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이슈&인사이트] 카카오사태, 혁신 막는 명분 삼아선 안돼

지난달 15일 판교 SK C&C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 데이터센터를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가 먹통이 되면서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카카오는 한국에서 국민메신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심지어 카카오톡으로 정부의 각종 주요 공공문서를 신청하고 발급받고 있을 정도다. 이런 카카오톡이 데이터센터 화재로 먹통사태가 발생했으니 전 국민적 재난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태로 디지털 시대에 민간 플랫폼이지만 디지털정전이 국민안전에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항상 사고만 나면 우후죽순식으로 대책들이 남발되지만 이번에도 예외 없이 정부와 국회는 온갖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당국은 카카오페이에 대한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주전산센터 화재 후 백업센터(재해복구센터)가 즉각 가동되지 않은 것은 데이터 이중화 조치가 미흡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방청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민간에서 운영하는 90개 집적정보통신시설(데이터센터)의 재난 안전 관리 합동 실태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독과점을 규율하기 위한 법 개정이나 새로운 법 제정이 필요한지 검토한다. 일반 기업들의 M&A(인수·합병)와는 별개로,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게 따로 적용하는 ‘플랫폼 결합 기준’을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플랫폼 사업자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자는 취지다. 국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카카오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들을 발의하고 있다. 대부분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다. 방송통신 재난관리 기본계획의 수립과 시행 대상에 부가통신사업자 등을 포함하고 주요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이중화·이원화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디지털 정전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디지털정전방지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1일 카카오먹통방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의당도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을 발의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해당 법안이 기존에 존재하던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재난 및 안전관리법과 중복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기존의 정보통신기반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재난 및 안전관리법도 데이터센터 등 주요 정보통신시설 보호를 위한 대책 수립 등 서로 중복된 규제를 하고 있는데 데이터센터가 국가핵심기반으로 지정되면 재난안전관리를 위한 설비를 갖춰야 한다. 또 매년 재난 예방 및 대비, 재난대책을 점검하게 된다. 이들 법안은 법 이름만 다를 뿐 데이터센터를 주요 정보통신시설로 지정해 보호하고 재난·재해에 대응하는 대책을 세워 점검한다는 점에서 이미 중복이다.데이터센터 이중화 등 재난 대응 조치를 강화해 서비스 단절에 철저히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데이터 쇄국정책과 다를 바 없다. IT 인프라는 초고속 연결망과 클라우드의 등장으로 빠르게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선도 전략이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압도적이다. 현대의 IT 기술력 격차는 단순히 삶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넘어 생존을 위협할 정도다. 이번 사태는 ‘국민 메신저’ 역할을 하는 카카오톡 운영사인 카카오가 백업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는 등 국민 메신저에 걸맞은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기업 실패’가 1차적 원인이다. 백업 시스템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 부분이 제대로 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원인이므로 이를 보강하도록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처방을 넘어선 전방위적인 규제는 4차산업혁명의 꽃인 플랫폼 산업을 고사시킬 우려가 적지 않다. 초연결 초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산업혁명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플랫폼산업에서 꽃이 피고 있는데 이를 규제일변도로 몰고 가면 4차산업혁명이 고사될 우려가 큰 것이다. 또한 독과점 폐해로 ‘시장 실패’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가 적지 않다. 원래 정보산업은 규모가 클수록 이익도 증가하고 소비자후생도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산업이다. 획일적인 플랫폼 규제 보다는 카카오의 대안 서비스가 나올 수 있도록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또한 카카오 등 토종 IT업체를 과도하게 규제할 경우 텔레그램 등 대체재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메신저 갈아타기’로 결과적으로 구글, 아마존 등 해외 기업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질 수 있다. 이번 카카오먹통사태를 계기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인 백업센터는 강화하되 과도한 규제로 4차산업혁명의 총아인 플랫폼산업을 죽이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자유시장연구원장

[EE칼럼] 유럽 에너지 위기의 교훈

"우리는 현재 러시아와 에너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 파리와 프라하에서 만난 국제에너지기구 및 다른 에너지 워크샵에서 만난 유럽의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록 포탄이 오고 가는 물리적 전장은 우크라이나이지만, 유럽 전체가 에너지 영역에서 러시아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는 영원히 수입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현재 올 겨울 및 내년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TV 미디어 및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 에너지 위기 문제를 다루면서,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자립에 대하여 방송하고 있고, 많은 시민들도 일상 대화 속에서 에너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지를 논하고 있다. 지난 주 유럽 현지를 방문하여 에너지 전문 기관 및 전문가들을 만나 보니, 심각성과 단호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유럽은 우선 단기 대책으로 올 겨울용 가스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3월 최저점을 찍은 유럽 가스 저장량은 2000만 톤에 불과하였지만,노르웨이·미국·앙골라·세네갈로 LNG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고가의 가격 때문에 구매를 포기한 아시아 국가의 물량과 중국의 LNG 소비 감소에 따른 잉여LNG 등으로 약 5200만 톤의 LNG를 확보하여 2022년 9월 유럽 가스 저장용량의 90%이상인 7200만톤의 가스를 확보하였다. 게다가 평균이상으로 온화한 10월의 날씨 덕에 이제는 재고의 95%가 차서, 일시적으로 가스를 더 채우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으며, 가스 현물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가스 공급의 긴급 확보 이외에도 가스 및 전력 절약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스 이외의 원자력·석탄·석유· LPG 등 다른 대체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노력도 병행하여 일단 이번 겨울에 대한 대비는 어느 정도 하게 되었다.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제 유럽에 매우 추운 겨울 날씨가 오게 되면 가스의 재고는 급속히 소진될 것이고 가스에 대한 우려가 다시 시작될 것이며 가스 현물 가격 역시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유럽의 가스 저장 시설의 재고량이 95%에 달하여 안심이 되는 듯 하지만, 사실 유럽은 LNG보다 파이프라인에 의존하다 보니, 가스 LNG저장 시설과 재기화 용량이 상당히 적어서 안전 재고를 다 확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유럽의 가스 사용량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300BCM인데 현재 가스 저장 시설은 100BCM이어서 3분의 1정도만 저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가스 재고는 일시적인 것으로서 올 겨울 혹독한 추위가 닥친다면 유럽은 가스 위기를 겪을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특히, 금년 겨울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러시아산 가스 기초 재고가 내년에는 거의 바닥 수준에 접근하기 때문에, 내년과 내후년의 에너지 위기는 지금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다각도로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중기 대책으로, 유럽은 현재 LNG 터미널 및 저장 탱크를 늘리는 노력을 발빠르게 수행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저장용량을 빠른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구축이 가능한 부유식 해상 터미널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 또한 가스 구입처에 대한 다각화도 계속 노력하여, 아프리카와 캐나다 지역까지도 LNG 추가적인 수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장기 대책으로는 재생에너지의 보급 속도 가속화, 원자력의 부활 등으로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 완전한 독립 추구를 강화하고 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해외 에너지와 경제 의존도가 유럽 보다 훨씬 높은 대한민국에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3%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어 에너지 안보가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에너지 수입이 올해 200조원에 달하여 무역수지 적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 경쟁력확보에 에너지는 매우 중요하므로 유럽이 겪고 있는 에너지 위기는 곧 우리 경제의 위기이다.유럽은 러시아에게 경제적으로 부흥할 수 있도록 해준 가스를 무기로 사용한 것에 대한 배신에 격분하고 있으며, 러시아를 믿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철저히 반성하고 있다. 향후 어떤 식으로 종전이 되더라도 러시아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이기에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우리나라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를 더욱 우리 스스로 확고히 하여야 한다. 에너지 안보를 위하여 유럽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에너지 안보 전략을 연구하고 재정비하여야 한다. 기존의 에너지 정책의 세가지 축 (Trilemma)인 공급량 확보, 가격 안정 및 환경 보전의 측면에서의 균형을 추구하되, 또 추가적으로 위기에 대한 복원력(Resilience)을 강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아야 할 것이다.우리도 유럽처럼 저장성이 취약한 가스에 대한 에너지 안보 강화가 필요하다. 유럽의 상황으로 가격이 오르고 물량이 부족한 위기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극복할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 단기적으로 2~3년 내에 중동국가에서 도입이 종료되는 약 1000만 톤의 LNG 계약에 대하여, 이를 대체할 도입 물량 확보와 도입선 다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가스 소비 절약, 원전 최대 가동 및 재생에너지·석탄·석유 및 LPG 등 대체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여 가스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중장기적으로도 유럽 국가처럼 재생에너지 및 원전 보급을 더욱 촉진하고 활용하여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며, 가스 저장 인프라를 추가적으로 확보하되 FSRU등 저렴한 혁신 기술을 활용하고, 동맹국 및 주변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여 에너지 안보 능력을 강화하여야 한다. 유럽의 상황을 보면서 에너지 안보는 우리의 삶과 경제 활동에 매우 소중한 것이며, 이론이나 구호가 아닌 실제적인 대책으로 스스로 확고하게 구축하고 점검하여야 할 사항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다.김희집 에너아이디어 컨설팅대표

[기자의 눈] 진짜 데이터 강국이 되는 길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무려 15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가운데, 재발방지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데이터의 활용’이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미 도시의 생활 인구 데이터를 취합해 공개하고 있다. ‘서울 생활인구 데이터’는 서울시의 공공 빅데이터와 KT의 데이터를 이용해 일정 시간대에 특정 지역의 인구를 추계한 값이다. 이에 따르면 참사 당일 이태원1동의 생활인구는 약 7만2000여명으로 이 집계가 시작된 2017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사고 발생 직전인 밤 9시 참사 지점 중심 반경 300m 구역에 최대 3만5980여명의 인파가 몰렸던 것으로 추산됐다. 서울시는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도 공개한다. 서울시 주요 50개 장소에 대한 분야별(실시간 인구, 도로소통, 대중교통, 날씨·환경, 코로나19) 실시간 정보들이 융합된 데이터라 보면 된다. 데이터는 5분에 한번 씩 갱신되고 누구나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통신사의 빅데이터로 충분히 이 지역에 군중이 몰리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대책을 미리 세우지 못했다는 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기자수첩을 위해 서울시의 실시간 도시데이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우려되는 지점도 있었다. 첫째는 이태원 상권의 축소다. 국가 애도기간이 끝난 지난 6일 오후 6시께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를 보면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1동의 예상 혼잡도는 ‘매우 붐빔’이었지만, 실제 인구혼잡도는 ‘여유’로 나타났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라 말을 꺼내기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이 지역 소상공인을 떠올리면 마음이 착잡하다. 두 번째는 ‘부산 엑스포’ 유치전이다. 전세계가 이태원 참사를 목도한 상황에서 우리의 숙원사업이었던 부산 엑스포 유치가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들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던 것을 상기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데이터엔 답이 있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당국의 의지에 달려있다. 재발방지 조치가 하루빨리 현장에 적용돼 ‘데이터 강국’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를 바란다.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 제2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군중관리)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제도적 보완도 해야 한다"고 피력한 바 있다.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위험통제회의는 위험통제 시스템을 통한 인식변화를 안전사회의 필수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기술개발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위험예측 시스템 구축이다. 필자는 지난 1996년 이후 20여 년간의 원전화재방호분야 연구와 현장조사 경험을 토대로 위험통제를 위한 기초자료 분석의 핵심인 ‘위험성 평가’ 방법의 확립을 통한 국가 예산의 투명성 확보와 예산 심의의 중요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예측하기 어려운 비극으로 폭 3.2m의 좁고 경사진 골목에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했다. 군중의 비정상적 움직임에 대한 위험성은 과학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물은 분자의 상태에 따라 기체 상태인 수증기, 액체 상태의 물, 고체 상태의 얼음으로 구분되듯이 군중역학(Crowd Dynamics)에서 개인은 기체 상태와 비교될 수 있다. 1㎡당 사람 밀도인 ‘군중 밀집도’ 가 5명을 넘어서는 경우 ‘위험 단계’로 군중의 흐름이 물결처럼 출렁거리는 상태로 휩쓸릴 수 있다. 한사람이 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걸림돌 역할로 그 위로 겹치는 고체화 현상이 발생해 질식에 의한 사망에 이르게 될 수 있다. 군중 밀집도가 1㎡당 7명을 넘으면 중상 또는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 참고로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집중적으로 사상자가 발생한 지점에는 1㎡당 16명 정도가 몰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압사 사고는 ‘과밀 문화’에 익숙한 우리 시민들이 출근길 지하철역, 환승역, 대형 공연장, 체육시설, 대형쇼핑몰 등 일상에서 접하는 한정된 공간과 장소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대도시의 경우 1㎡당 5~6명이 몰리는 상황이 흔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대규모 군중의 비정상적 이동에 의한 압사 사고의 예방대책 수립에 ‘위험성평가’에 기초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이번 이태원 사고처럼 대형 압사 사고는 선·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세계 어느 도시든 일어났다는 점에서 후진국형 재난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1979년 신시내티 콘서트장 11명 사망, 1991년 뉴욕 농구 경기장 9명 사망, 2003년 시카고 나이트클럽 21명 압사 사건들이 있었다. 영국은 1989년 쉐필드 힐스버러 축구장 100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초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사우디 아라비아의 성지순례 기간 압사 사고의 경우 1994년, 2004년, 2006년과 2015년에 걸쳐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 기술개발을 위한 선진국의 경험적 교훈 여섯 가지와 함께 제도적 보완을 위한 군중안전공학의 학문적 기반인 위험성평가 기법의 소개를 통해 ‘국가위험통제센터’ 설립을 제안하면서 우리 정부와 사회의 인식 개선을 촉구한다.첫째, 군중관리(Crowd Management)는 이미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지침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군중이 모이는 대형 행사주최자는 행사계획을 수립할 때 군중관리계획서(Crowd Management Plan)를 제출하여야 한다. 또한 이 계획서에는 반드시 군중위험평가(Crowd Risk Assessment)가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군중 행동 및 관리로 사람들이 중상, 혹은 사망하는 사고는 화재와 같은 비상사태나 군중폭력과 일부 군중들의 흥분된 상태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건들은 스포츠 행사, 종교 모임, 록 음악 콘서트 등에서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났다.셋째, 문제 및 해결 방법으로 영국, 캐나다, 미국에서 발생한 군중 사건들의 조사보고서와 지침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영국 정부는 1971년 글래스고에서 66명의 축구팬이 군중 충돌로 사망한 후에 운동경기장 군중안전 지침서(Green Guide)를 발행했다. 1980년 신시내티 록 콘서트장에서 11명 압사 사고 이후 설립된 특별 위원회의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최근 문헌은 1989년 95명의 축구팬이 사망한 영국 힐즈버러 경기장 사고에 대한 조사보고서와 함께 브뤼셀과 셰필드에서의 군중 사고 보고서도 있다.넷째, 시간·공간·정보 및 에너지 등 기본 요소로 시설에 대한 수요가 수용능력을 초과하게 되면 빠른 시간 안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1㎡당 약 5명의 임계 밀도에 근접하는 보행자 밀도는 사람 사이에 공간을 남기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수평거리로 3m정도 밀려나는 무의식적인 충격파를 받을 수 있다. 다섯째, 혼잡한 보행자의 압력과 군중을 통한 충격파 효과의 결합으로 임계 밀도 수준에서는 개인이나 심지어 작은 그룹의 사람들이 저항할 수 없는 힘을 생산한다. 군중사고를 입은 생존자들은 군중압박으로 인해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군중에게 짓밟히는 것보다 질식이 더 대표적인 사망원인이다. 여섯째, 군중 관리 및 통제의 차이점으로 ‘군중 관리’는 군중의 행동에 대한 미묘한 심리를 설계 및 운영에 활용한다. 이를 위해서는 군중의 특성과 구성원들의 집단적 동기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인 훌륭한 군중 관리의 대표적인 예는 디즈니랜드에서 볼 수 있다. ‘군중 통제’는 군중 관리가 성공하지 못할 때 강력한 인 방어선을 제공하는 것으로 폭도들의 폭력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경찰 행동을 포함할 수 있다. 북미와 유럽국가의 경우 신고된 이벤트가 아닌 경우 갑작스럽게 인파가 몰려들면 폭동을 의심해서 기마경찰 등 무장 경찰력이 동원되어 길을 막고 인파를 통제하고 해산시킨다. 선진국의 경우 군중안전공학 등 경험과 학문적 기반에 근거한 안전기준과 위험성평가 기법을 활용한 군중위험관리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군중관리를 포함한 재난안전관리가 필요한 대다수 분야에서 위험의 실체를 조사·평가 및 관리할 수 있는 정책과 기능이 부족하다. 윤 대통령은 "관성적인 대응이나 형식적인 점검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고 밝혔다. 필자는 ‘국가위험통제센터’를 설립해 행정부의 위험관리대책 수립·시행을 자문하고, 위험통제방법 및 허용위험범위 등 위험요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플랫폼의 설치·운영을 대통령실에 제안한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기성 전력경제연구회 회장

[EE칼럼] 적설량 관측 국산 신기술에 거는 기대

첫눈, 첫눈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내린 눈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잴 수는 있을까.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어렵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눈이 계속해서 내려도 내린 눈이 녹아버리거나 바람에 쓸려 나가고, 또 눈 자체의 무게 때문에 쌓인 눈이 내려앉을 경우 내린 눈이 모두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강우량(降雨量)과 달리 강설량(降雪量)이라는 말은 사전에는 있지만 기상학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적설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적설이란 특정 시점에 쌓여 있는 눈의 양을 말한다. 강설량과 달리 이는 얼마든지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하다.전통적인 적설 관측방법은 적설판이라는 판 위에 높이를 잴 수 있는 자를 세워놓고 쌓인 눈의 높이를 재는 방법이다. 물론 사람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최근 들어서는 사람이 눈으로 직접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초음파나 레이저, CCTV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지난 2015년 연구개발(R&D)를 통해 세계 최초로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를 개발했다. 이후 기술원은 R&D 성과를 사업화로 이끌어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적설계를 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실제로 현재 전국 방방곡곡에는 모두 400대가 넘는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가 설치돼 있다.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주변 환경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매우 정확하다는 점이다. 초음파 적설계 등 기존의 적설계를 모두 대체할 수 있었던 이유다. 특히 올해는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의 성능 시험 방법에 대해 ‘국제표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 성능 시험은 ‘이러한 방법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국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국제표준으로 등재됨에 따라 우선 기대되는 것은 기상 관측 장비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술력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 향상과 함께 신뢰도를 끌어 올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제표준 개발 단계 중 세계적인 기상장비 회사와 해외 판권 계약을 하고 국외에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 316대를 수출하기도 했다.재해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폭설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확한 관측이 가능한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의 등장은 폭설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폭설의 예측과 대책을 세우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전망이다. 폭설을 정확하게 관측하는 것은 기후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산·학·연이 협력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적설계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고 수입대체뿐 아니라 국제표준까지 만든 점을 인정받아 기술원은 지난 10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주최한 제52회 계량측정의 날 행사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우리나라에서 측우기가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은 지금부터 약 600년 전인 1400년대 중반이다. 특히 세종 24년인 1442년 6월 세종실록에는 측우기라는 이름과 함께 측우기의 길이와 직경 등 구체적인 규격까지 기록되어 있다. 전국적인 우량 관측망이 구축된 것도 바로 1442년이다. 조선시대의 이 같은 측우기 제작과 설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것으로 유럽보다 200년 정도나 앞선다. 유럽에서 측우기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39년이다. 갈릴레오의 제자인 카스텔리가 스승에게 쓴 편지가 남아 있는데 여기에 빗물을 재는 내용이 들어 있다.측우기가 제작·설치된 이후,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우수한 기상관측 장비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의 경우는 측우기 제작 이후 감히 600년 만의 쾌거라고 부르고 싶다. 국내에서 연구개발을 통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상 관측 장비를 개발하고 사업화로 수입을 대체하고 국제표준까지 만든 것은 다초첨 레이저 적설계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600년 만의 쾌거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작은 것 하나를 이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사실이다. 비록 작은 첫 걸음이지만 소중하게 키우고 성과를 더욱더 확산해야 한다는 뜻이다.첫눈은 언제 내릴까.설악산에는 지난달 10일 올 가을 첫눈이 내렸다. 지난해보다 9일 빠른 날짜다. 지난달 24일에는 강원산지 곳곳에 함박눈이 내렸다.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지역은 아직 첫눈이 내리지 않았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에는 11월 10일에 첫눈이 내렸고 2020년에는 12월 10일 첫 눈이 관측됐다.전국에 설치된 다초점 레이저 적설계가 이 글의 독자들에게 첫눈의 설렘을 가득 안겨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안영인 한국기상산업기술원장

[기자의 눈] "흉흉한 게 꼭 세기말 같아요"

"요즘 부동산 시장 국면을 보고 있자니 세기말 당시 느낌이에요." 최근 건설·부동산 업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A씨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세기말 같다"라는 한 마디로 이 뒤숭숭한 상황을 정의했다. 지난 1999년은 2000년 밀레니엄을 목전에 둔 혼란과 불안의 시기였다. 컴퓨터가 2000년을 표기하지 못해 오작동해서 통신이 마비된다는 ‘Y2K’ 가설에 힘입어 지구 종말론까지 확산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공포에 사로잡혔던 때다. 실제로 세기말은 아니지만 2023년 새해를 두 달 앞둔 건설·부동산 시장 국면은 ‘Y2K’ 공포를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 4년 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집값은 1년 만에 초스피드로 하락했다. 올해 집값 하락을 전망했던 전문가들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떨어질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집값 급락은 부동산 경착륙 우려까지 양산했다. 신고가 경신이 줄을 잇던 지난해 여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거래절벽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공인중개업소 한 집 걸러 한 집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종종 들린다. 이사 수요가 많아야 수입이 발생하는 인테리어업체, 이사·청소업체 종사자들도 매출 감소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레고랜드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더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우발채무 우려로 인한 ‘건설사 부도 임박’이라는 지라시가 지난 2일 증권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대형 건설사 9곳이 자금난에 부도 위기를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라시만 보면 ‘조만간 건설사가 다 망하겠다’ 싶을 수준이었다. 결국 지라시에 언급된 건설사들이 모두 내용을 반박하고서야 잠잠해졌다. 하지만 해당 지라시에 언급된 한 건설사는 최근 총력을 다 했던 서울 내 알짜 재개발 사업 수주에 실패했는데 그 원인이 부도설 때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는 게 기쁘지만은 않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한국은행도 연내 추가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되는 한 거래절벽, 영끌족 불안, 건설사 부도 가능성 등은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는 다들 어떻게든 버티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내년까지 이대로 간다면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질 텐데 걱정"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이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증명사진_김기령

[EE칼럼] ‘폴란드’ 낭보, 원전수출에 국가적 역량 결집 계기로

최대 약 40조 원 규모에 달하는 한국형 원전(APR1400)의 수출 물꼬가 터졌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폴란드 최대 민간발전사 제팍 그리고 폴란드 전력공사가 지난달 31일 최대 원전 4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협력의향서에 서명을 했다. 물론 아직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계이지만 폴란드 정부가 본 계약 전까지 경쟁 입찰을 부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3년 만의 쾌거가 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폴란드 수출은 상대적으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폴란드로서는 정부 간 협상 형태로 진행된 원전 프로젝트의 우선권을 미국에 주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폴란드 1단계 원전 사업자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결정된 배경이다. 하지만 바로 이어 3일 만에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2단계 사업의 첫 번째 협력대상국으로 우리나라를 점 찍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민간 주도 사업은 그 특성 상 정부협상과 달리 철저히 기술력과 경제성을 따져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번 수출 물꼬를 틀 수 있었던 이유를 세 가지만 간추려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첫 번째로 들 수 있다. 사실 최근 건설된 원전 중 공기와 예산을 준수한 사례는 UAE에 우리가 건설한 바라카 원전이 유일하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1996년에서 2016년 사이 건설된 83기 원전의 평균 공기는 190개월이었으나 우리나라가 같은 기간 건설한 13기의 공기는 56개월로 약 1/3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의 원전건설 경쟁력을 입증하는 통계다. 이에 더해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은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과 미국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NRC)의 표준설계인증을 모두 취득함으로써 기술력과 안정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둘째 이유는 세계 원전 수요 증가에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잔뜩 움츠러들었던 원전 시장은 최근 탄소중립 조류에 힘입어 훈풍이 불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실질적인 탄소중립의 중요 수단으로 재평가하고 원전 확대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110기의 원전이 계획 중이고, 330기의 원전이 제안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이 442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신규 원전 건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세 번째 이유는 탈원전 정책의 폐기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원전은 안전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일축하고, 국내 원전 생태계 붕괴를 수수방관하는 나라의 원전을 수입할 멍청한 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원전 수입국은 미래 40년 이상 사용할 원전을 구입하려는데, "한국 원전은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며 과거 타령만 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난처함이 측은하기만 하다. 이번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가 없었다면 원전의 수출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올해 말까지 자금 조달 방안, 총예산, 공정 기한 등을 포함한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의 원전사업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금융조달 능력에서 수주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원전건설이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하고 고위험, 장기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이집트 원전의 전체 사업비의 85%에 해당하는 25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연 3% 저금리 차관을 제공하면서 수주에 성공한 반면, 당시 우리나라는 연 8% 이자율로 80억 달러 조달을 제안하여 고배를 마신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저금리 금융 제공 여부가 최종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차원에서 작년 말 지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원전을 제외하고 밀어붙였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이번 정부에서 원전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원전이 녹색분류체제에 포함되지 않으면, 저금리 자금 조달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전 수출은 국가 차원의 거래다. 사업자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가의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고문현 교수, 한국ESG학회 회장 취임

[에너지경제신문 이원희 기자] 고문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한국ESG(환경·사회·지배구조)학회장으로 취임했다. 사단법인 한국ESG학회는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2022 추계학술대회와 함께 열린 임시총회에서 고 교수가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밝혔다. 고 신임 회장은 "매년 5월 초 제주도에서 개최하는 국제 ESG포럼을 통해 ESG 아젠다를 체계화하고, 한국ESG학회가 신뢰할 만한 K-ESG 평가기준을 마련하겠다"며 "세계 ESG 논의를 주도하고 학회에서 마련한 K-ESG 평가기준을 세계로 수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wonhee4544@ekn.kr고문현 교수 고문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기자의 눈] 급변하는 국제정세, 정부·기업 바짝 긴장해야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끌던 홍군은 1934~1935년 ‘대장정’ 당시 2억명이 넘는 민중들을 만났다고 알려졌다. 당시 민심을 얻은 덕분에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마오쩌둥은 병사들에게 "잠자리를 빌렸으면 꼭 이불을 개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전해진다. 품격있는 리더십으로 대륙의 1인자 자리를 꿰찬 셈이다. 그런 그에 대한 평가는 50년대 후반 이후부터 크게 달라진다.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모두 그를 통해 시작됐다. 그의 한마디에 수천만명이 굶어죽고, 수천 년 유산이 파괴됐다.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후기 지도자들은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 1당 독재는 이어가되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권력을 분산한 것이다. 1인 독재가 오래 이어지면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은 알았다. 지난달 열린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이 모든 게 무너졌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3연임을 확정했고 ‘7상 8하’ 등 관례는 모두 깨졌다. 중국 지도부 전체가 시진핑의 사람들이다. 사실상 새로운 장기집권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중국 내 ‘정치 리스크’가 부각되면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사드 보복’을 겪었다. 중국에서 당장 ‘제2의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국과 무역 갈등 국면에서 그들이 어떤 ‘비상식적인 전략’을 구사할지 알기 힘들다.이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유럽 주요국도 정치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며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다음주 열리는 미국 중간선거도 눈여겨봐야 한다. 결과에 따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유예 등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한국은 세계화 국면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으며 성장해온 나라다. 수출로 먹고사는 경제 체질을 완성했지만 탈(脫) 세계화와 신(新) 냉전 시대에 대한 대비는 아직 부족하다.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yes@ekn.kr

[EE칼럼] 탄녹위, 에너지정책에 대한 신뢰와 공감 넓혀야

지구촌은 홍수, 가뭄, 폭염 등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전 세계가 자연재해로 입은 손실이 약 85조원 규모로 추정되며, 2010년대의 기후 관련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1970년대 보다 약 8배 증가하였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137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거나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RE100 확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탄소국경조정세 도입 등 국제사회에서는 탈탄소 경제체제 구축을 위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전 세계 국가들은 에너지 전환과 함께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은 화석에너지 의존을 벗어나고 친환경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2030년까지 총 400조원을 투자하여 에너지 소비의 절감, 공급망의 다변화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 탈탄소 경제체제 구축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패러다임의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0년 12월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고, 2021년 5월에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구심점 역할로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하여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였다. 올 3월에는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되었고 이에 따라 얼마 전에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출범하였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평가해보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2050년의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상응하여 중간목표인 2030년의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함으로써, 기후악당 이미지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국내적으로는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이행기반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 선언 이후 짧은 기간 동안의 압축적인 논의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였고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마련하는데 미흡함이 있었다. 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추진전략’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이번 전략은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계획 수립에 중점을 두고, 충실한 소통과 민관협력을 기반으로 민간과 지방 주도로 탄소중립을 실천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과 분과위원회 수를 절반으로 줄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발표된 지 1년 그리고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된 지 5개월이 흘러서야 나온 것이라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책임 있는 실천, 혁신 그리고 사회적 합의 등을 강조한 점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발표된 탄소중립 녹색성장을 위한 4대 전략과 12대 과제는 우리가 직면한 현안들을 짧게는 2030년까지 길게는 2050년까지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지만, 몇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있다. 우선 올 4월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에너지정책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으로 발표한 것 중 하나인 ‘시장기반 수요 효율화’이다. 주요 내용은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구조를 확립하며,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요금원칙을 확립하고 한전 독점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여 다양한 수요관리 서비스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 대다수는 오래전부터 지금의 에너지가격체계와 에너지산업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2019년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가 가장 높은 정책수단은 재생에너지도 원자력도 아닌 ‘효율 향상’으로 나타났다. 효율 향상을 위해서는 다양한 조치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 기능이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고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가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가격 기능인데 지금 우리의 에너지 가격시스템은 정부와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현안은 에너지 관련 시설에 대한 수용성을 어떻게 높이고,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30 NDC와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외에 현실적으로는 원자력발전의 고준위폐기물처리장 부지, 태양광 혹은 풍력발전 설치 부지, 소각장·매립지 부지, 송전탑 건설 부지 등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2050 탄소중립은 고사하고 2030 NDC 달성도 어렵게 된다. 소통과 합의에 대한 중요성은 모든 정부에서 강조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하는데는 한계에 부딪쳐 왔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소통이 부족했음을 미흡한 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는 어느 한 정부나 정권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와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해당사자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 한 말을 지키는 것이다. 정부는 국정운영원칙 중 하나로 국익과 실용을 강조하면서 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며, 선택된 정책이라도 사후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면 수정·보완하고, 수많은 가능성에 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 이행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출범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