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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K-방산이 나아갈 길

최근 세계의 무기 시장에서 한국의 제품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의 무기체계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전하였으며, 현재는 세계적으로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랜 시간 한국의 무기는 정부의 보호와 지원으로 한국군의 전투력 향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북한의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제 한국의 무기는 적을 순식간에 압도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주로 활용되었던 한국산 무기들은 기존의 기술력과 결합하여 세계 무기 시장에서도 훌륭한 실적을 만들었다. 이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신뢰도가 향상되면서 한국의 방위산업이 한반도를 뛰어넘어 국가 경제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산업’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방위산업이 만들어 성과를 살펴보면, 한국의 방위산업이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무기를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한 일부 국가들은 외적, 내적, 이념적 측면에서 무기의 국산화를 강조하고 자신들이 해당 지역의 무기 생산 거점으로 도약하고자 산업화를 강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국가들이 무기 수입에 있어서 지금은 한국의 최대 고객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강력한 경쟁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들의 국내 정치 상황이 변화하면 얼마든지 기존 한국과의 방위산업 관계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지속적인 방위산업 분야의 발전과 수출 확대를 위해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정보의 획득과 안정적으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사실 한국의 방위산업은 최근의 법제 개정과 협의체 발족 등으로 점차 체계화 또는 선진화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방산안보국제컨퍼런스 등이 개최되었다는 점은 국내에서도 정부와 산업, 그리고 학계가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앞으로 방위산업의 안정적인 관리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부-산업-학계 네트워크 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최근 국제사회와 각국에서 심각하게 취급되는 산업정보의 보호와 관리 문제는 육성-발전형 방위산업 정책을 유지한 한국이 국제시장으로 진출하면서 관심을 두어야 하는 부분이다. 방위산업에 관련된 집단들이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외부적으로는 보호 및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와 산업, 그리고 학계는 긴밀한 각종 소통의 창구를 구축하여 기술개발, 품질인증체계, 국제방위산업 시장의 평가, 나토표준(STANAG) 등 관심을 가져야 할 표준제도, 방위산업 관련 정책연구에 이르는 광범위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수행되도록 해야 한다. 각자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평가하고, 후속세대 양성을 통해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이뤄야 한다. 이러한 체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법제적 관점에서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한국은 이미 방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책과 법규를 가지고 있는데, 그동안 방위산업의 육성 정책과 관련 규범이 한반도 안보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안보적 관점의 육성 정책에 더해 관련 산업의 기술 및 정보 개발과 보호를 위한 관리 정책과 규율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국제사회의 방위산업 시장에 한국의 관련 기업들이 활발하게 진출해 실적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기술 및 정보의 보호와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국 방위산업의 수출 전략이 유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 방위산업 시장의 요구를 충족할 필요가 있다. 원활한 수출을 위해 방위산업 물자에 대한 ‘국가-정치적 보증’이 아닌 ‘국제품질인증제도’를 획득하는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책과 법제의 보완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인정기구(KOLAS)에 정식 등록된 인증기관의 확대 또는 신설을 통해서 국제품질인증을 부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방위산업 관련 기업이 이러한 정식 인증기관을 통해 국제품질인증을 획득하는 과정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제를 신설·개편해야 한다. 방위산업은 전통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는 중요한 분야이며, 과거 한반도의 특수성에 따라서 보호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들은 최근에 이 분야의 산업적 측면에도 관심을 가지고 경제적 이익을 얻는 대상으로 활용해 성공했다. 4차 산업혁명과 기술 패권의 시대에서 한국의 방위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의 혁신과 정보의 관리, 그리고 시장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방위산업 성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기술개발과 안정적인 생산과 제품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더욱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EU연구소 소장

[EE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 시나리오별 아웃룩으로 개편해야

전력수급기본계획(전력계획)의 목적은 이름에 나온 것처럼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잘 맞춰보자는 것이 핵심이다. 전기사업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전기사업법 제25조 제1항에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하여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전력수급의 안정이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 전기사업법 제25조 제7항에는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기본계획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8조에 따른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부합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정도의 규정으로는 꼭 지키지 않더라도 ‘노력’만 하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5항을 보면 ‘노력’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다음 각호의 계획을 수립·변경할 때에는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목표 등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2호에 전력계획을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도대체 전력계획을 수립할 때 전력수급 안정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부합하도록 해야 하는가? 문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분명하게 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전력수급 안정이란 말은 다소 모호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맞는 계획을 입안하고 전력수급 안정이란 목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안 하는 것이 속 편할 수 있다. 담당 정부부처의 입장에서 실무적 목적은 다를 수 있다. 한전의 내부 계획이었던 ‘전원개발계획’을 전기사업법에 규정해야 했던 이유는 전력계획에서 명시된 설비계획을 근거로 발전설비에 대한 건설허가를 내리고 원전 등 발전설비와 관련된 복잡하고 다양한 허가를 ‘전원개발에 대한 특례법’을 통해 일괄적으로 의제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점에서 정부 입장에서 전력계획을 수립하는 실용적인 목적은 사실상 발전설비에 대한 건설허가를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력계획은 2년마다 수립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2년 후에 다시 세우고 바꾸게 될 계획을 뭐하러 조급하게 2년마다 수립하는가? 그 이유는 2년 사이에 새로운 발전설비의 건설허가를 내줘야 발전설비가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건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착공을 해야 발전설비가 몇 년 후에 속속 준공되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은 2년 후의 일은 급하지 않다. 당장 재임기간 동안 발전설비를 착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전력계획의 결론으로 정부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설비건설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설비건설이라는 정부의 실질적 목적은 사실상 발전량을 토대로 파악하는 전력수급의 안정과는 크게 동떨어질 수도 있다. 지난 10차 계획에서 2030년에 발전량 23%를 담당하던 LNG를 불과 6년 후에 9%로 줄여버렸다. LNG 설비는 그럴듯하게 건설한다고 계획하더라도 수익성이 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하는 LNG 발전설비를 누가 건설할지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런 수준의 LNG 발전량은 LNG 장기계약 물량을 적게 잡도록 하는 셈이어서 수요 증가시 LNG 스팟물량을 추가시켜 국내 천연가스 소매가격과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된다. 지금까지 정부는 이 목적, 저 목적에 맞추기 위해 곡예를 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질적 목적인 수급안정,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충 아젠더의 제시, 탈원전(또는 그 반대로 원전 확충), 그리고 실무적 목적인 설비건설 계획의 확정 등 여러 목적을 어떻게 포장하고, 그 실질적 효과를 어떻게 거둬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이제 정부는 솔직해져야 한다. 전력계획을 시나리오별 아웃룩(outlook)으로 바꿔서 다양한 목표와 함께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를 병행해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하고 솔직한 게임을 하는 것이 낫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기자의 눈] ‘먹통 코리아’ 오명 벗으려면

[에너지경제신문=정희순 기자] 국가 전산·통신망의 잇단 장애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전용 행정망 마비를 시작으로 국가 전산망에 발생한 장애는 총 6차례. 정부는 뒤늦게 범정부 대책 TF를 발족해 다음 달까지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사태 수습 과정에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무능함은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사태로 꼬박 하루 동안 각종 증명서 발급과 수당 신청 등 1300여 가지 항목의 행정 서비스가 마비됐는데, 빠른 복구는커녕 국민들은 영문조차 몰랐다. 정부의 긴급 안내 메시지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발표한 것도 사태 발생 8일 만이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전산망 마비로 인한 ‘먹통’ 현상은 최근 몇 해 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2021년 10월에는 1900만명이 사용하는 KT 통신망이 멈추면서 점심시간 식당의 카드 결제부터 증권사 거래까지 ‘먹통’이 됐고, 지난해 10월에는 카카오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 서비스가 중단 됐다. 지난달에는 LG유플러스의 유선망에 문제가 생겨 일부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먹통 사태’로 따끔한 질책을 받은 기업들이 경험을 통해 세운 대응 매뉴얼의 포인트는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빠른 복구 △이용자 공지 △정확한 원인 규명 △적절한 피해 보상 등이다. 이번 행정망 마비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영 시원치 않게 느껴지는 것도 결국 이 요소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카카오톡 먹통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따끔하게 질책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KT는 ‘먹통’ 사태 당시 약관상 배상 기준(연속 3시간 이상 장애)에 못 미치는 1시간 30분가량의 통신 장애에 대해, 10배에 달하는 고객 요금을 감면하는 400억원 규모 보상안을 내놨다. 카카오는 당시 대표이사가 사퇴했고,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5000억원대의 보상안을 발표했다. LG유플러스도 유선 인터넷 접속 장애 피해자들에게 당일 요금과 장애시간 10배 해당하는 금액을 보상하기로 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피해를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민간에만 엄격한 ‘내로남불’ 정부는 아니길 바란다. hsjung@ekn.kr정희순 정희순 산업부 기자.

‘한국 반도체장비 선구자’ 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 별세

[에너지경제신문 윤소진 기자]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반도체 장비 1세대 기업인 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이 4일 향년 85세로 별세했다.1938년생인 곽 회장은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이천전기공업을 거쳐 1967년 모토로라코리아에 입사, 14년간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 한미반도체의 전신인 한미금형을 설립했다.그는 국내 반도체 장비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곽 회장은 약 42년간 현장을 진두지휘했다.곽 회장이 1998년 개발한 대표 장비 ‘비전플레이스먼트’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320여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공급되고 있다. 최근 한미반도체는 인공지능 반도체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필수 장비인 ‘듀얼 TC 본더’를 개발해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 시가총액 1위로 도약하기도 했다.반도체 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곽 회장은 2013년 우수자본재 개발유공자로 선정돼 기업인으로는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1년에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을 맡아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높였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약 계층 아동을 위한 의료 지원, 장학 사업, 교육 사업 등을 후원하며 평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힘썼다.한미반도체는 고인에 대해 "고객 만족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장비 국산화의 초석을 다지고 국내 반도체 장비 1세대 기업인으로서 국가 발전에 공헌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고 전했다.장례는 한미반도체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이며 조문은 4일 오후 2시부터 진행한다. 유족으로는 아들 곽동신 한미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 딸 곽혜신·곽명신·곽영미·곽영아씨가 있다. 발인은 6일이다.sojin@ekn.kr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

[EE칼럼] 1980년대 수준 못벗어나는 에너지효율화시스템

21세기 들어 정보통신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는 생활 여러 분야에서 스마트한 혁신을 맛보고 또 즐기고 있다. 휴대폰은 우리의 스마트한 생활을 이끄는 대표적인 기기로 통신과 자료검색은 물론이고 카메라나 리모컨 같은 다른 전자기기의 역할도 하고 더 나가 금융 거래와 최첨단 AI 기능까지 모두 탑재해 다음 단계로의 혁신을 이끌어가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통신 분야의 혁신과 발전은 다른 분야로 전파되어 사회 전체의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너지 분야는 이제 더 이상 그렇지 못한 것 같다. 1980년대 에너지산업은 우리나라의 혁신을 앞서서 이끌었다. 막 석유위기를 넘어선 당시, 우리나라는 전력망 건설 및 관리체계를 완성해 건국 후 처음으로 전국 어딜 가나 TV, 냉장고 등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00%가 넘는 전기보급률과 0%에 가까운 정전발생률 덕분에 선진국보다도 좋은 전기를 정전 걱정없이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다 천연가스의 도입으로 연탄난방 시대를 끝내고 보다 편안한 겨울을 나게 되었다. 도시가스, 열병합발전 등 당시 개발된 난방시스템은 지금도 신도시와 고층아파트에 사용되며 밤중에 연탄을 가는 수고없이 따스한 겨울을 지낸다. 천연가스는 버스의 연료로도 사용되며 도시의 매연가스를 줄여 생활 편의를 크게 높여주었다. 이렇듯 1980년대에 일어난 전기 및 천연가스의 사용은 편안하고 청정한 생활을 가능하게 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반면 정보통신산업은 아직 전화기의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정보통신산업은 민간의 대형투자와 혁신적인 기술개발로 CDMA에서 5G에 이르는 무선통신 개발, 디지털화, 서비스 다양화 등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이에 비해 에너지산업은 제자리에 머무르며 혁신 속도도 후퇴하고 있다. 게다가 정보통신 분야의 혁신과 발전을 전달받아 에너지 분야에 적용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서비스 다양화의 부재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정보통신산업과 달리 서비스라는 게 달랑 ‘전기’ 하나 뿐이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전력망을 활용한 부가서비스가 전혀 없다. 정보통신 분야의 다양한 요금제나 편리한 서비스 등은 그림의 떡이다. 한마디로 소비자는 스마트한 행동을 할 수 없고, 단지 더 쓰고 돈 많이 내거나 아니면 덜 쓰고 덜 내거나의 두 가지의 선택만이 가능하다. 겨울철 난방이나 여름 냉방 수요 급증으로 인한 에너지 효율화 수단에서도 1980년대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 등 끄기, 냉난방 온도 제한, 차량 10부제 등 클래식한 방법들 말이다. 첨단기술을 사용해 에너지소비를 스마트하게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 독일은 21기 들어 LEEN(Learning Energy Efficiency Network) 사업을 적극 펼쳤다. 지역별로 기업들이 모여 에너지절약을 위한 유한회사를 만들고 이들을 지방정부와 대학, 연구기관이 지원하는 참여형의 자율형 에너지효율개선제도이다. 2002년 시작해 현재까지 1000여개 기업이 혜택을 보고 있다. 이 방식은 무엇보다 지역 중소기업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원하는 정보의 공유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는 정보분석 및 정보서비스 사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독일의 지방 중소기업들은 자신들의 소비패턴이 반영된 스마트한 에너지소비가 가능해졌으며 이로 인하여 고용증대는 물론 독일 제조업의 국제적 경쟁력이 향상되었다. 스마트한 소비와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함께 유도한 스마트한 정책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스마트 소비를 시행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직 미미하다. 다양한 요금제도와 수요자에 맞춘 서비스 공급이 없기 때문이다. 휴대폰 사용 요금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휴대폰에서 직접 변경이 가능하다. 빅 데이터로 적절한 요금제도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기 등 에너지 요금은 실시간으로 알 수 없으며 요금제도 옵션이 없다. 이건 전기나 가스요금을 올리는 것과 무관하게 시행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기술들이 에너지 분야의 혁신을 이루어내는 것만이라도 북돋아 주면 한다. 이렇게해서 국민과 기업들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스마트한 에너지 수요관리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이슈&인사이트] 필수전문인력의 반사회적 집단이기주의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을 개선하고 보건의료인을 적시에 공급하는 노력은 일부 전문인에게 한정된 권리나 의무가 아니다. 초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필수인력의 충원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시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보건의료 관련 학과의 증원 과정을 바라보면서 답답함과 초초함을 동시에 느낀다. 의대정원이 2006년 이후 17년째 3058명으로 묶여있다 보니 의사 수 비중은 주요국의 30~40%에 불과한 실정이다. 약학대학 정원은 2008년 20개 대학 1210명에서 2011~2019년 사이에 17개에서 신설돼 2020년 기준으로 37개대학에서 입학정원이 1753명으로 15년만에 45% 증원됐다. 간호대학 정원도 2008년 이후 16년간 2배 증가하며 올 해 간호대 입학정원은 2만3183명에 달한다. 과연 수요예측과 대응은 합리적이었을까?의사인력 부족으로 사회경제적 위기가 표면화되었고 응급처방까지 필요한 지경이지만 속시원한 해결안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전문인력의 충원이 대학정원 충원의 단순한 문제만도 아니다. 신생아 수가 감소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지원자는 2년 연속 미달이다. 2022년도 전공의 모집에 소청과 수련의 충원율은 23.9%였으며, 2023년도 전반기 모집에서도 16.6%에 그쳤다. 이런 현상은 가임 여성 감소세와 출생률 저하로 2000년대 초부터 예견됐다. 유인책으로 소청과 전문의 수련기간을 3년으로 1년을 줄였지만 충원율 개선에 효과가 거의 없었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입시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절벽현상’도 예견됐었다. 대학정원 감축을 유도한다던 대학평가제는 효력을 상실했고 자율적 구조조정이란 명분 하에 전국의 대학들은 각자도생을 선택한 형국이다.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필수인력의 양성, 공급 조정역할에 대한 정부와 전문가 그룹의 책임은 막중하다. 인구감소와 생산성 저하, 지방소멸이라는 파괴력을 예견했던 역대 행정부와 전문가, 학자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적으로 경고했었다. 그러나 몇 몇 분야의 문제점은 오히려 심화되고 개선될 가능성 조차 요원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2027년까지 초·중등교사 채용규모가 20~30% 줄어든다. 교육부의 2024~2027년 중장기 초·중등 교과 교원 수급계획에 따르면 2025년 초등교사는 2900~3200명 선발 예정인데, 올해 신규채용 3561명과 비교하면 10.1~18.6%가 줄었다. 신규 초등교사 600명 이상이 내년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게다가 2026~2027년도 신규채용은 2600~2900명으로 최대 27%나 줄어들 전망이다. 미래사회에 대비한 필수인력의 증원이나 감축은 범국가적 전담기구를 갖추고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관련 기관의 전문성과 책임감 강화도 필요하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1년 1만명이던 변호사 수가 2020년에는 3만1757명으로 10년만에 2.5배 이상 늘었고 2025년에는 4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변호사 급증에도 변호사가 개입된 법률수요도는 제자리 걸음이다. 대법원이 집계한 2020년도 민사 본안 1심 사건 총 91만3000건 가운데 변호사 선임 없는 ‘나홀로 소송’은 71.2%에 달한다. 그리고 2015년 70.4%, 2017년 75.7%, 2019년 71.4% 등 70%대가 유지되었다. 변호사 수는 50% 이상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법률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도 심각하다. 필수전문인력의 추산과 공급이 현실과 괴리가 크고 법률, 교육, 보건의료 서비스가 현장에서 체감되지 못하는 원인과 체계를 신속히 손질해야 한다. 필수 의료공급, 연금개혁, 청년실업, 저출산, 탄소배출감소와 같은 시급한 국가적 난제의 해결은 서둘러야 한다. 정부의 원칙에 입각한 행정역량, 파업 등 반사회적 집단이기주의 표출은 자제하면서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며 해결안을 도출하려는 이익단체의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전문가 정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방준석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 대한약국학회 회장

[기고] 도시가스산업에 대한 오해와 이해

우리나라 가구의 85%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도시가스는 전기와 함께 주요 범용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편리하게 경제적으로 도시가스를 사용하면서도 도시가스와 도시가스산업에 대한 인식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고 오해가 많은 점이 이채롭다. 이하에서는 도시가스와 도시가스산업에 대한 오해의 관점을 살펴보고 소비자들의 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째, 오해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도시가스를 전력과 같이 국가 또는 공기업이 공급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일반도시가스사업자는 명명백백 사기업이다.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허가를 받은 34개 민간 기업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해서 도시가스회사까지 공급해 주는 도입 및 전국배관망 공급사업은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도시가스를 공공재(public goods)로 인식하는 오해이다. 공공재는 국방이나 치안, 도로, 항만 등과 같이 시장원리에 의한 공급과 가격이 결정되면 시장의 실패 등 민간이 공급하기에 한계가 있고, 대체가 불가능한 재화이다. 즉,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경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화이다. 반면 도시가스는 민간기업에 의해 40년 이상 공급되고 있는 경쟁적이고 대체가능한 에너지이다. 전력과 경합하며 지역난방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따라서 도시가스는 공공재가 아니며,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적 재화이다. 셋째, 국제 천연가스시장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올라가면 도시가스회사의 이익이 대폭 늘어난다는 오해이다. 도시가스요금 결정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소비자들의 오해는 말끔히 불식될 수 있다. 도시가스는 소비자요금의 약 90% 정도가 도매사업자인 한국가스공사의 원료비와 공급비용 및 세금으로 구성된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원료비만 인상되는 것이지 도시가스사의 추가 이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10%에 불과한 도시가스사의 공급비용은 지방공공요금으로 분류되어 지자체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도시가스사의 이익은 사업자가 투자한 자본에 대한 투자보수만큼만 가질 수 있는 구조이다. 이는 도시가스사의 영업이익이 1~2%에 불과한 이유이다. 최근 15년간 도시가스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의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가 0.17에 불과한 점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넷째, 도시가스는 위험하고 전기는 안전하다는 인식도 많지만, 도시가스가 전기보다 휠씬 안전하다고 본다. 최근 10년간 정부 통계를 살펴보면, 전기사고 사망자가 도시가스 사고 사망자 보다 17배 많고, 사고 건수도 전기가 수십 배 많다. 어떤 에너지든지 소비자가 스스로 안전수칙을 지키고 사용하는 점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도시가스를 사용하면 유해 물질이 나온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고등어 파동으로 촉발된 유해 물질 논쟁은 전기레인지나 가스레인지 모두 조리 과정에서 미세먼지 등이 발생하는 것이지, 에너지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레인지 판매사업자들의 얄팍한 상술에 불과한 과대·허위광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미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에너지복지 포퓰리즘의 확대 요구는 도시가스를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공공재적 성격은 있으나 엄연히 사적 재화인 도시가스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거나 최소한의 규제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천연가스는 현존하는 에너지원 중 안전하고 가장 청정한 화석 에너지임에도 불구하고 전전화(全電化)의 미명 아래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에너지로 낙인되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의 가교 역할에 가장 충실한 천연가스의 역할을 과소평가 한다면 탄소중립은 요원할 것이다. 천연가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지금부터라도 바르게 정립되길 바란다.정희용

[데스크 칼럼] 리메이크

홍콩H지수발 ELS(주가연계증권) 공포가 다시 한 번 금융권을 뒤흔들고 있다.아직 정확한 손실 추정치가 집계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ELS 중 상반기 만기 도래 금액은 약 8조4100억원에 달한다. 홍콩 H지수가 남은 기간 급반등하지 않는다면 손실 확정액은 3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해당 상품을 대거 판매한 은행에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은행들은 AI 등을 통해 상품 가입 과정에서 설명이 충분했고, 사모펀드 사태 이후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준수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하지만 투자자들의 반박도 만만치가 않다. 판매 과정에서 대면 설명의 일부 녹취가 없는 점, AI의 설명 과정이 너무 빠르고 요식행위라서 해당 ELS의 위험성이 충분히 고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다.문제는 양측의 어느 입장이 맞더라도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손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금융당국이 불완전 판매를 인정한다면 은행 등은 천문학적인 손실을 떠안아야 할 것이고, 이는 주가지수 연계 상품과 같은 파생상품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ELS 판는 중단된 상태다.반대로 불안전 판매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집단소송과 같은 후폭풍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안전한 투자상품으로 여겨 은퇴지금을 ‘올인’한 다수 노년층의 재산이 공중분해 된다면 내년 4월 총선을 뒤흔들 뇌관으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충분하다.이번 ELS 사태가 불거지는 과정에서는 사실 여러 부분의 허점들이 보인다.우선은 해당 손실이 이미 올해 초부터 충분히 예고됐다는 점이다.이번에 문제가 된 홍콩H지수 ELS도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통상 3년)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 상품이다. 홍콩H지수가 과도하게 하락하면 눈덩이처럼 손실이 커진다는 의미이다.샤오미, 알리바바, 중국공상은행 등 유수의 기업이 포함된 홍콩H지수는 이미 중국 경제 성장률이 꺾이며 지난 2021년 고점 1만2000포인트에서 2022년 10월 5000포인트 이하로 급락해 녹인(원금손실 하한선)구간이 발생했다.두 번째는 홍콩H지수와 연계한 ELS 사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2015년 유동성버블 붕괴 기간에도 지금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국내에 ELS 판매가 허용된 2003년 이후 세 번째 같은 문제가 터지는 셈이다.세번째로는 안전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많은 은행에서 사태가 촉발됐다는 점이다. 중·고위험 상품인 홍콩H지수 ELS 대부분을 은행이 판매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판매 잔액은 20조5000억원으로 이중 15조8860억원어치가 은행의 몫이다.ELS는 근본적으로 증권상품이다. 하지만 은행은 ELS를 묶어 펀드나 신탁의 형태로 만들어 판매했다. 이는 투자성향이 공격적이고 리스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증권사 고객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한번 더 포장해서 안전추구형인 은행 고객에게 판매해 수익을 올렸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는 은행에 고위험 ELS 판매를 허용하며 예고된 사태를 곪아 터지게 손 놓고 있던 금융당국의 책임도 가볍지가 않다. 은행을 상대로 "자기 면피만 한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호통이 난처해지는 지점이다.김현우 자본시장부장

[기자의 눈] 매도 리포트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매도 리포트 내면 욕만 먹는데 누가 쓸 수 있겠어요." 금융당국이 매수 일색인 증권사 애널리스트 리포트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나섰지만 증권업계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다. 취지는 이해하나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기업과 주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매도’ 목소리를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지난달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 사이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역대급 사건 이후 애널리스트들은 매도 리포트를 더욱 꺼리는 분위기다. 당시 투자자들은 해당 애널리스트를 막아서고는 그의 가방을 붙잡고 항의 겸 비난을 쏟아냈다. 그가 이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된 건 이차전지 대표주에 대해 매도 리포트를 작성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한 주식 채널에 출연한 A 증권사 관계자가 "B 종목은 현 시점에서 매수하기엔 너무 오르긴 했다"고 스치듯 언급하자 해당 증권사에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말 한마디로도 강성 주주들에게 공격을 받는 상황이니 매도 리포트를 작성하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위가 된 셈이다. 애널리스트들에게는 투자자의 항의전화만큼이나 기업과의 관계성도 리포트 작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부 대기업들은 매도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에게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기업 탐방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도 리포트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1년 동안 국내 30여개 증권사가 낸 매도 리포트는 전체의 0.12%에 그쳤다. 이에 금융당국은 올 초부터 증권사 리포트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테스크포스(TF)를 꾸려 방안 모색에 나서고 있다. 매도 리포트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도 변화는 필요하다며 관행 개선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변화는 환영하지만 무턱대고 매도 리포트를 강요할 게 아니라 매도 리포트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며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과거와 같은 명성은 찾지 못하더라도 신뢰도가 추락하는 건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과 증권업계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투자자들도 달라져야 한다.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는 무분별하게 헐뜯으면서 정체가 불분명한 불법 주식 리딩방을 좇는 행태가 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애널리스트의 의견이 본인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존중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giryeong@ekn.kr증명사진

[윤석헌 칼럼] 과점이익이 가린 은행의 역할 부족

지난달 2일 비상경제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에 이어 은행권의 과도한 이익추구를 재차 질타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갑질을 해서 돈잔치를 벌이는데, 이는 은행이 과점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자꾸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지, 은행의 독과점 행태를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10월말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을 ‘은행의 종노릇’에 비유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은행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질책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났으며 관치금융을 부추겼다. 은행의 과점이익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은행 대형화를 추진한 결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은행은 정부가 주도하는 게임의 룰에 따라 열일 했을 뿐인데 이제와 초과이익을 문제 삼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다. 은행시장은 비대칭정보가 넘치는 불완전시장으로 지나친 경쟁은 금융안정에 문제를 유발하고 자원배분의 양극화를 초래하여 소상공인들의 ‘종노릇’ 피해를 악화시킬 수 있다. 한편 금융은 규제산업인데 은행 행태를 나무라면서 금융당국의 방치를 나무란 것은 고작 팔이 안으로 굽은 정도다. 모두가 힘든 요즘 은행의 역대급 이자이익과 보너스 잔치 소식은 씁쓸하다. 그러나 이들은 개별 기업의 경영문제에 불과하며, 저비용조달과 담보대출로 짜여진 소위 ‘천수답 경영’에 안주해온 은행의 취약한 중개역할이 문제다. 만약 은행이 그동안 중개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초과이익이나 보너스 잔치는 모두 장려할 일이 아닐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보너스 잔치 질책 보다 은행의 중개역할 부재 극복이 절실한 과제임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세 가지 대안을 살펴본다. 첫째, 최근 금융권 등에서 논의되는 상생금융은 하책에 불과하다. 본래 상생금융은 은행의 당연한 책무다. 고객이 살지 못하면 은행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상생금융은 대증적이고 강제성을 지녀 관치금융에 가깝다. 그래서 이익 환원을 핑계로 정작 중요한 중개역할 활성화에는 눈 감을까 우려된다. 이자부담 경감이나 대환대출 확대 등을 압박하지만, 법과 제도에 의하지 않는 방식이 은행과 고객간 상생관계를 오히려 해치고 한국금융의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효과를 끼칠까 우려된다. 출연금이나 기부금을 확대하여 서민금융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 역시 서민의 곤경 해결 보다 은행의 배 불리기로 기울어 상생금융 본래의 취지를 벗어날 수 있다. 둘째, 상생금융과 함께 논의되는 횡재세(windfall tax)는 이자이익의 일부 환수라는 점에서 공통되나, 국회의 결정으로 관치 비난을 벗을 수 있어 중책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은행의 이자이익 일부를 횡재로 보는 이유는 은행이, 별다른 역할도 없이, 시장금리 상승에 편승하여 기존대출의 대출금리를 조달금리보다 빠르게 인상함으로써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국내은행 대출의 60~70%가 금리연동형인 현실에서 은행은 금리상승시 과거 조달한 기존대출의 조달금리가 아직 변하지 않았음에도 대출금리를 시장금리 또는 수신금리에 맞춰 상향조정함으로써 횡재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횡재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시장왜곡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왜곡의 교정효과가 기대된다. 횡재세원으로 차주고객의 횡재손(이자부담 증가)을 메우면, 소비와 투자 위축 및 신용위험 확대를 예방할 수도 있다. 다만 횡재세의 은행 중개역할 활성화 효과가 제한적임은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셋째로 상책은 천수답 경영으로 대변되는 은행의 기득권을 줄여 중개역할 활성화를 유도하는 안이다. 예로 지난 6월 7일 본지 칼럼에서 필자가 제안한 ‘주담대정책 이원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저축은행과 신협 등 비은행의 주담대 점유율 상승과 은행의 점유율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은행 수익의 단기적 감소가 예상되나 인적·물적 자원을 절감하여 고객 니즈 맞춤형 비이자이익 업무 개발에 사용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거래형 금융이나 초과형 금융을 개발하거나 자영업자에 대한 컨설팅 및 지원 확대를 고려할 수도 있다. 한편 은행 자본규제에 대마 프리미엄을 추가하거나 경기대응완충자본(CCyB)을 시행하는 것도 건전성 요건 강화를 통해 천수답 경영 유인 축소에 기여할 것이다. 한국금융의 해묵은 과제인 은행의 천수답 경영 해소에 금융당국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올바른 금융개혁안이 제시되어 국내은행의 역할 강화를 이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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