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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8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 앞에는 아직도 새벽 비의 흔적이 얼룩져 있었다. 인도 곳곳에 흙탕물이 남아 있고, 찢긴 간판이 가드레일에 매달려 덜거덕거렸다. 이 아침, 노란 조끼를 입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여의도는 물론 전국 12개 더불어민주당 시·도당사 앞에 천막을 세우고 있었다. “노조법 2·3조를 지금 당장 고쳐라." 지난 16일, 120만 조합원이 참여했다는 '이틀 총파업' 이후 겨우 일주일 만에 다시 거리로 나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우리나라에는 집중호우가 시작됐고 경남 산청·충남 금산·경기 가평·강원 홍천이 줄줄이 물에 잠겼다. 24일 오전 각 시도가 잠정집계한 피해만 해도 사망 23명, 실종5명, 이재민 1만 4천여 명이다.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들도 상당수다. 다시 지난 23일 아침 여의도 국회 부근으로 돌아가보자. 집회 현수막 뒤로 보이는 한강 물빛은 평소보다 탁했고, 강변 산책로엔 토사가 아직 덜 치워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 전날까지 수해 복구 인력이 모자라 자원봉사 신청을 받던 현장도 어렵지 않게 않게 볼수 있었다. 삽 한 자루, 양수기 한 대가 절실한 그 시간대에 확성기는 다시 높아졌다. 민주노총은 “원청 책임 확대와 손배·가압류 제한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외쳤다. 귀를 기울여보면 취지는 틀린것은 아니다. 지금 수해복구의 삽질 소리와 집회현장의 확성기 소리 중 어느 쪽이어야 맞는가 하는 물음이다. 요즘 우리의 경제 지표는 이미 숨이 가쁘다.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0.2 %로 다시 뒷걸음질했다. 건설투자가 –3.1 %, 설비투자가 –0.4 % 줄었고, 소비마저 움츠러든 상황에서 가뜩이나 빠듯한 하반기 전망은 얼마전 수해현장의 물 폭탄을 맞은듯 내려 앉았다. 여기에 산업 현장을 멈춰 세우는 두 차례 총파업과 이날의 점거 농성이 겹치면 하루 생산 차질이 7천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 예측도 과장이라고 말할수 없다. 국회 앞에 선 노동자들은 '투쟁'을 외치지만, 수해 현장에서 흙더미를 걷어내는 피해 주민들에게는 생계의 마지막 밧줄을 끊어버리려는 '외침'으로 들릴 것이다. 민주노총이 진정 노동존중을 말하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 바램이지만 먼저, 지금이라도 조합원 10만 명 정도를 수해 지역 복구 현장에 투입해 보라. 크고 작은 수해 현장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일손이다. 전국 단위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집단적 힘이 삽과 장화를 통해 드러난다면, 노조법 개정 요구는 설명이 필요 없는 설득력을 얻으리라고 본다. 또 올해 임금 인상 요구치를 물가상승률 수준 아래로 묶고, 경기 반등 시 이익 연동 상여로 보전받는 '딜레이드 보상'을 사용자 측에 제안한다면 공사 현장이 물에 잠겨 납품기일이 밀린 하청업체, 임대료를 걱정하는 영세사업자와 동네 상인들은 이들 연대에 신뢰를 보내줄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애초에 힘없는 하청 노동자를 위한 국민 성금 운동에서 출발했다. 그 봉투 안에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서명이 들어 있었다. 만약 민주노총이 여의도에서 진정으로 받아 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노란 조끼'가 아니다. 그 '노란봉투' 속 마음이다. 불통과 강경 투쟁으로는 공감과 설득이 되지 않는다.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확성기가 아닌 구호의 삽질이고, 청와대 앞 피켓이 아닌 수해 현장 모래포대다.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는 “재난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인간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했다. 민주노총이 이시간 연대의 무게를 증명할 최적의 장소는 수마가 할퀴고 간 수해 현장이다. 지금은 국회도, 대기업도, 영세자영업자도... 모든 국민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 민주노총이 파업 현수막 대신 모래포대 한 장을 들고 진흙 속 복구현장으로 뛰어든다면 이게 진짜 '노란 봉투'다. '노란 봉투'는 국회나 청와대 앞에 던져지는 종이봉투가 아니다. 여의도에는 민주노총 집회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지만 불볕 더위속 복구 현장에는 양수기 엔진이 지금도 세차게 돌고 있다. 집단의 일치된 구호가 항상 연대는 아니다. 그들만의 이익추구이거나 잘못된 관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병헌 기자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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