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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무너지는 재생에너지 산업

국내의 유수한 연구소들은 조용한 가운데 먼나라의 연구소가 경쟁상대인 한국의 전자산업을 걱정하고 나섰다. 미국의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지난 10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빅 테크 기업들의 강력한 탈탄소화 노력에 힘입어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부문의 재생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한국 기업들은 재생에너지원으로의 전환에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글로벌 AI 부문의 재생에너지 순증량은 2023년 대비 2026년까지 3배 증가하여 262TWh가 될 것이며 재생에너지 발전에서 AI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17.9%로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리고 400개 이상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참여한 RE100이 2050년까지 전력수요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려 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SK하이닉스는 30%, 삼성전자는 10% 미만에 불과하고 발전 속도도 미미하다고 꼬집었다. 이는 2023년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체의 9.64%로 세계 평균 30.25%, 아시아 평균 26.73%의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미국의 청정경쟁법 등의 확대 적용으로 탄소 집약도가 높은 한국의 기업들은 상당한 재정적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걱정'은 필자의 생각이고 IEEFA는 경쟁국의 '대략난감'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20대 대기업의 전력사용량이 85TWh로 주택용 전체 전력사용량 82TWh를 초과하는 나라이다. 전체 전력량의 3분의 2가 산업용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출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전력의 사용을 요구받고 있으며 점점 강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재생에너지 홀대 정책으로 국내 재생에너지의 보급이 하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태양광 발전 제조사는 2017년 46개까지 늘었다가 2022년 23개로 절반이나 즐었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원전산업을 넘어선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2014년에 이미 태양광과 풍력발전 부문의 수출액이 3조967억원으로 원전 부문 수출액 1641억원의 19배를 기록했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8년 동안 태양광·풍력발전의 총 수출액은26조7219억원으로 원전 수출액 1조716억원보다 약 26배가 많았다. 2021년의 재생에너지산업 종사자수는 13만9097명으로 원전산업 종사자수 3만5104명보다 4배나 많았다. 전 세계 에너지 투자 규모를 보면 2023년 기준으로 청정에너지 투자는 화석연료 투자의 1.7배인 1조740억 달러였다. 원전분야는 630억 달러로 청정에너지 분야의 불과 6%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해에도 전체 3조 달러를 초과하는 에너지 투자액 중 청정에너지 기술과 인프라에는 2조 달러가 투자될 것으로 예상되며 원전 분야는 최대 800억 달러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2017년부터 수출액이 감소하고 참여하는 기업의 수마저 줄어드는 처지가 되었다. 반면 중국은 재생에너지 분야의 투자는 물론 고용, 보급, 기술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 되었다. 30년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반도체와 무선전화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과감한 투자와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반도체와 무선전화는 21세기 한국의 경제의 중추가 되었다.중국의 퀀텀 점프는 재생에너지 산업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은 재생에너지 산업과 보급에 투자를 늘렸고 2010년대가 되면서 보급과 투자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그리고 이제 재생에너지 분야는 중국의 주요 수출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분야에서 물러설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는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지난 14일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 늘리기로 한 지난해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의 합의에 대한 경과보고서에서 현재 각국의 계획으로는 목표에서 34% 부족하므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을 촉구하였다. 2023년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투자 5300억 달러를 매년 1조5천억 달러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장을 외면하는 것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있으리오. 대부분의 사람이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는데 몇몇 매니아를 위해 타자기 산업을 육성하려 한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매일 목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신동한

[기자의 눈] 혁신 막힌 리걸테크 갈등, 법무부 적극 나서야

신·구업계 사이의 갈등은 모든 스타트업이 겪는 문제지만 리걸테크(Legaltech, 법률+기술) 업계는 그중에서도 다툼이 심한 편이다. 특히, 법조계는 변호사가 아닌 일반 이용자가 법률관련 인공지능(AI) 기반 채팅봇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실제로 스타트업 넥서스가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손잡고 지난 3월 출시해 약 5만 5000명이 활용한 법률 무료 채팅봇 서비스 'AI대륙아주'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의 법인·소속 변호사 징계개시 청구 결정으로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며 업계의 우려를 샀다. 변협은 넥서스 AI가 AI대륙아주를 통한 광고로 경제적 이익을 거둔 것이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로 변호사 아닌 자가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입장이다. 'AI대륙아주'가 갈등에 휩싸임에 따라 지난달 스타트업 엘리먼츠가 출시한 법률 AI 채팅봇 서비스 '노크'의 장기 운영 가능 여부도 논란이다. 다만, '노크' 관계자들은 변호사가 아닌 AI기술 전문가들로 변협의 실질적인 징계가 불가해 엘리먼츠 측은 타격이 없을 거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AI 리걸테크 산업은 오는 2027년 356억 달러(약 4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유망 시장이다. 빠른 성장세에 힘입어 해외에서는 이미 10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을 정도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신·구업계 사이 갈등으로 스타트업에 제동이 걸리며 혁신기술 개발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고위험 AI의 신뢰성 및 안전성 확보 문제가 있는 B2C(기업 대 소비자) 서비스 뿐 아닌, 변호사나 기업인 대상 B2B(기업간 거래) 기능 개발도 규제의 문턱이 높은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발의된 리걸테크 진흥법도 기능 출시 이전 법무부 허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점을 골자로 해 기기능을 테스트하는 베타서비스를 통한 검증이 어려워 투자 유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법안"이라 반발할 정도다. 국내 기업의 기술 혁신이 막힌 와중에도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은 국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며 국내 시장 점유율 확보를 노리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규제로 발목이 묶인 사이 해외 업체들만 어부지리로 이득을 보게 되는 셈이다. 소비자들이 법률 AI 활용으로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현재 국내 리걸테크 생태계는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신·구업계 갈등을 해소하고 기술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법무부가 리걸테크 가이드라인 제시에 보다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김병헌 칼럼]김건희 여사 문제 해법은 없나

남의 가정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상이 대통령 부부라면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가 된 부분의 실체가 정확하게 규명되지도 않았고 의혹 수준이라면 누구든 더더욱 쉽게 거론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 문제가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크게 걱정하게 만든다면 입다물고 침묵할 수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세번째 특검법 발의 등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재명 민주당대표의 판결을 한달도 남겨두지않은 이 시점에서 호재중의 호재다. 당연히 여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런데 여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마저 연일 김건희여사에 대해 언급을 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대통령실과 합심해서 야당 공세를 막아야 하는데 말이다. 전후사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 국민들이 무슨죄를 졌다고 여사의 이런 처신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어떤 형태이든 결단을 요구해 역린에 가까운 듯 하나 지나친 언사로 보이진 않는다. 이번주초 윤석열대통령과의 독대를 앞두고 '여사 문제'를 주요 의제로 확정해놓는 효과도 노렸다고 여겨진다. 김건희 여사가 정체도 불투명한 인사등과 엮이거나 평지풍파를 일으켜 정권에 부담을 주고, 국민들로 하여금 적지 않게 놀라게 하거나 우려하게 만든 사례는 한두번이 아니다. 대통령후보 시절 주가 조작 사건 연루 의혹과 허위 이력으로 사과까지 한 대목은 전주에 불과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매체 기자와 6개월에 걸쳐 50차례 통화 녹취록을 남겼는가 하면, 정치공작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을 들락거리는 정체불명의 정치브로커같은 목사에게 디올 백을 건네받았다. 이번에는 공천 개입 의혹에 이어 과대망상 정치브로커를 받들어 모시는 카톡 메시지까지 나왔다. 저간 사정이 있다고 해도 대통령 부인이 되기전이라도 하나같이 가까히 해서는 안될 인사들이다. 대통령실 근처에는 아예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할 사람들이다. 정치 브로커로 보이는 명모씨에게 메시지로 물증을 남겼다. 입이 다물어지지않는다. 여기에 남긴 메시지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명 선생님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상황"“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 주세요"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이따위 인물을 높이 평가하고 속내를 털어놓고 거기에 친절하게 물증으로까지 고스란히 남긴 저의는 없으리라 믿는다. 정말 무식한 짓이다. 여기에 한술더 떠 무슨 이유로 '오빠'의 철없음과 무식을 개탄했을까? 너무 궁금할 따름이다. 남들은 역설적으로 들리는데 여사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명씨가 어떤 가르침을 전했길래 '완전히 의지'하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명씨는 “공을 많이 세우셨으니 대통령 부부와 맺은 친분을 밝혀도 된다"는 말을 대통령실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고 자화자찬이다. 대통령실은 '철없는 오빠'는 대통령이 아니고 여사의 친오빠라고 했다. 솔직히 이 해명을 신뢰하지 않는다. 거물 행세하는 정치브로커가 정치 경험이 없는 친오빠와 결코 논쟁을 벌였을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일단 대통령실 말을 믿어보기로 하자. 여사가 무차별 갈겨놓은 문자와 녹취록이 산재해 있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파장이 예사롭지가 않을 것 같다. 명씨는 옳다구나 해서인지 “앞으로 매일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대통령실은 이렇다 할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카톡내용을 보면 명씨가 믿는 구석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의 발언 녹취록 논란 역시 여사가 닿아있다.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 7명 안팎의 대통령실 전 현직 인사 이니셜이 공공연하게 거론된다. 소문은 정권 초기부터 있었다. 지난 4월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기용설 논란까지 소환한다. 한동훈 대표가 김건희 여사 주변을 겨냥한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나선 대목도 같은맥락이다. 소문만 무성하던 이른바 '여사 라인'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식화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공적 업무 외에 비선으로 운영하는 조직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이 자신의 직위와 업무 범위를 넘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니 여사를 빼고 설명이 되지않는 지점이다. 이제 대통령실은 2류, 3류들에게 농락당하고 구정물을 함께 뒤집어 쓴 느낌일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어떤 입장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이제는 여사가 안쓰럽고, 문제 삼는 이들을 탓하고 있을 게재가 아니다. 특히 '여사라인' 논란은 대통령실 내부에서 묵인·방치했기 때문일 수 밖엔 없다.국정 개입 의혹과 직결되는 만큼 파괴력이 큰 사안이다.김 여사와 관련된 문제 해결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여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 김건희특검법에 대한 '재의결 방어'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 규명이며 어느 방향이든 윤 대통령의 분명한 결단이 필요하다. 김병헌 기자 bienns@ekn.kr

[박원주 칼럼]의료개혁 사태를 바라보며

환경 변화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된다. 그러한 도전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 기업, 사회, 국가 모두 나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변화에 성공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 그것이 자연이 내미는 유일한 선택지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 연금, 노동, 의료의 4대 개혁과제다.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을 고쳐서 우리 공동체를 살려내겠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중 의료개혁의 경우, 최근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간의 전방위적인 갈등으로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개혁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처럼 극단적인 강대강 대립이 불가피한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의도적 변화를 의미하는 3가지 용어인 개혁, 혁신, 혁명의 차이가 무엇인지부터 말해 보자. 일반적으로 개혁을 점진적인 변화로, 혁신과 혁명을 급격한 변화로 구분하여 변화의 폭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다른 관점에서는 개혁과 혁명을 행위 주체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혁신은 자신이나 자기 집단의 내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변화의 대상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각에서 개혁과 혁신은 변화의 대상을 포섭해서 함께 변화해 나가는 것을, 혁명은 변화 대상을 멸살시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변화대상을 포용하는지 여부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혁신에서도 경쟁기업 등 궁극적으로 배제하고자 하는 대상 집단은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이 경우에 경쟁 대상자의 변화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주목할 것은,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혁신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지향하고 그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에 반해, 개혁은 행위자가 자기를 둘러싼 공동체 안의 다른 주체들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그 결과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기업이나 정부 조직에 대해서는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대부분 개혁이라는 당위성이 따라붙게 된다. 대부분의 굵직한 개혁은 한 정부 재임기에 완전하게 이룰 수도 없으며, 그 성과를 하나의 정부가 독식하지도 못한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 부문 개혁을 주창했던 DJ 정부는 그 일환으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밀어붙였지만, 차기 노무현 정부 들어 사실상 폐기되면서 발전-송배전 부문의 가버넌스만 쪼개진 채 정부 공기업으로 남는 '반쪽 개혁'이 되고 말았다. 또한 우리 통상정책의 물길을 열고 개방형 통상 국가로의 전환점을 이룬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가 이를 천명하고 어려운 협상을 타결했지만, 2008년 광우병 사태 등으로 악화된 여론을 딛고 시장 개방을 완성한 이명박 정부에 더 큰 공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5년짜리 정부가 혼자 이룰 수 있는 개혁은 많지 않다. 하나의 개혁이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밑바닥에서부터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론을 주도하며, 이해 관계 집단 간에 납득할 수 있는 조율을 이루기 위해 긴 시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1990년대 LEGO의 혁신은 변화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대표사례이다. LEGO는 1932년 완구 전문 제조업체로 덴마크에서 창업한 이래 1990년대까지 매년 10%대의 성장을 놓쳐본 적이 없던 건강한 글로벌 기업이었다. 그러던 LEGO가 IT 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존망의 위기를 맞게 된다. 1988년 LEGO 블럭에 대한 마지막 특허가 소멸되고, 완구시장 수요가 PC 게임으로 잠식당하면서 LEGO는 역대 최초로 적자를 기록했다. 시장 전망 또한 매우 어두웠다. 위기 탈출을 위해 LEGO는 1998년 뱅앤울룹슨 CEO였던 폴 플러그만을 영입하여 본격적인 혁신에 돌입한다. 플러그만은 1999년 초 직원 1000명 해고를 시작으로 '혁신의 7 가지 진리(7 Truths of Innovation)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혁신 노력을 동시에 전개했다. 다양한 분야의 창의적 인재를 수혈받고, 블루오션의 업역을 개척하며 소비자 중심으로 기업 전략을 설계했다. 파괴적 혁신에 대비하여 가상 공간 프로젝트를 출범시켰고 소비자들이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개방형 혁신도 진행했다. 제품 디자이너들에게는 관행과 형식을 파괴할 것을 요구했고 새로운 혁신 문화를 기업 전 영역에 확산시켰다. 레고랜드, 레고 교육센터 등 완구를 벗어난 새로운 사업 영역도 다각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2002년 말 크리스마스 세일에 실패하면서 LEGO의 유통업체 재고는 40% 가까이 늘어났다. 2003년말까지 8억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2004년에는 재무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LEGO의 기업문화는 분절적으로 변질되어 혁신의 시너지가 발휘되지도 못하고 있었다. LEGO는 망해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LEGO는 플러그만을 해고하고 크눗스토프를 새 CEO로 영입하여 위기 관리에 나섰다. 크눗스토프는 이전의 혁신전략 대부분을 원점으로 돌렸다. 회사 회생에 필요한 수익률 확보를 위해 사업 영역과 제품 포트폴리오를 간결하게 바꾸었다. 회사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품 대부분을 퇴출시켰다. 이후 순차적으로 경영을 정상화하고, 수익구조를 회복시켰다. 이 시점에서야 크눗스토프는 성장을 위해 새로운 혁신 노력을 다시 시작했다. 위기 탈출 이후 그가 전개했던 혁신 활동은 본질적으로 플러그만의 혁신과 동일했다. 차이가 있었다면 크눗스토프는 혁신의 방향과 전략을 유지하려 했고 혁신 과정을 의도적으로 관리했으며 또한 재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혁신을 점진적으로 진행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LEGO는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완구회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금의 LEGO를 만들어 낸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다들 크눗스토프를 떠올린다. LEGO의 혁신 어젠다를 최초로 출범시켰던 플러그만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LEGO의 혁신사례를 이야기하였지만 개혁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변화 관리는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개혁의 의도가 얼마나 건전한지는 별 의미가 없다. 실패한 개혁은 실패일 뿐이다. 개혁은 변화의 대상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함께 이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포용의 미덕도 중요하다. 의료개혁의 파트너는 당연히 의사집단이다. 의사 집단이 공감하지 못하는 어젠다를 국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한치 양보없이 밀어붙인다면 그러한 개혁이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는가? 개혁의 성패와 관계없이 의사 집단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져줄 전문가들이다. 그들을 자기 이익에 집착하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해버린다면 우리는 앞으로 누구에게 우리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가? 당장 정부와 의료계의 극한 대립 속에서 안전과 생명의 피해를 입는 우리 국민들은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지금이라도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의 일방적인 주장을 내려놓고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개혁은 상대방을 바둑판에서 떨어뜨려야 끝나는 알까기 게임이 아니다. 논리와 진심으로 무장하고 진지한 설득과 타협을 통해 양측이 함께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개혁의 길이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도출된 개혁 방안이야말로 정부가 바뀌더라도 지속될 수 있는 성공적 개혁이 된다. 정부가 당장의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개혁의 과실을 거둘 수 있는,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어 내기를 기원한다. 박원주

[신율의 정치 칼럼] 마비될 뻔한 헌법재판소

하마터면 헌법적 독립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마비될 뻔했다. 10월 17일까지 3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를 마치게 되는데도, 민주당은 자신들이 두 명의 재판관을 '추천'하겠다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은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라고 정하고 있는데, 3명의 퇴임으로 헌법재판관은 총 6명으로 줄어든다. 이는 곧 헌법재판소에 제소된 사건을 심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는 이런 마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헌법재판관을 미리 추천했어야 했다. 이번에 임기를 마치는 3명의 재판관은, 자유한국당, 민주당 그리고 바른미래당이 각각 추천한 재판관들이었다. 2000년 이후부터의 관례를 따른다면, 1명의 재판관은 국민의힘이, 다른 한 명은 민주당이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의 재판관은 여야의 합의에 따라 제3당에게 넘기든지, 아니면 여야가 합의한 인물을 추천해야 한다. 1994년에는, 현재의 민주당의 주장처럼, 다수당인 여당에서 2명, 야당에서 1명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앞서 언급한 방식으로 헌법재판관을 추천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의석수를 내세우며 자신들이 2명의 재판관을 추천해야겠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2000년 이후부터 지속돼 온 관례는 깨고, 1994년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국민의힘에서 우선 한 명을 추천하고 나머지는 천천히 선출하자고 제안했지만, 국민의힘이 이를 거부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마비된다면, 국민의힘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 정지 작업처럼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자신의 의석수를 앞세워 관례를 깨버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번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당시에도 기존의 관례를 완전히 무시한 바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관 추천 문제는, 22대 국회 원 구성 당시의 관례 파괴 행위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헌법재판관 추천과 관련한 문제는, 단순히 관례를 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 논리를 가지고 독립 기구인 헌법재판소를 흔든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안이어서 심각하다는 것이다. 만일 민주당이 지난 총선 승리의 결과물인 압도적인 의석수를 내세워 이런 상황을 합리화한다면, 이것은 상황의 '자의적 해석' 차원에서 벗어나, 헌법 정신을 왜곡하는 행위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여기서 한마디 안 할 수 없는 것이, 지난 총선 당시, 지역구에서 양당이 획득한 득표율의 차이는 5.4%P에 불과한데,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난 총선 당시, 매우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국민의힘 후보를 찍은 다수 유권자들의 뜻은 '국민의 뜻'이 아닌지 묻고 싶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뜻을 말하려면, 의석수보다는 득표율을 말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헌법재판관 임명에 협조해야 한다. 아니, 관례에 따라야 한다. 그것이 안 되면 최소한, 여야 몫의 재판관을 한 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의 재판관은 여야 간에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는 정도의 양보는 해야 한다. 지난 14일 헌법재판소가 정족수 제한을 '일시적'으로 효력 정지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17일부터 헌재는 마비 상태에 빠질 뻔했다. 임시적이지만, 6명의 헌법재판관만 남더라도 사건 심리를 할 수 있도록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으니, 최소한 지금 헌재에 넘겨진 사건의 심리는 가능하게 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 조치'에 불과해, 민주당이 끝까지 버틸 경우, 결국 헌재 마비 사태는 실현될 소지가 있다. 이런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민주당이 헌법상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신율

[EE칼럼] 환경부가 환경산업부가 될 수 없는 이유

이번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이슈 중 하나가 기후대응댐이다. 기후대응댐 건설계획의 핵심은 기후변화로 인해 예상되는 미래의 극한 가뭄과 물 수요에 대비하고 이전보다 더 강도와 빈도가 커지는 홍수와 가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댐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7월 다목적댐 3곳을 비롯하여 홍수조절용 댐과 용수전용 댐 등 전국 14곳에 대해 댐건설 후보지를 발표하였다. 특히, 지자체에서 원하는 곳을 대상으로 유역별 홍수 위험성과 물 부족량 등 과학적 자료에 기반하여 후보지를 선정하였고, 댐 수면에 수상태양광을 설치하여 재생에너지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후보지로 선정된 지자체 일부와 환경단체들 중심으로 기후대응댐 건설에 대한 반대가 표면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8년에는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였고, 2020년에는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긴 54일간의 장마가 발생했던 반면, 2022년에는 또 다시 50년만의 최악의 가뭄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한 산불 피해가 매우 컸다. 이처럼 가뭄과 홍수 그리고 또 다시 가뭄이 발생하는 “강수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원인은 우리나라의 기온과 해수면 온도가 세계 평균 보다 빠르게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과의 주산지는 더 이상 대구가 아니며 동해에서 흔히 잡히던 오징어는 귀한 어종이 된지 오래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미래의 기상 및 자연생태계의 변화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고, 이 변화는 시간의 문제일 뿐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크고 작은 변화와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미래에 예상되는 물 부족 문제와 이상 기후현상에 대비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대안으로 댐건설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추측된다. 댐건설은 홍수와 가뭄 피해를 예방하고 물부족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석이조 대안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게 드리운다는 속담처럼 댐건설은 그에 따른 효과 못지않게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크다. 댐건설로 인한 자연생태계와 서식지의 파괴를 비롯하여 수몰지역이 생기면서 이주민이 생기고 지역공동체가 훼손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댐건설은 오래전에 멈췄던 것이고 대신 숲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하는 의미의 녹색댐, 지하수와 도시빗물 이용, 도시의 불투과성 아스팔트 길을 투수성 재질로 바꾸어 물이 땅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그린 인프라 투자 그리고 불필요한 물 소비를 줄이는 강력한 물수요관리정책 등 다양한 물관리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물관리 분야의 국가 최상위 법정계획인 “물관리기본계획"에 잘 나타나 있다. 2021년 6월 수립되고 2023년 9월 일부 내용 수정을 거쳐서 최종 결정된 제1차 물관리기본계획은 물관리기본법 제27조에 의거하여 2030년까지의 국가 물관리 정책의 기본 목표와 추진방향, 미래의 변화 예측 및 전망 그리고 기후변화에 따른 물관리 취약성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가뭄과 홍수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의 경감 및 예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강한 홍수와 가뭄에 대한 대비책으로 가뭄관리체계의 선진화 및 극한가뭄 대응체계 구축 전략, 댐・하천・저수지 등 기반시설의 홍수안전 강화 및 예방 투자 확대 전략, 그리고 홍수 예보체계의 고도화 및 도시침수 관리체계 강화 전략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댐건설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2022년 11월, 대통령이 주재한 수출전략회의에서 “환경부도 환경산업부가 돼야한다"는 일갈에 2023년도 환경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는 “2023년을 100조원 녹색산업 수출의 원년으로 잡고 2023년 한해동안 20조원의 수출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2024년 발표한 환경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는 타당성 조사 3곳을 비롯하여 신규 댐 건설 10개소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올 7월 환경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출신 장관으로 변경되었고, 신임장관은 취임한 지 한달도 안된 상황에서 기후대응댐 14곳 건설후보지를 발표하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후대응은 허울뿐이고 4대강 사업 후속조치 아닌가? 토목사업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 등 여러 의심과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미래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취지와 노력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하면서도 웬지 설익은 과일을 맛보는 느낌을 받는다. 정부24 사이트에 소개된 환경부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환경부는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을 예방하고 지속 가능하게 관리·보전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중략) 나아가 지구환경을 보전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는 중앙행정기관입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그리고 저성장이라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국가 여건을 감안할 때 환경부도 규제보다는 일자리를 만들고 내수를 확대하고 수출을 장려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환경부 고유의 목적과 업무는 경제성장을 보조하기 보다는 성장 속에서 가려지거나 훼손되는 가치는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따로 있다. 그렇기에 환경부는 환경산업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모쪼록 환경과 경제를 균형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환경부를 기대한다. 조용성

[기자의 눈] 기후위기가 흔드는 밥상…위협받는 식량안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식량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도 그 위기가 실감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치솟아 흔했던 식자재들을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사치품'이 돼가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현상으로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일부 외식업체와 베이커리 체인에서 토마토 공급에 차질을 빚은 것만 봐도 기후위기가 우리 먹거리에 얼마나 깊숙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올여름 폭염과 같은 극한 기후가 농작물 생육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면서 농산물의 수급이 불안정해진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특정 작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배추, 무, 귤, 사과 등 다양한 농작물 가격이 오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농산물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생산성 저하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안정적으로 공급되던 품목들이 이제는 기후위기에 따라 생산량이 들쑥날쑥해지면서 소비자의 식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식량안보 문제는 국민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앞으로 기후위기는 더 빈번하고, 더 강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구가열화로 인해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하는 환경에 살고 있다. 다른 나라들 역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연구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벨기에는 2040년의 기후 조건을 예측해 서양배 재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변화에 맞춰 품종 개발과 농업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대책은 매우 미흡하다. 최근 국정감사에 따르면 5년간 농림축산식품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연구용역을 단 한 차례밖에 발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식량안보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정부는 기후위기로 인해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는 것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에 맞서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대응은 단기적인 대책을 넘어서야 한다. 정부는 선제적으로 농작물 수급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장기적인 연구와 정책을 통해 국민의 식탁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식량안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토종 OTT ‘숏폼’ 콘텐츠 도입 망설일 이유 있나

콘텐츠 시장 내 '숏폼'의 인기가 연일 화제다. 15초~10분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한 숏폼 콘텐츠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이 시작됐다. 현재는 1인당 월 평균 숏폼 앱 사용 시간이 여타 앱의 7배가 넘는 52시간이란 조사 결과가 대변하듯 숏폼은 전 국민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숏폼이 콘텐츠 시장을 점령하면서 롱폼 위주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영역을 확대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최대 관심사는 토종 OTT의 숏폼 콘텐츠 도입 여부다. 숏폼 콘텐츠가 넷플릭스에 밀리는 토종 OTT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OTT 시장의 절대 강자는 넷플릭스다. 초창기 대비 영향력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월간활성이용자수(MAU) 측면 국내 시장 유일한 1000만 앱이다. 넷플릭스의 성장은 '막강한 자금력'과도 맞닿아 있다. 일례로 최근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흥행몰이 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의 제작비는 1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공개를 앞둔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2의 제작비는 1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일부 토종 OTT의 특성상 예능 제작에 100억원을 투입하는 건 부담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데 1000억원을 들이는 건 더더욱 힘들다. 숏폼 콘텐츠의 강점은 적은 제작비다. 2분 이내 드라마 50부작 기준 1억원에서 1억5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흑백요리사의 100분의 1 제작비로 이용자의 관심을 불러오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도 왓챠 외에는 토종 OTT의 숏폼 콘텐츠 도입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왓챠는 최근 숏폼드라마 전문 플랫폼 '숏챠'를 선보였다. 다만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태다. OTT 시장은 결국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이 살아남는 곳이다. 이용자의 관심을 끌어 모으려면 결국 더 나은 '한방'이 필요하다. 숏폼의 인기는 어쩌면 토종 OTT에게 기회일 수 있다. 숏폼 콘텐츠를 통해 막강한 자금력으로 대작을 선보이는 데 혈안이 돼있는 넷플릭스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트렌드는 급변하기 마련이다. 대세가 됐을 때 잡아야 한다. 토종 OTT들이 숏폼 콘텐츠로 반전 드라마를 써 내려가길 기대해본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이슈&인사이트] AI 도입이 주4일제를 가능케 할 수 없을까?

디지털화와 기술 발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나 유연한 근무시간을 경험하게 되면서, 근로자들의 일과 개인적인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요구가 커졌다. 이에 따라 근로자가 주 4일 동안만 근무하고 나머지 3일은 휴식을 취하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인 주4일제는 뜨거운 논쟁 속에 근로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주4일제 도입으로 정해진 업무를 처리할 주간 업무 시간이 줄어들어 업무를 빠듯하게 처리하려 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나 탈진을 초래할 수도 있고, 특히 의료, 소매업, 서비스업 및 제조업 등의 경우처럼, 항상 일정 수준의 시간 인력이 필요한 산업군에서는 주4일제 도입으로 급여를 줄이는 보상 및 급여 문제 발생 우려도 크다. 여러 잠재적인 문제들과 필연적인 문제들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효율적인 업무 재조정과 수많은 업무 프로세스 개선이 필요하고, 실제로 실행하기까지는 예상보다 많은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에 주4일제와 AI 도입의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AI가 보다 멀지않은 시점에 일부 산업에 먼저 주4일제 도입을 가속화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AI는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고, 데이터 분석의 효율성을 높이며, 업무를 최적화하는 등의 기능을 통해 근로자가 수행하는 작업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디지털과 AI 기술 기반의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AI의 역할은 직원들이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결과적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더 높은 생산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 고객 서비스나 데이터 분석, 보고서 작성, 이메일 응답 등의 단순한 작업은 AI 기반의 챗봇같은 시스템이나 자동화 도구로 대체하고, 직원들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집중 및 작업 시간 단축을 가능케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Web 플랫폼을 통해 접수된 고객 문의는 AI 챗봇이 1차 응대를 하여 업무 담당자의 고객 서비스 부담을 줄이고 있다. 더 좋은 사례로, 대만 Chimei Medical Center의 경우, AI 가 가진 수천,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몇 초 만에 분석하여 중요한 경향을 빠르게 도출해내는 데이터 분석 능력,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다중 작업 처리(Multitasking),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 결정 과정의 자동화를 통해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복잡한 업무의 단순화 기능을 통해 의료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AI를 통해 의료 영상 분석을 자동화, AI 기반의 환자 원격 진료와 모니터링, 환자 데이터 분석, AI 기반의 의약품 관리 등을 통해 의료 인력 문제를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환자 기록 관리, 진료 예약, 진단 결과 입력 등의 행정 업무를 AI가 대신케 하면서 의사들은 환자 진료와 치료에 집중할 시간을 더 확보 중이다. 이러한 AI도입 사례들을 의사 부족 문제와 의료 인력의 과중한 업무라는 사회적 이슈와 연결하면 주4일제의 도입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 우리나라의 의료 산업에 시사점이 있지 않을까? 기술은 사회 문제 해결의 강력한 도구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효율성을 높이며, 불평등을 줄이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자동화, 효율성, 정확성, 접근성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를 통해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보다 빠르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인간은 기술 혁신을 통해 기존의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인간의 한계나 자원의 부족을 보완하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언젠가 AI도 인간의 근로시간 단축 뿐만 아니라 행복의 증대를 이끌어내리라 믿고 시도해 보자. 박세원

[EE칼럼] 탄소중립시대 정상적인 에너지 가격의 역할

탄소시대에서 저탄소 무탄소 시대로 전환되는 에너지 전환시대를 맞아 에너지 공기업의 두 축인 전력회사와 가스회사의 누적된 부채와 미수금이 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을 힘들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 에너지전환 속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낮은 에너지 가격은 국가 경제와 민생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에너지전환을 위한 에너지 공급망인 전력망과 인프라 구축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미래에 더 많은 부담과 어려움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2050 탄소중립의 핵심인 에너지의 전기화와 수소 에너지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대한 투자는 도대체 누가 언제 한다는 것인가? 정상적인 에너지 요금은 환경과 기후변화 비용을 포함하고 미래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기후환경 문제를 발생시키는 분야에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에너지 가격의 정의가 아닐까? 잘못된 에너지 요금은 에너지 소비를 부추기고 에너지 수요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한 에너지 소비 감축과 저탄소로의 에너지전환, 탄소의 포집 및 저장 기술 적용 등이 동시에 조화롭게 추진되어야 한다. 한국은 현재 20% 내외의 전기화 비율을 보여주고 있지만 2050 탄소중립 계획에 따르면 이 비율이 45%를 넘는다. 이는 더 많은 에너지가 전력의 형태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가할 전력은 과연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전력원 구성을 살펴보면 전 세계 평균은 석탄 36%, 가스 22% 수력 15% 원자력 9%, 풍력 7%, 태양광 4% 및 기타 6%로 구성되어 있어 화석연료가 60% 정도이고 수력과 재생에너지 구성이 30%에 가깝다. 한국은 석탄 33%, 원자력 30%, 가스 26%, 태양광 5% 및 기타 6%로 구성되어 세계 평균과 비교하면 원자력발전의 구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반대로 수력과 재생에너지 구성이 10% 이내로 낮은 편이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하면 무척 낮은 수준에 속한다. 한국의 2023년도 가격은 킬로와트시(KWh)당 160원 정도로 영국과 이탈리아의 600원대, 일본 호주의 300원대, 미국의 200원대에 비해서도 낮다. 우리의 전기요금은 신재생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유럽국가의 1/3 수준이고 우리와 유사한 에너지자원 빈국인 일본과 비교해도 반값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가 셰일에너지로 에너지 부국이 된 미국보다도 싸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이상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당연히 한 국가의 에너지 가격은 에너지원 부존 현황, 에너지원 믹스의 구성, 신재생에너지 생산량 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국가의 낮은 에너지 자급률, 낮은 원전의 구성비, 그리고 높은 신재생에너지 구성비를 차지할수록 전기요금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93% 이상의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전체 에너지원 구성 중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한국에서 전기요금이 싼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낮은 에너지 가격은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 누적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문제를 넘어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에 대한 전 국민의 올바른 인식개선의 기회를 더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전 국민에게 에너지는 언제나 충분하게 공급받고 있고 값싼 재화라는 인식만 심어주게 될 것이다. 더구나 세계적인 탄소중립 노력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탄소세 부담이 가중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결국 비정상적인 에너지가격은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실현을 더디게 하여 궁극적으로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정상화와 국가의 바람직한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라도 실직적이고 현실성 있는 정상적인 에너지가격 제도를 하루 빨리 실행해야 한다. 신현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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