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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최근 부동산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서민들에게 싼값에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추진하던 지역주택조합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서울에만 117곳에서 지역주택조합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 중 많은 지역주택조합들이 사업성 부족이나 위법·부적정한 사업 추진으로 끊임 없는 민원에 시달리며 좌초 위기에 처해있다. 얼마 전 참여한 서울시의 지역주택조합 실태조사에서 2015년 정비사업조합에 대한 실태점검에 처음 나갔다가 기준 없는 업무처리, 부정이 의심되는 계약 체결, 지출 근거가 없는 회계로 황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나마 정비사업조합들은 도시정비법령 개정과 서울시의 조례 개정, 업무규정 도입으로 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의 현실은 이런 개선 전 혼란스러웠던 정비사업조합의 확장판처럼 느껴졌다. 지역주택조합은 도시정비법에 따라 진행되는 정비사업조합과 달리 주택법에 근거해 사업을 추진한다. 인근 지자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해 공동주택을 짓는 방식이다. 주택이 지어질 지역에 토지와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이 주로 조합원이 되는 정비사업조합과 달리 해당 지역과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토지를 매입한 후 건물을 짓는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주택이 들어설 토지를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지역주택조합은 사실 서울과 같이 이미 촘촘하게 개발된 곳에서는 사업성 확보가 쉽지 않다. 사업부지의 50%이상 토지의 사용권원을 확보한 뒤 홍보를 통해 조합원을 모집해 80% 이상 토지사용권원과 15% 이상 토지 소유권을 확보해야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다. 본격적인 사업 절차인 사업계획승인을 받으려면 95% 이상의 토지 소유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처럼 지역주택조합은 홍보를 통해 조합원을 모집하고, 토지도 완전히 새로 확보해야 하니 정비사업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가입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조합원을 모집하는 업체는 조합원 1명 모집할 때마다 보통 2000만∼3000만 원을 받는다고 알려진다. 더구나 주택건설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토지주들에게 유리한 조건의 토지 매매계약계약도 한다. 심지어 과거에는 조합을 대행해 사업을 추진하는 업무대행자 대표가 조합의 임원이 돼 업무대행자에게는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하기도 했다. 조합원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사업에 따른 리스크도 많고 불확실성이 큰 것이 현재 지역주택조합의 현주소다. 도시정비법과 달리 주택법은 지역주택조합 설립 전 추진위원회를 법제화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이 임의단체인 추진위원회가 중요한 업무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사업이 민간사업이라는 이유로 비 법인사단인 이 추진위원회는 정부 규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다행히 2020년 7월 주택법 개정으로 일부 규제가 도입됐고 올해 말 주택법 제94조를 고쳐 지도·감독 대상에 지역주택조합을 포함시킨다는 발표도 있었다. 지금도 추진위원회나 지역주택조합은 100억원이 넘는 계약을 경쟁입찰이 아니라 수의계약으로 하고 있다. 도시정비법이 계약 금액과 업무의 성격에 따라 경쟁입찰과 수의계약 등 세밀한 규정을 둔 것과는 대비된다. 개정된 주택법에서 조합원 모집 때 자격기준 설명의무를 부과했는데도 설명자료나 확인서에 가입 자격 요건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앞으로 자격 결격이 확인되면 책임 소재와 가입비 반환과 관련해 법적 분쟁이 예상된다. 주택법의 기저에는 지역주택조합을 민간사업으로 보고 최소한의 규제만 하겠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토지소유주들이 조합원이 되는 정비사업은 세밀하게 규제하면서 서민들의 내집마련 통로인 지역주택조합은 시장경제 논리에만 맡기는 것은 곤란하다. "‘원수에게 (조합 가입을) 권한다’는 우스갯소리 마저 나오는 지역주택조합을 이대로 두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내집마련 수요자들의 호소에 정부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EE칼럼]에너지 정책,소프트파워로 전환할 때

에너지 시장형성 과정에서 ‘하드파워’(Hard-Power·강한 물리적인 힘)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믿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본다. Hard-Power의 대표 사례로는 1970년대 이래 OPEC의 금수조치 등 각종 행태를 들 수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이후 전개된 유럽,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와 중국을 위시한 사회주의 진영 간 천연가스, 석유 규제와 반발 등이 새로운 ‘Hard-Power’로 등장했다. 에너지 문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동·서간 냉전(冷戰) 구도가 형성됐다. 여기서 중국을 주목해야 한다. G2 국가로 등장한 중국은 러시아 편을 들면서 미국과의 세계 패권을 다투고 있다. 여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새로운 분란을 초래하고 있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러시아와 확장된 산유국 카르텔(OPEC+)을 결성하고 산유국 주도 에너지 시장 구도의 영속화를 기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친(親)미국 전략을 포기한 것이다. 바야흐로 석유 등 에너지가 세계질서의 분절화(分切化· Fragmentation)와 블록(Block) 대결을 조장하는 형국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이런 Hard-Power 대결은 지속될까? 그렇지 않을 조짐이 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래 50여 년의 에너지 시장 왜곡 역사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 사례로 최근 사우디와 러시아를 주축으로 하는 OPEC+ 분열과 석유 시장의 반응이다. 이달 초 OPEC회의에서 사우디는 7월부터 자발적으로 하루 100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발표했다. 지난 4월 하루 50만 배럴 감산 조치에 추가한 것이다. 내년 말까지 감산 연장도 가능하단다. 그러나 러시아는 추가 감산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우크라 전쟁 후유증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의 자발적 추가 감산에 대한 국제원유가격 변화는 미미하다. 북해 브렌트유의 경우 지난 4월 70달러 후반 수준에서 지금은 75달러 안팎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WTI도 비슷한 수준이다. 국제경기 불확실성과 미국 석유 재고 증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빈 살만이 주도하는 ‘네옴시티’ 사업 등의 대규모 투자비 조달을 위해서는 석유 가격이 80달러 이상 유지돼야 한다. 다급하다. 산유국 Hard-Power의 끝물의 씁쓸함을 대변하는 것인가? 학계에서는 이미 Hard-Power의 시대가 끝나고 소프트파워(Soft-Power)시대가 오고 있다고 본다. 미국 하버드대의 조셉 나이 (Joseph Nye) 교수는 그의 명저 ‘Do Morals Matter? 2020’에서 Soft-Power 시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Soft-Power란 ‘강압보다 매력 발산으로 원하는 바를 달성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개념은 놀랍게도 2007년 중국 후진 따오 주석이 2007년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외교 전략의 중심 논리로 채택했다고 나이 교수는 말했다. 중국은 마오쩌뚱 정권 출범 이래 강한 인민 통제 정책을 지속했고 외교에서는 영토에 관해 인접국들과 충돌을 불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내부 경제사회 성장에 필수적인 국제 선린관계 증진은 불가능했다. 이때 중국 실무진은 나이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또 다른 Soft Power 전략의 주요 사례로는 기후변화대응을 꼽을 수 있다. 지구 온난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UN 당사국총회보고서(IPCC 2021)다. 지구 문명 유지를 위해서는 2040년 대기 온도를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하 상승으로 유지를 권고했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 기술개발과 보급이라는 전형적 Hard Power 전략이 주로 활용됐다. 그러나 대기 온도는 지난 2년간 이미 0.07도나 올랐다. 이는 산업화 이후 현재까지 1.14도가 올랐음을 의미하며, 2040년 허용목표에 근접한다. 따라서 1.5도 이하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이에 긴급하게 온실가스감축 기술개발이라는 전형적 Hard Power 전략보다 변화에의 적응(Adaptation)능력을 높이는 Soft Power 정책의 중요성이 부쩍 강조되는 추세다. 정부보다 민간과 지역사회의 자발적 추진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다. 에너지분야 최대 현안인 우리나라 전기요금 조정도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전기요금은 명목상 한전이 공지하는 것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환경부 등 유관 부처들과 그 산하 기구들이 개입한다. 각종 NGO와 학계 등도 제 몫을 챙기려 한다. 상위 의사결정권자의 명확한 지침이 없으면 아예 논의가 시작되지 않는다. 늦장 전기요금 조정으로 한전 경영 적자는 올해만 7조원에 달하고 누적분은 40조 원을 넘는다.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나이 교수 등 관련 학자들은 Soft Power전략 추진을 위해서는 ‘심층-중간 단계의 즉각적 이행’을 강조한다. 이는 정부 주도 전략에서는 불가능하다. 입법, 재원 조달, 이해 당사자들 간의 조정, 이행기구 설립 및 평가 등 각종 이행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관료제 형식주의(Red Tape)의 전형인 셈이다. 특히 에너지와 같이 시장실패 가능성이 큰 부문에서 소비자 보호와 국익 증진을 핑계로 극성이다. 시장경제 논리 강화 등 기존 처방으로는 안 된다. 경제와 공학 논리로 해결방안 도출에 한계가 있는 사회비용, 개인 행복의 폭 등 많은 미지의 영역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이 참에 모든 에너지 관련 정책체계를 Soft Power 관점에서 재점검하는 것은 어떨까?최기련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

[기자의 눈] 쿠팡-CJ

[에너지경제신문 서예온 기자] "쿠팡이 CJ제일제당 상품 직매입 중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CJ의 브랜드력이 아쉽지 않은 게 아닌가." 최근 유통 및 식품 업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이커머스 1위 쿠팡과 식품 1위 CJ제일제당 간 납품가 갈등을 바라보는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CJ제일제당이 햇반과 비비고 등 고객 충성도가 높은 인기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음에도 쿠팡이 CJ제일제당 상품 직매입 중단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로 CJ 핵심상품이 없어도 쿠팡 매출에 큰 타격이 없을 것이란 ‘관전평’이었다. CJ와 쿠팡은 지난해부터 거래상품의 납품가격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CJ가 쿠팡이 제시한 마진율이 과도하다며 개선을 요구한 반면, 쿠팡은 CJ의 납품가가 비싸다고 반박하며 충돌했던 것이다. 급기야 쿠팡은 지난해 11월부터 햇반·비비고만두 등 CJ 주요제품 발주를 중단한 이후 반년이 넘도록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CJ가 쿠팡의 빈자리를 다른 경쟁사들로 채워가는 등 ‘반(反) 쿠팡연대’ 움직임을 강화하자, 쿠팡도 지난 11일 CJ를 향한 공개 저격으로 해석될 수 있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쿠팡 자료의 핵심은 중소·중견기업 즉석밥 제품의 판매가 급증했다는 내용이었고, 자료에는 ‘수십 년간 독점체제를 구축하던 독과점 식품기업’, ‘특정 독과점 대기업이 독식’ 등 CJ를 암시하는 표현이 담겼다. 유통사와 제조사 간 ‘마진 갈등’은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쿠팡과 CJ제일제당 갈등이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상 이커머스 1위와 식품 1위 간 대립하는 구도 때문이다. ‘갑 vs. 갑’ 싸움인 것이다. 국내 소매시장 초창기에 유통사와 제조사의 역학관계는 동등했다. 이후 제조사가 인기상품을 선보이고 대리점이 존재하던 당시엔 제조사가 갑으로 부상했다가 할인점(대형마트)의 등장으로 다시 유통사가 갑이 됐다. 그런데 코로나팬데믹으로 이커머스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태와 맞먹는 업태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쿠팡과 CJ 간 마진 갈등은 어찌보면 과거와 달라진 이커머스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과를 속단할 순 없지만 햇반과 비비고와 같은 인기상품을 대체할 수 있는 후발주자 상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쿠팡에 더 유리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pr9028@ekn.kr서예온 기자수첩 사진 유통중기부 서예온 기자

[EE칼럼]유엔 안보리 재진입, 한반도

한국은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한 192개국 중 180국의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11년 만에 다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지위를 확보했다. 이로써 한국은 내년부터 2년간 비상임이사국으로서 안보리 활동을 하게 된다. 1996~1997년과 2013~2014년에 이어 세 번째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에게 있어 안보리 재진입은 그 의미가 실로 크다. 2년 동안 유엔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안보리의 이사국들과 수시로 만나면서 여러 가지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한국이 안보리에서 최우선시할 수 밖에 없는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No Deal)’ 이후 북한 핵문제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 사이 북한의 핵능력은 더욱 고도화되고 미사일 도발은 일상화됐다. 더구나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서방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구도에서 북한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실마리를 찾기가 절망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핵 없는 한반도’는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다음 세대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이를 달성해 내기 위해서는 남북한과 주변 4강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시야를 확장해 보다 많은 지역의, 보다 다양한 나라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될 만한 것이 바로 ‘그린데탕트’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에 함께 대응하기 위해 남북간 ‘그린데탕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110대 국정과제’ 안에 그린데탕트를 포함했다. 한반도가 우리 민족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이상, 한반도 전체의 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현 세대의 엄중한 책무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그린데탕트는 가치가 큰 정책 목표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북한의 환경 파괴는 이미 고질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다. 기상청에 의하면 한반도는 온난화가 전 지구의 평균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며 북한의 상황이 남한보다 더 심각하다. 기후위기가 한반도의 생태안보를 위협하고 자연재해의 규모와 강도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데,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와 그로 인한 재난상황은 사회기반시설이 취약하고 경제가 폐쇄적인 북한에게 더욱 위협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반복적인 재난 상황에 의해 노출될수록 북한 사회는 더욱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고, 이런 사회적 불안은 결국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더욱 위협적이고 도발적인 행위를 자행하게 하는 동기로 작용할 수도 있으므로 한반도 평화에도 부정적이다. 반복적인 자연재해와 재난상황은 북한의 생산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식량안보, 생태안보, 에너지안보는 물론 인간안보까지 위협하면서 북한 당국이 갈수록 위법적이고 국제사회에 위협적인 행위를 반복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도 기후위기에 매우 민감하다. 북한은 2014년 ‘재해방지 및 구조·복구법’을 제정한 데 이어 2019년에는 ‘국가재해위협감소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2021년 7월13일에는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자발적국가검토보고서’(VNR·Voluntary National Review)를 발간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이행 동향을 유엔에 제출하기도 했다. VNR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보편적인 목표로 여겨지는 SDGs의 달성을 위해 17개 목표와 함께 95개 세부목표를 선별하고 132개 이행지표를 제시한 바 있다. 북한 나름대로 유엔 회원국으로서 책무를 이행하면서도 동시에 SDGs 달성을 위한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안보리에서도 북핵 문제와 더불어 북한의 자연재해 및 재난 상황과 이로인한 생산성 저하, 생태안보 및 인간안보의 위협적인 부분 등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상황을 더 많은 국가들이 인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가 확산될수록, 바꿔 말해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공고해질수록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와 그린데탕트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북미, 북중, 북러, 북일 같은 양자 구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지금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신냉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대립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리 활동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국가들이나 북한과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에 있는 유럽 국가들이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안보리 내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런 담론을 형성하면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함께 남북한 그린데탕트의 계기를 만들기를 주문한다.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주원 칼럼]국책 vs. 민간 연구기관 경제전망 함수

모든 경제연구기관들은 나름의 경제 모형이 있다. 다만, 그 경제 모형을 통해 나온 결과는 그 모형을 구성하는 다양한 대내외 경제 변수 중 어느 것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는지, 그리고 현재와 과거 데이터 중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나아가 지금이 통상적이고 평화스러운 경기 사이클 상에 있는 지, 아니면 이례적이고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 있는 지에 따라 모형에서 도출된 결과를 그대로 인용할 수도, 아니면 일정 부분의 오차를 허용할 수도 있다. 경제 전망이라는 방정식은 단순한 수학 문제가 아니어서 정확한 솔루션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 복잡한 문제는 경제전망이 정태적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 전망 작업을 하는 이 순간에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들은 변화하고, 올해 남은 6개월 동안 전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크고 작은 대내외 여건들도 그 변화 폭은 물론이고 변화의 방향성마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처럼 하반기 경기에 대한 연구기관들의 시각이 ‘상저하고(上低下高)’와 ‘상저하저(上低下低)’로 극명히 갈리게 하는 보다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바로 전망의 뒤에 숨어 있는 함수다. 상저하고는 상반기보다 하반기 경제 상황이 개선된다는 ‘U’자형 경로를 가진 다소 긍정적인 관점의 전망이고, 상저하저는 상반기에 경착륙된 경제 상황이 하반기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L’자형의 비관적 전망이다. 한국은행이나 KDI와 같은 국책연구기관들은 대체로 ‘U’자형의 상저하고 전망을 유지하고, 민간 연구기관들은 ‘L’자형의 상저하저를 전망하는 곳이 많다. 국책 연구기관들이 하반기 경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재 비록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기가 거의 끝났다는 시각이 많지만 그렇다고 바로 금리 인하 국면으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민간에서는 고금리로 자금시장이 경색돼 기업들이 투자를 멈추고, 가계 부문에서는 대출에 대한 이자부담이 크게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고금리가 경제를 죽이는 ‘과잉대응(over kill)’의 이슈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하반기 경제가 침체를 보일 것이라는 발언을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누가 봐도 ‘L’자형 경기 추세의 책임은 한국은행 탓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저하고에 목을 매는 것이다. 최근 KDI가 그동안 부진했던 경기가 저점을 지나 반등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 즉 상저하고를 시사한 것도 나름의 메시지를 가진다. 그동안 일부 민간연구기관에서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건전성 제고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추경 불가 입장을 고수한다.이런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상저하저의 장기 불황 국면이 아닌 하반기에 상황이 좋아지는 상저하고의 경기 진단이 필요할 것이고, 이를 백업할 수 있는 국책 연구기관의 목소리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굴지의 대기업들마저 줄줄이 실적이 크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민간 연구기관들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금리 인하나 추경 등 경기를 받칠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활성화 대책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러니 하반기 경제 상황을 좋게 전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국책과 민간 연구기관들의 ‘메시지 전망’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 옳을 수 있고 모두 틀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하반기 경제 상황이 정부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기를 정말 바란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국민들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그리고 한국 경제도 기지개를 켜고 날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하반기 상황이 모두가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상저하고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도박을 하기에는 실패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최강야구’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자막이 자꾸 생각난다. "야구는 결과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믿음은 잘못된 결정이 된다." 어찌 야구만 그렇겠는가. 세상사 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경제도 결과론, 결과가 좋지 못하면, 지금의 ‘상저하고라는 생각에 따른 무대응이 옳다’라는 믿음은 모두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잘못된 결정이 된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대중 수출 감소, 편중 바로잡을 기회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수출이 푹 줄었다. 대신 미국으로 가는 수출이 확 늘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조만간 최대 수출대상국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뀔 거란 전망이 나온다.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대중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면 한국 경제도 쪼그라들까?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겠지만 긴 눈으로 보면 오히려 대중 의존도를 줄일 기회다. 너무 쫄지 않아도 괜찮다는 얘기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대미 수출 증가세지난해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중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2.8%로 1위를 기록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2018년 26.8% 정점에 비하면 꾸준히 하락세다. 같은 기간 미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6.1%로 2위를 기록했다. 아직 중국보다 낮지만 꾸준히 오름세다. 올 1~5월만 보면 간격이 더 좁혀졌다. 중국시장 비중은 19.6%에 그친 반면 미국시장 비중은 18%로 높아졌다. 이런 추세라면 순위가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대중 수출 왜 줄어드나국제금융센터(KCIF)는 세 가지 원인을 든다(‘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 위축 원인 분석 및 시사점’·2023년 2월). 먼저 중국 경제가 코로나 봉쇄정책 등으로 위축됐다. 세계 경제도 긴축 영향권 아래 있다. 여기에 미·중 반도체 분쟁에서 보듯 보호무역주의도 가세했다. 둘째, 한·중 경제가 예전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전환했다. 과거 한국은 중간재(자본재) 수출로 대중 특수를 누렸다. 중국은 중간재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미국 등 세계 시장에 팔았다. 중국 수출이 늘어나면 한국 수출도 늘어나는 구조다. 하지만 중국은 2015년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한 뒤 기술력 향상에 온힘을 쏟고 있다. 한국에서 수입하던 중간재를 상당수 스스로 만들 능력을 키웠다. ‘제조 2025’ 전략은 2025년까지 한국과 프랑스, 2035년까지 일본과 독일, 2049년에는 미국을 따라잡는 게 목표다. 중국이 첨단 기술력을 갖추는 것은 시기의 문제일 뿐 현실적으로 추세를 막기는 어렵다. 셋째, 한국이 중국 내 생산공장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으로 대거 이전했다. 이 결과 대중 수출이 준 대신 아세안 시장이 수출 주력시장으로 급부상했다. ◇차이나 특수 오래전에 끝나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만나 "중국이 최대 (무역) 흑자국에서 최대 적자국으로 전환되면서 (한국) 경제가 많은 곤란에 봉착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싱 대사는 "일각에서 탈(脫) 중국화 추진을 시도한 것이 더욱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이 대중국 협력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고 중국 시장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순응하며 대중투자 전략을 조성하면 중국 경제 성장의 보너스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싱 대사가 제시한 해법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이후 한국 경제가 꽤 오랜 기간 차이나 특수를 누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차이나 특수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경고가 잇따랐다. 중국통인 지만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물과 금융 양 분야에서 2014년이 정점"이라고 분석했다. 지금 우리가 중국 산업구조의 변화에 ‘순응’한다고 해서 성장의 ‘보너스’를 누리는 단계는 지났다. ◇대중 의존도 줄일 기회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외 수출시장 발굴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강조했다(‘대중국 수출부진과 수출시장 다변화 추이 분석’·2023년 6월). 보고서는 "지난해 중국행 수출은 4.4% 감소했으나 중국을 제외한 수출은 9.6%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보고서는 중국을 대체할 수출 호조 국가로 미국, 인도, 호주를 꼽았다. 산업연구원(KIET)은 최근 ‘제2차 세계화의 종언과 한국경제’라는 보고서에서 근본적인 이슈를 제기했다. 보고서는 "GATT 체제 출범 이후부터 반세기 이상 지속된 제2차 세계화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GATT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으로 1947년 출범했고, 1995년 WTO 체제로 대체됐다. 보고서는 세계화의 종언과 함께 "한국경제에서 수출주도형 성장도 사실상 종료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교역 환경이 보호주의적이거나 블록화로 치닫는 것을 막고, 민간소비와 수출이 성장을 동반 견인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대응책으로 제시했다. 전체 수출의 4분의 1가량을 한 나라에 의존하는 구조는 불안하다. 하필 그 나라가 외교적으로 종종 마찰을 빚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길게 보면 대중 수출 감소는 편중된 교역 구조를 바로잡을 ‘감춰진 축복’일 수 있다. <경제칼럼니스트>대중 수출이 푹 꺾였다. 반면 대미 수출은 큰 폭으로 늘었다. 대중 수출 감소는 지역 편중을 바로잡을 기회다. 사진=연합뉴스

[기자의 눈] 日 오염수 방류문제, 과학적 논리만큼 정치적 설득도 중요

올해 여름도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느낌이다. 각자 계절이 바뀌었다고 느낄 만한 일상의 변화들이 다르겠지만 그중에서도 ‘여름이 왔다’고 가장 체감할 수 있는 건 더위와 모기소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매일 지나는 거리를 걷는데 유난히 땀이 많이 나거나 한밤 중 ‘윙’ 하는 소리 때문에 단잠에서 깨어난다면 여름이 시작된 거다. 더위와 모기소리, 불청객이 따로 없다. 물론 이게 없으면 여름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더위와 모기소리로 짜증이 점점 솟구치는 올해 여름 우리에게 또 다른 불청객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하기로 한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류 설비 시운전을 시작했다. 최근 후쿠시마 근해에서 기준치 이상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우럭 등이 발견됐다. 다시 오염수 방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 정부의 결정을 강제로 번복시킬 권한은 없다.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필요한 건 정치권의 설득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빠진 요소도 바로 설득이다. 설득의 기본은 공감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설득할 때 상대방의 의견을 공감해주는 것으로 시작해 내 의견을 공감시키는 게 기초 작업이다. 이런 소통 과정을 거치면 아무리 팽팽하게 대립했던 의견일지라도 서로 한 발씩 양보하면서 맞춰가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시찰단을 두고 비판이 잇따르는 이유는 이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기가 다가오면서 커져가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고자 일본 현지에 시찰단을 파견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제약이 많았던 시찰단의 활동부터 공감이 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시료 채취를 할 수 없었고 민간 전문가도 포함되지 않았다. 현장을 방문한다고 해도 시찰단이 주도적으로 오염수 농도를 측정할 수 없었다. 시찰단은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소속 전문가 19명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소속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 등으로만 구성됐다. 국민들은 제한된 시찰 활동으로 마련된 시찰단의 보고 결과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로만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단 파견에 대해 ‘도움이 될 것’(40%)보다 ‘도움이 되지 않을 것’(53%)이라는 응답이 많기도 했다. ‘왜 시찰을 갔는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공감이 어설프니 설득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정부에서 준비한 근거 자료들이 국민들을 설득할 만큼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과 가까운 해역에 우리 정부 자체적으로 오염농도를 측정할 시스템을 마련한다는 등의 ‘막을 수 없다면 우리 땅에서 만큼은 철저하게 감시하겠다’는 배짱이라도 부려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는 과학과 다르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지금의 정치권은 국민을 어설프게 설득하려고 한다. 국민들이 왜 불안해 하는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왜 충돌하는 지 그 핵심을 파악해 명확히 알린 뒤 정보의 이해도와 공감대를 높이고 정치·외교적으로 설득을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claudia@ekn.krclip20230612121552

[EE칼럼]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분산형 에너지

국회가 지난달 25일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무탄소 전원’으로 알려진 소형모듈원자로(SMR)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여당이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는 야당과 모처럼 뜻을 모든 결과다. 특별법은 기존의 중앙집중형 발전소 건설과 장거리 송전망 구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지역별 전기요금제도 가능해진다. 인류가 전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한 세기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벌써 전기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영국이 어디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는 석탄을 활용해서 산업혁명을 일으키기까지 50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전기는 초지능·초연결의 미래 사회를 실현하고,전 지구적 과제로 자리 잡은 기후 위기 극복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에너지다. 그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사회적으로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혐오시설이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사고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력·화력·원자력이 모두 그렇다. 그렇다고 전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인류가 선택한 해결책이 바로 중앙집중형 전원이다. 발전소의 규모를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에 대규모 발전소를 세우면 오염 해소와 사고 대응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줄어든다. 그런데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력의 생산과 소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규모 송전탑의 구축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2005년에 시작된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겉으로는 송전선로에 흐르는 초고압 전류에 의한 위해성을 걱정하지만, 사실은 일방적으로 전기의 혜택을 독점하는 대도시에 대한 거부감이 표출된 것이다. 그런 거부감을 무작정 지역이기주의라고 탓 할 수만도 없다. 결국 이제는 발전소를 짓는 일보다 발전소에 생산한 전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해주는 ‘계통연결’이 훨씬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분산형 전원은 이런 난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대규모 중앙집중형 전원을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동안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해왔던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이 애써 숨겨왔던 분산형 전원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최근 산업부가 확정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2036년까지 무려 56조5000억 원의 시설투자를 해야 한다. 맹목적인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지난 정부가 2021년에 밝혔던 제9차 계획(29조3000억 원)의 2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센터와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 수요를 무시해버린 결과다. 올해 초에 산업부가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4년의 최대전력수요는 116.2GW가 아니라 126GW로 늘어난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동안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른 송·변전 설비도 추가로 갖춰야 한다. 설비를 갖추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구축해놓은 송·변전 설비의 운용에 소요되는 비용 문제도 심각하다. 한전이 감당해야 하는 운용비용은 설비의 사용효율에 반비례한다. 효율이 떨어지면 설비운용비용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분산형 전원인 태양광·풍력의 하루 가동시간은 연평균 3시간을 넘지 못한다. 그마저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널 뛰듯 출렁거린다. 제주와 호남에서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해주는 해저 초고압직류송전선로(HVDC)의 경우에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제정신을 가진 민간 사업자라면 절대 투자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아직도 망국적인 탈 원전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산업통상자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분산에너지 특별법 제정으로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질 대규모 투자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온전한 착각이다. 산업부가 계통의 안정성을 핑계로 아무 보상도 없이 무작정 밀어붙인 ‘출력제한 제도’는 힘없는 영세 사업자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분산형 전원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한전의 관리 능력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최첨단 송배전 관리도 최소한의 전문성이나 사회적 책무성조차 기대할 수 없는 수많은 영세 사업자로 구성되는 분산형 시스템에서는 기술적으로도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간헐성·변동성 극복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찾지 못한 재생에너지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분산형은 아직도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미래 기술이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슈&인사이트]선관위 사태의 진정한 의미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갈수록 태산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자녀 경력 채용과 관련한 특혜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만들어낸 탈선이지만 그들이 가장 공정해야 할 선거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공직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로 그 독립성과 공정성 유지를 위해 사법부 법관들을 위원장이나 위원으로 위촉했고, 그들이 당연히 법률과 상식에 따라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의 믿음을 철저히 배신했다.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는 불공정 경력 채용 의혹은 물론이고, 선관위 직원들이 선거 때만 되면 대거 휴직했다는 것에는 아연실색하게 한다. 채용 과정은 이미 많은 언론에 보도돼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만, 한마디로 불공정과 불의(不義) 그 자체다. 이 정도면 선관위원 전원이 즉각 사퇴하고 감사원 감사는 물론 전국의 선관위 조직 전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과거의 모든 채용 과정에 대한 공정성 여부를 낱낱이 따져야 한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수사 대상인 사무총장과 차장 외에는 단 한 명도 이 사태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이 없다. 감사원 감사도 거부하다가 여론에 떠밀려 제한적으로 받겠다고 나섰다니 범죄자가 수사를 거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선관위원으로 위촉된 그 많은 법관들의 공정성과 사회 정의에 대한 의식이 이 정도라면 국민은 그들에게 더 이상 선거관리라는 중책을 맡길 수 없다. 선관위 자녀 채용 의혹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특권의식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전체 모습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 때의 조국 사태를 보자. 조국 부부는 자식의 대학입시에 필요한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수많은 비상식적 행위를 했고, 그 상당수는 이미 법원 판결을 통해 위법성이 입증됐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자식의 시험도 대리로 쳤다니 그 부성애는 알아주어야겠다. 문제는 유죄판결과 재판이 진행 중인데도 그들은 전혀 잘못했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한 죄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국 부부의 진정한 죄는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사기와 거짓말, 각종 문서 위조 등 불법행위로 사익을 취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불의를 만연하게 만들었고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조국만이 아니다. 추미애는 군 생활 중인 자식의 편의를 위해 압력을 행사했고, 정치자금을 가족들의 식사에 썼으면서도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니 사법고시를 패스할 정도의 머리로 솔직히 그것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냥 잘못한 것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 인사들만이 아니다. 과거를 살펴보면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식들의 취업을 도운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정치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식 취직을 위해 애쓰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그래서 우리 사회에 부모찬스가 만연한 것이 사실이고, 부모가 힘과 능력이 없어 차별받는 젊은이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또 그들의 부모들이 "미안하다, 아빠가 조국이 아니라서"라고 회한을 갖는 것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자신이 성취한 결과에 따라 그 자리에 간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재력이나 권력을 갖게 된다. 정치나 경제, 사회의 주요 인사들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윤리와 도덕 수준을 요구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고위층 인사들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허용된 권한과 권력으로 사익을 추구함으로써 공동체 유지에 꼭 필요한 공정과 정의, 자유로운 경쟁의 원칙을 훼손한다. 선관위 사태를 놓고 서로 잘못과 책임을 전가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 사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 함께 정의와 공정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기자의 눈] 재생에너지 가동중단 보상 준비됐나, 덴마크서도 논란 대상

태양광 사업자들이 전력당국의 재생에너지 가동중단(출력제어) 조치에 반발해 지난 8일 광주지방법원에 출력제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태양광 협회들은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에 대해 전력당국이 보상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보상하는 문제를 논하는 데 앞서 과연 전력시스템은 보상할 충분한 여건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이 지난달에 덴마크 전력당국 관계자들을 초청해 진행한 ‘덴마크 출력조절에 대한 보상정책’ 토론회에서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보상하는 건 전력공급량이 수요량보다 많으면 전력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는 제도를 갖춰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덴마크 전력당국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에 대해서 보상하고 있지만 출력제어를 할 정도면 발전량이 넘치기 때문에 전력가격이 크게 하락한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보상할 때 그리 비싼 전력가격으로 보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심지어 그는 전기를 팔면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마이너스 가격도 덴마크 전력시장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이는 시장논리에 따라 실시간으로 전력가격이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덴마크의 전력시장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전날 전력수요량을 예측해서 발전사업자를 대상으로 필요한 전력량만큼 입찰을 진행한다. 가격은 입찰한 발전원 중 연료비가 가장 비싼 발전원을 기준으로 정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력가격대로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보상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36년에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보상으로 해마다 1조6808억원이 필요하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그럼에도 태양광 사업자들이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조치를 영업중단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반발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한 사업자는 억울하다며 출력제어를 해야 하는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도 타당해 보인다. 덴마크에서도 재생에너지 출력제어가 억울한 사업자는 있을 테다. 덴마크 전력당국 관계자에게 출력제어 보상액에 대한 논란이 있냐고 묻자 그는 "덴마크에서도 빠르게 전력망을 연결해준 사업자에게 출력제어 대한 보상을 얼마나 해줘야 하는지 논란이 있으며 현재 제도를 설계 중"이라고 답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덴마크의 전력시장과 비슷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입찰제도가 하반기에 제주도에서 시작돼 곧 육지로 확대된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보상문제는 새로운 재생에너지 시장이 자리잡아야 논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wonhee4544@ekn.kr이원희(증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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