건전성 유지 의지가 오히려 부메랑처럼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남아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중동 간의 긴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자원의 무기화 등으로 글로벌 정세는 극도로 불안정하다. 이러한 갈등은 에너지와 식량 등 필수 자원의 공급망을 불안하게 만들고, 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함께 세계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공급망의 혼란이 초래되고, 글로벌 경제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런 대외적인 요인들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은 글로벌 무역 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과 무역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미국경제 침체 우려와 중국경제 성장 둔화는 한국의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의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하방 압력을 받고 있으며, 상방 요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수 상황도 매우 심각하다.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었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팬데믹 이후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고금리와 높은 물가, 내수 부진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수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침체되어 있으며, 소비와 투자가 모두 부진한 상황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단순히 재정건전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재정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경기안정화에 맞춰져야 한다. 경기를 안정시키고 내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는다면, 경제가 더 큰 침체에 빠질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재정건전성 자체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금은 재정건전성만을 고집하기보다는, 대내외 경제환경을 고려한 유연한 재정 운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수현

[기자의 눈] AI 신약개발, 대승적 협력 필요하다

최근 국내 제약업계가 전례없는 대규모 협업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연합학습 기반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사업 'K-멜로디(K-MELLODDY)'가 바로 협업 프로젝트의 주인공이다. 이 사업은 오는 2028년까지 각 기관의 데이터 외부유출 없이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신약 후보물질을 효율적으로 발굴하는 AI 솔루션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국내 8개 제약사를 비롯해 대학, 연구소, 벤처기업 등 분야별 국내 최상위 기관 26곳이 참여한다. 한 기관은 이번 사업에 선정된 후 아예 담당 부서명을 K-멜로디 사업에 맞춰 AI신약개발팀으로 변경하기도 했으며 다른 일부 기관은 선정과정에서 탈락한 후 크게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로 업계의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해당 협업 프로젝트에서 데이터 제공 역할을 맡는 8개 제약사들은 기대감에 못지 않게 불안감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미 주요 제약사들은 독자적 또는 AI 벤처기업과 협업해 개별적으로 AI 기반 신약개발 솔루션을 구축해 왔다. 대웅제약은 8억개의 화합물을 DB화한 '다비드'와 AI 신약개발 시스템 '데이지'를 자체 구축해 신약개발에 활용하고 있으며, JW중외제약은 빅데이터 기반 약물탐색 시스템 '주얼리'와 '클로버'를 통합한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 '제이웨이브'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K-멜로디 사업의 성패는 다양한 데이터를 많이 학습할수록 성능이 좋아지는 인공지능 머신러닝(기계학습) 특성상 데이터 제공 역할을 맡은 8개 제약사들이 얼마나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각자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구축해 온 제약사들은 자신의 핵심자산이자 영업비밀인 약물·임상 데이터를 국내 최초 시도이자 경쟁사가 모두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선뜻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적은 양의 데이터만 제공하고 향후 완성될 AI 솔루션의 '결실'만 공유하려 한다는 이른바 '무임승차'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데이터 보호만 확보된다면 K-멜로디 사업에 우리회사 데이터를 적극 제공할 의사가 있다"는 한 제약사 연구책임자의 말에서 보듯 무엇보다 K-멜로디 사업에 데이터 보안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참여 제약사들의 바람이다. 제약업계는 K-멜로디 사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이자 국내 제약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모처럼 경쟁관계인 제약사들이 한 뜻으로 뭉친 만큼 대승적 협력에 나서 우수한 성능의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다수의 블록버스터 신약을 배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이슈&인사이트] 데자뷔...경제민주화 망령의 부활?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젊은 시절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다면 단연코 키에누 리브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매트릭스(Matrix) 1편일 것이다. 영화의 재미에 푹 빠져 몇 번을 봤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보고 또 본 영화이다. 영화의 장면 중 주인공 키에누 리브스가 낡은 건물 계단을 올라가면서 불길한 느낌의 검은 고양이가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데자뷔'라고 혼자말을 한 장면이 나온다. 이후 건물의 구조가 바뀌어 탈출구가 사라지고 스미스 요원과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많은 사람이 죽고 모피어스가 잡혀가는 비극이 일어난다. 불어로 Déjà Vu(데자뷔)는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을 말하는데, 보통 기시감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데자뷔가 느낌이나 환상이 아닌 실제 일어나고 있다. 장소는 국회이고 불길한 검은 고양이는 '경제민주화'이다. 이전 정부의 모 인사가 국무회의에 늦은 이유를 '재벌 혼내주다'가 라고 답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러한 왜곡된 기업에 대한 인식하에 이전 정부와 국회는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공정거래법, 상법 개정안 등 우후죽순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발의했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대주주 의결권 강화, 다중대표소송, 집중투표제, 사외이사 결격사유 강화, 전자투표 의무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 등 22대 국회에서도 핫(hot)한 다양한 지배구조 규제강화 법안이 발의 되었다. 당시 경제계는 극렬하게 반대했으나 정부가 추진한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규제 강화 내용이 사실상 그대로 반영되어 2020년 말 국회를 통과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너무 급진적이고 기업의 경영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최악의 내용은 최종안에서 제외된 것이다. 경제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회, 정부가 '그들만의'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나기까지 국회, 정부, 경제계 모두 비생산적인 논의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소진했다. 2020년 말 주요 법안이 통과되면서 한동안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가 잠잠하더니, 22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또다시 이전 국회, 이전 정부에서 결론이 났던 기업 지배구조 규제 강화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미 2018년에서 2020년에 맹위를 떨쳤던 '데자뷔 경제민주화 망령'이 부활한 것이다. 세상에 정말 새로운 것은 없는 건지, 창의력 부족인지 알 수는 없지만 21대 국회에서 임기만료 폐기된 법안이 좀비처럼 다시 돌아다니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같이 철 지난 이슈를 다시 되살려 논의해야 하는지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과도한 규제를 반드시 관철해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이 무책임한 해외 투기자본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반드시 봐야겠다는 것인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 수단, 유연한 지배구조 제도를 업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데, 우리 기업들은 과도한 지배구조 규제, 대기업 집단 규제 등의 족쇄를 차고 글로벌 경쟁에 나서야 하니 우리나라에서 기업하기 어렵다는 소리가 빈말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기업을 옥죄는 규제혁파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시대에 맞지 않고, 소모적인 지배구조 규제 강화 논란은 이제 끝내야 한다. 유정주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