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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언론이 만들어낸 초전도체 광풍

최근 국내 대학에서 활동하는 벤처기업이 ‘LK-99’라는 상온 초전도체의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정식으로 논문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완성도가 떨어지는 원고를 ‘아카이브’라는 사전등록 사이트에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더욱이 서로 다른 내용의 원고 2편을 동시에 공개했다. 정상적인 연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국립연구소가 LK-99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확인했다는 어설픈 소식에 우리 언론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리가 세상을 통째로 바꿔놓을 첨단 기술의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당장 노벨상을 받게 되고, 엄청난 돈방석에 올라앉게 될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증시와 인터넷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초전도체 관련 기업의 주가가 수직으로 상승했고, 세빛둥둥섬이 둥둥 떠오르는 ‘밈’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폭염 속에 우리 언론이 부채질한 상온 초전도체 열풍은 금새 시들해지고 있다. 개발사가 공개한 영상과 자료만으로는 LK-99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학계의 평가가 나오면서다. 우선 한국초전도저온학회부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지금까지 개발사가 공개한 자료만으로는 LK-99를 ‘상온 초전도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도 지난 4일 초전도 관련 분야의 연구자들이 여전히 ‘매우 회의적’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LK-99의 객관적인 검증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개발사가 검증용 시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발사를 탓할 수는 없다. 소중한 시료를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개발사가 최소한 동료 평가라도 받은 후에 공개하는 국제적인 관행을 무시해서 벌어진 난처한 상황이다. 아무나 LK-99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발사가 공개하지 않고 있는 ‘노하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업적 이익과 직결되는 비법(秘法)인 노하우를 무작정 공개할 수도 없다. 결국 LK-99의 객관적인 검증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일상적인 온도와 압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초전도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기 저항이 전혀 없는 초전도체가 그만큼 유용하기 때문이다. 초전도체를 이용하면 전력 산업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발전기의 크기를 줄일 수 있고, 송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압 송전망을 건설해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변압기에서 전기 저항에 의한 열 손실도 없어진다. 상온 초전도체가 현재의 전력 산업의 효율을 무한대로 높일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초전도체로 만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이용하면 태양광·풍력 발전의 최대 난제인 간헐성도 간단하게 극복할 수 있다. 자원·효율이 제한적이고, 화재 위험도 심각한 리튬이온 배터리에 매달릴 이유가 없어진다. 상온 초전도체는 발전·송전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현대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진단 수단이 된 MRI(자기공명영상법)도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 몸에 들어있는 수소 원자의 자기적 성질을 분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강력한 자기장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초전도 자석이 요구하는 섭씨 영하 268.9도의 극초저온을 만들기 위해 비싸고, 관리가 어렵고, 고갈 위기에 있는 헬륨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기대를 모으는 핵융합 발전에 사용할 핵융합로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가능해지고 자기부상 고속철도 가능해진다. 전 세계의 많은 과학자가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로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성공했다는 논문이 거의 매년 1건 이상 발표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도 로체스터 대학교의 과학자가 개발했다는 상온 초전도체의 정체에 대해서 과학계가 뜨거운 논란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언론·증시·인터넷이 앞장서서 법석을 떨지는 않는다. 상온 초전도체의 개발은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상업적으로 유용한 초전도체를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실제로 액체 질소로 만들 수 있는 섭씨 영하 180도에서 작동하는 ‘고온 초전도체’는 1980년대 후반 처음 연구실에서 처음 개발된 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본격적인 상업적 활용은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다. 결국 상온 초전도체 소동은 언론이 만들어 냈다.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언론이 과학적 검증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야 할 이유가 없다. ‘가짜 과학’을 가려내는 능력도 현대의 언론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커뮤니케이션

증여세 결혼 공제, 부자감세 벽 넘을 수 있을까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정부는 신혼부부가 결혼 자금으로 받는 일정한 증여재산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다. 개인별로 1억5000만원, 신부와 신랑이 모두 받으면 3억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비판자들은 부자감세, 부의 대물림 논리를 앞세워 맹공을 퍼붓는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저출생 극복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옹호한다. 누가 말이 타당한지, 고령화가 심각한 이웃 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선제적 미래 대비"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7일 2023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전체적으로 개정안은 법인세, 소득세 등 큰 줄기는 건드리지 않은 채 미세조정에 그쳤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게 증여세 공제 항목 신설이다.기재부는 "선제적으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혼인 증여재산 공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성인의 경우 10년 간 5000만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여기에 결혼 전후로 각 2년씩, 곧 4년에 걸쳐 1억원까지 추가로 세금을 면제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각자 1억5000만원까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양가를 합치면 모두 3억원이다. 증여받은 돈을 어디에 쓰는지는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면 2024년 1월1일 증여분부터 적용된다. 기재부의 논리는 이렇다. 현 공제한도 5000만원은 2014년에 정한 액수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소비자물가는 약 19% 올랐다. 1인당 국민명목총소득은 37% 넘게 늘었다. 집값은 올 6월까지 14.5% 뛰었다. 전세는 6월 기준 전국 평균 2억2000만원, 수도권은 3억원에 달한다. 요컨대 증여세 공제한도를 높여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는 얘기다.기재부는 해외 사례도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을 비롯해 24개국이 증여세를 운영한다. 캐나다·호주 등 14개 나라는 증여세가 아예 없다. 증여세를 매기는 24개국 가운데 최고세율은 한국(50%)이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반면 자녀에 대한 공제한도를 보면 한국이 벨기에·헝가리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다. 이웃 일본만 해도 결혼자금 용도로 직계존속(부모·조부모)으로부터 받은 재산은 1000만엔(약 9200만원)까지 공제 혜택을 준다고 기재부는 소개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에 대해 "전세자금 마련 등 청년들의 결혼 관련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일 페이스북에 "결혼을 장려해서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특권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국가가 청년 신혼부부에게 해야 할 의무"라고 옹호했다. ◇ 야당은 거센 반발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보는 시각은 다르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당 회의에서 "정부가 초부자 감세를 또 들고 나왔다"며 "또 초부자 감세냐, 이런 한탄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의 증여세 정책이) "많은 청년에게 상실감과 소외감을 줄 것"이라며 "기승전 초부자 감세 타령을 이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정교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 정책을 성토했다. 요약하면 증여세 공제 한도 증액의 혜택이 ‘가구자산 상위 13%’에만 집중된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이를 토대로 "결국 혼인 공제 신설은 결혼 지원의 탈을 쓴 부의 대물림 지원 술책"이라고 공격했다. 장 의원은 국회 기재위 소속이다.부자감세 비판은 여론에 잘 먹힌다. 사실 상속·증여세는 부의 분배를 고르게 하는 목적이 강하다. 그런데 증여세에 이런저런 구멍이 뚫리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부모 잘 만나서 세금 안 내고 큰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청년들이 중시하는 공정 가치와도 충돌한다. 이는 부모찬스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야당이 끝내 반대하면 증여세 결혼 공제는 정부·여당의 제스처에 그칠 공산이 크다. 상속증여세법 53조를 개정하려면 다수당인 민주당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지금 같아선 민주당이 OK할 것 같지 않다. ◇ 꼼수가 난무하는 현실현 청년세대는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부모세대인 베이비부머들 중에는 고도성장 붐을 타고 상당한 자산을 모은 이들이 꽤 있다. 자식이 결혼할 때 부모가 전세비를 지원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증여세를 제대로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꼼수로 차용증을 받아두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탈세다. 그러나 징세 당국도 해당자가 재벌이라면 모를까,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다.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 봤자 반발만 부를 뿐 별 이득이 없다고 본다는 얘기다. 장혜영 의원은 ‘가구자산 상위 13%’에만 혜택이 집중된다고 했지만 13%면 꽤 큰 숫자다. 현실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정부가 발표한 증여세 개편안은 널리 퍼진 편법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선책이다. ◇ 한국보다 덜 깐깐한 일본기재부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부모·조부모로부터 결혼자금 용도로 받은 재산은 1000만엔까지 증여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주택 취득 자금, 교육 자금에 대해서도 증여 특례를 인정한다. 기본 공제도 한국보다 넉넉한 편이다. 해마다 110만엔까지 공제 혜택을 준다. 매년 110만엔을 10년 간 증여한다면 우리돈 1억원이다. 한국은 10년 간 5000만원까지다.일본 재무성은 증여세 공제를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한다. 노인대국 일본은 금융자산이 무려 2000조엔(약 1경84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령화 사회는 소비가 위축된다. 돈이 죄다 장롱 또는 우체국 금고에 갇혀 있어서다. 그래서 일본은 사전 증여를 장려한다. 젊은층한테 가야 돈이 돌기 때문이다. 사전 증여한 재산에 대해선 2500만엔까지 세금을 면제한다.일본과 달리 기재부는 증여세 공제를 저출생 대책 차원에서 접근했다. 좀 아쉽다.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아예 기본 공제를 높이는 식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일본처럼 해마다 1000만원씩 공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젊은층이 돈을 더 쓰면 경제에 두루 온기가 퍼지지 않을까?◇ 증여세 손질은 필요하다증여세 결혼 공제 신설은 실행까지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부자감세, 부모찬스 벽이 높다. 게다가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조원 가까이 줄었다. 결정적으로 입법의 주도권은 야당인 민주당이 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속 고령화 속에 증여세는 손질할 필요가 있다. 출발점은 경제 활성화다. 고령화는 경제에서 활력을 앗아간다. 지난 30년 일본 경제가 반면교사다.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는데 도움이 된다면, 야당도 그냥 습관적으로 부자감세 반대만 외칠 일이 아니다. <경제칼럼니스트>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하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세법개정안 관련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사진=연합뉴스

[기자의 눈] 실체 없는 테마주 ‘투자 주의보’

"초전도체에 비하면 2차전지는 양호했다." 최근 만난 지인이 일명 ‘초전도체 테마주’로 묶인 종목들이 일제히 상한가를 찍자 "이게 주식이냐, 코인이지"라며 한 말이다. 2차전지주는 초전도체 테마주 폭등에 비하면 너무나도 정상 범주에 속한다는 거다. 요즘 주식 시장은 테마주로 조용할 날이 없다. 2차전지주 광풍에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 순위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요동치는가하면 초전도체 테마주가 급부상하면서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종목들이 연일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기도 한다. 사실 테마주 쏠림 현상은 최근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테마주의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는 정치 테마주는 선거철만 되면 특정 정치인과 고향이 같다거나 성(姓)이 같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테마주로 묶여 주가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정치 테마주처럼 2차전지 테마 종목들도 당장 사업 실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시총에 비해 영업이익이 터무니없이 적은 경우도 다반사다. 초전도체 테마주는 더 심각하다. 지난달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개발했다고 논문을 공개한 이후 초전도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종목들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 가운데 실제 초전도체 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기업은 찾기 어렵다. 투자자들 중에는 해당 기업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 실제로 초전도체 관련 사업을 하는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분위기에 휩쓸려 단타 투자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문제다. 이들의 투자 기준이 기업의 가치보다는 수익률에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 기업은 초전도체 테마주 중 초전도체 사업과 가장 관련성이 높다고 알려지면서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이 기업 대표는 지난 주말 주가가 과도하게 상승하자 "우리는 상온상압 초전도체 개발을 주장하는 연구기관과 어떠한 연구협력이나 사업 교류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테마주에 투자하기 위해 빚투족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8조원대로 내려갔던 국내 신용융자거래 규모는 지난달 20조원대를 돌파했다. 지난 4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일평균 합산 거래대금도 27조원을 넘어섰다. 수익을 얻기 위한 주식 투자가 옳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기업의 정보도 모른 채 수익률에만 과도하게 매몰돼 ‘묻지마 투자’를 하는 방식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증명사진

[EE칼럼]정유업계에 바이오연료 생산 허용해야

바이오 경제는 바이오 자원에 기반을 둔 공정·제품·서비스를 활용해 경제·사회의 발전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실현하는 경제 구조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19일 정부는 기존 의약품 중심의 ‘바이오 경제 1.0’을 넘어 바이오의약품 제조 초격치 확보와 함께 바이오 신소재, 바이오에너지, 디지털 바이오 등 바이오 신 산업을 본격 육성하는 내용의 ‘바이오 경제 2.0 추진 방향’을 마련하고 2030년까지 바이오 경제생산 규모 100조 원, 수출 규모 5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 만큼 바이오 경제의 전망도 밝아졌다. 광범위한 바이오 경제에서 에너지 부문과 중첩되는 영역은 바이오 연료, 특히 수송용 바이오 연료다. 지난 2021년 발표된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2050년 수송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9810만톤)의 88.6~97.1%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탄소 중립합성 연료(E-fuel)가 상용화될 2040년 전까지 수송부문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서 바이오 연료의 역할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40년까지 주된 도로부문 온실가스 감축 수단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전기·수소차 보급 확대와 함께 탄소 중립 연료인 바이오 연료 사용 확대로, 무리한 수준의 전기·수소차 보급 확대 강요보다 바이오 연료가 일정 정도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더욱이 전기화가 사실상 어려운 해운·항공 부문에서 바이오 항공유·선박유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바이오 자동차 연료로 신재생 연료 의무사용제도(RFS)를 통해 바이오디젤 혼합의무화 비율을 현행 3.5%에서 2030년까지 8%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또한 바이오 항공유는 정유업계와 항공업계가 공동 실증사업을 거쳐 2026년까지, 바이오 선박유는 대·중소기업이 참여하는 바이오 선박유 육·해상 실증사업을 통해 2025년까지 각각 도입할 예정이다. 바이오 연료의 사용 확대는 RFS 확대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RFS의 법적 근거인 신재생에너지법은 정유업계에 판매하는 수송용 연료에 바이오 연료를 일부 ‘혼합’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오 연료는 화학적으로 유사성을 바탕으로 석유제품과의 혼합을 전제로 생산·공급되며, 해당 시장이 자연스럽게 생성됐다기보다는 RFS라는 일종의 규제를 통해 생성된 규제시장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 만큼 바이오 연료 범위 확대는 사실상 규제 확대로 간주돼 정유업계는 대체로 부정적 입장이었다. 그동안 RFS 확대 논의도 당위적 주장에 의존해 정부 당국을 설득하려는 바이오 연료 업계와 이를 저지하려는 정유업계가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유업계도 탄소중립·ESG 경영 등 시장 및 경영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직접 바이오 연료생산·공급 사업에 뛰어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의 탄소중립 전략에는 석유화학 원료로 나프타에서 바이오매스 등 탄소배출이 적은 원료로 전환하거나 탄소중립 제품생산 확대 차원에서 CCS(탄소 포집·저장), E-fuel, 청정수소 등과 함께 차세대 바이오디젤을 포함한 차세대 바이오 연료생산을 추진 중이다. 이런 변화된 분위를 감안해 정유와 바이오 양 업계의 상생 발전 차원에서 정유업계가 본격적으로 바이오 연료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행 석유사업법은 정유사가 석유를 원료로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석유 이외의 원료, 가령 폐플라스틱이나 동식물 유래 바이오 원료 등으로 석유제품을 생산(Co-Processing)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석유사업법 상 석유정제업의 정의에 바이오 원료 등의 정제도 가능하도록 명시해야 한다. 나아가 바이오디젤 사례를 참고해 차세대 바이오 연료 개발 등 양 업계의 공동 참여가 가능한 프로젝트 발굴을 통해 상생하고 시너지를 높일 수도 있다. 바이오 디젤은 2030년까지 혼합비율을 8%까지 높인다는 계획이지만 실제로는 바이오디젤의 경유 혼합 시 겨울철 시동결함 발생 등 기술적 한계로 인해 기존 바이오디젤 혼합의무는 최대 5%까지만 가능하다. 대신 메탄올 첨가 등으로 바이오디젤의 겨울철 시동결함 극복 가능한 차세대 바이오디젤을 개발하고 2026년까지 도입한 뒤 2030년까지 혼합비율 3%포인트 더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여기서 정유업계는 차세대 바이오디젤 개발에 참여해 3%포인트 혼합비율 확대분의 일부를 내부화함으로써 기존 바이오디젤 업계와의 상생을 도모하려 하고 있다. 이 같은 프로젝트 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주문한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슈&인사이트]초고령 사회, 은퇴의 재구성 필요하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찰을 통해서 내적 음성(inner voice)을 따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소명(召命)의식’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일을 하든 ‘평범한 일상과 일터에서 자신이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는 것’으로 해석되며 심리학과 경영학에서도 주목하는 영역이다. 일에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크다. 소명의식을 가진 학생은 학업에 대한 몰입도와 진로선택에 대한 효능감과 성숙도가 높고, 직장인은 담당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으며 직무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내외 기업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같은 조직, 같은 업무 안에서 구성원간 소명의식의 차이는 뚜렷하고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공통적인 결과가 많다. 통계학적으로 한 국가의 평균수명이 연장됐다는 사실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개인적 노화와 더불어 초고령사회를 향유할 이상적 조건으로 건강과 재정, 일과 대인관계와 사회참여 등을 손꼽는다.민수기 8장 23~25절 부분을 제외하면, 성경 속에 은퇴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적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이는 비기독교 문화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은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공식적으로는 1889년 독일에서 비롯됐다고 거론한다. 하지만 인류사의 획기적 사회변화가 안정적인 문화로 정착되기도 전에 인류는 초장수시대로 진입하면서 지난 100여년 간 지속돼 ‘은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고령자의 은퇴는 이제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피할 수 없는 강렬한 충격이 됐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공식적 은퇴를 겪은 노인에게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재능과 기질, 삶의 경험에 비추어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는 제2, 제3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개인적 소명의식을 재평가할 기회이기에 유익한 변화임은 틀림없다. 은퇴 후에도 할 일(노동)이 있다. 여기서 ‘노동’이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학자들은 정의한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의 현실에서 은퇴 고령자의 급격한 증가는 국가와 젊은층에게는 잊고싶은 악몽이다. 역설적이지만 서구식 은퇴와 연금제도모델을 이제 막 수용한 우리나라는 이를 정착시키기도 못한 상황에서 다시 서구발 ‘재구성된 은퇴’ 모델 도입을 고려해야 할 처지다. 산업화의 중추적 역군으로 활약한 액티브 시니어 세대가 ‘은퇴·연금·100세 장수시대’라는 삼박자를 무탈하게 향유하려면 새로운 은퇴 패러다임에 적응할 준비가 필요하다.우리나라는 소명의식이나 노동, 은퇴, 여가에 대해 세계 선도적 연구활동이 미약하고 문화적,제도적 기반도 부족한 가운데 산업화를 마치자마자 급격한 저출산·초고령 시대로 진입했다. 고령의 은퇴자들이 고백하기를 "이제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부디 ‘잘 죽는 법’을 배우고 싶다"라고 한다. 노년기에 이르러 개인적 소명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매 순간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소명을 지키기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선진사회의 노년학 학자들은 노인이 갖춰야 할 미덕으로절제, 겸손, 인내, 단순함, 믿음(절대자를 향한 뜨거운 반응), 소망(마지막 때를 향하는 사실을 인정·다음세대를 위한 투자· 평안한 죽음을 대비), 그리고 사랑(사람·장소·공동체를 향한 진심어린 돌봄) 등을 꼽는다. 10년 뒤인 2035년 우리나라에서 노인이 1600만명으로 비율이 30%를 넘는다. 은퇴고령층을 위한 부양비,연금,의료비 폭증에 대한 대안은 과연 적절한지 우려된다. 국가생산력 감소,소득세 인상에 따른 가처분 소득 감소,부동산 잠재가치 폭락,기업의 해외이전,젊은 인재의 해외이민을 우려하는 경고등이 켜졌다. 엄청난 변화와 충격과 세대간 갈등을 극복하려면 속히 은퇴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비해야 한다. ‘놀고 즐기는 100세 시대’는 어쩌면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방준석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기자의 눈] 초전도체 논란과 송파구 빌라 지하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초전도체 논란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국내 기업인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사실이라면 우리가 쓰고 타는 대부분 물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발견이다. 과학계는 물론 경제계와 금융 시장까지 요동치고 있다. 진위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검증에 최소한 6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 대비 과학기술이 뒤처진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엄청난 성과가 났다는 이유에서다. ‘황우석 사태’ 트라우마도 여전하다. 전세계 이목이 쏠렸는데 결론을 내기 어렵다 보니 논점만 계속 흐려지고 있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실체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가 일단 크다. 일각에서는 연구소 사무실이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빌라 지하에 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겉모습이 누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편견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 번듯한 사무실을 갖춘 회사·연구소가 무조건 우월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발명·발견을 초일류 대학·기업만 하라는 법도 없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은 모두 좁은 차고 안에서 탄생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도전 의식과 기업가 정신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는 전성기에 "어딘가 작은 차고에서 만들어진 작은 회사가 우리의 라이벌"이라고 말했다. 차고에서 시작한 기업들은 시장 판도 자체를 아예 바꿔버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꿈을 펼치기 때문이다. 한국에 차고가 없어 혁신 기업이 없다는 농담 안에도 뼈가 있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진들은 수십년간 ‘LK-99’을 살펴왔다. ‘99’는 이 물질을 처음 발견한 1999년을 뜻한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은 혁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송파구 지하 빌라’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차고들처럼 유명 관광지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yes@ekn.kr여헌우 산업부 기자 여헌우 산업부 기자

[데스크 칼럼] 오세훈 시장 압구정에서도 무릎꿇을까

오세훈표 재개발·재건축 사업인 신속통합기획이 ‘님비현상’ 으로 진통을 앓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상류층 지역인 서울 압구정동이 원하는 특별대우는 신속통합기획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렇다면 오 시장이 애초 신속통합기획 가이드라인 중 하나로 제시한 공공주택의 ‘소셜믹스’는 서울 강남에선 이상향일뿐인가. 오세훈 시장은 타워팰리스같은 공공주택, 완전한 소셜믹스 구현을 시민들에게 제안했지만 이번 압구정 공공주택의 경우, 임대주택을 일컫는데 이들과 절대 섞일 수 없다는 것이 압구정3구역 주민들의 대세적 흐름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압구정3구역은 재건축 설계공모 과정에서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희림건축)를 선택했다. 희림건축 선정에 대한 논란은 일파만파다. 뻥튀기 용적률도 문제지만 오 시장이 약속했던 소셜믹스 공약은 우리나라 최고 부촌에서는 그저 헛구호에 그치게 됐다. 오세훈 시장은 임대주택을 타워팰리스처럼 짓겠다고도 했다. 타워팰리스같은 임대주택은 신속통합기획을 추진 중인 압구정3구역이 롤모델이 될 수도 있다. 오 시장은 소셜믹스 실현을 타워팰리스 같은 임대주택 건설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압구정3구역 소유주들의 소셜믹스 거부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압구정 일대는 오세훈 시장 한강변 르네상스 정책의 핵심에 있다. 하지만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한강변 르네상스는 결국 일부 상위 계층만을 위한 정책인가. 오세훈 시장이 추진 중인 신속통합기획도 우리나라 최고 부촌에서는 그들만의 입맛대로 바뀌는 건지 우려가 높다. 특히 압구정 아파트 소유주들의 배타성은 이번 설계사 선정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들은 신속통합기획안의 소셜믹스를 지키지않은 희림건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희림은 일반분양과 임대주택은 준주거지역 등지로 몰아 3종 일반주거지 조합원 동과 별도 분리했다. 이뿐아니다. 희림의 설계는 공공기여로 만들어질 공공보행로를 단지 바깥쪽으로 우회하도록 해 단지 내 일반인 통행을 제한하도록 했다. 전형적인 님비현상이다. 소셜믹스란 주거지 개발의 방향을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이 한 장소에서 함께 거주하도록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강남 최고 부자들의 이기심은 이번 압구정3구역 사태에서 엿보인다. 오세훈 시장이 추진중인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와 신속통합기획의 혜택만 누리고 이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공유하지 않겠다는 행태다. 이처럼 특정 장소에 저소득 거주자들이 집중되는 현상은 이는 주거 문화 중 지역 및 단지에 대한 사회적 위상 구분짓기와 연계돼 그 거주자는 ‘사회적낙인’(stigmatizatin)의 대상이 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임대가구와 분양가구, 조합원 가구 등이 명확히 구분되는 경우는 차별과 차별을 이끌어내는 요인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낙인찍기 과정은 고정관념, 차별, 배제, 분리 등을 포함하는데 압구정3구역의 이번 임대주택 결정은 주류사회로부터 차별을 강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주택가격 등을 이유로 차별이 악순환되는 소셜믹스는 오 시장이 약속한 사회적통합은 아닐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동별 구분이 없는 단지 내 혼합방식을 통해 기존 입주민과 구분이 뚜렷하지않도록 해 차별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진정한 소셜믹스란 압구정3구역 재건축 후 신축 단지에서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구분할 수 없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소셜믹스는 폭넓은 사회경제적 계층의 사회적 통합, 나아가 사회적 낙인과 배제를 저감하기 위해 다양한 특성을 가진 거주자들의 물리적 혼합을 전제로 해야 한다. 용적률 360% 거짓 논란으로 빚어진 압구정 3구역 설계업체 선정에 대해 서울시는 희림건축 등을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고발하고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조합은 총회를 강행했고 소유주들은 희림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신속통합기획의 원래 공공성 취지와 소셜믹스 등을 고려할 때 이번 투표는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 희림과 조합의 부당행위와 오세훈 시장의 최대 치적이 될 신속통합기획 등 정비사업 원칙을 위해서라도 압구정3구역 설계사 선정 재투표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EE칼럼]자발적 탄소시장으로 시민동참 유도해야

기후변화센터와 아시아나항공사는 지난달 12일 국내 최초로 승객들의 항공여행 탄소발자국을 자발적으로 상쇄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승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행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에 대해 일부 또는 전체를 상쇄하는 활동을 선택할 수 있다. 항공예약 때 승객이 비행 날짜 정보를 입력하면 운항노선, 항공기 형태 등을 고려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방법론에 따라 배출량이 계산된다. 이렇게 발생한 탄소량은 기후변화센터가 운영하는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아오라(AORA)’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탄소감축 활동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탄소를 상쇄할 수 있다. 탄소감축 활동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설치, 바이오매스 활용 조리기구 보급, 조림 등의 흡수원 확대 등으로 여기에서 발생한 탄소상쇄 크레딧의 양을 구매해 본인의 여행으로 발생한 탄소발자국을 없애는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 활동은 준비기간을 거쳐 오는 11월부터 아시아나 홈 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이러한 활동은 국내에서는 최초지만 싱가포르항공, 브리티시에어라인, 터키항공 등 해외 다수의 항공사들이 몇 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다. 잘 아는 것처럼 항공기의 특성상 사용되는 연료에 의해 다른 교통수단 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높다. 유럽환경청의 2014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88명이 탄 비행기가 1km를 이동하는 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은 승객 1명당 285g으로, 같은 조건의 150인승 기차(14g)에 비해 20배에 달한다. 더 나아가 항공기는 고도를 높일수록, 싣고 가는 짐의 양이 많아질수록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그래서 2016년 ICAO는 항공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다. 이에 따라 2021년부터 이를 초과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항공사는 탄소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해 상쇄해야 한다. 이 규제는 2027년부터는 의무화된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의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지난 5월 프랑스 정부는 기차로 2시간30분 거리인 단거리 비행 국내선에 대해 운항 금지 조치 법안을 발효했다. 프랑스 하원은 2021년 5월 ‘단거리 국내선 항공편 운항 금지’를 포함한 ‘기후와 복원 법안 (Climate and Resilience Law)’을 통과시켰지만, 단거리 비행 기준에 대한 추가 논의를 거쳐 이번에 발효했다. 당초 이 법안을 제안한 ‘프랑스 기후 시민 협약’은 기차로 4시간 이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대해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자고 주장했으나, 항공사 에어프랑스, KLM항공과 일부 지역의 반대에 따라 항공편 운항 금지 기준이 기차로 2시간30분 거리로 줄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 법안 시행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필수 단계라며, 강력한 노력의 상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서는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마다 신규 공항건설을 단골 공약으로 내세우는 데 우리나라의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감안한다면 정치인들의 공약도, 시민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항공사들의 상쇄 활동을 지원하는 자발적 탄소시장은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와 같이 정부 주도 아래 진행되는 탄소시장과는 달리 기업, 지자체, 개인들의 자발적 탄소감축 활동을 지원하는 시장이다. 교토의정서 당시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파리협약 6조가 구체화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점차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전 지구적 목표인 1.5도를 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 곳곳에서 가능한 많은 온실가스 감축·흡수제거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고 기업들도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생긴 것이다. 시장이 커짐에 따라 고품질 상쇄 크레딧, 즉 환경건전성이 높은 상쇄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시하고 기준을 제시하는 자발적 기구들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생성된 탄소크레딧이 상쇄 활동에 여러 번 사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 즉 탄소 감축이 제대로 되는 지를 보장하기 위해 탄소상쇄등록부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1인당 연간 탄소배출량은 12.7톤으로 세계 평균(4~5톤)의 3배에 달한다. 탄소 다배출 산업구조의 수출 기반 국가인 점을 감안한다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들의 동참이 필수적다. 의식주 활동으로 내가 발생한 탄소발자국이 얼마인지, 이를 줄이려는 다양한 활동들이 정량적으로 계산되고 더 많이 줄인 사람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보다 촘촘하게 만들어진다면 시민들의 동참이 활발해질 것이다. 자발적 탄소시장도 그런 목적 달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지자체, 시민들이 협력해서 기후위기를 늦추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다양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미국 신용등급 강등, 정치가 문제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1일(현지시간)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렸다. 그 바람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렸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세계 최대 경제국이며, 기축통화 달러를 앞세워 글로벌 경제를 호령하는 나라다. 각국 중앙은행과 해외 투자가들은 미국 국채를 사려고 줄을 선다. 미 국채는 으뜸 안전자산으로 늘 인기가 높다. 그런 나라가 신용평가사로부터 최고등급을 받는 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지난 2011년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등급 내렸다. 사상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12년 뒤 피치가 강등에 가세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최고등급을 유지하는 곳은 무디스가 유일하다. 미국으로선 수모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우리한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자.◇ 반복되는 디폴트 리스크가 발목먼저 시계추를 12년 전으로 돌려보자. 그때도 미국은 국가채무 불이행(디폴트) 위기로 치달았다. 권력 구조는 지금과 비슷하다. 백악관은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인이었다. 그러나 하원 다수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갔다. 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올리는 대신 대폭적인 지출 삭감을 요구했고, 민주당은 일부 삭감을 받아들이는 대신 증세가 필요하다고 맞섰다.협상은 디폴트 데드라인을 이틀 앞두고 간신히 타결됐다. 그러나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S&P는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떨어뜨렸다. 그 여파로 미 국채 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당시 무디스와 피치는 AAA를 유지했다.디폴트 위기는 2013년에 되풀이됐다. 공화당은 건강보험제도 혁신안인 오바마케어를 대폭 축소하라고 요구했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간판 정책인 오바마케어를 사수하는 데 총력을 쏟았다. 부채한도 증액 협상은 타결됐지만, 피치는 이때 미국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정치 양극화가 문제다"2023년 들어서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 민주당 출신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은 부채한도 증액을 놓고 막판까지 기싸움을 벌였다. 증액이 안 되면 미국이 국채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초유의 디폴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세계 경제는 백악관과 의회의 벼랑끝 싸움을 숨죽여 지켜봤다. 지난 5월 피치는 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낮췄다. 피치는 "디폴트 시한(6월 1일)이 빠르게 다가오는데도 부채한도를 올리는 등 사태 해결을 하지 않는 정치적 상황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피치로선 사전 경고음을 강하게 울린 셈이다. 기한을 이틀 앞두고 디폴트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피치는 이를 또 하나의 임시변통으로 여긴 듯하다.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고 봤다는 얘기다. 피치는 1일 등급을 강등한 배경으로 "향후 3년 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지배구조)의 악화"를 꼽았다.피치의 리차드 프랜시스 이사는 2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미국 정치권의 부채 상한선 논쟁에선 벼랑끝 전술과 양극화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며 "2011년 이후 2년마다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거버넌스 약화와 정치 양극화 심화는 지난해 1월 6일 의회 난입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났다"며 "민주당은 너무 왼쪽으로 갔고 공화당은 지나치게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탓 공방백악관과 미국 재무부는 격하게 반발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는 피치의 결정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미국 경제가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는 시점에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했다.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피치의 결정이 전적으로 부당하다고 성토했다. 옐런은 "피치의 오류가 있는 평가는 오래된 데이터에 기반했으며 지난 2년 반 동안의 거버넌스 등 관련 지표의 개선 상황을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케빈 무노스 바이든 대선 캠프 대변인은 강등 책임을 아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떠넘겼다. 그는 "트럼프는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했으며,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재앙적 감세로 적자를 확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트럼프가 부채한도 협상 때 디폴트가 오더라도 공화당이 예산 대폭 삭감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한 점을 상기시켰다.마침 이날 연방 검찰은 지난해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를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사기 모의, 국가 기망, 선거사기 유포 등 혐의로 기소했다. 피치는 등급 강등 이유로 정치적 양극화를 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도 미국 정치는 양극화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년 11월 대선에서 재격돌할 공산이 크다. ◇ 한국 신용등급은 안정적피치를 기준으로 최고등급인 트리플A는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호주 등 9개국이 받는다. S&P를 기준으로 하면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호주, 싱가포르 등 11개국이 최고등급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들보다 신용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국가신용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피치는 한국의 등급을 AA-로 평가한다. 2012년 9월 이 등급을 부여한 이래 변화가 없다. 미국이 한 단계 떨어졌지만 우리와 비교하면 여전히 두 계단 높다.S&P는 한국의 등급을 AA로 매긴다. 2016년 8월 이후 변화가 없다. 미국과 비교하면 한 계단 아래다. 무디스는 한국의 등급을 Aa2로 평가한다. 2015년 12월 이후 8년째 같은 수준이다. Aa2는 피치와 S&P의 AA에 해당한다. 미국과 비교하면 두 계단 밑이다. 신용평가 3사는 고령화, 저출생에 주목한다. 무디스는 지난 5월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 성장의 장기적인 리스크는 인구 통계학적 압력이 심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길게 보면 고령화와 저출생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의 지적이 아니라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고령화와 세계최저 수준의 출생률이 한국 경제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 美 강등이 주는 교훈피치가 미국 등급 강등의 배경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꼽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양극화 강도로 보면 한국도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원래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여야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운다. 갈등 증폭기 노릇을 하는 요즘 한국 정치가 딱 그렇다. 양평 고속도 논란에서 보듯 민생은 없고 오로지 정략과 정쟁만 난무한다. 피치의 결정은 정치적 양극화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귀담아들을 한국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경제칼럼니스트>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1일(현지시간)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렸다.피치는 반복되는 디폴트(국가채무 불이행) 리스크를 배경으로 꼽았다. 사진은 피치의 뉴욕 본사 건물. 사진=EPA/연합뉴스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이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수모를 겪고 있다. 사진은 1달러 지폐의 조지 워싱턴 초상. 사진=AP/연합뉴스

[기자의 눈] 11차 전기본, 원전 확대 넘어 현실적 계획되길

정부가 2038년까지의 국내 발전설비를 결정할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새정부의 핵심 정책인 원자력발전 확대 기조가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탄소중립이라는 상위계획, 국가장기재정, 지속적인 경제성장 등을 동시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지엔 의문부호가 많은 게 사실이다.특히 2030 NDC와 2050탄소중립을 법제화 한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이를 주도한 국가들도 행정부의 다짐 정도인데 우리만 앞서서 법제화를 해버렸다. 이 때문에 전력수급기본계획이나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 등 국가 차원의 에너지계획이 영향을 받아 비현실적 계획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2021년에 만든 2030NDC를 2038년 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것은 넌센스다. 송전망도 표준공기가 7∼8년, 발전소도 10년 가까이 걸린다. 현실성이 너무나도 중요한 계획인데 이를 주도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너무나 가볍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석탄을 더 조기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0년 된 발전소의 폐쇄도 세계적으로 볼 때는 ‘초초 조기폐쇄’다. 전력수급과 산업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미다.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엔 에너지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수다. 이미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제주도 전력공급 과잉과 출력제어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 에너지 믹스 상 다변화와 함께 석탄, 석유 자원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활용, 장기비축 가능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영국 정부도 탄소중립을 위한 섹터별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아 시민단체로부터 소송에 걸렸다. 결국 영국 정부가 올해까지 그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기로 했다. 다른 서방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백악관의 정책 문건에 포함됐을 뿐이다. 미국은 예산이 계산되지 않으면 함부로 법제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장 먼저 수치화, 법제화를 해버렸다.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가 없다. 목표부터 던지고 재원을 마련하려 하니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지금과 같은 2050 탄소중립은 영원히 저성장, 저자본의 덫에 갇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11차 전기본이 특정 에너지원의 확대 유무를 넘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환경적 목표의 동시 달성, 기후위기 대비, 에너지안보 역량까지 확보하는 계획이 되길 기대한다.jjs@ekn.kr전지성 정치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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