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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반도체 전쟁, 한국의 선택은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요약> 미·중 반도체 전쟁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었다. 주한 중국 대사의 ‘도발적인 언행’이 논란을 불렀다. 당장 마이크론 이슈가 코앞에 닥쳤다. 단기적으론 미국과 한 배를 타는 게 현명해 보인다. 장기적으론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략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관건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반도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래야 국익을 지킬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 특히 반도체 전쟁이 한·중 갈등으로 번졌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듣는 자리에서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다"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외교관이 한 말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직설적이다.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에서도 한국은 미국 편에 섰다. 중국 외교부는 9일 "현재 중한 관계는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싱 대사를 두둔했다. 한국 외교부는 즉각 반응했다. 9일 외교부는 "장호진 1차관이 싱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싱 대사의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에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집권 국민의힘은 9일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김기현 대표는 특히 이 대표를 겨냥해 "싱 대사가 작심한 듯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하는데도 이 대표는 짝짜꿍하고 백댄서를 자처했다"며 "교지를 받들듯 고분고분 듣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처럼 막말" "오만의 극치" "삼전도의 굴욕" "겁박, 훈수, 조공" 이란 말까지 나왔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G2 패권 경쟁을 승리로 이끌 비장의 카드로 반도체를 꺼냈다. 반도체는 산업 경쟁력은 물론 국가 안보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지 오래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다. 싫든 좋든 미·중 패권 다툼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싱하이밍 논란’은 그 전초전이다. 당장 코앞에 마이크론 이슈가 닥쳤다. 한국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 G2 반도체 전쟁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트럼프 대통령과 스타일이 딴판이지만 한가지는 똑같다. 바로 중국 때리기다.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은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에 서명했다. 미국 반도체 산업 중흥이 목표다. 이어 10월엔 대중 반도체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사실 미국 반도체 산업은 지금도 세계 최강이다. 바이든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에 접근하는 통로를 아예 막으려 한다. 동시에 한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동맹에게도 동참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도 초청국 정상으로 참석했다. G7 공동성명은 대중 경고문구로 가득 찼다. 그 직후 중국은 반격의 포문을 열었다.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의 제품 구입을 금지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 메모리 기업이다. 2022년 기준 마이크론 전체 매출에서 중국 시장은 11%가량을 차지한다. ◇ 한국에 불똥마이크론 퇴출은 곧장 한국으로 불똥이 튀었다. 마이크 갤러거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5월 23일 성명을 내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워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이어 6월 2일엔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과 갤러거 위원장이 합동으로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마이크론 시장점유율을 가져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6월1일 로버트 앳킨슨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회장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대담에서 "중국이 우리를 응징하는 상황을 한국 기업들이 이용하면 한·미 간에 신뢰를 무너뜨려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다. 반면 중국은 어떻게든 한국을 미국에서 떼어놓으려 애를 썼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5월 26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무역장관 회의에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을 만났다. 회동이 끝난 뒤 중국 측은 "양측은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한국 측 설명은 결이 다르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5월 29일자 칼럼에서 한·중 양국이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려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마이크론) 구멍을 메워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딜레마에 빠진 한국한국 정부는 마이크론 이슈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5월2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로 인한 공백을 한국 기업들이 메울 수 있다는 신호를 한국이 보냈다"라고 보도했다. 산업부는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산업부는 "정부는 현재 (마이크론 제재) 관련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며, 이에 관한 우리 정부의 전망 및 대응계획에 대해서는 밝힌 바 없다"고 말했다.이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윤 대통령은 8일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반도체 전쟁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산업 전쟁이며 국가 총력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지정학적 이슈가 기업들의 가장 큰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다"며 "이는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고,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긴밀한 소통을 통해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우방국과 협력 강화’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공조에 동참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윤 대통령이 전략회의를 주재한 날 싱하이밍 대사의 문제 발언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지금은 미국과 한 배 타는 게 국익에 부합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단기와 장기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 보면 한국은 미국 편에 서는 게 유리하다. 미국은 군사, 경제 모두 세계 최강이다. 이같은 지위는 꽤 오랫동안,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반도체 종합경쟁력도 미국이 압도적인 1위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대만이 로직 칩(시스템 반도체) 생산에서 선두를 달리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반도체는 생산 못지 않게 설계, 설계용 소프트웨어, 장비 기술력이 중요하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생산만 대만 TSMC에 위탁할 뿐이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는 세계 1위 장비업체로 꼽힌다. 퀄컴이 설계하는 통신용 칩은 스마트폰 시대를 활짝 연 일등공신이다. 인텔과 마이크론도 건재하다.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는 "미국이 만드는 장비 없이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칩워’).미국은 설사 우방이라도 반도체 1위 자리를 넘겨줄 생각이 없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 산업이 미국을 능가했다. 당시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을 써서 미국을 격분시켰다. 미국과 일본 사이가 벌어진 틈을 한국과 대만이 파고 들었다.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이 메모리, 대만이 로직 칩 생산대국으로 성장하는 걸 간섭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건 미국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향후 중국 공장을 업그레이드하려면 미국산 장비를 들여오는 게 필수다. 국내 공장도 마찬가지다. 현재로선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국익에도 부합한다. 마이크론 공백을 한국 기업이 메우지 말라는 요구는 수용이 바람직해 보인다.장기적으론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할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제조 2025 전략’에 따라 첨단 기술 육성에 온힘을 쏟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반도체 굴기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얼마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만약 (중국이) 미국에서 (반도체를) 살 수 없다면 그들은 스스로 그걸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도 대중 디커플링 전략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디커플링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척하는 것을 말한다.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22년 12월 보고서에서 "중국이 오는 2035년께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국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산하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중국이 오는 2039년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확한 시점이 언제이든 중국이 미국과 기술력 격차를 줄여나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 한국이 살 길은 오직 기술력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의 반도체 경쟁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다. 기술력이 낮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다자 정상회의에 가면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와 양자회담을 원하고, 여러 가지로 손짓하는데 왜 그렇겠냐"면서 "다 우리가 가진 기술, 기업의 경쟁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단기전략이든 장기전략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국의 선택 기준은 딱 하나, 바로 국익이다. 국익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을 우리가 갖추고 있을 때라야 지킬 수 있다. 크리스 밀러 교수의 말을 곱씹어보자.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매출 유지에 있어 필수적인데, 그러자면 한국 기업은 중국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 수준과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한국 기업은 기술 우위를 지켜나가기 위해 더 노력하는 길뿐이다."<경제칼럼니스트>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저녁 서울 성북구 중국 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만나고 있다. 싱 대사는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사진=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 전쟁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산업 전쟁이며 국가 총력전"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기자의 눈] K방산의 책임의식에 박수를 보낼 때

"단순히 이윤 극대화 보다는 국가 안보와 세계 속의 한국의 방산 역사를 확대해 나가는 데 중점을 두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7일 부산 벡스코 ‘MADEX 2023(마덱스)’ 현장에서 마주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말이다. 그의 이 발언이 기자에겐 조금 남다르게 다가왔다. 기업인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 안보에 대한 그의 생각과, 기업인으로서의 한국 방산 경쟁력 확대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김 부회장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인이라면 당연히 이윤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국가 안보’, ‘한국의 방산 역사 확대’를 언급하는 그의 말 한마디에서 한화 뿐 아니라 우리 방산기업들이 어떠한 신념으로 한국의 방산을 대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방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무기에 대한 기술 개발 수준이나 수출 규모 등만 들여다 보겠다고 마덱스 전시장을 찾은 기자 스스로가 민망해졌다. 적어도 국가 안보와 한국 방산의 역사 확대를 위해 일궈나가는 이들의 노력을 들여다 봐야 했다. 실제로 한화를 비롯해 LIG넥스원과 현대로템 등 국내 방산기업들은 무기 개발 외에도 방산 전반으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중 방산기업들은 현충원 참배와 국가유공자를 위한 주거환경개선 작업, 보훈 성금 기탁, 평화교육과 모범장병돕기, 유해발굴 등의 활동을 지속하며 오랜 시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기억하고 있다. 특히 한화는 김종희 선대회장의 ‘사업보국’ 경영철학을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대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억에 남는 일화로 김승연 한화 회장이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발생 당시 직접 희생자 유가족 특별 채용 제도를 마련하도록 지시, 이들의 항구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게끔 한 일화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언론은 ‘2022년 국내 방산 수출 규모 173억달러 기록’, ‘올해 200억달러 수출 목표’, ‘정부 2023 국방비 예산 57조1269억원 책정’ 등 숫자로 방산기업의 수고로움을 알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수주 성공 여부와 액수에만 맞춰진 초점으로 ‘이윤 확대’라는 기업의 역할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방산은 이윤 추구의 사적 영역이기 보단, 넓게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국가 영역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방산기업이 이윤 보다 국가 안보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있는 만큼, 국민들도 방산에 대한 관심을 숫자에서 찾기 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한국 방산 발전을 위한 노력, 또 오랜 시간 이어온 호국영령 및 국군 장병을 위한 활동을 들여다 보고 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김아름23 김아름 산업부 기자

[EE칼럼]청정 암모니아 국내 도입 위한 제도 정비 서둘러야

지난 1일 국내 수소경제에 반가운 행사가 중국 광저우에서 열렸다. 국내 수소경제에서 수송연료전지에 기반을 둔 모빌리티 사업에 일익을 담당하는 현대차그룹이 2021년 3월 착공한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황푸구에 ‘HTWO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거대한 중국시장에 수소차 및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준공식 이후 한·광동성 수소분야 협력을 위한 전문가 세미나도 개최됐다. 주된 의제는 상대적으로 앞서 가고 있는 국내 수소 모빌리티 분야의 중국 진출이었지만, 보다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의 청정수소 수출 잠재력, 즉 중국이 풍부한 재생에너지 연계 청정수소 공급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충분히 시장이 무르익었다고 판단되면 어제든 중국도 청정수소의 국제교역에 주된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불가피하게 저렴한 청정수소의 대량 조달이 절실한 우리에게는 요긴한 정보다. 이미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통해 천명됐듯이 우리나라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간 2700만 톤 이상의 막대한 청정수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상 이를 국산으로 공급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80% 이상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한다. 한편으로 해외에서 생산된 청정수소를 어떤 운반체로 전환해서 운송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한 동안 청정수소 운반체로서 암모니아(NH3), 액화수소(LH2), 메틸사이클로헥산(MCH) 등 3가지 물질이 각축을 벌여왔다. 운반체별 경제성과 환경성을 평가해 본 결과 수소경제 초기 국제적인 밸류체인 구축에 유리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으로 적용가능성이 높은 ‘암모니아’가 주도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진 형국이다. 암모니아는 수소에 ‘하버-보쉬(harber-bosch)합성법’을 이용해 질소와 합성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화합물로, 부피당 담을 수 있는 수소량(121 kgH2/㎥)이 높고 무엇보다 끓는점이 -33.34도로 상대적으로 높아 경제적으로 액화운송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더구나 다목적 LPG 운반과 관련 기존 인프라도 활용 가능해 운반선 건조와 인프라 구축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암모니아는 이미 국제적으로 교역 중인 상품이다. 세계적으로 암모니아는 연간 1억 8600만 톤 이상 생산되지만, 80% 이상은 자급자족 형태로 비료생산에 이용된다. 다만 생산량의 약 10% 정도가 국제 교역되며 이를 위한 200개 이상의 암모니아 수출입 터미널과 170척의 운송선도 운용 중이다. 우리도 2021년에만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 울산, 여수, 인천 등을 통해 137만 톤의 암모니아를 들여왔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정부는 2021년 11월에 발표된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통해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말레이시아 등에서 청정수소를 생산 ‘청정 암모니아’로 전환해 국내로 도입하는 민관 합작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 프로젝트 ‘H2STAR’를 시행, 2030년까지 청정 암모니아 약 941만 톤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2011년 9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를 통해 국내 석탄, LNG 발전소의 연료전환 및 분산형 수소발전 확산을 통해 대규모 청정수소·암모니아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조달하기 위해 2027년까지 약 110만 톤, 2030년까지 약 400만 톤 규모의 청정 암모니아 인수기지를 서해, 동해, 남해 등 3개의 기존 석탄 화력발전소 발전소 밀집지역에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당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청정 암모니아 국내 도입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법·제도적 공백을 서둘러 메워야 한다. 현재 암모니아의 법적 지위는 고압가스법상의 ‘독성가스’나 수소경제법상의 ‘수소화합물’ 정도다. 앞으로 몸집이 커질 것을 염두에 둔다면, 수소와 함께 청정 암모니아를 규율할 수 있는 독립적 법률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향후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국제교역 및 수입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이들처럼 ‘사업’ 자체를 규율할 수 있는 ‘청정수소·암모니아 사업법’의 제정이 요구된다. 특히 향후 높아질 해외 의존도를 감안해 석유나 천연가스 사업법처럼 사업자에게 비축의무를 부여하는 조항도 반영해야 한다. 일모도원(日暮途遠). 서둘러 관련 사업법 제정 논의를 시작해줄 것을 입법부에 주문한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슈&인사이트]핀테크,포용금융으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

2023년 6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무슨 생각을 갖든지와 상관없이 21세기에 복잡한 금융 환경을 탐색하면서 금융 거래를 수행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바로 핀테크(FinTech)로 알려진 금융이다. 핀테크는 지속적인 정보기술의 혁신과 금융 솔루션이 맞물리면서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촉매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과 기술의 강력한 융합인 핀테크의 마법은 혁신(financial innovation)을 넘어 포용(financial inclusion)을 촉진하는 데 있다. 시간적,공간적 장벽을 허물고 전례 없는 금융 접근성을 개척하며 진정으로 포용적인 세계 경제를 향해 길을 열어가는 핀테크야 말로 진정한 21세기 금융이다. 핀테크 서비스가 어떻게 소비자의 일상 생활에 원활하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이 있다. 이는 금융기관이 아닌 회사가 ‘지금 구입하고 나중에 지불’을 옵션으로 온라인 쇼핑 경험을 바꾸고 있다. 금융과 전자상거래가 완벽하게 결합된 이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해 수백만 명의 소비자가 판매 시점에서 즉각적인 지불 부담 없이 신용으로 구매할 수가 있다. 또 디지털 시대에 전통적인 은행 업무도 재구성되고 있다. 이른바 네오뱅크(Neobank)라고 불리는 디지털 전용 은행은 물리적인 지점 필요성을 없애 소비자 가까이서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한다. 이들 소비자 가운데 다수는 기존 은행으로부터 제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지만 네오뱅크는 기본적인 은행 서비스를 모든 사람이 보다 쉽게 접근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한 핀테크 기업도 금융 포용성을 촉진하고 있다. 비트코인, NFT와 같은 디지털 자산을 구매, 판매하고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지급수단과 투자기회를 개인에게 제공하는 한편 핀테크 기업인 리플은 신속하고 안전하며 저렴하게 모국으로 돈을 보낼 수 있는 이주 노동자에게 돌파구를 제시하며 전 세계적으로 금융 포용성을 넓히고 있다.최근에 관심을 끄는 ESG 투자 플랫폼은 투자 세계를 민주화하고 있다. 일반 투자자들이 재무 목표를 개인적인 가치와 일치시키면서 환경 지속 가능성, 사회적 책임 및 건전한 기업 지배 구조를 우선시하는 회사에 투자한다. 이런 추세는 개인 투자자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보다 책임 있는 기업 행동을 장려해 경제적 포용성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한다. 금융기관이 아닌 회사에서도 지급결제 앱(Pay로 불리는 지급수단들)을 개인에게 제공해 모바일 장치를 사용하여 즉시 돈을 쉽게 보내고 받을 수 있고 지출을 추적하고 개인화된 통찰력을 제공해 재정을 관리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또 전통적인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플랫폼을 통해 개인간 서로 직접 돈을 빌려주고 빌릴 수 있는 P2P 대출도 가능하다. 앞의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핀테크는 보다 혁신적이고 포용적인 금융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핀테크의 이런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규제기관과 금융기관, 핀테크 회사가 전략적으로 협력해 다음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사용자 데이터의 잠재적인 침해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고 신뢰를 보장하기 위한 강력한 사이버 보안 조치가 필수적이다. 규제 기관은 혁신과 소비자 보호 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금융기관과 핀테크 회사는 내부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 금융 서비스가 점차 디지털화됨에 따라 핀테크 소비자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향상이 필수적이다. 연령이나 사회경제적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소비자에게 디지털 금융 환경을 탐색할 수 있도록 지식과 기술을 제공해 안전하고 자기책임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핀테크의 혁신성을 장려하고 소비자 보호를 보장하며 금융 포용을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금융에 더 쉽게 접근하고 효율적이며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미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는 물물교환에서부터 싹을 피운 금융의 고유기능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기자의 눈] 간만에 신난 증시

국내 증시에 ‘훈풍’이란 단어가 1년여만에 등장했다. 지난 달 만해도 증권가에서 보수적 접근을 권고하며,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 머물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다. 일주일 새 다수의 증권사들은 줄줄이 지수 전망치를 수정했다. 이는 올해 코스피가 17% 상승, 2600선을 넘어면서다. 실제 삼성증권은 하반기 코스피 등락 범위를 2350~2750으로 상향했다. 기존 전망치(2200~2600)를 2주 만에 끌어올린 것이다. KB증권도 하반기 코스피 상단을 2800선에서 2920선으로 수정했다. DB금융투자는 국내 증권사 전망치 중 가장 높은 수치인 3000선을 내놓았다. 2차전지(배터리)와 반도체, 자동사, 엔터테인먼트, 정보기술(IT), 바이오 섹터의 매수 권고하면서 이달 조정 없이 상승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상장 철회와 중단이 잇따르며 얼어붙어있던 기업공개(IPO) 시장까지 활기를 되찾고 있다. 두산그룹의 로봇 자회사 두산로보틱스가 오는 9일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할 계획이다. 19일에는 SGI서울보증보험과 중고차 플랫폼 업체 엔카닷컴도 코스피 상장을 위한 심사를 청구할 예정이다. 1조원 이상 대어급 기업 상장은 작년에는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처음이다. 국내 증시는 4월 발생한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태다. 이때 CFD(차액결제거래) 문제가 발생하면서 줄어든 신용융자잔고는 늘지 않고 있지만, 증시 대기 자금이라고 할 수 있는 투자자예탁금은 3주 새 5조원가까이 불어났다. 투자 세계에서 ‘부정적’ 이슈는 언제든 따라붙는 수식어다. 다만, 국내 자본시장에서 ‘뒷짐’ 제도화, ‘늑장 대응’ 등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점은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다. 간만에 증시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 분위기에 휩쓸려 지나가지 않고, 제도 개선과 보완에도 차질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2023050301000182700008471

[EE칼럼] 현실성 없는 건물 에너지 정책

우리나라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사용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모든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과 건물의 단위면적당 에너지사용량이 전년에 비해 각각 5.9%, 2.7% 증가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기준시점인 2018년의 최대치에 비해 적지만 201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해 에너지절감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국토부는 지적했다. 국토부는 건물 에너지 사용량 증가의 원인으로 건물 신축에 따른 연면적 증가로 인한 냉방 및 난방 수요를 의미하는 냉난방도일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늘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국토부가 발표한 이유는 우리나라 건물 부문 에너지정책의 숨은 이슈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물과 도로, 자동차 등 교통 부문의 에너지정책은 국토부가 주관하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이를 바탕으로 통합해 정책을 발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주거용, 상업용, 산업체 공장 등 모든 건물의 에너지 등급 기준과 건설방식, 자동차, 비행기, 선박 등의 연비 기준, 연료 기준 등은 국토부가 주관한다. 21세기 들어 지난 20여 년 동안 국토부의 건물 부문 정책은 대부분 스마트시티, 유비쿼터스 도시(U-city), 혁신도시 등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한 도시 개발에 중점을 두어왔다.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과제로 부산과 세종시에 추진한 스마트시티가 대표적이다. 환경친화적 도시, 에너지 자급 도시 등은 주요 과제에 들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인 재생에너지 조차 스마트시티 선정 과정에서 주요 변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나타난 건물 부문, 특히 주거용 에너지사용 패턴의 변화는 국토부의 정책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난방을 전기로 하는 건물이 많이 늘어나면서 건물 부문에서 천연가스 비중보다 전력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1인 가구의 증가다. 어느 새 20%를 훌쩍 넘어버린 1인 가구는 그야말로 냉방과 난방을 팡팡 틀어놓고 지낸다. 일반 가정과 상업용 건물 및 산업용 공장에서 온난화로 인해 냉방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냉난방도일이 늘어난 것, 즉 지구온난화의 진행으로 인해 건물 부문의 에너지사용량이 증가했다고 에너지사용량의 증가 이유를 발표한 것은 그동안의 건물 에너지 관련 대책이 효과적이지 못했음을 실토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최첨단 ICT 기술과 최첨단 건설기술로 지은 신축 건물들이 에너지효율 측면에서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 것이다. 국토부의 분석은 건물 부문의 구조적인 문제도 비켜갔다. 지금 새로 짓는 건물들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시점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건물을 지을 때부터 기후변화대응 신기술이 미래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두고 건설하지 않으면 결국 2050년 근처에 가면 현재의 건물들은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 충분히 있어도 설치할 수 없는, 그래서 수명이 남아 있는데도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부담은 모두 건물주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많이 양보해 세계 모두의 동의 아래 2050년 기준시점을 그 이후로 늦춘다고 해도 이 문제는 그대로다. 건물의 수명이 30년 이상으로 길기 때문이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사용량과 국민총생산과의 관계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뒤집혔다는 점이다. 20세기 후반 고도 경제성장 기간에는 에너지사용량이 늘어나면 GDP가 성장하는 구조였다. 즉, 주로 산업부문이 에너지를 사용해 생산을 늘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형태였다. 이 시기에는 따라서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이 적절한 정책이었으며 에너지절약 정책은 오히려 경제성장에 해가 되니 앞세울 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그 인과관계가 역전됐다. 이제는 에너지사용이 늘어도 경제성장을 유인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고 오히려 경제성장 덕분에 에너지사용량이 늘어나는 인과관계가 주가 되었다. 즉, 부자가 되었기에 에너지를 더 쓰는, 자동차 하나 더 사고, 냉장고도, 에어컨도 더 설치하고…. 이런 변화가 문제라는 것이 당연히 아니다. 선진국들은 모두 이러니까.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선진국들은 에너지 가격을 높이고 에너지절약을 유도하는 정책을 강력히 시행한다. 이제는 에너지절약을 해도 경제성장에 큰 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통계치를 발표하면서 국가 건물 에너지사용량 자료와 분석이 탄소중립 달성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통계자료이며 에너지 정책 수립 방향의 근간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건물 부문의 에너지절약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건물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국민과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생활방식이 변했는 데도 현실에 맞춰 정책 기조를 변경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한국에너지법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 국민의힘

지난 2020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 중 오른손잡이가 88%, 양손잡이는 8%, 외손잡이는 4%였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왼손잡이가 15%인 것에 비해서 매우 낮다. 특히 48%는 일상생활에 ‘왼손잡이는 불리하다’고 답했고 ‘유리하다’ 응답은 8%에 불과했다. 그런데 왼손잡이가 유리한 분야가 있다. 야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루하기 때문에 좌타자가 유리하다. 그래서 오른손잡이지만 타석은 왼쪽에서 들어서는 우투좌타 선수가 많다. 감독들도 좌타자를 1번 타자로 배치하는 것을 선호하여 프로야구 정상급 리드오프 중에 상당수가 좌타자다. 특히 좌타자는 우완투수에 강하다. 좌타자들은 우완투수의 팔이 잘 보이는데다 우완투수들이 워낙 많아 그 공의 궤적에 익숙해 상대하기 비교적 편하다. 그런데 좌타자는 좌완투수에는 약하다. 이는 좌타자가 좌완투수를 상대할 땐 투수의 팔이 잘 보이지 않는데다 좌완투수 자체가 드문지라 그 궤적마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타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좌완투수를 선택한다. 또 좌완투수는 1루를 바라보는 포즈로 투구하므로 도루 견제도 효율적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우완투수들에 비해 볼의 스피드가 떨어진다. 그래서 강속구 좌완투수는 마운드의 로망이다. 이에 야구계에서는 "좌완 파이어볼러(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습성 상 우완투수가 대세지만 좌완투수의 부재 속에서 지속적으로 팀의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아군의 연습용으로도 좌완투수는 필수적이다. 이것은 정치에서 더욱 그렇다. 정치에서 진보를 왼쪽 날개(좌익)라고 하고 보수를 오른쪽 날개(우익)라고 한다. 새에게 양 날개가 필요하듯 정치에도 양 날개가 필요하다. 새는 우익으로 추진력을 얻고 좌익으로 평형을 유지한다. 마찬가지로 원활한 정치를 위해서는 우익의 ‘효율’과 좌익의 ‘평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런데 정치인이 일사불란만을 강조하면 추진력은 갖지만 평형감각을 잃게 되고, 반대로 평형만을 주장하면 평등사회는 이뤄지지만 추진 동력을 잃게 된다. 현 정국을 운영하는 국민의힘을 보면 추진동력은 실감하지만 평형감각을 찾기 어렵다. 대통령을 포함해 국무위원 20명 중 80% 이상이 이른바 ‘SKY’대 출신이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80% 이상이 검사출신이다.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을 공약하고 당대표에 당선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연포탕에는 낙지가 없다. 윤핵관만 있는 ‘영남탕’이다. 좌완투수를 완전히 배제하고 원팀만을 강조하는 우완투수진으로는 좌타자들의 공격에 역부족이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과 한일정상회담 결과를 둘러싼 후폭풍이 대학가로 번지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경희대, 전남대, 동아대 등에 이어 부산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이 보다 앞서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 감리교회 목회자들 그리고 지역기독교교회전국협의회가 시국선언을 했다. 원 팀을 강조하는 일사불란성이 빚어낸 난국이다. ‘윤석열만 제외하고 모두 바꾸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이 핵폭탄을 맞았던 2020년 4월 총선의 악몽이 2024년의 총선에서 재연될 기미가 보인다. 그래도 당시는 국민의힘에 이준석(35세), 김재섭(33세), 박진호(30세), 천 아람(34세) 등 30대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내부 총질", "어린놈들이 남 탓만"이라며 좌파로 몰렸던 이들이 있어 20대의 불모지에서 2년 뒤 2022년 보수 정당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지금 남 탓만 하는 ‘어린놈’들도 없고 ‘내부총질’을 하는 좌파도 없다. 여기에 경제는 최악이다. 물론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의 증후는 아니다. 그러나 위기의 전초임에는 틀림없다. 한국갤럽의 최근 내년 총선 전망(5월30∼6월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 여론조사 결과 37%가 ‘여당 다수당선’, 49%는 ‘야당 다수당선’을 꼽았다. 이대로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실패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식물 정부’를 면하기 어렵다. 그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국민의힘이 중도를 포용하는 좌향좌, 강속구의 좌완투수를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가 힘을 받는 이유이다.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상속증여세 확 바꿀 때 됐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요약> 한국 최고 갑부인 삼성가(家) 사람들이 대출을 받고, 정부가 게임사 대주주로 올라섰다. 상속세 때문이다. 상속·증여세의 틀은 23년째 요지부동이다. 손볼 때가 됐다. 일본은 경기 진작 차원에서 생전증여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가 갈 길을 찾아보자. 세상 쓸데없는 일이 재벌 걱정이라지만, 그래도 약간 걱정이 된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유족이 세금 낼 돈이 없어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유족이 내야 할 상속세가 모두 12조원에 이른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작은 돈이 아니다.게임 대기업 넥슨의 유족은 아예 주식으로 세금을 냈다. 이를 물납(物納)이라 한다. 넥슨 유족이 낼 세금은 6조원 규모다. 그 바람에 기획재정부가 덜컥 넥슨 모기업인 NXC의 2대 주주(지분율 29.3%)에 등극했다. 한국 최고 갑부인 삼성가(家) 사람들이 대출을 받고, 기재부가 게임사 대주주로 올라섰다.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다. 오너 대기업들은 벌벌 떨게 생겼다. 이러다 본사를 해외로 옮긴다는 말이 나올까 걱정이다. 재벌은 그렇다 치고, 아파트 한 채에 약간의 여윳돈을 가진 장삼이사들은 상속세, 증여세를 잘 내고 있을까? 고민의 크기만 다를 뿐 중산층에게도 이들 세금은 골칫거리다. 국세청은 요 몇 년 새 상속·증여세 납부 대상 건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지난 4월 웹사이트에 ‘상속·증여 세금 상식’ 안내문을 올렸다. 20~30대 MZ세대는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본은 뒤늦게 장롱에 잠긴 천문학적인 금융자산을 밖으로 끌어내려 안간힘을 쓴다. 고령화 시대에 원활한 부의 대물림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갈 길을 찾아보자.◇ 삼성, 넥슨의 경우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최근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재벌도 조 단위 세금을 내려면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전에도 대출을 받은 적이 있다. 세 사람이 지금껏 받은 대출을 합하면 4조원을 약간 웃돈다. 이건희 전 회장은 2020년 10월에 별세했다. 유족은 상속세 총 12조원을 2021년부터 5년 간 연부연납(年賦延納) 방식으로 납부하는 중이다.넥슨 김정주 창업주는 2022년 2월에 별세했다. 넥슨의 모기업인 NXC는 비상장사로 창업주와 아내, 두 딸이 소유했다. NXC는 일본 도쿄증시에 상장된 계열사 넥슨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창업주의 지분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유산으로 넘어왔다. 거기에 상속세 6조원 딱지가 붙었다. NXC는 비상장사인데다 가족 지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주식으로 물납을 해도, 곧 일부 지분을 내놔도 경영권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 23년째 같은 세율 한국 상속·증여세는 구간과 세율이 2000년 개편 이후 23년째 변동이 없다.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이 시대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뀐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상속·증여세제 개선방안’(권성오 부연구위원·2022년 6월)에 따르면 "상속·증여세의 국세 대비 비중은 2010년 1.7%에서 2020년 3.7%로 증가"했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과세표준 30억원 초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적용하면 최대 60%의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사실상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한다(‘현행 기업승계 상속세제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2023년 5월).과세표준 30억원 이하는 구간별로 10∼40% 세율을 적용한다. 대도시 아파트를 유산으로 물려받으면 당장 세금 걱정이 앞선다. 한경연은 가업상속 공제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위해 이런저런 공제 혜택을 부여한다. 그러나 요건이 까다롭고 공제 금액도 크지 않아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한경연은 "한국은 가업상속공제 적용 건수가 독일의 100분의 1수준"이라고 말했다. ◇ 윤석열 정부는 다를까기재부는 지난해 10월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를 용역 의뢰했다. 당초 올 5월 말 종료 예정이었으나 지금도 연구가 진행 중이다. 상속세는 과세 방식에 따라 유산세와 유산취득세로 나뉜다. 유산세는 몇 명이 상속을 받든 상속재산 전체에 대해 세금을 물린다. 자연 세율이 높아질 공산이 크다. 지금 우리가 채택한 방식이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각자 상속한 재산을 놓고 따로 세금을 매긴다. 상속인(상속을 받은 사람) 입장에선 세율이 낮은 유산취득세가 한결 유리하다. 기재부는 "상속세를 운영 중인 OECD 23개국 중 유산세 방식은 4개국(한국, 미국, 영국, 덴마크)에 불과하고, 나머지 19개국(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유산취득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뀌면 1950년 상속세법 제정 이후 73년만의 대수술이 된다. 이와 함께 정부는 무상 증여 한도도 손을 볼 가능성이 있다. 현재 증여세 인적공제는 배우자 6억원, 아들·딸·손자는 5000만원까지 허용된다. 배우자 6억원은 2008년, 아들·딸·손자 5000만원은 2016년에 상향조정됐으니 한번 더 손을 볼 때가 됐다. 다만 기재부는 증여세 인적공제 상향에 대해 "검토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 일본이 주는 교훈2021년 가을에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30년의 터널에서 탈출시키는 전략이다. 그 가운데 저축과잉을 해소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 개인 금융자산은, 놀라지 마시라, 무려 2000조엔(약 1경870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중 절반 이상이 예금과 현금이다. 또 60%가량은 고령층이 갖고 있다. 돈은 돌아야 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고령층은 소비성향이 낮다. 이들이 돈을 그냥 장롱에 처박아 두는 바람에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졌다는 분석도 있다. 기시다 내각은 부의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생전증여 제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매년 110만엔까지 비과세다. 다만 부모가 사망하기 3년 전에 증여한 것은 모아서 상속세를 물린다. 이 기간을 7년으로 늘리는 게 기시다 내각의 복안이다. 다시 말해 증여세를 아끼려면 적어도 사망 7년 전에는 증여를 마치라는 얘기다. 지금은 80대 노인이 60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형편이다. 그래봤자 돈은 돌지 않는다. 그러나 60대 부모가 씀씀이가 큰 40대 자식에게 증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망 7년 전 생전증여’ 계획은 2024년부터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된다. ◇ 한국이 가야 할 길일본은 긴 불황을 겪고 나서야 매끄러운 재산 대물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일본이 간 길을 우리가 되밟을 이유가 없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도 줄고 동시에 늙어가는 중이다. 증여세 인적공제 확대나 생전증여 활성화가 경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재벌이든 장삼이사든 상속세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실제 자기 손에 들어온 유산만큼 세금을 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한경연은 가업승계를 촉진하려면 "최고 상속세율(50%)을 OECD 회원국 평균 수준보다 조금 높은 30%까지 낮추고, 최대주주 할증과세는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가업상속 공제만으론 부족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올해 세수 펑크를 겪고 있다.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상속·증여세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조세 정책은 긴 시야에서 접근하는 게 옳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와 있다"고 말했다. 당장 상속·증여세로 들어오는 세금이 줄더라도 두고두고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경제칼럼니스트>사진=연합뉴스상속증여세 세율체계. 출처=한국조세재정연구원 ‘상속증여세 개선방안’, 상속증여세제 개편방안 공청회 주제발표(2022년6월).출처=국세청 웹사이트(nts.go.kr)

[기자의 눈] 소상공 육성, 기업형도 좋지만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자영업 지원·육성 중추기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개편 방침을 밝혔다. 장관 취임 이후 코로나 팬데믹 피해 지원에 치우쳐 있던 기능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게 재설정하겠다는 취지였다. 아직 청사진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취임 1년간 이 장관의 행보로 볼 때 그 방향성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장관은 지난달 서울 한 카페에서 열린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정책 발표회에서 더 이상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보호·지원 대상이 아닌 육성 대상으로 보고, 자영업자라는 용어 대신 ‘라이콘(기업형 소상공인을 의미하는 신조어)’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책 발표회는 생활·로컬분야의 청년 창업에 초점을 맞춘 성격으로, 청년 소상공인을 동네상권을 넘어 스타벅스처럼 세계로 진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중기부의 강한 의지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IT 등 기술 창업과 비교해 음식점·카페 등 생활·로컬분야 창업은 고유의 특성을 가진다. 먼저, 제품보다 서비스 판매 중심인 특성상 먼저 지역상권 내에서 성공해야 하는데 이는 과밀경쟁이 특징인 국내 자영업 환경에서 이웃 경쟁가게의 상대적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생활·로컬분야 창업을 꿈꾸는 젊은 창업가 중에는 자신의 꿈·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중장년층의 생계형 창업이다. 대기업 중심 산업구조와 대기업 취업 선호로 야기되는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자영업 창업 증가와 그에 따른 소상공업 과밀경쟁은 ‘제로섬 게임’ 양상을 벗어나기 힘들다. 모든 소상공인이 ‘백종원’처럼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적자생존의 시장경쟁시대에 쉽지 않은 게 현실이고, 이 장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소상공인 정책은 중소기업·벤처·스타트업 정책과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기업가형 소상공인 몇만 개 육성이 목표가 아닌, 모든 세대의 소상공인이 과밀경쟁과 높은 폐업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소상공인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kch0054@ekn.kr김철훈 유통중기부 기자 김철훈 유통중기부 기자

[이슈&인사이트]新 보호무역주의 대비해야

최근 들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新 보호무역주의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新 보호무역주의로 인하여 통상문제가 기술, 환경, 안보 등 새로운 분야에 전방위적으로 연결된다. 또한 국내에서의 여러 제도와 활동이 국제사회와 연결되기도 하고, 외국에서의 행위가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아졌다. 국제사회와 교류가 갈수록 더욱 확대되며 동조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보호무역주의 흐름 속에서, 국가들은 국제 문제 해결을 위해 법 집행과 관할권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아졌는데, 특히 국내법의 역외적용과 국가의 역외관할권 문제가 복잡한 이슈로 등장했다. 국내법의 역외적용이란, 외국에서 이루어진 행위가 자국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해 자국 국내법을 적용하고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국내법은 국가 영역 내에 소재하는 자 또는 그 영역 내에서 발생한 행위에만 적용되는 것이지만, 최근 국제적 활동이 많아지며 국내외의 영역 구분이 모호해지는 과정에서 국내법이 자국의 범위가 아닌 역외에 적용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국가의 관할권은 국가의 주권이 발현되는 것인데, 국내법의 역외적용으로 역외관할권이라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2개 이상의 국가의 관할권이 경합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해당 영역에서 원래 관할권을 행사해야 하는 국가에서는 주권의 훼손이나 침해라고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비춰지지 않으려면 관련 국가와의 사전 조율과 합의를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국내법의 역외적용과 함께 국가의 역외관할권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원래는 국제적 활동과 이에 따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법을 적용하고 국내 활동에 대해서는 국내법을 적용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국내법이 국제적 활동에, 그리고 국제법이 국내적 활동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국내법의 역외적용과 역외관할권 문제는 전통적으로 형사적 문제의 처리나 범죄행위 관련 사례들에서 발견되지만, 일부 국가는 산업이나 경제 관련 분야에서도 자국의 독점금지법(경쟁법) 등을 자국 외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에 적용하려고 한다. 시장 담합이나 독점행위 등을 규율하려는 경쟁법 분야에서, A국에서 이뤄진 기업활동 효과가 B국 시장에서 나타나면 A국의 경쟁법을 B국에 적용하려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법의 역외적용을 위해서 당사국들이 미리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사국들이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체결하면서 서로의 국내법을 조율하고 상대방 시장에 자국법을 적용하자고 약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명시적 합의나 근거를 두지 않고 국내법을 역외적용 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시장의 경제 관련 법을 역외에 적용하려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무역과 투자환경을 규율하는 통상법 분야에서 변수를 초래한다. 특정 역(국)내 시장의 법을 다른 (역외)시장에 적용하면, 다른 국가의 시장, 경제, 산업에 큰 영향을 주거나 경제주권을 침범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영향은 복수의 시장이나 국가에서 통상지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만큼 국가들은 역외적용 문제를 통상법 차원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당사국들의 명시적 합의가 없다면, 국내법의 역외적용이 심각한 통상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통상문제에 영향을 주는 국내법의 역외적용이 여러 새로운 경제 분야에도 활용되거나 통상문제와 연결될 수 있는 기술, 환경, 안보 등 다른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반도체 과학법을 다른 국가에도 적용하려고 하는데, 유럽연합(EU)은 이를 우려하면서도 자신들은 탄소국경조정제도, 역외보조금 규제 제도, 다른 국가의 조치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응하는 제도 등을 외국에 적용하려고 한다. 이렇게 국내법을 역외에 적용해 일종의 새로운 무역장벽들이 구축된다면 결국 WTO가 추구하는 자유무역 대신 새로운 보호무역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한국도 新 보호무역주의 아래서 국내법의 역외적용이 가져올 위험성을 고민하고 종합적인 대응 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교 국제학부 교수/EU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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