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민주당'.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져 위기에 처하게 되자 선거캠프를 전면 개편하면서 내세운 구호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지금부터는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필자는 이재명 후보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당이 있고 후보가 있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이 후보는 당이고 뭐고 필요 없고 오직 자신이 먼저이고 자신만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선거 열기에 휩싸여 그렇겠지 싶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도 이재명의 민주당은 더욱 공고해졌다.
낙선 이후 곧바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입후보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이어서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 대표 자리를 꿰찬 이재명은 대선 당시 약속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헌신짝처럼 내 버렸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임시회기를 연장해 가며 국회를 이용해 철저하게 방탄 정국을 유지했고, 수차례에 걸친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를 검찰독재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렇게 철저하게 당을 통제하면서 공천권을 가진 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동의할 의원은 없을 줄 알았는데, 무려 39명의 의원이 가결 표를 던져 하마터면 감옥에 갈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속 의원들의 배신(?)으로 불체포특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갈뻔한 이재명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두 번 다시 이런 위험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범죄혐의로 추가 기소의 위험이 있는 이 대표로서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체포동의안 가결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천은 당의 총선 승리나 후보의 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공천하는 것이다. 혼자 힘으론 절대 국회의원 배지를 달수 없는 사람들을 공천해 의원을 만들어 놓으면 이 대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것이고 그에 비례해 충성심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 김근태 전 의원과 부인 인재근 의원이 내리 6선을 한 민주당 텃밭인 서울 도봉갑구에 듣도 보도 못한 35세 안귀령이라는 여성을 공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인 의원에게 전화해 출마포기를 요구했고, 그 자리에 안귀령을 공천했다고 한다.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파동의 본질은 이것이다. 그래서 비명, 혹은 친문 정치인들이 대거 낙천의 쓴맛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어떤 비판과 비난을 쏟아부어도 이 대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듣기 싫으면 그들이 모이는 의원총회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사실 그 당시는 대부분 국민이 어렵게 살았었지만) 평생을 혼자 힘으로 거칠게 살아온 이재명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형과 형수에게 쏟아부은 막말과 욕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지금 비명, 친문 정치인들이 겪고 있는 낙천의 서러움은 스스로 만든 업보일 뿐이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영주 의원, 판사직에 있던 이수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비교적 중립적이고 상식적인 활동을 해 온 박용진 의원, 유승희·전병헌 전 의원 등 이름만으로도 상당한 표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인들이 경선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동안 이들은 이재명을 옹호하고 그의 사법리스크를 오히려 검찰 독재 때문이라고 비판해 온 사람들이다. 성남시장 시절 지역개발사업과 관련한 이재명의 부패 의혹은 공익을 수호해야 할 검찰이 반드시 수사해 옳고 그름을 밝혀야 할 일이다. 공천 배제된 정치인들이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지방권력의 전형적 부패구조에 해당하여 수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만일 몰랐다면 스스로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정치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알량한 국회의원 자리를 유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불의를 보고도 눈감은 것이어서 역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맹자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지단야(智之端也)요, 무시비지심(無是非之心)은 비인야(非人也)라고 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은 지혜의 근본이요, 시비지심이 없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아니라는 말의 뜻은 금수(禽獸)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이재명 대표의 행태를 보고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보다도 못하다는 뜻이다. 자신이 공천에서 배제됐다고 뒤늦게 비난하고 소리 지르는 것도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국민의 눈에는 이 대표나 공천 배제된 사람이나 시비지심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지금 민주당의 공천과정을 보며 이번에는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